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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으로는 처음 나온 앙드레 고르의 책이 아닌가싶다. 물론 2007년 학고재에서 “D에게 보낸 편지”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 책은 ‘연서’ 형식의 다소 가벼운 에세이라 패스~.(“에콜로지카”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앙드레 고르. 오래전 한길사에서 나온 책(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의 한 꼭지로 그의 글을 접한 바 있고, 생태학에 관심을 두고부터 늘 밑줄 치며 읽었던 고 문순홍 박사의 글들에서도 가끔씩 언급된 인물이다. 유작이 된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그의 사상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니...(노동 운동과 문화 비평 분야에서도 드문드문 인용되곤 했다)
앙드레 고르에 관한 소개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글에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이반 일리히의 사상은 아주 진하게 배어있다. 저자 자신도 밝히고 있는 바, 특히 서두에 정치적 생태주의에 가담하게 되는 과정과 자동차 문화에 대한 비판을 보면 특히 그렇다. 몇 편의 글 중에는 읽기 쉬운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래도 분량이 많지 않아 비교적 술술 넘어간다. 우리 사회가 왜 이 지경까지 왔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어떤 파멸을 맞이할지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어찌 보면 그가 주장하는 임금노동을 거부하는 사회, 자율협력공동생산의 사회가 판타지의 세계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그런 현실감 없어 보이는 대안들이 끊임없이 실험되고 수정되는 사회가 부러운 건 사실이다. 생태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머레이 북친의 생태적 사회주의와도 비교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앙드레 고르 콜렉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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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콜로지카] 앙드레 고르 사상의 집대성
워낙 얇아(170여 쪽) 가벼운 사회과학서를 읽고 싶은 독자들이 선택하기 쉬운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정말 얇지만 정말 어렵다. 읽고 있으면 '따스한 햇살 아래 앉아 느긋한 마음으로 정독해보라'는 강수돌 교수의 권사가 야속하게 느껴진다. 진득이 읽으면 책 내용이 들어온다. 그러나 여기에 성공한다 해도 이 책을 주어진 텍스트 이상 깊이 이해할 독자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대학생 이상가고 더 고학력 독자용의 책이라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다. 이 책이 어렵고 낯선 이유를 추측해보면 첫째는 우리의 20세기는 앙드레 고르와 같은 사유를 나눌만한 역사적·사회적 기반이 되어 있지 않았다. 둘째는 몇몇 책들에서 인용된 적이 있을 뿐 우리에게 앙드레 고르의 저서가 번역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앙드레 고르는 명성에 비해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지식인이다.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이었던 앙드레 고르는 이력과 삶이 독특하다. 앙드레 고르는 학자가 아니다. 그는 화학 전공의 신문 기자였다. 그러나 평생 끝없는 사유로, 사상가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깊은 탐구를 이룬다. 그러나 아내가 불치병에 걸리자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24년의 간병 끝에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국내에 앙드레 고르의 저서는 현재 2권 번역되었는데 둘 다 자살 직전 쓴 유저로 앙드레 고르가 죽은 당해와 다음해에 나란히 변역·출판되었다. 그 중 한 책이 <에콜로지카>이다. 자살 전 구상했던 책이고, 자신이 지금까지 발표한 글 중 그의 사상이 가장 요약·집중된 7편을 직접 골라 엮은 책이다. 그래서 얇지만 앙드레 고르 사상의 집대성을 볼 수 있는 책이다. 특히 가장 첫 편과 마지막 편은 인터뷰라 남은 다섯 편을 비롯한 앙드레 고르의 사상 전반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바탕이 된다. 앙드레 고르의 '정치적 생태주의'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 그는 마르크스를 즐겨 인용하고 자본주의의 붕괴를 주장하지만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또한 앙드레 고르가 68혁명 세대에 큰 영향을 준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이론가였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그의 관점이 읽힌다. <에콜로지카>의 주장을 아주 쉽고 간단하게 요약하면 '인간이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앙드레 고르는 붕괴한 것은 사회주의뿐이 아니라, 자본주의 역시 지나친 발전 끝에 자승자박으로 수명이 다했다고 주장한다. 브레이크 없는 과다생산과 소비가 양극화와 불행, 비인간화와 환경오염 등 오늘날 자본주의의 각종 폐단들을 낳았다. 그리고 정보화 사회로 오면서 기존의 기제들이 먹히지 않는 형태의 경제가 나타난다. 그래서 앙드레 고르는 그에 맞는 경제 패러다임이 필요할 때라고 역설한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의 기본은 충분한 수준의 생산과 소비에 만족하며 절대 폭주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그리는 이상은 원시공산사회와 가장 비슷하다. 앙드레 고르의 진단은 선진국부터 저개발국까지 모두 포괄하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사회가 성숙하고 고도로 자본주의가 발달을(소위 서구 선진자본주의 사회) 경험했을 때 내놓을 수 있는 견해이다. 전 세계적으로 계속 터지고 있는 금융위기도 그렇고 정말 자본주의가 끝을 향해 치달아가는 것인지 앙드레 고르가 몇 수 앞을 내다본 앞서 나간 사상가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번쯤 새겨볼만한 흥미롭고 의미 있는 주장이다. 앙드레 고르 사상의 완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은 좋다. 하지만 60여년이 넘는 지적 탐구를 불과 7편의 글로 압축하다보니 행간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고 겉핥기에 그친다는 생각에 아쉽다. 답을 알고 문제 푸는 기분도 괜찮으니 부디 이 책이 많이 알려져 앙드레 고르의 다른 책들도 번역되길 간절히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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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무한한 지식을 토대로 경제적인 부를 누린다! 그렇다고 믿었다. 이책을 읽기 전에는.. 그러나 이책은 지식의 경제는 공동화와 無償의 경제여야 한다는, 즉 경제와는 정반대되는 소명을 띤다는 것이다.
지식생산과 물질적, 비물질적 부의 생산이 혼용되는데 고정자본은 더 이상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고 생산의 주된 힘은 기계라는 자본도, 돈이라는 자본도 아니고 사람들이 상상하고 발명하고 자신의 지식, 부의 생산과 인지능력을 늘려가는 열정적인 사람들에 의해 내재화되고, 포섭된다는 것이다.
그 예로 [해커]를 들고 있다. 이들은 정보기술의 원천을 갖고 자본에 대항함으로써 반경제를 만들고 자유로운 소프트웨어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이책은 허구적인 자본주의적 허상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생산적 탈성장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우리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며, 우리의 삶이 진정 자신을 위한 것인지 타자를 위한 타자의 삶은 아닌지를 뒤돌아 보게 한다.
얉지만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다.
정말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나서 더없이 행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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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다지 소비지향적인 인간은 아니다. 사람이 제 나이에 특히 더 많이 활동하는 일들은 대충이나마 정해져있기 마련인데, (젊었을때 공부, 30 넘어가면 생산적 활동, 그 이후로는 여가 행태) '소비'란 것은 일생의 전 기간에 걸쳐서 멈추지 않는 상당히 소모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소비란게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타의적으로 움직이는 일이라는 것. 이제는 점점 나의 필요에 의해 구매한다기 보다는 신제품이 나와서, 광고를 보고, 결국 사고야 마는, 이런 수동적인 과정이 필수불가결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과정이 되풀이될수록 쓸데없는 낭비가 심화되고 노동은 더 착취된다. 노동이 착취되는데 소비자는 마치 자신은 그 입장이 아닌것처럼 더 쓰고 더 낭비한다. 그 뒤에서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기업들이 있는줄은 꿈에도 모른채. 자본주의가 세계경제를 쥐어잡고 흔들었지만 이제 이런 이데올로기도 종말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나는 오늘을 사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오랜 삶을 살아서 세월의 격변을 조리있게 설명할 능력도 없지만 '돈이면 다 된다' 따위의 명제는 어느 순간엔 죽는다. 확신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이 안이하게 미디어를 믿고, 자본주의를 믿고, 목적 없는 이윤만 맹목적으로 믿는한 속터지는 우물안 개구리식 자본주의 논리로부터의 해방의 속도는 느려질테지만, 언젠가는말이다 언젠가는. 빚을 내어 집을 사고 또 돈을 벌지만 그것으로 돈밖에 벌지 못하는, 사상이 빠진 삶은 처참할뿐이다. 국민총생산에 숨겨진 그 어리석은 생산, 소비 과정을 이 책을 읽고 좀 알아야 할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