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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의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 한 편의 수필을 읽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문장은 오히려 진중하고 삶의 기나긴 성찰이 담겨있고 간결하면서도 간간이 마음을 아프게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
소설은 "몸므가 그들에게 말한다"로 시작한다. 줄거리는 오히려 간결하다. 1617년 파리에서 태어난 몸므는 나니와 금지된 사랑을 하다 그 댓가로 화상을 입고 도망친다. 그는 삶의 중간중간에서 만나는 성적인 이미지들을 판화로 작업하고 중년에 마리라는 젊은 여성을 만나기도 하다가 결국은 자기를 몰라보는 아들에게 상처를 입고 죽게 된다. 이 모든 시간들을 연결하는 매개체는 그의 판화 작업에 대한 설명이다. 마치 눈으로 보는 듯한 판화 기법의 세세한 묘사를 통해서 우리는 당대 풍경과 관습과 예술의 세계에 참여하게 된다. 이에 대한 설명은 감정을 배제한 묘사를 통해 더욱 사실적으로 와닿는다. 또한 몸므의 입을 통해 비쳐지는 삶의 단상들은 소설가 키냐르의 인생관을, 즉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으면서 삶에서 느낄 수 밖에 없는 진한 고독의 시간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책은 오래오래 천천히 읽어야 할 소설이다. 그 문장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47개의 단편조각들을 맞추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또 읽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한다. 몸므가 죽기 전 고통으로 내뱉는 말이 오래 여운을 남긴다.
< 어떤 나이가 되면, 인간은 삶이 아닌 시간과 대면하네. 삶이 영위되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지. 삶을 산 채로 집어삼키는 시간만 보이는걸세. 그러면 가슴이 저리지. 우리는 나무토막들에 매달려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고통을 느끼며 피흘리는 광경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는 하지만 그 속에 떨어지지는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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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생"을 통해 파스칼 키냐르가 매혹적인 목소리를 갖고 있는지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또한번의 몽환과 인식으로의 수렁에 갇히고 싶어서 참 반갑게 선택했다. 은밀한 생에 비해 훨씬 홀쭉한 두께에 약간 김이 샜다. 그래서 조금 함부로 읽고 또 두고 두고 틈새를 맛보려 한다.앞부분에 어떤 페이지에서인가 몸므의 분홍색 성기를 단지 그렇다고 말했을뿐인데도 후끈 달아오르지만 서늘한 나락이, 환희와 누추함의 서정에 눈물이 다난다.신화와 현재,감각과 이성이 동시에 구동된다면 과장일까. 이를테면 "총체적인~". 몸므같은 남자를 언젠가 알고 있었다는 느낌 기묘하게 멀미가 느껴지는 슬픔이 있어 어쩐지 은밀하고 긴밀한 순환의 공기! 그 바람이 불어온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구석에서 살아가는 법이지" [인상깊은구절]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구석에서 살아가는 법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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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은밀한 생>으로부터 받은 난해한 감명이 적지 않아, 오래 전 구입하였으니 지금껏 미뤄오다 이제야 읽게 되었다. 작가가 보여주는 아포리즘으로 가득한 에세이 소설의 특징은 전작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전작이 음악을 기조로 하는 반면, 이번 소설은 미술 그 중에서도 판화를 기조로 한다는 차이는 있다) 조금은 조용한 곳에서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스스로에게 잔뜩 몰입할 수 있을 때 읽으면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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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둠의 편린을 쫓다가 어둠에 빠져들지요.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로마의 테라스>는 ‘사랑하던 여자의 아들을 친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설명을 했다. 인터뷰에 참가한 기자들이 몹시 화가 났었다고.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것만이 사랑은 아닐텐데, <은밀한 생>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몸므’라는 이름의 가난한 판화가로 약혼자가 있는 판사의 딸과 사랑에 빠지다, 그녀의 약혼자가 퍼부은 질산으로 얼굴에 화상을 입는다. 사랑은 끝이 나고 흉측한 얼굴을 모자에 가린 채 세상을 떠돌게 된 판화가. 세월이 흘러 그는 한 청년의 습격을 받게 되는데, 그 청년은 바로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의 아들이다. 하지만, 몸므는 아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상처에 대한 치료를 거부한 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몸므가 대답했다. “어떤 나이가 되면, 인간은 삶이 아닌 시간과 대면하네. 삶이 영위되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지. 삶을 산 채로 집어삼키는 시간만 보이는 걸세. 그러면 가슴이 저리지. 우리는 나무토막들에 매달려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고통을 느끼며 피 흘리는 광경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는 하지만 그 속에 떨어지지는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네.” –p128 그의 마지막 말이, 이해가 되기도 하고, 정말 욕망의 끝을 내려놓는 순간이 오는 것일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