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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잡이라는 작품집을 본 기억은 얼핏 나는데, 사실 이청준의 작품에 대한 인상은 별로 없었던게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작이라는 걸 보고 골랐는데, 그게 유작이었다네. 더구나.... 거의 대하소설급으로 기획된 것인데, 그중 겨우 1권이라고 하고. x장~ 옛 날얘기라 했고, 신화를 언급하기에... 아주 옛날이야기, 전설... 그런걸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닐까 하고 착각을 했는데, 역시 x장! 이건 자신에게 하는 이야긴데, "이 소설의 야심은 우리의 근대적 삶이 곧 새로운 신화의 생성 그 자체라는 것을 웅변하는데 있다"라는 문장을 봤으면서도, 거기의 '근대적 삶'이란 걸 간과했다는... ^^;;; 그래도, 옛날 이야기풍으로 작은 마을들을에 사는 작은 사람들의 뒷이야기 같은 분위기로 나름 스피드하게 이야기가 전개가 된다. 다 읽지는 못한 토지와 같이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역시 다 읽지 못한 장길산같이 인물의 영웅화에 방점을 찍지도 않으면서 술술술, 그러면서 인물들의 먼 훗날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리고... 역시 나는 대하소설엔 어울리지 않는구나란 생각을 새삼하게 된다. 이처럼 제한적으로 읽어보고서 고인이 되어버린 이청준이라는 이에 대해 호불호를 따지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이 작품을 보고서 상당히 강한 호기심이 유발되었단 것은 지적할 수 있겠다. 뭔가 계몽적인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면서도 심각하지는 않은 문체. 어쩜 대표작인 '당신들의 천국'에 대해 읽어보기 전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봤던게 여태껏 이 작가를 접하지 못하게 한 가로막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소 길지만, 작가 스스로가 쓴 작품론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 그 같은 암중모색의 과정(소설쓰기, 살아가기의 길찾기를 비유한 말이다)은 다시 비유하자면 어두운 밤 산길의 독행자(獨行者)와 같은 여정이었다. ... 옛날 우리 시골에서는 먼 거리 호젓한 밤 산길을 가다 마주 오는 사람을 만나면 '방금 전에 길을 앞서 간 사람이 있었노라' 짐짓 안심을 시켜주고 지나치는 게 예사랬다. - 서둘러 쫓아가보시오. 몇 참 안 가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게요. 길을 거의 온 사람이 많이 남은 사람 쪽에, 심신이 든든한 장정 쪽이 무서움을 타기 쉬운 아녀자 쪽에 건네는 반거짓(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까) 위안거리 말로, 나는 그게 늘 내 소설 일의 성격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 첫째,... 삶은 베끼는 소설이란 그렇듯 막막한 밤 산길의 노정 중에 그 보이지 않는 선행자의 발길을 외롭고 절박한 심중의 한 지표로 상정해봄으로써 나름대로의 위안과 용기를 얻고자 하는 일과 맞먹는 것이리라, 둘째... 그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노중의 대화는 어느 경우든 상대방의 남은 발길에 위안과 용기를 주기 위한 허구의 성격이 짙은 수사인 바, 그것이 바로 소설의 허구성 또는 그 목적과 통해 보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이제 정보의 보편화와 가치관의 이동으로 하여 그 밤 산길의 허구는 무용한 거짓말 이상의 진실성을 잃게 됐고, 어둠 속에 발길은 때로 그 지향처마저 잃고 헤매는 경우가 없지 않아 보이는 요즘의 세태다. === 꼭 이 작품과 같은 이야기 형식의 소설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이와 같은 목적(!)이 소설쓰기의 배경이 아닐까 싶단 생각에 강한 동감이 된다. 그리고 뭔가 짠하고 안타깝단 생각이 밀려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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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님의 유작인 "신화의 시대"를 처음 펼쳐서 읽을 때는 개인적인 여러 일들이 겹쳐서 좀처럼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소설은 모름지기 한 방에 읽히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주변의 사소한 일들이 자주 끼어 드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 다시 읽게 된 이 소설의 무게는 약간 감당하기 힘들었다. 옛스런 어휘들이 종종 낯설게 느껴진 것은 아직도 편협된 읽을거리를 사수하고 있는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인한 것이리라.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선바위골에 자리잡은 이들과 그 곳까지 흘러 들어 온 "자두리"라는 보잘 것 없는 여인의 일화가 세대를 거슬러 가면서 전설과도 같은 흔적을 남기게 된다. 안팎으로 어려운 시대에, 마치 무명저고리와 헤진 치마를 입은 여인들의 초라한 이마 아래 가느다란 바람에 쓸려 간 몇가닥 머리카락의 흩날림처럼 그녀들의 고달픈 삶의 이야기가 지레 그러한 듯 운명처럼 읽혀 내려간다. 너무나도 유명한 그래서 영화로도 내게는 큰 반향을 일으켰던 "서편제"나 "축제"의 그것처럼 남도의 옛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담담한 대화체 어미처리의 구수함과 사뭇 노련함이 천상 우리 것임을 알게 한다. 태생의 비밀을 알지 못한 채 앞으로의 역사에 주춧돌이 될 인물 "태산"의 어린시절 이야기나 알면 알수록 깊어지는 세상의 지식과 실천을 암시하는 그의 언사는 이 소설의 끝나지 않은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한다. 작가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이다. 신화의 시대가 과거에 있었던가? 시대의 씻김굿을 보는 것처럼, 과거 영혼과의 해후도 이제는 돌려 보내야 할 것 같다. 미래에 도래할 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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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떠나며 피렌체를 거쳐 베니스에 이를 때까지 읽다.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고 아까워 못 견디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 좋은 글을 이제 다시는 더 읽을 수 없다니. 태산이가 자라서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게 될지 작가는 머리와 가슴 속에 다 키워 놓으셨을 텐데, 미처 풀어놓지 못하고 떠나셨으니.
이제까지 읽어온 작가의 글을 다시 읽는다고 해도 이 상실감을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깝다, 아깝다 하면서 그저 견딜 수밖에.
천천히 한 줄 한 줄 아껴 가며 읽어도 금방 사라져버리는 글귀들. 참 무슨 매력인지. 사람살이를 이토록 사랑스럽게 그려내는 힘, 사람과 삶을 사랑하지 않는 한 절대로 드러낼 수 없는 힘이라고 한대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고마울 따름이다. 이런 글을 읽게 해 주셨으니.
더는 새로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아득한 마음에 그만쓰고 싶을 따름이다. 이 작가가 내 독서 역사의 살아남을 신화가 된다. 처음 읽었던 그의 '당신들의 천국'부터 이 책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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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참, 크게 놀랐다.
이렇게 멋진 문장과 구성을 얼마만에 보게 된걸까...
매혹적인 문장이 쉼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걸 읽어내려가면서
종종 마음이 벅차 올랐다.
이청준 선생님의 글을 더는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더 이 글을 귀하게 읽게 만든 탓일까?
마음이 안타까울 정도로 감탄하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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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님의 글을 사실 거의 읽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