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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역동적인 심리학적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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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행위가 어떤 합리성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전제하에 그 행위를 분석하는 것이다. 만약 아돌프 히틀러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단순하게 "미친" 사람들이어서 전쟁을 일으켰다고 한다면 더 이상 인문학에서는 이를 고찰할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광기의 인간이라고 평가하는 그들에 대해서도 인문학자는 사회경제적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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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행위가 어떤 합리성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전제하에 그 행위를 분석하는 것이다. 만약 아돌프 히틀러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단순하게 "미친" 사람들이어서 전쟁을 일으켰다고 한다면 더 이상 인문학에서는 이를 고찰할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광기의 인간이라고 평가하는 그들에 대해서도 인문학자는 사회경제적 이유, 혹은 국내의 정치적 상황 등을 들어 그들이 결코 광기에 의해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어떤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전쟁을 일으켰다는 해석을 시도한다. 이것은 단순한 해석을 넘어 그들이 일으킨 전쟁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또 이들 인물에 대해 전부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이나마 면죄부를 주기도 한다.
과연 전쟁이라는 것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술사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왜 특정한 예술양식이 어떤 시대에 나타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많은 미술사학자들은 특정 예술양식은 특정한 사회적 배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견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몇가지 사소한 이유만으로 전쟁이 일어났다고 설명하는 견해처럼 공허한 이론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발견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다루어졌던 심리학적 원인분석을 거대한 사회문제인 전쟁에 적용하여 살펴본다면, 이제까지의 원인분석보다 더 역동적인 전쟁의 원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단순히 광기로 일어난 전쟁이라고 보는 견해와 합리적 이유가 있었다고 보는 견해를 뛰어넘어 보다 사실에 가까운 원인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에 대해 상당히 많은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이 책의 곳곳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던 이유가 결코 합리적이지 않았음을 역설한다. 여러 가지 전쟁의 원인이 분석된 적은 있으나, 그 어떤 것도 진실을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그러한 전쟁이 몇몇 광기어린 지도자에 의해 이벤트성으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치부하는 것도 아니다. 더 많은 다수가 어찌 정신병자 하나가 날뛰도록 내버려두어서 자식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정책에 찬동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이 책의 첫 장에서는 전쟁이란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속성’이라고 전제한다. ‘성선설’과 ‘성악설’이 있다면, 마치 ‘성악설’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돌이켜보면 세계사 교과서를 읽을 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들은 대체로 전쟁과 혁명에 관한 것이었고, 그것이 인류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은 누누히 들어왔던 이야기였다. 피해를 당한 입장에서야 두고두고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정신병자이겠지만, 만약 전쟁을 일으켜서 승리한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와 인디언을 말살시키려했던 백인들은 무엇이 달랐을까. 알렉산더와 칭기즈칸도 거대한 정복사업을 벌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그것 역시 정신병자의 이벤트였을까? 이 책은 그런 행위를 정당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여하간 그런 일들이 히틀러와 히데요시 같은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상당히 보편적으로 이루어져왔었다는 점을 첫 장에서 설명한다. 다시 말해 히틀러 같은 정신병자 몇 명을 없애는 방식으로 지구상에서 전쟁을 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쳅터 “전쟁은 비정상적”이라는 주제는 그들이 전쟁을 일으킨 원인을 기존의 역사학자들의 시각으로 해석해서는 답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이유를 합리적인 원인에서 찾으려고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자와 그가 속한 집단이 바보가 아닌 이상, 전쟁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매우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쟁은 계속 발발했다. 그것은 단순한 광기 때문이었을까? 흔히 ‘집단무의식’으로 잘 알려진 카를 구스타프 융 심리학의 전문가답게 저자 제임스 힐만은 단순한 광기를 넘어 전쟁을 추구하는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파고들 준비를 마치고 세 번째 장으로 넘어간다.
세 번째, “전쟁은 숭고하다”는 전쟁의 미학적 문제이다. 마치 카드빚을 지면서도 명품을 구입하려는 비합리적 미적 욕구나 전쟁에 대한 욕구는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설명하는 듯 하다. 마치 발에 차이는 것이 명품이라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게 될 것처럼, 전쟁도 그 희생정신, 집중성, 맹목적성 등의 기반 위에 서있기에 사람들이 더더욱 매달리는 해결책이 되는 것이다. 왜 그토록 군인들은 전쟁에 임해서도 각을 잡고, 열을 맞추고,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는가, 왜 군복과 전투기와 총은 끊임없이 소유와 갈망의 대상이 되어왔는가. 그것은 전쟁을 그토록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만들어온 인간 본성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특히나 이 장은 미술과 전쟁의 원인을 유사한 곳에 있다고 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나에게는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장이기도 했다.
마지막 장은 그 원인을 종교, 특히 기독교로 돌린다. 성서에 나타난 수많은 전쟁과 잔혹한 살육은 인간 본성을 합리화시키고, 죄책감을 덜어주고, 오히려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결코 예수가 그렇게 가르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교회가 그렇게 만들어왔을 것이다. 여기서 숭고한 미, 신, 그리고 전쟁은 하나가 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미덕은 무엇인가? 만약 전쟁이 합리적인 원인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전쟁은 계속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쟁예찬론자의 고백처럼 들리는 이 책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전쟁에는 합리적인 원인이 없으며, 그렇다고 몇몇 정신병자의 이벤트인 것도 아니며, 나아가 평화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종교 역시 더더욱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 오로지 우리가 극구 부정하고 있지만, 전쟁이란 우리의 본성에 있는 속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가운데 그 억제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역설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 전쟁은 히틀러 같은 광기어린 독재자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나를 포함한 평범한 독자 모두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행위라는 것을 똑바로 인정할 때 비로소 전쟁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외침은 가장 타당한 전쟁에 대한 보고서로 다가온다.
더불어 상당히 어렵고 복잡한 심리학적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어갈 수 있도록 배려한 깔끔한 번역과 이해를 돕는 적재적소의 역자의 주석은 누구나 쉽게 이 문제에 다가서도록 독자를 이끈다. 보다 역동적인 인류역사의 동기를 찾으려는 진지한 탐구자 분들께 일독을 추천하고 싶다.
d*******o 2012.08.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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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형벌은 전쟁이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형벌은 전쟁이었다." 내용보기
책의 저자 제임스 힐먼은 미 해군병원에서 복무했던 경험이 있었고, 융 연구소에서 정신분석가 자격증을 받은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이다. 심리학의 제1의 원칙은 우리가 이해해야 할 현상이 무엇이든 그것에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도입부분에서 힐먼은 전쟁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과 혐오감은 배재하고 이 책을 봐야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전쟁이란 일반적으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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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제임스 힐먼은 미 해군병원에서 복무했던 경험이 있었고, 융 연구소에서 정신분석가 자격증을 받은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이다. 심리학의 제1의 원칙은 우리가 이해해야 할 현상이 무엇이든 그것에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도입부분에서 힐먼은 전쟁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과 혐오감은 배재하고 이 책을 봐야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전쟁이란 일반적으로 잔인하고 끔찍한..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저자는 전쟁에 관해 그것도 끔찍한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며, 전쟁이란 정신적 능력과 인식이라는 능력을 소유한 종족인 인간들이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전쟁의 당위성과 진실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간은 누구나 전쟁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보면서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런 논리를 펼치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더 열심히 책을 보게 된 이유를 들수 있겠다.


인간은 전쟁을 사랑한다고? 저자의 말과 또 전쟁을 논리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만 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복잡한 감정에 얽혀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누구나 핵의 무시무시한 파괴력과 공포심을 피할 수는 없지만, 전쟁의 원인은 충분히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데 이 책의 출간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서구문명 초기의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는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라고 말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쌍 논리(사물은 서로 대립하는 속성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속성들의 상호전환에 의해 변화가 생긴다는 이론)와 칸트의 이율배반, 다윈의 자연선택,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 프로이트의 이론등.. 모두 전쟁의 논리대로 해석할 수가 있으며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반대 세력과의 끝없는 전투, 정복과 영토 방어등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근거는 모두 인간의 삶의 기본 원칙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힐먼은 전쟁은 인간들의 정상적인 행위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하루에도 수천, 수만.. 아니 수십만의 사람들이 컴퓨터게임의 장난감처럼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군인, 민간인, 어른, 아이할것없이 무참히 짓밟히고 폭탄등 전쟁무기로 땅은 잔인하게 황폐화되고, 사람들은 힘없이 죽어간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순간부터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한 인간으로서가 아닌 존재성은 말살된 채, 개별 사상자수로 집계되어 그래프의 수치로 표시되고 어느 전쟁에서, 어느 위치에서 그렇게 죽어갔더라.. 하는 식의 통계로만 그들을 기억하게 되는것이다.


수천만에 가까운 부상자들은 또 어떠한가.. 그들은 살아남긴 했어도 팔, 다리를 잃고, 눈을 멀고, 화상을 입고, 얼굴이 완전히 망가져 알아볼 수도 없는 형체로 불행한 현실을 살아가야만 한다.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후유증과 육체적인 고통을 수반하면서 그들은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쟁중에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반면 전쟁중에 정신쇠약의 증상을 보이는 군인들은 그 원인이 뇌장애, 공황상태, 우울증, 중독, 충격, 히스테리등 그 중에 구분할 만한 수단이 없어 이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 또한 부지기수라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일반적인 견해로 봤을때는 비정상적인 것들이 전쟁중에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들로 간주되는 부분이다. 정의가 냉정한 사리사욕으로 변하고, 대담해지고, 광분하는 행위, 비인간적인 행동이나 상징이 추상화되고, 통제 불가능한 자율등을 꼽고 있는데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될일이란 사실이 분명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저자는 전쟁이란 특수성으로 사람들은 더 잔인해지고 흉악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군대는 강압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전쟁에 있어서 강압이란 필수적인 요소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전쟁중에는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 더더욱 인간은 잔인해질수 있는데 인종을 가리지 않고 강간, 살인, 학살등 잔혹한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자신의 잘못이나 뉘우침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어떤 이론이나 혁명, 또 그 어떤 집단이나 국가에서도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란 일어나는 순간에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불행한 현실이 될 것은 물론이고인간으로써 당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럽고 잔인한 형벌임을 우리 모두는 느끼고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은 결국 전쟁없는 세상이 되기를 간곡히 바라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큰 미덕은 무엇인지 모두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었던 놀라운 책이었다.

y******5 2008.12.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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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이며 숭고하다.
"전쟁은 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이며 숭고하다. " 내용보기
다행스럽게도 전후 세대로 태어나 직접적인 전쟁을 겪지 않았고, 휴전이라는 불안한 상태이지만 비교적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여성으로서, 나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들에 대해 TV에서 보여주는 피상적인 모습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걸프전 당시 캄캄한 하늘을 가르며 올라가는 미사일의 하얀 궤적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고, 전쟁을 실감나게 묘사한 영화들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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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전후 세대로 태어나 직접적인 전쟁을 겪지 않았고, 휴전이라는 불안한 상태이지만 비교적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여성으로서, 나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들에 대해 TV에서 보여주는 피상적인 모습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걸프전 당시 캄캄한 하늘을 가르며 올라가는 미사일의 하얀 궤적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고, 전쟁을 실감나게 묘사한 영화들을 보면 실제로 일어나는 전쟁의 한 장면 같았다. 이처럼 가상현실과 현실은 묘하게 중첩되어 현실에서의 전쟁의 끔찍함과 잔혹함은 오히려 희석되는 것처럼도 생각되었다.

요즘 PC방을 가 보라. 총이라고는 구경도 못한 아이들이 저마다의 캐릭터로 상대를 쓰러뜨리고 아이템과 경험치를 올리는 피투성이의 현장이 컴퓨터마다 벌어지고 있다. 인기를 끌어 모으는 온라인 게임의 많은 종류가, 서로 협동하고 무언가를 함께 창조하는 것이 아닌, 편을 가르든 혼자 하든 상대를 쓰러뜨려야 내가 올라가는 그런 전쟁 게임이 아니던가. 3D 게임은 더하다. 총을 들고 걸어가는 것처럼 화면이 실감나게 흔들리면서 조심스럽게 나아가다가 모퉁이에서 고개를 내민 적군에게 총을 쏘면 피를 뿌리며 머리통이 날아간다. 이렇게 일상에서의 전쟁은 흔하고, 이런 전쟁의 긴장감과 상대를 억누르는 쾌감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 (2008, 제임스 힐먼 지음, 도솔 펴냄)은 지금껏 전쟁이 필요악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생각을 많은 부분 없애게 만든다. 저자는 미국의 심리학자로서, 이 책을 지을 당시 팔순에 가까운 나이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미 해군병원에서 복무함으로써 전쟁을 경험했고, 여러 철학자들의 이론과 그리스 로마 신화, 일신교라는 전투적인 종교, 많은 문학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전쟁에 가지고 있는 사랑을 백일하에 드러낸다. 그는 전쟁이 정상적이고 비인간적이고 숭고하며, 종교는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참고문헌들이 등장하며 역사의 사실들을 불러내어 해석한다.

너무나 많은 이론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기반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으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전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무서운 믿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책을 덮으면서 안정효 선생님의 <하얀 전쟁> 변 일병이 떠오른다. 사람이 아니라 적으로 상대를 인식하는 것, 그런 비인간적인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을 기약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로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을 버렸으면 한다.

y*****9 2008.1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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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담긴 인간의 심리를 파악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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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란 이름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전쟁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것은 인간의 역사 그 이전시대부터 지속되어오는 적극적인 힘의 논리일 것이다.  전쟁은 힘을 가진 자가 집단의 우두머리로 나타나고 그 집단이 힘의 대결을 통해 주위의 다른 집단을 정복해 나가는 그 모든 과정을 말한다. 애초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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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란 이름의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전쟁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것은 인간의 역사 그 이전시대부터 지속되어오는 적극적인 힘의 논리일 것이다.  전쟁은 힘을 가진 자가 집단의 우두머리로 나타나고 그 집단이 힘의 대결을 통해 주위의 다른 집단을 정복해 나가는 그 모든 과정을 말한다. 애초에 그것은 생존본능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시대를 지나오면서 그것은 자기자신을 과시하는 적극적인 수단의 하나로 변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의 삶과 정신 모두를 파괴시키는 전쟁을 옹호할 수는 없다. 그것은 비단 평화주의자 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삶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전쟁이라는 공포로부터 벗어나 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조건이기도 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힐먼은 자신의 책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을 통해 그러한 전쟁과 그 전쟁을 자행하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통해 저자는 무엇보다 우선 전쟁에 대한 심리학의 이해를 요구한다. 그것은 전쟁이 인간의 삶은 물론 모든 지구상에 살아있는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것을 막으려하기 보다는 오히려 전장으로 나가려 하는 인간의 심리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는 전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전쟁이 모든 인간이 존재하게끔하는 근원적 요소라는 레비나스의 표현은 인간의 삶 자체가 전쟁의 논리와 그리 다르지않다는 점에 기인한다. 실제 경쟁과 투쟁이라는 삶의 기본원칙은 약탈, 영토방어, 정복, 반대 세력과의 전투라는 전쟁의 방식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러한 요소들이 저자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것이 '원형 심리학'으로 표현되는 전쟁의 심층심리에 대한 신화와 철학 그리고 신학이며 그러한 요인들과 전쟁과의 다양한 연관관계를 규명해보는 시도가 이 책에는 담겨 있다.

 

분명 전쟁이 없어져야하는 공포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우리가 삶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전쟁의 공포를 완화시키고 싶다면 전쟁을 이해하고 또한 상상해야 한다. 상상은 전쟁에 관한 이성적 연구 내지는 학문의 가장자리까지 밖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도약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신화라는 새로운 세계와 만난다. 저자는 1장의 제목에 '전쟁은 정상적이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책의 제목만큼이나 우리를 의아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정상적을 의미하는 Normal이 단순히 정상적이라는 뜻 이외에 일상적으로  자주  일정하게 발생하는 일이라는 의미를 지닌 '일반적이고 평범하다'라는 뜻을 지녔음을 이야기 한다. 그것을 통해 전쟁이 이제 인간에겐 적어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환기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비인간적인 잠재성을 여지없이 들어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안에 생겨나는 알 수 없는 또다른 성향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한 인간의 심리는 때로는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전쟁이 인간이 가진 세속적인 심리의 이해로 해석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자는 그러한 한계를 지닌 인간의 심리를 넘어 신의 관점에서 그것을 보아야만 조금씩 그 의미를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모든 것이 수월해지는 아름다움 이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숭고함의 영역 즉 선악구별을 초월한 신의 세계임을 이야기한다.

 

적어도 현대인들이 전쟁에 대해 그리 낯설지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대의 대중매체는 전쟁마저도 TV쇼의 하나로 전락시켰고, 너무나도 일반화되어 있는 인터넷상의 게임을 통해 우리는 날마다 전쟁 아닌 전쟁을 만나고 있다. 스포츠 중계방송을 보듯 전쟁은 하나의 흥미거리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가 않는다. 저자는 그러한 미디어가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을 나타낸다. 물론 모두가 간과할수는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전쟁은 정상적이며 비인간적이기도 하고 또한 숭고하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마지막 4장에서야 비로소 종교가 전쟁이라는 답을 내어 놓는다. 그리고 모든 화살을 미국의 기독교에 돌린다. 문화의 충돌, 문명의 충돌은 해묵고 케케묵은 논쟁이지만 어찌됐든 또다시 답은 하나로 귀결되는듯 하다.  저자는 사랑도 답이 될 수 없다 단언한다. 그것이 국가의 정책이 될수 없고 대안적인 공공 프로그램이 될 수 없기에 그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사안일뿐 폭력을 종식시키기위해 사랑을 선택하는 것은 사랑마저도 도구로 전락시키고 만다고 경고한다.   

 

전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저자의 기나긴 논리를 통해 보여지는 전쟁의 잔혹함에 가려진 인간의 심리에 접근해 보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끊임없이 거론되는 마르스신에 대한 이해 역시도 결국 끝까지 부족한 식견을 탓해야만 할 것 같다.  인간이 겉으로 드러내 보이는 희망, 사랑, 이성, 평화보다 상상을 통해야만 전쟁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저자의 말은 하지만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사실 그 흔한 그림이나 사진 한장 없는 이 책은 대단히 무미건조하며 또한 대단히 난해하다. 다만 저자가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늘어놓는 개인적 여담을 통해 조금은 저자의 의도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인지할 수 있는듯 느껴진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 신의 영역에서 전쟁이라는 요소를 바라보아야 비로소 전쟁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저자의 논리는 절대 인간이 전쟁을 이해할 수도 막을수도 없다는 논리를 대변하는듯 하다.     

k****6 2008.12.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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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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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시뻘건 표지가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데 완벽해보인다. 군인들만이 전쟁을 치루는 것은 아닐껏이다. 전쟁이란.. 무엇일까?      분의 심리학자들이 평화에 대해 논했던게 주였는데, 이 제임스 힐먼 이란 심리학자인 작가는 신화를 빗대면서 전쟁은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평한다.   과학적 사고를 꼭 빌어오지 않더라도 전쟁에 대한 이런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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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시뻘건 표지가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데 완벽해보인다.

군인들만이 전쟁을 치루는 것은 아닐껏이다.

전쟁이란.. 무엇일까?

 

   분의 심리학자들이 평화에 대해 논했던게 주였는데, 이 제임스 힐먼 이란 심리학자인 작가는 신화를 빗대면서 전쟁은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평한다.

  과학적 사고를 꼭 빌어오지 않더라도 전쟁에 대한 이런 생각은 놀랍기 그지없다. 진짜로 난 평화를 사랑하는 평화주의자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끔 국제뉴스에 나타나는 제 3세계의 전쟁 양상들은 울부짓는 어린 아이들과 여기저기 펑펑 터트려지는 대포 소리때문에 눈물이 주룩 흘를때가 많았다. 왜.. 난 전쟁의 끔찍한 모습이 싫었던것 뿐이였다.

  

  그런 나의 사고를 완벽하게 깨고 있는 책이다.  전쟁이 정상적이라니.. 실제로 적이란 존재하지 않 다고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그 모든것은 관념에 지나지 않는 것.. 즉 환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고 총을 겨누는 대상이 있다는 것. 전쟁을 너무 사랑하기때문에 만들어지는 전쟁에 대한 사랑, 전쟁에 대한 상상력...

 

    이라크 전쟁을 생각해보면, 이 말이 얼마나 맞는지 생각할 수 있었다. 9.11 미국 테러 참사 사건이 있었을 당시에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휩싸였었다. 어떤 대상인지는 모르지만 미국에 대한 강한 불만을 수천명의 목숨을 가져감으로써 풀어버리고자 했던 역사상 최악의 상태.(물론 역사적이라고 표현할 순 없다. 현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 사태에 대한 충격으로 미국은 분명 '보복'이란것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미국인들의 분노를 풀어줄 만한 대상이 필요했다. 테러범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분노는 남아 모든 이들의 가슴에 깊숙이 파고 들었다. 그들이 선택한 건 이라크란 나라. 그 안에 있을지 모르는 테러범들에게 집약되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만들어 낸 적군들.. 적들.. 그래서 그들은 심혈을 기울여, 전 세계의 지원병을 요청하면서까지 분풀이를 했다. 그 전쟁에서 또다른 평화가 짓밟혔다. 이것이.. 이 책에 말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전쟁일까?

 

   잔인하면서도 초월적인 모습을 우리는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장엄하면서도 끔찍한 것, 즉 발밑에 깔린 지뢰나 총검을 찌르는 병사의 모습을 상상하면, 민간인 입장에서는 그들을 매우 숭고한 행동을 한 것 마냥 미학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말한다. 정말 그럴까?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슬프고 치욕적인 전쟁사를 떠올리면 금방 알 수 있다. 일제 강점 시대를 지나 남북전쟁을 맞이했던 우리들.. 비록 난 그 시대에 있지 않았지만, 우리는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사상이 너무 극과 극으로 다른 상대를 미워했다. 전쟁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때를 보면 우리가 북한을 이기고 승승장구했을때가 있다. 우리는 얼마나 통쾌해서 환희에 젖여있었던 것일까. 그 숭고한(?) 장면에서 우리가 미학을 느끼며 희열을 느꼈다면 정말로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존재는 서로 질투하고 이기고 싶어하는 본성의 상태일까.

 

  책은 심리학자의 사고로 쓰여졌기 때문에 다소 어려운 점이 많다. 읽는 동안 좀 관념적인 표현도 더러 있고,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동감을 하면서도 슬픈 감정이 있었다.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상태가 전쟁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평화를 지켜야 하는 이성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매우 흥미롭고 독특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책에서 만난  마르스 신과 같은 신화의 주인공들과 연결된 풀이도 나름 큰 재미를 불러 일으켰다. 전쟁.. 알고 싶은가? 이 책을 손에 대어보아라. 어쩌면 전쟁을 더 싫어하게 될지 모른다.

l******n 2008.12.28.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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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심리학자의 전쟁본성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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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에겐 낯선 상황이다. 세계화된 현대 사회는 실시간으로 전쟁을 생생히 중계해 주기도 하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등엔 일부 파병도 있었지만 전쟁의 참상이나 실상을 경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마도 그 거리감 때문에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진행중인 전쟁에 그토록 무심할 수 있는걸까. 하지만 우리의 현실도 엄연히 내전 상황이고 휴전중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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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에겐 낯선 상황이다. 세계화된 현대 사회는 실시간으로 전쟁을 생생히 중계해 주기도 하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등엔 일부 파병도 있었지만 전쟁의 참상이나 실상을 경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마도 그 거리감 때문에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진행중인 전쟁에 그토록 무심할 수 있는걸까. 하지만 우리의 현실도 엄연히 내전 상황이고 휴전중이라는걸 쉽게 잊곤 한다. 어쩌면 휴전이 너무도 길어지는 바람에 전쟁 이후 세대는 휴전이 곧 전쟁의 끝이며 평화가 지속될 것으로 믿게 된 것일까? 어찌보면 전쟁은 우리에게 휴전선 만큼이나 가까우면서 먼 곳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이 끔찍한 것이라는데엔 별다른 이견없이 공감이 이루어 질 것 같다. 그런데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라니!

전쟁을 사랑한다고? 그것도 일부 광기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고 보편적인 인간 본성이 그렇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교육 받았다.  전쟁은 인류의 문명에 대한 커다란 재앙이며 장애물이라고. 평화야말로 인간 본성이 머무르는 곳이고 전쟁과 폭력은 야만적이고 반문명적인 것이라고. 하긴 이런 서구적 사상이 배경인 가르침은 20세기의 양 세계 대전이 서구 문명이 주도해 일어났다는 걸 생각해 보면 하나의 이상적 선언에 불과하다는 걸 이해할 수 는 있다.

하지만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걸 인정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바로 그 점.

전쟁이 비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고 정상이라는 점을 역사, 심리학, 철학, 신화학, 종교학을 통해 전쟁의 기원과 본성을 설명하려 시도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인류 역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온 정상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전쟁 상태가 의미하는 극한 상황은 비인간적일 수 밖에 없다. 전쟁을 다룬 텍스트와 미디어등을 통해 역사속의 수많은 전쟁에 대해 간접 경험을 하거나 상상해 볼 수 있는데 수천년전의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에서 잔혹한 전투 장면을 재현한다. 칼과 창이 부딪치고 살을 베고 뼈를 관통하는 전투장면은 매우 사실적이고 끔찍하다. 하지만 수천년 역사를 통해 진화해온 전쟁은 이제 예전보다 더욱 참혹하고 비인간적이 되었다. 핵폭탄이 터져 수만,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는다해도 거기엔 버튼을 누를 누군가만 존재할 뿐 실제 얼굴을 맞대는 것이 아니기에 아무런 책임도 죄책감도 없을 수 있다. 20세기 들어 벌어진 숱한 전쟁들은 사망자 숫자만 가득 할 뿐, 거기에 한 개인의 실존이나 정체성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컴퓨터로 게임을 하듯 그저 숫자로만 표시되는 전쟁의 지표들 속에서 인간적인 면은 소외되고 있다. 이런 전쟁의 정상성과 비인간적인 심리적 기원을 찾기 위해 신화적 원형으로서의 전쟁과 전쟁신에 대해 고찰을 하는데 그리스 로마시대의 전쟁신인 아레스와 마르스가 그 대상들이다. 이들과 함께 아프로디테, 혹으 비너스로 상징되는 사랑의 여신과 전쟁신의 상징성은 사랑과 전쟁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서구의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와 전쟁의 관련성에 관해선 마지막장에서 서구 문명의 편협하고 호전적인 성향에  - 더 자세히는 미국 문명의 호전성 - 대해 성찰하고 있다. 작가도 비록 전쟁에 대해선 간접적인 경험에 머무르고 있지만 인생 말년에 전쟁에 대해 깊이 있는 사고를 통해 우리에게 전쟁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어떻든 나 역시 평화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전쟁문학과 전쟁을 다룬 각종 영화나 게임등의 미디어에 열광하는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이런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세상에 모든 전쟁이 사라지는 날은 요원할지 몰라도 반성과 성찰을 통해 더 많은 평화를 성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z***a 2008.1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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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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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전쟁을 사랑하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나는 진짜 전쟁을 사랑해."_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에서 패튼 장군의 독백 "내가 전쟁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아시죠? 다시 전쟁이 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요. 하지만 적어도 전쟁은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줬어요. 전쟁이 나기 전이나 후로는 전혀 그런 걸 느낀 적이 없었죠."_1차 세계대전을 겪은 한 여성의 증언 -이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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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전쟁을 사랑하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나는 진짜 전쟁을 사랑해."_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에서 패튼 장군의 독백

"내가 전쟁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아시죠? 다시 전쟁이 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요. 하지만 적어도 전쟁은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줬어요. 전쟁이 나기 전이나 후로는 전혀 그런 걸 느낀 적이 없었죠."_1차 세계대전을 겪은 한 여성의 증언

-이 책에서 인용

 

전쟁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승전국이든 패전국이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깊은 흉터를 남기는 이 무시무시한 살육의 향연이 국가 탄생 이후 끊임없이 벌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주로 집권자들의 탐욕과 인간 본성에 내재된 폭력성, 파괴욕구를 원인으로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왠지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점이 여럿 있다.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 봐도, 전쟁은 너무나 기형적으로 참혹하다.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야 할 만큼, 선량한 사람들이 입는 인명 피해가 막대한데 그에 상응하는 이익이 있다고 해서 그런 끔찍한 상황을 감수한다는 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집단 히스테리라고밖엔 생각되지 않는다.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에서 제임스 힐먼은 전쟁을 이해하는 색다른 틀을 제시한다.

몰이해는 우리의 상상력이 손상된 탓일 수도 있으므로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제란 그 문제를 일으킨 것과 똑같은 수준의 사고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는데 꽤나 설득력 있다.

제임스 힐먼이 제시하는 새로운 틀은 '신화'다.

전쟁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신화에 다가가야 하며 전쟁은 신화적 사건임을, 전쟁에 처한 민간인들은 신화적 존재로 전이됨을, 전쟁에 대한 사랑은 전쟁의 신에 대한 사랑(에로스)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후에 전쟁에 대한 인류의 사랑을 마르스와 비너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스캔들과 견주어 고찰한 대목은 특히 재밌다.

이런 틀 안에서 저자는 "전쟁은 정상적이다"고 주장한다. 여담으로 '정상성'에 관해 풀어 놓은 박스 안의 글도 어렵긴 하지만 재밌다.

그 뒤로는 역사적으로 계속된 전쟁의 항구성,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편재성, 그리고 전쟁의 수용 가능성을 들어 정상성을 설명한다.

특히 전쟁에 어느 누구도 참여하지 않으면 애당초 성립되지 않을 텐데 너도나도 벌 떼처럼 달려들어 군복을 입고 참전하는 까닭은 뭘까.

게다가 누구든 전쟁의 한복판에서는 전쟁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잘 적응한다.

상상의 적을 규정하고 그 적의 모습에 악의 굴레를 둘러씌운 후 정의의 사도가 되는 단계가 있고, 그 후로는 전쟁 상황에 적응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심리적 정상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심리적 정상화를 가장 멍청한 죄악이라고 말한다.

전쟁의 비인간성 또한 짚고 넘어간다. '비인간적'이라는 말에 이미 '인간적'이란 무언가가 있다는 전제가 함축되어 있다.

여기서 비인간적이라는 말은, 선량한 인간 본성에 반한다는 의미보다는 전쟁의 비인간성이 신성한 힘의 자율과 현존이고, 전쟁 자체를 신이라고 상상해야 함을 의미한다. 바로 광기 어린 힘이다.

그리고 또 한 측면으로는, 과학 기술의 발달이 전쟁의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더욱 비인간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문명 발달 이전에도 전쟁은 있었을 테지만 이처럼 수량화되고 감정과 육박전이 배제된 채, 생명에 대한 실체를 잊은 채 진행되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이다. 그러나 그건 본질은 아니다. 전쟁은 늘 벌어져 왔고 그 형태만 달라질 뿐이다.

후반에 가서는 미국 사회에서 총기 사용과 폭력, 전쟁을 일으키는 행태 등을 고찰한다.

미국 사회에서, 위선은 어떤 잘못이라기보다는 아예 생활방식이 되어 버렸다. 그 중심에는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저자는 '전쟁은 종교다'라는 주제로 면면히 다룬다.

 

그렇다면, '사랑'이나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은 전쟁을 멈추게 하는 데 전혀 무용한 것일까?

나는 특히 평화와 사랑에 대한 제임스 힐먼의 말에서 촌철살인을 느꼈다.

전쟁 앞에서 이 두 가지는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 식의 사탕발림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

인류는 '평화'라는 말로 '휴전' 상태를 호도해 왔고, 종전 후에도 계속되는 상처를 거적대기로 덮어씌워놓듯 외면하려든다는 거다.

전쟁이 정상적이라는 게 전쟁이 정당하다는 말과는 다르듯, '평화'란 말을 주장하면 안 된다는 게 '평화' 자체를 반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전혀 평화롭지 않은, 오히려 전쟁 예비단계일지도 모르는 상황을 평화라는 말로 규정해선 안 된다는 거다.

또 마르스의 승리가 있다면 비너스의 승리, 즉 사랑에 뭔가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시각에도 찬물을 끼얹는다.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다. 전쟁은 정책이 될 수 있지만 사랑은 정책이 될 수도 없다.

게다가 마르스와 비너스는 한편이지 대립항이 아니다. 전쟁을 향한 사랑은 있을 수 있지만 사랑으로 전쟁이 막아지지는 않는다.

 

"다시 어둠이 드리운다." 프로이트는 종교의 미래는 환영의 미래라고 말했다.

새날은? 바로 전쟁이다. 자기 정당화를 주장하는 살육이 더 많이 벌어지고, 창자가 뒤틀리는 공포가 더 많이 생기고, 국가, 지도자, 대의명분, 신의 이름으로 이 땅은 더욱더 파괴될 것이다. 그 위에 더 많은 기도가 울려퍼지겠지.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전쟁은 멈추지 않으며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본문에서

 

저자는 마지막 페이지에서 이렇게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인간이 전쟁을 멈출 수 없다는 끔찍한 현실을 들여다보는 것 말고 어떤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까. 저자는 뒤이어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적어도 우리는 전쟁을 상상해 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희망과 사랑, 평화와 이성이라는 망상에서 물러날 수 있을 만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z******7 2008.1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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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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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보다 끔찍한 것이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서로가 서로를 다치게 하고 죽이고 결국엔 그 누구도 얻는 것이 없는 이런 전쟁보다 더한 비극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1장의 제목은 전쟁은 정상적이다 이다. 저자는 이렇게 비극적인 전쟁을 비정상적이라고 하지않고 오히려 정상적이라고 한다. 전쟁의 반대는 뭘까.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칸트의 '인간들 사이에서 평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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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보다 끔찍한 것이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서로가 서로를 다치게 하고 죽이고 결국엔 그 누구도 얻는 것이 없는 이런 전쟁보다 더한 비극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1장의 제목은 전쟁은 정상적이다 이다. 저자는 이렇게 비극적인 전쟁을 비정상적이라고 하지않고 오히려 정상적이라고 한다. 전쟁의 반대는 뭘까.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칸트의 '인간들 사이에서 평화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상태는 전쟁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자연스러운 것은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전쟁이라고 말한다. 전쟁은 항상 우리에게서 한 순간도 멀어져있지 않다. 한국 전쟁, 2차 세계 대전, 1차 세계 대전 더 거슬러 올라가 이런 인간 주위에 항상 있는 전쟁은 고대까지 거슬러간다. 저자는 이렇게 우리에게서 한 순간도 멀어지지 않고 있는 이 현실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전쟁이 정상적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도 2장에서는 전쟁의 비인간성에대해 얘기하고있다. 대체로 전쟁의 비인간성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로 이루어진 이 장은 전쟁에 의해 야기되는 정상적인 인간들의 비인간화와 같은 것들을 얘기한다. 저자는 이 장에서 전쟁의 비인간성이 지니는 본질을 인간의 구조를 손상시키고, 광분한 행위를 나타내고, 그리고 전쟁의 비인간적 무기, 즉 상징적 추상성, 이 세 가지로 요약한다. 그리고 이 장에서는 전쟁의 비인간성을 신과 신화에 관련지어 설명하면서 3장인 '전쟁은 숭고하다' 장에서 이런 전쟁과 관련된 신과 신화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도 특이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제목 또한 종교는 전쟁이다 이다. 이 마지막 장에서는 기독교의 교리나 신념 구조를 언급하면서 호전성을 띨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하여 기독교 내에 마르스 신이 깊이 침투해 있다고 언급한다.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전쟁이 인간 존재의 조건임을 주장하고 있는 이 책은 요즘 같은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가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닌가 싶다.
s****h 2008.1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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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심층 심리에 대한 원형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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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끔찍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전쟁을 사랑하는 것이 끔찍하다는 것인가. 역시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힐먼은 융 심리학을 다년간 연구한 이답게, 인간의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적으로 형성된 전쟁에 대한 불가해한 사랑과 숭배에 대한 원형(archetype)적 분석을 통해 전쟁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일찍이 프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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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끔찍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전쟁을 사랑하는 것이 끔찍하다는 것인가. 역시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힐먼은 융 심리학을 다년간 연구한 이답게, 인간의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적으로 형성된 전쟁에 대한 불가해한 사랑과 숭배에 대한 원형(archetype)적 분석을 통해 전쟁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일찍이 프로이센의 군사 전략가였던 클라우제비츠가 선언했듯이 전쟁은 최고의 정치행위로써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인류의 전 시기를 통틀어 그 어느 시대에도 전쟁이 전무했던 시기는 없었다. 그렇다면, 전쟁은 우리의 삶에서 일상화 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는 바로 이 점에 착안을 해서 ‘전쟁은 정상적이다’라는 자신의 명제를 제시한다.

 

누구나 전쟁을 싫어하지만 그 반대로 전쟁을 사랑하기도 한다. 미국의 저명한 여류학자인 수잔 손택은 전쟁을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했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전쟁에 대한 몰이해를 단순한 인식론에 기인한 방법론의 부재로 볼 것이 아니라, 고대의 신화에 의거해서 분석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 전쟁의 필연적 성격인 비인간적 성질이 나열된다. 개개인의 전투력이 중시되던 고대의 전쟁에서, 대량생산된 최첨단 무기로 무장된 전쟁은 미디어를 통해 수치화된 데이터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사선을 넘는 전쟁터에서의 치열함은 엄청난 수의 사망자와 부상자들을 숫자들로 치환하면서 탈인간화의 과정을 거쳐 비인간화에 이르게 된다. 실제 전장에서 발생하는 전투신경증으로 인한 인간 구조의 손상은 그전과 그 이후를 명백하게 구별한다. 전쟁에서 흔히 발생하게 되는 성적 폭력과 잔혹행위들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게다가 전쟁터의 병사들이 행사하는 무기들 역시 전쟁에 있어서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세 번째 장에서는 전쟁의 숭고미에 대해 힐먼은 다시 신화적 접근을 시도한다. 전쟁의 신인 아레스/마르스와 아름다움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 쌍으로 존재한다. 멋지게 차려 입은 채 포탄과 총탄이 빗발치는 죽음의 전쟁터로 돌진하는 기병대 병사들의 돌격은 장엄 그 자체로 묘사가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그 죽음의 공포 한 가운데 바로 지고한 아름다운 숭고함이 인간의 이해와 상상을 초월한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 이제 융의 분석 심리적 전쟁에 대한 고찰은 잠시 뒤로 하고 현실의 세계로 돌아가 보자. 미국의 제어할 수 없는 총기문화를 저자는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미국의 건국과 더불어 총기문화가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렸다고 총기옹호론자들은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미국 내에 총기문화가 자리 잡은 건 19세기 남북전쟁을 통해서였다. 수많은 청년들이 전쟁에서 무기를 직접 다뤘었고, 총기에 의한 폭력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디어를 통해 방송되는 섹스와 폭력적인 이미지 때문에 폭력적인 행동을 낳는다는 주장에 대해 제임스 힐먼은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들어가면서 반박한다. 텔레비전 같은 영상매체가 없었던 미국 독립초기의 식민주의자들이나 고대의 전사들이 현대인들보다 덜 폭력적이었던가? 폭력적 비디오 게임이라고는 생전 구경도 채 하지 못한 아프리카의 소년병들의 잔혹행위에 대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종교는 전쟁이다’라는 명제로 귀결을 짓는다. 신화의 신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지만, 종교는 다르다. 특히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뿌리가 하나인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필연적으로 상대의 존재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적대하는 양 진영의 병사들이 모두 같은 이름의 하나님을 외치면서 죽이고 죽어갔다.

 

지구상에서 가장 기독교적인 국가인 미국의 예는 또 어떠한가. 많은 이들이 호주가 영국의 유형수들이 건국한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미국의 역사 또한 만만치 않다. 한나 아렌트의 언급대로 폭력은 수단에 좌우되지만 우선적으로 그 충동을 필요로 한다. 기독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대로 일신교적 축자주의에 근거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아마겟돈이 그 해답이 될 것이다.

 

우리의 전쟁에 대한 입장은 모순 그 자체이다. 전쟁이 가져다주는 죽음과 파괴에 대해서는 혐오하면서도, 전쟁터에서 피어나는 남녀 간의 사랑 그 이상이라는 전우애(comradeship) 같은 숭고미 혹은 그 전쟁의 일상성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힐먼의 주장대로, 전쟁의 신과 미의 여신이 공존하는 원형의 틀(patterns) 속에서 전쟁의 심층 심리에 대한 이러한 신화, 철학 그리고 신학적 접근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h******1 2008.12.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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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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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단어를 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돌아가신 할머니다. 일정기와 6.25전쟁을 겪으신 우리 할머니는 텔레비전에서 전쟁화면만 나와도 보기를 거부하신다. 우리나라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직 살아있는 국가라서 전쟁에 대한 이미지가 참으로 현실적이다. 나 역시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슬픔과 상처를 안고 있는 가족이 있어서인지 전쟁에 대한 내용을 보면 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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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단어를 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돌아가신 할머니다.

일정기와 6.25전쟁을 겪으신 우리 할머니는 텔레비전에서 전쟁화면만 나와도 보기를 거부하신다.

우리나라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직 살아있는 국가라서 전쟁에 대한 이미지가 참으로 현실적이다.

나 역시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슬픔과 상처를 안고 있는 가족이 있어서인지 전쟁에 대한 내용을 보면 슬프고 가슴아프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도 아마 그래서 였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인식이라는 특권을 받은 종족이다 .

오직 인간만이 이 지구상의 난국을 이해할만한 지적,정신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P14~5

 

인간만이 말 할 수 있는 상당히 건방진 문구다. 사실일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면 안되는 것이었다. 특권을 받은 특별한 종족이라는 생각덕분에 우리의 지구도 피폐해지고 인간 자체도 점점 피폐해져가는 것만 보아도 말이다. 게다가 자만에 빠진 인간들에게 벌을 주려는 것처럼 우리의 생태계는 하나씩 파괴되어가고 이상 기후현상으로 우리에게 암시를 주고 있다. 빙하기처럼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형벌을 내려주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1. 전쟁은 정상적이다.

정상적이란 표현은 참으로도 위로가 되면서도 함부로 써서는 안되는 단어 중 하나다. 자기합리화를 하기 쉬운 단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인 어찌보면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전쟁이 꼭 고전적인 전쟁이던지, 핵전쟁을 벗어나서 우리는 매일매일 전쟁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 우리는 전 세계의 금융과 전쟁하고 있다. 아니 인간이 만들어놓은 금융이라는 화폐와의 전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눈앞에서 총질하지 않을 뿐, 그들은 금융의 권력으로 사람들 하나하나를 죽여나가고 이는지도 모르겠다. 타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살하게 만드는 힘이 아니었던가. 전쟁자체도 인간이 만들었고 스스로 전쟁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하지만 다시 또 전쟁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윤리를 더나 우리의 본능의 눈으로 보자면 인간에게는 정상적인 활동일지도 모르겠다. 화해와 평화로만 살기에는 인간의 욕망은 너무 크다.

 

2.전쟁은 비인간적이다.

1장의 내용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비인간적이라는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비인간적이기보다는 인간이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는 표현이 올바른 표현일 듯 싶다. 전쟁을 하려면 인간은 인간의 연악하고 평화적인 모습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충돌때문에 일어난 전쟁에서의 목표는 승리이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쟁의 목표인 적을 보다 많이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전쟁 중 군인의 죽음(그들의 죽음이 단연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전쟁을 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다.)이외의 민간인의 죽음과 간강 등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군인들은 승리나 적군이라는 개념을 점점상실한테 사람에게 가하는 살상을 즐기게 되고, 어느 전쟁에서나 일어나는 강간은 전쟁속에서 합법화되기 일 수 있데다가 그들은 강간한 그녀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처참하게 죽여버리기까지 한다. 상부는 군인들을 전쟁에서만  부려먹는 소모품으로만 생각하고 매음굴을 합법화 한건가?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군인들의 삶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모양이겠지만, 그들이 전쟁속에서 보고 배운 것을 하루아침에 떨져버릴 수는 없었을텐데...

 

3.전쟁은 숭고하다.

작가는 전쟁의 숭고함을 말하기위해 그리스 신화를 꺼낸다. 그리고 전쟁의 신 아레스를 들먹인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들의 이야기가 그게 말하려는 내용에 들어가 있거나 아예 사상자체를 그리스 신의 이름으로 부르며 말한다. 전쟁에 흠뻑 빠진 자들이 폭탄이 터져 뿝어나오는 불길을 보며 멋있는 광경인양 숭고하게 바라보는 모습에서 어떻게 전쟁의 숭고함을 표현할 수 있는지... 읽다가 화가 났다. 그들이 이 책의 제목처럼 전쟁을 사랑한다는 것 자체는 이미 피로 그의 삶이 물들어 피가 없이는 버틸 수도 없으며, 그는 피에 대한 갈증이 계속 더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닐런지... 아니 오히려 다시 현실로 돌아갈 자신이 없는 자들의 자기 합리화 아닐까? 영화 '미션'에서처럼 자신의 아름다운 마을과 교회를 이기적인 백인기독교인들로부터 지키려고 총과 칼을 드는 그들에게서도 우리는 지키려고 하는 전쟁에 숭고함을 느껴서는 안된다. 그 어쩐 이유로도 생명은 소중한 것이며, 마땅히 희생하려고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며, 우리가 숭고하게 느껴야 할 것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그 무엇인가에 대한 믿음이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헬레나를 두고 전쟁을 벌인 트로이전쟁은 가장 우습고도 어이없는 전쟁이었다.

 

4. 종교는 전쟁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미국인이고,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밝히고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전쟁과 종교를 바라본다. 읽으면서도 자신의 땅에서 전쟁을 해본 국가와 전쟁에 참여를 한 국가의 시각차이는 참으로 엄청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낀다. 전 세계 사람들이 벌이는 전쟁이지만 자국의 전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반전운동을 하는 이유는 전쟁은 바로 슬픔을 낳기 때문이다. 서로 죽이고 피흘리고 가족을 잃고 땅이 페허가 되는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신이라면 우리가 만든 커다란 울타리에 자기 종족끼리 싸우고 죽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 어떤 논지나 증거를 가져다 붙여도 숭고할수도 당연할 수도 없는 전쟁을 신화와 몇몇 경혐자의 증언을 일방적으로 해석해 나가는 부분이 참으로 씁쓸하다.

나 역시 기독교지만 일방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내용을 기술했다는 점도 상당히 어이없다. 다른 종교들보다 기독교가 더 많이 전쟁을 일으키고, 기독교가 아닌 사람들의 내면도 이미 기독교라는 생각은 미국에서는 통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한국에서는 정말 어이없는 발상이다. 강대국들 가운데 기독교가 많은 것은 사실이고, 현재 기독교가 반성해야 할 부분도 사실이지만 냉정하게 기독교에 대한 시각 뿐만 아니라 종교라는 이념 차이에 따른 전쟁에 대한 기술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가? 어쩌면 종교가 전쟁이 아니라 이념이 전쟁일지도 모르겠다.

y******7 2008.1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