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이란게 무엇일까? 바로 스스로의 의지가 아닐까? 고난의 연속일지라도 아이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가 필요하다면 사람들에게 배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배를 통해서만 바다에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 그보다는 아이들로 하여금 바다가 미치 도록 그리워하게 하라.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바다로 나갈 것이다" 아이의 호기심 대상마져 정해놓고 시작하는
|
|
‘교육이 죽어있다’는 말은 시간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점점 더 가열되는 학구열로 인해 아이들의 부담과 사교육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져 가고 있다. 우리의 부모 세대들에 비하면 더 나아졌다고 생각되는 부분들도 있지만, 아이들의 창의성은 여전히 말살되고 있다. 도대체 우리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교육의 상상력>(지식의 날개, 2008)를 읽으며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교육의 상상력>은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을 ‘상상력의 빈곤’으로 꼽고 있다. 조기교육의 범람 속에서 입학 전부터 생각과 느낌이 둔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유아기는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세상과 교섭하고 자아를 형성해가는 시기이다. 그래서 학습과 놀이 사이에 구별이 없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주입시키려 하다 보니 창의성이 많이 줄어든다. 그 결과 공부를 하면 할수록 틀에 박힌 사고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조기교육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칼 비테는 그의 저서에서 가능한 한 빨리 교육을 시켜서 아이의 잠재능력을 깨우고,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울 것을 권장하고 있다. 대신 그 교육의 방식은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원리를 깨우치도록 하고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교육이다. 그러나 우리 부모들의 조기교육 방식은 일방적 주입식 교육이다. 앵무새처럼 반복학습을 시켜 따라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상상력은 점점 말살된다. 그렇다면 교육의 상상력은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 우선 저자가 이야기하는 상상력의 지향점은 ‘삶에 대한 상상력’을 풍부히 하는 것이다. 삶에 대한 상상력은 “모든 것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아니 열악한 상황일수록 자기의 존재방식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힘이다.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와 일상 그리고 자아를 창조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는 상상력.”이다. 그래서 이 책은 삶에 대한 상상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여러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학습의 리모델링을 제안한다. 강요에 의해 억지로 하는 교육이 아니라 자발적인 필요를 느끼는 교육,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교육을 만들자는 것이다. 함께 배우고, 생각하며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정보 해석과 의미 생성의 맥락을 구성할 수 있는 맥락적 지능(contextual intelligence)은 그래서 점점 더 중요해진다. 맞춤형 학습의 필요성을 주장하는데, 맞춤형 학습의 모델로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메트스쿨’의 예를 든다. 메트스쿨은 “기존의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는 학교교육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한 번에 한 아이씩(One Kid At a time)’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커리큘럼을 대대적으로 혁신한 미국의 공립고등학교”라고 한다. 두 번째로 제대로 된 문화예술교육을 실시할 것을 주장한다. “자기를 정당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타자를 온전하게 용납하는 교류가 예술교육을 통해 체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학원에서 문화예술 교육을 받지만, 소수만이 향유하는 문화예술공연으로 전락한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 교육적 효과도 달성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평생학습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입시와 취업을 마치고 나면 언제 그렇게 공부했냐는 듯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는다. 입시와 취업을 위한 공부는 교과서와 특정 과목 중심이기 때문에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평생학습을 통해 직능 교육에서부터 교양 강좌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배움으로써 ‘시민’으로서의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삶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입시와 취업만을 위해 맹목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으로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 ‘삶에 대한 상상력’을 길러야 한다. 아이에게 상상력을 키워주는 것은 물론, 아직 인생의 많은 부분을 남겨 놓고 있는 나 또한 ‘삶에 대한 상상력’을 기르기 위해 배움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by 꽃다지, 2009년 1월 26일 |
|
부모의 시선은 아이와 함께 자라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의 교육 문제를 고민하고 우리나라의 교육환경을 돌아보게 된다. 제도권 교육을 비판하면서도 구체적인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일단 관심을 갖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이 책은 교사와 부모가 함께 그리는 행복한 교육을 이야기한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받기 원한다면 그 책임은 교사와 부모의 몫일 것이다. 이 책은 '아로리총서'라는 교양 문고 시리즈 중 한 권이다. (* '아로리'는 지식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로, 1449년 완간된 [석보상절]에 처음 쓰인 단어로 알려져 있다.) 얇고 가벼운 책이지만 나름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그만큼 알찬 내용이란 뜻이다. 저자는 문화인류학과 교육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님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뿐 아니라 해결책을 "상상력"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 있다. 왜 상상력인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창의성이라고도 한다. 미래의 꿈과 희망을 지니는 것도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상상력을 위한 교육은 무엇이며, 교육을 위한 상상력은 무엇일까? 모르긴 몰라도 저자는 꽤 강의를 잘 하는 분일 것 같다. 글만 봐도 유머를 곁들여서 전혀 지루함 없이 교육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식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무지한 자신을 깨달아야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상상력이란 긍정적인 잠재력을 깨우는 힘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상력을 가로막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이라고 한다. 일정한 틀에 갇힌 생각은 발전을 거부한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이다. 자아의 무한한 존재 가능성을 믿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한 교육이 가능하려면 교사와 부모가 변해야 된다. 부모는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가장 믿을만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다양한 아이들을 일정한 틀에 가둔 주입식이었다면 이제는 각자의 개성과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교육으로 바뀔 차례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환경을 바꾸는 일은 단시일에 가능하지 않다. 일단 가정에서부터 부모가 먼저 시작할 일이다. 생텍쥐베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배가 필요하다면 사람들에게 배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 배를 통해서만 바다에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아이들로 하여금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하게 하라.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바다로 나갈 것이다." <교육의 상상력>에 대한 핵심을 말해주는 내용이다. 꿈과 희망을 주는 교육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배운 것 같다. |
|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공교육 현실에 대한 목소리는 낙관적이고 희망차 있기 보다는 매우 불안하며 비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만인에게 평등한 교육으로서의 위치가 사교육이 팽배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많이 위축된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제는 교육이 죽어있다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육전문가인 저자가 쓴 이 책은 상상력을 북돋아주는 새로운 교육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가 상상력을 북돋아주는 교육을 제안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우선 상상력은 예술이나 디자인과 같은 특정 영역을 너머 인간의 지적 활동 전반에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개성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미래 사회에서 이 상상력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고 저자를 포함한 여러 전문가들이 전망하고 있다. 특히나 우리나라 공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몰개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 또한 이 상상력을 위한 교육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저자가 생각하는 상상력을 위한 교육은 소통을 통해서 지성을 키워 나가는 그야말로 교육 본연의 목적에 가장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한국의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서 배움의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좌절과 공포, 고통을 겪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tv 뉴스에서 매일 같이 보고 듣는 수험생들의 우울증과 자살 소식들은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소통의 방식으로 지성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의 경계가 처져 있는 부분들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와 학교 바깥의 경계, 과목들 사이의 경계, 교사와 학교 사이의 경계, 나이의 경계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문화예술교육의 전달자로서의 교사의 역할과 자녀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부모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정말 변화하지 않으면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의 위치가 크게 흔들릴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제시하는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의 대안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
|
우리에게 행복한 교육은 가능하다! 그와 맞물려 학교 바깥에서 새로운 교육의 실험들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막연한 밑그림만 원론적으로 제시되거나 매우 구태의연한 프로그램들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학교가 담아내지 못하는 교육의 존재 방식에 대해 논의하면서 그 구체적인 실행을 위한 발상의 실마리를 던져줄 것이다.
요새 정말 교육이 중요한 시기잖아요..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이 판을 치고요.. 그런 시기에 이책은 교육의 돌파구를 제시해 주는것 같아요 과도한 교육보다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존중해주고 키워주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
교육과 상상력이란 화두는 경직을 지나 갈등의 골이 갈라지고 산산이 깨지기 직전의 한국 사회에서, 특히 일제고사 자율 선택 교사 해임 등 교육의 위기를 체감할 수밖에 없는 요즘에는 필요하다 못해 절실하다. 그러나 둘 사이의 연계가 새로운 개념인가 하면 또 그렇지 않다.
사회의 다양한 창구에서 누누이 강조를 해온 말이 또한 교육의 상상력이 아닌가. 심지어 1%를 위한 경쟁을 강조하는 입시 학원 홍보 문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사방에서 남발하다 보니 정확하게 그 본의가 무엇인지 실천에 앞서 개념조차 잡기 힘들다.
몇몇 유명 학원장이나 이에 동조하는 출판업계, 언론에 따라 교육의 상상력은 딱 ‘대입까지만을 위한’ 마취제 취급을 받아왔다. 절대 규격화할 수 없는 ‘상상력’을 이해관계가 얽힌 특정 틀에 짜맞추다보니 정반대의 개념이 상상력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돈다. ‘한 시간 덜 자고 공부하면 아내의 외모가, 남편의 능력이 달라진다’는 식이다.
딱 까놓고 말해, 대학서열에 따른 부익부빈익빈의 관계가 그대로 승계되는 독과점의 한국 사회에서 이보다 현실적으로 와 닿는 말이 있을까. 아이들의 머릿속은 돈, 외모에 필이 확 꽂힌다. 하지만 이건 줄 세우기에 대한 비판에 앞서, 아이들 자신의 삶을 위해서가 아닌 앞선 세대가 잡고 있는 기득권에 대한 두려움이 깔린 강요이자 답습이다. 김찬호 교수의 <교육의 상상력>은 책 제목에서 교과서 외에도 성적을 효과적으로 올리고 싶은 부모를 위한 또 하나의 맞춤 전략서 뉘앙스를 풍긴다. 장담컨대 이 얇은 문고판 책은 아이의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될 만한 지침을 풍성하게 담고 있다. 허나 입시가 삶의 행복을 위한 필수담보조건이 아닌 충분조건임을 부모와 교사가 인정하고, 스스로가 먼저 ‘삶의 상상력 부재’ 극복해야 한다는 선행 과제를 같이 던진다. 그렇다고 전복적이거나 도발적인 흥미 위주의 튀는 주장을 담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면 책 내용 중 학교를 넘어선 교육, 가정교육의 강조, 예술 감수성 강화 등은 익숙한 논제이다. 허나 학교를 넘어선 교육이 학원이고, 가정교육의 강조가 아이 위주의 분위기 조성이며, 예술 감수성 강화가 피아노 학원 보내기로 귀결되는 학부모의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깨고나와 각성을 하라고 주장한다.
예술을 통해 감수성과 창의성을 키운 위대한 과학자를 키운 예시가 ‘청소년의 예술 교육 기회의 확장’이라는 뻔한 수순이 이어지지 않는다. 아이들과 밀접하게 매개된 대중문화가 감수성을 키우는 대신 “대량 복제된 이미지와 자극에 매몰된 일상은 긴 안목으로 자기를 연마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능력을 감퇴”시키고 “청소년들에게 교육과 문화는 이율배반적인 영역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먼저 문제 제기한다.
그렇다면 예술 관련 학원 교습이 대안일까? 성적에 집착해 요령만 배우고 근본 원리 터득에 소홀한 교육 방식이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피아노를 배우지만, 정작 피아노 연주회장은 대부분 썰렁”한 원인이라고 꼬집는다. 아이들이 비좁은 학교(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벌어지는 창조적인 실험을 접하고 상상력과 감수성을 신선하게 일깨우는 만남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을 당부한다.
또 교사(부모)의 역할이 단순 정보 창구에 그치는 게 아닌 자기 삶에 대한 애정을 가질 것 또한 요구한다. 이런 논의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교육을 위해 학교(학원)을 넘어서는 소통의 확대와, 이를 위한 기본 과제로 가정 내에서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 회복을, 또 회복을 위해서는 부모 역시도 평생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으로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간다. 결국 최우선 과제는 나 자신부터의 삶의 상상력 회복이 세대의 ‘지속가능한 삶’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린다는 당부로 이어진다.
<교육의 상상력>은 두 딸의 아버지이자 대학에서 교육학을 가르치는 저자의 전공이기도 하거니와, 한국 사회 거의 전반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글을 쓰는 팔색조 같은 사회학자이자 논객으로서의 능력이 발휘된 저서이다. (아로리 총서는 ‘교육과 미래’ 첫 시리즈로 이 책을 선택한 동시에 ‘문화와 트렌드’ 첫 시리즈로도 같은 저자의 <휴대폰이 말하다>를 출간했다.)
가깝게는 대학 졸업 이후의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20대 젊은 세대를, 멀게는 경쟁 체계에 내성이 생긴 빈곤한 기성세대를 역으로 짚고 올라오면서 ‘삶을 보다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한 해결 실마리를 찾는다는 점에서 독자층이 사방팔방으로 확산된다. 요즘 토목공사 현장에서도 남발되는 ‘녹색’, ‘친환경’을 보면 그 본의와 정반대로 홍보 카피로 전락한 아이러니를 본다. 여교사 성희롱으로 파문을 당한 교장은 복귀해도, 일제고사를 거부한 교장은 정직 처분을 받는 현실이다 보니, 신물이 올라올 판이다. 그래도 아이들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잖은가. 꼭 한 번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밑줄긋기> 우리는 구체적인 경험과 대상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많은 정보를 두뇌에 입력했지만 구체적인 경험과 대상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힘을 키우지 못했다. 지식을 통합하고 재구성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박약하다. 38p 탁월한 비즈니스 마인드는 자기가 하는 이에 대한 애정과 꾸준한 학습, 삶에 대한 진중한 태도, 자아와 타자를 잇는 관계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에서 움틀 수 있다. 45p 어떤 목표를 스스로 정해 성취해 보는 경험은 인간의 성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62p 결국 핵심은 삶에 대한 애정이다. 자기의 창조성에 대한 믿음이다. 자기와 잘 사귀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다. 70p |
|
나는 공립교육을 12년 동안 받으면서 천편일률적인 교육방식과 내용에 갑갑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도대체 왜 이런걸 배우고 공부해야하나 하는 물음조차 해결하지 못했기에, 수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교과서로 공부를 하고, 수업을 받으면서 질문할 거리는 전혀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았고그저 외워야 할 내용만 내 머리속에 완연한 고체의 형태로 쑤셔박곤 했었다.
이런 교육현장에 화두를 던질만 한 책이 <교육의 상상력>인 것 같다. 교육에는 상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저자는 단원을 여러개로 나눠서 상상력을 적용할 수 있게 했다. 일단 교실 현장을 다룬 내용 중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단원간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서 경제학과 건축학등 문,이과를 넘나드는 전공을 연계하여 이수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런 케이스가 많이 드문 편이다. 그것은 학교에 다니면서 크게는 문,이과로 작게는 세부적인 과목들 하나하나를 독립적으로 가르치면서 연계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과 과학을 접목시킨다든지 하는 것은 나도 학교 수업을 받으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앞으로 교사가 될 입장에서 이 부분은 한번 깊이있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국어를 가르치는 동안 그것을 다른 여러 과목에 접목시켜 가르친다면 다른 학문과 국어 자체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수 있고, 왜 이것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조금은 해소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감성교육에 관한 부분이 인상깊었다. 감성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감성이 뭔지 설명해주고, 그것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지만 그 능력을 키우는 건 학생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예술교육에서는 학생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해야 한다. 음악을 들려주고 무엇이 떠오르는지 자유롭게 얘기하게 해야하고, 그림을 마음껏 그리게 해서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게 해야한다. 하지만 현재 학교에서는 그냥 그림이나 음악에 관한 지식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그것을 외우게 하는 경향이 짙은것 같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교육의 상상력>을 읽고 내가 나중에 학교 현장에서 어떤 교육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막연하게 '책을 많이 읽게 해야지', '사회가 돌아가는 얘기를 많이 해줘야지' '문제를 많이 내보고 스스로 답을 해보라고 해야지'와 같은 막연하고도 상상력 부재의 개선되지 못한 교육을 양산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제 상상력에 관한 고민을 시작하고, 나중에 교사가 되었을때 이것을 키워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조금은 나아진 덜 갑갑한 학교 교육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
내가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이지만 교육에 관련된 책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손이 잘 가지 않는 이유는 교육현실과 책에 나온 내용들의 괴리감을 이겨내지 못하는 탓이다.
얼마전 모 출판사에서 나온 문고본을 읽으며 얇고 작은 책에 내포된 전문적인 내용에 많이 놀라고 만족스러웠던터라 이 책도 문고본이지만 만족스런 내용이 있겠거니 기대했다.
저자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육자인듯했다.
교육현장에 있는 사람이 글을 썼으니 매우 현실적인 내용이 들어있으리라 생각하고 책을 열었다.
앗, 첫장부터 눈에 걸리는 것이 있다. "어느 초등학교 자연 과목 시험에..."
아니, 초등학교로 바뀐 것은 알면서 '자연과목'이라니..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사소한 오류를 범하다니.. 아무리 재밌는 유머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첫 문장부터 실망감이 너무 커서 책을 덮어버리고말았다.
그래도 단어 하나에 책을 덮는 것은 너무하다싶어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내용들 하나하나 읽다보니, 다시 읽기 잘했다 생각이든다. 실수는 실수일 뿐
뜨거운 교육열, 싸늘한 학구열
참 적당한 표현이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이 한 문장으로 표현하니 정확한 해석이 된다. 우리나라에선 가르키고자 하는 열성은 대단하지만,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제 어디에도 없는 듯하다.
이런 현실이 우리에게 학습의 리모델링을 요구하고 있다. '공부를 잘 하면 대학간다'식의 보상 영역에 편중된 학습의 경험을 '재미'와 '필요'의 지평으로 확장하며 균형을 이루도록 말이다.(p23)
저자가 이러한 학습의 리모델링을 위해 예를 들은 것이 외국의 학교와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프로그램이었는데 프로그램 자체는 매우 좋았고 교사로서 그런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부러울따름이었다.
교육에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아쉬웠던 점은 우리 교육현실과 너무나 먼 이야기라서 부러워만하다가 끝나야한다는 것이었다. 첫 챕터에서 제시한 학습의 리모델링이 가능한 프로그램들 또한 부러움의 단계에서 그쳐야할 것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두번째 챕터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이 부분 또한 공감가는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피아노는 열성적으로 가르치지만 연주회는 데려가지 않는, 결국 문화예술인이 되었을 때 자신이 표 값을 충당해야하는 현실,
90년대까지만해도 음대에 재학중인 학생들은 (후에 졸업해서까지) 자신의 지도교수가 연주회를 할 때 한 명당 20-30만원씩 표값을 충당했어야했다. (지금은 표값이 올랐으니 제자 한 명이 부담해야하는 표값도 올라갔겠지)
가르치기는 하면서 연주회나 전시회에 데려가지 않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문제점이라는 지적은 아주 날카로운 분석이었다고 생각한다.
세번째 챕터, '부모와 자녀의 대화'는 교사의 입장으로서 가장 좋은 내용으로 이루어진 부분이라 하고싶다. 학교라는 곳에서 학부모님과 만나다보면 부모와 자녀의 대화가 아이의 교육에 너무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저자도 부모이기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아주 좋은 내용들을 제시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모두에게 인정받은 이론 보다 경험이 더 많은 것을 들려줄 때가 있는데 이 챕터가 바로 그러한 것이라 하겠다. 부모로서 교육자로서 이야기 해줄 경험담이 얼마나 많았는지 다섯개의 챕터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었다.
네번째, 삶에 대한 상상력
이 챕터에선 역경지수라는 것에 대해 처음 들어보았는데 한국학생들은 이 역경지수(AQ)가 매우 낮아서 모범생들이 약간의 실수로 큰 슬럼프에 빠지기도한다고했다. 이에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아버지가 아들의 지도교수에게 보낸 편지와 극한 상황에서 코끼리가 쇠사슬을 끊고 도망간 것에 대한 인용을 들었는데 역경을 이기고 성공(?)한 아인슈타인이나 어린 코끼리들이 쇠사슬을 끊지 못하는 것으로 학습된 무기력함이 커서도 못한다고 생각하게 한다는.. 자연재해 앞에서 학습된 무기력함을 잊어버리고 쇠사슬을 끊은 코끼리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하였다.
마지막 챕터, 평생학습으로 가는 길
이제 우리는 평생 학습해야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학교 다닐 때에만 교육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지나갔음에도 한국의 성인들은 졸업 후 더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한다. 교육이라는 것은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이 사회에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상상이 가능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작은 책 안에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이것이 문고본의 매력이리라. 교육의 상상력이 제 힘을 발휘하려면, 교사도, 관리자도, 부모도 학생도 조금 더 열린 눈과 마음으로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되리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