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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가라고 불리면서 자화상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로 유명한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그림으로 책으로 영화로 여러경로에서 렘브란트를 만났지만, 이번에는 글과 시와 그림과 함께 색다르게 렘브란트를 만난다.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는 영문과 교수로 있으면서 고흐와 베르메르에 관한 시집을 낸 적도 있는 작가로 이번 렘브란트를 만나다라는 책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 느낌을 시로 옮겨놓았다. 거기에다가 큐레이터로 활동중인 조은정 박사가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풀어 놓았다.
17가지의 그림을 시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 놓는데 그림을 보면서 당시의 시대상과 렘브란트의 느낌, 렘브란트의 성향들이 느껴지는 것 같다. 시와 설명이 덧붙여진 그림을 감상하고 있어서그런지 공감각적 느낌이 한층 더 느껴진다.
렘브란트의 삶은 여느 예술가들처럼 평탄하지 않았다. 죽은 뒤에 유명해진 다른 화가들에 비해 비교적 젊었을 때 유명해진 렘브란트는 사랑하는 아내 시스키아를 먼저 보내고 마음착한 두번째 부인 핸드리켜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게 되고, 수십년 동안 독한 질산을 써가며 수많은 에칭 작품을 제작한 탓에 건강마저 악화되고 그의 두번째 아나 핸드리켜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티투스마져 죽자 다음 해에 그의 삶도 작품도 세상과 작별을 한다.
빛과 어둠의 대비, 야곱을 비롯해 성서에 관련된 그림과 함께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로 알려진 렘브란트.
100여 점의 자화상에서 이 책에서는 3점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고, 종교색이 짙은 그의 여러 작품과 함께 유명한 "야경"이라는 작품도 접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렘브란트라는 작가 일생을 담은 자서전이나 전기라고 생각하고 읽었다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자서전이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 아니라 말 그대로 화가인 렘브란트를 만나는 책이다. 시와 감상과 그림이 함께 있어서 객관적이라기 보다는 다소 주관적이면서 감성적이다. 이 책을 통해서 렘브란트와 그의 그림에 대해 조금 더 이해했다면 다음번에는 렘브란트의 생애나 그의 작품을 다룬 책들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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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색다른 형식의 책을 만났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그림들,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의 시, 조은정의 글, 이 세 가지가 만나서 렘브란트를 알게 한다. <렘브란트를 만나다> (2008,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시, 조은정 글, 가치창조 펴냄)은 여러 분야의 통섭을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웨스트몬트 대학의 영문학 교수인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는 고흐와 베르메르에 대한 시집도 낸 문인으로, 렘브란트의 그림에 담긴 장면을 시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조은정 님은 현재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며, 미학미술사학 박사 수료라는 학문적 배경으로 렘브란트의 그림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표지로 사용된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그간 우리에게 친숙했던 '빛의 화가' 풍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자화상>에서 그는 24세의 청년이라고 믿기에는 어려울 만큼 희화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불과 2년 전에 그린 청년 시절의 자화상과는 많은 변화가 있다. 수없이 자신을 그리면서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정과 자세를 찾아 그렸다는 이 자화상, 참 가볍고 편한 분위기로 다가오지 않는가. 책에 실린 기독교적인 그림들, 자화상들, 여인의 그림들에서는 빛의 부드러움과 함께 곡선의 아름다움, 거친 터치와 내면의 세계가 물씬 풍긴다. 하나하나 짚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도상학적인 의미에 대한 설명, 그 분위기를 잘 담은 시를 곁들인 이 얇은 책은 그려진지 400년이 가까운 그림들을 감상하는 재미를 극대화한다. 혼자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한다고 하면 그저 보이는 것의 포착에만 그쳤을 감상은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빛과 어둠, 색이 만들어낸 멋진 세계를 잘 거닐다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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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브란트는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을 보고 시를 쓴 사람이 있었다. 그 그림과 그 시를 보고 다시 글을 쓴 사람이 있다. 이렇게 해서 한권의 책이 나왔다. 그래서 이 책은 램브란트에 대한 얇지만 그 정수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쓴 고뇌의 흔적들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빛에 대해서 말한다. 수많은 색을 이용하고 수많은 색을 조합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가끔 색의 근원을 잊고 산다. 바로 빛! 빛이 없으면 색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빛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의의가 있다.
빛이 없었다면 색이 없었다면 우리의 램브란트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빛은 곧 예술의 근원이 된다. 우리가 누리는 아름다움의 근원이 된다. 특히 램브란트의 그림 속의 아스라한 빛... 주변으로 아득하게 빨려 들어가 사라지는 그 빛에 대해 오래전 부터 감동해온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감동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을 것이다.
모든 화가가 빛을, 그리고 색을 이용하지만 램브란트는 뭔가 다르게 빛을 이용한다. 그의 그림 속에서 주인공인 대상을 빛나게 하는 그 빛, 주변의 사물과 분명하게 구분짓는 역할을 하는 그 의도적인 빛에 대해 그림에 빠져들면 쉽게 알기 힘들다. 한걸음 물러서서 그림을 보면 우리의 일상을 비추는 빛인 프레임 밖의 빛과 그가 재현한 프레임 안의 빛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젊은 램브란트의 곱슬머리를 빛나게 하고 그의 귓불을 물들이는 빛은 그의 순진스러운 볼의 강조하고 그의 눈은 어둠 속에 두게 한다. 화가가 어떤 눈빛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자꾸만 젊은 화가의 눈을 다시보고 싶은 충동이 일게 한다. 화가는 그림을 보는 우리가 그와 시선을 맞추고 싶어하길 바랬던 것일까?
성경을 재현하는 그의 그림은 성스러운 인물들 뒤로 빛과 일관성없는 후광을 의도적으로 가미한다. 때로는 빛이 주인공이 된다. 함께 그려진 인물들은 빛이 드러내는 윤곽만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빛이 가닿는 곳에서 예언과 암시와 고통과 번뇌, 용서와 기원 등 화가가 의도한 감정들이 피어난다. 화가가 그린 외면의 모습에 내재된 의미가 빛난다. 그래서 곧 그 빛을 강조해주는 어둠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림을 그림으로서 읽지 아니하고 하나의 상징과 비유로 읽어낸 그래서 그림 속의 언어를 우리에게 시로 보여준 맥엔타이어의 시도가 존경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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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것저것 살피지 않고, 겉모습만 보고 물건을 홀랑 집어올 때가 있다. 그렇게 집어온 물건들이 좋을 때도 많지만, 역시나 너무 섣부르게 집어 온 탓에 풀어보고 나서야 실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뜬금없이 왠 물건 얘기를 꺼내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내려고 하는 참이다. 책 제목에 홀려서 아무것도 따져보지 않은 채 펼친 책이 이 책이다. 책을 읽다 말고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 자꾸 의심을 드러냈다. 무언가가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자꾸만 겉도는 느낌. 그제서야 저자가 눈에 들어왔다. <고흐를 말하다>를 쓴 저자였다. 그리고 밀려오는 안타까움. 그 책을 재미나게 읽었으면 좋았으련만, 안 좋게 읽은 기억 때문에 기억하고 있던 작가였는데, 또 다시 만나고 말았다.
나의 덤벙댐을 탓한 것은 렘브란트를 색다르게 만나고 싶은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거라는 데에서 오는 안타까움이었다.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내리는 속단일 수도 있겠지만, 전작 <고흐를 만나다>로 심하게 데여서인지 그 작가의 책은 피하고만 싶었다. 이 책의 내용이 확 바뀌지 않는 이상, 나의 편견이 깨지기는 커녕 더 굳혀질 것 같았다. 하지만 <고흐를 만나다>와 너무도 흡사했다. 책 제목에서부터 책의 구성까지 다를게 없었다. 저자는 시만 썼고, 그림에 붙은 글은 다른 사람이 썼으며, 번역도 제 3자가 했다. 당연히 그림은 렘브란트의 그림일테지만, 이렇게 짜집기 되어진 책을 정말 좋아하지 않기에 온전히 읽기를 진즉 포기해 버렸다. 아무리 전작에 대한 실망이 크다지만, 너무 하는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렘브란트에 대해 전혀 모른다거나 그의 그림을 보지 않았다면 몰라도, 어설픈 지식이 들어있는 내게 이 책은 통할 리가 없었다.
<고흐를 만나다>도 내가 고흐를 좋아하기 때문에 읽은 책이었다. 당연히 어설픈 지식이 난무했고, 그 지식을 총동원해서 읽었지만 지금껏 만나왔던 책과는 너무도 달랐다. 고흐의 그림과 그의 인생을 겉도는 느낌. 그나마 내가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화가에 대해 색다르게 엮어진 책을 보며 당황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렘브란트라니! 실망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역시나 초반부터 책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내가 가장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책의 구성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한 사람의 느낌을 읽어나가도 그 느낌이 내게 전해질까 말까인데, 다른 사람의 글이 실려있다. 똑같은 그림을 보고 느끼는 색다른 단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느 글 하나 온전히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글 속에 렘브란트의 그림을 억지로 꿰어맞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림이 실려 있고, 그림에 대한 설명 혹은 느낌과 함께 이어지는 추상적인 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이질감이 가득했다. 읽고 또 읽어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내가 알고 있는 렘브란트가 맞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한 명의 화가를 너무 틀 속에 가뒀는가를 생각해 보았지만, 몇 가지 수식어와 연결할 뿐, 특별한 편견은 없었다. 그러나 이 책 속의 글은 없는 편견도 만들게 하는 소통의 엇갈림이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대부분 성서와 관련된 그림이었다. 렘브란트 하면 자화상을 빼놓을 수 없기에 자화상은 제쳐놓고서라도, 몇몇 초상화를 빼면 대부분이 성서와 연관된 작품들이다. 그가 성서의 내용을 즐겨 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성서에 관련된 그림을 공통적으로 실었다는 사실만을 인지할 뿐이었다. 성경에 관한 배경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그림 자체만으로도 이해 불능인데, 설명도 부족했고, 개인적인 느낌이 강해서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적어 안타까웠다. 렘브란트 하면 '빛'을 빼 놓을 수 없는 화가이기에 '빛'과 어둠을 극명하게 대비한 그림의 특징을 잘 살려서 설명한 부분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전달되는 '빛'의 가능성은 작았다. 빛의 통과여부에만 설명이 국한되었던 것이다.
나의 지나친 편견일 수도 있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일지도 모른다. 전작에서도 그랬으니 이번 책도 그럴 것이라는 지나침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끼고 좋아하는 화가의 특징을 살려내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말 그대로 자신만 간직할 수 밖에 없는 추억이 되고 소중한 기억이 될 뿐이다. 내가 감정이입을 시키지 않고 시를 읽었을 수도 있고, 이미 아는 내용이라고 그림에 대한 설명을 대충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모든 편견과 아집을 단박에 깨어줄 수 있는 새로움을 바랐던 것이다. 그 새로움을 만나지 못해, 이렇게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렘브란트의 본질에 좀 더 다가가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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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가라고 불리우는 화가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 색감이 아닌 빛으로 표현된 듯한 밝음과 어둠을 이용한 느낌을 시를 통해 그림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구성이 마음에 드는 건 그림과 해설, 시로 보는 그림까지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있어 부족함이 없다. 빛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한 느낌을 그림에 대한 단상을 통해 이해 할 수 있어 나의 느낌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베르메르와는 빛의 화가라는 공통된 수식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분명한 차이점을 알 수 있었다. 렘브란트의 빛은 어둡고 경건하다. 베르메르의 그림과 책을 보았음에도 차이를 알 수 없었지만 이 책을 통해 확실한 비교가 된다. 베르메르의 여성적인 빛과 렘브란트의 남성적인 빛을... 전반적으로 어두움이 느껴지는 그림들은 빛을 돋보이게 한다. 이 책에는 17편의 그림과 더불어 해설, 그리고 시가 있다. 첫 번째 작품은 청년 시절의 자화상으로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오른쪽 뺨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이렇게 그는 22세의 자신을 남긴다. 마지막 작품으로도 자화상을 소개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자화상과는 달리 백발과 지나간 세월이 느껴지는 온화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 100여점의 자화상으로 유명한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이 책에서는 세 점을 볼 수 있는데 표지로도 보여 지고 있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자화상은 곱슬머리와 미간의 떨림, 턱수염까지 표현하고자 에칭으로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종교화가 많아서인지 렘브란트의 빛에선 경건함이 느껴진다. 야경이라는 작품은 집단 초상화다.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의 군인들이 모여 있다. 군인들의 인간다움을 표현하고 있는데 ‘인간다움’은 그가 성인과 역사적 인물을 표현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예술이념이라고 한다. 그림 속에는 무리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가 있다. 빛을 한껏 받은 이 여인으로 인해 딱딱한 분위기는 희석된듯하다. 렘브란트는 상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성공한 화가라고 한다. 이 책으로 인해 그림과 함께 행복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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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화가. 그의 회화가 성숙함에 따라 외면적인 유사성보다는 오히려 내면적인 것, 인간성의 깊이를 그리고 싶은 생각이 절실해지면서 종교적(또는 신화적) 소재나 자화상이 많아졌다. 유화와 에칭에서 유럽 회화사상 최대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을 수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렘브란트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그리 많지 않았다. 백과사전을 통해 살펴 본 단편적인 지식이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를 이번에 제대로 만나볼 수 있었다. 가치창조에서 발간한 <렘브란트를 만나다>(가치창조, 2008년) 덕분이다. 사진을 찍다 보면 제일 중요한 것이 ‘빛’임을 알 수 있다. 노출의 정도로 따라 사진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명암은 큰 차이를 보인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점이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 한 그 명암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플래시를 터뜨려 명암을 극복한다. 그러나 피사체의 질감과 빛의 명암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다면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 빛을 그대도 받아들여 한다. 렘브란트의 그림들을 보면서 사진촬영 기법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잘 모르는 회화 이론보다는 흔히 접하는 사진기법이 내게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그림 속에서 아주 놀랄 정도로 ‘빛’이 섬세하게 잘 묘사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렘브란트의 관심은 인체의 곡선을 타고 흐르는, 공간을 유영하는 빛의 미세한 움직임이다. 빛의 섬세함을 느낀다. … 렘브란트의 빛은 삶의 깊이를 아는 사람의 초월적 시선이다.”(16쪽)라고 했다. 실제로 그의 그림 속에 나타난 ‘빛’의 명암에 대한 표현은 정말로 섬세하다. 머리카락 한 올, 콧잔등에 드리운 빛에도 빛의 미세한 움직임이 살아 있다. <청년 시절의 자화상>이 대표적이다. 또한 그의 그림은 ‘인간성의 깊이’가 느껴진다. 자화상을 100여 편이나 그렸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내면적인 성찰을 많이 한 듯 보인다. 그리고 종교적인 성향을 띤 그림들을 많이 그리기도 했는데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 표정은 어떠한 마음상태인지를 충분히 엿볼 수 있을 정도이다. 대체적으로는 따뜻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의 작품에서 특히 놀란 부분은 <우물가의 여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이다. 이 그림은 중간 아래 부분이 어둡게 채색되어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무얼 그려놓은 것인지 확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곧 우물임을 알 수 있고, 우물 옆에 사람들이 잡담을 나누고 있음을, 그리고 물을 긷는 여인네의 맞은편에 손을 내민 한 남자가 서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떠한 대화들이 오고갔을지 짐작이 가는 삶의 한 풍경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저자의 감미로운 그림 설명과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의 시까지 함께 곁들여져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렘브란트의 감성 세계에 푹 빠져 버린다. 렘브란트를 잘 몰랐던 이라도 그의 그림이 가지는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by 꽃다지, 2008년 12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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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글로 렘브란트의 그림을 만끽하다
한 떼의 무리들이 미술작품 주위에 몰려 있다. 한 가운데는 조그만 확성기를 든 안내원이 작품을 설명하고, 무리들은 그녀의 귀를 기울이며 뭔가를 받아적고 있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사람 많은 곳에서는 돈벌 일이 없다'는 어느 부자의 말을 믿어 그들로부터 떨어진 것은 아니다. 작품을 보고 느끼기 위해 미술관에 온 그들은 안내원의 입을 보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어서 였다. '그런건 인터넷만 뒤져도 가득한데...' 그들을 본 느낌이었다. 난 미술을 모른다.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지만 메모지에 긁적거리는 낙서수준이고, 남의 그림을 보기는 좋아하지만 미술가가 누구인지 그들이 무슨 사조인지도 모른다. 그냥 구경할 뿐이다. 그림을 보고 그림 속 이야기를 살피고, 그것을 느끼면 배가 불러지는 느낌. 그것이 좋아서 갈 뿐이다.
난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이야기하고 싶지만, 미술을 아는 사람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미술을 모르기 때문이다. 몰라서 알아듣지를 못하고, 몰라서 말할 수 없는데 굳이 그들과 입을 섞을 필요는 없잖은가? 건빵모자 뒤집어쓰고, 파이프 하나 물고 미술을 논하고, 미술가를 평하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겠냐마는 그만한 깜량이 되지 못함을 익히 잘 알고 있어서다. 그래서 그저 보고 느끼려고 한다. 누구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와~좋다" 가끔은 혼자서 말하고 좋아한다.
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미술작품을 구경한 사람의 책을 만났다. 방법만 비슷할 뿐, 그녀 또한 대단하다. 미술작품을 보고 시를 쓴다니. Don Mcclean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Starry Night'을 보고 동명의 노래를 만들었다더니, 시인은 작품을 보고 시를 썼다. 게다가 작품을 그대로 느끼는 해설까지 곁들여졌다.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을 이야기했다. 빛의 화가 렘브란의 작품을 이야기한 책,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의 [렘브란트를 만나다]이다.
![]() ![]() ![]() ![]() ![]() ![]() ![]() ![]() ![]() ![]() ![]() ![]() ![]() ![]() 고흐와 베르메르의 작품을 보고 시를 쓴 바 있는 저자는 이번에는 렘브란트의 작품 17점을 보고 시를 썼다. 가장 좋아하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자화상]과 [야경] 그리고 노년의 아쉬움을 보여주는 [자화상]등이 포함되어 반갑기 그지 없다. 렘브란트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20여 년 전인데, 그의 작품 속에서 빛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리고 인간의 다양한 표정을 담고 있는 작품은 그것으로도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위대한 화가의 작품이라지만 편안한, 그냥 일상을 엿보는듯한 작품의 격없음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려고 노력했다. 작품 속의 주인공의 행위와 표정 그리고 주위의 사물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별한 경험. 작품을 보는 또 다른 눈을 제시하는 듯 했다. 이 책에는 또 다른 재미도 있는 서양미술을 전공한 해설자가 일반인의 시선에서 작품을 거듭 이야기하고 있는데, 마치 나를 포함해 두 세 사람이 모여 작품을 이야기하는 듯 눈과 귀가 즐거운 느낌이 들었다. 곳곳에 숨은 삽화는 더욱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책은 미술가들을 위한 미술책이 아니라 일반인임을 확인하게 한다. 저자의 또 다른 책, [고흐를 만나다]도 찾아 읽고 싶다. '빛과 종교, 그리고 자기自己'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화가, 렘브란트를 새롭게 만나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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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만에 나서는 서울 나들이. 이번엔 어디를 둘러볼까, 고민하던 중 예술의 전당에서 "서양미술거장展"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때마침 이 한권의 책도 내게 날아들었다. 사실 그의 명성만큼 그의 그림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이 그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를 만나다! '빛의 화가'라는 별명을 가진 렘브란트. 같은 네덜란드 작가로 역시 빛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던 베르메르의 그림과는 달리, 렘브란트의 그림은 보자마자 '빛'이 아닌 '어둠'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그림 전체에 짙게 드리운 어둠. 그 어둠은 빛을 더욱 빛나게 하고,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뿐만아니라 어둠 속에 묻혀 보일듯 말듯한 사물들은 보는 이들을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내고 더욱 집중해서 들여다보게 한다. 유화 작품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에칭 작품을 그렸던 렘브란트.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도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에칭 작품이다. 에칭은 뾰족한 도구로 판을 새기는 판화의 한 기법으로 경제적인 이유로 많이 찍어내고자 했던 화가들이 주로 선호했다고 한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섬세하게 새기는 그림의 특별함 때문에 선호했다고 한다. 차갑고 날카로운 여느 작가들의 작품들과는 달리 렘브란트의 작품에는 부드러움이 살아있다. 마치 유화물감으로 그려낸 그림처럼 말이다. 그저 내리긋는 것도 힘들텐데, 저렇게 부드러운 선을 살리려면 얼마나 정성들여 새겨야 했을까. 게다가 과연 이것이 새겨서 그린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 음영 표현이 뚜렷하다. 그는 자화상을 비롯해 많은 인물들을 그렸지만, 성서 속 주인공들도 많이 그렸다. 그래서 이런 작품들을 완벽하게 읽어내려면 성서를 알아야 한다. 친절하게도 이 책에는 그림마다 저자의 이야기와 시가 달려있다. 나처럼 성서가 낯선 사람이더라도 저자의 이야기와 시를 읽는다면 그림 속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08/12/21 by 뒷북소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