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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해저 이만리를 보게 된것은, 수십권의 시리즈의 명작 소설의 한 권으로써 였다. 그때,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으로,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완역된 해저 2만리를 다시 읽고 싶었지만, 모든 도서관과 서점을 뒤져도 우리나라에는 완역된 해저 이만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매우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해저 2만리가 완역이 되어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 당장 구매하긴 했으나, 지금까지 재출간 붐에 의해 다시 출간된 책들이 그리 흡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걱정했다. 하지만 책을 받고 나니, 정말 구매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깨끗하고 정성들인 번역이다. 그 당시 프랑스인들의 이야기인 만큼 그 시대에 따른 해학과 풍자나 시대에 특수하게 이용되었던 고유명사들은 지금 이해하기 힘들텐데, 그것들에 주석을 붙여 설명해 놓았다. 그리고 그 주석들은 한문장 읽을 때마다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석은 모두 책 맨 마지막에 설명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석을 읽느라 흐름을 놓는 일이 별로 없다.(하지만 정말 궁금한 주석은 뒷장을 일일이 찾아보아야 했기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었다)
번역자의 풍부한 상식 덕분인지, 그냥 문장만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갈 것들도 주석을 읽고서 끄덕일수 있었다. 덕분에 콩세유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충고'를 뜻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실, 쥘 베르느의 작품은, 단순히 아동용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렵다. 이 책의 여러 구절에서 과학적 원리들을 다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또한 네모함장과 같은 폐쇄적인 성격의 등장인물은, 지금까지 해저 이만리를 단순히 아동용의 모험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이다. 아동용으로 읽었을때와 지금 읽었을때의 차이첨은 이렇게 등장인물에 대한 또다른 시각을 가질수 있다는 것 외에도, 쥘 베른의 설명에 의한 과학적 원리가 다소 많이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예를들어 아로낙스 박사와 콩세유가 그 괴물의 정체에 관해 언쟁할때, 그 괴물이 배를 부술만한 강한 힘을 가진것은 심해에 살았기 문에 높은 압력을 이기기 위해 강철과도 같은 단단한 몸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주장한다. 하지만, 심해의 사는 생물은 배를 부술수 있을 만큼 수면 가까이로 올라가면 외부 압력이 낮아져서 몸속의 기체가 끓어오르기 때문에(흔히 잠수병이라고 하는) 금방 목숨을 잃게 된다.
이러한 옥의 티가 다소 보여 집중을 방해하게 되는 것이 유감이지만, 이것은 내가 성장해서 세상을 조금더 논리적으로 볼수 있게 된 증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다 감안하더라도 이 작가의 놀랄만큼 기상천외한 발상은 충분히 즐겁게 받아들일수 있고, 또한 매우 매력적이다. 실제로 이러한 공상과학 소설이 우리에게 이러한 공상같은 미래의 현실을 예지해 주지 않던가? 단지 허무맹랑한 공상과학 소설이라고 치부해서 지금까지의 출판사들이 모두 아동용으로 줄거리만 나열한 것으로만 보신 분들께, 어른이 된 지금 이 책의 의미가 얼마나 다른지 한번 느껴보는 것도 좋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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