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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이로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반가운 일이다. 영화를 이야기하고 영화속에서 인권을 말하는 이야기라면 더더욱 우리가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으니까. 영화속에서 혹은 소설속에서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난듯 느껴지는 건 그동안 우리가 폭력에 방치된 이들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었던가.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이라는 영화로 톰 행크스가 주연을 한 영화였다. 실화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화가 아닌것만 같았다. 비행기가 강에 빠졌는데 탑승했던 155명 전원이 살아남았다는게 과연 실화일까. 혹시 우리가 꿈꾸었던 상상의 결과물 아닌가 했다. 이륙한 비행기가 새에 부딪혀 양쪽 엔진을 잃고 회항해야 하는데 건물과 인명 피해가 예상되어 허드슨강으로 비상착륙했던 이야기였다. 탑승했던 전원이 구출되는 장면을 보고는 나는 세월호 사건을 떠올렸다. 맨 나중에 나오는 기장의 모습을 보고도 눈물을 흘렸다. 캡틴이라면 무릇 탑승한 사람의 안전을 제일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을. 대처가 빨랐다면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었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한국영화 「한공주」에서부터 「이다」라는 영화까지 우리의 인권을 말하는 에세이였다. 「한공주」와 「도희야」를 묶어 말하는 글에서 작가는 폭력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들을 말했다.
우리에게는 이 영화들을 볼 책임이 있다. 그래야 약자들이 내쉬는 조그만 숨소리라도 들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폭력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다. (23페이지 중에서)
과거 「도가니」라는 영화가 개봉된 뒤 장애자에 대한 폭력과 인권이 사회적으로 문제되었던 것처럼 폭력 피해자가 아프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았었다. 폭력 가해자들은 버젓이 학교에 다니고 생활하고 있는데 왜 폭력 피해자가 학교를 옮기는 등 도망다녀야 하는지 비정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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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통치술만 잘 구비한다고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이렇게 완비된 통치술로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고 해서 국가의 역할을 다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힘으로 국민으로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비쳐진 프랑스 한국 영사 및 직원들의 고압적인 태도와 위선적인 미소는 결코 국가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국가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영화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30페이지)
세월호 사건시 국가의 존재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어떻게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그렇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것인지. 지금도 세월호 생각만 하면 눈물이 차오르는데, 저자는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소개하며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건네고 있었다. 국가의 역할 보다는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국가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오래전에 보았던 <가족의 탄생>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영화다. 피를 나누지는 않았더라도 더 가족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그렇다. 최근에 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에서 키운 정과 낳은 정은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뒤바뀌어져 다른 아이를 키웠던 부모. 자식에게 상당히 차가운 부모였지만 그 아이가 타인의 아이라는 것과 이제는 함께 살수 없는 시점에서야 자신이 아들을 많이 사랑하고 있었음을, 아버지가 되어가는 감정들을 느낀다는 이야기였다. 좋은 부모라는 것도 배워가는 과정인 것을 알수 있었다.
기억이 사라지면 사람도 사라지는 걸까? 머릿속에서 과거가 모두 사라져 가족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를 때조차도 그 사람을 엄마나 아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껍데기뿐인 사람도 사람일까? (217페이지)
영화 <스틸 엘리스>에서 엘리스가 했던 말이 아직도 뇌리를 스친다. 자신을 잊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겠다는. 주변에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누구보다도 이 말이 와닿았다. 만일 나에게 병이 찾아온다면 그것이 암일지라도 치매는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같은게 생겼다.
보지 않았던 영화들을 몇 편 찾아보았다. 시간을 정해놓고 볼 생각이다. 아무리 평이 좋지 않아도 취향에 따라,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면 그 영화는 나에게 굉장히 좋은 영화일수도 있는 것임을 이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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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코스중에 하나가 영화보기 일것이다. 딱히 무슨 말을 다음에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할 필요도 없고 또 바깥보다는 조금 어두운 분위기가 스킨십도 용이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일 것이고 공통의 관심사를 찾을수 있게도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영화보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온전히 영화에 집중하고자 하고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영화를 보고 한번 보았던 영화를 두번, 세번 감상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영화라는 장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앙하게 인기를 끈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싫어하는 사람은 보았어도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영화를 통해서 드러나는 인권에 관한 내용이다. 그냥 '인권'하면 말도 어렵고 이해도 잘 가지 않지만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서 좀더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다. 그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신이 보았던 영화를 생각하면서 읽어도 좋겠고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은 후 관심이 생겨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여기, 우리, 나,라는 네 개로 나누어진 각 장은 각각의 범주를 통해서 그 속에서의 인권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보통 두개의 영화를 묶어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영화는 다를지라도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끼리 연관을 지어서 설명하는 식이다. 흡사 영화 소개프로그램처럼 말이다. 비슷한 내용이나 소재면에서 비슷한 영화들을 같이 소개하는 방식이다. 소개하는 방식이 독특하다거나 펼쳐지는 이야기가 우리가 익히 생각할수 없을만한 일들이거나 하지는 않다.
"왜 녀석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이 일을 했을까?"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던데요."(31p)
분명 어디선가는 들어본듯한 이야기이고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일임에도 분명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것을 인지를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니 인지를 하고 있지만 대처방법이 없는 경우도많다. 해마다 반복되어지는 여러 강력사건들이 그런한 예중에 하나이다. '영화'라는 장르를 예전에는 많이 보아왔다. 최근에는 영화를 오히려 책으로 보고 있다. 원작소설이라던가 또는 스크린셀러같은 작품을 통해서다. 이 책의 처음에 나오는 영화 [한공주]라는 작품은 예외였다. 이 작품은 영화로도 보지 못했고 책으로도 읽지 못했다.
그 사건을 내가 알게된 것은 한 재연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밥을 먹으면서 틀어놓았던 프로그램에서는 그 사건이 재연되었고 가해자들의 가족으로 인해서 도망다녀야만 했던 피해자와 그 아버지를 보니 화도 나고 딱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었다. 왜 그렇게밖에 할 수없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빈익빈부익부라는 생각도 들고 돈이 모든것을 다해주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저런 상황일진대 어느 누가 강간사건을 신고하려고 할까 라는 생각도 들며 성폭행사건이 저렇게 주체가 바뀌어서 생각을 할수도 있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이 사회가 무서워졌다. 당사자였던 그 아이는 오죽했을까.
지금은 어떻게 결론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부디 바른쪽으로 판결이 났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피해자가 속히 자신의 자리를 찾고 더이상 방황하지 않으면 하는 생각이 컸다. 이런 식의 강력사건부터 시작해서 [국제시장]같은 영화를 통해서 과거를 조명해보는 순간을 가지기도 하고 [룸]과 [조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나 자신을 돌아볼수 있는 시간도 주어진다.
이런 책을 쓸 정도면 저자는 분명 많은 영화를 보았을 것이고 좋아함에 분명하다. 그는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기 위해서 무조건 많이 보라는 이야기를 서두에 하고 있다. 영화를 가라지 않고 많이 보면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다보면 감독의 의도와 저들이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무조건 일단은 읽어봐야 작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것이 장르에 따라서 자신의 실천이 동반되어야 하는 경우도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건네줄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하나의 영화정도는 분명 그들이 본 영화가 이 속에 있을지도 모르고 그것으로 인해서 '인권'이라는 것에 흥미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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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영화를 미친 듯이 본 시기가 있다. 영화관에서 보고, 집에 오면 비디오를 빌려 봤다. 나중에는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서 열심히 봤다. 인터넷 있기 이전에는 영화 잡지를 보고, 비디오로 나오지 않은 영화는 어떻게든지 구해서 보려고 했다. 지금이냐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쉽게 찾아서 볼 수 있지만 그때는 불법 비디오나 희귀본이 된 비디오테이프를 찾아야했다. 힘겹게 찾아 본 영화가 나의 취향이나 이해를 완전히 넘어선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래도 계속 찾아봤다. 이런 습관은 불과 몇 년 전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다 나의 손에서 영화가 조금씩 멀어지고, 완전히 책으로 넘어왔다.
박태식 신부, 잘 모른다. 내가 영화를 볼 때 이 이름은 거의 없었다. 내가 아는 평론가들은 이제 고인이 되거나 너무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가끔 영화에 관련된 인터뷰를 보다 보면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그의 초창기 모습을 기억하기에 왠지 어색하다.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나의 취미나 기억이 이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주 가끔 보는 영화도 거의 오락영화만 본다. 사회문제를 다루거나 조금 어려운 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영화 흥행이나 할리우드 상황 등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이제는 찾아보지 않는다. 극장에 어떤 영화가 하는지도 잘 모른다. 이런 상황이니 이 책의 저자를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책에 실린 46편의 영화 중 본 것은 딱 3편이다. 이전 같으면 최소한 반은 봤을 텐데 말이다. 비교적 2~3년 안에 상영된 영화다 보니 본 영화가 더 없다. 몇 편은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영화 프로그램이나 포탈 사이트 연예란에서 본 적이 있다. 처참한 숫자다. 올해 영화를 몇 편이나 봤는지 생각해보니 딱 1편이다. 바로 스타워즈 7편. 이전 같으면 이 책에 나오는 영화들을 열심히 찾아서 한 편씩 보면서 저자의 글과 나의 감상을 비교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열정이 많이 사라졌다. 좋은 영화를 구해놓고 그냥 묵혀두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아주 조용히 옛 열정에 불을 당긴다. 모두 볼 수는 없지만 극찬한 몇 편은 메모해 두었다가 한 편씩 보고 싶다.
영화와 인권. 어떻게 보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보기 힘든 것이 인권이 아닌가 생각한다. 열정 페이를 이용한 영화제작이 아직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저자는 인권의 범위를 아주 넓게 잡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을 넘어 사랑의 상처, 치매로 스러져가는 노인의 애절한 삶, 친구를 배신하는 것까지. 그래서 몇 편은 나의 이해를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저자가 영화에서 감독의 의도를 발견하라고 했는데 영화를 보지 않은 탓에 이것을 파악하기가 더욱 어렵다. 아니면 나의 인권에 대한 범위가 아주 좁거나.
모두 4부로 나누어져 있다. 지금, 여기, 우리, 나. 지금과 나의 장에 실린 영화들에는 공감을 하지만 여기와 우리에 실린 영화 몇 편은 솔직히 왜 인권에 담았는지 의문이다. 나의 한계다. 저자가 영화에 대해 풀어 쓴 글도 상당히 재밌다. 대부분이 두 편을 같이 다루는데 비슷한 부분과 차이를 나열할 때 한때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의 방식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귀찮고 능력이 많이 부족해서 포기했지만 이런 종류의 글을 보면 먼저 눈길이 간다. 그리고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조용히 눈길을 준다. 그가 말하는 감상 포인트와 칭찬 등은 영화를 한동안 멀리했던 나에게 낯선 부분이 많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많은 참고가 된다.
1~2년 전에 갑자기 시간이 나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려고 검색했다. 상영은 하는데 도저히 볼 수 없는 시간에만 상영했다. 멀티플렉스로 바뀐 후 영화의 순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영화의 다양성을 말할 때 늘 나오는 지적이다. 엄청나게 흥행을 한 작품도 한 달이 지나면 극장에서 보기가 힘들다. 이런 상황이니 내가 그 속도를 따라가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보고 싶은 영화는 많다. 이 책에도 많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전 같으면 모두 보려고 했을 것이다. 최소한 반 이상은 봤을 것이다. 현실은 이렇지 않다. 대부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한 평론가를 알게 되고, 영화에 대한 이해를 높인 것은 큰 성과이자 재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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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잡지에 실리는 20자평에 당첨되서 받은 거에요. 얼핏 저자와 제목만 보고는 무거운 책인줄알았는데, 영화평론가를 겸하는 신부님의 글이 영화를 좀더 알게 해주고 몰랐던 영화소개, 볼까말까 했던 영화들에 대한 글들이 이제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책이었어요. 46편의 영화를 소제목에 따라 때론 한편만, 때로는 2편을 연달아 이어서, 저자의 시선에서 두 편을 엮었어요. 영화제목에 붙여 감독, 개봉시기, 배우이름, 이 영화가 어느 영화제에서 어떤 상을 타고 등등 소소한 정보도 함께 있어서, 2016년에 출간된 책이고, 이후로도 엄청나게 영화가 많이 개봉됐지만, 거리두기로 집에 있는 요즘같은 때, 이 책에 소개된 영화를 찾아보며 나의 감상에 부족한 면을 이 책으로 채우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영화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영화팬으로서, 이 책에 실린 영화중 안 본 영화를 손으로 꼽는게 더 쉽지만, 이미 한참 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떠올리며, 저는 생각못했던 지점들을 알게되서, 다시 봐야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아마, 당분간은 더 집에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이 책의 목록대로 영화 한편 보시는 건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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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우리, 나를 통해 인권 접하기[그것이 옳은 일이니까요]
사제이자 교수, 영화평론가인 박태식 신부. 주말이면 쏟아져 나오는 영화 정보들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의 진행자와는 달리 "인권"이라는 토픽 아래 영화를 소개한다. 시류에 따라, 유행에 맞게, 혹은 흥행하는 작품들만 골라보게 되는 요즘의 '영화보기 방식'에 길들여진 탓에 "인권" 이란 다소 묵직한 추를 던지는 이 책을 앞에 두고 왠지 숙연해진다. 너무 어려운 영화를 어렵게 풀어내면 어쩌나...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그래도 내가 본 영화가 몇 눈에 띄고 소위 천만 관객이 들었다는 영화들도 있어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신부님과 영화 평론가라는 다소 의외의 조합 때문에 가지게 된 선입견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다소 진지한 "오픈 크레딧"에서 '인권'이란 단어를 발견했을 때는 머리가 지끈, 하려 했으나 첫머리에서부터 그 우려를 말끔히 날려 보내 주신다. 우리의 애간장을 태우는 사랑의 상처에도, 치매로 스러져가는 노인의 애절한 삶에도, 그리고 욕망에 사로잡혀 친구까지 배신하는 마음에도 인권이 스며들어 있다,(4페이지)라고 선언을 하니 그만 마음이, 된장국에 된장 슬슬 풀리듯, 풀어져 버린다. 모두 4부로 나누어진 이 책에서 신부님은 지금, 여기, 우리, 나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영화를 끌어들여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보게 한다. 영화보기가 책과는 달라서 은근한 상상 대신 직접적인 역할 몰입을 하게 만드는 데 최고가 아닌가. 특히나 배우의 연기가 최고조에 올라 있을 때는 나와 너를 잊고 그 상황 속에 바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지금의 내가 그 상황에 처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감정이입이 될 테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영화관 안이 깜깜한 암흑이 되고 적막에 젖어드는 그 순간, 해어화 속 권번 기녀 소율이 될 수도, 7년간 좁은 방 안에 갇혀 살다 기적적으로 세상에 발을 딛은 조이가 될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그렇게 나와 우리를 오간 경험이 있다면 박태식 신부가 조근조근 짚어 읽어주는 영화 이야기에 쉽게 귀기울일 수 있다. 오락 영화, 액션물과는 또다른 차원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때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을 오롯이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본 영화는 나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여 비교해가며 읽어볼 수 있고, 아직 보지 못한 영화는 머릿속에 잘 담아둔 채 다음에 볼 날을 기약해본다. 주인공 재범과 혜경에 초점을 맞춰 보았던 영화 <무뢰한>에서 진짜 무뢰한은 악역이자 조연이었던 민영기였을 수도 있다고 보자 새로운 시각을 장착한 채 <무뢰한>을 다시 감상하고 싶어졌다. 아름다운 영화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는 <마지막 4중주>, 고급스러운 언어와 저질 언어를 섞어가며 화려한 대사의 향연을 보여준 <버드맨>은 찾아서 보고 싶어진다. "가끔은 잘못 탄 기차가 진짜 목적지에 데려다준대요."-45 두 남녀가 직접 얼굴을 맞대지 못하지만 세밀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촘촘히 짜인 구성에 깊이까지 더한 <런치박스>도 호기심을 부추긴다.
내가 놓친 부분을 콕 집어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영화에 대한 애정이 솟아오른다. 나와는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해체해서 본 사람이 있으면 왠지 부러워지고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웬만하면 나만의 감상을 끌어안고 나만의 영화로 품는 편인데 이런 자극이 훅, 하고 들어오면 도전정신이랄까, 그런 게 스멀스멀 발끝에서부터 기어올라온다. <변호인>도, <스틸 앨리스>도, <프로메테우스>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보고 싶어졌다. 영화를 많이 보면 감독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고 배우의 연기도 보이며 장면마다 숨은 뜻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아직 수련이 덜 된 셈치고,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보고 또 보련다. 책과는 다른 매력의 영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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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를 보는 스타일은 참 단순하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은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블록버스터 영화 위주로 본다. 그러다보니 정치나 인권, 복잡한 사상이나 미학 등이 담긴 영화는 잘 보지를 않는다. 그럼에도 가끔씩은 이런 영화편식으로 인해 좋은 영화들을 놓친 것이 아쉬울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는 좋은 영화들이 많이 언급된다. 대부분 내가 보지 못한 영화들이다. 이 책은 27개의 챕터로 되어 있고, 대부분은 한 챕터에 두편씩의 영화를 소개한다. 마치 토요일 오전에 영화를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에서 같은 주제의 영화 두 편을 연괂서 소개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저자가 첫 번째로 소개하는 영화는 [한공주]와 [도희야]라는 영화이다. 두 편 모두 폭력에 희생되는 힘없는 약자들이다. 우리사회에는 피해를 당했으면서도 오히려 죄인처럼 자신이 당한 피해를 숨겨야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신상이 인터넷에 노출되고, 오히려 그런 여성들이 세상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야 하는 상황들이 지금도 빈번히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약자의 시선에서 상황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런 약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여건이 변하면서 한공주 자신의 목소리도 슬금슬금 사리지고 말았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학교로 전학가야 했고, 후배 부탁으로 잠시 받아주기는 햇지만 재단의 눈치도 봐야 한다며서 공주를 학교에서 내보내는 교장의 입장까지 받아들여야 할 처지에 놓인다. 심지어 '네가 꼬리를 쳐서 이런 일이 터진 게 아니냐'며 공주를 궁지로 모는 가해 남학생들의 부모와, 갈 곳 없이 도망치듯 거리로 내몰린 공주에게 합의서에 도장을 찍으라는 경찰서장에 의해 공주의 목소리는 묻혀버린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그 절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P 21-2) 이 책의 제목은 [트래쉬]라는 영화에서 가져왔다. 이 영화의 배경은 난지도를 연상시키는 브라질의 쓰레기 마을이다. 부패한 정치인과 그 정치인의 부패를 덤는 청부업자가 나오고, 이에 대항하는 순수한 소년들이 등장하는 영화이다.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정치인가 대항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묻는 수녕게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저자는 이 영화를 통해 온갖 부패한 권력 가운데서도,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을 믿는 소년들의 순수한 마음이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는 내가 본 영화들도 몇 편 소개하고 있다. 차이나타운, 국제시장, 변호인, 고지전이다. 저자는 내가 영화를 보면서 놓쳤던 부분들을 여러 가지 방향에서 바라보며 이야기를 해 준다. 공감을 가는 부분도 있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국제시장]이란 영화는 내내 눈물을 흘리며 본 영화이다. 원래 감수성을 자극하는 영화를 싫어해서 이 영화를 끝내 보지않으려했다. 결국엔 아내의 손에 이끌려 보게 된 영화이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펑평 운 영화이다. 그 뒤 이 영화가 기성세대에 대한 변명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펑펑 운 내 자신이 머쓱해지는 비평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세대의 갈등이나 정치적 시각이 아닌 그냥 영화로 보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평생 맏아들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짊어져야 햇던 무거운 짐을 가진 남자의 내면을 그냥 공감하면 안되는 걸까. 이 책의 저자 역시 이 영화를 세대의 갈등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말한다. "국제시장을 보면 눈물을 자아내는 요소가 한두 가지 아니다. 윤제균 감독은 어떻게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지 잘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감동적인 장면을 곳곳에 배치하여 잠시도 눈물 샘이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훌륭한 연출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시장이 불러 일으킨 효과가 단순히 '눈물 짜내기'에 그친 것은 아니다. 감독은 극구 부인하지만 세대간 분열을 부추기는 영화로 해석될 소지가 들어 있다. 기성세대는 국제시장을 보며 '요즘 젊은 것들은 돼먹지를 못했어!'라는 넋두리를 늘어놓을 법하다. 특히 덕수와 여자의 아들과 며느리들이 부모에게 하는 짓을 보면 분명해진다. 어떻게 부모를 저렇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자기들이 누구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살게 되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생각은 그와 다르다. 배금주의, 과도한 교육열, 집단 이기주의, 기성세대 정치인과 경제인들의 비윤리적인 행동....... .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게 기성세대의 잘못이지 어디 젊은 세대의 잘못인가? 과거는 그렇게 우리를 즐겁게도 만들고 슬프게도 만든다." (P 140) 영화는 단순히 흥미를 위한 오락 수단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를 이야기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영화에 담긴 시선은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그 영화의 시선들을 예리하게 파해친다. 특히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특히 저자가 영화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매우 담맥하면서도 진솔하다. 어려운 영화기법이나, 멋져 보이는 전문용어들을 쓰지 않는다. 간단한 영화 줄거리와 감상,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러기에 읽는 이가 쉽게 공감하게 된다. 특히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접하지 못한 좋은 영화들을 알 수 되었다. 기회가 되면 한 번씩은 꼭 보고 싶은 영화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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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영화에 빠져 지내던 때가 있었다. 영화에 대해 뭔가 잘 알아서 본다기보다는 일단 수많은 영화를 보다보면 차츰 나만의 시각이 생기겠지,라는 생각에 내 취향이 아닌 영화도 보러가곤 했었다. 그때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영화전문잡지 '키노'에 언급된 영화였다. 그리고 헐리우드 액션 영화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그런 영화야말로 커다란 화면으로 봐야한다는 강박을 가진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덕에 액션 히어로 영화도 꽤 많이 봤었다. 그렇게 영화를 가리지 않고 봤었는데 어느순간부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시간적 여유가 사라지면서 영화는 점차 내 생활에서 멀어졌다. 한때는 영화를 보고난 후 먼거리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각자의 감상을 이야기하며 토론 아닌 토론도 하곤 했었는데, 영화감독의 시선을 따라간다는 것이 때로는 재미있다는 것을 그때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여자와 남자의 시선과 생각과 기억이 다르다는 것을 표현해냈는데, 그 영화를 본 여자관객과 남자관객의 시각차이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영화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난 후 이야기를 나누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일 수 있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 1년에 한두번 영화관에 가볼까말까하는 내게 '영화 이야기'는 선뜻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무리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해도 말이다. 그런데 저자를 보니 이름이 낯설지 않은 '박태식 신부'이다. 이분이 권하는 영화와 인권 이야기라면... 내가 본 영화가 많지 않다 하더라도 이야기 자체는 흥미롭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예상은 그리 틀리지 않아서, 이 책의 내용은 온통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영화가 우리의 현실에 반하는 전혀 다른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굳이 내 나름대로 구분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영화에 대한 '평론'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보는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 말하고 싶다. 아, 그래서 '박태식 신부가 읽어주는 영화와 인권'인거구나.
이 책에 언급된 46편의 영화중에 내가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변호인' 한편...정도? 그만큼 영화와는 거리가 먼 생활이구나 싶기도 하지만 반정도의 영화는 또 그 내용에 대해 알고 있어서 전혀 낯설게만 읽히지는 않았다. 특히 밀양에서의 전도연에 대한 연기력에 이어 전도연에 대한 언급은 나 역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여서 더 반갑기도 했다. '인권 이야기'라고 해서 괜히 진중하게만 읽어야하는건가, 싶었는데 의외로 연기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내가 보지 않은 영화 이야기인데도 그 영화 이야기를 왜 언급하는지 잘 느낄 수 있게 이야기를 쉽게 잘 이야기해주고 있어서 책은 술술 잘 읽힌다. 과거의 추억팔이 정도로만 회자되고 있어서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국제시장의 경우도 "국제시장에서 풀어놓는 과거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리고 과거 그 깊숙한 곳에 가족이 자리해 있음을 알려준다. 같은 의미에서, 가족의 해체가 이루어지는 요즘의 차가운 현실에 이정표를 제시하는 영화로도 볼 수 있겠다. 그 정도면 영화가 갖는 긍정적인 역할을 다한 셈이다"(141)라고 말을 하고 있어서 왠지 한번쯤은 봐야하는 영화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가 갖는 긍정적인 역할'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는 박태식 신부의 영화 이야기에 나오는 영화는 그 긍정성을 찾아보기 위해서라도 봐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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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시들해버렸지만 20~30대 시절 최고의 취미생활은 영화 관람이었다. 옥석을 가리지 않고 무작정 쳐들어가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스크린에 눈을 못 떼었던, 흡사 빨려 들어갈 것처럼 탐닉했던 시기였었지. 때론 통쾌하게 짜릿하게, 때론 뭉클하게 슬프게 어떤 감성이라도 다 담아낼만한 그릇이 영화였었고 그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행복했었다.
책이 대신하고 있는 영화의 그림자를 각인시켜주기 위함인지 영화와 인권을 소재로 한 책이 나왔다. 저자인 박태식님의 이력은 참으로 다양하고도 이채로운데 사제이자, 교수, 영화평론가이셔서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지만 그 점 때문에 영화에 대한 어떠한 평론을 실었을까 라는 궁금증이 인다. 사실 인권을 다루면서도 어랏 이 영화가? 하는 케이스도 있는가하면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평은 그리 와 닿지 않는 점만 빼곤 충분히 공감할 내용들이 많았다.
무심코 지나쳤거나 분개하며 관람했던 포인트 곳곳에 인권이란 두 단어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한공주〉,<스포트라이트〉같은 영화는 인권을 언급할 때 결코 빼먹으면 안 될 교과서라고 생각된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한공주>뿐만 아니라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다루어진 소재이다.
영화에서 가장 무섭고 소름끼쳤던 장면은 가해자 남학생의 학부모들이 등쌀을 못 이겨 전학 간 타 학교에까지 쫒아가 한공주를 악랄하게 괴롭히는 순간이었다. 삐뚤어진 자식사랑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뒤바꾸게 만드는 그 만행들이 가슴 깊은 곳을 활활 타오르게 만들어 주먹을 불끈 쥐며 보게 하는데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공주의 눈에 서린 피로와 절망들, 한숨. 당시 가해자들은 성인이 된 후 결혼, 연애, 취업도 해서 평범하고 자상한 가족과 이웃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가해자들의 친구였던 어느 여학생은 피해 여학생들을 오히려 조롱하기까지 하면서 가해자들 편을 드는 발언을 SNS에 올린 적도 있다고 한다. 지금 그 여학생은 경찰로 재직 중에 있다고 하니 정의란 무엇이고 공권력은 무엇이고 사라진 인권은 또 어딜 가서 찾아야 할까? 참으로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약자에게 가해진 폭력의 악순환은 <스포트라이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고발하려는 신문기자들의 올바른 직업윤리 또한 보호받지 못한 인권과 이 사회의 무관심에 대한 날선 비판이 인상 깊었었다. 더불어 영화라는 장르가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해지려면 약자의 고통에 귀 기울여 하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그늘을 조목조목 영화별 사례를 들어 멋지게 풀어내었다. 영화의 힘은 그래서 막강하다. 군림하기 위한 권력은 죄악이라면서. 그래서 영화가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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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식,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요], 비채, 2016. '박태식 신부가 읽어주는 영화와 인권'이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글을 이렇게 잘 쓸 수 있을까? 저자는 사제이자 교수 그리고 영화평론가라고 하는데, 철학적이면서 논리적으로 나름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때로는 감성적으로 46편의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글솜씨가 일품인데, 나의 블로그 글쓰기를 다시 생각해야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역시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고수가 있고, 그가 세상에 나왔을 때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어린 시절에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를 보고 자란 세대라서 영화에 관한 애정은 남다르다. 지금처럼 볼거리가 넘치는 시대가 아니라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소중했다. 아는 선배는 중, 고교 시절에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007시리즈의 포스터를 잊지 못해 그때의 영화 전편을 소장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영화관에서 첫 데이트의 기억... 누구나 영화에 관한 추억이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영화는 종교와 관련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기독교인이 영화 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 영화 보는 게 뭐 어때서요? 마치 타락한 죄인을 보는듯한 경멸의 시선...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이다. 오늘날 교회보다는 영화가 더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생각이고... 그때의 충격(?) 때문인지 종교인이 읽어주는 영화라서 나에게는 더 의미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영화들은 바로 이 인권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고른 작품들이다. 고문을 받아 억울하게 인생을 마감한 사람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하지만 온갖 난관을 뚫고 조국의 경제를 일으킨 사람도 기억할 만하다. 우리에게 <변호인>도 소중하지만 <국제시장>도 중요한 까닭이다. 이처럼 영화는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보고 상상해보는, 즉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일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 책은 모두 네 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제목을 보면 '지금' '여기' '우리' 그리고 '나'인데, 이 네 범주를 통해 인권 문제의 다양한 양상을 포괄하려 했다. 제1부 '지금'은 사회에서 개인 쪽으로 인권의 방향을 잡았고, 제2부 '여기'에서는 개인에서 사회 쪽으로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제3부 '우리'에서는 공동체에 무게중심을 둔 반면, 마지막 장인 '나'에서는 자아를 치밀하게 들여다보았다. 특히 '나'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잊기 쉬운 오늘의 세계이기에 소중한 가치를 담아 전하고 싶었다. 이를 통해 자칫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인권문제를 재인식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p.5) 저자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의 시선이 아닌 포괄적인 눈으로 '인권'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영화 <변호인>의 가치가 중요하지만, <국제시장>의 역사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서로의 처지를 바꾸어 볼 수 있는 것은 영화라서 가능하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영화를 보고 통합적으로 해석함으로 우리 사회와 구성원 개인에게 필요한 것을 제시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지금... <한공주> & <도희야> / <트래쉬> / <스포트라이트> & <업사이드다운> / <런치박스> &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 <미스 리틀 선샤인> / <스파이 브릿지> / <러시안 소설> & <10분> 여기...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 <인사이드 르윈> & <비긴 어게인> / <무뢰한> &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 <해어화> & <사의 찬미> / <차이나타운> & <조이 럭 클럽> / <1944> & <고지전> / <집으로 가는 길> & <변호인> 우리... <국제시장> / <당통> & <페어웰 마이 퀸> / <비우티풀> & <바벨> / <마지막 4중주>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가족의 탄생> / <마더 데레사의 편지> & <마더 데레사> 나... <안녕 헤이즐> & <나우 이즈 굿> / <조이> & <룸> / <버드맨> / <마션> / <스틸 앨리스> & <어웨이 프롬 허> / <그래비티> & <프로메테우스> / <이다>(p.8-11) 여기에 나오는 영화의 절반은 보았고 절반은 보지 못했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유명한 영화가 있고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영화가 있다. 상업적으로 흥행한 영화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영화가 있다. 누가 보아도 재미있는 영화가 있고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가 있다. 종교적으로 의미가 있는 영화가 있고 반종교적인 영화가 있다. 최근에 나온 영화가 있고 오래된 영화가 있다. 우리의 영화가 있고 외국 영화가 있다. 누구나 아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있고 특정 계층만 아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가 있다. 감독도 마찬가지이고... 영화를 '지금', '여기', '우리', 그리고 '나'라는 네 개의 범주로 나누어서 인권을 추출한다. 서구에서 1860년대 이후 등장한 진취적인 예술가들은 눈이나 귀를 즐겁게 하는 형식적인 미(美)에서 벗어나려 했고, 그와 더불어 창작이란 기존의 형식을 벗어나 관객과 독자를 당황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정의가 힘을 얻었다. 후기 인상주의의 등장과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창작에 대한 보들레르의 주장이다. <한공주>와 <도희야>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끔찍한지 극적으로 알려준다. 충격은 언제나 필요한 법이다.(p.15) <트래쉬>가 고발하는 브라질의 현실은 우리에게도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마지막에 줄리어드 신부가 올리비아 수녀에게 묻는다. "왜 녀석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이 일을 했을까?"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던데요."(p.30-31) 미셸 푸코는 "사람들은 국가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다"(생명관리정치의 탄생)면서 국가의 통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다시 말해 국가의 위기관리능력에 회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보노라면 미국이라는 국가 시스템은 역시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 시스템이 다른 게 아니라 사람이, 그리고 언론이 달랐던 것은 아닐까. '미국'에서는 무엇인가 국가운영을 잘하고 있으리라는 환상 따위는 버려야 옳을 것이다.(p.42) 사잔과 일라는 우연히 서로를 알게 되고 일면식도 없이 사랑에 빠지지만 그들의 사랑을 얕잡아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에게도 인도 물가의 5분의 1 수준으로 가난하지만, 지구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고 알려진 부탄에서 살 권리가 엄연히 있다. 문제는 과연 어느 때 잘못된 기차에 타는가에 달려 있을 뿐. 리테쉬 바트라 감독은 관객에게 주문한다. 그때를 늦추지 말라고. 늦추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몸에서 노인 냄새가 나게 될 것이라고. 상당히 공감이 가는 메시지였다.(p.47) 우리는 여기서 중대한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폴이 끌어낼 기억은 과연 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저명한 심리학자 주디스 허먼은 자신의 걸작 [트라우마]에서 괜스레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끌어내 자칫 상처를 건드려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을까 염려한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과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뜻일 텐데, 아마 수많은 임상을 거쳐 얻은 견해이라라. 폴의 이모들이 하는 걱정도 기우가 아닐 것이다. 실뱅 쇼메 감독은 심리학자들의 이 같은 우려를 거슬러 자신 있게 반박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기억을 회복해서 왜 오늘의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알아내야만 한다고. 만일 겁이 나서 덮어두고 산다면 오늘의 나는 공허한 삶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폴의 인생이 한심했던 것처럼. ... "너의 삶을 살아라(Vis ta vie)!"(p.58-59) 오늘날 가톨릭 교회 깊숙이 파고든 물질만능주의와 뼛속까지 자본주의에 물든 세상, 여성 사제직, 사제 숫자 감소, 사제들의 어린이 성추행, 냉담자 증가 등 하나하나 거론하기조차 힘든 많은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중세의 산물이기도 한 '성직자의 권위주의'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성직의 권위 추락은 인간이 내적 성찰 없이 성직에 오르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잘 보여준다.(p.85) 그렇게 과거가 인간을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극대화시킨 인물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으뜸일 것이다. 어릴 때 받은 상처가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다가 현재의 나에게 치명적인 충격을 가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 비판에 앞장선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는 과거를 불변(不變)의 심리 장치가 아닌, 미래를 위한 가변(可變)의 도구라고 보았다.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가 오히려 과거의 의미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과거를 사용한다. 이를테면, 쓰라린 과거사는 실패자의 합리화 도구로 쓰이거나 종종 약진의 논리로 탈바꿈한다. 과거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미래를 망칠 수도,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p.140) 죽음이야말로 그런 게 아닐까? 아무도 죽은 이의 이야기를 들으려하지 않는다. 그가 살아온 삶을 다 같이 모여서 기리고 그가 이룩한 가치들은 존중하며 눈물을 보이지만 결국 죽은 자는 죽은 자일 뿐. 슬픈 일이지만 죽은 자를 매장하는 4월은 잔인한 달이다. 그러니 죽은 자에게는 차라리 망각의 눈으로 뒤덮인 겨울의 대지가 따뜻하지 않겠는가! 오랫동안 그려온 평화를 향해 아쉬움을 남겨두고 훌쩍, 떠나면 그뿐이리라.(p.162-163) 히로카즈 감독의 말에 따르면, 과거의 다른 표현인 '피'가 가족의 진가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 피는 기본 조건일 뿐 결국 가족 공동체의 운명은 그 구성원들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는지에 달려 있다. 즉, 인간의 의지로 결정론(決定論)을 돌파해낼 수 있다. 료타는 그 사실에 대해 완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가족의 탄생>에 등장하는 남성들이 자기가 가족의 주인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철없고 무책임한 사람들일 뿐인 것처럼.(p.167-170) 리들리 스콧 감독은 선택의 순간에서 뱅캇과 미치의 입장을 지지한다. 한 인간을 살리는 것은 지극히 성스러운 사명으로,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계산에 착오가 생겨 구조선이 대기권에서 폭발하고 생존을 위한 마크의 필사적인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도 생명을 향한 사랑이 변해선 안 된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지혜가 등장한다. "만일 한 사람을 죽이면 전 인류를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한 사람을 구하면 전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는 한 사람, 곧 아담에게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마크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전 인류가 노력을 기울인다는 설정은 분명 평범하지 않다. 그러나 감독은 할리우드가 오래전부터 좋아해온 인본주의적 결말을 고집한다. 영화의 철학적인 배경이라 할 수 있다.(p.210-211) 철학자는 일반적으로 형이상학의 차원에서 초월적 가치를 추구한다. 르네 데카르트(1596-1650)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차원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명제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 합리주의와 과학주의가 등장하면서 데카르트식의 명제는 도전받아왔다. 오퀴스트 콩트(1798-1857)는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차원에 도달하지 않은 명제는 아직 완성에 다다른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쳐 데카르트식의 사고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 후 형이상학과 과학실증주의는 시대를 오가며 수많은 분야에서 충돌을 일으켰다.(p.230-231) 가정의 폭력과 사회의 폭력에 노출된 상황은 어느 순간 피해자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수시로 변하는 조건만 남는다.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해야 하는 옳은 일이 있다. 우리와 미국은 국가 시스템이 아닌 언론의 차이이다. 그때를 늦추지 마라.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너의 삶을 살아라.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내면의 성찰이다. 과거의 경험은 나를 만드는 가치이다. 죽은 자와 남겨진 자들, 새로운 의미의 가족, 형이상학 차원의 초월적 가치 추구... 더 많은 희생이 있더라도 위기에 처한 한 사람을 구해야 하는가? 에 관한 명쾌한 영화의 답변이 있다. 한 편의 영화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감독의 철학, 배우의 몰입, 스태프의 노력이 있다. 인생, 웃음, 감동이 있다. 나와 다른 삶이 있고, 모르던 정보가 있고, 숨은 메시지가 있다. 누구와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고... 영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말 날 새는 줄 모르고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여기에 인간과 인권이라는 시각은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영화의 재발견,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 내가 느낀 감정과 다른 의미의 해석...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어서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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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내가 먼저 감상하기 전엔 누군가의 감상을 먼저 듣지않으려고 하는 편이지만 (귀가 팔랑귀라..), 너무나 많은 것들이 펼쳐져있어 자동적으로 선택장애에 빠져들때엔 믿을만한 이의 추천은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난 너무 내 취향만 고집했으니 시야를 넓히고, 자가당착에서 빠져나오려면 나와 다른 취향도 가끔 들여다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 글쓴이도 자기가 만난 모든 작품을 수동적으로 그냥 받아들이지 않았듯, 나도 추천은 받지만 내 나름으로 거를 예정이다).
제법 긴 리스트를 또 장만했다. 차근차근 들여다 볼 영화들. 그동안 나는, 나를 불편하지않게 하는 영화들을 안전하게 택해서 보았는데, 그랬던 나의 자세들이 결국은 가져온 결과인지, 점점 들어 내 삶이 점점 편협해진다는 느낌이 들어 답답했다.
영화는 국내외작품으로 크게는 4가지 - 지금, 여기, 우리, 나 - 로 나눠져, 국가, 사회, 인간, 역사 등을 살펴본다.
지금 그리고 여기. 영화는 오락과 선전을 위해 탄생했지만, 인간의 감각과 이성에 미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인지라 선동을 하기도, 문제를 제기하기도 욕망을 자극하기에도 최고이다. 얼굴을 마주 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수단이 아닌지라, 점차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해답으로 가는 길을 모색하기에 딱 좋기도 하다. 국가, 정부, 언론에서의 문제점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답답하지만, 이러한 데서 시선을 돌릴 수만은 없다. 문제 속의 그 대상이 언제 내가 되지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 우리에에는 이 영화들을 볼 책임이 있다. 그래야 약자들이 내쉬는 조그만 숨소리라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푹력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다....p.77
우리와 나
개인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상황, 그게 인류의 문제일 수도 있고 한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 언제나 근본은 '나'가 바로 서는 것이다. 홀로 설 수도 있지만, 서로간의 관계, 과거에서부터 내려오는 조상과 부모,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매우 극단적인 상황들을 보여주는 영화들이지만, 병마, 우주에서의 고립, 극단적인 문제의 발생 속에서 해피엔딩을 볼 수 있는 것은, poetic justice만큼이나 위로가 된다. 100만분의 하나의 행운일지라도, 결국 현재 잘 안될지 몰라도 언젠가는 잘 될 것이라는 (Everthing will be alright, maby not today, but eventually).
...너의 삶을 살아라 Vis ta vie! ....p.59 (예전에 샤론 스톤이 나온 영화에 그녀가 이런 말로 끝을 맺었다. "Get a life!" 남을 들여다보는, 남에게 의존하는 삶을 버리라고)
...삶의 지혜란 나이와 무고나하다. 아마 지혜란 경험의 양이 아니라 질에 좌우되는 문제여서인가 보다....p.184
... 조이는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녀도 같은 과정을 겪었기 떄문이다. 위인이란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을 대하는 법을 익힌 존재들이다. 성공한 이의 삶은 성공 이후가 더 중요한 법이다...p.193
...신학자 역시 초월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그러나 세상사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선의 획득을 위해 최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다짐은 과학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인간의 눈에만 선과 악이 띌뿐 실제 자연에는 선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질서가 엄연히 존재하기 떄문이다. 예를 들면 '독버섯'은 인간에게 해로워서 붙여진 이름일뿐 '당사자'인 버섯의 생태는 전혀 고려하지않은 불명예이다.....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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