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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민족이라는 허구 속에 감추어진 우리들의 폐쇄성..
"단일민족이라는 허구 속에 감추어진 우리들의 폐쇄성.." 내용보기
[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이란 책 제목이 묘한 울림을 준다. 거기에 덧붙여 쓰여있는 부제“섞임과 넘나듦, 그 공존의 민족사”라는 말은 이상하게 슬픔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섞임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한반도는 우리가 학교 다닐때 배워온 대로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대륙
"단일민족이라는 허구 속에 감추어진 우리들의 폐쇄성.." 내용보기

[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이란 책 제목이 묘한 울림을 준다. 거기에 덧붙여 쓰여있는 부제섞임과 넘나듦, 그 공존의 민족사라는 말은 이상하게 슬픔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섞임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한반도는 우리가 학교 다닐때 배워온 대로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대륙과 해양, 양쪽으로 접근할수 있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것은 우리가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을때 통하는 말이고, 그렇지 못한 전통시대에는 대륙을 향해서 나가는 것은 한정되었고, 해양을 향해서 나가기보다는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접근할수 있는 통로가 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대륙에서 혼란이 가중되거나, 해양세력이 발호하게 되면 자연히 사람들은 한반도로 몰려올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한반도에는 전통시대부터 중국인, 일본인, 북방유목민족 등 한반도 주변의 종족 및 민족뿐만 아니라 무슬림세계의 아랍인까지도 살게 되었으며, 이들 모두 오늘날 한민족으로 지칭대는 구성원의 일원이 될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볼때 우리의 관념 속에 자리잡고 있는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는 만들어진 역사, 즉 허구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저자는 멀리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얼마나 많은 이민족들이 유입되어 왔는지를 기록을 통하여 살펴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단일민족이라는 허구속에 감추어진 폐쇄성에서 벗어나, 다원적이고 관용적인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수 있다.

 

먼저 우리가 국사를 배우면서 숱하게 들어왔던 국경지역의 이민족, 오랑캐라 불리었던 여진, 말갈, 거란 그리고 몽골족들이 어떻게 한반도에 들어와서 살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여진족의 경우, 그들은 우리 역사에서 시대에 따라 만주족, 숙신, 읍루, 말갈이라 불리었다. 고려 건국후 여진족은 지속적으로 고려에 귀화했음이 고려사에 나타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발해멸망 직전 한반도 북부지역은 무주공산이었으며, 이곳이 바로 여진족의 터전이었다. 발해의 주민구성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들은 발해멸망 후 대거 고려로 귀화하였다. 또한 그 후 고려와 거란간의 싸움에서 고려의 힘의 우위를 확인한 여진은 대규모로 고려에 귀화해왔고, 고려는 이들에게 자치를 허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윤관이 동북9성을 쌓아 여진을 북방으로 몰아내면서 이들은 더 이상 고려의 구성원이 아니었으나, 조선 건국과 동시에 현재의 한반도가 국경이 되면서 한반도내 여진인은 자연스레 조선의 구성원으로 편입될 수 밖에 없었다.

 

북방민족의 또 한 축인 거란과 고려와 관계는 전쟁으로 시작되었다. 거란인이 고려로 귀화를 시작한 것은 11세기 초반 경에 고려사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유목민이었던 거란은 고려사회에 이주한 후, 토지에 정착하거나 농경생활에 정착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며 유목, 사냥, 유기의 제조와 판매 등에 종사했다고 역사기록은 전한다. 달단 역시 몽골족의 한 부족인 타타르 혹은 몽골족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며, 조선초기 이들은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등 한반도 북부지역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음을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확인할수 있다. 조선시대 나타난 특수한 집단인 백정은 원래 한민족과는 다른 종족 출신을 지칭했다고 한다. 화척, 재인 달단으로 불리었던 이들을 조선시대 한데 묶어 백정으로 칭하였다고 한다. 이들 중 재인, 화척은 거란의 후예, 그리고 달단은 몽골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길 이들의 구성이 각 고을인구의 1/4정도를 차지하였다고 하니 지금의 우리중 30%이상이 이들의 후예라 할 수가 있다는 생각이다.

 

해양을 통해서는 일본인 및 아랍인의 귀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광개토대왕비문에 나타나있는 한반도 남부의 왜구는 일본열도에 있던 왜와는 달리 한반도에 정착했던 왜라고 한다. 이는 중국역사서 삼국지 한전에 변한이 왜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이 나와있는 것과, 일본에는 이시기 국가권력이 형성되기 이전이라는 사실을 들어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임진왜란 당시에는 많은 왜군이 항복해 왔다고 한다. 처음에 조선군은 명군과 달리 이들의 투항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명군 철수후 전쟁의 주도권을 잡아가면서 항복한 왜군에 대하여 유화정책을 폈다고 한다. 그 결과 왜군의 귀화는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들 왜군은 귀화의 조선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졌으나, 조선은 그들을 이등국민 취급하였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한다.

 

아랍인들의 경우 이들이 신라에 정착하여 생활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한국측 자료에는 없지만, 아랍권 자료에는 이러한 사실이 남아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경주의 괘릉에 있는 무인석은 신라인과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는데, 아랍인 형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삼국사기에 나와있는 신라시대 골품에 따라 사용할수 있는 물품 목록을 보면 서역제품이 많이 들어있는데, 이는 신라시대 이미 그들과 교역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고려사에는 대식국 상인들이 토산물을 바쳤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조선시대에는 대조회, 망궐례등에 귀화한 회회인들이 초청받아 참석했다는 이야기가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그들이 국가주요 행사에 초청받아 참석할 정도라면 그들의 집단 규모가 상상외로 방대했음을 반증해 주는 것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을 우리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중국인들 또한 우리와 끊임없이 섞임과 넘나듦을 했다고 말할수 있다. 우리는 삼한의 기원을 토착세력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마한은 토착세력이라고 삼국지 한전에 수록되어 있으나, 진한은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건너온 진의 유민들이 세웠다고 후한서 한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 왕을 세우지는 못하고, 마한의 통제를 받은 이유가 이주민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삼국지나 후한서 모두 중국의 정사이다. 변한 역시 종족적 기원을 이주민으로 보고 있어서 별도로 기록하지 않고 진변한조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진한과 변한은 의복과 주택, 언어, 법속이 유사했으나, 토착세력인 마한과는 문화적 차이가 강했다고 한다. 후에 진한은 신라로 발전해 갔으며, 변한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가야6국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북방에서는 진시황 사후 진한교체기에 연, , 조나라지역 백성 수만명이 고조선으로 피난하였다고 삼국지 동이전의 예전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위만 역시 이시기에 고조선으로 망명하여, 중국인 이주민들을 결속시켜 고조선의 왕위를 찬탈했다고 한다. 위만조선에 대한 정보는 사기, 한서등 중국의 역사책 곳곳에서 발견할수 있으며, 이들 이주민 집단은 고조선의 고유한 기존 사회질서 속에서 토착해 되어 갔다. 그 후에도 중국인들은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조선으로 귀화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있었으나, 대규모의 이주가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시기는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워 명과 전쟁을 시작한 시기이다. 이때 요동의 중국인들은 전쟁을 피해 조선으로 피난을 왔으며, , 청등의 유민 송환요구에 조선은 소극적으로 대함으로써 대부분이 조선의 구성원이 되어 갔다고 한다.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는 언제, 어떻게 해서 굳어 졌을까? 그리고 한반도에 유입된 이민족들은 그 수효가 대체로 얼마나 되었을까? 그러나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란 생각을 한다면 잘못된 생각일까? 우리가 단일민족이든 아니던, 한반도내의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다소 이질적인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도 관용하고 인정하는 다원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민족, 단일사회가 아닐까 싶다. 2007 8 UN은 한국정부에 한국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하고 인종차별 행위를 철폐하라고 권고하였다. 2008 5월 현재 외국인 주민은 89만명, 그리고 약 23만 명으로 추정되는 불법체류 외국인을 포함하면 외국인 주민은 총인구의 2%를 초과하고 있다. 전통시대 이 땅에 들어온 이민족을 제외하더라도 이미 우리사회는 다원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신화 속에 우리의 폐쇄성을 감추고 있지는 않은지,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의 국수성이 단일민족이라는 허구를 만들어내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일이다. 비록 저자의 의견을 전부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생각이다.



k*****1 2011.01.28. 신고 공감 11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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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살펴보는 우리 사회의 이방인들-우리 안의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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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문화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결혼으로 혹은 학업이나 직업 때문에 이주해온 외국인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자주 듣게 된 말인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라고 배워왔고 그렇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젠 더이상 단일민족을 유지하기 힘들겠구나 싶어서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그러다가 문득, 단일민족이라는 것에 왜 그렇게 자랑스러워한 거지? 궁금해졌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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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문화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결혼으로 혹은 학업이나 직업 때문에 이주해온 외국인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자주 듣게 된 말인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라고 배워왔고 그렇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젠 더이상 단일민족을 유지하기 힘들겠구나 싶어서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단일민족이라는 것에 왜 그렇게 자랑스러워한 거지? 궁금해졌다.

 

나아가 '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을 읽고 난 뒤에는 정말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게 됐다. 주변 국가에서 한반도에 이주해 온 역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았기에.

그러고보니 떠오르는 것만해도 가야의 왕비 허황옥은 인도인이었고, 고려도 원나라 부마국이었다. 그러니 왕실 가문부터 요즘 기준으로 하자면 다문화가정이었던 셈이다.

 

한반도로 이민족이 유입된 것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진나라 유민이 주도래 진한과 변한을 세웠고 이중 진한 12국은 사로국에 통합돼 신라로 발전해 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인접국이라 그런건지, 중국에서는 혼란기와 왕조교체기마다 유민들이 조선으로 이주하는 역사를 반복하게 되는데, 위만도 중국 이주민을 이끌고 고조선에 망명해 준왕을 몰아내고 자신이 위만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올랐다.

 

이렇게 이민족이 유입된 역사가 오래됐고, 지배층에 유입됐다고 생각하니, 단일민족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다 신라에서는 아랍인이 경주에 정착한 기록이 있다고하니, 한반도 부근의 민족들만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고보면 향가 '처용가'의 해석에서 아랍인이 거론되는 것도 충분히 근거가 있는 설이 되는 셈이다.

아랍인들은 고려시대에도 벽란도 출입하면서 정착한 사례가 있다고 하니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아랍인 혈통이 우리안에 많이 포함돼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외에도 멸망한 발해의 유민에는 여진인도 대거 이주해왔다.

 

전쟁은 이민족의 유입을 발생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꼽히는데 고려와 전쟁을 벌였던 거란인의 경우 투항하거나 포로로 잡힌 뒤 고려에 잔류한 경우도 드물지 않았고, 조선시대 들어 왜란때 투항한 왜인들은  조선에 정착하게 됐다.

 

이방인들의 이주에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들과 함께 유입되는 문화나 기술이  사회에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선진문물이 영입돼 그 사회가 한단계 발전하거나, 혹인 왜란 때 조선에 귀화한 왜인 덕분에 조선은 비로소 조총을 제작하게 돼,전투력에 큰 도움을 받았다.

또한 몽고인의 후예나 북방 유목민들은 도축을 담당하는 백정이 되는 사례가 많았고, 조선에 육식을 보급하는데 기여했다. 반면에 이들은 조선에서 천시하는 일을 담당하면서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 책에서는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허구적인 신화일 뿐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부제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 섞임과 넘나듦 그 공존의 민족사'에 비중을 두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렇게 '단일민족'을 언급했던 것은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하나라는 것에 매몰돼 폐쇄성을 띄기 마련이라 '단일민족'에 대한 집착은 이제 버려야 할 때라는 생각은 들었다. 21세기 글로벌화된 세계, 또 다양성을 중시하는 추세라는 점에서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실체적으로도 과연 그런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민족들이 어떻게 우리 안으로 들어왔고, 정착하게 됐는지 공존사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머리로는 공존을 말하고는 있지만, 현실에서 보게 되는 불법 체류자나 이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보면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공존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문제가 불거질까하고. 그만큼 단일민족의 허상에서 벗어나 다른 민족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겪어야 할 갈등과 우리가 자행하는 차별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있다는 것 또한 공존을 말하기 전에 명심해야 할 일이다.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까운 법이다.

 

 

e****0 2018.04.24. 신고 공감 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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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직설적이면서 현실적인 역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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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항상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 아닌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은연 중에 서양 사람들은 '양놈들', 일본 사람들은 '왜놈', 그 외에 색이 다르고 얼굴이 다른 이들을 이민족 취급해 온 것은 사실일 것이다.   지금도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색안경과 그들에 대한 많은 이들의 시선이 결코 곱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그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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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항상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 아닌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은연 중에 서양 사람들은 '양놈들', 일본 사람들은 '왜놈', 그 외에 색이 다르고 얼굴이 다른 이들을 이민족 취급해 온 것은 사실일 것이다.

 

지금도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색안경과 그들에 대한 많은 이들의 시선이 결코 곱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그러한 단일민족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말 그대로 '허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서 제 때 잘 나온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전의 '금기'가 더 이상 '금기'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현실 속에서 살아 있는 주제를 제대로 풀어 썼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가진 허위의 한 꺼풀을 벗기면 당연히 드러나는 것인데도 함부로 말하지 못 하는, 한 마디로 '웃기는 자화상'을 전문가의 손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이미 한반도라는 나라는 단일민족으로 살 수 없는 환경을 지녔고,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연관관계들이 '혼합민족'임을 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진한과 변한민족은 진의 이주민이라는 이야기도 재미있고, 이미 논란이 많았으나 수구 역사학계에서 부정하려고 했던 위만조선의 문제, 고려 시대 때부터 이 땅에 와서 살고, 같이 존재했던 눈이 파란 아랍인들의 문제 등 여러 가지고 도발적이면서 신선한 접근이 재미있다.

 

인문학이라는 것이 현실적 생활과 주제의식을 담고 잘 풀어낸 컨텐츠를 담고 있다면 죽지 않을 것이다. 이 책처럼 말이다.

t***r 2008.12.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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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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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민족" . . 단일민족은 대한민국 앞에 습관적으로 붙는 수식어이다. 학교에서도, 역사책에서도,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언제나 단일민족으로 그려져오고, 자리잡아 왔다. 그것은 하나의 '환상'과도 같았다고 할 수도 있고, 우리 민족의 단결성을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고도 할 수 있다 . . . 당연히, 그렇다고만 생각해온나에게 이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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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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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민족은 대한민국 앞에 습관적으로 붙는 수식어이다.

학교에서도, 역사책에서도,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도 우리나라는

언제나 단일민족으로 그려져오고, 자리잡아 왔다.

그것은 하나의 '환상'과도 같았다고 할 수도 있고, 우리 민족의 단결성을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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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그렇다고만 생각해온나에게 이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시되어서

지금껏 이 것에 대한 문제제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수많은 민족, 심지어 아랍인까지도

유입되었다는 조금은 '충격적이고도 신선한' 사실을 우리에게 전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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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가볍지 않은 내용을, 간결한 문체와 잘 정리된

자료로 '가볍게' '최대한 이해하기 쉽도록' 전달해주어서

매우 재밋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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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문화가지고도 니것 내것 하며 이웃나라와 싸우는 오늘날.

거슬러 올라가보면 많은 민족이 융합되어 지금의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함으로써 이책은 우리의 문화적

시야를 더 넓혀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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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다른 독자분들께도 추천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c*******i 2008.12.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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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처럼.
"당신처럼." 내용보기
1. 이라는 광고가 있다. 베트남 엄마를 둔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독도를 우리땅이라 생각하고,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우리처럼 투표를 하고, 세금을 내고, 군대를 갈 것이라는 내용이다.  조그마한 아이가 자기 키만한 군화를 신어보는 장면이 나왔을때 나는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다. (근래에 보기드문 광고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단일민족이라고 부르짖으며 그들을 낮잡아 보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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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라는 광고가 있다. 베트남 엄마를 둔 다문화 가정의 아이가, 독도를 우리땅이라 생각하고,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우리처럼 투표를 하고, 세금을 내고, 군대를 갈 것이라는 내용이다.  조그마한 아이가 자기 키만한 군화를 신어보는 장면이 나왔을때 나는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다. (근래에 보기드문 광고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단일민족이라고 부르짖으며 그들을 낮잡아 보는 동안, 그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 단일민족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2. 이 책은 단일민족의 정체를 묻는다. 도대체,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단일민족은 어디서 온 것인가? 

삼한시대때부터(심지어 진한 12국의 건국을 주도했던) 정착했던 진의 유민? 가야시대에 세력을 형성하며 신라를 침공했던 왜인? 신라시대 대규모로 정착했던 아랍인?(표지의 석상은 신라시대 아랍인의 무인석이라고 한다) 고려 건국 이전부터 정착했던 여진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말갈족? 고려시대 이주해온 거란인?(우리나라에 육식문화를 대중화시킨 민족이다) 장장 1세기동안 몽골의 공주들과 결혼해온 고려의 왕으로부터? 

 

이 책은 우리나라에 뿌리박혀있는 단일민족 이데올로기로부터 우리스스로를 해방시

켜 주는 보석같은 책이다. 평소에 단군의 후손으로 뭉쳐야 산다는 논리에 뭔가 찜찜함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꼭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3.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편견때문에, 다문화 가정과 이주노동자의 수많은 아이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광고속에서처럼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먹고,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생각하고, 매운 떡볶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어느 나라에도 소속되지 못하며, 미등록 신분때문에 의료보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단속으로 강제추방될까봐, 불법쓰레기단속차만 보고도 불안해한다.(한겨레21, 742호 기사 중에서)  이런 보도를 접한 뒤 읽은 책이라 더욱 각별한 거 같다. 

 

4. 어떤 중대한 이데올로기, 이론이라도 아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거라면,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 똑같은 이유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반대한다.

j******c 2009.01.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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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민족 허상 깬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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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오래 전부터 한국 사람의 얼굴을 보며 의구심을 품어왔다.  주변 사람들의 개성있는 얼굴을 볼 때마다 분명 '피'가 다를 거라고... 곱슬머리-생머리, 넓은 턱-갸름한 턱, 얇은 입술-두툼한 입술 넓은 이마-좁은 이마, 작고 가는 눈-크고 둥근 눈 .... 전형적인 몽골리안, 얼굴 넓고 키 작은 사람과  얼굴이 길고 코가 오똑하며 눈동자도 완전히 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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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오래 전부터 한국 사람의 얼굴을 보며 의구심을 품어왔다. 

주변 사람들의 개성있는 얼굴을 볼 때마다 분명 '피'가 다를 거라고...

곱슬머리-생머리, 넓은 턱-갸름한 턱, 얇은 입술-두툼한 입술

넓은 이마-좁은 이마, 작고 가는 눈-크고 둥근 눈 ....

전형적인 몽골리안, 얼굴 넓고 키 작은 사람과 

얼굴이 길고 코가 오똑하며 눈동자도 완전히 검지 않고 머리가 곱슬인 사람(그런 사람을 한 명 알고 있다) 이 어떻게 같은 핏줄일 수 있을까? 

그 의구심을 이 책이 속 시원하게 해결해줬다. 

 

그동안 우리 민족의 혈통에 관해 쓴 책들 중에 가장 설득력이 뛰어난 책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존재한 수많은 이방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폭정과 전쟁을 피해 온 진나라 유민들,

위만이 이끌고온 이주민들,

국제도시 경주에 온 아랍 상인들,

한반도 남쪽에 거주하던 왜인들,

북방의 여진, 거란, 달단, 그리고 요동 사람들....

단일민족 신화에 가려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우리의 선조들이

책 속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온다.       

그들이 한반도로 온 까닭이며 생활 모습에 관한 근거 자료도 풍부하고, 정밀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각각의 귀화인 혈통이 드러나는 얼굴 사진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사진이 다양하게 실렸으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최근 외국계 이주민들이 많아 지면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인이 이방인을 냉대하고 차별한 역사는 그 뿌리가 아주 깊다. 조선 정부 역시 이방인에게 폐쇄적이었다.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하여 매우 안타깝다.

호수 안에 갖힌 빙어는 다양한 유전자를 만날 수 없어 점점 퇴화한다.

사람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순수혈통을 강조할수록 우리는 '호수 안의 빙어' 처지가 될 것이다.

s*****y 2008.12.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열린 사회, 닫힌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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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라고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러워한다. 자연스레 우리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이들에 대해서는 거리감을 느끼고 외면하곤 한다. 그렇지만 바야흐로 세계화, 국제화의 시대이다. 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 더 이상 신기한 경험이 되지 않는 요즘이다. 과거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수의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다고 우린 생각한다. 그런데 이미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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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라고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러워한다. 자연스레 우리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이들에 대해서는 거리감을 느끼고 외면하곤 한다. 그렇지만 바야흐로 세계화, 국제화의 시대이다. 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 더 이상 신기한 경험이 되지 않는 요즘이다. 과거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수의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다고 우린 생각한다. 그런데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땅에서는 다양한 문화 간의 융합이 있었단다. 역사를 공부할 때면 중국과 일본 이상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고려 시대에 있었던 몽골 지배, 종종 발생했던 외국 선박의 표류 등을 고려하더라도 왠지 모르게 낯설 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 책은 단순히 이방인이 많았다 수준에서 그치질 않는다. 보편적인 믿음이 이리 산산이 부서져도 좋을까 싶은역사는 배우면 배울수록 새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민족주의. 이는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를 하나로 엮어주는 소중한 끈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마치 우물에 빠져 그 안에서 쳐다볼 때 보이는 하늘이 세상의 전체인양 착각하는, 민족주의의 늪에 빠지면 우리의 시야는 닫힌다.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각 주체는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바라보다 보니 결과적으로 왜곡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지난 역사로부터 오늘날의 우()를 발견하게 될 줄이야. 일찍이 이 땅에 정착해,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귀화를 해, 살았던 이방인들이 많았단다. 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온 이들이, 무역을 위해 이 땅을 찾았던 이들이 본국으로 귀국하지 않아 자연스레 이 민족(?)에 편입되는 일이 잦았다. 훗날 백정으로 불리게 되는 재인, 화척, 진척 등도 유목민의 후예였단다. 조선시대엔 관직을 제수 받은 이방인들이 있었고, 이슬람식 의례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었다니 우리의 역사가 새삼스레 새로워 보인다. 전쟁이 발발하면 앞서 싸우기를 자처했던 것을 보아 그들은 어느 정도 우리 민족의 정체성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완벽히 동화되는 데엔 실패했다. 물론 전혀 다른 문화가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허나 그들끼리의 뭉침이 보다 견고해진 데에 결정적인 요인은 그들을 향한 차가운 시선이었다. 심지어 국가가 강요한 정착생활은 이미 사회의 최하층으로 자리한 이방인들에게 범법자라는 낙인을 찍기도 했다. 문화적 배경을 무시한 채 온전히 우리와 같은 삶을 살길 바라는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 책은 위험하다. 역사를 어찌 해석하느냐를 두고 국가간에 벌어지는 첨예한 대립을 생각해보면 이는 자명하다. 남북한 모두에서 그 존재마저 부인되곤 했던 임나일본부설만 해도 다루기가 상당히 껄끄러운 주제임에 틀림없다. 왜 세력이 한반도 남부에서 꽤 큰 세력을 형성했었다니, 오늘날 일본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인식을 고려하면 이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역사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열린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대륙에는 장벽이 없다. 비록 각국이 인위적인 국경선을 그었다고는 하나 과거엔 그 선이 오늘날보다 덜 명확했을 것이다. 과거 라 일컬을 수 있는 집단이 꼭 오늘날 일본일 필요는 없고, 한민족 역시 마찬가지다. 이 땅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가 우리의 것이라는 식의 어쩌면 사고 역시 현실에 갇힌 옹졸함의 결과물일 수 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면 오히려 모든 게 수월해진다.

역사를 해석하는 눈의 열림이 필요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마음에도 열림이 필요하다. 사람은 자유로이 오가는데 우리네 마음만 닫혀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은지

이달의 사락 q*****2 2009.04.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쌍화점, 이방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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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쌍화점>은 조인성과 주인모라는 잘 생긴 배우가 출연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봤다고 한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영화 줄거리를 들으니 내가 알고 있던 ‘쌍화점’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내가 아는 쌍화점은 <고려사> ‘악지’에 실려 있다. 흔히 남녀상열지사라고 표현되는 그런 내용의 가사인데, 이렇게 시작이 된다. “쌍화점에 쌍화(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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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 <쌍화점>은 조인성과 주인모라는 잘 생긴 배우가 출연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봤다고 한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영화 줄거리를 들으니 내가 알고 있던 ‘쌍화점’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내가 아는 쌍화점은 <고려사> ‘악지’에 실려 있다. 흔히 남녀상열지사라고 표현되는 그런 내용의 가사인데, 이렇게 시작이 된다. “쌍화점에 쌍화(雙花) 사라 가고신, 회회(回回)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


위 가사를 요즘 말로 바꾸면 “쌍화점에 떡을 사러 갔더니, 회회아비가 내 손목을 잡더이다. ..…” 이다. 눈에 띄는 단어가 있는데 ‘회회(回回)아비’와 “쌍화(雙花)”다. 회회는 이슬람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쌍화는 이슬람식 떡을 뜻한다. 그러니까 고려시대에 아라비아인이 떡집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 집에 떡을 사러 온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는 내용이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터키 사람이 케밥 집을 서울에서 운영하고 있는 식이다. 세계화 시대인 지금 서울 같은 대도시는 수많이 인종이 살고 있고, 그들이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약 700여 년 전인 고려 말에 외국인, 그 중에서도 아주 먼 나라인 아라비아인이 개경에서 떡집을 했다는 것이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에서 보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존재는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찾아서 끊임없이 이주를 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동부에서 태어나 전 세계로 이동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더 나은 삶을 살려고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었음은 자명하다. 쌍화점을 운영하던 회회인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 고려에 왔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한반도에도 이처럼 끊임없이 이주민들이 들어왔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역사가 이희근의 <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너머북스.2008년)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로 들어온 이주민들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秦)시황은 대대적인 토목 공사를 벌였다. 그런데 무리하게 진행된 토목 공사와 폭정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진을 떠나 한반도 남부까지 이주했고, 이들이 진한을 건국했다고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에 나온다. 또 진한 교체기에 수만 명이 고조선으로 이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주 원성왕릉에 있는 무인석을 보면 이목구비가 우리와는 아주 다르다. 또 복장이나 헤어스타일도 마찬가지인데, 아랍인의 형상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즉 아랍인들이 신라에 와서 무인으로 활동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처용그림이나 처용탈의 모습도 우리와 사뭇 다르다. 처용의 정체에 대해서 학계에서 논란이 있는데, 처용이 아랍인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


조선시대 백정(白丁)은 천민을 의미했다. 이들은 도축을 주업으로 하면서 사냥, 기예, 유기 및 가죽제품의 제조와 판매에 종사했다고 하는데, 이들은 심한 차별을 받았다. 그런데 백정 집단은 고려시대 거란인, 몽골인 등 북방 유목민들이 한반도로 들어와서 농경에 종사하지 않고 유목인의 삶의 방식을 가지고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그들로 인하여 육식이 보급되었고, 또 우리사회의 식생활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렇게 외국에서 들어와 한반도에 정착한 이들의 수는 상당히 많았을 것이고, 그들은 지금 한반도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의 선조일 것이다. ‘한민족이 단일 민족이다.’라는 말은 이제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즉 단일 민족은 단순히 이데올로기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조선시대의 백정 집단처럼 북방 이주민들은 한반도에서 차별을 받았다. 아마 그 집단이 대규모였고 힘이 있었다면 그들이 주류로서 활동했겠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기에 차별 속에서 힘든 삶을 영위했을 터. 실상 낯선 자에 대한 경계는 동물의 본능적인 행동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결혼 상대자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신부를 수입(?)해서 가정을 꾸린 집이 많아지고 있다. 또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근로자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많다. 역시 이들도 차별을 받고 있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출신이라고 그들을 차별해도 되는 것인가? 그리고 그들을 차별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우리는 잘못이 없는 것일까? 거꾸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자. 한국인이 미국이나 유럽처럼 부유한 나라에 가서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면 이도 당연히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 백인들에 의한 유색인종 차별을 받아들이기 싫다면, 우리 또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배타적인 ‘이방인 혐오증’을 만들었다. 우리도 이 한반도에 이방인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왔다는 이유하나로 텃세를 부리는 유아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을 통해 이 시대 한반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과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e****n 2009.01.23. 신고 공감 0 댓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