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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람을 쐬고 싶어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손전등이 있었지만 켜지는 않았다. 손전등의 둥근 빛은 시야를 한정시키기 때문이다. 밤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다. 가만히 어둠 속에 서 있다 보면 주변의 풍경의 서서히 떠오른다. 감각은 더욱 예민해지고 머릿속이 텅 빈 듯 맑아온다. 나는 그런 감각을 즐긴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잠자리에 들었고 세찬 파도 소리가 그 정적을 메우고 있었다. 복성재 쪽을 올려다보았다. 건물 주변에는 나트륨등이 몇 개 서 있었다. 노란 불빛 속에 오래된 필름 속의 풍경처럼 복성재 초가 지붕이 떠올랐다. 머니먼 유배의 섬, 외로운 정경, 정약전의 쓸쓸한 상념들이 가슴에 와닿는 듯하다. 문득 복성재에 올라가 보고 싶어졌다.
이 책이 좋은 이유다. 저자인 이태원은 학자로서의 열정도 있고, 철저한 고증정신과 탐구정신을 가지고 있다. 직접 갯벌로 나가 해양식물들을 살펴보고, 갯마을에 들어가 어부들을 만나며, 고서들을 뒤진다. 그러나 그 기저엔 인간다움이랄까? 정이라고도 할 수 있고 푸근함이라고 할 수 있고 낭만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게 있다. 고서를 인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빈번히 인용하는 소설과 시같은 문학작품도 그러하고(3권을 읽고 전광용의 '흑산도'라는 작품이 수록된 책을 구입했다. 전광용은 '꺼삐딴 리'의 바로 그 작가이다), 민중들이 사용하던 속담이나 민간에 전해내려오는 말들, 민요나 노동요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그 해양생물의 특성이나 조상들의 삶을 적절하게 설명하고 묘사하고 복원하는 점도 그러하다. 해박하고 이성적이면서도 풍부한 감수성과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자기의 길을 먼저 걸었던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정약전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공감하고 있다는 점. 이런 것은 깊은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누군가를 잘 알고 깊이 이해하기에만 가능할 수 있는 사랑. 그래서 가슴 저릴 수 있는.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일테니깐. 작가인 이태원은 인간으로서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데, 그가 낮에 보여주는 모습도 밤에 보여주는 모습도 모두 참 좋다. 그가 이성적일 때 보여주는 모습, 그가 감성적일 때 보여주는 모습 모두. 그리고 그것은 그가 깊은 애정을 가졌던 정약전과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해양생물들에게까지 확장된다. 맞다. 나도 사랑에 빠진 것이다.
정말 아주아주 오래 전 이야기인데, 썩 괜찮았던 선배가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 개인적인 친분은 그다지 없었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편지를 썼던 것 같다. 답장이 왔고 꽤 오래 편지가 오갔다. 한번은 한 평 정도 되는 독방에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정치범이었으므로 당연했다.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는 나는 내 방에 있는 클로짓에 들어가 잠을 잤다.
3권을 읽으면서 그때 일이 생각났다. 저자인 이태원이 정약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아마 그런 게 아니었을까? 무엇을 보든 결국은 모두 정약전에게로 수렴된다. 시대를 앞서 살았던 불운아. 그가 느꼈을 시대의 폭력성과 모순, 비이성성 등을 같이 아파할 수 있는 것. 깊은 공감. 공감하는 능력. 결국은 그것이 나에게까지 와닿아 또 하나의 공감을 이루게 된 것 같다.
흑산도에 도착하는 처음 순간부터 유배 생활을 하던 정약전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며칠 동안 200년 전 정약전이 그랬던 것처럼 해변을 거닐고 물고기를 잡았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기록하려 애썼고, 한밤중 복성재에 올라 생각에 잠겨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정약전의 흉내를 내보아도 내게는 절실함이 없었다.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충정도 없었고, 가족과의 이별에 목멘 슬픔도 없었으며, 소중한 벗과의 헤어짐으로 인한 외로움도 없었다(174).
3권이 여타 네 권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사리 밤하늘에 꽃핀 과학정신'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약전이 살았던 당시 조선의 상황과 조선의 과학(조선인들이 가지고 있던 천체나 자연에 대한 이해, 수나 기하학, 음악[i] 등등에 대한 이해)에 대해 포커스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 책의 3부라고 할 수 있는 '한밤중의 복성재'가 3권의 핵심이자 (자연) 과학에 대한 저자의 기본 생각들을 집약해뒀다고 할 수 있다.
역사상 최대의 혜성 중 하나로 꼽히는 '1811년의 대혜성'이라는 것이 있다. 혜성을 관찰한 이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자연지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훔볼트, 행성의 평균거리를 수열로 표현한 '보데의 법칙'으로 유명해진 보데, 핼리혜성의 궤도를 계산하고 시차를 이용한 별의 거리측정법을 개발한 베셀, 천왕성의 발견자 허셜 등이 모두 이 혜성을 관찰하고 관측 기록을 남긴 사람들이다. 그리고 정약전도 그들의 대열에 끼어 있었다. 정약전이 관찰한 신미년의 혜성이 바로 1811년의 대혜성이었던 것이다(131, 133). 조선 후기에 이르러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서양의 앞선 과학 기술을 배우려는 노력들이 행해지기는 했다. 정약전이 서양 역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약용이 종두법을 연구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힘을 얻지 못한 노력은 개인적인 취미 생활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과학 기술이란 개인적인 접근을 통해 쉽게 발달시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서양에서도 지리상의 발견, 르네상스, 경제와 신분제의 변화 등 여러 요소들의 복합적인 작용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과학 혁명과 산업 혁명을 통해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312). 그러나 그들을 둘러싼 조선의 전반적인 학문 풍토나 사회적 분위기는 이들의 날개를 꺾는다. 거세된 열정으로 인해 좌절하고 절망했을 시대를 앞서간 자들의 아픔이 느껴진다. 저자는 그들이 느꼈을 시대적 아픔을 고스란히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감정적인 영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더 근원적인 부분으로까지 확장된다. 자랑할 만한 것은 더욱 깊게 연구하여 널리 홍보할 필요가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들도 세세하게 살펴 지금의 현실과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전통 과학을 교육 과정 속에 포함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커다란 업적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 선조들은 자명종이나 망원경을 발명하지는 못했지만, 그 원리를 탐구하고 흉내내어 만들어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몇 백 년 전의 선조들이 시계를 조립하고 망원경으로 태양의 흑점을 관찰하는 모습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면 이제까지의 교육이 잘못된 것이다. 학생들이 선조들의 과학 활동을 알게 된다면 과학이란 분야를 지금까지와는 달리 보다 가깝고 친근한 것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식목일 대신 한식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피타고라스의 정리 대신에 구고의 정리란 용어를 교과서에서 사용하며, 정약용의 사진기의 원리 등의 설명을 과학교재에 인용했으면 한다"라고 한 박성래의 말이 귀에서 맴돈다(152). 우리 나라의 과학 발전을 가로막은 사회적 조건을 밝혀내는 일도 선조들의 업적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다. 여러 가지 이류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불합리한 정보의 소통 구조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나친 목적성으로 다양한 정보의 발생과 유통을 근원적으로 막아버리고, 고답적인 신분제로 보다 많은 사람에 의한 정보 생산 활동을 불가능하게 했으며, 쇄국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발달된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한 것이 솔직한 우리의 옛모습이다. 한 사람의 지혜보다는 두 사람의 지혜가, 한 나라의 지식보다는 두 나라의 지식이 뛰어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수의 지배층이 좁은 범위의 학문을 부여잡고 외부로 향한 문까지 걸어닫은 채 끙끙댔으니,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153). 영광된 업적도, 안타까운 실패도 모두 우리의 역사다. 미화시킨다고 해서 바뀌지도 않고, 혐오한다고 해서 사라지지도 않는다. 부모형제가 꼭 잘났다고 해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의 지나간 역사는 우리 것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한 존재 가치를 가진다. 과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돌아본다면 소중한 교훈과 함께 현재의 위기를 헤쳐나갈 열쇠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던 선조들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크나큰 용기를 안겨주게 될 것이다(154). 저자의 문제제기가 울림이 있는 것은 이러한 까닭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과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에도 유효하게 적용된다.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권력이나 지배층의 논리에 의해 모든 것들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학문의 세계에서만이라도 다양한 정보가 발생하고 유통되어야 하고 합리적으로 정보가 소통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마 대학이라는 영역 밖에서 학문하는 자로서 저자 역시 크게 절망하고 안타까워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애틋한 마음이 더욱 공감되는 이유. 이청은 우리 나라의 물고기를 중국 문헌에 나오는 물고기와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다가 잘못된 추론을 펼치게 되었다. 사실 우리 나라의 생물을 중국 문헌 속의 생물과 비교하려 한 사람은 이청뿐만이 아니었다. 과거 대부분의 학자들은 언제나 중국 문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를 보였다. 자국의 생물을 논하는 데 있어 외국의 문헌에 지나친 권위를 부여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국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나는 산물이 틀리고, 같은 종이라도 다른 모습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다양한 기후대를 갖고 있는 중국과 우리 나라의 생물상이 큰 차이를 보이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 문헌에 나오는 이름들을 우리 나라에서 찾아보려는 노력은 오랜 세월 동안 줄기차게 시도되었다.
[덧붙임] 3권에도 역시 『현산어보』와 다양한 고서들을 통해 해양생물들을 고증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청어와 관련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밤새는 줄 모르고 이어지는 청어 이야기는 과메기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왜냐? 과메기가 바로 청어를 말린 거니깐. 청어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어두고 얼렸다 놀렸다 하면서 자연 건조시키면 적당히 발효가 진행되면서 맛깔스런 과메기가 완성된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대량 생산을 위해 선택한 방식이라고 하고 원래 과메기를 만들던 전통 방식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그 설명을 위한 묘사가 정겨우면서도 군침을 돌게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과메기는 임금의 수라상에 오르는 진상품인 동시에 가난한 서민들의 기호식이기도 했다는데 적어도 이 책을 통해 볼 때 저자 이태원이라는 사람 역시 과메기 같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모두가 좋아할 만한 사람. 모두를 배부르게 해줄 수 있는 사람. 좋은 음식이 항상 그런 것처럼 배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도 충만하게 해주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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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산어보를 찾아서] 3권에서는 흑산도에서 발견되는 생물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마무리하고 우주 관측에 대한 것과 과거 조선에서 과학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 또한 흑산도를 벗어나서 정약전, 정약용 형제의 유배지를 탐사하는 기행문의 성격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특히 조선 후기에 많은 이들의 피를 부른 "천주교"에 대한 서술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먼저 글쓴이는 과거 대부분의 학자들은 언제나 중국 문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중국 문헌에 나오는 이름들을 우리 나라에서 찾아보려는 노력은 오랜 세월 동안 줄기차게 시도되었다고 말하고 있다.(p.47) 하지만 중국의 지식을 받아들인 것을 비판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우리 문화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던 정약전과 이청이 중국에 기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마땅히 찾아볼 만한 자료가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고 정약전과 이청을 옹호하고 있다. 또한 당시 제대로 된 정보의 공유 체계가 형성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조상들의 실학 사상이 근대 학문으로 연결되어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p.75)
이런 글쓴이의 아쉬움은 천문학에 대한 부분에서도 이어진다.(p.103~154) 특히 이미 17세기의 "케플러의 법칙"을 발표하고 이를 기초로 뉴턴이 미적분과 운동법칙을 이용하여 천체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설명해 놓은 것은 우주의 비밀을 밝혀냈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과학과 인간의 힘으로 뭐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낳게 되었고 결국 세계사를 뒤바꿀 과학 혁명을 이루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p.119) 하지만 이런 자신감은 현재에서는 많은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가치 중립적 입장에서 계속된 과학발전은 환경오염, 대량 학살 무기 계발 등 엄청남 부작용을 낳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른바 "반성하는 과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글쓴이는 본격적으로 서양과 동양의 어떤 차이가 이런 과학 발전의 차이로 이어졌는지 분석하기 시작한다. 특이한 점은 동양의 관념적인 철학이 과학의 발전을 저해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지만, 서양의 경우에는 관념적인 철학이 오히려 과학의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p.141)는 것을 글쓴이는 지적하고 있다. 예컨데 서양에서는 자연을 연구하여 그 성징을 밝혀내는 것을 피조물에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에 다가가는 수단이라고 해석해서 '신의 뜻에 다가가기 위해서' 과학에 힘을 기울였으나 동양에서는 오직 과학이란 오직 윤리 이념을 실행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윤리 실현을 위한 지나칠 목적성이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은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p.149) 이런 글쓴이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이런 점을 밝히는 것도 선조들의 업적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므로 소중한 교훈과 함께 현재의 위기를 헤쳐나갈 열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3권에서 본인이 가장 관심이 있었던 생물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전어]이다. 본인은 전형적인 도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고등어, 꽁치, 갈치가 아는 생선의 전부였는데 스타크래프트의 오영종 선수의 별명인 "가을 전어"를 통해 전어라는 생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왜 오영종 선수의 별명이 "가을 전어"인지 궁금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영종 선수도 사계절 중 가을에만 유독 성적이 좋았는데 이를 비유하여 "가을 전어"라고 별명을 부른 것 같다.
그리고 글쓴이는 흑산도에서 벗어나 정약전, 정약용 형제의 유배지를 답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들 형제의 고난의 원인이 된 "천주교" 박해의 역사와 정약용이 특별히 아꼈던 제자이면서 많은 책의 실질적인 공저자이면서 [현산어보]에 있어서 방대한 주석을 포함시킨 "이청"이란 인물의 미스터리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정약종을 제외한 정약전과 정약용은 그다지 천주교에 깊이 빠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다만 당시 지배층인 노론에서 남인 소속인 정약용을 내치기 위해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이 때문에 정씨 형제는 낯선 유배지에 고생을 하게 되었으며 정약용이 가장 아끼던 제자였던 "이청"은 70세까지 과거에 급제를 못해서 이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에는 워낙 과거제도에서 부정부패가 심했던 시절이라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급제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아마 이청도 이런 케이스였다고 생각한다.
3권부터는 좀 더 글쓴이의 생각이 많이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서양에 비해 과학 발전이 느린 동양에 대한 비판과 [현산어보]의 흔적을 쫓는데서 벗어나 정씨 형제의 유배지를 찾아가서 그들이 흔적을 되짚어 본 점은 높이 평가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제 3권에서 어느정도 [현산어보]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 되는 듯 하다. 이어지는 4권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지켜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