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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중재의 천재, 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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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의 스트라이크 부대 기습 점거 시위. 그것은 확실히 무모했다. 학생들의 젊은 혈기라고 생각해도 무모한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나는 거기서 사카모토 료마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한총련을 비롯한 오늘날의 한국은 사카모토 료마가 필요하다. 왜 그런가? 그의 탁월한 거시적 안목, 천재적인 중재감각. 그것이 필요하단 말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오늘날의 일본을 만든 메이지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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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총련의 스트라이크 부대 기습 점거 시위. 그것은 확실히 무모했다. 학생들의 젊은 혈기라고 생각해도 무모한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나는 거기서 사카모토 료마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한총련을 비롯한 오늘날의 한국은 사카모토 료마가 필요하다. 왜 그런가? 그의 탁월한 거시적 안목, 천재적인 중재감각. 그것이 필요하단 말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오늘날의 일본을 만든 메이지 유신이란 것이 사실 사카모토 료마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그의 정치적 이상은 암살 후 메이지 유신으로 완성되었고 경제적 이상은 이와사키 야타로의 오늘날 세계적인 대기업 미츠비시로 완성되었다. 놀랍지 않은가? 시바 료타로의 글들은 매우 간결하다. 그리고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탁월한 감각을 선보인다. 정말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y******a 2003.08.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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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같은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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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에서 드디어 도사의 요시다 도요가 타케치 한페이타 일행에 의해 암살당한다. 료마의 닷판보다도 더 흥미가 가는 대목이랄까.   그 외 3권의 굵직한 사건이라면 데라다야사건 정도? 료마가 지바 주타로와 함께 가츠 린타로를 암살하러 갔다가 그의 제자가 되기 전까지가 3권의 내용이다.   가만보니, 이 책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서에 가까운 거 같다. 소설의 형식을 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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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에서 드디어

도사의 요시다 도요가 타케치 한페이타 일행에 의해 암살당한다.

료마의 닷판보다도 더 흥미가 가는 대목이랄까.

 

그 외 3권의 굵직한 사건이라면 데라다야사건 정도?

료마가 지바 주타로와 함께 가츠 린타로를 암살하러 갔다가 그의 제자가 되기 전까지가 3권의 내용이다.

 

가만보니, 이 책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서에 가까운 거 같다.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어서 매우 재미있는 동시에  역사적 내용이나 그에 대한 해설등이 매우 풍부해서 일본역사를 익히기에도 그만이다.

즉, 역사소설이라기 보다는 소설같은 역사서.

다른 일본 역사서에는 몇 줄로만 간략하게 소개되는 나마무기 사건도 굉장히 상세하게 풀어놓은 걸 보고 이 책을 사두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권이 기대된다.

l******2 2014.03.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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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마가 간다 3권 - 료마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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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갈수록 료마의 어떤 면이 지난 1천 년 동안 일본의 최고 지도자로 불리게 했을까 하는 것들이 차츰 드러난다. 책의 시점에서는 아직 먼 시점의 이야기이지만 불과 34살의 나이에 자객에 의해 암살당할 때까지 어찌보면 어린 나이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을 보면, 료마는 역시 타고난 인재였나보다. 그렇다고 해서 20대 초반까지의 검술 수업 외에 료마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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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갈수록 료마의 어떤 면이 지난 1천 년 동안 일본의 최고 지도자로 불리게 했을까 하는 것들이 차츰 드러난다. 책의 시점에서는 아직 먼 시점의 이야기이지만 불과 34살의 나이에 자객에 의해 암살당할 때까지 어찌보면 어린 나이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을 보면, 료마는 역시 타고난 인재였나보다. 그렇다고 해서 20대 초반까지의 검술 수업 외에 료마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 때를 기다린다면서 매일 낮잠을 자며 허송세월하는 모습도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안목이 있는 인물들은 모두 료마를 만날 때마다 모두 '큰 인물이 될 사람'임을 알아본다.


- 물 흐르는 것 같은 언변, 풍부한 내용, 기발한 논리, 료마는 크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요카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219쪽)


예로 든 '기요카와'와 같이, 료마가 만나는 여러 인물들 중에는 학문과 재주가 출중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점들을 료마는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경한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학문과 무예에 뛰어난 인재였던 다케치 한페이타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 어떤 까다로운 사람도 료마를 마주대하게 되면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마는데, 그렇게 료마에게는 지식과 지혜보다는 사람들을 따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 매력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 솔직함, 엉뚱하지만 망설임없는 행동, 그리고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다. 한 마디로 타고났다고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3권의 말미에서 료마는 그의 동문인 주타로와 같이 가쓰 가이슈라는 바쿠후의 관료를 암살하러 가지만, 태연하게 그들을 맞이하는 가쓰는 료마가 예상했던 대로 카리스마를 지닌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미국과 영국, 러시아를 포함한 세계정세의 움직임과 그당시 바쿠후 말기의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존왕양이 운동의 실상에 대해 가르침 받으면서 료마는 그 자리에서 가쓰에게 스승이 되어줄 것을 청한다. 그것은 료마의 진심이기도 했지만, 가쓰를 더 위험한 인물이라 생각하고 칼을 뽑아 그를 죽이려 했던 주타로를 사전 제지했던 임기응변이기도 했다. 이제 료마는 세계의 흐름과 일본의 미래에 대해 더욱 더 명확한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 료마는 싫다고 했으나 오하쓰가 하도 조르는 바람에, 그렇다면 어렸을 때 하던 버릇을 보여주겠다면서 우는 흉내를 냈다. 그러나 흉내를 내는 동안에 점점 슬퍼져서 정말로 울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당황할 만큼 동심 그 자체로 돌아가고 말았다. 오하쓰는 감격했다. (59쪽)

y*****p 2012.07.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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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탐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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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마는 여전히 세상 속에서 멈추어 있다. 둘러보고만 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면서, 주위의 지사들이 목숨을 던지고 버리고 있음에도 살피고 있다. 3권은 여전히 그러한 상태이다. 일본이 보인다.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서 그게 좋다. 일본이 좋아진다거나 더 싫어진다거나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일본에 대해, 일본 역사에 대해, 일본인에 대해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된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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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마는 여전히 세상 속에서 멈추어 있다. 둘러보고만 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면서, 주위의 지사들이 목숨을 던지고 버리고 있음에도 살피고 있다. 3권은 여전히 그러한 상태이다.

일본이 보인다.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서 그게 좋다. 일본이 좋아진다거나 더 싫어진다거나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일본에 대해, 일본 역사에 대해, 일본인에 대해 전보다 조금 더 알게 된 것만 같아 이 책을 읽는 내 마음이 좋은 것이다. 요즘은 어떻게 된 것인지 앎의 기쁨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감동은 줄어들고 앎이 커지는 나이도 있는 것일까.



256-257
양이란 개항을 요구하는 외국을 배척하자는 것으로 과격분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외교를 담당하는 일본의 유일한 정부인 도쿠가와 바쿠후는 외국의 강요에 못 이겨 잇따라 항구를 열어주고 있었다. 이에 대해 재야 지사들이 바쿠후에 반감을 품게 되었고, 이것이 점차 바쿠후 타도운동으로 번져나간 것이다.

그렇다면 양이론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이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 하나는 미토 학을 통해 당시 교양인의 상식이 되어 있던 신국 사상(일본은 신이 기초를 닦고 지켜온 나라라는 사상)이고, 또 하나는 고메이 천황 자신의 정치적 무지에서 나온 외국에 대한 공포, 외국인 혐오 사상을 지사들이 동정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당시의 일본은 '사무라이(무사)'의 나라였다. 이들 특유의 윤리관과 독특한 기개가 '오랑캐를 무찔러야 한다'는 사상이 된 것이다.

양이론이 크게 비등하여 때로는 지사가 외국인을 살상하는 사건도 종종 발생했는데, 당시 세계의 유력 신문에서 '로닌'이란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할 정도였다.

사무라이, 하라키리(할복) 같은 말은 지금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일본인에 대한 일종의 경외감, 때로는 공포감을 인상짓게 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이 양이론은 일본 역사에 있어서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 이웃나라인 중국은 무력을 배경으로 한 영국의 식민지 정책 때문에 국가의 체통을 잃을 정도로 유린되었고, 한편으로 러시아도 노골적으로 영토적 야심을 드러냈다. 만약 양이를 부르짖는 기개가 없었다면 일본이 오늘날 어떻게 되었을지 전혀 알 수 없다. 열강이 중국과는 다르게 일본을 취급하기 시작한 것은 우선 사무라이와의 육전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함포사격이라면 몰라도 장기적인 육전에는 승산이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일본관은 바쿠후 말기만이 아니라, 이보다 3백 년 전인 센고쿠 시대 초기에 가고시마에 상륙한 최초의 선교사 프란시스 하비에르 역시 똑같았다. 상륙한 직후 예수회에 보고서를 보내 "비크리스트교 국가 중에서 일본인을 능가하는 국민은 보지 못했다. 예의가 바르고 선량하나 열네 살 때부터 쌍칼을 차고 모욕이나 경멸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고, 또 일본 정복의 야욕을 가진 스페인 국왕에 대해서는 "그들은 아무리 강력한 함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페인 인을 몰살시킬 것이다"라고 충고했다.

바쿠후 말기에 들어온 외국 세력들도 이와 똑같은 것을 실감한 셈이다.
료마가 간다 3

YES마니아 : 로얄 j***6 2011.05.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