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매기 리틀턴은 새이기 때문에 당연히 날 수 있다. 아니 얼마전 까지 당연히 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따뜻한 나라를 찾아 친구들과 비행을 준비할 무렵 자신은 친구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장기간 비행이 두려워서 날개가 잠깐 놀란걸거야. 내일이면 다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날 수 있을거야. 하지만 내일도 그 내일도 또 내일도 여전히 날개가 말을 듣지 않았다. 퍼덕일 수는 있는데 몸이 떠오르지 않았다. 새가 어떻게 날 수 없게 될 수 있지? 창피해서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고 미치겠네! 시간이 갈 수록 리틀턴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훨훨 날아다닐때는 보지 못했던 조그맣고 사소한 변화들에 흥미가 생겼다. 눈부시게 아름다룬 보라색 꽃이 피는 것을 감상하고 주변에 어지럽게 흩어진 쓰레기들 중 쓸모있는 것들을 모으고 게를 친구로 사귀면서 점점 앞만보며 날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 이렇게 날개를 접고 주변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쯤 리틀턴은 거짓말처럼 다시 날 수 있게 된다. 이전보다 훨씬 넓어진 마음으로 튼튼해진 날개로 가벼워진 몸으로 비상한다. 아니 어떻게 내가 시험에서 떨어질 수 가 있지? 어떻게 그가 내 곁을 떠나버릴 수 있는거지? 정말 확실한 아이템이었는데 어떻게 실패할 수 있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 좌절하게 된다. 아니 꼭 좌절의 순간이 아니라도 앞만보며 달려가는 사람들은 못보고 지나치는 행복한 순간들이 많을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자. 삶이 행복해지는 짧은 동화와 함께. |
|
약간은 융심리학을 쉽게 적용해서 기획한 책처럼 느껴지는데...
꽤 괜찮은 책이다.
내가 내 그림자를 보고난 뒤에 이 책을 읽었기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참 좋은 책이다.
문제는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를 본 적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림자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별이 한 없이 추락할 것이다.
갈매기 조나단 이야기가 십대 초반에 읽을 책이라면 이 책은 영혼의 어둔밤을 지난 뒤에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번역이 좀더 좋을 수도 있었는데 좀 아쉽다는 느낌이어서 별이 4개다. |
|
예쁜 그림이 많고 글이 적은 우화류라 리뷰가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하나도 없다. 나로선 실망인 것이, 다른 독자들이 과연 이 책을 읽고 '감동적이다'라고 말하는 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론 감동적인 우화 한 편이라야 하는데 사실 나로선 읽고나서 별 감동이 없어 당황스럽다. 어느 날 갑자기 신체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심리적인 요인으로 날지 못하게 되는 작은 제비갈매기. (그럼 무엇을 먹고 사는 걸까?) 아름다운 자줏빛 꽃과 친해보고 싶지만 자격지심에 말도 못 붙인다. 그러다 갈매기에게 잡아먹힐뻔 한 달랑게를 도와주면서 우정을 나눈다. 그런 달랑게가 어느 날 보이지 않게 되고.. 작은 제비 갈매기는 자신의 그림자가 날고 있는 동안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날게 된다. 아쉬운 것은 그런 깨달음이 글을 읽는 내겐 리틀 턴에게만큼 감동적으로 와닿진 못했다는 점이다. 그림자는 안보여도 거기 있다, 달랑게도 안보여도 거기 있을 것이다. 그것과 제비갈매기가 다시 날게 되는 건 어떤 관련이 있을까? 다만 나도 달랑게를 그리워하게 만든 건 분명 작가의 능력일 것이다. 귀여운 멜빵 바지 입은 아이 같은 이미지의 달랑게가 사라지다니.. 덧붙여 번역에서 아쉬운 점은 제비갈매기와 달랑게 사이의 대화를 존칭이 아닌 친구 사이의 어투로 하는 게 훨씬 나았으리라는 것과 주인공의 이름도 '자줏빛 꽃','달랑게'처럼 그냥 '작은 제비갈매기'로 하는 게 더 가깝게 와 닿았을 것이라는 점 두 가지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해변에 서서 내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달랑게가 모래밭 저편, 모래 언덕 가장자리에 나와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놀라웠다. 나는 생각했다. 없으면서도 있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