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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그 범죄의 기억을 안고 사는 사람은 어떤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는지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듯이 범죄도 늘 되풀이된다. 그리고 피해자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거나 죽거나 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 사회의 어둡고 불편한 진실이다. 기억하기 싫은 밤의 기억들, 사악한 기억이 이제 막 펼쳐지려 한다.
에드거상, 앤소니상 수상작가 토머스 H. 쿡이 단순한 이야기를 썼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폴 그레이브스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하는 이야기와 그에게 의뢰되는 50년 전에 살해당한 한 소녀의 사건을 상상을 더해 이야기로 재구성해달라는 이야기는 처음에 내겐 생뚱맞게 다가왔다. 그리고 폴 그레이브스가 그 사건에 다가가는 과정이 너무 밋밋해서 작가는 도대체 뭘 얘기하고 싶은걸까를 과도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실 마지막까지 다 보면 이야기는 간단한데 말이다.
너무 일찍 부모를 잃은 남매, 외떨어진 시골 농장에서 남매만 산다는 자체가 위험 그 자체인데 그 시절, 그 시골에서 범죄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없었다. 그렇기에 어린 남매만 살도록 방치한 것이겠지. 또한 남매도 둘이 살아도 무방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너무도 안이했다. 범죄는 일어났고 누나는 잔인하게 동생의 눈앞에서 살해당했다. 남동생은 누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19세기를 배경으로 범죄소설을 쓰는 작가가 됐다. 하지만 책 속에서도 악당이 탐정보다 강해서 언제나 탐정은 곤욕을 치르고 악당은 유유히 빠져나간다. 그때 그랬던 것처럼.
이런 공포를 억누르고 자살만을 꿈꾸며 금욕적 삶을 사는 그레이브스에게 리버우드의 대저택에서 앨리슨 데이비스 부인이 사건을 의뢰한다. 자신의 저택에서 살던 자신의 친구와도 같던 한 소녀 페이예가 살해된 사건을 좀 더 그럴듯하게 소설처럼 꾸며 주기를 바라는 이상한 의뢰다. 범인이 누군지도 안다. 하지만 그 범인은 재판을 받지 않고 자연사했다. 이제 죽음을 눈 앞에 둔 페이예의 어머니를 위해 그녀가 납득할만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에 그레이브스는 누나가 생각나고 과거의 공포로 돌아가게 될 줄 알면서도 그 의뢰를 맡아 사건을 다시 꼼꼼히 조사한다.
사람들은 상처를 헤집지 말라고 말한다. 그래봐야 좋을거 하나 없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잊어버리고 삶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러기 쉽지 않다. 선한 사람들은 늘 죄책감을 지고 산다. '내가 만약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내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을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그래봐야 범죄를 저지른 악마들은 죄책감이라는 것, 양심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서 범죄를 또 저지르며 살다 잡히고 나와서 또 저지르고를 반복하는데 말이다.
작품은 누가 페이예를 죽였는가와 왜 그레이브스는 누나의 기억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인가의 두 축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시점이 1940년대에서 1960년대, 그리고 사건을 생각하다 자신의 책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19세기까지 왔다갔다 한다. 그러면서 변하지 않는 것은 범죄라는 공통점, 피해자의 고통, 은폐되고 왜곡된 진실이다. 그것을 작가는 적절하게 잘 배치하고 상충되지 않게 잘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은 조금 당황스럽게 다가온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게 불편하고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이라 회피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레이브스가 침묵을 택했듯이 말이다. 리버우드 대저택의 여주인은 살인사건 이후 평화롭던 그곳이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곳이 평화롭다 생각한 것이다. 이미 누군가에게 그곳은 절대 평화롭지 못한 곳이었으니까. 결국 피해자가 아닌 사람은 피해자의 입장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작품 속에 이런 실험 내용이 등장한다.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을 마주보게 앉혀놓고 아이들의 한쪽 팔만 자유롭게 해서 전기 스위치를 누를 수 있게 한다. 아이가 스위치를 누르지 않으면 아이에게 전기가 흐르고 스위치를 누르면 부모에게 전기가 흐르게 된다. 그런 공포속에 아이들은 모두 스위치를 누르게 된다는 것이다. 공포는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순자의 성악설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공포에 약하다. 그러니 그 밤의 기억들이 되풀이되는 작금의 상황들은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인가 말이다.
단순한 공포를 공포 그 이상으로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폴 그레이브가 쓴다는 소설은 마치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를 연상시킨다. 시골이 무서워 뉴욕으로 나온 폴 그레이브스, 하지만 그는 늘 높은 빌딩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생활하고 뻔뻔하고 무지한 사람들 빼고는 모두 저마다 고통과 절망이라는 삶의 끝자락에 감싸여 살아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 여인이 등장해 그와 같이 사건을 풀며 그의 삶에 온기를 지피려는 듯하다. 피해자라고 꼭 피해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건 억울한 일 아니냐고 말이다. 작품 속에서라도 악당을 잡지 못하고 죽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니까.
삶에 희망이 있어 사는 건 아니다. 만약 폴의 누나 그웬이 지금 그에게 나타난다면 너라도 내 몫까지 잘 살아달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사는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책임감으로. 그 기억들을 짊어지고 말이다. 잔인하다 하지 말라. 네 침묵은 그보다 더 잔인했다. 인간이 공포라는 거대한 정신적 고통속에서도 과연 삶을 이어가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살아가야 한다면 왜 살아야하는지에 대해서도 대답을 요구하는 절망과 희망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포 그 이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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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시작되면 잠시 헷갈릴 수밖에 없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것이 폴 그레이브스라는 것을 알 수는 있지만 정확히 그가 무엇을 이끌어가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폴 그레이브스라는 현실의 인물과 함께 폴 그레이브스가 쏜 소설 속의 인물인 케슬러와 사이크스 그리고 슬로백 형사가 별다른 문단의 구분도 없이 등장한다. 폴 그레이브스가 초대된 리버우드에 들어가고 나서야 이런 혼란은 겨우 가라앉는다. “... 젊은 시절 그를 가끔 괴롭히던 외로움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그의 삶은 슬로백이 말한 것처럼 ‘단지 숨 쉬는 일’에 불과했다. 그런 모든 걸 생각해볼 때, 그레이브스는 자신이 초대를 받아들인 진짜 이유는 최종적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고 모든 것을 그만둘 때가 되었는지 고민하고, 마지막 결정을 내려 어두운 이야기를 꿈꾸는 작은 엔진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언젠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미 침실로 통하는 좁은 복도에 가로로 쇠막대를 매달아두었고, 밧줄도 사서 옷장 서랍 맨 위 칸에 잘 말아 넣어두었다. 어떤 의자를 딛고 올라서야 할지도 이미 생각해두었다. 마지막 숨을 토해내며 자신이 부를 이름도 알았다. 그웬.” (p.36) 그 전에는 삼십여 년 전 과거로의 플래시 백이 살짝 존재한다. 폴 그레이브스에게 벌어졌던 비극적인 일, 부모님의 사망 그리고 일 년 후에 벌어진 누이 그웬의 살해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그레이브스는 누이를 잃었고, 그것도 악마와 같은 고문 뒤의 살해라는 방식이었으며, 그는 그것을 지켜보았고, 그러나 아무에게도 그것을 말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지금 그 살인자를 케슬러라는 이름으로 등장시키는 탐정 소설의 작가로서 존재한다. “그녀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필요해요. 그래서 선생님을 초대한 거예요. 해리슨 부인의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드리려고요... 진실일 필요는 없어요. 사실 진실일 수가 없죠. 하지만 이야기는 두 가지 조건에 들어맞아야 해요. 첫째 ‘범인’은 해리슨 부인이 아는, 리버우드에 사는 사람이어야 해요. 우연히 숲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이 페이예를 죽이고 영원히 사라졌다는 식은 안 돼요... 만일 낯선 사람이 나타나 페이예를 죽였다고 한다면 해리슨 부인의 마음이 해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범인은 리버우드에 사는 누군가여야 해요. 경찰이 쓰는 말로 ‘범행을 저지를 기회’가 있는 누군가여야 한다는 뜻이에요.” (pp.57~58)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리버우드의 저택에서 발생한 오십여 년 전의 사건에 대한 의뢰가 들어온다. 살인범을 찾아달라는 의뢰라기보다는 살인범에 대해 써달라는 의뢰에 가깝다. 그레이브스는 망설였지만 받아들였다. 그는 리버우드에 머물며 그 당시의 인물들을 차례로 만나고, 만날 수 없는 이들은 서류로 살핀다. 차례대로 의심하고 차례대로 그 의심을 허무는 과정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레이브스는 원고를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을 타자기 글자판에 올려놓은 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영웅이 곤경에서 벗어날지 고민했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상세한 부분을 묘사하는 일이 가장 짜증스러웠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묘사하고자 하는 것은 마음과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었다. 그가 쓰는 연작 소설을 계속하려면 슬로백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문제는 어떻게 빠져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p.73) 그레이브스는 오십여 년 전의 사건을 다루며 동시에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 속의 미궁 또한 헤쳐 나가야 한다. 삼십여 년 전에 자신에게 있었던 끔찍한 사건과 끊임없이 오버랩 되는 오십여 년 전의 사건에 감추어진 비밀을 파헤치며 동시에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이 처한 곤경을 처리해야 한다. 소설은 이 모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얽히고설켜 있는 문제들을 차례대로 해결해간다. “결말이 바뀌었다.” (p.465) 그리고 그 과정의 끝에 어쩌면 폴 그레이브스의 구원도 가능했으리라 넘겨 짚을 수 있다. 세 개의 시간대에 존재하는 세 가지의 사건은 그 사건을 구성하는 인물의 관계도가 정교하게 겹치면서 존재한다. 폴 그레이브스는 그리고 작가 토마스 H. 쿡은 이 세 개의 시간대를 넘나들면서, 그리고 세 가지의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아우르면서 스스로를 구원하고 독자들을 옭아맨다. 토마스 H. 쿡 Thomas H. Cook / 남명성 역 / 밤의 기억들 (Instruments of Night) / 시작 / 470쪽 / 2008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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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의 잔인한 범죄자 케슬러와 그 범죄자의 영향아래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죄를 짓고 있는 심약한 추종자 사이크스 그리고 이 들을 죽도록 잡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쫏고 있는 형사 슬로백 이런 세 사람을 주인공으로 범죄소설을 쓰고 있는 폴 그레이브스는 어릴적 너무나 강렬하고 잔인한 범죄의 희생자였기에 오늘도 자신의 감정을 깍아 먹어가면서도 소설을 쓰고 있지만 이젠 자신의 곁에 누구도 없는 삶에도 범인을 쫏는 소설을 쓰는것에도 지쳤다.이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자신 역시 죽을것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런 그에게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마을 그리고 그 마을에 오래동안 뿌리 내리고 살아온 지주가문 그 가문을 지키는 주인인 앨리슨 데이비스는 그에게 50년전 이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진상을 그럴듯한 이야기로 꾸며줄것을 요청한다. 평화로운 여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 소녀가 숲으로 걸어들어가고 그 모습이 그녀의 마지막이자 모두의 마음속에 평화가 끝난 순간이었고 아름답고 착하기만 했던 그녀의 죽음은 상처로 남는다. 범인은 쉽게 잡혔지만 기소조건의 불충분으로 풀려나 곧 병사하게 되고 이렇게 사건은 끝난듯하나 사건의 진상에 의심을 품은 사람이 있다.그 중 한사람이 바로 죽은 소녀의 엄마 이제 모두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기위해 그 날의 진상을 모두가 납득할수 있는 스토리로 꾸며주길 원하는 주인과 그 주인의 요구에 맞춰 그날의 진상을 캐기 시작하는 그레이브스는 캐면 캘수록 점점 의문에 빠져들어가는데...
심문을 읽었을땐 그저 괜찮다 그랬는데 붉은 낙엽으로 새롭게 자각하게 된 토마스 쿡의 매력에 빠져 뒤늦게 산 책 중 하나가 바로 이 책 `밤의 기억들`이다 주인공이자 잔인한 범죄의 희생자인 소설가 폴은 그가 느끼거나 보거나 하는 모든것에서 상상을 발휘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진 소유자지만 어릴적에 자신이 겪은 일로 인해 모두에게 등을 돌리고 주변에 벽을 쌓은채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외롭고 병든 남자이다. 그런 그의 병적인 증세는 그가 만들어낸 범죄 소설의 악당이 자신이 겪은 범죄의 진범과 같은 이름이란것을 보면 알수 있듯이작품을 쓸때마다 그가 겪었던 그때 당시의 일과 뒤섞여 하루하루 작품을 쓰는 일이 자신에게 가하는 고문과도 같지만 이런 고행을 이젠 멈출수가 없다.죽는것 외엔... 시리즈를 낼 때마다 킬러 캐슬러를 쫏지만 늘 잡을수 없어 눈앞에서 놓치고 하루하루 늙어가며 지쳐 허물어지는 슬로백 이란 형사는 그레이브스 자신이라고 볼수 있는데 늘 잡고 싶어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캐슬러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에서 무언가 그에게 비밀의 냄새를 맡을수 있는 훌륭한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설속에 소설을 쓰는 작가와 50년전의 사건이 뒤섞이고 그레이브스가 어릴적 눈앞에서 겪은 후 누구에게도 말할수 없었던 그날의 진실이 마구 뒤섞여 그레이브스의 혼란한 정신상태를 보여주는데 그날밤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지? 눈앞에 보이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의 한꺼풀 속에는 얼마나 많은 추악한 진실이 숨어있는지...눈에 보이는 것이 다 가 아니라는 것 새삼 깨닫게 해준다. 사건을 보고 침묵할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도 공감이 가고 그레이브스가 겪었던 처절하리만큼 고통스런 아픔과 피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 마지막 결말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이젠 그도 조금은 편해지기를 바란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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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인상적인 소설입니다. 이 책은 장르소설도 문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공포소설도 이처럼 슬플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좋은 문학이 그렇듯 이 책엔 인간본성의 바탕을 싸고 도는 어떤 슬픔, 슬픈 서정이 흐릅니다. 작가란 존재의 운명, 이야기를 지어내는 자가 감당해야할 천형 같은 것을 그레이브스에게서 봅니다.
왜 쓰는가. 왜 이야기인가.
이런 의문에 그레이브스가 해답을 주었습니다. 물론 이 해답은 왜 쓰는가, 왜 이야인가, 라는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답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레이브스의 특수성 즉, 그의 현실이 그 어떤 공포소설보다 더 끔찍하다는 측면, 그래서 그는 이야기 속으로 도피할 수 밖에 없다는 측면이 너무나 설득력있게 다가오기에 그레이브스는 그자체로 제 의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그레이브스에겐 그가 지어내는 '이야기 속 세계가 거의 즉각적으로 눈앞에' 실현되며 그 환상의 세계는 순식간에 현실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는 불분명하며 오히려 그는 그의 이야기 안에서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토머스 쿡은 정말 멋진 실력으로 두 세계를 버무려놓았습니다. 그레이브스는 그가 쓰고 있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밝혀지는 순간, 자신도 청중과 함께 놀'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는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습니다.
딸을 잃은 해리슨 부인, 그녀가 원한 것도 이야기였습니다. 왜 내 딸인가? 왜 그 아이가 죽어야했을까? 그녀는 답을 원했습니다. 그녀에겐 '전혀 다른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레이브스는 봅니다. 어린 소녀 하나가 숲이 시작되는 곳에 서 있는 모습을요.
그렇게해서 <밤의 기억들>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50년 전의 살인사건은 이렇다할 결말을 보지 못하고 끝이 납니다. 독서의 초점을 범인에게 맞추고 있던 독자라면 맥이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레이브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했으며, 해리슨 부인은 왜 내 딸인가, 라는 의문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야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이 두꺼운 책속에 녹아있는 삶의 과정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그레이브스는 페이예의 죽음을 쫓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상처를 치료했습니다. 페이예는 곧 그의 누나였습니다. 그는 곧 사이크스였습니다. 자살소동이 있긴 했으나 결국 그는 치유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믿고싶고, 바로 이 희망이야말로 사람이 삶을 이어가는 이유입니다.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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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범죄자의 손에 죽어가는 누나 그웬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폴 그레이브스는 무력했던 자신을 저주하며 평생을 그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악의 화신인 케슬러와 그를 쫓는 형사 슬로백을 등장시킨 스릴러 시리즈를 통해 작가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아이러니한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그에게 50년 전에 벌어진 의문의 죽음의 진상을 조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16살의 나이에 사망한 소녀 페이예의 친구이자 리버우드 대저택의 여주인 앨리슨 데이비스는 폴에게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50년 전 페이예의 죽음의 진상을 파헤쳐줄 것을 의뢰합니다. 경찰마저 포기했던 소녀의 죽음을 조사하면서 폴은 같은 또래에 죽은 누나 그웬의 마지막 모습은 물론 살인자의 목소리를 수시로 떠올립니다. ![]() ‘채텀 스쿨 어페어’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토머스 H. 쿡의 작품입니다. 단 한 편이긴 해도 나름 ‘쿡 맛보기’를 한 상태라 결코 쉽게 읽힐 작품이 아니라는 점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였습니다. ‘밤의 기억들’은 세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전개시킵니다. 메인 스토리는 폴이 앨리슨의 의뢰를 받아 50년 전 리버우드에서 발생한 페이예의 죽음의 진상을 조사하는 것이지만, 어린 시절 누나의 참혹한 죽음에 관한 폴의 악몽, 그리고 소설가로서 그가 창조한 악마 케슬러에 관한 묘사가 적잖은 분량을 차지하며 메인 스토리와 함께 나란히 진행됩니다. ‘밤의 기억들’은 다른 장르물에 비해 비교적 집중력이 필요한 작품인데, 이 세 가지 이야기가 별개의 서사가 아니라 한 몸통처럼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리버우드 저택은 누나 그웬이 살해당한 농장처럼 고립된 곳에 자리 잡고 있고, 그 첫인상은 소설 속 악마 케슬러의 저택 말버나처럼 음습하고 어두컴컴할 뿐입니다. 또 16살에 죽은 페이예는 누나 그웬을 계속 연상시키는데, 그로 인해 폴의 조사는 중반부까지도 제대로 된 진전을 이루지 못합니다. 페이예의 죽음을 조사할수록 누나 그웬의 마지막 모습과 비명 소리가 쉴 새 없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또한, 페이예 살해 용의자들과 누나 그웬을 죽인 살인자와 자신의 소설 속 악마인 케슬러가 마치 한 몸에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처럼 번갈아 폴의 뇌리에 떠올라 그를 희롱하거나 정신을 갉아먹는데, 그러다보니 끊임없는 악몽 속에서 폴은 현실과 환상을 혼동하기도 합니다. 마치 자신은 번번이 범인을 놓치는 소설 속 형사 슬로백의 분신인 것 같고, 악의 화신 케슬러와 그의 앞잡이 사이크스는 현실 속으로 뛰쳐나와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실체를 지닌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악행을 저질렀던 폴의 소설 속 악마 케슬러는 누군가를 완벽하게 통제함으로써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거나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게 조종하는 힘을 갖췄던 존재입니다. 실제로 그런 존재에게 누나를 잃은 남자가 소설가가 되어 지상 최고의 악마 캐릭터를 창조했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것은 누나의 죽음에 관한 악몽을 지워내고 누나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내려는 그만의 의식이며 통과의례입니다. 또한 그런 그에게 50년 전에 벌어진 의문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미션이 주어진 것은 어쩌면 운명 같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세 갈래의 이야기가 한데 뒤섞여 진행되는 ‘밤의 기억들’은 설정만으로도 독자의 마음을 짓누르고도 남을 만큼 그 무게감이 압도적입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까지 다 읽은 후에도 기억과 마음에 남는 여운의 대부분은 리버우드 저택의 비극의 진상보다도 폴의 삶의 궤적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호할 필요도 없고,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할 필요도 없어서 45살이 되도록 결혼도, 연애도, 아이도 없이 홀로 된 삶을 영위해왔고, 조용하거나 외떨어진 곳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여 사람들로 붐비는 뉴욕에 둥지를 틀곤 끝없는 사람들의 홍수 속에 자신을 숨겼으며, 어디선가 덫이 튀어 오르거나 그물이 떨어지거나 익명의 손아귀에 붙잡히는 공포 때문에 잠시라도 멈춰 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여야 마음이 놓이는 남자. 차라리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 축복일 수 있겠다고 느껴질 정도로 숨 막히듯 고통스러운 일상을 견뎌야 하는 폴의 캐릭터가 독자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가 리버우드 대저택에 머물며 50년 전 페이예의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은 단서와 탐문을 통해 비밀과 거짓말이 폭로되면서 긴장감 있게 전개되고, 예상치 못한 대과거의 사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반전을 거듭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폴의 캐릭터가 워낙 인상적인 탓에 정작 사건과 스토리에 대한 기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 이런 이야기를 읽는 행위가 무척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손이 가는 이유는 뭔가 ‘진짜배기’를 읽은 것 같은, 날것 같지만 진정성으로 가득 찬 서사를 접한 듯한 묘한 만족감 때문입니다. ‘채텀 스쿨 어페어’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걸 떠올려보면 아직 읽지 못한 토머스 H. 쿡의 ‘심문’이나 ‘붉은 낙엽’ 역시 큰 기대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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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457페이지, 23줄, 25자.
문득 표지의 사진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구글은 이미지로 검색이 가능하니 쉽더군요. "George Verberne"이란 작가가 찍은 사진입니다. "Karin Slaughter"라는 작가의 책 [Onaantastbaar](2007년 7월)의 표지로 사용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어디에도 그런 정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단도용이라고 해야겠군요.
글은 그리 긴 편이 아니지만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주인공 폴 그레이브스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접할 때마다 상상을 하기 때문에 잠시만 방심하면 이게 (소설상에서)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그레이브스의 상상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그런 경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레이브스는 심하기 때문에 방해가 되는 것이지요.
폴 그레이브스는 앨리슨 데이비스로부터 제의를 받습니다. 50년 전에 발생했던 페이예 해리슨의 살해사건을 추리작가로서의 시점에서 재조사해 달라고 말입니다. 폴의 누나 그웬은 17살 때 케슬러에게 강간 살해당합니다. 다양한 고문을 받은 다음이었고, 그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페이예 사건을 추적하면서 수시로 두 사건이 교차해서 상상됩니다. 동시에 묵게 된 엘리너는 연극 관계자로서 상상하는 걸 즐깁니다. 또한 직관적이여서 당시 드러나지 않았던 많은 행적을 추적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상상에 의해 과거의 등장인물들은 이런 사람이 되었다가 저런 사람이 되었다가 하게 됩니다. 즉, 원래의 (남들이 아는) 모습과는 다른 행동을 (상상 속에서) 하게 됩니다. 이는 마지막에 폴에 대한 재평가를 할 때 적용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폴에게는 상상 속 세상이 아니었지만.
등장인물(무순)
140808-140808/14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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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인 폴 그레이브스는 어린시절 겪었던 공포스런 기억을 간직한체 평생을 과거의 기억에 갇혀 지내는 무척이나 외로운 존재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리버우드지역의 대저택의 여주인인 앨리슨 데이비스라는 여자의 과거 살인사건에 대한 작가적 상상과 이야기를 꾸며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이렇게 50년전의 16세의 어린소녀의 살인사건에 대한 과거로의 회귀가 이루어지는데.. 진실은 과연 무엇이며 왜 살해되었을까?....주위 인물들의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면서 밝혀지는 엄청난 진실...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요...진실은 언제나 우리곁에 있다는것을.....ㅋㅋㅋㅋㅋ
폴 그레이브스가 겪었던 과거의 엄청난 공포로 인한 고립감에 나 또한 감정이입이 되어버렸다. 읽는 내내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상상의 공포만으로도 상당히 힘들었다..그렇게 소설은 극중 리버우드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극중 작가의 과거 기억을 순간순간 되살려내며 독자로 하여금 그당시 폴 그레이브스가 겪었던 현장을 직접 상상할수있는 공포의 집(?)을 선사한다.......난 무서웠다..상상만으로도 무척이나 무서웠다..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 작품은 호흡이 길다..여러가지가 맞물려 구성이 이어진다..폴 그레이브스의 극중 작품의 주인공들인 케슬러와 사이러스 그리고 슬로백을 등장시켜 과거사건에 대입해 작가의 상상력을 표출하고 현재의 주변인물의 도움(?) 그리고 과거의 살인사건을 기준으로 50년전 발생한 사건에 대한 일지와 주변인물들의 탐문과 사진만으로 모든것을 밝혀낸다..여느 탐정소설이나 스릴러 소설과는 다르게 주변인물의 살인사건 당시의 정황과 심문일지와 내용은 각기 내용을 달리하며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시한다...결국 오리무중이다....하지만 진실은...
읽는내내 작가의 상상력과 맞물려 나만의 추리로 상상한 부분이 어느정도 맞아떨어졌다.(누가 범인일까?...이사람이 아닐까?)..하지만 밝혀진 진실은 생각보다 당황스러우며 조금은 황당하기도 했다...하지만 또 역시 여기서 끝일까? 아니다...이책은 덮는 순간 당신은 분명히 이렇게 생각할것이다...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공포스러우며 암울했던 밤의 기억들이지만 꺼져가는 불씨에서도 새로운 불길은 일어난다.. 누구에게나 공포의 기억은 당신을 가두지만 그 공포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언제나 희망은 있다...난...뭐 그렇다...
토마스쿡의 이전 작품들은 읽어본적은 없다..이 소설을 보면서 그의 또다른 작품인 심문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다시 나를 기분나쁘게(?) 만들 소설이 있음에 난 행복하다.. |
![]() 본서 <밤의 기억들>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자신의 누나를 잔인하게 살해당한 현장에 있었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기억 속의 살인자가 등장하는 소설을 써나가며 그 자신의 생을 소진해 간다. 생을 스스로 마감하기로 마음 먹은 어느 날, 50년 전의 살인사건을 다시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데, 그 조사과정이 진행될수록 그의 신경증은 더욱 심해져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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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그레이브스는 고향, 리버우드에서 부자 데이비스한테 초대를 받는다. 주로 추리소설을 쓰는 그는 주인공 슬로벡을 통해 범인 케슬러를 20년동안 찾아다닌다는. 리버우드에 오면서 와서도 호수를 바라 보거나 하면서도 소설생각을 하고 이렇게 바꿔볼까 저렇게 바꿔볼까 한다. 전에 소녀가 죽었다는 데.. 운전기사가 머무는 오두막에서 여기저기 픽업을 와주고 끝... 460페이지에서 250페이지넘어 가는 데 뭐 소설인 지 전혀 모르겠다.책 덮었다.지루하다.. 역시 제목과 표지가 그럴듯한 것은 이유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