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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가 새로운 명문학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존의 교육이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수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본에 있는 키노쿠니 어린이학교의 교장으로 있는 저자가 서머힐의 정신을 이어받은 자유주의 교육에 대해서 주장하는 바를 펼치고 자신이 학교에 적용한 바를 펼쳐 보인다. 책이 주장하는 바는 제목 그대로 '자유와 교육이 만나면 배움이 커진다'는 내용이다. 그는 세계 여러 곳의 학교들을 스스로 찾아다니며 서머힐의 정신을 이어받은 학교들의 차이점과 발전상에 대해 연구한다. 그리고 드디어 일본에 니일 서머힐의 자유정신을 이어받은 교육의 장을 마련한다. 그는 기존의 교육이 가지고 있는 변하지 않는 상식 몇가지를 정리하고 그것을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교육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꾀한다. 그 중 첫번째가 바로 교사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자기결정이다. 다음은 개성존중. 마지막으로 체험학습이 있다. 이러한 기본틀 안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하루일과를 결정하고, 스스로 학습여부와 정도를 결정하고, 아이들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수행해간다. 학습에 대한 정의도 이 학교에서는 다르다. '책을 통해 지식을 흡수하기보다, 손이나 몸을 써서 실재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스스로 지식을 창조하는 일을 중요시 한다.(p.98) 학생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교사들 스스로도 경력을 떠나서 모두가 똑같은 봉급을 받으면서 자신이 해야 할 바를 한다. 아이들은 교사를 친구처럼 여기고 교사에게 심지어 충고하는 일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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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한권의 책을 읽었다.
작년 키노쿠니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한국을 방문, 강의를 한다는 말을 듣고 갔다가 사뒀던 책을 꺼내 들었는데, 때가 때이니만큼 관심이 급증해서인지 며칠 새 재미있게 읽었다. 요즘 지역 청소년을 위한 방과후 교실을 구상하면서,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으로 접근해야 할 지 고민 및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이 학교를 직접 다녀온 대안학교 교사인 후배의 말로는, 아주 이상적인 학교이지만 학부모 대부분이 의사, 교수 등 소위 말하는 있는 집 자식들이라,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우리의 "학교(전통적 의미에서의 학교는 아니지만)"와는 전혀 다를 것이지만, 그래도 이미 오랫동안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고민하시고, 오랜 기간동안 준비하셔서 결국 잘 운영하고 있는 학교의 이야기를 알아서 나쁠 건 전혀 없다는 생각이다.
이 학교는 아이들의 자발성, 개성, 그리고 체험학습을 중요시 한다. 즉 획일화 되고, 선생님이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주입식 교육에 반대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게 되고, 그러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 나가고, 직접 여러가지 것들을 손으로 발로 만들어 나가게 되어 즐겁게 학교를 다니게 된다. 정말 나도 다니고 싶은 학교이다.
키노쿠니 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이 학교를 다니면서 어떤 힘이 길러졌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 행동하는 힘, 자기 의견을 가지는 힘, 생각하는 힘, 의견을 듣는 힘,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힘
우리 모두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이 사회를 즐겁고 넉넉하게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키노쿠니 교장이신 호리 선생님이 졸업식에서 아이들에게 당부한 얘기 중 가장 마지막으로 끝을 맺고자 한다. 가히 감동적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져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도 모든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의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진짜 당부하고 싶어. 부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스스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과 서로 어울려 즐겁게 살아가긴 바란다."
호리 선생님이 가장 많은 영행을 받았던 서머힐 학교의 니일에 관한 책도 이번 기회에 같이 읽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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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하버드 학생이 쓴 책을 읽었다. 자서전식의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던 책인데 의외로 하버드 교육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강의쇼핑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님으로 자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주목한 것은 단지 이런 것만이 아니라 질문을 강의시간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점과 리포트에 관한 개념등이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점은 책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차이점을 쉽게 볼 수 있겠지만 새로운 차이의 발견과 교육이 좀 더 진보적이었음 하는 기대가 더 생겼다. 내가 바라는 자유교육, 대안학교를 언제쯤이면 널리 퍼질 것인가. 왜 아직도 우리는 보수적인 교육을 바꾸지 못하는 것인가. 이런 궁금증이 커질때쯤 시아에 포착된 이 책은 나에게 자유교육의 참다움을 알려주었다.
자유교육, 자유주의교육, 자유방임주의! 전통적인 자유교육은 이성과 덕성을 겸비한 자유인을 양성하는 교양교육이다. 자유방임주의란 국가의 교육 지배를 비판하고 개인의 자유와 사적인 교육을 옹호하는 이론을 말한다. 자유주의 교육은 장로운 개인을 육성할 목적으로 아이의 자유에 무게를 두는 것이 보통이다.
윗글과 같이 자유와 관련된 교육의 의미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 가운데 이 책은 자유주의 교육을 목표로 하고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자유교육이라는 말을 자유주의 교육이라는 의미라고 밝혀 두었다. 조금씩 뜻은 다르지만 자유와 아이들의 자립을 위하여 자유로운 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교육현실이 변화되는 것을 느꼈고 한편으로 즐거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학교를 다니면서 성적에 의해서 학생들이 나뉘어 지고 심지어는 열등반 특수반으로 갈라져서 서로간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일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우등반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본 자유교육은 공부 보다는 체험과 프로젝트 위주의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시간표를 보자니 월요일은 11시에 수업시간이고 성적표도 입시제도도 조레도 숙제도 종도 울리지 않는 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학생들이 이 책을 본다면 정말! 천국이라고 할 것이다. 가장 큰 특징은 학교와 지역사회 사이에 벽이 없다. 지역사회는 더없는 학습장소이고 지역사람들은 유능한 교사들이다. 이 글을 책을 옮겨온 것이다. 내가 생각하던 지식기부와 학습의 제대로 된 원칙을 실현하고 있는 듯 했다. 교과서에서 배우고 선생님들께 배우는 교육에서 한층 더 발전한 교육의 개념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유교육은 이 사회와 사회구성원들을 전부 배움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지식체계나 습득보다 창조적 활동이나 지적탐구를 중시한다.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이유는 첫째, 교육목표가 명화확하지 않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자유주의 교육자들이 사회에 관심이 없다는 비판이다. 또 다른 주장을 보면 소극적인 ~로 부터의 자유를 강조한 나머지 적극적인 ~에로의 자유를 경시했다고 비판했고 전통적인 교육가 보다 더 열심히 사회활동에 관여한다. 급진적인 자유교육가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라고 논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대안학교나 자유교육에 대한 것들이 보편화 되고 있지 않고 입식적이고 전통적인 교육의 성향이 지배적이라고 할 수있다. 그렇지만 이런 자유교육이 생각 보다 선택과 결정을 해야하는 자립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에 이 두가지 교육의 장단점이 수면위로 올라와서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3원칙의 통합- 자기결정의 원칙, 개성존중의 원칙, 체험학습의 원칙 아직은 자유교육이 보편화 되지 않았고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나는 3원칙만 보더라도 이 교육의 의미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입시와 선생님을 권위, 성적에 의한 비관, 엄청난 경쟁률 속에서 심각함이 이 학교에는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자유롭고 활기차다. 아이들의 웃음이 그대로 배어 있는 학교! 우리가 원하던 학교가 아니던가. 자유학교에서는 성적표가 없는 대신 생활과 학습에 대한 기록을 보낸다. 거기에는 부정적인 것 보다는 긍적적인 면으로 쓰는데 예룰 들면 차분하게 있지 못해도 ' 이전보다 더 차분해졌다' 로 쓰는 것이다. 가끔 부모들은 단점도 적어달라고 요청한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부모를 둔 아이들은 안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부정 보다는 긍정에 맞추는 학습을 하는 것이다. 중간 중간 아이들의 해맑은 사진과 글을 보면서 자유교육을 빨리 만나고 싶어졌다. 우리들도 이런 학교에서 자랐다면 ... 현실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고 어릴적 다니던 학교의 자유로움과 잘못된 점들이 보완되었다는 만족감도 주었다. 물론 나보다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고 현실에 적절한 교육환경을 해나가야 겠지만 이 책을 읽었다는 것으로도 자유교육의 좋은 점이 수없이 많다는 것과 내가 생각하던 교육 가운데 잘못 생각했던 점이 개선된 것 같다. 교육에 종사는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이 자유교육에 대해 알수 있는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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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교육환경이나 정책들을 보면 정말이지 한숨밖에 나오질 않는다. 사교육 환경은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고 있다. 정부의 정책 또한 공교육을 강화하여 많은 학생들이 교육의 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게 하기보다는 경쟁을 통한 학습력 상승이라는 아주 저급의 정책을 최우선의 교육방법인 양 떠들어 대고 있다. 그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자사고를 대폭 늘리겠다는 것인데, 자사고 신청을 사립고등학교의 반 이상이 했다고 한다. 아주 기가 찬 교육정책이 아닐 수 없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교육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던 나는 점점 더 경쟁적으로 변해 가는 교육환경을 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교육이란 말인가? 내 아이가 그런 교육환경에 내몰려 어려서부터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난 두고 볼 수 없다. 그래서 가끔 대안학교에 대한 생각을 골똘히 하는데 아직 모르고 있는 부분들이 많아 판단을 내리기에는 이르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일본의 대안학교인 키노쿠니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 <자유와 교육이 만났다, 배움이 커졌다>(민들레, 2008년)를 읽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키노쿠니학교는 아이들도 교사도 행복한 학교라는 부제가 아주 잘 어울리는 학교다. 만약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 키노쿠니학교를 알았다면 이 학교를 꼭 보내달라고 졸랐을 것이다. 시험이 없고, 성적이 없어서 좋은 것이 아니다. 학교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는 서머힐과 같은 그런 자유로움이 좋기 때문이 아니다. 책임질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립하여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나로부터 함께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신입사원을 뽑아보면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나약한 친구들이 많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공부를 잘했다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전보다는 봉사활동이나 어학연수 같은 경력들도 더 좋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자신의 인생 가치관이나 꿈은 없다. 왜냐하면 지금껏 그냥 남들 가는대로 흘러왔기 때문이다. 키노쿠니학교는 스스로 인생의 가치관을 만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자유교육을 실시한다. 학년도 학급도 없지만,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실행하고 마무리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모둠수업을 통해 서로를 돕고 이해하는 과정을 배운다. 키노쿠니학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까지만 있기 때문에 고등학교는 다른 학교로 가야만 한다. 진로는 아이들 스스로가 준비하고 결정한다. 선생님들은 단지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키노쿠니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이 아이들을 그렇게 길러낸다. 저자인 호리신이치로는 키노쿠니학교의 교장이다. 17년 전 키노쿠니학교를 설립한 이후 지금껏 함께 하고 있다. 니일의 사상과 서머힐 교육을 연구하여 키노쿠니 대안학교를 설립할 수 있었다. 호리신이치로 씨가 교장이라고 해서 딱히 특혜를 받는 것은 없다. 그곳에 있는 선생님들 모두가 그렇다. 신입 교사나 경력 많은 교사나 월급이 모두 똑같다. 단지 가족수당을 좀더 많이 받을 뿐이다. 특권이나 특혜의식이 없다. 모두가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생각, 아이들이 스스로 깨우쳐 나가며 배워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교사도 행복하다. 대안교육이 무조건 좋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지금 대안교육을 이야기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키노쿠니학교처럼 많은 대안교육 기관들이 국내에도 생겨나 올바른 교육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내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이다. by 꽃다지, 2009년 1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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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서머힐학교를 기억하는가? 어쩌면 거짓말처럼 잊고 있다가 부모 입장이 되고 보니 떠올랐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해 기억이 되살아났다. TV를 통해 서머힐학교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막연하게 자유학교에 대한 동경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에 먼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서머힐은 니일이 1921년 영국에 세운 자유학교다. 대담하고 혁신적인 서머힐학교에 영향을 받아 전 세계적으로 자유학교가 세워졌다. 이 책은 그 중 한 곳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의 키노쿠니학교를 소개하고 있다. 키노쿠니학교는 이론이나 실제로 서머힐학교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지만 제 2의 서머힐은 아니다. 듀이의 실험학교와 엑켄헤드의 킬크하니티, 유언의 라이징힐이나 몽고메리의 크롱라라 등 다양한 학교들을 참고하여 독자적인 학교를 만들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키노쿠니어린이마을학교>라는 긴 이름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책임진 교장 선생님, 호리 신이치로다. 그러나 정작 학교 내에서는 어떤 선생님도 선생님이라 부르질 않는다고 한다. 어른들은 “~상”하고 이름으로 불리거나 별명으로 불린다. 선생님과 학생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1992년 설립되어 올해로 17년 된 시골학교지만 정규 학교로서는 아마도 가장 매스컴에 많이 알려진 곳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 자유학교는 어떤 곳인지, 또 어떻게 생겨났고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는 힘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막연하게 니일의 서머힐학교를 동경하면서도 정작 자유학교의 실체는 몰랐다. 자유학교란 자유주의 교육을 목표로 하는 학교다. 니일이 말하는 ‘자유’란 ‘자기결정’이라고 한다.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로운 아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권위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서 키노쿠니학교는 선생님 간의 서열도 없고 아이들 간에 학년별 구분도 없다. 어른과 아이 사이도 친구처럼 동등한 분위기다. 이제껏 익숙한 권위적인 교육방식에 비교하면 파격적이다. 자유주의 교육방식을 옹호하면서도 약간은 거부감이 든다. 이런 부분을 제외한다면 키노쿠니학교는 일본 교육개혁의 주인공답다. 아이들은 일반학교 또래보다 성숙하고 독립적이며 자유를 제대로 누릴 줄 안다. 현 교육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부모라면 솔깃한 이야기일 것이다. 자유학교나 대안학교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키노쿠니학교는 일본에 있지만 우리나라의 대안학교 (간디학교, 두레학교, 무지개학교, 별학교)와도 교류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 책을 번역한 김은산 선생님은 한국니일연구회(현 자율교육연구회) 회장으로서 키노쿠니와도 인연을 맺고 있다. 키노쿠니학교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을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는 부모 자신에게 자유와 교육의 참의미를 알려주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 우리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기를 바라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니일이 주장한 ‘자유로운 인간’인가? 아니면 세상이 말하는 ‘일류 인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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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생님을 꿈꾸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행정적인 문제로 한순간의 아름다운 꿈으로 그치고 말았지만 그 꿈을 위해 한 학기를 휴학했던 나의 꿈, 이루어졌다면 나는 정말 키노쿠니의 호리 신이치선생님처럼 좋은 선생님이 되어 있을까?
자유와 교육이 만났다. 배움이 커졌다는 일본의 자유학교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키노쿠니의 설립자 호리 신이치로 선생님이 지은 책으로 키노쿠니의 일주일간의 생활모습, 세계 여러나라의 자유학교와 실험학교들의 현상황, 키노쿠니 아이들의 생활, 그리고 저자의 교육철학이 담겨 있는 책이다. 교육을 주제로한 책 치고는 일반 학부모들이 읽어도 전혀 부담없을 정도로 우리의 교육현실과 대조하면서 읽는다면 큰 울림을 주는 책이다.
문제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부모가 있을 뿐이다란 생각을 다시금 해 보게 한다.
기존의 학교교육은
저자는 이런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니일의 자유학교 모델과 듀이의 실험학교 모델을 연구하여
자기결정의 원칙
개성존중의 원칙
체험학습의 원칙 3원칙을 적용한 키노쿠니하는 자유학교를 18년전에 설립했다.
아이들이 학습 주체가 되어 스스로 배우고 체험활동과 많은 회의를 통해 체득하는 지식과 인간관계에 대한 생생한 지식은 학교에서 진로교육을 별도로 하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진로를 결정하고 실용영어시험이나 상급학교 진학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두는 학교. 정규학교의 커리큘럼에 대비하면 이것도 공부야 할 정로 아주 자유로운 학교일정들을 보면.. 참 이곳에 아이들은 자유롭고 행복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찬 학교란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키노쿠니는 중학교에 이어 고등전수학교를 열고 자매학교를 연이어 여는데 이어 정부당국의 간섭으로 폐교된 스코틀랜드의 킬크하니티어린이 학교부지를 인수하여 다시 열 정도로까지 성공적인 학교운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안학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초창기엔 기존 제도교육의 틀에 부적응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지금은 대안학교를 스스로 선택하거나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보내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하니 고무적이긴 하나 학부모의 비용부담이 높아 원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떨어졌다고 난리부르스를 치면서 우열반, 일제고사다 전학급 영재학교, 특목고 설립 등을 강력하게 밀어부치는 우리나라 정부처럼 일본도 재량학습권 등을 부여하는 유도리교육 망국론을 내세워 과거로 회귀하려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고 저자는 개탄의 목소리를 높인다. 핀란드의 교육은 그들의 주장과는 전혀 반대의 교육을 하면서도 아이들의 학력수준이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하니 그들이 핀란드의 교육현장을 두루 살피고 와서 교육정책을 입안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면서도 매번 정권이 바뀔때마다 맨 먼저 손을 대는 것이 교육정책이다. 지금의 정부는 한술을 더 떠 온나라를 입시지옥, 사교육천국으로 만들 정책을 내놓으면서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모든 학교가 아이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학교,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각자의 개성이 존중되는 학교, 놀이와 공부, 삶과 공부가 어우러지는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책에서 밑줄 긋기 '문제부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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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아이가 다닐 유치원을 알아보면서 두 군데를 골랐었다. 한곳은 어린이집으로 다양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었고, 한곳은 유치원으로 프로젝트 수업과 함께 다문화를 배우는 곳이었다. 처음엔 프로젝트 수업이란 것이 아이의 생각을 키울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당장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부모가 가진 교육관의 한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놀이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길 바라면서도 양손의 저울처럼 교육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말이다.
'자유와 교육이 만났다, 배움이 커졌다'는 제목만으로 의미심장하다. 자유와 교육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전형적인 교육 과정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는 키토쿠니라는 일본의 자유 학교의 모습이 나온다. 우리의 대안 학교와 비슷한 교육관을 담고 있지만 같은 사상으로 시작했어도 나라에 따라,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른 개성의 학교들을 보여주고 있다. 학년도 구분 없고, 선생님이란 호칭 없이 '~상(씨)'라고 부르며, 어린아이들이 집이 아닌 기숙사에서 지내는 모습이 인상적인 키노쿠니 학교는 재미있어 보이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키노쿠니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학교이다. 성적이나 진로에 매여 저마다 능력이 다른 아이들에게 똑같은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공, 원예, 농사짓기, 요리, 탐험 등 다양한 프로젝트 수업이 진행된다. 교과의 틀을 뛰어 넘어 체험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교사의 권위는 아이들이 더 행복하게 성장할 때 아이들 쪽에서 실감하는 것'이란 말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교사가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 학교 속에 행복한 아이와 교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등교거부, 왕따, 학교 폭력 같은 문제들이 더욱 늘어나면서 아이들은 점점 학교와 멀어지고 있다. 획일적인 학습에 매여 고학력을 부추기기 보다는 아이들만이 가진 고유의 개성을 인정하고, 체험이나 학습을 통해 스트레스도 풀면서 성취감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학교가 해줬으면 하는 일이다. 그런 학교를 만들기 위해선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많이 달라져야 한다. 자유 학교의 모델이 되는 서머힐이 더 늘어난다면 아이들도 좀더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먼 훗날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당장 유치원을 보내면서부터 교육에 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어떤 것이 과연 아이를 위한 일일까 생각하게 된다. 사실 아이를 위한다고 하면서도 엄마의 교육열이 더 작용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이 책을 통해서 아이가 행복한 학교란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아이가 유치원에 가서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자유롭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오늘은 뭘 배웠을지 궁금해 하며 조바심을 갖기 보다는 행복한 체험을 했음에 감사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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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tv에서 서머힐에 관한 다큐 프로그램을 방영해준 적이 있었다. 아마도 고등학생이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학교에서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 마음 내키면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고, 수업시간에 차렷 자세를 요구하지 않아 자유로운 포즈가 허용되는 분위기.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학교 수영장에서 상반신을 벗고 다이빙을 하는 여학생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학교 분위기에 쉽사리 적응이 되지 않아 꽤나 충격적인 느낌을 받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럽다기보다는 생소했었고, 서머힐적인 학교가 좋은 학교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었다. 나 역시 규격화된 교육을 받는 네모난 규격상자였기 때문에 틀에서 벗어나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서서히 늘어가고 있는 대안학교가 우리나라식의 서머힐이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재정적으로나 규모 면에서는 비교 대상이 안될지도 모르나, 기존의 틀을 타파하고 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하며 학생 본위의 교육을 한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고 느꼈다.
작년 말에 ebs 다큐프라임에서 '상상에 빠지다'라는 3부작짜리 다큐를 만들어 방송했었는데, 키노쿠니 학교는 다른 학교와 함께 그 내용 중의 일부로 소개되었다. 숲속에 자리잡은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하고 자유토론을 하며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는 것을 주목표로 하는 학교의 모습은 같은 동양권이기에 서머힐에서와 같은 문화적 이질감도 없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아이들의 모습도 밝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선생님들의 표정도 구김살이 없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학교 풍조에서 작아진 역할에도 함박웃음을 짓는 선생님들의 밝은 표정은 분명 이 길이 바른 교육임을 확신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사실, 일본의 교육도 우리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우리의 교육이 일제 강점기 시기의 일본으로부터 영향받은 바가 크니까. 하지만, 일본의 뜻있는 교육자에 의해 추진된 키노쿠니 학교는 일본 교육의 미래에 희망이 되어주고 있다. 기존 교육의 형태를 타파하고 학생들이 주인이 되어 이끌어가는 교육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런 곳에서 습득하는 지식의 양이 얼마나 되겠냐며 교육 결과에 의문을 표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견하게도 키노쿠니 학생들의 교육 수준은 타 학교와 비교시 상위권으로 나타났었다. 하나의 이론을 배우기 위해 손쉬운 암기보다 실험과 이해를 강조하는 학습방법의 승리인 것으로 보인다. 책 속에 우리나라가 잠깐 언급된 부분이 있다. 이 학교를 세운 호리 신이치로는 과거 일본이 한국에 잘못했던 역사적 사실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알리고 있다면서, 일본 학교에는 역사를 솔직히 가르치는 교사가 드물다고 말한다. 바른 역사의식을 지닌 분이 세운 학교, 이곳이 키노쿠니 학교다.
사실, 내가 다니고 졸업했던 곳과 같은 학교에 내 아이를 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큰 물결을 거스르지 못한 채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아이들은 여전히 우리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다. 되려 더 큰 경쟁으로 내몰려 예전보다도 힘겨운 삶을 산다. 피하지 못하면 즐겨주길 바라는 것이 부모 마음이겠으나, 사실 그런 말은 좀 무책임하다. '도마 위의 생선'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으로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했던 우리 세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성하며, 교육계에 새바람을 일으켜줄 한국의 키노쿠니 학교를 갈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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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중학생인 조카가 학교 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얘기 할 때가 있다. 그럴때면 선생님을 두둔하는 말을 하다가는 멈칫하게 된다. 내 학창시절을 되돌아 봐도 존경하고 좋아해서 따르는 선생님이 많지 않았기에 조카의 불평을 듣고 조카만을 탓할 수가 없었다.
처음 학교에 입학해서는 선생님이 절대적인 존재였는데 언제부터 나는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게 된걸까. 거기에는 많은 문제들이 얽혀있다. 내가 만나왔던 선생님들 중에는 교사의 자질이 부족한 선생님도 많았다. 감정이 실린 체벌로 학생의 고막을 손상시켰던 교사, 어깨를 감싸거나 그보다 심한 행동과 말들로 학생을 성추행하던 교사, 너무나 당당하게 촌지를 요구하던 교사, 집 평수와 아빠의 직책을 물으며 대출을 요구하던 교사, 학원에 학생을 소개하고 수당을 받던 교사까지 있었다. 물론 존경받아 마땅하신 선생님들도 많았지만 이런 자질 부족의 교사들을 만나면서 나는 차츰 선생님에 대한 존경이 사라져 갔다.
교육환경의 문제도 있다. 한 명의 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아 교사가 학생들을 깊이 이해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든 환경이다. 많은 아이들을 획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아이들의 개성은 무시한채 단순 지식의 주입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아무리 다른 부분에 뛰어난 능력이 있는 아이라 할지라도 교과목 성적이 나쁘면 그저 열등생으로 취급받는다.
이러니 학교가 즐거울 수가 있을까.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고 자라면서 선생님과 함께 즐거워하고 교사는 학생과 거리감 없이 가까이 사랑할 수 있는 그런 학교가 있다면 아이도 교사도 부모도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까.
즐겁지 않으면 학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그런 학교가 이 책에 등장한다. 일본의 작은 마을에 있는 키노쿠니 어린이 마을이 그곳이다. 서머힐의 창시자 니일에게 영향을 받은 호리 신이치로는 서머힐과 맥락을 같이하는 키노쿠니 초등학교를 만든다. 아이들은 원예나 목공, 요리등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수를 익히는등 현실이 스며있는 공부를 한다. 지금은 키노쿠니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 전수고등학교까지 설립되었다고 한다.
키노쿠니 아이들은 전체회의를 통해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자율적인 규칙들을 만들기도 하고 진로도 스스로 결정한다. 아이들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진로를 결정하는 모습을 보니 고등학교때 내가 받았던 진학상담이 떠올라 우스워졌다. 성적별로 대학들을 적어놓은 커다란 전지를 펼쳐놓고 모의고사 성적에 따라 어느 어느 학교의 무슨 과 중에 고르라고 했던 그 상황은 지금 돌아보면 코미디의 한장면처럼 느껴진다. 나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모습에 나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우리나라에도 다른 교육을 만들어가는 움직임들이 있다. 언론에도 많이 다뤄지고 있고 그런 학교를 보내기 위해 이사를 하는 부모도 본 적이 있다. 기존의 학교에서 즐겁지 않았던 나같은 사람은 내아이를 기존의 학교가 아닌 대안학교에 보내는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이가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는 선택을 하는 용기가 내게 있기를,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