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의 영향력과 생명력을 거론하자면 베스트 셀러보다는 스테디 셀러 쪽에 더 점수를 후하게 주게 될 것 같은데, 조선시대에 대표적인 스테디 셀러라고 하면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가 꼽히지 않을까. '삼강행실도'는 조선시대에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조선인들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친 책 중 한권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이 지식을 전파하는 것을 넘어 윤리로서 나아가 그 사회 구성원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관습으로 형성되기까지, '삼강행실도'는 충(忠)효(孝)열(烈)의 가치를 전파하는 교화서로의 제 몫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는 바로 이 '삼강행실도'를 문헌학적으로 미술적으로, 판소리와 관련해서 등..다각도로 그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책을 펴내고 편찬한 의도와 내용, 독자의 수용까지 여러 각도에서 삼강행실도가 조선인들에게 파고들어 관습으로 자리잡기까지, 책과 지식 관습의 상관성을 주의깊게 살피고 있다. 이 책은 5년만에 다시 읽는 것인데, 5년전 리뷰에서는 조금 박하게 평해놓았는데 이번에는 그때와는 다른 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재독이 갖는 힘일 것이다.
'삼강행실도'는 세종대에 처음 간행됐고, 이후 그 양을 줄인 선정본과 언해본이 성종, 중종대에 나오면서 독자층과 수용층을 넓혀갔다. 또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나 '이륜행실도' 등 비슷한 교화서가 나올 정도로 효과적인 교화 수단이었던 것이다. '삼강행실도'가 처음 나온 것은 세종 때. 세종은 새 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가진 관료를 통해 조선 관료체제를 안정적으로 확립하겠다는 의도로, 거기에 성리학적 윤리를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강행실도'를 펴낸 것이다.
처음에는 한자로 된 텍스트 대부분이 그렇듯 주로 사대부들에게 전파됐지만 그뒤 양을 줄여 선정본을 만들고, 언문까지 함께 게재하면서 폭발적으로 일반 백성에게까지 영향력을 넓혀갔고, 백성들에게까지 성리학적 가치체계가 전달되는 데 큰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삼강행실도의 판화는 민화의 한 쟝르로 정착했고, '삼강행실도'의 가치는 판소리'심청전',''춘향적'가 효녀와 열녀의 이야기로 서사화 되는 바탕이 되었다.
'삼강행실도'는 전쟁 등 극한상황에서 충효열의 윤리를 강조하고 있다면 신분계급주의와 가부장적 가족주의를 주입한 것은'소학(小學)일 것이다. 지식으로는 받아들이지만 그것이 실행으로 연결되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조선 교화서로서 이 두 책은 최고의 스테디셀러로 백성들에게 성리학적 지식을 넘어 관습으로 형성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근대적인 가치체계인 이 삼강의 윤리가 옅어지고는 있지만 지금까지도 윤리로서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합리성, 근대성을 받아들이면서 비판받아야 마땅한데도 일제 시대와 유신시대에서도 강조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삼강의 윤리는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없는 권위적 지식이었지만, 전혀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삼강행실도'의 극단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존재했다. 정약용은 손가락을 자르거나 허벅지를 베는 단지(斷指), 할고(割股) 의 가학성을 지적하고 있는가하면 전시에서 열녀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은 간접살인이라고 지적하는 소설도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삼강행실도'가 조선시대 내내 읽히면서 그 속에 게재된 윤리관이 조선인들에게 내면화됐던 것이다. 한권의 책에 실린 가치체계가 국가의 주도하게 전파되면서 백성들에게 누적적으로 학습되고, 마침내 지식에서 관습으로 전환된 것이었다.
다시 읽은 이번에는 지난 번 보다 훨씬 집중해서 읽었다. 이렇게 잔인한 방식으로 충신이 되고, 효자효녀가 되고 열녀가 되기를 강요 받았던 조선사람들이 안스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책이 갖는 파급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국가권력과 책, 그리고 파상적인 주입 이 삼박자가 어우러졌을 때 책의 위력이란 실로 가공할만한 것이리라. 이러니 봉건시대, 독재사회에서 책에 대한 경계를 풀지 못했던 것이다. 금서가 나오는 이유. 그리고 이론과 비판이 허용돼야 하는 이유도.
그리고 충효열의 윤리. 개인화가 강해지고 배금성이 짙어지고 있는 사회라 그런지 오히려 충효열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보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 소리에 전적으로 찬성하게 되지는 않는다. 충효열의 수직적인 관계방식이 마음에 걸렸다. 충효열의 전통적인 방법 대신에 전통적인 무조건식 복종이 아닌 상호적이고 수평적인 방식으로 또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하는 방식으로 정립돼야 할 것이다.
|
|
역사를 들여다 보는 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한 권의 책을 다각도로 파고 들어가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연구하는 이른바 '책의 문화사'. 이런 방법도 있었다. 서유럽 역사연구에서 제기 됐다는 이 방식으로 연구한 역사적 접근은 책을 즐기는 독자라면 더 애정이 담긴 눈길로 역사를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책의 문화사'의 관점에서 연구 대상이 된 책은 바로 세종 때 처음으로 간행됐던 '삼강행실도'였다. 요즘 말로 하면 조선의 대표적 교화서에 그 책에 담긴 가치와 행동 규범은 조선의 지식으로 또 관습화할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 책이다. 그런 위력이 있었기에 이 책이 연구대상이 된 것인데, 그렇다면 '삼강행실도'는 누가 왜 출간했고, 어떻게 보급되고 백성들에게 수용됐는지, 그 양태와 영향을 다섯 학자가 각각 저술하고 있다.
'삼강행실도'가 처음 발간된 때는 세종16년, 우리나라와 중국의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夫婦) 이른다 삼강(三綱) 의 모범이 될만한 효자와 충신 열녀의 행실을 그림과 글로 펴낸 것이다. 그 뒤 성종대에 이르러서는 언해본을 간행해 여러 도에 배포했고, 중종 대에 이르서는 3천 질에 가까운 당시 수준으로는 단연 압도적인 양을 배포했다.거기에 19세기까지 꾸준히 보기 편하게, 다량으로 개정되고, 간행됨으로써, 교화서로서 꾸준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삼강행실도'는 가정과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효와 열(烈) 이라는 유교의 윤리를 확립하고, 정치적으로는 관료들의 충성을 이념화하는 간행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미처 유교적 이념이 사회에 뿌리 내리지 못했던 세종 대에 처음 편찬된 이후, 양계에서 친계 사회로, 이성(異姓)양자에서 동성(同姓) 양자로, 혈통에서 종법으로, 유교화 돼가는 변화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지원자 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다.
왕조에서 앞장 서 '삼강행실도'를 꾸준히 개정하고 편찬하면서 보급하고,백성들을 학습화시키면서, 또 그것을 실천하는 효자,효부, 열녀, 충신에게 정문을 하사하고 세금을 감면 하는 등 상을 주고 기리는 등 지원했다. 그런 과정에서 유교 이념은 자리잡아갔고, 효자, 효부, 열녀 충신들이 많이 등장했다. 효도, 충성, 정절의 가치들이 관습화되고 내면화 됐다.
'심청가', '춘향가'에서 보듯이 판소리문학에서도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하는 효녀 열녀의 모습은 자연스레 형상화됐다. 일제시대에는 근대적 인쇄기술을 발휘한 신문, 잡지를 통해 충효열의 가치를 대량으로 전파함으로써 일제에 복종하는 식민지 국민을 만드는 메세지로 활용됐다. 심지어 근대화가 부르짖었던 70, 80년대 독재 정권에서까지도 여전히 충효의 메세지가 강조된 저변에는 이 가치들이 관습으로 남아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삼강행실도'에서 제시한 덕목들은 합리성과 과학성을 기반으로 한 근대성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행동양태이고, 봉건적인 지배질서를 대변하는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에서도 '삼강행실도'에 대한 비판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약용은 '단지(斷指 )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는 '할고(割股)' 에 대해서 그 가학적이고, 남편을 따라 목숨을 버리는 행동을 찬양하는 것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제기는 어디까지나 소수의 목소리에 불과했다.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를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한 권의 책이 어떻게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지식으로 주된 가치로 자리잡게 되는지, 또 판소리 문학처럼 다른 문화적 영역에도 수용되고 형상화 되고 있는지, 책의 생명력과 영향력을 조목조목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권력의 지배수단으로 '책'이 지식으로 유통되고 보급됐던 측면이 강했지만, 꽤 오랜 생명력을 가졌고, 영향력을 유지한 책이 '삼강행실도'였다. 다양한 미디어가 존재하는 오늘날의 스테디 셀러나 명저와는 다른 형태로 존재했지만, '삼강행실도'는 발행 목적을 충분히 이행했고, 요즘말로 하면 One source Multi use로 활용됐다. 백성들의 교화서로서도 제 값을 해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필자가 다섯 명이라 그런지 심도있는 내용보다는 대략적인 내용만 더듬다 만 느낌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최초의 편찬 연도를 한 사람은 세종 13년 또 다른 필자는 간행 연도를 세종16년이라고 하는 등 용어나 기본적인 사실관계에서 다른 부분이 있어서 읽다가 헷갈리기도 했고. 이견도 있었다. '삼강행실도'가 백성들을 교화하는 게 그렇게까지 크게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의견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하는 등 상충되는 견해도 있었다. 일관성이 없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런 이견을 학자들의 학문적인 판단의 영역이라 생각하고, 오히려 흥미롭게 받아 들였다.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는 한 권의 책을 통해 역사를 공부하는 그 방식과 과정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정치와 사건이 아닌 한권의 '책'으로 조선을 이해하고 아직까지 완전히 청산되지 못하고 우리의 관습으로 잔재해있는 충과 효..그리고 열의 덕목을 다시 살펴보고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다.
만약 '삼강행실도'처럼 지배 논리를 강화시켜주는 책이 아니라 반대로 지배 논리를 깨뜨리며 전복을 꿈꾸는 책이었다면? 그 변혁의 최일선에 있는 책,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 시키고,역사가 되는 책, 그런 파괴력있는 책의 문화사..어디 없으려나.
|
|
나름 논문을 '행실도'로 썼던지라;; 사서 봤던 책. 사실 논문집이라고 봐야할 책인데, 생각보다 논문의 편차가 있어 조금은 실망했던 책이다.
문자로 서술된 '역사 속의 책'을 물질적 요소나 그 내용에만 한정하지 말고, 책의 생산과 소비, 저자와 독서 집단의 관계, 그리고 독서행위의 구체적인 현상 등도 연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주영하가 쓴 서문의 의도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이 책의 거창한 제목만큼 그것들을 행실도에서 끌어냈는지는 의문이다. 옥영정과 윤진영이 쓴 판본과 서판에 대한 논의는 사실 대단히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좀 식상하기도 했는데, 좀 어이가 없었던 것은 전경목의 글이었다. 그는 삼강행실도의 편찬배경과 정치성을 살펴보는데 사실 그 내용 중엔 딱히 반대할 내용도 놀랄 내용도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삼강행실도 보급의 영향인데, 그가 말하는 직접적인 영향이 꽤나 모호하다. 보급이 원활치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삼강행실도가 널리 보급되어' '효자와 열녀, 충신이 배출'되었다는 주장은 좀 어색하다. (사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따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이건 차후 연구 과제로 모양을 잡고 있는 중)
뭐, 이 정도만 되도 그냥 그러려니 할텐데 뒤에 이어지는 '간접적인 영향'이 가관이다. 그는 이 부분에서 '양계에서 친계 사회로', '이성양자에서 동성양자로', '혈통에서 종법으로', '불교에서 유교로' 조선사회가 변화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건 말그대로 조선사회에 대한 '일반론'이지 '삼강행실도'와 특별히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삼강행실도가 저런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이런 증거들은 하나도 없는데, 그렇다면 '소학'이 저런 변화에 '간접적' 영향을 미쳤다는 허무한 글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책의 앞에 있는 글보다도 나는 오히려 이정원의 글이 가장 재미있었다. 그는 '삼강'의 권위적 지식이 판소리 문학에 수용된 양상을 분석하는데, 그 분석은 꽤 타당성이 있다.
암행어사와 용왕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중예술로서 판소리 문학은 향유층의 삶에 부당한 고통이 개입되어 있다는 진실을 들추어내기보다는 그러한 고통이 있음으로써 보상이 예정된다는 낙관을 피력한다.
판소리에서 드러나는 '이기적 무지'는 행실도에도 표출된다. 효행의 유형에 자주 나타나는 것이 '자해'다. 자신이 손가락이나 허벅지를 베어 병든 부모에게 먹이는 행동이 그것이다. 이 효행에 대한 도상적 묘사를 분석하면, 효행을 실행하는 자와 부모 사이에 '가림막'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가림막은 '그 고통이 당위의 수혜자인 아비에게 불편한 진실이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림막으로 수혜자인 아비의 부담을 덜고자 하는 '이기적 무지'를 확인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러한 무지는 가림막 저편에 불편한 진실이 있음을, 아들의 고통이 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에,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부여되는 권위적 지식을 실천하는 관습이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좀 더 균형감 있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임란 이후 간행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서는 그 가림막이 사라진 도판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제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풍겨야 할 최소한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오직 희생의 뻔뻔한 당위만이 나타나는 것이다. …… 즉 가림막이 사라진 그림들은 열녀 되기와 효자 되기가 수반하는 고통에 대한 무감각과 그 실천의 당위성이 만연한 현실을 현상화 한 것이다. '이기적 무지'는 이제 굳건한 이념적 토대 위에서 '이기적 응시'로 전환되고 있음을 이 그림들은 보여주고 있다.
뒤에 이어지는 주영하의 글은,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지는 자해 효행에 대해 분석을 시도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1920년대 조선총독부의 통치 아래 '전통적'인 족보의 간행이 증가한 사실과 '삼강록'의 간행은 일정한 연관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 점은
조선총독부가 결코 '조선시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동성동본' 집단을 말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분명한 혈연적 귀속 집단으로 만든 결과이다. …… 사실 합리주의와 과학주의를 내세운 근대성(modernity)은 봉건적인 사유의 핵심인 삼강의 지식 체계를 부정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와 재조일본인들이 조선을 파악하기 위해서 시작된 '조선적'인 양상은 근대화가 가져다준 근대적 인쇄술과 국가 통제로 인해 더욱 강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1920년대 조선총독부는 혈연주의에 기반을 둔 가문주의와 성리학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면서도 오히려 유림들을 포섭하여 지역사회의 행정적 범주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이것이 봉건적인 사유의 핵심인 삼강의 지식 체계를 20세기 이후에도 지속시키고 확신시킨 원인이 되었다.
이런 흥미로운 분석이 너무 짧은 글 속에서 더 깊게 진전되지 못한 점은 참 아쉽다.
사실 '책의 문화사'라는 섹시한 제목 때문에 이 책을 구매하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건 좀 과대광고가 아닌가 싶다. 괜찮은 관점을 제시한 논문 한 편 건진 정도면 선방이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이건 전공자의 입장에서 그러한 것일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