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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사형을 규정한 형법 제 41조 등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1996년의 합헌 결정에 이은 14년 만의 2차 합헌 결정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위헌 의견을 내놓은 재판관의 수가 2명에서 4명으로 늘어났다. 이 문제에 대한 여론 대립만큼이나 재판소 내의 의견도 첨예하게 대립하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법관은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처럼 예민하고 중대한 사안에 대한 결정도 오직 결정문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국민들로서는 장문의 판결문, 결정문에서 언급되는 법리를 꼼꼼히 읽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언론을 통해 단편적으로 보도되는 결과만을 놓고 찬/반을 결정하게 된다.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얽힌 개별 사건의 경우라면 판결의 의의와 그러한 결론이 도출되는 과정에 대한 국민 일반의 관심은 비교적 덜하게 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내리는 위헌 결정은 법원, 기타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하는 막강한 위력이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가치관 및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며, 때로는 이를 선도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라 하겠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인 밥 우드워드가 저술한 ‘지혜의 아홉 기둥’은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와 같은 역할을 겸하는 미국 연방 대법원의 내부를 생생하게 들여다본 책이다. 법에 대해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해서라면 모든 미국인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연방대법원의 의사 결정 과정과, 각 사안에서 주요하게 대립되는 쟁점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때로는 소설가처럼 능란한 필치로, 때로는 저널리스트다운 날카로움으로 격변기의 연방대법원을 묘사한 이 책은 다루어지는 쟁점들의 중요성을 제외하고 읽어도 그 자체로 재미가 있다. 아홉 명의 연방대법관은 단지 판결문 뒤에 숨어 있는 근엄한 재판관일 뿐 아니라 농담하고, 토론하고, 웃고, 때로는 분노하는 인간으로서 독자에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받은 가장 큰 인상은, 헌법 문제를 다루는 재판관들은 법리를 냉엄하게 적용하는 기술자라기보다는 대립하는 가치관을 조율하는 중재자에 가깝다는 것이다. 행정부의 정책과 사법부의 판단, 이상과 현실, 연방과 주정부간의 권한, 그 모든 가치가 중요하며 대법원은 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만 한다. 문제된 개별 사건만을 염두에 둔 채 쉽게 판단해서도 아니 되고, 그것을 통해 모든 사건에 적용되는 법원칙을 정립하는 것이 대법관들의 임무이다.
연방대법원의 아홉 구성원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토론과 조율을 거쳐 그 시대에 가장 적절하고 옳다고 생각되는 가치관에 따라 결정한다. 연방대법원은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의견을 품은, 극단적으로 독립된 사람들의 집합체’ 인 것이다. 헌법 재판은 정치성을 띠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만, 이 책에 묘사된 법관들의 의사 결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그러했다. ‘사형제’ 나 ‘낙태’ 처럼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각 대법관은 미리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확고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정교한 법리로써 결론을 뒷받침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연방대법원의 의사 결정이 객관성을 가진다면, 그것은 각 법관 개인이 객관적이어서가 아니라 개성적인 아홉 명의 의사가 한데 모아지는 과정이 객관적이고도 중립적이어서이다. 그러므로 연방대법원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법관 구성의 다양성이 반드시 담보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로는 다양한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는 과정이 민주적이고 자유로워야만 한다.
이 책에 자세히 묘사된 연방대법원의 의사 결정 과정은 거의 이상형에 가까워 보였다. 구두 변론을 마친 후, 각 대법관은 의견서를 작성한다. 이 의견서가 회람되며 다수 의견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과 논거를 가감하고, 처음에는 9인 9색이었던 의견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다수의 찬성을 얻을 수 있도록 변모해간다. 대법관들이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은 사회에서 대립하는 여러 의견이 서로를 설득해가는 과정의 축소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론은 때로는 극단적인 대립 끝에 상대 의견을 무시하고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 반면 연방대법관들은 보편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형제와 같은’ 관계를 바탕으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항상 노력한다는 점이다. 이 차이점 때문에, 난상 토론이 아무런 건설적 결론을 맺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잦은 것과 달리 연방대법원은 가능한 한 최선의 결론을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의외였던 점은, 대법관을 보좌하는 연구원들의 역할이다. 법관이 아니라 법대 출신의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연구원들은 대법관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보조자의 역할을 넘어, 대법관을 설득하고 때로는 인도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연구원들의 설득에 따라 대법관의 고집이 꺾이는 경우도 있고, 대법관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모순을 연구원들이 지적하기도 한다. 위엄있는 대법관들이 서로 가벼운 언사로 흉금을 터놓기 어려운 부분도 있기 때문에, 대신 휘하의 연구원들끼리 수다를 떨면서 중요한 합의점을 도출하는 경우도 있다. 60,70대 노년층인 대법관들에게 20대 젊은 연구원들의 의견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구원들의 존재 또한 젊은 층의 의견이라는 다양성을 확보하는 한 방법인 듯싶다.
이 책에서 다소 부정적으로 묘사된 워렌 버거 연방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인 자신의 말조차 무시당할 때가 있는 극렬한 의견 대립을 한탄하며 영국 법관회의 최선임판사가 가지는 엄중한 권위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바로 권위주의의 반대편에 선 기탄없는 비판과 토론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비하여 다소 의구심이 드는 부분은 대법관의 선임 절차이다.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 법사위원회의 표결을 거치는 형식인데, 아무리 상원에 의해 한 차례 검증이 된다 해도 모두 대통령이 지명하는 이상 정파적인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미국 연방 대법관은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사망하거나 스스로 사임하지 않는 한 새 대법관이 선임되지 않는데, 이 책 서두에는 닉슨 대통령이 선출된 후 유력한 대법원장 후보였던 민주당 성향의 대법관이 탄핵 위기에 몰려 사임하고, 소위 ‘닉슨 판사’ 라고 불리는 공화당원 대법관들이 줄줄이 선임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닉슨은 임기 중에 여러 대법관이 사망하거나 사임했다는 ‘운’ 에 의해 자기 입맛에 맞는 대법관을 다수 지명할 수 있었으며, 이렇게 선임된 대법관들은 장기적으로는 수십년 동안이나 대법원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선거에 의해 심판을 받지만 법관은 소위 ‘대세’에 좌우되지 않는 것이 그 존재 의의이다. 그러나 그런 절대적 위치에 서려면 법관의 구성도 최대한 탈정치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법 재판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지만 최대한 정치성을 줄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진대, 종신직이기까지 한 대법관의 선임절차가 오히려 정치성을 더하는 방식이라니. 오랜 기간 정착되어 온 전통인 만큼, 이러한 방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또한 미 연방대법원의 대법관들은 법원 외에서의 업무도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취임식 등에 참석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고질적인 업무 과다로 고생하는 와중에도 각 대법관들이 미 전역을 누비며 많은 강연을 여는 것은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아마도 대법관이 종신직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작 이 모든 내용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실정과 비교하여 가장 부러웠던 부분은, 대법원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책을 써낸 미국의 저널리즘이었다. 수년 동안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을 취재하고 방대한 자료를 꾸준히 수집하여, 마치 수십년 전의 대법원에서 실제로 보고 들은 것처럼 내밀한 내용까지 녹여낸 책이기 때문이다. 법관 사이에 오간 쟁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법조 관련 기사들은 가장 자극적인 사건을 골라 판결문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선정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내는 것이 최우선인 것처럼 보인다.
법원의 내부는 외부의 시선이 들여다보기 어려운 구역이고, 또한 함부로 비쳐 보여도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여론과 완전히 유리되어서도 안 된다. 그 사이에서 대중을 대신하여 법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언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처럼 대중에게 대법원의 역할과 구조를 이해시킬 수 있는 훌륭한 저술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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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을 다 읽었다.활자는 커서 읽기가 좋다. 안경환 교수님의 번역도 수려하다. 얼마전까지 인권위원장이셨다. 인권을 향한 상이한 이념과 입장 사이의 대립과 투쟁, 음모와 협잡, 협상과 타협, 새로운 모색, 이 책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버거 대법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찬란했던 워렌 대법원의 영광이 쇠잔해지고 새로운 보수의 색깔이 미국 연방대법원을 다시 칠하는 상황 속에서 더글라스, 브레넌 등의 노력이 눈물겹다. 이것이 자유를 향한 투쟁이다.
그렇지만 미국연방대법원은 보수의 것도 아니고, 진보의 것도 아닌 중도의 손 안에 있다는 평범한 말도 가슴에 다가온다.
실감나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두껍지만 너무 잘 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권하고 싶다. 특히 헌법과 인권에 관심이 있는 법률가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