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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술에 대해 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해주었던 마법같은 책이란 느낌을 갖게 했던 책이다. 그림의 목소리를 보며 이제껏 만나왔던 미술에 관한 책들과 많이 다르다고 느꼈던 것은 엄연히 장르가 달라 쉽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술과 문학이 만남으로써 또 다른 예술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깊은 의미가 있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었다. 두 예술이 합쳐져 이제껏 접해본 적없는 새로운 예술의 한 형태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그림의 목소리가 내게 보여주었던 첫인상이기도 하다. 처음 그림의 목소리를 알게 되었을 때, 그림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는 주제는 무척이나 흥미롭게 다가왔고, 그 때문에 새로운 예술을 만나볼 수 있겠구나하는 설레임을 만들어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본다. 작가의 책은 처음이었지만, 사이드라는 저자의 눈을 통해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는 느낌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새로움이 강렬하게 찾아들었다. 그림의 목소리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그림이 목소리를 갖게 된다면 어떨까하는 가정하에 작품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작가의 눈을 통해서 만나 볼 수 있는 책이다. 많은 책들에서 만나왔던 미술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술을 접하게 될 때에는 언제나 어렵고,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을거란 생각에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지만 이 책은 그림으로 시작해 그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어서 여지껏 알아왔던 그림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고 전혀 다른 느낌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지침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다. 솔직히 그림은 원래 눈에 보이는 그 자체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작품인줄로만 알았다. 또 누구든지 그냥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림이 간직하고 있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작품속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이야기를 알게 된 후 다시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 작품은 새로운 감상으로 다가오고, 이전에 봤던 작품도 아니었다. 새로운 시선이 전혀 다른 감상을 만들어 내었고, 이제 미술을 접하게 될 때 나의 자세도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생각된다. 작품속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는 어떤 것일지 미술과 문학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뿌듯한 생각이 앞선다. 작가는 유명한 일화들을 선정해서 그림과 함께 그림의 목소리를 바로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작품을 만들어 냈던 주인공의 개인적인 삶과 인생 이야기들, 그들의 삶을 통해서 한 작품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수 만가지 감상을 쏟아내고 있는듯 보인다. 모든 예술은 그것을 보고, 들으며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정답은 없을 것이다. 작품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을 스스로 움직이고, 자신만의 경험을 만들어 간다. 예전의 기억들을 떠올릴 수도 있고,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자극을 받을수도 있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그 작품에 대해 일반적으로 정해진 느낌,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안에서 틀에 박힌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아닌... 완벽한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과, 순간적인 것을 영원히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의 사용법, 또 보는 예술을 말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진실한 예술로 내 마음속에 담아둘 수 있는... 예술에 대한 진정한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너무 오랫만에 미술에 대한 나의 교양이 부쩍 성숙해진 느낌으로 가슴 한 켠이 뿌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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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물론 이건 제가 생각하기 이전 이미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그런데 저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하기때문인지,마치 저의 생각인것처럼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혹자는 그림을 읽어 낸다는 것에 대해 이해 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그림은 느끼는 것이라고 말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간혹 읽기가 우선 되어지는 경우도 있고,느낌으로 먼저 마음이 열리는 순간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림의 목소리>란 책은 '목소리'란 텍스트로 바라 본 것 같습니다. 글을 쓴 이가 미술평론가가 아닌,시를 쓰고 글을 쓰는 작가였으니,그렇게 그런 관점에서 그림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재미있었던 건 정말 그림이 말을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는 겁니다.저자가 유독 그런 느낌이 강한 그림을 찾았던 것인지, 아니면 제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바라보아서 그런 느낌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그런데 그림 속 모델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착각이 정말 들었습니다.물론 그림 속의 대화는 보는이의 상상이겠죠
호퍼의 그림<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홀로 차를 마시는 이가 외로워보이긴 했어도,함께 있는 연인이 외로울 거란 생각은 못했습니다.그런데 글을 쓴 이는 한 발 더 나아가 당신의 모자때문에 더 쓸쓸해보인다는 말을 합니다. 글을 쓴 그러니까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저자의 마음이 무언가 쓸쓸하여 그렇게 보인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
조르주 브라크의<웅플뢰르의 코트드그라스>라는 작품인데,그림을 바라 본 저자는 '기다림'이란 제목을 달았더군요. 무엇을 기다리는 것인지 잘모르겠습니다.글을 쓴 저자가 망명을 한 시인이라고 하니,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을 했던것일까요? 저는 얼마전 읽었던<지금 행복해>라는 단편집 속의 지금 행복해 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그러나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무언가 오랜만에 만났고,서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가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 앞에 있는 집은 그래서 그들의 집이 아닌것 처럼도 보입니다.아들은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빨간 옷을 입었습니다.그런데도 아버지를 만난 행복함을 드러내지 못합니다.그러자 아버지가 말합니다"지금 이렇게 널 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성석제 소설을 조금 인용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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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의<코루소의 로마식 저택 창가에 서 있는 괴테>라는 작품입니다.그림을 읽어 낸 시인의 제목은'텅 빈 풍경 속의 괴테'입니다 사람의 뒷모습이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놀랍습니다.괴테는 이탈리아여행을 하고 돌아 온 후에 <파우스트>를 집필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네요.이 그림 역시 괴테의 생각이 화가에게 어느정도 반영이 되여진 그림이라고 하니... 창 밖 너머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호기심,즐거움등을 보고 있었을텐데 그럼에도 그의 뒷모습에선 풍경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느껴지기 보다는 외로움이 살짝 보이기도 합니다.그러나 햇빛 좋은 어느날 혼자 카페에 앉아서 차라도 마시며 책을 읽게 된다면,괴테의 저 풍경은 햇살을 여유롭게 즐기는 모습으로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림 속 모델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림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그림보기란 생각을 이 책을 보면서 알았습니다. 저자가 하는 목소리도 들고,읽어 내는 저 스스로도 모델들에게 말을 걸어 보고,대화를 상상 해 본다는 것... 아주 흥미로운 그림보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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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소재로 한 또다른 문학작품, 사이드의 글은 그대로 시가 되고 수필이 된다. 가끔 명화라고 하는데 어째서 이 그림이 명화인지 납득하지 어려울 때가 많다. <그림이 말하다>를 읽으면서 어떤 명화들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림이 말하다>는 저자가 첫머리에 인용한 장 뤽 고다르의 명언처럼,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림에게 목소리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 상상하며 읽었다. <그림이 말하다>의 저자 사이 사이드(Said)의 소개가 독특하다. 사이드는 ’시인’, ’인권운동가’라고 한다. 작품 활동을 하는 화가이거나, 미술사나 미술이론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미술 평론가가 아닐까 짐작했는데, 시인이라고 한다. 시인이라는 힌트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의 글은 제목도, 내용도 상당히 시적이다. 그래서 어떤 내용들은 그림보다 난해하게 읽히기도 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나는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그림과 글을 연결시키며 어떤 그림 이야기는 몇 번씩 반복해서 읽기도 했다. (파울 클레의 <육교의 혁명>,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복잡한 예감> 등이 특히 더 어려웠다.) <그림이 말하다>는 크게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그림이 말하다’, 2부는 ’화가가 말하다’이다. 1부 ’그림이 말하다’는 그림 자체의 의미에 중점을 두었다면, 2부 ’화가가 말하다’는 화가 입장에서 화가의 입을 빌려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읽어낸다. 글과 글 사이에 ’화가가 말해주지 않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그림과 화가에 얽힌 역사적인 사실을 설명해주어 그림에 관한 이해를 돕는다. 그러나 <그림이 말하다>는 그림을 해석하는 책이 아니다. 그림을 감상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도 아니다. 책은 이렇게 소개한다. "미술 작품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연상되는 주관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작품 속 인물이나 풍경, 또는 색채들이 스스로 말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해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앞표지 날개에서) 그렇다. 저자는 화가에 대한 정보, 시대 배경이나 화법 등 미술 작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즉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그것을 주관적으로 다시 해석해낸다. 그러므로 사이드의 글은 그림의 해석과 감상에서 머물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고유한 문학작품이 된다. "사이드의 글은 미술과 문학이 새로운 지평에서 만남으로써 탄생한 새로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그 모자 때문에 우리가 더 쓸쓸해 보여"라는 제목으로 재탄생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두 남녀의 대화를 통해 다른 인물의 동작이 의미하는 바, 출입문이 보이지 않는 카페, 카페 안의 밝은 조명, 그리고 텅빈 거리가 의미하는 바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들려준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그의 상상력은 실제 대본을 읽고 있는 느낌을 준다. 때로는 시 같고, 때로는 난해나 연극 같고, 때로는 역사적 서술 같은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화가와 그림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색체의 의미를 배울 수 있어 유익하다. 또 화가에 대한 정보나 색감에 관한 이론은 어디서나 배울 수 있지만, 다양한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하며, 그림에 담긴 에피소드나 그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시대적인 배경을 "이야기체"로 설명해주는 것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싶다. 어쩌면 나만이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데, 저자 사이드가 시인이자 인권운동가라는 점에서 저자가 고른 작품에는 대체로 암울한 사회적 배경을 가졌거나, 인권과 관련하여 관심의 대상이 되어온 등장인물과 그것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대상이 많다. 창녀, 매독에 걸리지 않으려고 오줌 싸는 군인, 쇠고랑에 매인 두 마리 원숭이, 떠돌이 유대인, 빛이 없는 도시, 저항하는 풍경 등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시인이자 인권운동가인 저자 사이드가 작품을 고른 기준은 무엇일까를 염두에 두고 그림의 목소리와 화가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본다면 저자의 의도에 더 가까이 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그림의 목소리>는 단지 그림에 관한 지식과 감상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그림을 매개로 저자만의 독특한 목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통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덧입혀져 있다고 생각한다. 신선하고 재밌게 읽으며, 그림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 하나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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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목소리 -
처음 이책을 접했을때 단순히 그림을 설명해주는 책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첫장을 들췄을때부터 이 책은 이미 평범한 책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거의 대부분의 그림은 제가 접해보지 못한 그림이였습니다 유명하고 익히 알려진 대부분의 그림들을 알고있는데 이곳에 실린 그림들은 유명한 화가의 덜 유명한 작품들이였습니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었던 책읽기였던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몇번이고 봤던 그림을 다시 볼때는 새로운 기분으로 이야기를 상상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기존의 편견이라던지 그림에 대해 몇번씩이나 보고 느낀 감정이 있으니까요
이 책은 단순한 그림에 대한 정보가 아닙니다 이 책의 작가는 그림에 대해 상상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은 일반독자가 하는것과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그림을 보고 상상을 하는것처럼 작가 역시 상상을 합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터무니없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보면 정확하고 명확한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정확한 사실에서 시작한 이야기라고해도 어떤 작가가 쓰느냐..상상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를 확연히 달라집니다
제가 그림을 보고 느낀 감정과 때로는 비슷한 때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이 책을 읽을때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상상했습니다 최대한 오래..그림을 보고 마치 작가가 된것처럼. 그후에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작가의 상상은 하나의 단편소설처럼 빠르고 재밌게 흘러갔습니다 그림과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을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림을 읽는법을 배웠습니다 이 책을 통해 멋진 경험을 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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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의 상상에 의해 조금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작가에 의해 표현된 이야기와 내가 보고 느낀 목소리를 비교할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첫 장에 소개된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이야기는 불륜의 남녀에 대한 대화로 시작된다. 그림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왜 작가의 이야기와 다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리 봐도 그런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적 삶을 표현했다는 해설을 보고 나니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팔짱낀 자세를 그린 에곤 실레는 논란거리가 많은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여동생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리다 후에는 어린 창녀들을 그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포르노그래피로 간주된 그림 백 여장을 경찰에 의해 압수당하기도 했고 재판 중 판사가 그의 그림 하나를 불태우기도 했다. 자화상을 그린 작품인 네 개의 손을 가진 자화상은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으로 독특한 느낌을 갖게 한다. 네 개의 손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그림을 그리고, 사랑을 하고, 생각을 하고,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손이라고 사이드는 말한다. 작가는 특이하게도 시인이다. 미술사학자가 아님에도 미술작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림과 이야기하며 대화하고 그림을 보는 독자들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이 책은 작가가 회화예술 중 몇 작품들에 관해 적은 글과 그림을 모은 책으로 작품속의 세계를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죽기 일주일 전에 결혼한 로댕의 연인 여인 로즈 뵈레의 이야기나 반 고흐의 연인이었던 시앵의 일화를 비롯해 알지 못했던 화가들의 일화들이 곳곳에 소개되어 있어 재미를 더한다. 그림의 이야기들은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번역된 작품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그럴 땐 그냥 그림 자체만을 감상하고 넘기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건 예술작품을 통해 시대적 상황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혀 무관할 것 같았던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한 순수함에서 시대상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그림을 감상하는 시각을 달리 할 수 있어 한걸음 다가선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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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목소리를 얻었다면?
‘그림의 목소리’는 시인이자 인권운동가인 사이드가 그림이 목소리를 얻었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라는 가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알차다. 그림을 보여주면서 그림의 ‘말’을 들려주고 ‘그림이 말해주지 않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나처럼 그림에 생초보인 사람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잠깐 넘겨봤다가 그 자리에서 다 보고 말았던 책. 아직도 그림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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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수은, 앨리스>를 통해 그림 속 세계, 나의 이해 밖의 넓은 지평을 본 이후, <그림의 목소리>를 우연히 만났다. 서로 연계된 책을 찾다가, '에드워드 호프'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의 그림 속 대화체에 홀딱 반하고, '빈센트 반 고흐'의 '슬픔'(sorrow)의 또다른 이야기(고흐 자신의 이야기 -물론 작가의 상상력이지만) -고흐의 '슬픔(Sorrow)'-가 있어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곤 이렇게 이 책을 손에 쥐었다. 책을 손에 쥘 때의 설렘과 흥분으로 더디게 천천히 곱씹었다.
제목의 그 느낌 그대로, 책 속에는 무언의 그림들이 그들의 숨겨진 비밀스런 이야기를 속삭여 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애두르지 않고 직접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닌지, 귀가 커지고 쫑긋거리는 그 느낌을 그 누군가는 알까? 전혀 그림의 의미,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런 역량이 턱없이 부족한 내게 <그림의 목소리>는 너무도 달콤하였다. 그 속삭임의 유혹에 빠지면서, 그림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림의 목소리>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그림이 말하다'로 그림 속 특정인물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또한 2부는 '화가가 말하다'로 직접 화가가 그림과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듯 전개된다. 대화체의 서술도 있거니와, 전체적인 서술은 매번 '나'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림 속 인물(1부)와 화가 자신(2부)이 주체가 되어, 서술되면서도, 그 서술 형식이 매번 동일하지 않다. 그림 속 인물이 아닌 사물들(육교, 원숭이)의 이야기도 있으면, 때론 추상화만큼 추상적인 이야기도 있어, 마냥 '룰루랄라'할 수만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림을 여러 각도도 둘러볼 수 있는 점, 바로, 그림과 소제목, 그리고 작품해설 같은 '그림(화가)가 말해주지 않은 것'이란 정형화된 4단계의 틀로 구성되어 있어, 더욱 그림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각각의 그림을 단 한 줄, 몇 개의 단어로 소개하는 글의 소제목들은 호기심 가득, 기대감과 설렘으로 나를 이끈다. 소제목, 그리고 그림, 실제 작품명,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와 숨겨진 이야기들은 그림을 생중계하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림의 목소리에 자연스레 귀 기울여지게 한다. 때론 소제목과 그림이 선뜻 어울리지 않아 당혹스럽기도 하고, 소제목을 통해 그림이 명쾌하게 다가와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지기도 하였다.
가장 궁금했던 그림의 목소리는 1부와 2부의 첫번째 그림들, 앞서 이야기한 에드워드 호프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과 빈센트 반 고흐의 '슬픔'이었다. 미리보기를 통해, 이미 읽은 내용임에도, 어찌만 즐겁고 행복하던지, 그림의 목소리가 너무도 생생하여, 신기하였다. 새롭게 다가온 그림,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일랴 레핀'의 '이반 뇌제와 죽어가는 아들'과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슈바인'의 '코루소의 로마식 저택 창가에 서 있는 괴테', 그리고 '클로드 모네'의 '바람 속의 포플러나무'였다. 기타 다른 그림들, 이야기도 여럿 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림이 먼저 다가온 것도 있고, 그림 속 이야기가 먼저인 것, 그 그림 뒤에 숨겨진 비밀이 더욱 강렬한 것도 있었다.
<그림의 목소리>는 그림 그 자체만(그림의 객관화)이 아닌, 그 그림 속 숨겨진 더 많은 이야기(사이드의 주관적 해석)를 풀어내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림의 영역이 더욱 확장되며, 더 많은 이야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화가의 이야기, 생각들은 저자 '사이드'의 상상임에도 왜이리 현실감있고 생생한 것인지 놀라울 뿐이다. 또한 저자 '사이드'의 이력을 알게되면, 더욱 그러하다. 직접 화가의 삶 속으로 뛰어든 듯한 착각에 빠진다. 물론 이해하지 못하고 난해함에 빠지기도 하지만, 온전하게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공유하며, 듣기에 빠쁜 면이 있었다. 옮긴이는 말한다. 난해함은 난해한 대로 그렇게 그림 속으로 "그냥" 걸어 가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또 다시 그림을 접하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이해하지 못해 아리송했던 많은 부분들에 나를 투영할 날로 오겠지~ 사이드처럼 언제가 나도 그림과 하나되는 그 날을 기대하면서, 이렇게 책을 통해, 그림이 들려준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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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림에 대한 지식은 거의 갓난쟁이 수준이고 심미안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그림을 볼 때면 언제나 "우와. 대단하다"란 말만 연달아 늘어놓곤 한다. 하지만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상상력만은 풍부해서 그림 속 인물의 손가락 끝, 혹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을 보며 많은 이야기들을 지어내곤 했었다. "저 둘은 사랑하는 사이임에 틀림없어.", "얼굴 표정으로 볼 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등의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말이다. [그림의 목소리]라는 책은 그림을 보며 사이드란 저자가 이런저런 생각들을 풀어 낸 책이었다. 과연 누구의 상상력이 더 뛰어날까란 시도해 볼 필요가 없었던 승부욕에 불타올라 의기양양하게 첫 장을 넘겨들었다.
표지에서 진실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한 청년, 조심스레 그의 입을 덮고 있던 띠지를 벗겨보니 진한 와인 색 아래로 그의 꾹 다문 입술이 보인다. 그간 그토록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계속 거부되어 왔던 것처럼 그의 입술은 꾹 다물어져 있었지만 왠지 그 안타까움만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림들과의 만남. 그것은 상당히 조심스럽고 예민한 일이었다. 혹여 내가 그들의 꿀맛 같은 단잠을 깨울까봐, 눈물 나도록 부러운 그 조용한 평화를 범하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종전에 알던 그림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또 그 글의 추상함에 놀랐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은 밝고 선명한 색채 속에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느꼈을 공허함과 혼란이 함께 묻어나는 신비로운 작품이었다. 그 글에 대한 감상 역시 그리 어렵지 않게 쓰여 있어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헤어 나올 수 없는 미로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림의 목소리들은 갈수록 너무나 추상적이고 어려우며 철학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흘러갔던 것이다. 나의 지적능력 수준이 의심될 정도로 때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고 저자 사이드의 뇌 구조가 어떤지 보고 싶을 만큼 흥분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이내 포기하곤 책을 끝까지 읽긴 했지만 어쩐지 나의 일부로 전혀 흡수가 되지 않은 듯 한 느낌이다.
서평을 작성하기에 앞서 다른 분들이 정성스레 올려주신 서평들을 읽어보았는데 거의 대부분 만족하셨다고 말씀하신 터라 더욱 혼란스러웠다. 책에 있던 모든 글들은 분명 꼼꼼하고 세밀하게 작성된 완성도 높은 글들임에는 틀림없었으나 나와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글 중 일부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같아 반갑기도 했지만 대다수가 너무 추상적이어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나를 탓해야할지 아님 지적능력이 너무나 심각하게 높으신 저자를 탓해야할지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몇 백 년의 시대를 아우르며 떠났던 그림여행은 먼 훗날까지도 기억 속에서 지워질 것 같지 않다. 그림을 보는 게 좋았고 어려운 글들의 충격이 상당했던 덕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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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란 출신의 시인이자 민권 운동가인 저자가 여러 가지 그림을 보면서 그에 붙인 글들이다.
그림의 말과 화가의 말로 나뉘어진 그 글들의 형식은 매우 다양하여, 때로는 그림의 대상의 가상 대화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림 속 대상이 관객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림이 자신을 그린 화가를 보며 생각하는 바이기도 하며, 그림이 화가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화가의 말은 더욱 다양해서 그림의 대상에 대한 회고, 그림의 배경에 대한 해설, 그저 독백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릴 당시의 자신의 상황에 대한 토로, 때로는 정치적인 이야기서부터 때로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나온다. 모든 말들은 저자가 상상한 것들이다.
미술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림을 보는 방법, 혹은 예술을 감상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가 있다. 대학 시절 한 미학 강의에서 한 학기 내내 토론했던 것이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였다.. 그때의 고민의 결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나, 즉 감상자가 생각하는 바가 예술이라면 예술이고 아니라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내가 예술로 느껴지도록 감동 내지는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였다. 보르헤스의 영향을 받은 생각인데.. 결국 그림도 내가 색깔에서든, 대상에서든, 묘사 방식이든 뭐든 간에 나에게 감동과 감흥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 그래서 난 미술관에 갈 때나 미술 책을 읽을 때 최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려 노력한다.
사이드의 이 책의 글들은 아마도 사이드라는 저자가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그림을 감상하였을 때 다가왔던 감흥, 감동, 혹은 그림의 소리가 아니었을까.
기존에 잘 알고 있던 그림도 있었지만 잘 모르는 그림이나 화가도 많았는데 그럴 수록 선입견없이 그림을 접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사이드의 감상을 함께 비교할 수 있어서 짧은 책이었지만 즐거웠다.
단지, 사이드의 감흥은 나의 그것과는 레벨도 다르고 감감이 너무 달라서 저자의 의도와 생각을 이해하기 좀 어려웠고 해설이 없이 읽기에 좀 힘들었다는 것 정도가 이 책을 읽어 가는데에 조금 어려웠던 애로사항이라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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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목소리 사이드 저
바쁘고 지치는 일상속에 잠깐의 여유가 생길때마다 전시회나 미술관을 찾게 되는 것이 어느때부터인가 취미 생활이 되어 버렸다. 전시회나 미술관에서 직접 보는 그림들은~ 특히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도슨트나 큐레이터 없이 혼자 감상을 할때 언제나 여러가지 환상을 품게한다. 물론 그런 미술품들에서 눈에 띄게 보여지는 의미나, 여러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작품을 통해서 알리고 싶었던 의도를 아는 것도 참 중요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림에 대한 설명 말고도 그림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떠한 다른 비밀이 숨어있지 않을까? 그당시, 그시대, 그장소, 그느낌으로 직접 그림을 그렸던 화가 자신이 아니라면 끝끝내 알 수 없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과연 그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이 오랬동안 감추어왔던, 감출 수 밖에 없었던 금기와도 같은 그 진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책의 작가는 그런 가정하에 <그림의 목소리>라는 이 책을 쓴 것이라고 한다.
이런 점들을 바탕으로 <그림의 목소리>는 여러 그림이나 미술에 관련된 책들에 서서히 염증을 느끼던 나에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수 밖에 없었던, 색다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림이 들려주는 슬프고 애로틱한이야기'라는 문구처럼 책 속의 그림들은 예상대로 전혀 밝지 않고,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 드는~ 평소에는 자주 접하지 못했던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그림들은 모두 에드워드 호퍼나, 피카소나, 반고흐처럼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었다. 이 화가가 이런 그림도 그렸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 정말 빠져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과거의 고정관념이나, 이 화가는 이럴것이다!하는 정해진 틀안에서 그림을 감상했을때와는 달리 책을 보는동안, 그림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단지 눈에 보여지는 모습 뿐 만 아니라~ 생각했었던 것 이상으로 그림 속에 감추어져 있던 내면의 모습들을 살펴 볼 수 있었던 점이 참 좋았고, 새로웠다. 평소에는 생각지 못한전혀 다른 각도에서 그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 가히 매혹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역시 작가의 주관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와는 다른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므로 이 책을 볼때, 너무 작가의 말에 억매이지 말고, 작가의 말을 바탕으로 자신의 나름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림을 감상하고~ 책을 보는 또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해서 앞으로도 미술관련 서적 중 이렇게 새로운 시도로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다른 책들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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