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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김정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 ^ - ^ ) 누구냐고요? 대동여지도를 만든 조선 최고의 지리학자 김정호 선생님입니다. 어떻게 만났을까요? "구석구석 찾아낸 서울의 숨은 역사이야기 1" 책 덕분입니다. 서울 성곽은 낙산(청룡-동쪽), 인왕산(백호-서쪽), 남산(주작-:남쪽), 북악산(현무-북쪽) 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죠? 영조때 이조판서를 지낸 조엄이라는 분이 일본에서 고구마를 들여와 우리나라 식생활을 변화시킨 분인데 풍양조씨 집안에서 가장 유명한 분입니다. (제가 풍양조씨입니다. ^-^) 안타까운것은 잿골은 일제의 한글 말살하기위해 재동으로 바뀐것이 아직까지도 사용되고 있어 옛이름을 찾을수 있도록 우리의 숙제인것 같습니다. 자세한 지도와 함께역사이야기와 알쏭달쏭 역사확대경 의 설명으로 서울이 너무나도 소중한곳임을 배웠습니다. 겨울방학에는 서울을 제대로 여행할 자신이 생겼습니다. 2탄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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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맛골이란 지명이 있는지도 몰랐는 데 알게되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도 알게 되었고, 광화문 네 거리 등 서울시내에 있는 여러 역사적인 유적들을 이 책을 통해 잘 알게 되었다. 서울이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수도였다고 했는 데, 그리고 여러 궁궐들, 도성들이 있는 것을 보고, 이게 뭔가 했었는데 이 글이 이런 궁금함을 해결시켜 준것 같다. 많은 어른들이 옛날 유적을 복원하려고 하는지도 알것 같다. 나도 역사에 남는 것을 남겨볼까 ^^ - 은호파파 아들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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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맛골 이야기만 있는줄 알고 샀는데 앞의 몇장만 피맛골이야기였다. 광화문사거리에서 종로4가까지 600년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역사의 현장. 지금 이곳은 권력투쟁의 희생양의 상징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술마시던 시절엔 그렇게 값진곳인줄 몰랐는데 언젠가부터 느낀다. 경주 첨성대에 못지 않게 중요한 문화재라는 것을 우리는 일본에 뺴앗긴 고려청자 1점엔 목숨을 걸면서 정작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숨쉬는 문화재에 대해선 쓰레기 취급하는건 왜일까 귀하지만 가까운 곳은 잘 찾지앟는건 사람의 습성이라지만 문화유산은 값으로 따질 수 없다. 그 곳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라도... 새벽에 반정도 읽다 덮었다. 책의 내용이 나쁘거나 부실하다는게 아니라 내가 찾던 그 책이 아니라 생각해서다. 반품했다. 하지만 청소년문화교양도서로 친다면 전혀 손색이 없다. 특히 남이장군 부분에선 자세한 설명까지 작가의 세심한 조사가 돋보인다. 청소년들에게 적극 권하는 바이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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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생글생글 잘 웃던 미즈노교수가 방송에 잘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이 스튜디오에 모여서 토론하던 곳에서 미즈노교수는 "저희 일본에서는 자식이 사업자금이 부족해 시골
부모님에게 가서 가만히 있으면 말을 안해도 부모님이 알아서 주십니다. 또 연인들끼리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해도 다
압니다."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말에 주변사람들은 "에! 그게 뭐야 말을 해야지" 하며 어이없어 했다.
이야기가 좀 다를진 몰라도 야만이란말은 18세기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말로 자신의 문화가 다른 문명보다 우수함을 말하기위해 만들어낸 말로 프랑스의 몽테스키외는 사회발전의 단계로서 이 용어가 단순원시사회와 복합근대사회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밝혔고 19세기에 형성되었다.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적 시각으로만 해석하려는 극단적인 예가 '야만'이라는 단어다.
12세기 한국과 일본에는 모두 무신정권이 같은 시기에 등장한다.
청기백기게임의 원형도 알고보면 운동회때의 청백전이 아니라
백강전투후 400년동안 일본에 존재했던 시대가 헤이안시대고 그 이후가 700년간의 무신시대다.
수도를 두 번씩이나 옮긴 간무천황이 794년에 헤이안쿄(교토)를 도읍으로 정착시킨후 1185년에 이르러서야
미나모토가문이 다카모리왕의 손자 다이라씨와 전장에서 맞붙었을때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 한쪽은 등에
홍기를 꼽고 한쪽은 등에 백기를 꽂은데서 청백전이 유래한다.
이로인해 다이라씨가 궤멸하고 군사,경찰,행정권이 미야모토노 요리토모에게 넘어간다.
이때 시작된 또 하나의 풍습이 있는데 무신정권의 호화로운 요리인 가이셰키요리와 승려들의 공양음식인
쇼진요리가 합해져서 현재의 일식요리의 원형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런 전통이 1868년 메이지천황의 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700년 동안 무신들이 전국에서 할거하는
전국시대가 계속된다.
우리나라에 군청단위가 있다면 일본에서 군청단위에 영주가 있어 그곳의 무사집단과 농민집단이 하나가
되어 서로 경쟁하는 시대를 그들은 700년이나 지속시킨다.
만일 거기속한 사람이 자신의 불만이나 억압에 대한 표출을 하게되면 그곳 집단에 해를 끼쳐 단결에
해가된다하여 자신의 욕구불만을 자신의 내부로 내면화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려 지금도 일본에선
제일 심한 욕이 우리가 잘아는 '빠가야로'라는 바보란 말이 제일 심한욕이라 들었다.
어느 기자가 그런다 한국과 일본의 고소고발 사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이건
단순비교가 아니라 원인을 역사적 유래를 놓고 비교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라마다의 문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건 무리가 따를 때도 있다.
그럼 한국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바보'는 욕도 아니다 그냥 애칭 정도일까
조선은 600년동안 양반중심의 중앙집권제가 뿌리를 내린다.
서민들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멸시와 천대를 뒤에서 욕으로 푸는걸로 해결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욕으로 푸는 문화를 발달시키게 되었고
일본은 외부의 억압으로 인해 생기는 불만을 내면화하는 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다 사대부의 발원지를 보자.
진,송시대이후 사대부라는 명칭의 직업은 비록 달랐지만 농,공,상과 같이 섞여 살았다가 후대에와서
사대부는 곧 문벌이 높은 집안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농,공,상과 완전히 구별되도록
서로 섞여 거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압구정도 중국 송나라의 정승 '한충헌'이 황제를 새로 세운 공을 세운뒤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지은후
벼슬을 버리고 갈매기와 함께 논다는 겸손의 뜻이 원형이다.
그 압구정이 조선으로 넘어와 '계유정난'을 기획한 한명회가 갈매기압으로 부르는 정자를
지은후 그곳의 뜻이 서민들에 의해 누를압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다.
발원지를 알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한강의 발원지도 오대산 '우통수'와 태백 황지의 창죽동의 검룡소를 발원지로 보기도한다.
여기는 귀한 곳이기에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럼 지금 한국은 발원지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문화유산은 또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
안압지,불국사,석굴암,첨성대,무녕왕릉,고인돌,장군총등 거의 다인 문화유산은 모두 귀족이나
왕족들을 위한 유산이다.
그럼 우린 이런 문화유산을 정말 잘 지키고 있을까
우리는 약간이라도 불편하거나 보기 싫으면 싹쓸어버리고 다시 짓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종로의 피맛골,중앙청,명성황후생가담장의 일부,북촌을 밀어버리고 빌라단지를 만들자는 사람들, 창덕궁의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시원스럽게 밀어버린 사람들,천재시인 백석과 길상사 자야여사가 사랑을 나누던 집, 올림픽 메인스타디움과 국회의사당을 지은 건축가 김수근의 집도 싹 밀어버리거나 밀려고했다.
이제껏 나온 문화유산중 95%인 서민들의 유일한 유산 한국에 욕이 왜 많은지를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가 종로의 '피맛골'이다. '말을 피하다'에서 유래된 피맛골은 종로통의 뒷골목이다. 지금 당장은 경제적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기를 수 있기 때문에 문화유산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은 그렇지만 옛날 것을 없애는 것은 한국의 약점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다. 세월이 지나면 무엇이든 잊혀지는 법이지만 역사의 현장은 고이 보존되고 간직되어 다시 후손들에게 전해져야하는 법.
우리는 지금 전통과 낙후를 구분못하는 혼돈에 빠져 있지않은지...
가난의 잔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구시대적 발상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고 있는 것일까
1392년 조선은 개국했고 그 시절 숭례문을 만들게된다.
숭례문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있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내세우는 우를 범하며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 있는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69세 노인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고 그 노인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으며 감옥으로 향했다.
종로의 피맛골은 1392년 조선의 개국시절 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기게된다.
피맛골은 한명회의 계유정난때도 있었고 임진왜란 때도 있었고 흥선대원군시절에도 존재했고
김영삼대통령이 치적이라고 자랑하며 근현대사가 그대로 녹아있는 중앙청을 부술때도 있었지만 낡은 것
은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과정으로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국민들은 무관심하거
나 부순사람을 지지한다.
옛날 것을 없애는 것은 한국의 약점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다.
몇몇 정치인의 생각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를 통째로 바꾸려는 발상 이제는 좀 바꿀떄
도 되지 않았을까
외국에서는 모짜르트생가 베토벤 생가에서 외국정상들과 칵테일 파티를 한다는데
왜 한국은 야만의 수준을 못벗어나는걸까
참고도서 몇권만 추려서 권한다
일생에 한번은 독일을 만나라 돈가스의 탄생 햇볕정책을 위한 변론 구석구석 찾아간 서울의 숨은 역사이야기 세계는 기다리지 않는다 좋은 길은 좁을수록 좋고 나쁜길은 넓을수록 좋다 헤이안 일본 한국사 이야기4종
노컷 조선왕조실록
택리지 풍수화 일본무사도 야만의 언론 내사랑 백석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 요시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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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것들은 우리 곳곳에 있지만 다 알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자신이 사는 곳도 잘 알지 못하니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지방의 구석구석에 있는 역사이야기는 책을 통해 접하여야만 한다. 현장체험을 가기도하지만 그것 또한 만만치 않기도 하다. 잘 정리된 책을 보면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하다. 이 책은 시리즈 중 1권에 속하는 것은 서울의 피맛골에 관련된 숨은 역사를 다루고 있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피맛골’이란 서울 어느 곳으로만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그 주변이나 그곳에는 흥미 있는 역사이야기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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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설 연휴 준비로 다급해진 마음에 하루종일 종종대며 바삐 움직여
역사 하면 경주가 생각나고 역사하면 먼 지방쪽으로 움직여야 공부를 할수 있을거란 편견이 완전히 깨져버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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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이해하고 알아가는것은 후손으로서 당연한 문제이다. 그러기에 더욱더 어려운 부분이 역사교육이고 우리의 역사를 아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자 하는 것도 우리들 어른의 몫이다. 아이들이 한단계씩 학년이 올라가면서 교과서적이나 문화적으로도 더욱더 깊이 알아가는 역사부분은 재미있어 하면서도 현실과 많은 차이때문인지 다소 어려워 한다. 역사적 사실이 있었던 유적지와 함께 찾아가는 역사 기행이야 말로 아이들에게 흥미를 유도하고 진실을 알아가는데 좀더 쉽게 다가갈수 있을거란 생각을 해본다,
이번에는 우리의 수도인 서울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아이와 함께 대동여지도를 만드신 김정호님과 같이 지리학자가 되고 싶은 13세 소녀랑 같이 떠나는 서울 이야기들을 만나봤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추어 만나보는 여러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은 옛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지역과 관련된 역사속의 이야기와 지역명이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은 재미있게 전개되었다. 간간이 등장하는 만화컷속의 익살스런 모습은 아이들에게 감초역할을 해주는듯이 더 많은 재미를 선사한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우리의 역사속에 들어나는 이야기들속의 대부분들은 많은 슬픈을 안겨주기도 한다. 서로의 권력다툼으로 일어난 이야기와 기다리는 모습을 만날수 있는 많은 사연을 가진 바위들까지.... 우리역사를 왜곡하기위해 일제에 의해 많이 변해버린 역사속의 지명들과 함께 슬픈 이야기들은 아이들에게 숨어있는 역사를 만날수도 있었지만 좀더 좋은 이야깃거리들로 구성이 되어있어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사적 사실들을 이해하고 자부심을 안길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어본다.
이책을 보면서 서울을 지탱하고 있던 4대문에 대하여는 제대로 알아간듯하다. 그동안 국보1호인 남대문과 보물1호인 동대문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대로된 위치를 알수 있었으면 여러 작은 대문의들의 역할까지도 알수 있었다.
서울뿐 아니라 여러지방들의 곳곳에 숨어 있는 우리의 역사를 좀더 재미나고 활기찬 내용들을 많이 만날수 있으면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참 재미있는 숨은 역사이야기였던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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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페이지나 되는 긴~ 내용의 책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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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란 도시를 알아갈수록 600년의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조선을 거쳐 근대화의 격동기를 지나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수도역활을 해온 서울의 역사속에는 참 많은 이야기와 아픔과 삶의 흔적들이 있었던것이다. 옛날과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는 풍부한 화보들은 더이상 볼수없어 안타까운 사라진 옛 모습들을 연상하며 추억에 잠겨보게도하고 쉬운 이해를 도와주기도한다.
피맛골 이라는 단어를 기존에 만났었던가. 거기엔 육조거리에 얽힌 조선의 역사와 함께 그 짧은길을 가는동안 몇번이나 고개를 숙여야만했던 백성들의 자존심이 녹아있었다. 구석구석 찾아낸 서울의 숨은 역사 이야기니만큼 100년전 200년전 300년 전에 내가 살고있는 이땅에 먼저 살았던 선조들의 생활이 있었고 애환이 있었다.
그렇게 난 서울에 살았던 사람들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만나며 새삼스럽게도 지금까지와는 또다른 모습의 서울을 만났다. 피맛골에 이어 집안이 몰락한 양반가의 여인네가 살아가는 방법이었던 내외술집은 양반가의 체통과 생계사이에서 묘책을 강구해야만했던 여인의 비운이 있었고, 조선후기 최고의 장작상인 최순영의 이야기에서는 서서히 변해가는 상업의 모습이 담겨있기도 했다.
그리고 또한 서울의 명소로 재탄생한 청계천의 이야기에도 참 많은 아픔이 녹아있었다. 경을 친다라는 말이 유래가 된 이마에 표시한 전과자표시가있었고, 그런자들이 불리워진 말이 꼭지떼였으며 그 우두머리는 영화제목으로 생각나는 꼭지딴이라한다. 꼭지떼들이 모여살았던곳이 청계천으로 참 두려움의 장소였음이었다.
한나라의 주군이었건만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할수있는 능력마저 없을만큼 미력한 왕권을 보여주는 치마바위이야기, 그보다 더 슬펐던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인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조카의 왕권을 찬탈한 세조의 역사를 보여주는 재동까지 왜이렇게도 서울의 역사속에는 아픔이 많은건지 안타깝기도 하다.
우리의 것이기에 알아야했고 아파해야했고 반성해야만하는 것이었다. 숨은 이야기속에서 조선의 실제적인 모습을 만나고 역사확대경을 통해 역사적 상식의 폭을 넓혀갔다. 숨은역사 이야기 1편이라고 하는 제목을 보니 아마도 시리즈인듯하다. 다음편에서 우리가 알지못했던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될지 참 많이 기대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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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모르면 현재도 없다는 말이 맞나 보다. 이 책을 처음 봤을때는 서울의 모습만 기대했던 나에게 또 다른 커다란 기쁨을 주었다. 내가 읽기전에 겉표지만을 보고서 작은녀석이 자기 먼저 읽겠다고 차지하는 바람에 난 그 시간만큼은 기다려 줘야 했다. 양탕국이 무엇인지 몰랐던 무지한 나에게 서양에서 끓여 마시는 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커피라는 걸 알게 해 주었고, 고종과 세자의 양탕국에 얽힌 사건 또한 쉽게 풀어있어서 좋았다. 역사속에 없어진 우리 문화재를 사진으로 볼 수 있어서 새로웠고, 지금은 불타버린 숭례문(남대문)의 사진을 볼 때는 마음이 아려왔다. 사진으로만 존재하는 돈의문(서대문)과 소덕문(서소문)의 철거원인이 도로확장과 전차궤도 복선화 때문이라는 사실은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p110 귀하지만 가까운 곳은 잘 찾지 않는 것이 사람들의 습성이야. 그러나 이처럼 잠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역사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을거야. 굳이 먼 경주나 공주같은 곳을 찾지 않다라도 우리는 주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역사의 현장을 만날 수 있어. 어렵게 생각하기 쉬운 우리 역사를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 처럼 꾸며 놔서 초등학교 저학년도 어렵지 않게 볼 것 같았고, 역사확대경에서는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고학년도 역사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올 해 6학년이 되는 둘째는 벌써 2권이 언제 나오냐며 기다리는 것을 보면 아이들도 재미있게 보는 책임에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