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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만화가 윤태호를 만나기 전에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이 이름조차 처음 들었다.
샐러리맨들에게 웹툰 <미생> 열풍이 일었고, 그 웹툰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유로 2012년 9월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유명한 만화가였다. 만화 <이끼>로 2007년 각종 만화 상을 휩쓸기도 했다. 유명 만화가를 미처 알아보지도 못한 무지한 사진기자이니 인터뷰라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 했다.
미생마를 살리기 위해서는 처절한 몸부림을 해야 한다. 때로는 수족을 잘라 내는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더구나 완생을 했다고 해서 그 바둑을 이기는 것도 아니다.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다행히 떨어졌습니다. 육성회비를 제때 못 낼 정도로 가난했기에 미술을 제대로 공부할 형편이 못 되었죠. ......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허영만 선생의 문하생이 되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허영만 선생의 문하생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문하생이 되었습니다. 내 그림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버텼습니다. 그것마저 없다면 무너져 버렸을 것입니다.
흔쾌히 응한 쪽잠 포즈. "버텨 낸 이"의 당당함이 없다면 흔쾌히 응할 수 없는 포즈였다. 하나 더 고백하건대, 그날의 단행본 <미생>이 훗날 미생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줄 상상도 못했다. 나는 여태 미생 사진기자 인 것이다.
2016년 1월 이상무 화백의 장례식장에서 윤태호 화백을 만 났다. 2012년의 인터뷰 후 처음 만난 것이다. 76-83쪽
<미생> 만화로도 보고 드라마로도 보았지요. 오차장과 장그래 그리고 다른 배역들 모두 빛나고 또 엄청 찌질했더랬는데 2012년부터 8년이 흘렀네요. 그리고 영원히 또는 원래, 본래 "미생"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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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발견하는 방법, 그리고 어떤 대화들 참 이상하게 마음이 끌려서 산 검은 책. 목차를 보겠습니다. 소년은 늙지 않는다 그들의 언어 행복의 정의 12월의 시 그 중에서 만화가 윤태호의 미생 시절 76쪽을 보겠습니다. 샐러리맨들에게 미생 열풍이 일었고 그 휍툰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유로 2012년 9월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유명 만화가 였다. 만화 이끼로 2007년 각종 만화 상을 휩쓸기도 했다. 유명 만화가를 미처 알아보지도 못한 무지한 사진기자이니 인텨뷰라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 했다. 다행히 바둑은 조금 아는 탓에 미생마란 뜻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죽음과 삶이 결정되지 않은 돌, 바로 미생마이다. 바둑판에 미생마가 하나라도 있으면 그 바둑이 끝날 때까지 고달프게 된다. 살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높다 미생마를 살리기 위해서는 처절한 몸부림을 해야 한다 때로는 수족을 잘라 내는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더구나 완생을 했다고 해서 그 바둑을 이기는 것도 아니다 -중략- 그 미생이 바둑판이 아니고 우리 삶이라면 끔찍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저도 아직 미생입니다. 생산수단, 돈벌이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큰 문제입니다. 국민연금을 받을 나이는 아직 10여년이 남았으니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부양하고 제가 자존심을 지킬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덕무를 읽고 윤태호의 미생 시절을 읽어도 제가 저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저의 삶은 계속 진행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