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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뛰어넘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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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학창 시절엔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가 나의 정체성을 결정했다면 졸업 이후엔 어느 회사에 몸담고 있느냐가 나를 판가름 하는 잣대로 여겨지고 있다. 매 순간마다 누군가와의 경쟁을 거쳐 쟁취(?)했던 것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비정하고도 가혹하게까지 여겨진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걸 어른들이 그토록 강조했던 게 자신의 몸값을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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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학창 시절엔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가 나의 정체성을 결정했다면 졸업 이후엔 어느 회사에 몸담고 있느냐가 나를 판가름 하는 잣대로 여겨지고 있다. 매 순간마다 누군가와의 경쟁을 거쳐 쟁취(?)했던 것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비정하고도 가혹하게까지 여겨진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걸 어른들이 그토록 강조했던 게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자발적 헌신을 강조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나면 기분이 묘하다. 그리하여 나는 행복해졌는가.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직업으로 택한 이가 거의 없으며, 스스로를 하층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그토록 넘쳐난다는 사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노동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라 역으로 노동에 우리는 속박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렬히 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여느 나라보다도 긴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로서는 한 번 즈음 되물어야만 한다.

앞서 말했듯 노동은 곧 나의 정체성이다. 몸을 사용하는 노동보다 머리를 사용하는 노동을 높이 사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후자에 속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일정 연령대에 도달했으며 노동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음에도 소위 ‘백수’ 상태인 경우, 그 사람을 향한 시선은 대개가 복잡하다. 취업이 쉽지 않은 현실이나 취업을 못했다는 건 곧 무능력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때론 게으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노동은 우리에게 권리이기보다는 의무에 가깝다. 제 생을 영위하기 위한 차원을 뛰어넘어 노동력을 사회에 제공하는 것은 의무라는 식의 시선을 우린 지녔다. 그러나 이러한 당위성은 본능이 아니라 끊임없는 경험을 통해 체득된 것이다. 왜 일을 해야만 하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합당한 이유라고 보긴 힘들다.

각 나라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자 힘쓴다. 더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나누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에서다. 저녁이 있는 삶에 사람들은 찬사를 보낸다. 아직 우리에겐 낯선 광경이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면 버는 돈도 줄어들 터이고, 기본 생활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게 우리의 지배적인 생각이다. 슬프게도 장시간 노동에 녹아든 우리는 갑자기 자유시간이 늘어날 경우 외려 불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을 제외하면 시체인 상황이 바람직하다고 볼 순 없다.

임금을 보전하면서 노동 시간을 줄이는 방책으로 이 책에서 언급된 것들을 살펴본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려는 작업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이는 페미니즘 진영에서 처음 시도됐다. 여성의 노동 가치가 사회에서 낮게 평가되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 보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여성의 가사 노동은 이제껏 무급으로 해왔던 것이자 여성이라면 당연히 수행해야만 한다고 기대되던 성질의 것이다. 사적 영역에 공적인 무언가가, 그것도 돈이 도입된다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기란 껄끄러울 수밖에. 여성 진영에서도 이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자칫하면 가사노동이 아예 여성만이 수행해야만 하는 것으로 고착화 될 수도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일로 남았다.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남성의 가사노동 유입률은 저조하기만 하다.

저자가 언급한 또 한 가지는 기본소득의 도입이다. 아무것도 생산 않는 한량에게까지 돈을 쥐어주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짓인가. 이 또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이를 돈으로 보상 받는다는 우리의 오랜 사고에 반하는 조치이기에 반발이 적잖다. 저자는 가정 내에서의 휴식이나 가사노동 등이 담당하는 재생산 측면에 대한 보상을 언급했다. 꼭 노동력의 재생산이 아니더라도 소진된 인간을 재생산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미 인간이 담당해온 많은 영역이 기기의 몫이 되었고, 앞으로도 이와 같은 흐름은 계속되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인간의 가치가 꼭 노동력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 여전히 사람들은 파이를 키울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노동(일)에서 삶으로 시선을 돌리기에 적절한 때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십 년, 이십 년 후에 우리가 직업이라 여겨온 것들이 여전히 직업일지가 궁금하다. 안정적인 직업이 사라지는 추세인지라 떠밀리듯 새로운 길을 개척중인 사람들도 꽤 된다. 지금은 이를 고행으로 부르지만 전형적인 노동에 갇히지 아니한 사람들이 머지 않아 주류를 이루게 될 거 같다. 생존을 위한 노동도 물론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옷을 바꿔 입듯 자신이 원하는 여러 일을 오가는 형태의 삶이 보편화될 것이다. 즐기면서 행할 수 있는 일, 과연 가능할까? 노동이 낳는 인간소외, 언젠가는 끝나길 바란다.

 

이달의 사락 q*****2 2017.01.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