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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 사람을 그 나라 사람이게 하는 것. 그것은 교육과 문화(생활)이다. 사람이 늑대굴에서 성장하면 늑대가 되고.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바로 입양되어 미국에서 크면 미국 사람이 된다. 바로 교육과 생활을 늑대식, 혹은 미국식으로 받고 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이 땅에 5,000년 간 살아온 우리 조상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일단 문화(생활)을 보면, 가장 가까이 접하는 의식주의 생활 중 식을 제외한 의와 주가 완전한 서양식, 혹은 변형된 서양식이다. 그 외 사회를 장악한 모든 음악, 미술, 체육, 여가 등등은 말할 것도 없고. 두 번째, 교육 또한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서양식 교육을 받는다. 불과 백년 전까지 글씨를 익힌 사람이 가장 먼저 배운 동몽선습이나, 사자소학등은 배우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사고체계와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교육과 생활이 이 땅에 오천 년간 살아온 우리 조상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은 지금의 우리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실마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서양인 반, 일본인 반 정도의 성향/시각을 가진 사람들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서양인의 눈에 비친 우리 조선이, 오히려 우리 조상이 바라본 우리나라보다 더 우리 시각에 맞기에(우리 조상은 이상하다 여기지 않은 것을 서양인들은 보고 이상하게 여겼고, 같은 기록을 보면 우리도 이상하게 여긴다. 우리는 서양인 반, 일본인 반의 사고 체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이런 기록을 찾아보면 우리 조상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그런 측면에서 괜찮지 않을까 해서 찾아본 책. 서양인의 조선살이다. 이 책은 소제목처럼 구한말 한국에서 체류했던 서양인들의 일상에 관한 책인데, 문제는 내용이 너무나 그 제목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그당시 서양인의 눈으로 본, 우리나라, 근대화 되기 전 진짜 모습이 남아 있는 우리 나라에 초점을 맞췄으면 훨씬 풍부하고 좋은 내용으로 채울 수 있었을텐데, 저자가 광범위하게 자료조사한 것의 초점이 우리나라보다는 서양인들 그 자체에 맞춰져있는 것이 문제다. 그러다보니 책 내용 거의 전부가 그 서양인들 각각의 배경, 혹은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신변잡기 등이다. 지금 좋아하는 유명인이 있다 하여도, 그들의 저작이나 전공활동에 끌리거나 관심이 있는 것이지 그들의 신변잡기에 끌리는 것은 아니기에, 같은 논리로 구한말 서양인들의 신변잡기는 내게 전혀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였다. 전체적으로 많이 아쉬운 책이다. 갑신정변 때 총칼에 맞은 민영익의 일화나, 내가 궁금해 하던 우리 전통의 합법적 돌싸움(여기에서 사람이 죽는 것이 다반사였으나 문제되지 않았다.)등등에 대한 기록이 단편 적으로 나와있어 일부 도움이 되긴 하였으나, 이러한 부분은 너무나 미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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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882년 朝美守護通商條約이 체결 된 시기부터 1910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주로 서울에서 거주했던 다양한 서양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 한국에 살았던 서양인들은 갓 교류의 문을 연 가난한 변방의 나라 조선에 부임한 외교관과 가족, 조선 왕실의 고문, 또는 극동의 미개한 나라에서의 새로운 기회를 찾아 흘러 온 낭인같은 서양인들, 그리고 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당시 언급 된 사람들의 자서전, 여행기, 각종 메모, 사진, 해외 일간지의 조선 관련 기사와 그 후손들의 인터뷰등 해외 자료를 중심으로 집필이 되어 그동안 국내 매체를 통해 아주 단편적으로만 알려져 왔던 조선말기 서양인들에 대해 새로 접하는 사실들이 많다. 또 타자의 눈으로 바라 본 궁금하기 짝이 없는 불과 100년전의 우리 모습의 일부나마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운 책이다. 불과 100년전의 우리 이야기인데도 상당 부분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생경함이 일어난다. 또 이야기중 일부는 여전히 아직 우리 곁에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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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글들>
안나 역시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통역자로 봉사하며, 환자들에게 고통과 슬픔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는 항상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서울 사람들은 여름밤이되면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야외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전차노선 주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간혹 철로를 베개 삼아 잠을 자기도 했다. 철로는 한국인들이 이용하는 전통적인 베개와 크기나 형태가 유사했다. 알렌이 보기에도 "철로와 토마토 캔은 가난한 사람들이 베개 대신 사용하기 아주 좋은 물건"이었다. 더구나 철로의 냉기는 한 여름 밤 무더운 몸을 식혀주는 훌륭한 안식처가 되었다. 1901년 여름 서울을 방문한 한 미국인은 "우리는 기운을 잃은 유령들처럼, 차디 찬 그리고 그들에게는 안락한 철로에 목을 베고 하얀 옷을 입은 채 길게 누워 있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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