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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자본론]. 아마 웬만한 사람은 집에 이 책 한권은 가지고 있을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드물수밖에 없을 것이고.. 전체 3권, 30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을 나도 완독을 해보지는 못했다. 그나마 읽겠다고 덤볐던것도 학교 다닐때 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읽겠다고 벼르기만 했었는데, 사실 읽기가 조금은 따분하고, 나오는 용어들에 대한 개념이 어려운지라, 차일피일 하고 있던중 [자본론]에 나오는 용어의 개념을 정리했다 하기에 이 책을 냉큼 집어 들었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엄청난 분량에 생소한 단어들, 그리고 난해한 문장들로 되어있어 책을 접하게 되면 그 누구라도 주눅이 들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핵심적인 내용만 뽑아서 이해하기 쉬운 글로 재구성 해 보았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서 [자본론]의 핵심내용을 이해하고, 그리고 더욱 관심이 생긴다면 [자본론]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연구한 것은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자본주의이다. 자신이 살던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탄생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마르크스는 그 현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였다. 과연 자본주의의 본질은 무엇이고, 앞으로 자본주의의 진행은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지.. 사람들은 [자본론]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서, 이 책 얘기만 나오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이미 한물간 사회주의에 관한 이야기라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자본론]에는 자본주의 이야기 빼놓고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다. 저자는 우리들의 눈에 자본주의가 아름다워 보이면 [자본론]을 배우거나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냥 그곳에서 잘살면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점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다면 [자본론]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것 이라고 말한다. 책은 학생들이 질문하고 선생님이 대답하는 강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 얇은 책 한 권으로 [자본론]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줄 수는 없는 것이고, [자본론]에 나오는 기본적인 용어들의 개념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된다. 원숭이도 이해한다는데,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리 없다. 혹 사람이래서 이해하기 어려울려나.. 사회형태를 구분하는 기준은 생산관계이고, 생산관계란 생산활동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는 관계를 뜻한다고 한다. 노예제 사회는 노예주와 노예, 봉건제사회는 봉건영주와 농노,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바로 그것이다. 노예제사회, 봉건제사회는 노예와 농노의 착취 위에 노예주와 봉건영주의 부가 축적되는 사회이고, 그것이 눈에 들어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쉽사리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되는 모든 상품들은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를 가지게 된다. 상품이 교환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노동의 성과물이기 때문이며, 교환비율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노동가치론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은 쉽게 말해서 상품의 가치는 노동에서 나온다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상품은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을 지니는데, 유통과정에서는 어떠한 새로운 가치도, 이윤도 창출될 수 없다고 한다. 자본은 자본의 일반공식(M-C-M’)에 따라 생산과정을 거쳐 새로운 상품을 생산, 판매하여 자본의 증가를 이루는데, 이 자본의 증가에 해당하는 이윤의 원천은 노동자의 노동에 있다고 한다. 노동자가 임금으로 받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면서 생긴 노동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자의 노동시간 중 자신의 임금에 해당하는 상품생산에 기여한 노동을 필요노동이라 하고, 온전히 임금을 초과하여 상품생산에 기여한 부분을 잉여노동이라고 마르크스는 정의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이 노동의 대가가 아닌 노동력의 대가임을 밝혀냈다고 한다.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라는 것이 결국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 이라고 한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간다는 점에서 노예주나 봉건영주와 다를 바 없으며, 이윤이라는 딱지가 붙은 잉여가치가 자본주의 사회의 은폐된 착취구조라고 마르크스는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마르크스는 더 많은 잉여가치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자본가가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고 노동자를 끝없이 착취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부를 더욱 늘리고 호의호식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지 않고,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러한 생존의 법칙 속에서 자본가의 인간성은 점점 자본의 무한한 탐욕을 닮아간다고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수 있지만 노동시간의 연장을통한 잉여가치를 추구하는 방식, 즉 잉여가치의 절대량을 증가시켜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을 마르크스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창출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임금삭감의 효과가있는 노동시간의 연장에따른 절대적 잉여가치의 창출은 그한계가 있다고한다. 그런가하면 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산력의 증가는 필요노동시간을 단축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고, 이것은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착취해가는 몫인 잉여노동을 증가시켜 잉여가치를 창출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이라고하며, 이에따라 늘어나는 빈부격차는 인플레이션과 생활필수품 가격의 하락으로 은폐할수 있다고한다. 쉽게얘기해서 절대적 잉여가치의 창출이 일을 더오래시켜서 이윤을 뽑아내는것이라면, 상대적 잉여가치의 창출은 생산력을 증가시켜 노동자의몫을 줄이는것이라고 한다. 상품을 생산할 때 필요한 초기자본금 중에서 자신의 교환가치를 상품에 그대로 이전시키는 자본을 불변자본이라고 하며, 기계나 원료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런가 하면 노동자의 임금에 해당하는 상품 생산에 기여한 부분, 즉 필요노동에 해당되는 부분을 가변자본이라고 하고, 잉여노동에 해당되는 부분을 잉여가치라고 한다. 이 잉여가치의 크기를 나타내는 용어가 이윤율과 착취율인데 이것은 보는 관점에 따른 것이다. 이윤율은 잉여가치가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합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자본가의 관점에서 본것 이라면, 착취율은 가변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율, 즉 잉여노동/필요노동의 비율로 노동자의 입장에서 본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익이 서로 근본적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 것으로, 마르크스는 이를 잉여가치율 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또 자본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실업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와 독점자본이 어떻게 출현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윤을 전혀 재투자하지 않고 매일매일 생산과 판매행위를 반복하는 것을 단순재생산이라고 하며, 반면에 이윤을 재투자하여 사업의 규모가 커지는 것을 확대재생산이라고 한다. 또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비율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라고 하며, 가변자본에 대한 불변자본의 비율이 상승하는 것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 되었다고 말한다고 한다. 이것은 기술의 발달이나, 새로운 설비의 발명 등으로 자본가의 투자액 중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줄어드는 것으로, 일자리를 축소하여 실업자를 양산하는 근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마르크스는 이들을 산업예비군이라 불렀으며, 기술의 발달이 노동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를 일자리에서 쫓아내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와 같이 가변자본의 비율이 낮아질수록 이윤율은 하락한다고 한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이윤율 하락경향의 법칙이라 불렀으며, 잉여가치는 노동력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윤율은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나, 생산성의 발달은 착취율을 증가시켜 낮아진 그 이윤율을 상쇄 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렇게 확대재생산에 의해 자본의 크기를 불리는 과정을 마르크스는 자본의 집적이라 하였으며, 그와는 달리 인수, 합병을 통하여 자본의 덩치를 불려나가는 방법을 자본의 집중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자본의 집적 혹은 집중과정을 통하여 기업이 덩치를 키우고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얻게 되며, 바로 이러한 자본이 독점자본이 된다고 한다. 저자는 이밖에도 제국주의와 국가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론]의 방대한 내용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고, 이 정도의 용어에 대한 개념만 있다면 [자본론]을 읽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 이라고 말한다. 어디까지나 저자의 생각이겠지만..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하여 분석을 하였을 뿐이라고 한다. 이것을 해석하는 것은 바로 책을 읽는 우리들의 몫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본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주인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를 바꿀 이유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주체는 노동자일수 밖에 없으며, 저자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예로 들며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또 [자본론]에서 알려주는 이러한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을 학교는, 교과서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저 시장의 보이지 않는손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결정한다고 할 뿐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비정규직 문제가 왜 발생하는가? 빈부격차가 왜 생기는가? 그 원인에 대해서 알수가 없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자본론]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며, 지금의 세상에서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본론]의 용어에 대한 개념을 머리에 넣고, 다시 [자본론]에 도전해 볼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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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고 싶었다. 하지만, 나쁜사마리아인들, 혹은 제국의 미래 등과 같은 류의 책을 보다 더 쉽게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자본론의 핵심 이론 정도는 머리속에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역시 학교 다닐때 자본론을 한번 읽어볼까 깔짝대다가 포기하고 만.... 저자의 들어가는 글의 전형적인 반응3번에 해당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핵심만을 요약하고 또 알기쉽게 풀어 쓴 본 도서는 내게 상당한 도움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느낀 점 중의 하나는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정곡을 찌르며 기술하고자 하려면 저자는 얼마나 더 깊은 이해와 지식을 지녀야 할까? 라는 생각 하나와, 또 그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 할 지라도(예컨대, 기존에 나와 있는 자본론의 저자들?ㅎㅎ) 이토록 읽는 이의 입장과 눈높이에 맞추어 기술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 해 보았다.
저자는 내가 가입해 있는 싸이월드의 한 클럽 <함께 만드는 참세상>의 주 일원으로, 일전에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라는 저자의 책을 읽으며 그동안 서방언론의 일방성에 의해 알지 못했던 사실들과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었고, 더구나 그 내용에 감동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새록하다.
좋은 책....추천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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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의 핵심을 찌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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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자본론>을 탐독하기에 앞서서 <자본론>을 먼저 읽는 사람들의 '생각'을 먼저 살펴보려 했다. 그 가운데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두 번째 책'이기도 하다. 글쓴이 임승수도 고병권에 이어 두 번째로 삼았다. 거두절미하고 아직도 여전히 <자본론>은커녕 '마르크스'도 잘 모르겠다. 아래에 찌끄려놓은 글들은 깊이 이해하고 써놓은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베껴 썼다'는 것을 고백하는 바다. 꼴랑 책 2권 읽고 통달할 실력이면 애써 감춰둔 '리뷰천재'라는 별명을 다시 까발렸을 것이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은 점은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에는 오직 '자본주의'에 대한 내용만 나온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만약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한 내용을 썼다면 제목을 <자본론>이라고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오해를 하는 까닭은 바로 마르크스가 앵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선언>에서 기인한다. 물론 '마르크스 사상'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도 인연이 깊다. 그러니 그가 쓴 <자본론>도 그럴 것이라는 오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모순과 폐해'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을 뿐이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나아갈 길'을 제시까지 하며 '자본주의'가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뉘앙스까지 느낄 수 있는 책이란다. 그러니 제발 <자본론>을 읽지도 않고 무턱대고 비판과 비난을 하지 말아줬으면 한단다.
그런데도 <자본론>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끝나질 않는다. 그 까닭은 '또'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까닭은 바로 '자본가'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고 '착취'하고 있다고 말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자본가의 착취'를 수학공식까지 나열하며 꼼꼼하게 비판하였다.
M-C(LP, MP)-P- C´-M´
이게 무슨 공식인지는 몰라도 된다. 솔직히 말하면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간략히 설명하면, '자본(M)을 투자해서, 노동력(C)과 결합하면, 더 많은 자본(M´)'이 나온다는 자본의 기본공식을 좀더 '일반화'시킨 공식인데, 노동력(C)를 좀더 세분화하면 노동력(LP)과 생산수단(MP), 그리고 생산과정(P) 등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설명인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설명을 하려고 한다. 지금 단계에서는 저게 당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의 공식을 '인용'해서 또 다른 공식으로 '변형'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설명하려 들수록 혼란만 가중시킬 것 같아서 과감히 삭제하려고 한다.
암튼 위와 같은 '공식'을 거쳐 자본가는 노동자의 '생산량'중 대부분을 착취하기 때문에 고대사회의 노예, 봉건사회의 농노와 다를 바가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고 '자본가'를 비판한다. 그래서 쉽게 설명하면, 자본가는 노동자들이 '더 많은 노동력'을 제공해서 '더 많은 생산량'을 달성하였는데도 공평하게 나눠주지 않고 대부분을 '착취'한다고 한다.
그런데 자본가 나름의 사정이 발동한다는 점도 동시에 지적한다.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안에서 자본가들끼리 '무한경쟁'을 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생산량을 착취하지 않고서는 자본가들조차 살아남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맘씨 좋은 사장님은 악랄한 자본가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끝내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구조상 탐욕스런 자본가가 나타날 수밖에 없단다.
그렇다면 '악랄한 자본가'를 인정하고 '대다수의 노동자'는 이런 부당한 착취구조를 마냥 견뎌야만 하는가? 글쓴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도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자본가(기업가)'와 '정치가'의 유착을 경계하고 노동자의 편을 들지 않는 기업가들을 규제할 수 있는 정치가를 '선거'를 통해서 뽑으면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노동자'들은 악랄한 자본가들의 착취를 받으면서도 악랄한 자본가의 편을 드는 '정치가'를 지지하고 뽑아주는가? 글쓴이는 그 까닭을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난 알 것도 같다. 그동안 '언론'이 그런 부당한 일이 일어나도록 '세뇌'를 시켰기 때문이라고 본다. 보수 정치세력과 악랄한 기업인을 지지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세뇌시킨 것이 누구냔 말이다.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재벌이 성장시켰다'...이런 웃긴 '뉴스'를 몇 십 년동안이나 듣고 자란 세대는 좀처럼 이런 '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찌해야 할까? 누군가의 우려처럼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불편한 세력들을 어쩔 수 없이 지지해야 한단 말인가? 놉!! 난 절대로 아니라고 본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는 기업은 내쫓아야 한다. 또한 그런 기업의 뒷배가 되어 뒷돈을 챙기려는 못난 정치인들도 솎아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나라까지 팔아먹을 기세인 '언론'도 발본색원해서 뿌리 뽑아야 한다.
아쉽게도 이 책은 2008년 초판본이다. 2016년에 '새로 쓴' 판본이 나왔다고 하니 다시 읽고 다시 써보려 한다. 자본주의를 대신할 것이 없다면 자본주의의 모순은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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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경제학에 관심일 가져야할 때이다.
전 세계 근로인민대중들은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미제국주의의 종말을 감상하고 있다.
매우 시의적잘하게 발간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임승수씨의 서적은 발간시기의 적절성으로부터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ㅋ
하지만 임승수씨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독자들에 대한 접근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난해한 내용들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여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
그것은 저자의 강연을 직접 들어본다면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이 분의 강연을 듣는것이 이 책한권 읽는 만큼이나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를 칭찬하려고 남기는 리뷰는 아닌데 나의 평가로 하여금 이 책이 많은 청소년들과 젊은이들 사이에 읽혔으면 하는 것이 진정한 바람이다.
이젠 꿈을 갖아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꿈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들, 즉 불의, 불평등, 불공정에 분노하고 저항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 줄 것이다. 현실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한 가장 확실한 근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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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은 개인적으로 그동안 막연히 부조리 하다고 생각해왔던,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미 140년도 전에 자본주의의 맹점에 대해서 예리하게 분석한 마르크스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이전에 자본론을 읽어본적은 없지만 이 책은 정말 자본론의 핵심만을 읽기 쉽게 풀어썼다. 초등고를 지나며 배워온 거짓된 자본주의의 모습이 아니라 참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꼭 한번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막연히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것을 명백하게 밝혀줄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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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다니며 성경을 읽는 행위나 '자본론'을 읽는 행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렇게 비유하면 맑스에게 결례가 될까? 어쨌든 우리는 항상-이미 또 다른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자본론'을 짚어 들었다. 감히 원전을 짚어 들지 못하고 변두리를 겉돈지도 10년이 넘었다. 비겁하다고? 그래도 어쩌랴. 포기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답답하고, 뛰어들자니 용기가 없는 것을.
이 책은 자본론을 모르는 독자에게 쉽게 자본론에 다가서게 해 준다. 자본론의 몇몇 핵심 개념을 정리했다. 자본론이 현재에 얼마나 유효성을 갖느냐는 시대마다 의견이 달랐다. 90년대 들어 자본론은 거의 잊혀지는 분위기였다. 역설적으로 21세기가 무르익는 시점에서 자본이라는 유령이 다시 한국 사회 아니 세계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경쟁을 통해서는 누구나 천국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이상, 우리는 다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봉'이라는 괴물을 고찰해야 한다. 놈은 누구이길래 이다지도 인간을 코너로 모는가. 다만, 그 고찰을 어느 특정한 사람에 의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은 불특정 다수 누구나 자본론에 대해 쉽게 고민하게 해 준다.
책은 자본론 전체를 다루고 있다고 하나, 내가 아는 선에서 얘기하자면 자본론 1권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그 이후의 공황 부분과 저자 나름의 전망은 간단하게 다루고 있다. 하긴 1권 부분이 가장 어려우니 이러한 편제도 충분히 납득할 만 하다.
1) 자본주의는 모든 대상을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 가치로 파악한다. 즉, 모든 것을 화폐로 환원시켜 버린다. 2) 자본가의 이윤은 노동이라는 가변자본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노동착취는 필연적이다. 3) 기계화라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통해 이윤률을 높이려고 하나, 이윤률 저하는 필연적이다. 이윤률 저하가 저지된다고 해도 노동으로부터의 인간 소외는 필연적이다.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 몇 부분 있었다. 허나, 이 책이 자본론 입문서라는 것을 기억해 두자. 자본론에 쉽게 접근하고 싶은 독자나 자본론을 조금 아는 데 한 번 더 정리하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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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은 20세기를 뒤흔들었던 이론이다. 이 이론을 근간으로 혁명이 일어나고 동유럽, 러시아, 중국, 북한 등이 공산화 되었고 그 이후에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공산화되기에 이른다. 그럼 <자본론>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자본론>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따라서 원숭이도 이해할 정도로 <자본론>을 쉽게 해설하려고 노력했다. 책의 구성은 <자본론>를 강의하는 원숭이와 이를 수강하는 대학생들의 문답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 <자본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자본론>에서 이윤의 획득이 방법론적으로 문제가 되는 시기는 산업혁명 이후부터다. 이전과 달리 산업혁명 이후 기술이 발전해서 제품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이를 위해 공장에 다수의 노동자를 고용하게 된다. 이 들은 제품 생산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임금으로 받아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의 대가'라는 것이다. 제품에는 원가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는 개략적으로 임금, 공장, 기계 등의 감가상각, 원료비등이 있다. 원가는 (임금+투자비 감가상각+원료비)/생산 제품 개수다. 8시간 노동을 통해 8개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고 하루 노동력의 대가로 제품 한 개의 원가를 임금으로 받아간다면, 나머지 7개의 제품을 생산하는데 들어간 임금은 이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것들은 고정비이지만, 노동력은 가변 비용이기 때문에 이윤 극대화를 위해 임금을 ‘착취’해야 한다는 것이 <자본론>의 근간이다. 일은 8 노동시간을 제공했지만, 임금은 1 노동시간이기 때문에 노동자는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노동력을 착취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같은 임금에 노동 시간을 늘리는 방법, 최신 기계를 들여와 단위 시간에 생산하는 양을 늘리는 방법, 성과제를 도입하여 자발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도록 하는 방법 등 많다. <자본론>에 의하면 정교하게 고안된 방법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은 노동자 혁명은 고도로 산업화가 진행된 나라에서 발생된다고 했다. 이 책에서도 이윤율 감소를 다루면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직까지 고도로 산업화된 나라에서 혁명이 발생한 나라는 없다. 이유는 그런 나라들이 자본가의 무한의 이윤 추구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자자가 사회주의 혁명의 예로 설명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도 석유의 국유화로 확보된 자금을 무상교육, 무상의료에 사용한다. 이 나라도 고도의 산업화와는 멀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는 천연자원과 같은 자연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부는 무한 경쟁에서 얻어와야 하는 상황이다. 과연 <자본론>의 궁극의 정점인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복지를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본론>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노동자 권익이나 복지 향상이 목적이 아니라, 국가를 합법적 또는 혁명적 방법으로 전복시켜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실시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자본론>은 이론이다. 이론은 법칙이 아니다. 법칙처럼 공식에 넣으면 항상 같은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론 자체가 아무리 그럴 듯 해도 말이다. 산업 혁명 시대의 부조리로 탄생한 이론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며 광신적 사이비 종교를 연상시키는 작태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향상 중용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병폐가 있으면, 이 것이 더 나은 해법을 제시할 수는 있다.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자본론>에 집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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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주 사회주의 반개혁 386 신권력세력의 또다른 이름 자칭 진보라면 꼭 읽어봐야 하는책~
세상이 변했는데, 아직도 과거의 이념에 사로잡혀 사는 것도 나름 낭만적 운치가 있는 삶이 아닐까?
지금의 경제위기는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생적 방어기제가 잘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따라서 현대적 분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겠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면, 안정된 완성형 자본주의 시스템이 고착화 될뿐이다.
차라리 벌써 한세기 전에 위대한 마르크스는 벌써 자본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자본론에서 이미 지금의 문제를 예견했다고 믿는편이 편할것이다. 마치 UFO가 없다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각박하게 사는것보다. 아무 근거없어도, 그냥 UFO가 있다고 믿는것이 더편할때도 있는것 처럼~
이책은 현제의 금융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더이상 팔리지 않을것이다. 그러니, 자본론을 조금이라도 보고싶다면, 지금 사서 읽기를 강추한다. 원래, 귀신이야기는 캄캄한 밤에 읽어야 맛이 나는 법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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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임용을 공부하면서 교육사회학에서 문화재생산이론, 사회재생산이론 등을
공부하며 배운 것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이란 것이 소위 있는 자들,
가진 자들이 가진 문화, 지식을 후대에 남겨 가르치는 것이라 했다.
영교육과정도 배웠다. 의도적으로 배제된 교육과정.
모두 기득권층을 위한 것이라 했다.
교육학을 공부할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뼈에 사무치던지.
사회주의라고 하면 무조건 빨갱이, 북한 등만 생각하는 우리 엄마도 다르지 않다.
과연 교육의 힘이란 대단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것은 자본가들이 교묘히 위장하는 위장술이 뛰어나다는 것.
그냥 들어보면 정말 그럴 듯하고 노동자를 위한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
비단 자본가 뿐 아니겠지. 정치인들도 그렇겠지.
순간 이 사회 모두가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가에게 그들과 결탁한 정치인들에게 속고 있다는 생각이.
공부를 해야겠다. 무지에서 탈출해야겠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그 말이 이해가 된다.
난 최소한 지금 나의 무지는 인지하고 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