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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은 어떠한 형태일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반영한다. 그 방법은 다
양하고, 그 이야기들은 다양하지만, 그 어떤 이야기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완
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적이지 않은 환상적인 이야기나, 때로
는 판타지에서 우리의 너무나 적나라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우리의 세상을
보여주는 그 많은 이야기들은 또한 그 세상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 직설적으로 쏟아
내거나, 조금 돌려서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을 쓰든 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들은 독자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아낼 것이라는 것을 믿고 이야
기를 풀어낸다. 이 작품 아쿠메츠도 그러하다.
아쿠메츠는 직설적이다. 그 이야기의 시작에서부터 야구에 비유하자면 마치 직구만
으로 타자를 상대하는 투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렇게 작가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직설적인 방법으로 쏟아낸다. 그리고 자신이
본 그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너무나 과격한 방법으로 다시 한 번 쏟아
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보여주는 그 모든 방법들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렇게라도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이 잘못된 세상
을 한 번 더 다시 생각해 보라는 의미에서 가장 직설적이과 과격한 방법을 보인 것이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중반까지 이야기를 이끈 아쿠메츠는 중반을 넘어서면 다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전까지 결코 단죄당하지 않고, 너무나 당당한, 그리고 그들의 잘
못이 알려져도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는 그 거대한 부패에 대해서 직설적인 단죄를 하
던 아쿠메츠는 이제 그 모든 '악'을 단죄하려는 결의를 그 부패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그 요구의 끝에서 아쿠메츠는 스스로의 결의를 증명
하는 마지막 행동을 보인다. 결국 아쿠메츠의 그 모든 행동들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
온다. 하지만 분명 아쿠메츠는 새롭게 시작될 세상에 대한 기대를 보여준다. 악으로
규정한 그 존재들을 자신의 손으로 단죄한 아쿠메츠의 이야기는, 이제 다시 그 모습
을 보고, 그 세상을 보면서 그러한 세상을 바꾸려는 마음을 먹은 이들의 손을 통해서
언제나 단죄하는 그 세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아쿠메츠는 주
인이 없는 세상에 진짜 주인이 누군인지를 이야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