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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느 책을 읽다가 찜해두었던 것 같은데, 오래된 탓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읽어본 적지 않은 책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책읽기였습니다. 심지어는 말미에 붙은 해설마저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책은 아마도, 여기에 표현된 사상 내지는 그와 비슷한 사상을 스스로 이미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이해할 것이다.(31쪽)”라는 구절로 머리말을 열었습니다. 버트란드 러셀이 쓴 이 책에 대한 해설에서도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지부터 깨달아야 한다.(11쪽)”라고 적혀있습니다. 설마 했던 것이지만, 저는 이 책에 담긴 주제를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본문의 모두에 적은 “세계는 성립되어 있는 사항들의 총체이다. 세계는 사실의 총체이지, 사물의 총체가 아니다. 세계는 사실을 통해, 그리고 그것이 사실 전부라는 점을 통해 규정된다. 왜냐하면 사실의 총체는 무엇이 성립되어 있는지를 규정하고, 또 무엇이 성립되지 않았는지도 규정하기 때문이다. 논리공간 안에 있는 사실이 곧 세계이다. 세계는 사실로 분해된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성립되거나 성립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은 그래도 있을 수 있다.(33쪽)”라는 구절이 저자가 「논리철학논고」에서 입증하려는 바였나 봅니다.
책읽기를 시작하자 이내 곤혹스러운 상태에 빠진 이유는 명제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 전개되다가 기호와 함수를 들어 설명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는 함수가 아닌 정의가 분명치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논리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계산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명제가 논리학에 속하는지 아닌지는 그 상징의 논리학적 특성을 계산함으로써 알 수 있다.(103쪽)”면서 말입니다. 다만 기억에 남는 부분은 「논리철학논고」을 마무리하면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114쪽)”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저자는 글을 간략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다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읽어가다 보면 전후 맥락의 연결이 모호한 부분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아마도 철학이나 논리학에 대한 저의 앎이 태부족이라서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철학탐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철학탐구」에서는 제가 오래전에 수필에서 적었던 견월망지에 관하여 생각할 때 참고할만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35항의 “물론 모양을 가리키기 위한 ‘특정적인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한다.”(145쪽)로 시작하는 부분입니다. 누리방에서 찾은 능엄경과 능가경에 나오는 견월망지에 대한 자료를 비롯하여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지 말고,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 달을 볼 수 있다.”는 잠언도 기억할만합니다.
세 번째 「반철학적 단장(反哲學的 斷章)」은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유고 가운데 철학적 문장을 골라 엮은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책을 쓰고 있기 때문인지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책을 쓰기 시작해야 좋은가를 잘 모르는 것은 아직 명석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로서는 철학 관계의 문장에서, 쓰고 말한 문장에서, 이른바 갖가지 서책을 가지고 시작했으면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여기에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는 어려움을 만난다. 그리되면 이러한 어려움에서 비로서 시작해야 할는지 모른다.(466쪽)”
앞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이 책의 말미에 붙인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와 사상”은 누구의 글인지 밝히지 않아서 쫌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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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리뷰 현대 서양 철학자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는 비트겐슈타인의 사유체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입니다. 그의 철학은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이 두 시기 모두 독자의 고찰에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바로 전기 철학의 핵심인 "논리철학논고"에서는 언어와 세계의 대응 관계를 다룹니다. 그는 언어를 세계를 비추는 그림이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명제인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종교적 도그마나 형이상학적 가스라이팅, 그리고 과학이 침범하는 도덕적 영역 등은 사실 언어로 명료하게 담을 수 없는 영역입니다. 지배층이 이 영역을 언어로 규정하려 드는 것 자체가 비트겐슈타인 입장에서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만입니다. 후기 철학인 "철학적 탐구"에 이르면 그는 언어 게임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언어의 의미는 고정된 정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 속에서 어떻게 쓰이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의 언어나 정치적 올바름의 언어, 혹은 사대부의 예법은 각기 다른 규칙을 가진 언어 게임입니다. 지배 구조는 특정 언어 게임의 규칙을 절대적인 진리인 것처럼 강요함으로써 대중을 현혹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목적이 파리병에 갇힌 파리에게 빠져나갈 길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를 가두고 있는 언어적 프레임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병 밖으로 나오는 것이 진정한 해방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중세 라틴어 혹은 동양의 한자어 기반의 지식 체계나 현대의 세련된 선동술은 일종의 정교한 언어 게임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시각을 빌리면, 우리는 그들이 만든 단어의 정의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실제 삶의 현장에서 어떤 의도로 사용되는지를 관찰해야 합니다. 언어의 신비주의를 걷어내고 그것이 단순한 도구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사상적 사기극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인식의 한계를 그었다면, 비트겐슈타인은 우리 언어의 한계를 그었습니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는 그의 말처럼, 지배자들이 우리의 언어를 통제하려는 이유는 결국 우리의 세계를 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언어의 덫을 활용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정치적 혹은 과학적 용어들이 어떻게 우리의 사고를 제한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해 볼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책은 그가 말한 삶의 형태라는 개념이 현대 세계에서 어떻게 새로운 생존의 문법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도록 제촉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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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는 그 폭과 범위와 깊이에서 철학계의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질 만하다. 그것이 다루는 문제들에 궁극적인 진리를 제시한다고 평가되는 되지 않든 간에 말이다. 이 책은 기호 체계의 원리들 및 어떤 언어에서건 말과 사물들 사이에 이루어져야 할 필연적 관계들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이러한 탐구 결과를 전통 철학의 다양한 부문들에 적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