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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책을 읽으면 자꾸 부모의 입장에서 해석하게 된다. 되도록 또래 독자의 입장에서 읽으려고 애써보지만 어느 순간 어른 입장으로 돌아가곤 한다. 다른 주제는 안 그런데 유독 성을 다룬 책이 그렇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드러내지 못하는 주제여서 그럴 수도 있고, 시간의 변화에 유독 영향을 많이 받는 주제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샘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그냥 줄거리를 따라갔는데 읽고 나서 샘과 약간의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자 문화차이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절감한다. 우리나라 청소년 책에서 청소년의 임신을 다룬 책은 분위기가 하나같이 암울하며 그 자체로 커다란 문젯거리로 취급된다. 실수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여기서도 브리타니의 부모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브리타니에게 다른 곳으로 이사가면 아기 낳은 사실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그 밖의 많은 부분에서는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우선 십대의 성, 특히 임신을 다루면서 남학생이 주인공이 되어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우리는 대부분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등식을 기정사실화하고 피해에만 초점을 맞추지는 않나 싶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러한 도덕적 잣대를 일체 배제한 채 이미 임신을 한 다음에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그것도 아주 침착하고 담담하고 경쾌하게. 여자 친구인 브리타니가 아기를 입양보내려고 하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자기가 키우겠다고 한 샘과, 똑똑한 학생이었지만 실수로 아기를 낳게 된 클레어가 당당하게 현실을 헤쳐나가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가문의 수치로 취급되어 얼굴 들고 못 다닐 텐데. 정말 문화가 아주 많이 다르다. 그렇다고 외국의 모든 사람들이 이 책에서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샘의 아빠가 샘을 교육하는 방식이다. 당장 학생이기 때문에 맥스를 키울 경제적 능력이 없기에 일단 아버지에게 돈을 빌리고 나중에 갚기로 한다. 뭐, 그 정도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샘이 대학을 가고 싶어하자 그러면 맥스는 어떻게 키울 것이냐며 반대하는 부분은 요즘 우리 사회와 견주어 볼 때 많이 다르다. 그 정도야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우리가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주변에 재미교포인 분이 있는데 정말 이해 안 가는 부분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는데도 왜 한 집에서 사느냐며 아주 의아해하는 것을 보면 짐작이 간다.
그 밖에도 아이 키우면서 다닐 수 있는 학교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또 클레어가 아기에 관한 일을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고 엄마 간섭을 받는 것을 못 견뎌하는 부분이나 청소년 시기의 임신이라는 어찌보면 아주 커다란 일을 겪었는데도 부모는 전면에 거의 드러나지 않는 점들에서 문화차이를 느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사회가 마냥 부럽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쩌면 청소년들은 그럴 수도 있겠으나 아직은 그래도 우리가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렇게 풀어가는 방식이 부러울 따름이다. 고등학생이면서 아기를 키우는 모습을 지나치게 비관적이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외면하면서까지 낙천적으로 그리지도 않는다. 아기에 대한 의무감, 사랑과 청소년 시기를 잃은 것 같은 좌절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도 고스란히 그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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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도 눈치챘듯이 미혼모 미혼부 이야기이다. 나도 중학생이 딸애가 있어서 나중에 이성교제를 한다면 어떤 점을 조심해야 되는지 말로 해줘야 되는데 그게 생각처럼 입으로 잘 안나온다. 그래서 책을 사게 되었고 함께 얘기를 하게 되었다. 열일곱 살의 샘이 아빠로서 그리고 학생으로서 겪는 이야기를 청소년의 눈으로 애기를 풀어놓는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이 임신을 하게 되면 학교를 그만 둘 수 밖에 없는데 미국에서는 대안학교가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열일곱의 나이에 자기 하고 싶은 꿈을 접어야하고 그래서 대학진학을 포기해야하며 아이 양욱을 위해 공사판에 가야한다는 샘. 결국은 아이를 기르기엔 자신이 자격이 없음을 깨닫고 기관에 입양을 하게 되는 곳에서 맘이 아팠다. 단짝 친구인 앤디와 농구를 하며 뒹굴며 얼마나 이런 시간이 갖고 싶은지..샘의 생각을 보며 청소년들의 이성교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책은 어떻게 하라 이러면 안된다라고 꼭집어 얘기를 하지않고 샘의 생활을 통해 청소년시기에 아이의 부모가 되면 어떠하다는걸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올바른 이성교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지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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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살이면 고등학생이다. 지금 열여덟인 딸아이는 이제 고3을 앞두고 입시라는 제도로 마음이 무겁다. 그런 아이가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된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 우리 아이는 그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책은 열일곱의 나이에 아빠가 된 샘이라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청소년 임신과 육아와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 샘은 어려서 병으로 엄마를 잃고 아빠와 둘이 산다. 어릴적부터 같이 자란 단짝 친구가 있으며 미식축구와 컴터를 좋아하고 또 여자 친구와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여느소년들의 모습이다.
그러던 어느날 뜻하지 않게 여자 친구의 임신 소식을 접한다. 이럴땐 그렇게 대단하게 떠들어대는 성교육의 실태가 참 우습게만 여겨지는데 아이의 엄마가 포기한 육아를 샘이 어떻게든 잘 키워보려 애쓰는 과정들은 정말이지 안쓰럽기 그지 없는 마음을 갖게 한다. 만약 엄마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교과서를 보고 공부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 말도 못하는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보통의 엄마도 당황스럽고 어떤 일이 아이에게 위험한 상황을 가져다 줄지 모르니 노심초사다. 그런데 아직 자신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청소년기의 열일곱살 샘은 오죽할까? 다른 친구들처럼 파티를 즐기고 농구를 맘껏하고 실컷 웃고 떠들고 싶은 마음을 자신이 저지런 실수를 책임지기 위해 모두 포기하고 사는 샘,
결국 친구들과의 파티에서의 유리조각에 의한 상처 입은 맥스를 보며 샘은 아직 맥스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잘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양을 생각한다. 물론 아이의 친 엄마 아빠가 아이를 맡아 키우는것만큼 최선의 답은 없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엄마 아빠가 아니라면 자신의 아이에 대한 욕심보다는 아이를 위한 최선이 어떤것인지를 고민하고 결정해야하는데 만약 샘이 내 아이라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아니 이런일이 벌어지기 전에 사랑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책임질 수 없는 일을 하기전에 몇번이고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기를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고 아이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사랑을 하고 임신을 하게 되면 어떤 미래가 펼쳐지는지를 알게 하는 제대로 된 현실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아빠로서 맥스를 잘 키워보려했던 샘에게도 힘내라고 또 열일곱의 나이에도 꿋꿋이 자신의 아이를 잘 키워가는 또 다른 주인공 클레어에게도 끝까지 햄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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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임신, 아니 남학생이니까 육아 문제를 다룬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청소년의 임신, 출산은 우리나라 문학에서도 요즘 종종 등장하는 소재이긴하다. <열일곱 살의 아빠>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샘의 이야기이다. 샘은 여자 친구 브리타니가 아기를 입양하겠다고 했을 때 자신이 키우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기를 키우면서 다닐 수 있는 대안학교로 전학을 한다. 학교에는 샘처럼 아기를 키우면서 학교를 다녀야하는 어린 엄마 아빠들을 위해서 보육실과 보육 선생님이 따로 있다. 샘과 마찬가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학생들은 아침에 아이와 함께 등교하고 또 함께 하교한다. 그들은 아이를 키우는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육아의 어려움에 대해서 하소연도 하고 육아에 대한 정보도 나눈다. 샘은 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말이 없는 아버지는 샘이 맥스를 키우는 것에 대해 묵인한다. 자식을 키우는 일은 전적으로 샘의 몫이다. 스스로 결정한 선택에 샘은 책임을 져야한다.
의외에 설정이고 생각 밖의 전개였다. 고등학생인 주인공의 선택이 뜻밖이었다. 맥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샘은 부성애를 느꼈던 것일까? 샘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을 굳이 외면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직접 부딪치면서 헤쳐 나가려 한다. 맥스에게 우유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고 재우느라 그는 한시도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없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피곤이 몰려와 제대로 공부가 되지 않고 숙제는 제때에 제출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샘은 불평하지 않는다. 매일 해야 할 일을 적어 벽에 붙여 두고 그대로 반복할 뿐이다. 밤 9시까지 맥스와 놀아주기, 밤 9시까지 맥스 재우기, 컵으로 먹이기……. 책을 읽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무엇 때문일까? 맥스에 대한 사랑일까, 아니면 여자 친구에게 임신을 시킨 자신에 대한 책망일까. 차마 자신의 아이를 버릴 수 없는 책임감일까. 아이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우발적으로 결정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수도 없이 생겼다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샘은 모든 것을 자신이 스스로 감내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서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어서 맥스를 낳고 데려오는데 필요한 돈을 대신 지불한 아버지에게 빚도 갚아야 한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독립도 해야 한다. 대학교를 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다. 어찌 보면 맥스를 선택한 순간 다른 십대로서 꿈꿀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긴 것이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선택의 자유와 아울러 그것에 대한 책임과 후회, 또 다른 선택을 모두 샘의 손에 맡긴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굳이 여자 친구와 섹스를 즐긴 그를 질책하지 않는다. 작가는 내내 흥분하지도 그렇다고 설교하려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태도가 읽는 이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을 흩트리지 않고 대면할 수 있도록 한다. 샘의 담담한 태도는 나 역시 그의 문제에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그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십대의 사랑, 그리고 임신, 육아, 이모든 것을 지극히 정상적(?)으로 풀어간 것에 나는 내심 당황했다. 이건 아니잖아.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만 있는 문제는 아니잖아. 뭐 이런 생각들. 샘은 결국 맥스를 입양시킨다. 어는 한 순간 그는 자신이 맥스를 키우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절대로 친구들과 농구를 더 하거나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맥스를 다른 사람에게로 보내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의 결정에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없으면서도 말이다. 열여덟 살이 된 맥스가 그를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자신의 나이에 이미 아빠가 되어 버린 자신의 나이보다 꼭 배만큼을 산 젊은 아빠 샘과 맥스의 첫 대화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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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기로 한 것은 왜였을까? 좀더 밝은 것을 바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쩌면 이 책 안에 있는 게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그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하지만 처음부터 샘은 평범함과는 다르게 아기를 키우기로 한 것이다. 그에 대한 각오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친구와 놀고 싶어하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미련을 가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빠하고만 살았기 때문인 것도 있을거라고 본다. 엄마가 계셨더라면 좀 달랐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