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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갑갑할 때면 뒷산에 있는 편백나무가 위엄 있게 쭉쭉 뻗은 숲으로 향한다. 산길을 오르면서 비우지 못하여 생긴 번뇌와 애착심이 낳은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고 땀을 흘린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은 번뇌와 섞여 녹아내리고 무거웠던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진다. 가벼운 차림으로 오를 수 있는 산이 가까이 있어 축복이라 여기며 시간을 내어 호젓한 산길을 찾는다. 계절 따라 다른 빛깔로 자리하는 나무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다람쥐, 오소리, 까마귀, 딱따구리 등의 울음에 화들짝 놀라며 위로 벋어 있는 길을 오른다. 심호흡을 하며 산길을 오르다 힘이 들 때면 한자리에서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며 자연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일흔 다섯의 생물학자는 홀연히 미국 동부 메인 주의 숲 속에 오두막을 짓고 필요 이상의 것을 소비하지 않으며 자연적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생활을 선택했다. 버몬트에서 메인 숲으로 오는 길 저자는 활동적이고 먹는 양이 많은 큰까마귀 잭과 함께 하였다. 6월 초 숲속 생활은 생기를 품고 있는 녹색 빛과 조우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숲 속 오두막을 베이스캠프 삼아 땔감을 잘라 놓고 구덩이를 파서 옥외 변소를 마련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주변의 박토를 개간하여 블루베리와 아스파라거스를 심어 자급자족하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하는 시간이 늘었다. 겨우내 연료로 써야 할 장작을 패느라 흘린 땀을 씻기 위해 양동이에 구멍을 내어 소량의 물로 샤워하고 불을 지펴 오븐에 빵을 굽거나 감자를 구워 먹는 일상은 소박한 생활의 전형이다. 흑파리가 날지 않는 빗속에서 변소를 계속 만들었고, 쉬지 않고 우는 새들의 소리에 귀를 열어두고 새소리 조사를 한 적도 있었다. 활엽수가 자라면 토끼가 먼저 새싹을 먹고 다음엔 사슴이, 그 뒤에는 무스가 싹을 먹는 것도 오랜 관찰에서 내린 결론일 것이다. 다른 수놈들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지저귀는 유리멧새는 암놈을 맞아 번식하려는 욕구를 강하게 드러낸 셈이다. 애도의 기간도 두지 않고 짝이 죽고 나면 새로운 암놈을 찾는다는 제비와 멧새는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정해놓은 목표 없이 숲으로 가서 산책 도중 마주친 무스의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나무위에 올라가 마냥 기다리는 모습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현대인들의 모습과는 대별된다. 숲길을 달리다 마주하는 자연 속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관찰하기 위해 멈추었다 로드킬 당한 짐승들을 대하던 손길은 부드러웠다. 자신을 찾지 않는 자연 속에서 산사람이 되고 싶었던 바람을 35년이 지나서야 실천한 저자는 기력이 쇠하기 전에 안정적인 공간을 벗어나 메인 숲으로 향하였다. 여름이 가고 늪지대에 있는 단풍나무에 먼저 단풍이 들어 매혹적인 빛깔로 신비로움을 주었고, 숲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연적 흐름에 조응하였다. 나무는 주위 환경으로부터 오는 정보를 인식하고 생존을 위해 적절한 방법으로 대처한다는 것을 알았다. 너도밤나무와 사탕단풍나무의 씨앗이 풍년이어서 급격히 증가한 포식자들은 이 먹잇감에 의존하는데 나무들은 포식자들에게 먹이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생산 확대를 멈췄다. 이로써 포식자들의 개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막아 향후 생산될 배아가 생존할 수 있게 한다니 균형을 유지하려는 자연물들의 생태적 질서에 숙연해진다. 이 순간에도 많은 것들이 지나가고 경험한 것들을 가슴에 새기려 하지만 세월 따라 그 빛은 엷어진다. 영원 같은 찰나를 가치 있게 보내는 법을 찾아 메인 숲으로 간 저자는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의 향연을 마주하며 숭어가 사는 연못을 관리하고 딸기 밭을 정리하는 등 노동으로 지낼 것이다. 생쥐들에게 일부를 내어주고 잠을 설치면서도 불평하지 않는 저자는 수백만 마리의 곤충과 숲에 깃들어 사는 생명체들과 어울리는 일상을 선택하였다.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며 생태적 질서에 순응하는 생물학자가 숲에서 지내며 유충을 맛보기도하면서 문명 이전의 삶을 살려내고 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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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베른트 하인리히(76세)는 세계적 생물학자로서 25년간 교수로서 살았다. 그런 그가 약 90%가 산림으로 뒤덮인 메인 주의 중서부 벌링턴에서 322km 떨어진 애덤스 힐의 숲속 오두막에서 살기 시작했다. 전기와 수도도 없는 메인주의 숲 속 통나무집으로'잭'이라고 이름 붙인 큰까마귀(raven) 새끼 한마리를 데리고 간다. 그 곳에 도착한 것이 6월이라 크게는 여름.가을,겨울,봄의 순으로, 작게는 날짜를 표기한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글이다. 다음 해 5월까지 1년 동안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 책은 1994년에 쓰여졌다.)
대도시의 삶이 싫어서 숲속을 택한 생활인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생물학자로서의 삶의 연장선 상에 있었다. 어린 시절을 숲에서 보냈던 경험도 숲속에서의 삶을 선택하는 데 한몫을 했다. 새들의 소리에 깨고,비 내리는 날 빗소리를 듣는 걸 좋아하고,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며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아무것도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숲에서의 삶이 단조롭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새들의 새벽합창 소리가 듣고 싶어 새벽 3시 50분에 맞춰 놓은 알람 소리에 깨어 몇 분 단위로 새들의 울음소리를 기록해 나간다.수없이 많은 종류의 새들의 울음소리를 구분하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동거자 잭의 생태도 열심히 관찰해나가면서 다른 큰까마귀들도 관찰하여 조류학술지에 실을 큰까마귀에 관한 연구논문을 쓰기도 한다. 애벌레들과 여러 곤충들을 관찰함으로써 인간의 삶에 대해서 돌아본다.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광경들을 그저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즐기고 싶어 달리기를 한다는 그가 어느날 몇개의 단풍잎을 주워 들었다. 풍요로운 색채를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감상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현재를 소중히 해야한다는 메세지로 들린다. 월식을 보면서 우주의 현상에 대한 호기심과 지식을 풀어놓고,상모솔새의 소리를 쫓기 위해 숲을 헤매고 다니기도 한다.
오늘은 상모솔새를 보기에 좋은 날이 아니었다. 바람소리와 삐걱거리는 나무 소리가 너무 심하게 나서, 멀리서는 눈만으로 쫓을 수 없는 그들의 가냘픈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행동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상적인 때라는 것은 거의 없는 법이고,그런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저 변명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p225
상모솔새를 보지 못한 날 그가 한 말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할 수 있을텐데' 이런 말로 행동으로 바로 바로 옮기지 못하는 나로서는 뜨끔했다. 겨울 습지 식물 꽃눈,나방들의 고치, 봄을 맞아 피어나는 잎눈 등을 관찰한 후 그림으로 남겨두기도 한다. 숲의 동물,식물,곤충들의 관찰을 통해 계절이 오고감을 알고,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살아가는 것에 행복을 느끼며 에너지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도 삶에 대해서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아마 삶이란 테이프 플레이어를 빨리 돌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리는 들었어도 음악을 듣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올 한 해 동안 나는 매일 산을 바라보면서 지냈다. 몇 시간씩 '아무것도'하지 않고 보냈다. 며칠씩, 아마 몇 주 동안.하지만 그런 시간이 전혀 낭비로 시작되지 않는다.-p335
열심히 산다고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살아가는 지도 모르겠다. 정말 중요한 가치를 희생하는 일이 없도록 가끔은 여유를 가지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가 숲속 생활에서 만난 모든 생명체들 하나 하나도 헛으로 사는 것은 없었고,나름 사는 방법을 터득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공생하는 법도 알고 있었다.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동식물들의 삶을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을 통하여 들려주는 저자의 인생철학을 듣는 시간이 참 행복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오타가 보여서 적었습니다. p250 1월 6월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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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제목에 숲이 있다 보니 깊은 산중 같은 느낌을 주는 짙은 녹색이 눈에 들어온다.
<이책은> 리뷰어클럽 당첨 도서
<저자는>
<책읽은 소감>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귀농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막상 실행은 못해도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을 담은 사람이 많은 듯 싶다. 그러자니 귀농은 아니고 귀촌하는 사람들 얘기가 빈번하게 오르내린다. 자연 속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귀촌이라는 형태로 전개됨이라. 나 역시 시골출신이다 보니 귀농에 대한 동경이 아주 없지는 않다. 법정 스님 타계 후 '월든'이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때 구매를 했다. 모셔두고 있는 중에 월든보다 쉽다는 말에 솔깃했고 당첨책으로 만났다.
홀로 숲으로 간 사내의 일상이자 삶이 오롯이 들어 있는 책. 숲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홀로 생활하는 남자는 생물학자였다. 교수직을 과감히 버리고 숲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용기는 어릴 적부터 생물들에 관심을 가졌던 연유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유년시절의 정서 속에 곤충이 있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아들은 자신을 닮은 모습이 많아서 내심 만족이다. 딸은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하지만 크게 보면 생물과 관련한 업이라 것도 나쁘지 않다.
책은 여름, 가을, 겨울, 봄의 순서로 나열되는데 오롯이 일상이야기다. 숲에서의 생활이다보니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곤충들 , 큰까마귀 , 나무들 , 꽃 , 동물들 이야기다. 생물학자다 보니 생태환경에 관하여 진솔한 속내만큼이나 자연인의 생활을 한다. 죽은 나무를 끌고 와 장작으로 쓰기도 하지만, 때론 개벌에 필요해 나무를 베기도 한다. 손수 장작을 패어 쌓는 일, 자연식 변소를 만드는 일, 큰까마귀 관찰하는 일 등 매일매일이 같은 일과 같으면서도 늘이다시피 새로움을 발견하는 기쁨을 알려준다.
큰까마귀(=잭)를 어느 도 컸을 때부터 기르며 정을 들인다. 새의 언어는 모르지만 교감이 된다고 잭이 구사하는 몇 마디의 언어지만 높낮이를 통해 마음 분석을 한다. 잭을 데리고 멀리 여행도 하고, 잭처럼 다른 까마귀들도 관심을 준다. 농장에서 죽은 소나 송아지를 얻어다 까마귀들 먹이로 주고, 로드킬 당한 짐승의 시체도 가져다 역시 먹이로 준다. 큰까마귀를 관찰하는 일은 신나는 일이다. 문명의 혜택은 매우 적지만 그렇다고 원시적 삶만도 아닌 호사(?)가 부러워보였다.
법정 스님의 책을 읽다보면 읽는 그 순간만이라도 욕심없이 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여운이 한참은 못가도 그 순간만이라도 나에게서 삶의 모든 욕심이 배제되는 상태가 좋았더랬다. 메인 주의 숲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내려마시는 커피 한 잔. 지극히 소박하지만 큰, 행복한 하루를 여는 그 의식(?)이 못내 부러웠다. 문명의 혜택이 애당초 없으니 손으로 곤충들을 삽화로 그리고 사진은 찍는다고 했다.
문명의 세상에서 보자면 멈춘 상태같은 고립됨을 자초함인데, 그 호젓한 숲에서 생물학자는 홀로 사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생동하는 기운을 감지하며 자연은 순리로 돌아가는 것을 깨닫는다.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것들도 순리라는 걸 안다. 외로움이 밀려오거나 문명의 혜택이 그리워서 호텔에 찾아가 밤늦게 뜨건 물을 욕조에 받아 몸을 담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슴 사냥을 했지만 사슴을 잡기 위함이 아닌 사슴을 살피기 위한 여정도 보여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동경심이 생긴다. 혼자는 못하겠고 함께 할 수 있다고 하면 숲에서 둘이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 자급자족하면서 지내는 삶. 가진 것이 없기에 바랄 것도 없을 것 같은 삶. 그런 삶을 동경하자니 이 숲을 찾아온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 가득하였다. 그러나 흑파리떼가 떼지어 몰려와 얼마큼을 잡았는지 컵으로 갯수를 세었다는 부분에선 겁이 났다. 워낙 물것을 잘타는 체질이라서. 별의별 베리류가 나올 때는 먹어보고 싶어진다. 홀로 사는 즐거움이 가득한 책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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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숲으로"는 각각 한 단어 만으로도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한데 "홀로 숲으로"라는 제목은 나를 매혹시켜버렸다. 사람들이랑 부대끼는게 넌더리가 나서 그만 모든 것을 버려두고 훌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내 스스로를 주저앉히고 있던 차에 한 생물학자가 숲으로 돌아가 써내려간 일기같은 글을 마치 내가 그의 숲속 오두막에 초대받은 손님이 된듯한 기분으로 읽어내려갔다.
그는 홀로 숲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큰까마귀를 연구하는 조류학자가 아니랄까봐 큰까마귀 새끼를 둥지에서 납치해 데리고 갔다. 보통 사람에게는 애완동물로 적당하지 않지만 그는 잭이라는 이름의 그 큰 까마귀 새끼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의 정성은 유별나서 들쥐를 잡고, 로드킬 당한 짐승, 도살장에서 처리 곤란한 변사 송아지들을 거둬와서 먹성좋은 잭을 키우지만 숲에서 야생성을 찾아가는 잭은 끝내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저자는 그를 잊지 못하고 꿈까지 꾸는 것을 보면 홀로 사는 외로움을 견뎌내긴 어려운 모양이다.
수도가 없어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야하고, 화장실은 옥외에 있다. 통나무집의 틈으로 눈보라와 벌레들이 들어오고, 메인 주의 겨울은 혹독하고 길다. 이 숲 속 오두막에 간혹 손님들이 찾아온다. 자녀들, 제자들, 친구들이 와서 며칠씩 지내다 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좋아하는 '삼시세끼'라는 방송프로그램이 생각난다. 같이 낚시나 사냥을 하고, 단순한 요리를 즐겁게 나누어 먹는 모습은 잠시 수렵채집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순수한 기쁨까지 느끼게 한다. 저자의 말대로 '숲으로' 가는 것과 '밭으로' 가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나는 '밭으로' 살러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숲으로'는 놀러갈 수 있어도 살러 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수렵채집까지는 힘들것 같고 농경사회로 회귀하는 것은 고려해볼 만하다.
숲에 산다해도 자신이 평생 해온 일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모양이다. 낚시를 해도 요리하기 전에 먼저 물고기의 그림을 그리고 지느러미의 구조를 살펴보며, 철따라 수종의 변화, 곤충의 생태를 관찰해서 일지를 남긴다. 물론 '사이언스'에서 퇴짜를 맡기도 하지만 여전히 큰까마귀에 관한 논문을 쓰고, 생태학 심화학습을 위해 숲으로 찾아오는 대학원생들을 받아들이는 걸 보면 숲에서도 여전히 그는 생물학자이다. "내가 하는 일이 곧 나 자신이다." 라는 말처럼 숲으로 가던지 밭으로 가던지 결국 지금 모습대로 살아가게 될 것이며, 그곳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지금의 친구들일 것이다. 은퇴 후의 삶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현재 삶의 연장선임을 깨닫게 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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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활할 때 살던 집이 소로의 월든을 연상케 했다. 외진 숲은 아니었지만, 호수가 바로 옆에있고 인적이 드물고 나무들이
많은 곳이라 매일 아침 저녁으로 걷는 것만으로도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었다. 새 소리로 눈을 뜰 수 있는
것과 더불어 계절이 바뀌는 걸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알 수 있는 건 그 생활이 준 축복이었다. 그 시절, 바이블 다음으로 많이 읽었던 책이 바로 『월든』이다. 태초에 에덴이
있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고, 따라서 인간이 잃어버린 에덴을 회복하는 방법은 ‘월든’처럼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뷰 읽기: 월든: 잃어버린 에덴을 회복하는 길)
이 책의 저자인 베른트 하인리히는 세계적인 생물학자로 현대의 시튼이라 불리는
학자이다. 그런데 그는 훌륭한 학자이면서 동시에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소로우’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베른트 하인리히가 애덤스 힐에서 보냈던 1년을 기록하고 있는데, 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스쳐지나가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의미를 발견하며 사는 삶” 정도가
될 것 같다. 그게 너무 아름다워서 종종 어린아이처럼 감탄하고, 때론
눈물 짓게 됐다. (왜 사람들은 진정 아름다운 걸 보게 되면 눈물이 나는 걸까?)
가령, ‘용도가 다른 두 개의
나무, 목재wood와 숲woods’
같은 글은 사유, 그러니깐 학자로서의 지적인 면이 드러나는 성찰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가을 숲의 향기와 소리’ 같은 글은 베른트
하인리히의 인간적인 면이 잘 드러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글이다.
저자는 숲에서 크리스마스이브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다람쥐가 숨겨둔 사과를 찾아 먹기도 하며, 자작나무 씨앗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보기도 한다. 첫 봄꽃이 핀 날의 기억과 숲을 자유롭게 탐색하는 자유는 생명이 가득한
숲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6월 초 숲 속에서의 첫날을 시작하며 창밖으로 보니 반짝거리는 푸른빛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난 녹색빛이 이토록 다양하고 생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었다. 이즈음 돋아나서 피어나기 시작하는 단풍나무 잎의 경우, 잎이 겹겹이
붙어 있는 곳은 채도가 어두운 녹색이고, 햇빛이 새어 들어오는 부분은 노란빛이 감돌며 빛이 난다. 오두막 둘레의 공터에는 녹색빛이 숲 속보다 더 균등하게 퍼져 있는데, 아마
오두막 주변에 많이 자라고 있는 사탕단풍나무 때문인 듯하다. (p.20)
반짝이는 녹색빛의 지붕 아래에는 꽃들이 사방에 피어 있다. 전부 다년생초화류로 대부분 흰색이다. 별꽃, 캐나다 큰두루미꽃, 미국 헐떡이풀,
황련, 번치베리 아네모네, 딸기, 그리고 둥굴레. 또 가운데 섬세한 붉은색 줄이 들어간 흰색 연령초도
있다. 나는 내 앞에서 반짝이고 있는 이 다양한 흰색 꽃들보다 더 멋진 흰색 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pp.20-21)
소개하는 이 두 부분만으로도 오감이 다 살아나는 기분이다. 숲의 생명력이 내 안에 깃드는 기분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전원적인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낭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읽히기는 원치 않는다.
이번 리우올림픽 개막식은 환경훼손과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일깨우며 환경보호에 환경보호에
전세계가 참여하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올림픽 숲’을 조성해
리우올림픽의
유산으로 남길 거라고도 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나무를 심는다는 것, 숲을 만든다는 것, 자연과 환경을 보호한다는 것이 막연한 이야기이거나
캠페인 문구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로우나 베른트 하인리히가 보여주는 숲의 삶, 자연의 삶이라는 것은 결국 자연 속에서 평화와 고요함의 의미를 찾는 것인데,
그것은 “스쳐지나가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분명 생명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게 될테니깐 말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폐해와 폐단을 반성하면서 그것에 대안을 시도하고 궁구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하나의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한 가지 삶의 방식만 있는 것처럼 우리를 호도하지만, 소로우가 지적하듯, 우리가 유일하다고 믿고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삶의 방식은 그저 다양한 종류의 삶 중 하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숲으로 들어가자. 그리고 자연이 우리에게 말하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귀기울여 보자.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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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생물학자,라고 하지만 난 베른트 하인리히라는 학자를 잘 모른다. 솔직히 그 유명한 소로의 월든을 읽기는 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라는 말은 못하겠어서 이 책 역시 좀 지루한 느낌이라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그래도 소로와 니어링 부부의 이야기는 좀 더 먼 옛날이어서 90년대에 숲속에서 홀로 생활을 한 이야기라면 또 다르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어서인지 이 책을 모른척 하고 넘기기에는 숲 속 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서 결국은 책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별 기대감이 없어서였는지 저자가 글을 재미있게 써서 그런것인지 아무튼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제를 보니 메인주에서의 1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저자가 1년동안만 살았다는 것이 아니라 계절별로 숲 속의 생활을 보여주는 1년의 모습을 기록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큰까마귀의 생태를 연구한 생물학자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고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첫장에서부터 그가 키우며 함께 살고 있는 큰까마귀 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는데 조금씩 계속 글을 읽어나가다보니 숲 속의 생활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도시 생활에 익숙한 나로서는 나무 장작을 태워야한다거나 특히 식수뿐만 아니라 필요한 생활용수를 위해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야 하고 - 그래서 저자는 그릇 설거지도 최소화하고 차를 마셨던 컵은 깨끗하게 사용해서 씻지 않기도 하며 최소한의 필요양만 사용했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을 읽고난 후 요즘 물을 쓸 때마다 내가 필요이상으로 너무 많은 물을 쓰고 또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저자가 생활하고 이는 메인주의 거대한 숲 속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무스나 늑대같은 야생동물과 마주치기도 하는데 그곳에서 달리기를 취미로 삼고, 숲 속의 동물들뿐 아니라 식물에도 관심이 많아 세밀화를 그려넣기도 하고 때로는 벌레의 유충과 번데기 같은 것을 발견하기도 하면서 그에 대한 묘사를 하는데 나는 처음에 저자가 그 맛을 표현하는 것을 읽으며 어떻게 이리 섬세하게 맛 표현을 하고 있지? 라는 생각만 했지 차마 그것을 실제로 먹어봤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씁쓸한 맛, 단 맛을 구별하여 말하고 죽어있는 듯한 유충을 따뜻한 오두막 실내에 두면서 관찰하는데 며칠동안 변화가 없어 죽었다고 생각했다가 더 시간이 지난 후 꼬물거리며 살아났다는 기록을 보면서 새삼 저자가 생물학자임을, 그것도 자연생태를 존중하는 학자임을 깨닫게 되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코요테 사냥을 하는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인데 생계를 위한 것이라 생각한 저자가 코요테를 잡으면 얼마를 벌 수있냐는 물음에 그 사냥꾼은 단지 즐기기 위해서일뿐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겠지만.. 역시 단지 유희만을 위해 생명을 갖고 놀이를 즐기는 것은 인간뿐이지 않을까... 라는 씁쓸한 결론은 똑같지 않을까.
하나하나 이야기하다보면 숲 속의 생활이 정말 즐겁고 유쾌한 나날인 것처럼 느껴질것 같다. 실제 영하 25도를 넘는 곳에서 살 수는 없을꺼야, 라는 생각을 하며 숲 속의 겨울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만 겨울이 있기에 생명이 넘치는 봄이 오기도 하겠지. 내가 그곳에서 살수는 없겠지만 저자의 숲 속 생활을 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 생태의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좋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나는 또 그러한 숲을 지켜나가기 위해 어떻게 생활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고.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말 '숲 속에서의 호사스러운 삶'에 대해 결코 부인할 수 없으리라.
"이 땅의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생생한 꿈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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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요즘 시대에서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언제 어느 시대에 살든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게 될 테고,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을 기대할 것이다. ‘더 낫다’는 기준, 그 기준에 문명과 기술은 얼마만큼 기여할까
과학의 발달을 그렇게도 추구하면서, 그 기술을 온통 삶에 끌어다 쓰려고 하면서 숲으로 또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은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일까. 원시 시대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단순한 삶을 바란다는 명목으로 원시인의 생활 방식을 추구하려는 것일까. 지친다는 건 무엇에 지친다는 것이며 싫증이 난다는 것인지.
작가는 생물학자이다. 오랜 시간 동물과 식물을 연구하면서 자연에 깊이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잘난 척하고는 있지만 자연의 차원에서 본다면 크게 다를 바 없는 일원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아는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과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잘 하는 사람. 숲이 좋다고, 자연이 좋다고, 아무나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는 숲, 보는 자연과 사는 숲, 사는 자연은 아주 다르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도 있지만 이건 결혼만큼이나 하고 안 하고의 차이를 낳는다고 본다. 해 보지 않고서는, 살아보지 않고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무엇. 그걸 해 보아야만 자신이 그 상황에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있다는 깨달음은 늘 늦게 오고는 하지만.
숲에서, 자연에서 단순하게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이제까지 익숙하게 대접받아온 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 아래 가질 수 있는 꿈이다. 모든 일을 내 몸으로 직접 해야 한다는 각오와 문명을 그리워하지 않을 정도의 여유와 사람이 아닌 모든 동식물과 함께 살 수 있겠다는 배려까지 있어야 가능한 꿈. 좋은 것만-맑은 공기와 맑은 물 같은-취하려 하고, 마치 누군가 저절로 마련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대만 하는 상황에서는 이루기 힘든 꿈. 그러니 내가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할 것을 알아서 더 그리워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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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람 소로는 지금보다 더 옛날에 숲으로 갔다. 소로는 그때 도시도 복잡하다 느꼈을까. 지금 도시는 그때보다 더 사람이 많고 복잡할 거다. 도시에 사는 사람도 숲에 간다, 빌딩숲. 숲이라는 말이 들어가도 나무와 새 여러 동물이 사는 숲보다 안 좋다. 마음이 복잡할 때는 걸으면 좋을 거다. 어디를 걸어도 괜찮지만 숲을 걸으면 훨씬 좋다. 이렇게 말해도 난 산(숲)에 거의 가지 않는다. 몇해 전에는 다른 곳에 가는 길에 갔는데. 가끔 나무가 많은 곳에라도 가 볼까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 길가에도 나무가 있으니까. 피톤치드가 나오는 숲은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른다. 몰라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끔 숲에 가는 건 좋아도 살지는 못할 것 같다. 아니 아주 외진 곳이 아니라면 괜찮겠다. 본래 사람은 만나지 않으니 말이다. 우편배달이 잘 되는 곳이라면 좀 낫겠다. 다른 건 못해도 편지를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며칠전에 조용한 섬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섬은 우편배달이 잘되지 않아 안 되겠다 생각했다. 어딘가에 갈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그냥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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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서류를 작성하고, 메모를 보고, 회의에 참석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 지친 베른트 하인리히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메인 주에 있는 숲 속 통나무집으로 들어간다. 홀로 숲으로 간 그는 행복했을까?
지금 나는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빵 굽는 냄새를 맡고 있다. 내 오두막은 가문비나무와 전나무의 통나무로 만들어졌다. 탁자 상판은 소나무고 다리는 벚나무로 되어 있다. 오늘같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에 안에서 따뜻하게 있을 수 있도록 미국꽃단풍나무와 물푸레나무로 불을 피웠다. 내 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진 숲의 경관이 눈을 즐겁게 한다. 새, 다람쥐, 들쥐, 수백만 마리의 곤충과 그 밖에 이곳에 살고 있는 다른 동물들을 떠올리자 마음이 평온해진다. (175쪽)
그는 진실로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 것 같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이 꿈꾸고 원하던 삶을 맘껏 향유하고 좋아하는 동식물 관찰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는 어릴 때 경험했던 소중한 추억까지 떠올리게도 해주었으니 더욱 의미가 각별했을 것이다. 열 살 때 독일 북부 숲에서 까마귀를 키우고 딱정벌레를 수집하며 자연과 더불어 호흡했고 미국 이주 후에는 메인 주의 시골에서 사냥과 낚시를 하고 맥주 만드는 법을 배우는 등 숲과 시골에서의 삶이 의식 밑바닥에 훈훈하게 깔려 있는 그었으니.
하지만 녹록지 않은 일상이 그의 의지를 꺾을 정도로 힘겹게 억누르기도 했다. 꽃 향기를 맡고 싶었는데 쓰레기장 만드는 일에 더 매달려야 했으며 흑파리 떼의 공격으로 하루 종일 성가시기도 했고 제방을 보수하기 위해 막노동에도 시달려야 했다. 블루베리 수확을 기대했는데 눈덧신 토끼가 뜯어먹어 몇 개 남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 외에도 힘겹게 물을 길어와야 하는 등 생활 여건은 도시의 쾌적함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시간을 신중하게 분배하였고 노동은 최소한으로 줄여 꼭 필요한 일에만 집중하였다. 숲으로 들어간 목적에 걸맞게 생태적 삶을 즐기고 뒤영벌과 까마귀와 미묘한 계절 변화의 조짐에 더 주목하려고 애썼다. 숲에서 그는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메인 주의 통나무집에 살며 늘 새롭게 펼쳐지는 자연과의 신비로운 경험을 글과 그림 속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어쩜 덤덤하고 때론 각별한 얘기에 내 마음도 슬몃 동하는 것 같다. 나도 홀로 숲으로 들어간다면 그처럼 행복할까? 솔직히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정말 원하는 일인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만약 그렇다는 답이 나온다면 그땐 제대로 준비하고 시험적 삶을 영위해본 다음 과감하게 삶의 지향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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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과 속에서 잠시의 '쉼'을 내게 선물할 수 있었던 책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해야 할 일들에 묶여서 주변의 모든 것들과 진지하게 소통하며 살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돌아봤다. 바쁜 일상에서도 나름의 보람과 즐거움이 있지만, 정작 내게 선물하는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아주 작고 소소한 모든 존재들까지도 경이로운 삶들을 살아내고 있다는 데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