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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평가받은 영웅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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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지는 "지난 1천년간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웅"으로 13세기의 몽골 영웅 칭기즈칸을 선정했다. 미국 칼럼비아 대 출신의 역사 저술가인 헤럴드 램은 에서, 자신이 수집한 귀중한 사료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몽골의 영웅의 삶과 세계정복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평생동안 칭기즈칸에게는 수많은 별명이 따라다녔다. "살인마, 신의 재앙, 대전사(大戰士),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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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지는 "지난 1천년간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영웅"으로 13세기의 몽골 영웅 칭기즈칸을 선정했다. 미국 칼럼비아 대 출신의 역사 저술가인 헤럴드 램은 <칭기즈칸>에서, 자신이 수집한 귀중한 사료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몽골의 영웅의 삶과 세계정복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평생동안 칭기즈칸에게는 수많은 별명이 따라다녔다. "살인마, 신의 재앙, 대전사(大戰士), 왕 중의 왕... 대부분의 지배자들과는 달리, 그러한 별명이 칭기즈칸에게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10쪽). 칭기즈칸이 만든 법전 <야사>의 첫 번째 조항에는 놀랄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모든 사람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고, 부와 가난을 주관하고, 삶과 죽음을 다스리는, 전능하신 유일신 하나님을 숭배해야 한다."(238쪽) 이 내용은 기독교의 한 분파(한때는 이단으로 간주)인 네스토리우스파의 가르침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82쪽)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물론 이 조항은 공개적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칭기즈칸은 백성들을 분열시키거나, 잠재해 있던 종교적 분쟁의 불씨들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프랑스 왕의 평화 사절로 몽골을 방문한 프라 루브루키에게 "우리 몽골인들은 신이 한 분이라고 믿고 있소. 그리고 우리들은 그와 직접 통하는 곧은 마음을 갖고 있소"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274쪽). 비록 다른 종교에 대해 관대하였으나, 그는 샤머니즘 신자였다. 칭기즈칸의 통치 말기에, 칸에 대한 충성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칸(Kahn)은 중앙 아시아의 튀르크어파(Turkic) 사람들이 통치자들에게 사용했던 단어로 'lord'(長, 君主)를 뜻한다. 몽고 사람들도 이 말을 사용했는데, 칭기즈칸은 1206년 그 칭호를 취하였고, 그의 후계자들도 사용하였다 /참고. 엥카르타 CD-ROM 백과사전]. 군주에 대한 배신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말과 행동으로 군주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표현하였다. 칭기즈칸은 부족간의 싸움을 피하기 위해 다른 싸움에 몰두시켰다(84쪽). 그는 자신의 통솔능력을 확신했으며, 따르는 자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움직이는 말솜씨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헌신한 군대는 어설픈 유목민 부대가 아니라 "어디에서든지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잘 훈련된 중무장 기병대"였다.(86쪽) 저자 헤럴드 램에 따르면, '파괴자 칭기즈칸'이 부순 장벽은 암흑 시대라고 불리는 중세가 세워 놓은 그 장벽이었다. 칭기즈칸이 닦아 놓은 도로 덕분에, 유럽인들은 중국 예술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커다란 의식의 변화를 겪어야 했다. 그들은 극동지역에 대한 호기심으로 술렁거렸다. 그 결과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1254?-1324?)는 중국을 방문하였다. 역사가들은 개국 군주로서의 그의 비범한 재능을 내정과 외정 양면에서 잘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칭기즈칸의 동서문화의 존중, 종교의 보호, 제도의 정비 등은 유목 사회를 대제국으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하였다. 일본에서는 공무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칭기즈칸을 꼽고, 그의 조직 관리법에서 통찰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조의 중화사상이 여전히 남아 있어 칭기즈칸이나 누르하치 같은 유목영웅들을 한낱 오랑캐로만 여기려는 경향이 있다 영웅서사에 대한 최근의 관심에 대해, 문학평론가 정호웅(홍익대 교수)씨는 "고달픈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욕망을 상상공간에서 대리 충족하고자 대중들의 욕구가 영웅소설로 쏠리는 것"이라며 "특히 진시황, 칭기즈칸 같은 아시아 영웅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의식 속에 침전돼 있는 서양 콤플렉스가 IMF상황과 결합해 반서양적-배타적 민족주의적 영웅에 대한 갈구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조선일보, 1998. 8. 12) 어지러운 때에 그리고 사회 전반의 불안심리 때문에 사람들은 카리스마적 영웅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우리 몽골인들은 신이 한 분이라고 믿고 있소. 그리고 우리들은 그와 직접 통하는 곧은 마음을 갖고 있소-칭기즈칸
s*****x 2000.03.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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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의 세계지배, 그 안에는 징기즈칸이 있었다.
"몽고의 세계지배, 그 안에는 징기즈칸이 있었다." 내용보기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모였다. 한 사람이 확성기에 대고 무어라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연신 박수를 쳐댔다. 그 사람의 뒤에 있던 비석의 천이 벗겨졌다. 그리고, 그다지 익숙치 않은 얼굴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등장했다. 몽고인들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이룩한 지난 날의 부흥을 추앙하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비석에 머리를 맞대며 존경을 표시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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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모였다. 한 사람이 확성기에 대고 무어라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연신 박수를 쳐댔다. 그 사람의 뒤에 있던 비석의 천이 벗겨졌다. 그리고, 그다지 익숙치 않은 얼굴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등장했다. 몽고인들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이룩한 지난 날의 부흥을 추앙하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비석에 머리를 맞대며 존경을 표시했다. 그의 이름은 '칭기즈칸'이라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에 이미 세계를 정복한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그러한 업적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부분 알려지지 못한 듯 하다. 역사 속 등장하는 알렉산더나 나폴레옹이 오늘날에도 대단한 인물, 본받고 싶은 인물로 뽑히는 반면, 칭기즈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냉혹하다. 광활한 영토를 가졌던 몽고의 왕 정도로 기억하는 듯 싶다. 이러한 냉혹한 반응은 어쩌면 지금의 몽고라는 국가가 처한 국제사회적 위신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나 싶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아시아대륙의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국가는, 그가 통치하던 시대에서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듯 하다. 가끔씩 TV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말 그대로의 '유목민'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세계를 정복했던 역사가 있었고, 그러한 업적을 이룩했던 칭기즈칸은 실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칭기즈칸의 인생에 대해 잘 서술하고 있었다. 아동들을 위한 가벼운 위인전 형식의 책들만이 존재하던 우리 나라에 칭기즈칸에 대한 좀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게끔 말이다. 한 부족의 부족장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지도자가 되어야만 하는 운명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 이후 도망자의 처지가 되어 유랑을 하면서 스스로 터득한 대범함과 태생적인 지혜는 그가 제대로 된 지도자로서 성장하고 정복활동을 통해 획득한 거대한 영토를 슬기롭게 다스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는 전형적인 유목민이었다. 하나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 이동생활을 하는 유목민으로서의 그에게 한곳에 머무른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보다 먼곳에 존재하는 땅을 찾아 나섰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는 유목민에게 필요한 것만을 위해 살았다. 전쟁을 통해 획득한 땅. 그곳에서 유목민에게 필요한 것들만을 취하고 나머지는 모두 불살라버리는 잔인한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가족이 보는 앞에서 강간당하는 지배국의 여성들, 투항했다가 오히려 집단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람들. 그들은 몽골에 어떠한 필요도 없었기에 가치없는 것으로 여겨져야만 했었다. 적어도 칭기즈칸 앞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글자 하나 모르는 그가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 법전을 만들고, 역전제도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은 신비롭다. 이웃 문명국들을 정복하고 그 문명을 완벽히 파괴하면서도, 그 이후엔 자신들만의 또 다른 문명을 세우는, 이전의 문명에 결코 동화되지 아니하는 모습은 진정 강한 유목인으로서의 그의 진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수많은 영웅들도 죽음 이후에는 대제국이 분열되고, 나라가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칭기즈칸의 제국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무엇보다도 왕위를 관습과 달리 첫째 아들이 물려받지 아니했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들간의 다툼없이 계속적으로 정복활동을 수행하고 정복지를 번창시키는 모습은 칭기즈칸의 위대함을 부각시킨다 할 수 있겠다. 다른 책들보다 이 책에서 독특 혹은 가치있다 이야기되어질 수 있는 것은 뒷부분에 첨부되어 있는 내용들이다. 칭기즈칸이라는 인물 자체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그 당시의 시대상과 같은 것들에서부터 시작하여 몽고 자체에 대한 역사적 설명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또한, 프라 루브루키에 의한 몽고 관련 글은 몽고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q*****2 2002.0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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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각주가 없어 쭉 읽어나가기에 수월했던 반면, 각 도시의 현대명과 위치등을 명시하지 않아 공간적인 상상력의 여지를 막아놓았다. 칭기즈칸의 정복은 자기 부족의 평안을 위한 것이었다. 정복 이외에는 살 방도가 없었다. 그는 소수로 다수의 적을 처리하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자신이 쓸모 없다고 여기는 것은 과감히 버렸다. 그들은 이슬람 세계까지 원정을 가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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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각주가 없어 쭉 읽어나가기에 수월했던 반면, 각 도시의 현대명과 위치등을 명시하지 않아 공간적인 상상력의 여지를 막아놓았다. 칭기즈칸의 정복은 자기 부족의 평안을 위한 것이었다. 정복 이외에는 살 방도가 없었다. 그는 소수로 다수의 적을 처리하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자신이 쓸모 없다고 여기는 것은 과감히 버렸다. 그들은 이슬람 세계까지 원정을 가서 기독교 세계의 번영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느끼는 Trend는 바로 Nomad이다. 10%미만의 농민의 눈치를 봐가며, 비관세무역협정에 주저하는 한국정부. 미래 조국의 번영을 위해서는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이 안건에, 정치권은 득표의 감소를 우려한다. 우리는 몽고에서 건너온 유목민이었다. 그러나 좁은 반도에 갇혀 살다보니, 그러한 기마민족의 기상을 펼칠 공간이 없어 서로끼리 부딛치며 아웅다웅 하는 것이 아닐지. 이제 영토적인 의미가 사라지고, 세계는 하루생활권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적어도 디지털로는 세계의 시간적 공간적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다수의 강대국들을 소수인 우리가 대적하기 위해서는 기마민족의 정신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구태의연한 것들은 빨리 처분해야 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v*******k 2002.10.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