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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아버지가 병환으로 갑작스레 돌아가신 경험을 했다. 집안의 든든한 버팀목이셨던 아버지가 짧은 기간이었지만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시게 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병의 원인을 찾지 못해 연일 계속되는 검사로 지쳐가는 아버지와 함께 곁을 지키던 가족들의 심신도 지치고 힘들던 때였다. 가족 중 누구라도 병으로 몸져눕게 되면 가정이 평화로울 리 없다. 하물며 집안 가장이고 더군다나 생사를 달리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더한 상황이라면 직접 당해 본 당사자가 아니면 그 때 느끼는 절망감을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 「고향사진관」을 읽는 내내 아버지가 돌아가실 당시의 그 시절을 떠올렸다. 내 아버지의 투병생활은 단지 몇 개월에 불과했지만 이 책의 등장인물 죽은 이처럼 적막하기만 한 아버지. 미소도 웃음소리도 없이 겨우 가는 숨소리만 들려주는 아버지...... 난 아직 세상을 마주해 본 적이 없는데, 미처 학교도 마치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아는 것이라고는 집안 살림살이 밖에 없는데, 큰누나조차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동생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둘째 누나도 나보다 더 철없이 여겨지는데......(P.10) "난 자네를 보며 언제나 그 점이 흡족했네. 소중하게 여김을 받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구나......" 아기가 방긋이 웃는 듯 보였다. 가슴이 뭉클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얻었을 때의 그 뭉클함이었다. 용준은 아버지를 떠올렸다. 내가 그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당신께서 나를 지켜주는 것이었구나. 아, 내 아버지......! (P.114) 첫 아기를 병원에서 처음 안았던 날, 함께 병원을 찾은 장인의 말에 그는 그가 아버지를 지킨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그를 지켜주고 있었던 것임을, 그가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것임을 깨닫는다. 아버지가 그에게 베풀었던 사랑이 그를 지탱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남자는 아버지가 되는 그 순간부터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은 아버지로서의 행위가 된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형제로서, 또는 자식으로서 하는 행위일지라도 그것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아버지는 자식에게 상처를 입히고 애증의 대상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아버지는 결단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어떤 작은 상처도, 단 하나나마 남긴 것이 없는 존재였다.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가 퇴색해가는 요즘, 젊은 시절 소위 잘나가는 친구들의 틈바구니에 끼지 못한 채 스물다섯의 나이에 가장의 짐을 안고도 자식의 도리를 다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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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무척이나 과묵한 분이시다. 어떠한 경우에도 잔소리를 하시는 법이 없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단 한 번도 공부를 강요하신 적도 없고 자신의 생각을 내게 주입시키신 적도 없다. 심지어 내가 실패를 거듭할 무렵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조차도 그냥 지켜만 보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늘 묵묵히 지켜볼 뿐이셨다. 그런데 난 이렇게 말씀이 없으신 분에게서 자식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부모님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를 배웠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행동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말로 표현은 안하셨지만 언제나 날 위해 행동하셨다. 나를 시키실 수 있는 일도 아들이 힘들어할까봐 혼자서 하셨고 나에게 부담을 줄까봐 공부에 관한 얘긴 입 밖으로 꺼내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암으로 고생하셨던 할머니를 위해서 한겨울에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약초를 캐러 다니셨다. 비록 할머니의 병은 고치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효심으로 의사의 진단보다 몇 년은 더 사시다 돌아가셨다. 지금도 우리 아버지는 100살을 바라보고 계시는 팔십 넘은 노부에게 정성을 다하신다. 난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백 마디 말보다 한 번 모범적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자식교육엔 더욱 효과적이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은 가족 간의 사랑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효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자식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아버지는 암으로 투병 중이셨던 할머니를 정말 정성스레 간호하고 돌보셨다. 할머니가 우리 아버지의 친모가 아니라는 근거 없는 소문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정성껏 할머니를 모셨다. 할머니가 본격적으로 투병 생활을 하시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일손을 놓으시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시며 암에 좋은 약재를 찾아 다니셨고 몸에 좋다는 것은 다 구해다가 할머니께 드렸다. 거의 말기에 암이라는 걸 발견했는데도 아버지의 지극한 정성 덕분인지 할머니는 몇 년을 더 사시다 가셨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자식인 나에게 어떠한 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자식인 자신이 할머니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시면서도 나에겐 할머니에게 병문안을 가는 것까지 의견을 물으셨다. 강제로 무엇을 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동의를 구하셨고 내가 싫다고 하면 내 뜻을 존중해주셨다.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어떠한 말도 아버지의 입을 통해 들은 것은 없지만 난 아버지가 보여주신 모습을 통해서 많은 걸 깨우칠 수 있었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손녀를 본 장인이 사위인 용준에게 한 말’이다. 용준의 장인은 용준에게 “난 자제를 보며 언제나 그 점이 흡족했네. 소중하게 여김을 받은 사람이구나, 그래서 사람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구나…….”라고 말한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준다.”고 했다. 어려서 귀여움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떻게 남에게 베풀어야 하는지를 안다. 부모는 본능적으로 자식에게 사랑을 베푼다고 하지만 자식을 버리는 부모나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를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면 사랑을 받고 자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난 그런 면에선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다. 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물론이고 친척들 그리고 부모님에게 어려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사랑이 무엇이고 자식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사랑인지를 잘 안다. 내게 사랑을 가르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뇌사로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보면서 나눈 용준과 첫째 딸 혜주의 대화’다. 여기서 혜주는 “난 아빠 엄마가 할아버지 살아한 만큼 할아버지도 그랬는지 물어보고 싶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용준의 가슴은 뭉클해진다. 용준뿐만 아니라 이 말을 들은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애들은 부보가 하는 것을 보고 자란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옛말에“효자 집에 효자 난다.”고 했다. 자신은 부모를 홀대하고 가슴에 못을 막으면서 자기 자식에겐 나중에 효도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은 불효를 저지르면서 자신은 대우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이 말이다. 전래동화인 <<고려장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자식에게 버림받고 홀로 외롭게 지내고 있다면 자신이 부모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용준이 죽기 전에 아내인 희순에게 한 말’이다. 용준은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동안 자신의 곁에서 고생한 아내에게 “사랑해……고마웠어.”라고 말을 남긴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였던 용준은 뇌사상태에 빠진 아버지는 물론이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과 고마움을 표현한다. 이 대목에서 난 눈물이 핑 돌았고 가슴이 찡했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특히 가족에게는 더더욱 하지 못한다. 게다가 경상도 남자라는 조건까지 갖췄다면 그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듣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그런데 용준은 했다. 비록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한 말이긴 하지만 불평 하나 없이 그동안 고생한 아내에겐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만큼 대단한 인연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이 세상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이를 망각한 채 살아간다. 문제는 자신은 부모를 홀대하면서 자신은 자식에게 대우를 받으려고 하는데 있다. 진정‘부전자전’ 즉 그 아비에 그 자식이란 말을 들어보지 못했단 말인가? 자신은 부모를 홀대하면서 자식에겐 효를 강요하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인상적인 글귀 “세상에 태어나 너희를 만난 건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다음에도 너희를 다시 만나는 행운을 얻었으면 좋겠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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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소리내어 울었다. 이 뻔한 이야기에, 그리고 그 뻔한 이별 장면에 왜 그렇게 서럽고도 아픈 눈물이 나는지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죽음, 그리고 운명. 우리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예정된 이별이고, 누구에게는 이미 경험된 이별이기 때문에 생각만으로도 서럽고 두렵기까지한가보다. 주인공 용준의 인생은 내 친구의 것과 너무도 닮아있다.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곧 개강을 앞둔 시기에 전화가 걸려왔다. 친한 동기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빠르게 말하더니, 내가 전화를 끊을 수도 없게 두려움이 가득한 울음만 계속해서 쏟아냈다. 그렇게 쓰러지신 어머니는 이후 간신히 의식만 있는 상태로 누워서 10년을 지내셨다. 친구는 바로 휴학을 했다. 목에 호스를 연결하여 미음같은 음식을 시간 맞춰 드리고, 씻겨 드리고, 용변을 치워드리고, 간단한 운동을 시켜드리고, 정기적인 검진과 집안 살림까지, 모두 딸이었던 내 친구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엄청난 병원비를 대느라 밤이고 낮이고 택시를 운전하시며 그렇게 지쳐갔고, 까칠한 남동생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외출을 할 수 없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가끔 집으로 찾아가면, 눈에 띄게 변해가는 친구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고, 말수도 적어지더니, 7년이 지날 즈음엔 피지 않던 담배까지 입에 물었다. 그렇게 꿈을 접고 엄마 하나만 붙들고 살았더 친구는 이대로는 억울해서 어머니를 보내드릴 수 없다는 말만 독백처럼 반복했다. [고향사진관]의 주인공 용준, 그는 효자라 불리기를 거절한다. 장남으로서 운명처럼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누구도 소리내어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저버릴 수도 없는 도리였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낳은 어미가 스스로를 포기하고 평생 그 아이를 품고 살듯이, 그렇게 쓰러진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젊음을 포기했다. 누가 그 인생을 아름답다고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떤 위로도, 격려도, 지지도, 칭찬도 거절했던 주인공의 복잡한 마음을 누가 다 이해한다 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지만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을 통째로 삼키려 할 때, 내 모든 바램과 꿈과 계획을 포기해야 할 때, 사랑하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애증의 짐을 누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겠는가. 부모가 떠날 때 곁을 지켜주고 함께해준 ’짝’(배우자)은 쉽게 버리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두고 두고 감사하고 의지가 된다고. 나는 아직 짝이 없어서일까. 나도 언젠가 내 부모와 이별을 해야 한다는 예정된 운명에, 오싹 두려워진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그래도 용준의 인생이 완전히 쓸쓸하지만은 않은 것은 함께 울어줄 친구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기꺼이 남편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 그와 함께하고자 했던 아내 ’희순’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 한 사람을 만났으니 용준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할 것인가, 궁금해진다. 사랑할수록, 고마울수록 그런 아내를 보는 마음은 더 아리지 않았을까. 인간은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 모든 것을 잊고 살 정도로 어리석어서, 오늘 웃을 수 있다고 했던가. 사는 것이 힘겨워질 때마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면서도, 이 한 가지를 꼭 기억하고 싶어진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아주 짧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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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 눈에 물기가 채 마르지 않았다. 눈물과 콧물을 닦느라 책상 위에 수북히 쌓여 있는 티슈들.. 울어도 울어도 속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가슴 한쪽이 먹먹하게 느껴지고 아프다. 사실..처음 이 책을 만나기 전부터 난 조금은 두려웠다. 한 남자의 지독한 아버지의 사랑과 효에 대한 이야기.. 얼마전까지 아버지와의 응어리를 가지고 있었던 내가.. 이 책을 선뜻 읽기가 겁이 나서 책장에 꽂아 두고도 자꾸만 모른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년.. 이대로는 안된다는 마음으로 아버지와의 응어리를 풀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던 그날.. 그리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던 눈물.. 아버지는 다 이해한다고 하셨다... 괜찮다고 하셨다.. 그게 부모의 마음인것을..그게 아버지의 마음인것을... 그렇게 아버지와의 응어리를 풀고 조금은 마음 편하게 오늘..책을 집어 들었다.
10년 전, 우리 나라를 감동으로 몰아 넣은 소설이 하나 있었다. 김정현 작가의 '아버지'...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그 책을 읽었을 정도로 화제의 베스트셀러였다. 책하고 거리가 먼 내 남편도 이 책은 소장하고 있을 정도이니.. 과연 베스트셀러라 칭할만 하다. 그 책을 집필한 김정현 작가가 아버지라는 주제로 또 하나의 감동 소설을 내 놓았다. '고향 사진관' 실화라고 하니.. 더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책의 주인공은 '용준'이라는 사람이다. 그의 나이 스물 다섯,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고 꽃다운 나이에 집안의 가장이 된다. 그에겐 어머니와 누나와,여동생,남동생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꿈을 택하는 대신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예식장과 사진관을 운영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점점 규모가 큰 예식장들이 들어 오면서 설 곳이 없어질것을 생각해 예식장은 정리하고 주위의 식구들과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남겨두신 사진관을 손수 운영하기로 한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아버지의 손 때 묻은 그곳을 정리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 나서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던 어머니도 그러한 용준에게 고마워 하며 아버지께 혼잣말을 한다. "저도 평생 당신의 손 때 묻은 사진기가 없어지는 건 싫었어요...(중략)...당신은 별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으니 그저 마음 편히 정신이나 차려 보세요..."
예식장을 정리하기 전,누나와 여동생을 결혼 시켰다. 그리고 애인이 있는 남동생과 어머니의 생각을 존중해 생각지도 못한 결혼을 중매로 결심한다. 그의 아내가 될 여자 희순은.. 그에게 딱 알맞은 짝이었다. 올바른 집안에서 바르게 교육을 받아 심성이 곱고 마음이 여린 여자였다. 그런 그의 아내 희순은 말없이 그의 곁에서 누워계신 시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를 모시고 남편에게 맞추어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 의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욕창은 가장 무서운 합병증.. 더운 여름날이면 하루에 두번씩 아버지의 몸을 씻겨 드리고,여름이면 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보양식을 사와서 죽처럼 갈아 먹여 드렸다. 기름진 음식을 많이 드시면 체중이 늘어 아들이 힘들꺼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버럭 소리를 지르는 용준의 모습은 아버지를 위한 일이라면 모든 불편도 고통도 감수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런 그에게도 자식이 태어난다. 첫 딸이 태어 났을 때 아이 보다 아내를 더 걱정하며 아내를 살피러 가고 아내에게 뛰엄 뛰엄 "많이 힘들.." "고마워.."란 짦은 말 속에서도 내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날 정도로 아내를 향한 진실된 마음이 느껴졌다. 그는 자식이 태어남으로 인해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된다.
세월은 흐른다.아버지가 누워 계신지 17년.. 아버지는 나이 탓인지 자꾸만 수척해지셨다.그리고 용준 내외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가슴 아프다. 어머니는 이제 아버지를 편하게 해 드리자고 한다.아버지는 마지막 순간 최선을 다해 눈까풀이 파르르 떨리게 힘을 주고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보내고도 마른 나무처럼 살아온 아들 때문에 큰 소리 한번 내며 울지 못하는 어머니... 그리고 그의 곁에 친했던 한 친구 명국의 죽음은 그를 가슴 아프게 한다. 아버지의 곁에서 마른 나무처럼 살아 온 탓일까.. 그에게도 암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찾아왔다. 이제 모든 게 다 평온하고 행복만 남았을꺼라 생각했는데.. 그는 아내 희순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해..고마워.."라는 말을 남기고..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담담하게 인사를 하고 아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그의 어머니는 영구차가 고향 사진관을 지나 가는 날 환장하듯 발을 구르며 아들을 보냈다. 자신의 남편을 보낼때의 슬픔까지 모두 보내 버리듯...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르면 눈물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흘러 내린다. 내 이성과는 상관없이...그저 그렇게 흘러 내린다.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청춘을 바쳐 아버지를 돌봐주던 용준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가여워서 울고.. 한번도 꽃피우지 못한 청춘을 마른 나무처럼 살아 온 용준이 가여워서 울고.. 그의 아내 희순과 남겨진 아이들이 가여워서 울고.. 아들을 보내면서도..남편을 보내면서도..아빠를 보내면서도.. 자신들의 가슴 아픈 것은 숨기고 용준을 편하게 보내 주려는 그들의 사랑이 감동스러워서 운다. 책의 내용중에 용준이 아버지가 뇌졸중이 아니라 차라리 치매였다면 하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내내 눈만 감고 있는 아버지가 가슴 아파서 였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자식의 부모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자신을 키워 준 부모를 짐짝처럼 여기며 몰래 내다 버리기도 하고.. 없는 사람 취급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가운 현시대에 고향 사진관은 너무나 필요한 소설이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가슴이 뜨거웠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아버지에게로 달려가 아버지의 따뜻한 품에 안기고 싶었다. 조금 더 건강하실 때... 살아 계실 때.. 용준과 같은 마음으로 아버지를.. 어머니를.. 대하리라 다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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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인생이란 어떤 의미를 지닌건지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불교에선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으로 무조건 사랑하게 되어 있으므로 당연한 것이니 부모님께 효도 하는것이야 말로 복을 짓는 길이다 라고 하죠. 그만큼 자식에겐 신경쓰기 쉬워도 자신을 키워주느라 손이 헐도록 고생하시고, 수십번도 더 찢어졌을 가슴을 들키기 싫어 무표정하게 생활 하시는 부모님께는 그 무표정함이 다인줄 알고 똑같이 무표정하게 대하는 것이 자식들 입니다. 작가는 이런 세태에 귀감이 되는 친구의 효심을... 아무에게도 알리기 싫어했던 그 우직함을 자랑하고 싶었던 듯 합니다.
'내 친구 서용준을 기리며'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스물 다섯의 나이에 가장이 됩니다. 아버님이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지시고 찾아온 현실의 무게... 한창 자신이 하고싶던 일과 해야할 일들 사이에서 용준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학업도 다 마치지 못하고 어머니와 함께 병수발을 하고 누나들과 동생들을 책임지는 자리... 이 소설은 친구입장에서 본 주인공의 생활을 그린지라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안나옵니다. 하지만 ,그나이때라면 어찌 자신만의 꿈이 없었을까요...? 하지만 용준은 묵묵히 아버지가 남긴 예식장을 운영하고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고향 사진관을 지켜갑니다.
물론 작가는 친구 용준의 몇십년에 걸친 병수발과 꿋꿋한 행동들을 통해 이시대가 잃어가고 있는 효심과 올곧은 자세를 보여주고자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이 인생을 사는 의미인가가 더 와닿더군요. 주인공은 여러 선택의 길이 있었을 텐데 가족을 위항 삶쪽을 택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까지 자신을 희생할 필요가 있을까? 답답해 할 수도 있는 삶입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아무도 여러번 살아본 사람은 없고 따라서 어떤 길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는것. 저로선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고 미련없이 살다간 용준쪽이 옳다고 생각되는군요. 자신의 선택에 후회없는 삶이야 말로 성공이 아닐까요? 그렇기에 미련해 보이도록 아버지 병수발에만 전념하고 장사가 되지도 않는 사진관을 고집스레 지켜낸 행위가 이토록 감동적으로 다가오는게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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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소설 몇 권도 모자란다며 너스레를 뜨는 어르신들을 많이 보았다. 그만큼 굴곡도 많고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는게 인생일 터이다. [고향사진관]의 용준 역시 바로 그런 사람이다. 20대 중반까지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여곡절 없이 평탄하게 살아가더니 스물 다섯을 기점으로 그에게 인생의 갈림길이 찾아온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아버지가 갑자스레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장남이었던 용준은 졸지에 아버지의 빈자리는 용준의 몫이 되고 만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용준은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궁금증이 밀려왔다. 그리고 과연 어떤 결정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후회가 없는 선택이 될까 나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용준은 언제가 끝이될지도 모를 아버지 곁을 지키기로 한다. 그리고 그렇게 고향으로 내려가 아버지의 가업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아니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빈자리를 그대로 메우고자 악착같이 애를 쓴다. 그런 용준을 지켜보기가 안쓰러웠다. 용준의 마음 깊숙히엔 아버지가 깨어나시기를, 그리고 깨어난 아버지에게 최대한 낯설지 않게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남들에게 비춰지는 용준의 모습은 날개가 꺾여진 새와 같다. 겉으로 보여지는 용준의 모습은 버럭버럭 화내는 지랄 같은 성격으로, 따스한 말 한마디 건네는 법 없는 무뚝뚝함이, 때론 고집스러움, 고지식함으로 비춰지지만 타인들의 시선 따윈 의식하지 않고 마음가는 대로 진심을 다하는 그이기에 용준은 진정으로 순수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다. 자식이 부모 병수발 드는 일... 예전 대가족이 함께 살던 시대에는 어쩌면 당연했을 일들이 지금에 와서는 그저 경이롭게, 대단하게 느껴짐을 용준은 스스로 불가능은 없다, 단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렇게 나 자신만을 위한, 내 삶이 더 중요하다고 치부하고 합리화하려는 이들에게 솔선수범하여 지극정성을 다하는 용준은 그야말로 자극이 되어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든다. 어쩌면 작가의 마음 한 편에는 그런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부부는 닮은 꼴이라더니 용준의 아내 희순은 천상 용준의 배필로 딱인 여자다. 어쩌면 하늘이 감동하여 용준에게 희순 같은 여자를 처로, 그리고 토끼 같은 자식 셋을 선물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용준의 자녀 셋의 행동 하나 하나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지켜보노라면 ’보는대로 배운다’는 말을 실감을 하게 한다. 용준의 어머니 역시 지고지순한 우리의 어머니상 모습 그대로이다. 이렇게 사람냄새 나며 때 묻지 않은 이들에게 현실은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기나긴 17년간의 병수발을 끝으로 용준네에게 희망이 찾아오길 바랐다. ’하늘이 무심하다’는 표현은 이럴때 사용하나보다. 몇 해 지나지 않아 찾아온 용준의 간암 소식과 3개월의 시한부 인생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가혹하고 가슴 저려온다. 자신의 꿈은 뒤로 하고라도 몸뚱아리 조차 돌볼 여유도 없이 살아 온 용준의 인생의 결말은 나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인생따윈 포기하고 효자 노릇 톡톡히 한 그에게 보상은 아닐지라도 시련은 없길 바랐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이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는 용준을 지켜보는면서 한 편으로는 혼란스럽고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가족, 진정한 친구들이 마지막까지 함께 하였기에 그의 인생의 끝은 결코 슬프지만은 않았으리라! 스스로 위로해 본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귀로에서의 선택에 대한 후회 또한 없이 떠날 수 있었으리라 믿는다. 누구나가 혼자가 아닌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속해있다. [고향 사진관]은 자식으로, 배우자로, 부모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의 삶은 비단 나 자신만의 삶이 아닌 가족 모두의 일부분임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또한 진정한 마음으로 통할 수 친구의 모습도 비춰준다. 그렇게 '고향 사진관'은 읽는 동안에는 용준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되뇌여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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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눈을 열어주기도 하지만, 두려움 없는 경건한 마음이면 눈을 감고 있어도 그 빛이 보인다네.' 정말 책을 읽는 동안 한순간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소설이다.실화소설, 그런사람이 정말 있을까 할 정도로 '용준' 에겐 오롯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 밖에 없는 인생을 산 듯 하다. 하지만 현재도 그런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도 있다. 가까이엔 내 이웃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반대로 부모가 아닌 자식이긴 하지만 십여년이 넘는 세월을 팔팔하던 이십의 그 꽃같은 나이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부부가 있다. 그들은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가 한참 난리를 피울때 얼마나 큰 희망을 가졌었는지 모른다. 한줄기 빛처럼 십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교통사고 이후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면서 정말 좋아하셨다. 다 큰 자식이 식물인간이고 그런 아들 때문에 아줌마는 한시간도 집을 비우지 못하니 살림은 뒷전이다. 온통 언젠간 깨어날지 모르는 아들을 위해 헌신을 하듯 모든 삶을 다 바치고 계시다. 여행한번 아니 하루의 반시간도 어디 마음 놓고 외출을 못하신다. 그런 아줌마의 가슴엔 알 수 없는 벽이 가로막고 있듯 가끔 만나면 달관한 자신이 삶을 토로하며 한숨 짓는다. 그런 아줌마가 안되셔서 환자를 보살피는 것을 내가 배워 가끔 아줌마의 시간을 내 드리겠다고 말을 하니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부부동반 여행도 가고 싶은데 평생 한번도 못가보셨다며 한숨을 지으셨다. 그래도 아저씨 아줌마는 늘 밝으시다. 긴 시간동안 환자는 욕창한번 걸리지 않고 버텨왔다며 자랑을 하셨다. 그분들에겐 이제 남은 삶은 그 아들이 전부가 된 것이다. 언젠가 희망이 함께 하길 바라며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17년간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간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그런 삶으로 인하여 자신은 '암' 이라는 치명적인 병이 갏아 먹고 있어도 그 또한 알지 못하고 고스란히 '죽음' 을 받아 들여야 했던 그사람, 용준아재가 내 가슴을 후려쳤다. 다른 무엇보다 제일 어려운 것이 '환자돌보기' 인 듯 하다. 집안에 환자가 한 명만 있어도 '긴 병에 효자 없다' 라는 말처럼 우환이 들었다고 하기도 하며 가산을 탕진하기도 쉬운 일인데 '형인지... 아버지인지...' 모르게 집안 살림을 아버지가 되어 잘 이끌어간 한사람, 왜 하느님은 그를 그렇게 심한 벌을 내리시며 데려 가셔야만 했을까 의문이 든다. 그가 잘못한 것이 뭐가 있다고,아버지만 위하고 가족만 위하고 자신을 돌보지 않은 죄일까. '철이 없어 인생이 별건 줄 알았어요. 옴치고 뛸 수 없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이제야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삶에서 가장 소중한 건 책임지는 일이라는 걸 말이에요. 제가 옴치고 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건 무엇이 소중한 줄 몰랐기 때문에 엄한데 떠넘긴 제 답답함이었다는 것도요.' 아버지에 대한 책임,가족에 대한 책임,그리고 자신 또한 세 아이의 아버지라는 책임, 그토록 그에겐 무거웠던 것일까.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면 조금 수월했을것을 왜 혼자서 그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지려 했던 것인지,정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살려 한 그가 미워지기도 했다. 자신을 좀더 돌아보고 자신을 좀더 자유롭게 놓을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는 그만큼 아름다운 사람이고 순수한 사람이고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과도 같은 사람인듯 하다. '욕심부리지 마, 뭐든 ,바다의 거친 파도는 파도처럼, 잔잔한 호수의 물결은 그처럼, 그렇게 저마다의 운명으로 사는 거야.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행복한 거라고는 당신이 얘기해 놓고서...' 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었을까. 정말 고개가 숙여지고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내 아버지 또한 작년에 암선고를 받으셨다. 그순간에는 하늘이 무너지는듯 부모님을 뺀 가족 모두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했고 서로가 아버지를 위하기 위하여 나섰지만 아버지가 지금은 고통을 호소하지 않아서인지 나부터 조금은 헤이해졌다. 안부전화 한통 제대로 하지 않고 가까이 계셔도 자주 찾아뵙지를 못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용준아재는 정말 대단한,내리사랑이 아닌 부모님을 향한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은 그런 아버지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연적으로 '사랑'을 배우게 된다는 것 또한 이 책이 주는 가르침이다. 가족간의 사랑은 누군가 한사람 아프게 되면 더 깊어진다. 흩어진 모래알이 뭉치듯 '화합' 하여 난관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가족애가 더 깊어지고 서로의 사랑이 더 깊어진다. 하지만 혼자서 모든것을 떠 안으려는 것은 무모하기도 하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듯 모두 함께 나눈다면 좀더 수월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데 혼자서 모든것을 떠안으려했던 그가 내내 내 가슴을 후벼판다. 사랑은,효도는 이런것이라고... 아버지의 그 모든것을 고스란히 '존재' 하게 하려 했던 그, 고향사진관은 그렇게 고향의 사랑방이 되고 아버지가 이 땅에 존재했음을 일깨워 주는 장소이면서 우리에겐 우리자신을 뒤돌아 보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이 소설을 읽으며 야사다 지로의 '가스미초 이야기' 도 떠올랐다. 오래된 추억의 장소인 사진관을 끝까지 지키려했던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진솔하게 묻어났던 소설이 잔잔하게 '고향사진관' 함께 오버랩되어 슬픔이 밀물처럼 내 가슴에 밀려들었다. 돈이 되지 않아도 '아버지' 의 모든것 이었기에 그에겐 힘이 되고 삶의 의미가 되었던 그에게 희순씨,그의 아내는 정말 '지기知己' 였던 것 같다. 아내의 변함없는 내조가 있었기에 그 또한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정말 그들은 '효부,효자' 로 명색이 없지만 그 또한 마다했던 그들이었으니 소설로나마 재탄생 되었다는 것이 정말 다해한 일이다. '어깨를 나란히, 두 손을 꼭 잡고, 희마한 가로등 불빛에 비슷한 그림자를 길게 끌며, 걸음조차 똑같이, 골목길을 타박타박... 밤하늘의 별을 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느끼며... 아픔을 위로하고, 고민을 달래주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고, 사랑의 이야기를, 정겹게 도란도란... 아! 참으로 아름다운 부부였다. 친구였다. 지기였다. 그쯤이면 무엇도 부럽지 않을, 아니 더 이상의 위로가 무엇이 있을 텐가!' 부부도 오래살면 닮아 간다더니 서로에게 수줍음이 많았던 그들은 어느새 이십여년의 삶속에 똑같이 닮아간 삶을 살았다. 혼자서 아버지를 지킨것이 아니라 그의 곁에 그를 무던히 뒷수발 들어주던 아내가 있었고 그런 부모의 사랑을 내리사랑으로 받은 아이들이 있었고 그리고 친구와 가족이 있어 긴 시간 아버지를 모실 수 있었던 것 같다. 슬프고도 가슴 따듯한 소설을 만나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만들었던 '고향사진관' 좀더 내 아버지의 남은 삶동안 좀더 잘해드리고 그동안 미루며 못해 드렸던 일들 해드리고 싶다.다음에 후회하지 않을 그런 '사랑'을 아버지께 드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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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으로서의 삶과 아버지로서의 삶, 아들로서의 삶을 모두 살아 내어야하는 남자란 이름으로, 아들이란 이름으로, 아버지란 이름으로 불리우는 남자의 짐과 사랑이 가슴 절절하고 따뜻하며, 또는 아릿한 마음을 온전히 보여주는 고향사진관 가장 용준의 이야기 였습니다. 어릴적 허름한 사진관에서의 추억이 오롯이 기억나게 해주는. 그래서, 슬거머니 미소가 머물게하는 제목이였지만, 소설 속 용준에게는 아버지로 기억되고, 기억하는 그의 버팀목겸 기둥인 셈이였습니다. 삶의 굴레이기도 하며, 지켜야 할 의무가 된 아버지의 고향사진관은 그의 삶 전체 였습니다.
군대 제대 얼마전 갑자기 쓰러지신 아버지, 용준은 학교도 포기하고, 꿈도 포기하고,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고향사진관의 주인으로, 한 집안의 가장으로,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길을 가는 용준의 모습에 처연함이 느껴지고, 무기력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책임감과 효성이 아름답기까지 해서 가슴이 먹먹해져 버렸습니다. 쉽지 않은 18년간의 병수발을 하고, 한번도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고, 공치사도 싫어하는 우직한 모습이 정말 본받아야 할 효성이라 느꼈습니다. 의식도 없는 아버지의 병수발이 얼마나 마음의 짐이 되고, 어려울지 실감이 잘 나지는 않습니다. 가끔 부모님 중 한분이 쓰러져 병수발이 필요 할때 나도 과연 용준과 같이 해낼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 겁부터 더럭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외할머니의 병환을 봐왔기에 더욱 이런 마음이 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남자의 일생을 보았습니다. 학교를 다니다 군대에 가고, 제대 후 아버지의 사진관을 운영하며 병간호를 하고, 가족을 돌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버지를 보내고, 친구의 가는 길을 지켜주는 용준의 삶을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톡별한 것도 없는 용준의 삶은 여느 가장들의 삼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냥 우리의 모습이였고, 우리의 아버지의 모습이였으며,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감동적인 삶이라 생각합니다. 잔잔함에 숨어있는 삶의 짐, 버거움, 고뇌, 희열, 애정, 고통, 슬픔이 인생의 한면처럼 가슴에 와 박혔습니다. 마지막을 읽으면서 혼자있길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전 이미 울고 있었거든요. 알수 없는 감동과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용준의 삶에서 진정한 인간의 길을 본듯합니다. 망므이 한껏 따뜻해지는 순간이였습니다. 용준과 희순같은 아들, 딸이 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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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도 고향 사진관이 있다. 한번도 그들을 가난하다거나 생각하진 않았다. 여기 촌에서는 보통 삼층건물에 있는 고향사진관은 부의 축에 들어간다. 예전 그 시대엔 부자만이 그렇게 고향사진관도 하고 예식장도 했다. 그래서 책 표지의 낡은 고향사진관 모습이랑 제목이 무지 맘에 들었었다. 왠지 친근하다고나 할까..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서용준을 따라 맘이 아프고 안타까워 했으며 끝무렵엔 펑펑 울었다. 밤이어도 상관없었고 어른이어도 상관없었다. 오로지 꼿꼿하게 아들노릇, 표현못한 어설픈 남편노릇이지만 마눌에게 사랑받는 남편노릇, 그것의 연장선에서 자식의 편에서 아버지노릇한 이사람이 너무 안타까워서 울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가슴이 아리고 불쌍한지.. 꼭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 위에 계신 분에게 묻고 싶은 정도였다. 실화라는 것이 더 못 마땅했다고나 할까..실화가 아님 그렇게 보내지 않아도 되었기에~~
경상도 남자의 우직함.. 사랑한다는 살가운 말을 밖으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남자..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려 한 남자.. 오로지 아버지 어머니를 먼저 생각하는 남자의 삶.. 17년 동안 뇌졸증에 쓰러져 말도 못하고 계속 누워만 있는 아버지 봉양을 효도라 생각지 않고 당연히 해야 될 일이라고만 여겼던 남자.. 효자상이랑 말에 불끈 화만 낸 남자.. 그랬다 ..이사람 서용준이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에겐 아내도 자기의 선택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선택 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tv를 보면 어느시에서 주는 효자.. 효부상을 받는 모습을 많이 본다. 하지만 정작 효자. 효부들은 받지 못하고 언뜻 사람들에게 안좋은 소리 듣는 분들이 받는 다는 살짝 맛 간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땐 설마 그러려니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효자들은 그 상들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사람들은 사랑이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니까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항상 충분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니 상 탈만한 사람은 본인이 거부를 할 수밖에 없고 본인이 거부를 하니 상을 줄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본인이 이 세상을 떠나갈때 누구나가 다 잘 했다는 소리를 한다면 그보다 좋은 소리는 없을 것이다. 자식에게나 마눌에게나 부모님에게..그리고 친구들까지... 살면서 어느 누구에게나 섭섭한 일 한두번은 하게 마련인데 그것조차도 주위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못하고 깔끔하게 보내주고 가는 것만 아쉬워한다면 이세상에 태어나 이름 석자 남겨놓고 떠나도 별 미련은 없을 것이다. 여기 주인공 서용준 처럼....... 그런 삶을 꿈꾸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