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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되겠다고 하면, 격려하는 사람보다 먹고 사는 길부터 찾아보라고 충고 내지는 핀잔주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예술을 풍요로운 사람들의 유희쯤으로 여기는 것은, 비단 예술가한테만은 아니다. 심지어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면 시간이 남아도냐는 말을 듣기 일쑤고, 돈을 들였다고 하면 돈이 남아도냐면서 핀잔을 주기 십상이다. 요컨대 한국의 예술은 대중화되었다기보다 '즐기는 사람만 즐기고, 그만큼 깊게 즐기는' 식의 풍조가 형성되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자연히 이런 풍조는 한국 예술계만의 특징적인 성향을 여럿 낳았는데, <한국의 예술 소비자>는 그 중에서도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중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은 미술전시, 음악, 영화, 연극의 소비자 성향을 분석한다. 동시에 비단 '소비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성향에 맞추는 예술가들의 자세에도 초점을 맞춘다. 예술 소비자와 창작자가 서로 유리된 존재는 결코 아닌 까닭이다. 이런 성향은 이미 많은 관객을 예상하며 많은 돈을 투자하는 상업시장이 되어버린 영화 부문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소비자의 취향을 의식하고 작품을 만든다는 것을 고깝게 바라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 점은 아예 무시해왔던 연극이 숫제 '일반인 관람객'과 완전히 괴리된 현실을 돌이켜 보면 악평할 수만도 없을 듯하다.
영화계의 지나친 상업주의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멀티플렉스처럼 너무나도 상업화된 나머지, 영화관이 영화를 보러 가는 곳이 아니라 여럿이 적당히 놀러가기 위해 무난한 놀이터처럼 변모한 지금은 더욱 그렇다. 저자 말마따나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영화관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영화관에 가서 적당한 영화를 고르는 상황이라면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마케팅을 잘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한 모양이 되는 셈이니까. 미술전시나 음악은 정도가 덜하기는 하지만, '외국에서의 이름값'에 좌우되는 성향은 매한가지다. 엄밀히 말하면 많은 소비자가 감상할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유명한 사람이나 작품이 왔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간다고 해야겠지만. 그런데 이걸 예술의 퇴조라고 보야아 할지 중흥으로 보아야 할지는 굉장히 미묘한 문제다. 원론적인 대답이야 양적에서는 중흥, 질적으로는 퇴조라는 것이 무난한 답이겠지만, 그게 과연 정답일까? 진입장벽이 낮은 나머지 오락을 위한 예술이 되어버린 영화와 진입장벽이 높아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연극 사이의 간극에서 '대중적인 예술 소비'의 해답은 과연 무엇일까. 해외의 유명 인사 위주로 기획되는 블록버스터 전시가 주축이 된 미술전시와 음악회는 그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일까.
<한국의 예술 소비자>는 단순한 원론 서술로 일관하는 책이 아니다. 데이터를 경시하는 한국 풍조 때문인지, 폐쇄적인 예술계 구조 때문인지 구체적인 수치 데이터를 얻기는 쉽지 않지만, 기사 등에서 간접적으로 인용된 것을 최대한 모아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후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저자의 탄탄한 논지와 설득력 있는 글솜씨만이 아니라, 데이터를 다루는 자세 측면에서도 귀감이 되고 본받을 점이 많을 책이다. 특히 제한적인 데이터에서 수긍할 수 있는 통계를 정리해내어 논조를 이끌고 가면서도, 데이터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서술 방식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