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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의 두 화가를 대비하고 있다. 에르네스트 메소니에와 에두라르 마네.
비교 대상이 될까 싶다. 마네야말로 인상주의의 대가로 높이 칭송받고, 그의 작품은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화가다. 메소니에? 글쎄 내 기억으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화가다. 그래서 한 화가(마네)의 놀라운 성공과 다른 화가(메소니에)의 비참한 실패를 대비하는 책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맞다. 한 화가의 놀라운 성공과 다른 화가의 반복되는 실패를 다룬 책임이라는 것은 맞다. 하지만 앞의 화가는 메소니에이고, 뒤의 화가는 마네다. 적어도 본문만 600쪽이 넘는 이 책에서 마지막 십여 쪽 분량의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말이다.
시대는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쿠데타를 통해 제정을 선언하여 나폴레옹 3세로 군림하던 때이고, 장소는 많은 화가들의 성공을 향해 돌진하며 모여들었던 프랑스의 파리다. 메소니에는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가장 비싸게 작품이 팔리던 작가였다. 반면 마네는 파리 근교 바티뇰의 스튜디어에서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지만 살롱전에 번번이 낙선하는 화가였다.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 식사>라든가 <올랭피아>를 통해 온갖 악명(惡名)을 떨쳤고, 심사위원들이나 일부(이를테면 에밀 졸라)를 제외한 많은 미술평론가들, 그리고 대중들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주제나 소재뿐만 아니라 그는 제대로 된 윤곽을 그릴 줄도 모르는 화가였으며 그림을 대충 마무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역사화가를 그리며 유명세를 떨친 메소니에는 말의 근육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연구하여 그릴 정도로 극도의 사실주의적인 그림을 그렸다. 인물을 그릴 때도 밀랍 인형을 먼저 만들었고, 전쟁화를 그리기 위해 온갖 제복이며 무기들을 다 갖췄다. 크기가 크지도 않은 그림 한 점을 그리는 데 몇 년이 걸리기 일쑤였다(아이러니한 것은 마네는 사실주의 화가로, 메소니에는 그런 명칭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사의 평가(여기서는 ‘파리의 심판’)는 달랐다. 메소니에가 생존에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사후 십 년쯤 지난 후에 완전히 보잘 것 없는 작가, 가치가 없는 작가로 폄훼되고 말았고, 미술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가끔 등장하는 것은 마네의 작품에 대한 방해라는 사실과는 좀 다른 얘기를 할 때뿐이다). 반면 마네는 일련의 화가들(이를테면 모네, 르누아르, 세잔 등)을 대표해서 ‘인상주의의 왕’으로 칭송받게 된다.
인상주의, 혹은 인상파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은, 1874년의 살롱전에 낙선한 화가들이 전시장 근처에 따로 그림을 전시했을 때 모네의 <르아브르: 항구를 떠나는 고깃배>라는 작품이 무미건조한 제목에 르누아르가 넌더리를 내자 모네가 제목을 <인상: 해돋이>라고 다시 붙인 데서 기인한다고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몇 가지 수정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 전시회는 많은 낙선화가들이 참여했지만 1874년 살롱전에 대한 낙선전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낙선전이 처음 열린 것은 1863년이었다(그래서 이 인상파 화가들을 대체로 1863세대로라고도 불린다). 그것은 보수적인 미술 정책에 따라 많은 작품들이 낙선되자 화가들이 적극적으로 요구해서 당국의 허가 하에 열린 것이었다. 거기에는 마네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후로 10년 간 마네의 위상도 조금 달라져 있었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나 <올랭피아>는 여전히 그의 스튜디어오에 잠들어 있을 수 밖에 없었지만 다른 작품으로 조금씩 살롱전에 입선되고 있었고, 조금씩 팔리는 작품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1874년의 전시회(“다양한 자본금의 주식회사”라는 따분하고도 전혀 의외의 제목이었다)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광채와 명예가 넘치는 영광으로 남으며“ 인상파의 거두로 소개된 셈이다.
책에 실린 그림들을 보면 왜 메소니에가 당시에 상찬받는 화가였지만 지금은 잊혀진 화가였는지, 마네가 왜 당시에는 그런 혐오의 대상으로까지 지탄받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대단한 화가로 평가받는지를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창의성의 문제인 셈이다. 미술 작품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있는 것을 그대로 정확히 표현하는 것을 대단하게 인정하는 세태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작가의 관점에서 표현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그게 바로 ‘파리의 심판’이다.
이것은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한 사람을 포함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당대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역사의 평가가 바뀌는 것을 이 사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문화적으로 우상과 같이 평가받는 이들이 후대에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혹은 과거에 높은 칭찬을 받았다가 지금은 내팽개쳐진 인물이 또 나중에는 다시 평가될 수도 있는 일이다. 로스 킹이 표현하고 있듯이 ‘잔인한 재평가’다. 언제나 이러한 잔인한 재평가 앞에 서 있는 우리들 모두는 겸손해져야 한다.
19세기 인상파의 대두를 도식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그려낸 이 뛰어난 책을 읽으며 정말 가슴이 벅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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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두께의 책.그런데 두께를 무시할 만큼 내용은 잘 읽힌다는 것.오래 전 구입만 해 놓고 책 두께에 질려 책장에 고이 모셔 놓기만 했던 책.그러다 최근 방송에서 마네를 다룬 이야기를 보면서 새삼 마네가 궁금해졌다. '파리의 심판'은 1863년 살롱을 기점으로 십년간의 사건을 다룬 책이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마네라는 인물이 주인공일 수 밖에.그런데 '파리의 심판'은 마네 이전(?) 메소니에 라는 화가와 교차하면서 살롱의 역사를 보여 준다.이름도 생경해서 메소니에 화가를 찾아 보니 생각 만큼 그림을 많이 찾아 볼 수는 없었다.책 시작에 여러 그림들이 도판으로 실려 있었는데,덜 알려진 그림들 위주로 도판을 실어 주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그래서 좀 남는다. '파리의 심판' 십년동안 파리에서 일어난 일들.그 중심은 물론 '살롱'이지만 1863년 전후 그리고 1873년 전후의 파리를 포함 주변 국가와의 정치.역사 등이 함께 다뤄진다.역사서인데 소설처럼 읽히는 재미라니~ 파리의 역사와 정치 그리고 주변국가의 전쟁등은 100%이해하고 넘어갔다고는 말할수 없지만 무얼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에 대한 핵심은 발견한 듯해서 기뻤다. 앞서 말한것처럼 메소니에와 마네라는 인물의 교차 하는 사이,우리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각도 만난다. 살롱에 입선하는 화가들과 그렇지 못한 화가들의 기준이라는 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객관적이였을까? 비평이라 하면 굉장히 논리적 이성적일 것 같지만 결국 비평이란 것도 시대를 반영하는 문화일 뿐. 시대가 달라지고 사람들의 경향이 달라지면 비평이란 것 역시 그렇게 달라지는 구나 싶다.그러니까 진정한 '심판'이란 애초부터 모순 그 자체의 개념일지도 모르겠다.고전주의가 중심이던 시절 메소니에는 모든 영광을 누리지만 시민들의 의식이 깨어날수록 저평가 된다.당연히 마네는 반대로 흘러간다. 십년 전 악평으로 일관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찬양을 바뀐다.그의 그림실력이 월등히 나아져서 발전되어서 그런것 같지는 않다.
"코뮌이 끝났을 때부터 대중의 마음속에서 사실상 알코올중독과 노동자계급의 폭동이 동일시되던 상황에서 술에 취한 사람을 그린 그림을 1873년에 살롱에 보내는 것은 그리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알코올중곡증상은 1865년에 생겨난 용어이고 많은 사람들은 코뮌 때의 무도함뿐 아니라 프로이센에 패배한 것도 이 문제 때문이라고 여겼다.(...)하지만 대중과 평론가들은 만족해하며(...)'좋은 맥주'는 곧 살롱 전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림이 되었다./558
마침내 마네도 오랫동안 얻을 수 없던 대중적.비평적 재정적 성공을 즐기고 있었다.그렇다면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올랭피아>이후 대중과 비평가들이 성숙한 것인가,아니면 마네가 그의 양식을 바꾼 것인가?(...)1863년에 부르주아들을 위협한다고 비난 받은 마네는 십 년 뒤 메소니에나 제롬처럼 이들을 매혹하는 것처럼 보였다./550
이런 생각을 했다.지금 당장 호평을 받는 다도 후대에도 역시 호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지금 악평을 받는 다고 역시 후대에까지도 악평으로 남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예술가들은 이래저래 고통스러울 밖에 없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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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능력이란, 하잘것없는 일상의 파편에서 비범하고 아름다운 면을 용케 캐치해내는 재능을 특히 일컬을 수도 있다. (이 책 중에 나온 표현대로) 대문자 A로 시작하는 art(순수 미술을 의미)에서라면 더더군다나 그 정의의 개연성과 정당화의 기반이 넓어지는데, 예컨대 예전 나의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도 사생 시간에 철기둥에 얼룩진 묘한 무늬를 골라잡아 스케치하고 있는 내게 특별한 격려를 해 준 적이 있다. 부식은 일상의 의미에서야 구조 붕괴의 불길한 전조에 지나지 않지만, 미학의 눈으로 그 찰나의 단면을 잡은 초현실, 탈현실의 모멘트에서는 피안에서나 발견될 법한 질서의 암시로 그 모습을 비의스럽게 드러내며 존재의 이면적 자격을 뽐내지 말란 법도 없는 법인데,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생 인류가 발견하고 칭송해 마지 않으며 후세에 물려 주는 많은 미학의 범주는 이처럼 가당치 않은 우연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예전 세대가 즐기던 놀이 중에 엿치기라는 게 있었다. 단단한 엿을 적절한 강도의 힘을 주어 요령 있게 부러뜨리면, 구멍의 크기가 우연의 효과로 그 대소의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 차이로 플레이어 간의 승부를 내는 놀이라는 것이다. 사실 유희란, 주체가 속한 세대의 지배적 감각에 의해 패턴과 가치, 인기가 결정되는 사태(Sache)라서, 시공간적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그 단순함과 불통성에 어이가 없어질 때도 많다("아니 무슨 아프리카인도 아니고, 그 단순한 걸 무슨 재미로 즐긴단 말?"). 하지만 미시세계의 물리분석 기법이라도 이 작고 소박한 게임에 들이대는 수고를 무리하게나마 베풀자면, 그리고 피카소나 레제 같은 별세계의 감성으로 그 영혼이 채워진 희귀종을 잘 구슬러 이 오랜 전통습속에 한 마디 의미부여를 청하게라도 한다면, 아마 예술의 색다른 장르 하나가 탄생할 계기가 대체역사적으로 마련될지야 누구도 부인 못 할 일이기도 하다. 어차피 세상의 행보는 랜덤이며, 예술은 고등사기가 아니었던가? 빠리지앵도 프랑코포니도 아닌(그는 캐나다인이긴 하나 저 서부 새스캐체원 출신이다) 이 로스 킹이라는, 소설도 쓰고 대중적 문예비평서도 내곤 하는 50대의 작가는, 인상파의 탄생 그 사적 배경을 연대기적 서술로 밝히겠다는 스킴 아래, 화가 개인의 전기 사항 기술, 파리 중심 미술계의 사건 중심 고찰, 그리고 보불 전쟁의 발발과 이후 파리가 맞은 대재앙에 이르는 정치적 격변의 드라마 구연 등을 입체적으로 엮어 내어, 우연과 필연, 곡선과 앵글, 조망과 밀착, 개인과 거대 집단 간의 모순과 융화, 척력과 인력이 어우러지는 미학 연찬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마네의 올랭피아가 동종 종사자에게는 물론, 전 빠리 시민의 공분을 사기까지 했다는 일화는 사실 미술사를 일부라도 다루는 책에서는 각주 속에서 잠시라도 언급될 만큼 유명할 뿐이며, 멕시코 대혁명 당시 황족으로서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막시밀리안의 사연이라든가, 딴에는 책략과 기지를 뽐낸 비상한 대중추수적 정치인이었던 나폴레옹 3세가 말년에 건강 악화와 더불어 '수수께끼 없는 스핑크스'로 전락해 가며 운명의 파국을 맞는다는 사화 역시 서양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이라면 새로울 게 없는 소재이겠다. 그런데, 이렇게 이 이질적인 에피소드들이 한 권의 책에 개별 이유를 장착한 채 한 폭의 통일적 회화를 이루게 배치되니, 개인의 퍼스낼리티가 빚은 스캔들과 업적, 거물 정치인이나 장군들이 그 행로를 변경한 큼직큼직한 이벤트들이 일관된 질서와 필연적 맥락에 포섭되어 '낯설게 보이는' 감동을 생산한다. 사서로도 읽히고 미술사 각론으로도 읽히는 이 대중서가 영리하게 캐치해 낸 건 바로 이런, 사이즈를 달리하는 현상의 프랙털 재배치(부분이 전체를 복제한다는 의미에서)가 낳은 묘한 안티-데자뷰라고 할 수 있다. 강유원 교수가 감수까지 맡아 번역된 이 책은, 고유명사 뒤에 로마자 원어 표기가 반드시 딸려 있고(진정으로 현대 한국의 출판 풍토에 절실히 자리잡아야 할 관행이다), 원주의 충실한 번역 수록에 역자주까지 추가로 달려 있어 읽기에 아주 편한 포맷이다. 다만, 도판의 수록에서 성의가 부족하고(핵심 토픽과 직접 관계 없는 작품 중 너무도 익숙한 건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다), 내용과 긴밀한 연계 없는 편집, 삽입 양태가 아쉬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