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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도올선생은 강연 첫머리에 역사의 정의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했다. 도울이 시골길을 걷다가 길바닥에 오줌을 누는 것은 역사다. 강연중에 미친척하여 청중을 향해 오줌을 날리는 것도 역사다. 그러나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청중을 향해 오줌을 깔겨야 비로서 역사가 된다. 역사는 시대의 사건과 특이성,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리는 자기의 삶을 역사로 만들었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유럽역사상 최초로 국왕이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선례를 남기므로 충격을 주었다. 마리앙트와네트가 운명이 다가 왔으나 주인이 되어 그 운명을 지배하지 못했듯 매리스튜어트도 그 운명에 저항했으나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갔다. 아쉬운 것은 16세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 대한 기본지식이 부족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머지않은 어느 날 엘리자베스와 함께 츠바이크가 본 메리에 대해 알고 싶다. 단순히 스테판 츠바이크의 책들을 모조리 읽겠다는 생각으로 구입했다. 적적해서 낚시를 드리웠고 월척이 낚였다...빙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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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깃거리가 많은 역사적 인물과 훌륭한 역사적 인물은 확실히 다른 범주에 속한다. 태평성대는 심심해서 흥미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후대의 인기를 한몸에 모으는 사람은, 역사적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일 때가 많다. 대개 승리자가 다소 교활한 술책을 써서 상대를 쓰러뜨리고는 하지만, 패배자 측에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려 사실상 자멸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은 아무런 관련이 없고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후대의 제 3자 입장에서는 종종 감성적으로 멋지게 비쳐지고는 한다. 아련한 향수와, 로망과, 드라마틱함에 대한 막연한 흥미가 패배자에 대한 동정과 뒤섞인 감정이다. 어쩌면 일탈에 대한 동경도 약간은 섞여있을지 모르겠다. 하나같이 어디까지나 관찰자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우아한 왕비, 어두침침한 모국으로의 반강제적인 귀환, 두 번째 남편의 살인자와 세 번째로 올린 결혼식, 시민들의 분노 속에 귀족들에게 유폐당해 도망쳤으나 평생의 정적인 엘리자베스 1세에게 사실상 감금되는 허울뿐인 망명. 노력하지 않고 주어진 영광, 급격한 추락, 여기에 처형으로 끝을 맺으면서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메리 스튜어트는 감성적인 의미에서 열정적이기 그지없는 여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매료될 만하다. 이토록 드라마틱한 멜로드라마가 또 있을까. 정열적인 열정과 그로 인한 파멸을 메리 스튜어트처럼 고스란히 구현한 인물이 또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한 명의 인간이기 이전에 한 나라의 여왕이었다. 일개인으로서도 부러움을 살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용납받지 못할 행동을 여왕이 한 것이다. 그것도 대외적으로 적당히 눙치고 무마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정말 분노했던 것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 떄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자신 위에 군림하는 누군가에게 그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결코 진실이 아니니까.
문득 사람들이 메리 스튜어트와 혼동하고는 한다는 메리 1세가 떠오른다. 요즈음 표현을 쓰자면 처절할 정도로 이미지 관리에 서툴러서 그렇지, 메리 1세는 '피의 메리'라는 별명처럼 잔인한 여인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가식이 없으며 하고 경건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수녀가 되었다면 불세출의 성녀로 길이길이 남았을지도 모를 여인이었다. 하지만 메리 1세는 한 나라의 여왕이었다. 얼키고 설킨 정치적, 국제적 역학 관계 속에서 거짓을 모르는 여왕의 성품은 농락당하기 쉬운 순진함이 되었고, 다정다감한 성품은 결단력이 떨어지는 우유부단함이 되었다. 경건한 성품은 완고한 종교적 아집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일개인으로서는 매력적인 성품도 단점이 될 수 있는 것이 정치인이고, 그 정치인을 통솔하는 자리에 있는 왕이다. 하물며 메리 스튜어트 같은 경우야 오죽할까.
흔히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당대에 쓰여진 공식적인 역사서에나 통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왜곡은 어떤 형태로든 그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찾아보면 역사적 사실의 편린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세월이 실제 역사의 흔적을 없앨 수는 있어도, 승리자가 모두 없애고 왜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역사가 승리자의 기록인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승리자의 기록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낭만적인 전설이나 문학에서만은 패배자가 주인공이다. 다만 이런 경향이 심화되면 무조건적인 미화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엄연한 실책도 온갖 변명을 붙이면서 정당화하거나, 오히려 누명이었다고 일단 우기고 보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단연 메리 스튜어트일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캐럴 섀퍼가 쓴 메리 스튜어트 전기는 그야말로 고문과 다름없는 책이었다. 지나치게 메리 스튜어트 편을 들고 있다는 평을 듣고 각오하고 봤지만 그야말로 관변 전단지 수준이었던 것이다. 메리 스튜어트를 묘사할 때 '백조 같은' 식의 수식어를 붙이는 건 그러려니 했다. 엘리자베스 1세를 음흉함의 화신처럼 묘사하는 것도 적당히 걸러내면서 읽었다. 관점에 따라 같은 인물이나 사건의 묘사가 어느 정도 달라지는 것은 꽤 익숙했으니까. 이렇게 대놓고 편을 가르는 건 거북했지만 일단은 허용 범위 내에 있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인 앤 불린은 창녀였다'로 단정적으로 묘사한 부분을 보면서 얄팍한 내 도량은 끝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더랬다. 하다못해 '창녀와 다름없는 성품의 여인이었다' 정도만 되었어도 꾹 참으면서 감내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을 텐데. 나름대로 주목할 만한 새로운 해석도 있었지만 그런 장점도 묻어버릴 만큼 너무나도 편파적이었다. 적어도 근거없는 비방을 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설마하니 당대의 정적들이 지어내 퍼뜨린 악담을 역사적 출전이라고 할 셈인지. 읽기는 끝까지 다 읽었지만, 메리 스튜어트 옹호론에 괜한 반감까지 갖게 한 전기였다. 언제나 정도가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만 못하게 되는 법 아니던가.
그런 측면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 전기는 굉장히 훌륭하다. 무엇보다 메리 스튜어트의 행동을 '그럴싸하게' 추측한 부분은 정말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다. 막연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당대의 상황이나 심리적인 요인을 종합하면서 나름대로의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러면서 본인의 추측이나 평가를 독자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단정적으로 서술할 때는 엄연한 사실을 조목조목 기록할 떄뿐이다. 작가의 사감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부분은 예외없이 작가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 붙어 있다.
전체적으로 메리 스튜어트에게 옹호적인 시선을 내내 유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덮어놓고 변명하지는 않는다. 하기야 메리 스튜어트의 행동은 편들어주려고 하면 곧바로 억지스러운 아집이 되어버리기 십상인 것 투성이지만 말이다. 초기의 실책은 순진함으로 덮어버릴 수 있는 정도였고, 권모술수에 짓밟힌 꽃송이쯤으로 바라볼 여지가 있었다. 편들 수는 없어도 연민 어린 동정을 살 수는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누구 말마따나 '메리 스튜어트 생애에 가장 치열하고 격렬했던 2년' 간의 행동만큼은 도저히 그렇게 안 된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내가 메리 스튜어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절규하듯이 쥐어짜는 한 마디가 있었다. '누가 두 번째 남편이 살해당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아, 그 살해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심리를 설명해 줘요.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간혹 무조건 편들지는 않아도, 여러 견해가 충돌할 때면 가급적 우호적인 의견을 채택하고 싶어지는 역사적 인물이 있다. 이를테면 낭만적인 동정을 가지고 있다고나 할까. 패자에 대한 공식 역사 기록은 대개 가혹하다는 점도 한몫하지만 말이다. 내게 있어서는 메리 스튜어트가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막연하나마 우호적인 그런 감정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만은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애먼 사람을 살해자로 몰아 처벌하지 않은 걸 그나마 양심적이라고 해야 할지, 무던히도 여론에 신경 쓰지 않는 멍청함('어리석음' 정도로 포용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넘어섰다.)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왕으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결코 용납받지 못할 행동이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츠바이크는 아주 그럴 듯한 해석을 하나 제시한다. 메리 스튜어트가 임신 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적법하지 않은 출생이 왕위계승서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사생아를 낳은 여왕보다는 평판 나쁜 남편을 맞은 여왕의 처지가 그나마 나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법하다. 특히 임신하여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면 더욱 그럴 것이라고 말이다. 정말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설사 그렇다고는 해도... 츠바이크 말마따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척이라도 할 수는 없었단 말인가. 정말 그랬다면 교활하다면서 비난했겠지만, 그것조차 못하는 것을 보니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났다. 이러는 내 모습을 보면서, 정치인에게 기대되는 품성과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품성이 다르다는 걸 새삼스럽게 확인하고 자조 섞인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말이다.
평생의 숙적으로 불리는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 1세는 더할 나위 없이 극적으로 대비되는 인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 역시 엘리자베스 1세가 메리 스튜어트를 부러워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메리 스튜어트는 확고한 혈통과 손꼽히는 미모, 강력한 혼맥 등 엘리자베스 1세에게 결정적으로 취약했던 강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1세가 떠밀리듯이 포기해야 했던 것도 많이 누렸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한다는 것만큼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일이 또 있을 것인가!
엘리자베스 1세는 군주로서는 몰라도 '여성'으로서는 메리 스튜어트를 질시했을 것이다. 정치적, 국제적 역학관계 때문에 사실상 타의로 독신을 고수했으니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된 메리 스튜어트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질투였을까?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놀고 싶은 것을 꾹꾹 참으면서 공부만 하는 학생이 마음껏 노는 친구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에게 부여한 이미지 때문에,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 때문에 눈치가 보여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있는 학생이라면 그런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얄팍하고 막연한 부러움 이상은 아니다. 질투는 고사하고 동경까지 가지도 않는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메리 스튜어트를 바라보는 관점과 이런 감정은 상당히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에 낭만 섞인 동경이 더해질 따름이다. 은연중에 하고는 싶지만 할 수 없다는 것, 혹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당당하게 하고는 파멸한 인물-낭만적으로 바라보면 그야말로 우상이고 아이돌일 테니까.
메리 스튜어트는 지극히 불운한 인물이었다. 츠바이크도 전기 말미에 언급했지만, 메리 스튜어트가 시작하거나 그녀를 위해 진행된 일치고 메리 스튜어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끝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드라마틱한 멜로와 로망의 전설로 남아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빈말로라도 불행했다는 말은 못하겠다. 경솔하게 결정한 일이라 끝없이 후회하기는 했어도 어쨌든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자신이 감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잉글랜드에서 사실삼 감금당했다고는 해도, 마지막 1년여를 제외하면 물질적으로는 지극히 편안하고 풍요롭게 지냈다. 자유가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차마 얼굴을 들고 자유롭게 다닐 처지가 되지 않는 사람에게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욱이 그 대가가 형식적으로나마 여왕의 직위에 지극히 걸맞는 극진한 대우라면야.
'오직 엘리자베스 1세가 부당했기 때문에, 메리 스튜어트는 역사상 가장 더럽고 천한 운명에서 구원받는 것이다'라는 츠바이크의 서술은 절묘하기 그지없다. 그렇다. 엘리자베스 1세에게 핍박받았다는 이미지 때문에 메리 스튜어트는 부도덕하고 방종한 여인이 아니라, 정열적이고 낭만적인 여왕으로 남은 것이다. 남편의 살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결혼식을 올린 여왕이 아니라, 장엄한 처형 장면을 연출하며 최초로 처형당한 여왕으로 남은 것이다.
메리 스튜어트는 분명 역사적 인물로서는 흥미롭고 드라마틱하지만, 본받을 만한 점은 전혀 없다고 감히 단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런 인물일수록 전설이 만들어지기 쉽다는 것은 정녕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탈에의 동경 같은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흥미일까. 하지만 로망이나 멜로드라마라는 단어가 남아있는 한, 메리 스튜어트의 '신화'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역사가 아니라 전설의 영역에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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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에 대해 그 결과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후세의 관점만 내세우면 잘못 판단하기 쉽다. 실패한 사람을 어리석다고 부르기는 너무 쉽기 때문이다. 단지 그가 위험한 투쟁을 감행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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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스튜어트』는 『위로하는 정신』이나 『에라스무스 평전』보다는 더 재밌다. 아니, 재밌다기보다는 좀 편하게 읽을 수 있다고 해야 맞을지 모른다. 그 생애를 잘 알지 못하는 몽테뉴나 에라스무스와 같은 수백 년 전의 인문학자에 대한 평전을, 생애는 대략적으로밖에 언급하지 않고 있는(마치 그 정도는 독자들이 다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식) 『위로하는 정신』, 『에라스무스 평전』은 츠바이크의 메시지에는 공감하지만, 다소 불편한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메리 스튜어트』는 한 인물에 대한 평전으로 전형적인 방식, 그러니까 태어나고, 자라고, 전성기를 맞고, 내리막을 거쳐 죽음에 이르는 길을 따라서 쓰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메리 스튜어트라는 스코틀랜드 여왕에 대해서 가장 친절하게 그녀의 생애와 그녀의 마음과, 그리고 보편적인 인간성, 정치, 시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태어난 지 6일만에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되고, 다섯 살에 프랑스로 배로 실려가 정략결혼으로 세자빈이 되고, (“아직 여물지도 않은 몸, 아직 깨어나지도 않은 영혼이 벌써 상품으로 취급된 것이다”, 31쪽) 10대에 프랑스 왕비가 된 여인. 남편인 프랑스 왕이 죽자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스코틀랜드 여왕이 되고, 한 남자(단리)에게 잠깐 홀딱 빠져 잘못된 결혼을 했다가, 다시 다른 남자(보스웰)를 사랑하여 남편의 죽음에 깊숙이 관여하였고, 또 그 남편을 죽인 보스웰과 결혼을 해버린 여인. 그 때문에 귀족들에게 쫓겨나 잉글랜드로 망명. (말하자면 그녀는 사랑 때문은 왕국을 잃었다!) 그리고 20년 간의 유폐. 그리고 유럽 최초로 단두대에 목을 내놓으며 죽음. 정말로 드라마틱한 삶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같은 시기에 잉글랜드의 왕권을 두고 다퉜던, 그렇지만 정말로 다른 성격을 지녔고, 정말로 다른 삶을 살았던 엘리자베스와 메리 스튜어트를 비교하는 대목들이다(“화려하게 벌어진 자매싸움이라는 구경거리를 위해 역사는 두 사람의 위대한 경쟁자를 골랐다”, 120쪽). 츠바이크는 이런 비교를 통해 인간의 단점과 장점이 삶과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단점과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장점을 드러내고 단점을 숨기지는 못한다. 말하자면, 드러나는 단점을 적절하게 숨기고, 장점을 효과적으로 발휘시켜야 한다. 정말 공자님 말씀 같은 당연한 얘기이고, 쉽지도 않은 것이지만, 메리 스튜어트와 엘리자베스의 비교를 통해 그게 드러나는 모양을 보게 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우면서 교훈적이다. (“현실주의자인 엘리자베스는 역사에서 승리했고, 낭만주의자인 메리 스튜어트는 문학과 진실로 승리했다.” 132쪽) 츠바이크는 이 드라마틱한 한 왕녀, 아니 여인의 삶과 그 시대의 권모술수를 통해 그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고, 또 인간성의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대를 꿰뚫고, 인간의 본성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츠바이크의 인문학적 통찰력은, 메리 스튜어트의 극적인 삶이라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넘어서 책읽기를 흥미로울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성과 정치가 나란히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어쩌면 세계사의 극적인 구성은 언제나 놓쳐버린 가능성 때문에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72쪽) “위대한 국가들은 언제나 불의(不義)라는 냉혹한 사각돌 위에 건축된 것이다. 국가의 초석은 피로 반죽된 것이다. 정치에서 잘못이란 패배자의 몫이요, 역사는 단단한 발걸음으로 패배자들은 넘어가 버린다.” (522쪽) “언제나 신을 위해 싸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지상의 평화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늘의 명령을 듣는다고 믿으므로 그들의 귀는 인간의 말에 대해서는 완전히 닫혀 있기 때문이다.” (94쪽) “이중바닥을 가진 마술이 우리 세기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정치적 발명품이 아니라” (389쪽) “승리는 오직 자신의 권리를 원할 뿐이며, 패배한 자에게는 언제나 부당함이 따르는 법이다. Vae victis! (슬프구나, 패배한 자여!)” (391쪽) “죽어야 하는 메리 스튜어트가 느끼는 두려움보다 메리 스튜어트를 죽여야 할 엘리자베스가 느끼는 두려움이 훨씬 컸다.” (488쪽) “책임에 대한 공포” (490쪽)
(2013. 8) |
| 여왕으로 태어나 스코틀랜드와 프랑스의 국모가 되었으나 결국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 지금껏 영국사에 언급된 엘리자베스 여왕의 이야기의 짧은 부속물로만 보아왔던 그녀의 이야기를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려한 문체로 읽는다. 고귀하게 태어났으나 역사적인 희생양이 된 그녀 내부의 열정을 읽는 것은 참 흥미로웠다... 더불어 엘리자베스의 도 다른 면모를 보는 것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