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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돈'에 대한 것이다. 나 또한 돈과 신앙이 연결되는 부분이 늘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의 다소 직선적인 제목에 나의 눈길과 관심이 쏠려버렸다. 책 제목을 모두 적어보자면 이렇다. 그리스도인의 선택-두 주인, 하나님이냐 돈이냐 그렇다. 살아가면서 가장 권력적인 존재는 바로 '돈'이라고 느껴지는 지금의 세상에서, 감히 주인이라고 불릴수 있는것이 바로 돈의 힘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힘들어하고 악착같이 일하며 나쁜일도 서슴치 않고 저지르는가. 그러나 비단 그런 사람들에게만 돈이 주인이라는 것인가? 하나님을 성실하게 따른다면 당연한 축복으로 부가 주어지는 것이고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는 사람은 가난한 것인가? 과연 돈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정한 고찰이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문제인 하나님과의 관계 앞에서 그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돈은 너무나 무기력할 뿐이라는 진실, 이런 진실을 알게 된다면 돈이 가지는 가치나 힘에 휘둘리지 않을수 있을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자는 마땅히 부자여야 한다는 오래된 편견에 대한 부분도 성경의 여러부분을 제시하면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부분에서 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징표로 보는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는데 사실 약간의 시간이 걸렸지만, 돈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시작하신 일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돈이 아닌 그 뒤에서 일하시는 주체자로서의 하나님에 가장 큰 중점을 둔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부란 돈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를 짖누르고 있는 많은 딜레마와 방황의 문제에서 우리는 더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으며 돈에 의해 휘둘리지도 않게 된다.
부자는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위안이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부자라서 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악한것이다. 심령이 가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을 간구하는 가난한 심령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이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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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하며 직면하는 여러 어려움 중 가장 큰 어려움 하나는 하나님이냐 돈이냐를 놓고 저울질 하는 것이다. 물론 항상 하나님을 선택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때론 하나님보다 돈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쉬운 예를 들면 십일조를 하지 않으려 한다거나 주일에 특근을 하는 등 돈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일이 닥칠 때 자의든 타의든 돈을 택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을 택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모든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안으로 하나님과 돈에 대한 명확한 신학적 지식과 신념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돈을 택할 때마다 자책감과 죄책감에 빠져서 신앙마저 흔들리게 될 것이다. 돈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로 돈은 이렇다. "상품의 교환 가치를 나타내며 상품 교환을 매개하고 가치 저장의 수단이 되는 물건" 돈은 단지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단을 넘어 목적이 되었다. 돈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부와 성공의 상징이 되었다. 심지어 돈은 만물의 가치척도가 되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쌓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였다. 돈의 노예가 된 것이다. 다시금 질문을 해본다. 돈이란 무엇인가?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의인화하여 '맘몬'이라 부른다. - 그것의 신학적 어원과 정의, 그 단어 사용의 당위성 등은 글의 논점이 아니기에 차치하고 - 맘몬은 곧 하나님과 맞서는 적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유혹하는 암적인 존재이다. 하나님에 대항하는 또 다른 절대 권력의 상징이다. 그렇기에 세상 사람들은 이미 그것의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맘몬은 아직 노예가 되지 않은 유일한 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을 자신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시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일부는 결국 그 노예가 되었고, 나머지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대항하고 있다. 성경적으로 돈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그것은 자크 엘룰의 '하나님이냐 돈이냐'에서 잘 다루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바라보는 부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과 돈 사이에서의 선택의 문제, 돈에 대한 교육 등 그리스도인으로서 돈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성경적으로 잘 답해준다. 자크 엘룰이 제시하는 돈에 대한 정의가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혹 그런 느낌이 든다면 그건 바로 자신이 돈에 대해 경계를 느슨하게 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런 느낌이 든다면 자신의 재물관에 대해 다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4, 5장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만 2, 3장에 대해서는 의심에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니 자크 엘룰의 책을 통해 자신의 돈에 대한 관점을 점검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과 돈에 대한 관점을 바로 세우지 않고 하던 대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언젠가 하나님과 돈을 저울질 하게 될 때 단번에 하나님을 선택하지 못하고, 어느 쪽을 선택 해야 할지 망설이게 될 것이다. 이제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제 돈은 매개 수단을 넘어 성공의 척도가 되었다. 그 자체가 가치이고, 심지어 한 사람의 도덕성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악행을 저지른 인물이라 하더라도 돈으로 많은 것을 베풀면 악행을 어느 정도 눈감아 준다. 이제 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생각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참으로 통탄 할 노릇이다. 돈으로 인해 인간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돈이 인간성을 집어 삼켰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이 돈을 대함에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하나님과 돈은 상극이기에,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에 그것에 대한 신념 있는 자세와 발언은 곧 어떠한 의미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힐 수 있는 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은 돈에 대한 신념과 일관성 있는 자세를 더욱 견지해야 한다. 하나님과 돈을 선택해야 할 때 당연히 하나님을 선택해야 한다. 돈에 대해서는 융통성이 없어야 한다. 돈에 대한 미적지근한 태도는 곧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을 가져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관점이 요구된다. 돈이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 바로 알고,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돈을 대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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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 하나님이냐 돈이냐 - 기독교인이라면 읽어봐야 할 책
돈....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조차 첨예하게 대립하는, 유일한 문제인..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은 돈을 섬기는 우상숭배며 자기를 사랑하는 수단이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권세와 영화와 그 자신을 버리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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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냐 돈이냐>
제목이 아주 인상 깊다.
하나님? 아니면 돈
왜 하필 하나님과 ‘돈’ 을 동등한 위치에 올려 두었는가..
그것은 성경 속에 나와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을 잘 대변해 준다. [마6:24]
예수님도 자신의 유일한 라이벌로 ‘맘몬의 영’ 을 언급하지 않으셨던가.. (저자는 이야기 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맘몬 사이에 설정한 병립관계를 과소평가하지 말아라고…. 이것은 수사학적인 어법이 아니고 하나의 현실이라고…… 인격으로서의 하나님과 인격으로의 맘몬…. 둘은 상반될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그 만큼 , ‘돈’ 이라는 건 ‘신의 자리’ 를 전복시킬 만한 힘이 있나 보다.
사실 , ‘돈’ 의 위력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돌아 보면 된다. 세상을 한 번 둘러 봐도 좋다)
일단 , 이 책의 주장은 도발적이고 참신한데 첫째로 ‘돈’ 이 ‘가치 중립’ 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타파시켜 버린다.
부(돈,재물)는 ‘가치 중립’ 도 아니요 , ‘악’ 도 아니라 ‘유혹’ 이다라는 그의 주장은 구약 전반의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찬찬히 전개된다. (좀 더 논의를 확장하여 그는 ‘부’ 는 하나의 ‘권세이며 , 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결코 중립적일 수 없으며 어딘가를 지향하고 있으며 , 인간으로 하여금 어디를 향하게 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 정도면 ‘부’ 는 ‘어느 정도의 인격’ 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인간은 틀림 없이 이 ‘유혹’(또는 권세) 에 지게 된다고 이야기 하면서 , 그 이유는 인간이 타락했으며 악하기 때문이라고 논증한다. 결국 ‘부’ 는 ‘타락의 기회’ 인 것이다.(거의 확실한)
또한 , 그는 인간 사회 전반과 정치에 대한 논의도 곁들여서 하는데 , 결국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돈 문제를 가지고 종합해 봤을 때 ‘진리’ 일 수 없음을 역설한다.
이와 같이 특정 체제에 기대어 진리를 찾아가는 방식은 모든 문제의 해결과 책임을 체제에 돌리기 때문에 위선이며 , 비겁이라는 것이다.(모든 문제는 ‘나 자신’ 에게 있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기독교에서 ‘돈’ 에 대한 교리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그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 성경이 전해 주는 메시지 ,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남과 죽으심 , 부활하심은 돈 문제와 무관하기 때문이다.(이와 같은 접근 방식은 , 성경을 우주적 , 역사적 , 과학적,정치적 진리로 사용하려는 일부 성경 무오론자들의 입장과 상반된다. 하지만 , 궁극적으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우리 피조물들을 거룩하게 만드시고 , 구원하시려는 것이기에 이와 같이 ‘성경’ 을 받아 들여도 문제는 없는 듯 하다…..)
물론 , 성경 속에서도 부, 재물 , 돈 에 대한 언급들이 신,구약을 통해 가끔씩 나오긴 하지만 , 그 모든 말씀들을 종합해 봐도 확고한 원칙을 세우는 건 어렵다고 이야기 한다.
이 쯤에서 , 그는 성경에는 철학 , 정치 , 형이상학 , 종교가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나를 향한 , 내가 한 일 , 내가 바라는 것 , 내가 의심하는 것에 대해 묻는 , 궁극적으로 나 자신에 대해 묻는 말씀과 대화가 있을 뿐이라는 말로 다른 언급을 일축시킨다.
또한 우리는 ‘노동의 대가’ 로서 정당하게 얻는 ‘부’ 는 옳다라고 이야기 하곤 하지만 , 이 부분에 있어서도 저자는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데….
결국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논쟁의 핵심은 누가 재물을 차지하느냐는 것이며 , 그 두 체제는 사람이 정말 의로워 질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논쟁하지 않는다고 그는 이야기 한다. (마치 두 체제에서는 인간은 당연히 의롭다라는 전제가 담겨 있는 듯….. 이러한 인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여실히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야기 하기를 , 우리는 우리의 ‘노동의 힘’ 을 통해 마치게 ‘의로움’ 을 얻게 되는 것으로 여기지만 ,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일을 통해 너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지 말라’ 고 이야기 하신다.
또한 욥이 열거했듯이 , 부자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사람들의 필요를 알고 보살펴야 하며 , 언제든지 그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처분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논증은 부자들의 책임을 강조하며 , 가난한 자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잠언 31장:5 등을 근거로)
그리고 , 구약 전반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부’ 가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긴 하지만 , 재물 그 자체를 축복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으며 , 별 의미도 없다고 이야기 한다. 더 나아가서 신약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로는 모든 은혜의 풍요로움이 전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전과 같이 ‘부’ 에 영적인 의미를 담으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한다.(그래서 신약에서는 ‘돈’ 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이제 논의가 더욱 심화 된다.
돈은 큰 권세이기에 , 그리고 결국 중요한 건 사랑의 문제이기에 , 우리는 그 사랑을 누구에게 줄지 선택해야 한다. 돈이냐 하나님이냐….
또한 사랑은 총체적인 것이기에 결코 둘로 분할 될 수 없다.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에게만 이 사랑을 쏟아 붇고 싶어도 , 이 행위는 인간의 힘으로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한 행위이다.
이제 그 분만을 사랑하기로 선택한 우리가 그 분께 우리 자신을 맡기면서 , ‘돈’ 을 사용해야 하는데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한 , 우리는 ‘돈’ 을 사용하긴 해야 한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본받아 거저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행위가 은혜이며 , 거저주심이라면 , 맘몬의 행위는 無은혜요 , 매매 법칙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 '재화' 보다는 , '인간' 을 선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 이러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가짐이 올바른 선택을 함에 있어서 귀하게 쓰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돈을 사용함에 있어서 , 정직성이나 관대함을 지니고 안 지니고가 문제가 아니다. 그 분은 우리가 ‘돈’ 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주목하신다.
결국 주님은 우리가 ‘돈’ 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늘 주목하고 계시기에 , ‘돈’ 문제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이 문제에 직면하고 , 씨름하며 자신의 사랑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라.
그리고 , 우리는 부자가 되기 보다는 가난한 자의 자리에 서야 하는데 , 이것은 꼭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부자’ , ‘가난한 자’ 라는 개념을 경제적인 개념만으로 해석하여 , 물질의 많고 적음이 부자와 가난한 자를 규정한다고 생각한다면 , 이는 성경을 오독하는 것이다.)
때론 가난한 자들이 부자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더욱 영적인 해석을 첨가했을 때의 이야기인데 , 가난한 자들이 마치 자신들이 부자들보다 우선권이 있다거나 가난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그 순간 ‘부자’ 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니체가 말했던 노예들의 도덕… , 자신들의 ‘낮음’ 을 ‘의로움’ , ‘선’ 으로 여기며 우쭐해지는 모습들은 옳지 못하다고 엘룰은 이야기 한다.)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 는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가 살아서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오직 주 너의 하나님만 믿으라’…
삶의 주권을 자신이 붙들고 있느냐 , 아니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겼느냐에 따라서 그는 부자이기도 하고 , 가난한 자이기도 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논쟁들이 섬세하게 전개되는 이 책은 , 꽤나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부분도 많아서 반박할 여지도 만만치 않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 성경 말씀에 입각하여 ‘돈’ 문제를 진지하게 규명해 보고 , 진정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돈을 사용하는 자세’ 는 어떠한 것인지 배워볼 수 있다는 점에서 꽤나 가치 있는 책이다.
(10년 전에 읽은 책입니다. 엘룰의 기독교 세계관을 조망하다 보면 프란시스 쉐퍼 등의 칼빈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이 설명하는 전제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기존의 정통신학에서는 창조-타락-구속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모든 '구조'(structure)는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선하지만 그것이 향하고 있는 방향(orientation)에 문제가 생겨서 세상이 이런 지경에 처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방향'을 바로 잡아 , 원래 선했던 '구조'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변혁의 모델'을 주창합니다. 그러나, 엘룰은 '구조' 자체도 악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엘룰의 이론이 힘이 있는 이유는 실제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정말 그 자체로 '악'한 것도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들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쉽게 답을 내리진 않겠습니다. 이 책은 상당히 급진적이라서 예를 들어, 통장을 만들고, 은행에 예금을 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의견에 동의를 하든 그렇지 않든 한번은 직면해 보고 고민해 봐야 할 이슈입니다. 당신의 사유에 한 차원 더 넓은 길을 제시해 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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