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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시뻘건 관능(?)의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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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시뻘건 관능(?)의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었다고? "가능한 짧게 써라." 좋은 글 쓰기를 위해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이 유독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김훈의 글은 대개 짧기만 하다. 내가 그의 글을 접하며 들던 생각은 아! 오로지 옥수수 낱알 같은 단위적 글 쓰기구나 했다. 이는 개별 낱알을 주섬 모아보면 옥수수 전체의 형상을 갖지 못하는 글이라는 말이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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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시뻘건 관능(?)의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었다고? "가능한 짧게 써라." 좋은 글 쓰기를 위해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이 유독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김훈의 글은 대개 짧기만 하다. 내가 그의 글을 접하며 들던 생각은 아! 오로지 옥수수 낱알 같은 단위적 글 쓰기구나 했다. 이는 개별 낱알을 주섬 모아보면 옥수수 전체의 형상을 갖지 못하는 글이라는 말이다. 이런 표현이 작가일 그에게 대단히 실례되고 심각한 모독의 언사가 될지 어쩔지 모르겠다. 그는 잘 알다시피 저널리스트 출신이다. 저널의 핵심은 팩트의 간단하고 명료한 전달이다. 단문의 문장 하나를 두고 보면 문(文)은 일견 미려하고 수려하듯 싶지만 전체의 책 내용으로 따지고 보면 그가 지닐 참다운 사유(思惟)는 힘이란 참 보잘것 없음이 곧 드러난다. 단지 거칠고 모진 깔대기를 통한 세상바라 보기를 통한 언어의 생산, 그것은 어쩌면 분절된, 조각난 언어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여지껏 나는 지울 수 없다. 결국 그의 사색의 깊이란 대개가 엷은 프리즘을 통한 낱말의 덧칠, 색깔 입히기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그 모든 낱말의 형용의 끝, 그 기저에는 그저 관능이란 장난의 말과 언어만 남는다. 제발, 살아서 치열한 글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그의 말 장난은 대개 이렇다. "술을 억수로 마신 다음날 아침에 누는 똥은 불우하다. 똥이 항문을 가득히 밀고 내려가지 못하고, 가락국수처럼 비실비실 새어나온다. 똥이 똥다운 활력을 잃고 기신거리면서 툭툭 끊긴다. 이것은 똥도 아니다. 삶의 비애는 창자 속에 있었다. 이런 똥은 단말마적인 악취를 풍긴다. 똥의 그 풍요한 넉넉함이 없이, 이 덜 썩은 똥냄새는 비수처럼 날카롭게 주인을 찌른다. "

[인상깊은구절]
술을 억수로 마신 다음날 아침에 누는 똥은 불우하다. 똥이 항문을 가득히 밀고 내려가지 못하고, 가락국수처럼 비실비실 새어나온다. 똥이 똥다운 활력을 잃고 기신거리면서 툭툭 끊긴다. 이것은 똥도 아니다. 삶의 비애는 창자 속에 있었다. 이런 똥은 단말마적인 악취를 풍긴다. 똥의 그 풍요한 넉넉함이 없이, 이 덜 썩은 똥냄새는 비수처럼 날카롭게 주인을 찌른다.
t****o 2002.05.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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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아니 수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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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을 글 잘쓰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의 글은 단문의 예술이라고 한다. 김훈의 를 읽은게 2년쯤 전이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오늘 을 읽었다. 이제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전적으로. 목차만 보면 기행문이다. 여수 향일암에서 시작한 자전거 여행은 서울 한강에서 끝난다. 그 과정에서 '풍륜'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자전거 한 대가 수명을 다한다. 내용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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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을 글 잘쓰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의 글은 단문의 예술이라고 한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은게 2년쯤 전이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오늘 <자전거 여행="">을 읽었다. 이제 나는 그 말에 공감한다. 전적으로. 목차만 보면 기행문이다. 여수 향일암에서 시작한 자전거 여행은 서울 한강에서 끝난다. 그 과정에서 '풍륜'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자전거 한 대가 수명을 다한다. 내용은 기행문이 아니다. 가끔 가다 지도 한장 보여주면 될 일을 애써 문장으로 도로 번호까지 찍어가며 설명하지만, 정작 지방 명승지에 대한 묘사는 찾을 수 없다. 글 속에는 그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다양한 군상들이 그려질 뿐이다. 그러나 그 다양한 사람들이 주인공은 아니다. 김훈 자신이 주인공이다. 숱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김훈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을 다그친다. 그래서 이 글은 차라리 수상록이다. 처음의 몇 페이지를 넘기며 그의 글은 단문이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몇 페이지를 더읽은 뒤에는 그의 글은 재치가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다 일고 난 지금, 그의 글은 인생을 보는 통찰이 있어서 좋다. 김훈의 흉내를 내느라 일부러 짧은 문장을 쓰고 있다. 하지만 내가 김훈의 흉내를 낼 수 없는 것은 그런 통찰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김훈의 문장 몇줄을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이 아닐까 싶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유럽 아피니즘의 거장이다. 그는 히말라야에 몸을 갈아서 없는 길을 헤치고 나갔다. 그는 늘 혼자서 갔다.낭가 파르바트의 8000미터 연봉들을 그는 대원없이 혼자서 넘어 왔다. 홀로 떠나기 전날 밤, 그는 호텔 방에서 장비를 점검하면서 울었다. 그는 무서워서 울었다. 그의 두려움은 추락이나 실종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에 슬픔이 섞여 있는 한 그는 산 속 어디에선가 죽을 것이었다." "퇴계는 도피와 일탈로서의 산행을 나무랐다.(중략) 산에 속아 넘어가서 결국 자신을 속이게 되는 인간들을 퇴계는 가엾게 여겼다.(중략) 산이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그 정화된 마음으로 다시 현실을 정화시킬 수 있을 때 산은 아름답다." "1978년 불타버린 강원도 평창군 보평리의 숲은 21년 후인 지금 큰 키 나무, 작은 키 나무, 떨기나무, 풀들로 건강하고도 완벽한 숲의 층위를 완성해냈다. 모두 사람이 한 일이 아니고 저절로 된 일이다. 억지로 해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k****9 2003.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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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최고 수준의 에세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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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리색에 약간 번들번들한 종이 재질, 정갈하고 깔끔한 표지, 잠시 훑어 보기만 해도 군데 군데 보이는 컬러풀한 사진들.. 그것들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처음에 이 책을 읽게 된 게 사실이지만, 읽어 나가면서는 그러한 것들이 이 멋진 글들보다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머릿말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는 경구가 보이는가 하면 '52살의 여름에
"정말 '최고 수준의 에세이' 였다." 내용보기
아이보리색에 약간 번들번들한 종이 재질, 정갈하고 깔끔한 표지, 잠시 훑어 보기만 해도 군데 군데 보이는 컬러풀한 사진들.. 그것들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처음에 이 책을 읽게 된 게 사실이지만, 읽어 나가면서는 그러한 것들이 이 멋진 글들보다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머릿말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 는 경구가 보이는가 하면 '52살의 여름에 김훈은 겨우 쓴다' 라고 마무리 되어 있다. 농인지 진심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작가의 재치에 왠지 모를 기분 좋은 웃음마저 난다. 기행문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여행산문이라고 하면 가장 알맞을까. 아무튼 에세이집 내용 또한 굉장히 수준높지만 어휘 하나하나의 구사 또한 수준급이다. 수사가 다양하지 않으면서도 재치가 넘치는 문장들 또한 굉장히 맘에 든다. 정말 괜찮은 에세이집.
c*******l 2003.08.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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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탄 자의 세상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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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로 만나는 세상은 천천히 몸 안으로 밀려온다. 도보로 바라보는 세상은 한없이 깊다. 도보를 통해 세상의 깊이를 깨우친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도보 여행은 정적이다. 그만큼 깊게 바라볼 수는 있지만 넓게 바라보기는 어렵다. 때로는 정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 도보 여행의 한계이다. 이에 비해 자동차로 만나는 세상은 빠르게 몸 안으로 밀려온다. 자동차로 바라보는 세상은 한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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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로 만나는 세상은 천천히 몸 안으로 밀려온다. 도보로 바라보는 세상은 한없이 깊다. 도보를 통해 세상의 깊이를 깨우친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도보 여행은 정적이다. 그만큼 깊게 바라볼 수는 있지만 넓게 바라보기는 어렵다. 때로는 정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 도보 여행의 한계이다. 이에 비해 자동차로 만나는 세상은 빠르게 몸 안으로 밀려온다. 자동차로 바라보는 세상은 한없이 넓다. 자동차를 통해 세상의 넓이를 깨우친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자동차 여행은 동적이다. 그만큼 넓게 바라볼 수는 있지만 깊게 바라보기는 어렵다. 때로는 간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동차 여행의 한계이다. 자전거는 도보와 자동차의 중간 쯤에 위치한다. 자전거로 만나는 세상은 적당한 속도로 몸 안으로 밀려온다. 자전거로 바라보는 세상은 적당히 깊고 적당히 넓다. 자전거 여행은 도보 여행의 단점과 자동차 여행의 단점을 적절하게 보완한다. 자전거 여행은 인간의 체력적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도보 여행보다 기술적이고, 한참을 굴리다보면 온 몸에 땀이 밴다는 점에서 자동차 여행보다 인간적이다. 또한 자전거 여행은 차도가 아닌 곳도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자동차 여행보다 효과적이고, 제한된 시간내에 보다 넓은 공간을 가로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도보 여행보다 효율적이다. 작가는 자전거를 탄 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의 시선에는 적당한 깊이와 적당한 넓이가 어려 있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비로소 그의 몸과 자전거와 세상의 길은 하나가 되고, 이를 통해 '생의 신비'를 확인한다. 작가는 세상 앞에서 겸손하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에 맞서기에는 자신의 언어가 '한 줌'밖에 안 될 만큼 '빈곤'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래도 '사랑'에 기대어 문장을 써나간다. 그의 글쓰기는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치르는 미학전 전투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언어로는 온전히 표현해낼 수 없기에 그는 패배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의 전투 덕분에 세상의 아름다움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n*******r 2002.12.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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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의 고통, 고통의 흔적 : 자전거 인간의 눈에 비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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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현관 밖에는 줄이 묶여진 자전거 한대가 울면서 서있다. 그놈과 나는 가끔씩만 만난다. 내게 자전거는 버스를 타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이거나, 마음이 좋지 않아 바람을 쐬고 싶을 때만 이용하는 도구이다. 마음이 편할 때, 나는 자전거를 생각하지 않는다. 먼 거리 밖으로 나가고 싶을 때 자전거는 불편한 존재이다. 결국 나는 속도와 편리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주관의 고통, 고통의 흔적 : 자전거 인간의 눈에 비친 세상" 내용보기
아파트 현관 밖에는 줄이 묶여진 자전거 한대가 울면서 서있다. 그놈과 나는 가끔씩만 만난다. 내게 자전거는 버스를 타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이거나, 마음이 좋지 않아 바람을 쐬고 싶을 때만 이용하는 도구이다. 마음이 편할 때, 나는 자전거를 생각하지 않는다. 먼 거리 밖으로 나가고 싶을 때 자전거는 불편한 존재이다. 결국 나는 속도와 편리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계산적이다. 하지만 내가 계산적이 되어가는 것은 내가 사는 이 곳의 구조 때문이다. 나는 김훈과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 버스로 두정거장이면 그가 오르는 정발산에 갈 수 있다. 자전거로는 고작 십오분 걸린다. 그러면서도 일산에 이사 온지 육년이 되지만 그곳에 나는 가본 적이 없다. 김훈의 새 책, 자전거 여행은 자전거에 대한 글이 아니다. 자전거의 속도로 자전거의 편리에 적응한 자전거 인간이 바라본 세상, 우리의 국토이다. 즉 자동차의 속도와 편리로는 포착할 수 없는 우리 강토와 역사의 모습을 그는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자전거를 '달리게 하'지 않고 '저어간다'. 그 저어감이란 이 책의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단한 사람들의 마을을 이불처럼 덮어주고 있는' (280쪽)새벽녘, 고단한 또 한 생을 시작하기 위해 뭍 저편으로 건너가는 사람의 저어감이다. 그때 세상은 물안개의 희부윰함으로, 혹은 착잡한 생의 뒤얽힘으로, 그리고 인간의 힘만큼만 힘에 부치는 조그만 물살의 저항감으로 다가온다. 그에게 생은 과속으로 세상을 휘어버리는 버스 차창 너머의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팔이 쉬면 쉬어가고, 고개가 험하면 느리게 가는 비균질적인 속도의 비선형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해서 느끼는 강토의 풍경과 역사는 그가 쓴 이전의 글마냥 풍경과 상처로 느껴진다. 그 상처는 객관적인 고통을 일으키는 상처가 아니라, 설명하기 곤란하고 설명해 버리면 진부해지고 쉬이 잊혀지는 주관의 고통, 고통의 흔적이다. 따라서 지은이의 고통은 자전거를 저어가면서 온 몸에 가해지는 힘에 부치는 고통과, 뒤에 두고온 '처자식'과의 삶의 '격절감'(隔絶感)과, 그의 전 생애를 운명처럼 뒤따라온 역사를 반추하면서 느끼게 되는 고통이 불길처럼 물결처럼 피어오르고 휘돌아 나가는 바로 그 고통이다. 김훈의 글에서 역사와 자아 사이의 거리가 그토록 좁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언제나 그 고통을 사직(辭職)하고 싶으되, 그를 붙드는 생의 열정은 양가적인 것이어서 그는 주저한다.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그가 반추하는 나아감과 저어함은 바로 그의 양가적인 감정의 험준한 고갯마루에 존재한다. 새재를 넘으면 세속이요, 그 뒤에는 탈속이 있다. 하지만 그 주저함 속에 그 거리는 커다란 심리적인 낙차로서 존재한다. 나는 그 낙차 큰 거리를 마주하고 그가 느끼는 주저함을 이해한다. 그는 탈속한 신선도 아니고, 앞으로 나아가 '큰 일'을 할 기골이 장대한 영웅도 아니다. 혹은 이도 저도 아니라는 것은 결국 작은 인간으로서의 자기를 깨닫고 이해한 뒤에 느끼는 세상과의 소원한 거리, 혹은 사람들의 허위 의식에 대한 주저함없는 통박(痛駁)인 것이다. 그 가파르고 첨예한 자리에 그는 자전거를 타고 오른다. 그 자리는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아주 조그만 지점인 것이어서 한 발 앞 뒤가 모두 다른 세상이다. 그는 기어이 그 외롭고 위험한 지점에 머물기 위해 언어의 로프를 이용한다. 곡예같은 그의 글은 이 로프에 의지해 그의 외로운 초속(超俗)을 실현하기 위한 '디딤'이다. 그래서 그의 글에 부사(副辭)들이 그렇게 빛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실사와 동사의 평평하고 안전한 디딤발이 아니라, 그 딛을 곳 없는 자리에서 부사는 그를 세상에 매어 두는 유일하고 허약한 도구인 셈이다. 이를테면 서문에서 '아, 아무 것도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운 것이다, 라고 나는 써야 하는가. [...]김훈은 겨우 쓴다'와 같은 표현에서 '기어코'와 '겨우'가 주는 울림은 그가 바라보는 외부 세상과 그가 저어하며 내보인 자신의 마음 세상의 존재 방식의 더 없이 정확한 표현이다. 기어코 아름다운 세상에 당도하여, 그는 내키지 않는 언어로 겨우 써낸다. 그렇게 겨우 써낸 글은 아주 작은 첨예(尖銳)의 세상에서 기어코 아름다운 세상을 아주 조금, 그러나 현상학적인 방식으로 표현해낸다. 내가 김훈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기어코와 겨우의 변증법 때문이다. 그는 새 자전거의 월부값을 값고자 이 책을 펴냈다. 나는 그의 자식도 아니고 그와 안면도 없지만 그의 이 책이 많이 팔려서 그가 빨리 자전거 월부를 값기를 바란다. '사람들아 이 책 좀 사가라.'

[인상깊은구절]
새로 돋아난 봄 냉이를 엷은 된장에 끓인 국이 아침 밥상에 올랐다. 모시조개 몇 마리도 국 속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 냄새만으로도 냉이국이란 걸 알아맞혔다. 아내는 기뻐했다. 국 한 모금이 몸과 마음 속에 새로운 천지를 열어주었다. 기쁨과 눈물이 없이는 넘길 수가 없는 국물이었다. 국물 속에 눈물이 섞여 있는 맛이었다. [...]몸 속으로 봄의 흙냄새가 자욱이 퍼지고 혈관을 따라가면서 마음의 응달에도 봄풀이 돋는 것 같았다. 된장의 친화력은 크고도 깊다. 된장의 친화력은 이중적이다. 된장은 국 속의 다른 재료들과 잘 사귀고, 그 사귐의 결과 인간의 안쪽으로 스민다. 이 친화의 기능은 비논리적이고 원형질적이어서, 분석되지 않는다. 된장과 인간은 치정관계이 있다. 냉이 된장국을 먹을 때, 된장 국물과 냉이 건더기와 인간은 삼각 치정 관계이다. 이 삼각은 어느 한쪽이 다른 두쪽을 끌어안는 구도의 치정이다. 그러므로 이 치정은 평화롭다. 내비 속에서 끓여지는 동안 냉이는 된장의 흡인력의 저항안으로 끌려들어가면서 또 거기에 저항했던 모양이다. 냉이의 저항의 흔적은 냉이 속에 깊이 숨어 있던 봄의 흙냄새, 황토속으로 스미는 햇빛의 냄새, 싹터오르는
c****o 2000.08.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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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으로서의 글쓰기, 또는 온 몸으로 사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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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의 『자전거 여행』에 실린 글들은 정직하다. 화려한 언어와 수사학으로 치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여행』이 아름다운 산문집으로 상찬 받는 것은 바로 그의 정직한 글쓰기에 연유한다. 그는 자신이 느낀 바만을 말하고, 자신의 사유에 입각해서만 글을 쓴다. 헛되이 자신의 감상을 과장하지 않는 그의 글은 짧은 단문으로 끊어지며, 여행기에 으레 나올법한 감탄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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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의 『자전거 여행』에 실린 글들은 정직하다. 화려한 언어와 수사학으로 치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 여행』이 아름다운 산문집으로 상찬 받는 것은 바로 그의 정직한 글쓰기에 연유한다. 그는 자신이 느낀 바만을 말하고, 자신의 사유에 입각해서만 글을 쓴다. 헛되이 자신의 감상을 과장하지 않는 그의 글은 짧은 단문으로 끊어지며, 여행기에 으레 나올법한 감탄사가 보이지 않는다. 『자전거 여행』에서, 나그네의 여수(旅愁)나 낭만(浪漫)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찾을 길이 없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자신의 글을 ‘가엾은 수사학’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가 예의상 말하는 겸손이 결코 아니다. 그의 글을 이끌어나가는 힘은 ‘수사학’이 아니라 ‘사유’이기 때문이다. ‘산하 굽이굽이에 틀어앉은 만물을 몸 안쪽으로 끌어당겨 설(設)과 학(學)으로 세우곤 하는 그의 사유’는 짧은 단문으로 끊어지는 그의 문장과 문장 사이를 매끄럽게 이어준다. 그래서 그의 글은 문장으로 읽히지 않고 문단으로 읽힌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접합부의 이음새를 말끔하게 꿰매는 그의 빛나는 사유는 ‘생태학과 지리학과 역사학과 인류학과 종교학을 종(縱)하고 횡(橫)한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현학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가 남의 글을 빌려오는 경우에도, 자신의 사유로 그것을 새롭게 해석해내어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난 다음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남의 글을 ‘인용’하지 않고 ‘참조’할 뿐이다. 그는 온전히 그가 쓰는 글의 주인이다. 『자전거 여행』에서 김 훈을 온전히 그가 쓰는 글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은, 그가 길을 갈 때 온전히 그 길의 주인으로서 가기 때문이다. 김 훈과 함께 전국의 산천을 누빈 자전거 ‘풍륜(風輪)’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자신이다. 풍륜의 두 바퀴는 김 훈의 순결한 몸의 동력을 받아 정직한 몸의 속력으로 세상을 저어나간다. 엔진의 속력이 아닌 몸의 속력으로 가는 그에게 길은 순종하며 세상은 숨겨진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 또한 길 앞에서 겸손하기 때문이다. 길은 길 앞에서 교만하지 않은 사람만을 주인으로 섬기는 법이다. 풍륜이 자신의 온 몸을 길에 갈아 굴러갈 때, 그는 자신의 온 몸을 세계 속에 갈아 사유한다. 머리로만 사유하지 않고 온 감각과 마음을 열어놓고 온몸으로 사유한다. 우리가 한묶 음으로 말하는 봄꽃들과 봄나물들은 그의 사유의 힘 앞에서 비로소 제 이름들을 갖기 시작하고, 우리가 구별하지 못하는 소금과 차의 맛과 향기는 그의 사유의 힘 앞에서 비로소 그 미묘한 차이들을 드러낸다. 그의 사유의 힘 앞에서는 심지어는 술을 억수로 마시고 난 다음날 아침에 누는 불우한 날똥까지도 낱낱이 파헤쳐진다. 그는 자신의 온몸으로 세상을 사유하기에, 그의 글에는 가정법이 없으며 추측이 없으며 머뭇거림이 없다. 그의 글은 단단하고 구체적이며 단정적이다. 그의 엄결하고 섬세한 사유는 ‘지금, 여기’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로까지 이어진다. 그의 사유 속에서, 일본 영화 <카게무샤>에서 보여지는 일본 무사들의 장식적인 갑주는 서울 세종로 네거리의 이순신 동상의 투박한 갑옷과 대비된다. 그 대비 속에서 그가 이끌어내는 이순신의 내면풍경은 이미 그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겨주었을 정도로 섬세하다. 그의 사유 속에서, 7세기 <삼국사기> 속의 피비린내 나는 무기의 역사는 <삼국유사> 속의 만파식적이라는 악기의 꿈으로 위무된다. 그래서 그가 5ㆍ18 민중항쟁 20주년을 맞는 광주의 망월동에서 발견하는 것은 원한과 치욕이 아니라 밥과 사랑이다. 그의 사유 속에서, 머리 뒤통수 가마에서 햇볕 냄새가 나는 섬진강변 마암분교 아이들의 앞날은 꽃피는 미래이다. 그 미래가 있는 한, 섬진강 상류 산간 마을에까지 밀려온 IMF 위기는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그런데, 망설임이 없는, 그래서 단호하게까지 보이는 그의 사유가 닿지 못하는 곳이 있었단 말인가? 서문에서 읽는 그의 고백은 나를 놀라게 한다. 그는 고백한다. “만경강 저녁 갯벌과 거기에 내려앉는 도요새들의 이야기를 쓰던 새벽 여관방에서 나는 한 자루의 연필과 더불어, 말하여질 수 없는 것들의 절벽 앞에서 몸을 떨었다”라고.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라고. 그의 순결한 몸이 만질 수 없는 것, 그의 빛나는 사유가 닿을 수 없는 곳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그는 8,000미터 낭가 파르바트의 눈 덮인 산정에서 발견되곤 하는 도요새의 얼어붙은 시체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리라. 만경강 넓은 갯벌, 뻘 속의 보이지 않는 먹이를 향해 쉴새없이 부리를 내리꽂아야 하는 도요새의 모습에서 자신의 운명을 읽은 것이 리라. 그래서 그는 “아무 것도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운 것이다, 라고 써야 하는가”라고 되묻는다. 2000년, 52살의 여름에 김 훈이 겨우 쓴 『자전거 여행』을 2002년, 38살의 봄에 나는 겨우 읽는다.

[인상깊은구절]
시(詩)는 인공의 낙원이고 숲은 자연의 낙원이고 청학동은 관념의 낙원이지만, 한 모금의 차는 그 모든 낙원을 다 합친 낙원이다. 5월의 찻잔 속에서는 이 접합부의 이음새가 드러나지 않는다. 꿰맨 자리가 없거나 꿰맨 자가 말끔한 곳이 낙원이다. 꿰맨 자리가 터지면 지옥인데, 이 세상의 모든 꿰맨 자리는 마침내 터지고, 기어이 터진다.
c*****t 2002.04.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풍륜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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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김갑수님의 전문서평에서 처음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그 서평에서 "그의 글이 점하는 괴이한 마력의 공간에 눈들이 홀린 것이다." 라는 문장에서 호기심이 생겼지만 당시에는 책을 사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곳에서 또 이 책을 접하게 되면서 바로 구입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작가의 "자전거 여행"을 기록한 글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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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김갑수님의 전문서평에서 처음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그 서평에서 "그의 글이 점하는 괴이한 마력의 공간에 눈들이 홀린 것이다." 라는 문장에서 호기심이 생겼지만 당시에는 책을 사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곳에서 또 이 책을 접하게 되면서 바로 구입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작가의 "자전거 여행"을 기록한 글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이 오십을 넘긴 초로의 남자가 산악자전거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힘겹게 오르는 장면이 머리속에서 그려졌고 그러면서 내가 어느새 그의 자전거 풍륜이 되어 버린 듯한 착각도 들었다. 그의 과장되지도, 생략되지도 않은 문장의 "마력"에 홀려 나도 그가 되어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구르고 있는 것이었다. 풍륜이 곧 그이고 그가 곧 풍륜이니 나 역시 그 속에 묻어 하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실제로 난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어릴 때 세발 자전거를 타 본 적은 있지만 두발 자전거는 탈 줄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자전거에 대해서 이상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내게 자전거는 현실이 아니라 상상속에서만 바퀴를 굴릴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자전거와 함께 치열한 국토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곳곳에 풍륜과 함께 밟은 이 땅에 대한 그의 뜨거운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땅의 산과 들, 그리고 강과 나무들 가운데 그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없었다. 또한 우리의 옛것들과 사람에 대한 그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인생을 단 한 순간도 헛되이 낭비하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 아닌 확신을 가지게 된다. 문장 하나 하나도 그냥 써지는 대로 쉽게 쉽게 써내려간 것이 아닌 생각과 느낌들을 곱씹고 또 곱씹은 되새김질을 통해 펜을 꼭꼭 눌러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간 듯하다. 그래서인지 책장을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보이는 것들에 대한 묘사라든지 느낌을 표현하는 그의 문장은 아름다웠고 슬펐다. 아름다움을 슬픔을 동반한다고 했던가. 그의 아름다운 문장이 왠지 모를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곳곳에 함께 실린 이강빈님의 사진들속에서도 그것을 찍은 사람의 대상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담겨져 있었다. 대상이 지니고 있는 아픔까지 포용하려는 듯한 사랑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와 가슴이 훈훈해 지는 것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오랫동안 곁에 두고 싶은 친구를 만난 벅찬 느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인상깊은구절]
출발전에, 자전거를 엎어놓고 닦고 조이고 기름쳤다. 서울서 가지고 간 장비들은 현지에서 출발하기 전에 버리고 또 버렸다. 수리 공구 한 개가 모자라도 산속에서 오도가도 못할 테지만, 장비가 무거우면 그 또한 오도가도 못한다. 스패너 뭉치와 드라이버 세트와 공기 펌프와 고무풀은 얼마나 사랑스런 원수덩어리인가. 몸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진대, 장비가 있어야만 몸을 살릴 수 있고, 장비가 없어야만 몸이 나아갈 수 있다. 출발전에 장비를 하나씩 점검해서 배낭에서 빼 버릴 때, 몸이 느끼는 두려움은 정직하다.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그러니 이 무거움과 가벼움은 결국 같은 것인가. 같은 것이 왜 반대인가. 출발전에 장비를 하나씩 빼 버릴 때 삶은 혼자서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는 비애이며 모순이다. 몸이 그 가벼움과 무거움, 두려움과 기쁨을 함께 짊어지고 바퀴를 굴려 오르막을 오른다.
d****0 2001.04.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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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봄날의 따스한 햇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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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하이킹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자전거여행'이라는 책의 제목부터 하이킹을 좋아하는 내 맘에 쏙 들었다. 책을 읽으며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이렇게 아쉽기는 첨인것 같았다. 김훈이라는 작가의 아름다운 문체..또, 아주 혀를 내둘르게 만드는 문장 표현능력이 책을 아끼며 보는 나로 하여금 하얀 겉표지의 책을 거무틱틱하도록 만들게 만들었다. `어리나무,갈참나무,떡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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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하이킹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자전거여행'이라는 책의 제목부터 하이킹을 좋아하는 내 맘에 쏙 들었다. 책을 읽으며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이렇게 아쉽기는 첨인것 같았다. 김훈이라는 작가의 아름다운 문체..또, 아주 혀를 내둘르게 만드는 문장 표현능력이 책을 아끼며 보는 나로 하여금 하얀 겉표지의 책을 거무틱틱하도록 만들게 만들었다. `어리나무,갈참나무,떡갈나무숲 들의 신록은 거칠게 싱싱하다. 그 숲의 이파리들은 아름다움의 정교한 치장으로 세월을 보내지 않고 여름의 검푸른 초록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이 숲의 이파리들은 억센 사내들의 힘줄같은 잎맥을 가졌다.........` -- 본문중 현재는 군인으로 군생활을 하고있는 입장이라 여행한 번 맘대로 가보지 못 하지만, 이런 나를 대신하여 김훈이라는 작가가 나의 눈과 귀와 코...또다른 하나의 내가되어 내 대신 여행을 다녀와준 느낌에, 책을 읽는 내내 떨리는 마음으로 보낸것 같다. 강과,숲과 자연..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함께 숨쉬며 달리는 자전거. 아름다운 모습이다. 책 중간 중간 실려 있는 생생하고 멋있는 사진은 나의 멋진 대리여행에 또다른 생생한 감동을 주는 매개체로 한 몫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여행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인상깊은구절]
어리나무,갈참나무 떡갈나무숲 들의 신록은 거칠게 싱싱하다. 그 숲의 이파리들은 아름다움의 정교한 치장으로 세월을 보내지않고 여름의 검푸른 초록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이 숲의 이파리들은 억센 사내들의 힘줄같은 잎맥을 가졌다.....
YES마니아 : 로얄 j****s 2001.03.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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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책을 읽는 일은 복되다.
"살아서 책을 읽는 일은 복되다." 내용보기
세상에는 단숨에 읽어 내릴 수 없는 책이 있다. 지루해서도 아니고 난해해서도 아니고, 다만 아름답기 때문에 한꺼번에 읽을 수 없는 책이 있다.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사이에서 숨을 고르기 위해 책을 덮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계속 읽어내려가다간 숨이 멎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이 바로 그런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한 달째 읽고 있다.
"살아서 책을 읽는 일은 복되다." 내용보기
세상에는 단숨에 읽어 내릴 수 없는 책이 있다. 지루해서도 아니고 난해해서도 아니고, 다만 아름답기 때문에 한꺼번에 읽을 수 없는 책이 있다.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사이에서 숨을 고르기 위해 책을 덮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계속 읽어내려가다간 숨이 멎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이 바로 그런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한 달째 읽고 있다. 삼사일에 한번씩, 무슨 보물을 꺼내기나 하는 듯 조심스럽게 책꽂이에서 꺼내어 기껏 네다섯 페이지쯤 읽고는 덮어버린다. 책을 덮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며 몸 저 안쪽에서부터 가느다란 떨림이 느껴져온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이런 문장을 읽고 숨이 차지 않는다면 그는 문장의 아름다움에 감동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된다' '사람은 새처럼 옮겨다니며 살 수가 없으므로 이 기진맥진한 강가에서 또 봄을 맞는다. 살아갈수록 풀리고 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은 점점 더 고단하고 쓸쓸해진다. 늙은 말이 무거운 짐을 싣고 네 발로 서지 못하고 무릎걸음으로 엉기는 것 같다.' '갈대는 빈약한 풀이다. 바람 속으로 씨앗을 퍼뜨리는 풀은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늙음을 간직한다. 그것들은 바람인 것처럼 바람에 포개진다. 그러나 그 뿌리는 완강하게도 땅에 들러붙어 있다.' '이 무정한 자연이 인간을 위로하고 시간을 쇄신시켜주는 것은 삶의 신비다' '봄의 숲은 비리다. 이 비린내는 먼 냄새인지 가까운 냄새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이 비린내는 나무의 관능이다. 아, 관능은 먼 것인가 가까운 것인가.' 나는 연필을 들고 어디다 밑줄을 그어야할지 몰라 당황한다. 차라리 한 페이지를 모조리 외워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그는 과학과 문학을, 자연과 인간을, 원시와 문명을 넘나든다. 머무르며 나아가며, 바라보며 빠져들며 그는 천천히 부드럽게 자전거에 몸을 싣고 여행한다. 영탄은 감상적이지 않고 비유는 서먹하지 않다. 묘사는 현란하지 않고 설명은 건조하지 않다. 문장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터질 듯한 긴장을 내포하고 있는가하면, 풀어져 흩어져있으면서도 날카로운 빛을 낸다. 조밀하지도 헐겁지도 않은 문장을 쓸 줄 아는 그는 문장의 道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가질 수 없고 저마다의 모든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다 해도, 살아서 책을 읽는 일은 복되다.

[인상깊은구절]
대숲은 자연림이지만 활엽수립처럼 자유의 산만함이 없다. 대숲은 가지런하고 단정하다. 봄의 대숲은 자작나무숲이나 오리나무숲처럼 생명의 기쁨으로 자지러지지 않고, 여름의 대숲은 다른 활엽수림처럼 비린내 나는 습기를 내뿜지 않는다. 대숲은 늘 스스로 서늘하고, 잘 말라서 질퍽거리지 않는다. 대숲은 늘 꿈속처럼 어둑어둑하다. 이것이 몽밀(夢密)이다. 대나무로는 무기도 만들고 악기도 만든다. 죽창과 피리가 모두 대나무다. 대나무로는 연장도 만들고 가구도 만들고 농기구도 만들고 사군자도 친다. 세상을 깨부수고 바꾸려는 사람들은 대나무숲으로 와서 무기를 구했고, 세상을 버리고 숨으려는 사람들은 대나무숲으로 돌아와 누웠다. 그래서 대나무숲은 세상으로 가는 전진기지이며 세상을 버리고 돌아오는 후방의 쓸쓸한 낙원이다. 대나무 숲은 전투적 이념의 절정이며 은둔의 맨 뒷전인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a 2000.11.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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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자전거 하나, 삶으로 통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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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아침이면 세숫물이 한결 차가워졌다는 것을 느끼고 어느새 비가 내리면 썰렁한 기운을 이내 감출 수 없는 때다. 인간을 가장 닮았다는 첼로의 무반주 선율이 가슴에 표창을 하나씩 꽂는 것만 같고 우러러 하늘을 보면 별빛은 눈이 시리게 맑다. 여기저기 물이 든 산야가 더없이 정겹고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계절. 아직 남아 있는 생의 마지막 불씨를 몸으로 더디게 느끼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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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아침이면 세숫물이 한결 차가워졌다는 것을 느끼고 어느새 비가 내리면 썰렁한 기운을 이내 감출 수 없는 때다. 인간을 가장 닮았다는 첼로의 무반주 선율이 가슴에 표창을 하나씩 꽂는 것만 같고 우러러 하늘을 보면 별빛은 눈이 시리게 맑다. 여기저기 물이 든 산야가 더없이 정겹고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계절. 아직 남아 있는 생의 마지막 불씨를 몸으로 더디게 느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때.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일상 속에 파묻힌 안타까운 내게 깊은 위안과 성찰, 그리고 사색의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풍경과 상처}, 그리고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등에서 보여주었던 김훈의 감성은 실로 놀라웠었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 끌어 올려지는 그의 철학적 성찰은 '삶이 곧 철학이다'라는 말을 더욱 실감나게 하지 않았던가. 이제 쉰을 넘기고도 두 해.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기에는 이미 쇠잔한 육체. 하지만 우리 산야에 대한 그의 식을 줄 모르는 애정은 낡은 몸에 대한 원망을 쉽게 떨쳐버리고 그의 표현대로 자전거를 저어가면서 끊임없는 항해를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 그가 자전거를 택한 것은 간단하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모든 길들이 여과없이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바퀴를 굴리는 몸은 체인의 구동축을 따라 길 위로 퍼져나가고,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 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간다. 길 위에서 몸은 억압 없고 적의 없는 순결한 몸이 되고, 그 몸은 갓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길 앞에 자신을 드러내 놓는다. 우리의 산야, 그 길 위에 숨겨진 무한한 삶의 이야기와, 역사의 뒤안 속에 묻혀진 추억 속의 잔영은 구르는 자전거의 바퀴살과, 체인과, 톱니 속에 묻어서 고스란히 우리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자전거는 여수 돌산도로부터 시작한다. 그곳에서 자전거는 돌산도 길 위에 전해져내려오는 전설 하나를 집어든다. 7세기 신라의 젊은 여승 설요. 돌산도 앞 바닷가에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에 취해서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라고 한탄하다가 결국엔 한 남자의 첩이 되고 당나라를 떠돌다 통천에서 객사했다는 스물한 살의 슬픈 여인. 길 속에 파묻혀 드러나지 않던 이야기는 거침없이 구르는 자전거의 구심력에 의해 한없이 뽑혀져 나온 것이다. 자전거가 부석사를 달릴 땐 의상과 원효가 젊은날 나누었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그물코에 걸리듯 이끌어져 나오고, 진도대교를 건널 때쯤엔 충무공이 지니던 그 기개가 서슬 퍼렇게 살아나 다시 함선 위에서 호령을 내리는 것만 같다. 자전거는 자동차처럼 빠르지 않다. 빠르지 않음으로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그저 스쳐지나치는 풍경들은 고스란히 자전거 바퀴 살에 와서 부딪는다. 핸들 위에 달린 조막손만한 거울 속에는 만경강 위를 날아오르는 무한한 새떼의 행렬이 비춰지고, 두 차례의 대형 산불로 다 타버린 고성 땅에도 흙을 밀치고 돋아나는 새순들이 있음을 비춰준다. 무등산을 돌아 망월동에 이르면 한을 삭이고 살아가는 5월 항쟁의 피해자들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경북 문경 관음리에 이르면 8대째 가마를 굽고 있는 도공을 만나게 된다. 시인 김용택이 근무하는 임실군 덕치면 마암분교에서 전교생 17명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아무래도 눈가에 물이 어리지 않고는 읽기가 어려운 대목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타인의 삶과 자연의 삶, 역사 속에 가로놓인 삶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님을 알게 된다. 타인의 소박한 삶도 나의 길 위에 깔려 있으며, 자연과 역사, 역시 나의 길 위에 펼쳐져 있음을 느낀다. 그것들은 어느새 나의 몸 속에 빨려 들어와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으켜 주고 내가 나아갈 길을 예비해준다. 때로는 가파른 오르막이 있어 힘껏 굴러야만 하는 길 위에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의 삶과, 세계가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이 휘파람 불며 신나게 내려오는 길을 위한 준비였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렇게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잊혀져가는 우리 산야의 아름다움과, 소외된 우리 이웃과의 인연과, 우리의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려는 성찰과 사색의 여행인 셈이다.

[인상깊은구절]
땅이 없는 가난한 어부들은 죽어서 바닷가의 버려진 땅에 묻힌다. 포항이나 울진의 바닷가를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저어가면 이런 무덤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무덤들은 바닷가 잡초 속에서 봉분이 허물어져 있고, 풀들이 언제나 해풍에 쓸리고 있다. 바다가 사나운 날에 물가에 가까운 봉분들은 파도에 씻겨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농부가 밭에 묻히듯이, 가난한 어부들은 백골을 바다에 준다. 그 아들들이 다시 고기를 잡고, 쓸려나간 봉분의 흔적조차도 이제는 편안해 보인다. 바다가 춥고 땅이 따뜻한 것도 아닐 것이다.
e***a 2000.10.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