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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칠성과 오리온 별자리만이 동양과 서양에서 동일한 모양을 이루는 별자리이다. 같은 문화권에서도 중국과 고구려에는 별자리가 다르다. 반면 중국과 조선은 큰 차이가 없었다. 현대 천문학에서는 우리나라든 중국이든 서양식 별자리 체계를 수용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별자리를 체계화시킨 문명은 이라크 일대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중국의 황하문명이다. 저자는 역사천문학자이다. 역사천문학은 역사 유물로 남겨진 천문 자료를 비교하여 천문의 같고 다른 문제를 풀어가는 분과학문이다. 서양 별자리는 황도 12궁에 기초하고 동양 별자리는 적도 28수에 기초하고 있다. 황도 12궁은 태양의 길을 따라 나 있는 12개의 별자리이다. 적도 28수는 천구의 적도를 따라 나 있는 28개의 별자리이다.(22 페이지) 흥미로운 점은 사마천의 '사기'가 당시까지의 천문학을 집대성하여 표준화한 최초의 문헌 텍스트라는 사실이다. 저자에 의하면 왕조의 역사서를 기록한 천문서에 천문학이 포함되는 것은 동양 천문학의 중요 특징이다.(24 페이지) 주(周)나라의 초기 정치로 회귀할 것을 주장했던 공자는 하늘의 별과 지상의 정치에 대해 같은 관점을 가졌다. 28수(宿)는 달이 천구상을 일주천(一周天)하는 동안 하루에 하나씩 별자리를 지나면서 머물며 되돌아오는데 소요되는 27.3일을 28일로 설정한 결과이다. 宿은 별자리 수자이다. 28수는 28사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집 사(舍)자이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라는 관념은 28수 별자리를 계절별로 형상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무덤 속에 별자리를 그리는 것은 진시황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 중원 지역에서 별자리 벽화가 쇠퇴 일로를 걷던 동안 고구려에서는 화려한 별자리 벽화가 꽃피었다.(33 페이지) 중원(中原)은 한족(漢族) 본래의 생활영역을 말한다. 고구려 벽화 무덤 속의 별자리 그림은 한 줄에서 석 줄까지 뚜렷한 연결선을 지닌 것들이어서 고대 동아시아 천문학사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볼 때 고구려의 벽화천문도는 동아시아 천문도 연구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36 페이지) 고구려 벽화고분의 천장부는 우주의 재현을 위한 주 무대이며 상단 천장 궁륭(穹蕯)부에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궁륭은 활이나 무지개처럼 한 가운데가 높고 길게 굽은 형상이다. 특이한 것은 고구려의 별자리는 둥근 원반 모양이었다는 점이다. 각각의 별들에는 하나에서부터 둘 또는 세 가닥의 연결선이 그려졌다. 동서양의 별자리들 중 전혀 다른 모양을 취한 사례는 카시오페이아 별자리이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의 반대편에 위치한 카시오페이아는 서양에서 W자로 그려진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중국은 W자 모양이 일체 없다. 그런데 고구려의 벽화무덤에서 오히려 서양 전통과 통하는 W자 모양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가 중국의 천문을 그대로 받아들였으리라 생각되지만 독자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은 고려로까지 이어진다. 동아시아 천문 전통에서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를 이렇게 그리는 것은 오직 고구려만이었다. 별자리는 신화와 긴밀한 관련성을 갖는다. 고구려 고분벽화 속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별자리와 신화도상이 그려져 있다. 저자는 벽화 속에서 별들이 연결된 각각의 별자리를 찾아내어 해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별자리들이 어떻게 전체적인 체계를 이루고 하늘 세계를 나타내는지를 살펴보면 고구려의 숱한 신화와 광대 제국을 건설했던 역사의 편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구려의 25기의 별자리 벽화무덤 중 가장 다채로운 것으로 덕흥리 무덤을 꼽는다. 덕흥리 무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구조로 이루어졌다.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대목은 천상의 수렵도(狩獵圖)이다. 저자는 지구가 자전축에 의해 회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고구려가 지축이란 용어를 사용한 사실을 언급한다. 더구나 그 것은 한 몸에 머리가 둘 달린 신화적인 모습을 취했으니 지축의 원리를 너무나 잘 구현한 천문학의 미스터리이다(58 페이지) 덕흥리의 북두칠성 별자리에서 실제 관측과 관련하여 더욱 놀라운 점은 보성(輔星)이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고구려에서 일찍이 오행성을 관측했다는 기록이 있다. 2세기의 문헌 자료가 증거한다. 덕흥리의 토성 표현은 단순한 원반 형태가 아니라 공 모양의 입체적 구헝이다. 놀라운 사실이다. 중국 천문도에서는 '돈황성도 갑본' 등의 예에서 보듯 북극성좌가 5성인데 고구려는 3성이다.(64 페이지) 저자는 이 덕흥리 토성 표현을 천체가 공처럼 둥글다는 혼천설의 천체학 이론의 모태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별자리는 아니지만 매우 주목할 도상이 북쪽 하늘에 그려져 있다. 북두칠성의 머리 아래쪽에 몸이 하나로 볼 수 있으면서 사람 형상의 '머리가 둘이고 다리가 넷'인 반인반수상이 있다. 이 신화적 동물 옆에 지축일신양두(地軸一身兩頭)란 글자가 쓰여 있다. 하나의 몸통은 지축, 양두는 지축의 양끝 즉 북극과 남극을 나타내니 천문지식을 신화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65 페이지) 언제나 북두칠성과 대칭을 이루며 남쪽 하늘에 등장하는 별자리가 남두육성이다. 서양에서는 궁수자리라 부른다. 25개의 천문벽화 중 남두육성이 그려진 벽화는 14기 정도이다. 대부분 북두칠성과 대칭으로 그려졌다. 북두는 사후세계를, 남두는 생전의 수명장수를 주관하는 도교적 신앙을 나타낸다.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는 북극성 주위에서 매우 뚜렷하게 빛나는 별자리이지만 놀랍게도 중국의 고천문도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카시오페이아 부분의 별자리를 W자 모양으로 파악하지 않고 각도성과 왕량성, 책성이라는 세 가지 별자리로 분리 인식한 결과이다.(86 페이지) 전기했듯 고구려는 이 예를 따르지 않았는데 이는 고구려의 자체적 천문 전통을 증거한다. 저자는 고려의 석관천문도가 고구려의 별자리를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자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87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고려의 석관천문도는 한중일 고대 동아시아 유물 중 현대 서양 천문학이 도입되기 전 그려진 유일한 W자형의 5성 별자리이다. 또한 이 자료로 인해 고구려 덕흥리 벽화의 서쪽 W형 5성 별자리를 카시오페이로 비정(比定)할 수 있다. 고구려의 북극삼성 천문학 전통이 고려의 북극삼성으로 계승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고려의 석관천문도는 덕흥리 서벽의 W자형 5성을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로 해석하게 하는 결정적 자료이다. 저자는 400년간 고구려의 초기 도읍지였던 국내성을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도시로 묘사한다. 수많은 무덤들이 도시 곳곳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벽화를 그린 무덤 내부 공간도 생사일여의 공간이다. 덕흥리 고분의 벽화에 그려진 별들은 자기 자리가 있다. 이는 큰 사건이다. 별을 보고 방위를 찾을 때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은 언제나 북쪽을 가리키는 북극성 뿐이다. 언제나 북쪽 하늘에서 북극성 주위를 시계처럼 도는 북두칠성도 훌륭한 방위지표가 된다. 하늘 전체를 하나의 판 속에 그린 천문도를 전천천문도(全天天文圖)라 한다. 고구려는 전천천문도가 문헌에 나타나기 2세기 전에 고구려 고분벽화에 전천천문도 형식의 그림을 그렸다.(95 페이지) 고구려 고분벽화는 주제의 변화에 따라 보통 세 시기로 구분된다. 1기는 인물 및 생활 풍속도 위주이고 2기는 생활풍속도와 장식무늬 및 사신도 주제가 병행되었다. 3기는 사신도가 벽화의 중심 주제로 그려진 시기이다. 이 분기법에 별자리 내용 변천을 결합해 구분한 시기는 다음과 같다. 1기는 4세기에서 5세기 중반까지 고구려식 별자리가 형성되는 시기이다. 2기는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중반까지 고구려식 별자리 체계와 중국식 28수 체계가 결합하는 시기이다. 3기는 6세기 중반에서 7세기까지 고구려식 우주관이 크게 확충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들을 아울러 말하면 벽화 고분 속의 방위 체계가 사방위 별자리 및 해와 달, 사신도 등이 중첩된 구조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풍수를 일컬을 때 좌청룡, 우백호라는 말 때문에 사신도(四神圖)를 지상의 방위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원래 사신도는 하늘의 방향과 별자리를 지칭하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104 페이지) 저자는 우리 역사에 등장했던 하늘은 고려와 조선이 같지 않았다고 말한다.(170 페이지) 조선의 하늘이 성리학 이념에 경도된 이법(理法)의 하늘만을 공인했다면 고려의 하늘은 다양함을 공존시키는 다원성을 지향했다고 말한다. 고려와 고구려의 하늘이 동질적이라면 고려와 조선의 하늘은 이질적이다. 조선이 들어서고 불과 몇 백 년 사이에 인간은 하늘과 유리되고 하늘의 천공 속을 자유롭게 노닌다는 사유체계는 불가능하게 되었다.(171 페이지) 하늘은 천문학의 대상이지만 우리의 사유가 한껏 펼쳐지는 마당이기도 하다. 조선은 성리학적 중화 질서에 편입되면서 제천 의례를 혁파하여 하늘과 교통하던 통로를 스스로 봉쇄했다. 성리학은 여러 면에서 문제적이었다. 김일권 교수의 책은 천문학적 지식은 물론 천문학의 대상인 만큼 상상력의 캔버스 같은 곳이기도 한 하늘을 고구려와 조선이 어떻게 다르게 보았는지를 알게 하는 책이다. 조선을 중심으로 우리 선조들의 과학을 천문학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아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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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을 폇을때 참 많은 노력이 들어간 책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가격이 높은 것이 부담스러운 부분이지만 컬러풀한 자료사진과 깔끔한 편집, 기존의 별자리 책이나 혹은 한국사 책에서 보아온 이야기들이 좀 더 새롭고 신선하게 이 책 안에 함께 녹아들어 있고 그 내용도한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읽혀지는 것이 또한 큰 장점인 책이다.
특히 벽화를 보여주는 책은 읽어본적이 없는데 이 책을 통해서 좋은 지식들을 많이 얻게 된 것 같다. 특히 역사적으로 가장 풍성한 얘기들이 있는 고구려사를 다각도로 풀이한 것도 참 마음에 드는 구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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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사계절의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는 지금까지 발굴된 고구려의 무덤에 있는 벽화에 그려진 별자리에 대한 것을 현대적 시각에서 재조명한 책이다.
고구려의 벽화에 대한 별자리의 현대적 복원과 같은 책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다. 사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몇몇의 역사적 유물 이외에는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연구되지 않고 있는 유적과 유물이 너무나 많은 것이 우리나라 고고학의 현실이다.
이 책은 양장본으로 고구려의 벽화에 그려진 별자리(성도)를 현대적 시각에서 디지털 복원과 함께 현대적 별자리와의 비교도 무척이나 잘되어 있어 우리나라 고대 선조들의 빛나는 천문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책의 가격이 조금 비싸다고 생각한다. 물론 책의 내용이 좋으면 가격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현재 출판되는 고고학 관련서적들이 모두 양장본으로 출판되는 것을 감안하면 조금 낮게 했으면 좋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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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은 ‘세계 천문의 해’다. 갈릴레오가 천체 망원경을 사용해 우주를 관측한지 400년이 지난 올해에 UN은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400년 전 인간은 하늘을 볼 때 망원경이라는 도구를 이용하게 되어 자연의 신비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망원경이 발명되기 이전에도 오랫동안 하늘의 천체를 관찰해 왔다. 그냥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별들의 움직임을 가지고도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리 오랜 세월 하늘과 그곳에 있는 천체를 관찰했을까. 중국의 저명한 과학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장샤오위엔의 <별과 우주의 문화사>에 보면 <역경,易經>에 표현된 천문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천문이란 하늘의 무늬를 뜻하고, 인문이란 사람의 무늬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늘의 무늬를 보고는 먼저 전쟁의 승부나 농업의 풍흉에 대해서 판단했고, 수해나 가뭄과 같은 자연 재해, 제왕의 안위 등 군사적 분야의 일을 예언하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었다. 즉 중국에서 천문학이란 제왕을 위한 학문이었다. 동양 최초의 역사서인 <사기>를 쓴 사마천은 태사령이었다. 태사령은 천문, 달력, 기록을 맡아 처리하는 부서의 장관이었다. 이렇듯 하늘을 관측하는 직업은 동양에서는 아주 오래전에 생겨났다. 그만큼 왕조를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 천문학은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반도에서도 중국과 같은 의미로 고대이래로 천문학을 중요시했다. 삼국사기 본기에 보면 수많은 천문현상이 일어났음을 적고 있다. 즉 삼국시대에도 별을 관측했다는 증거이다. 그 증거가 글자로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림으로도 남아 후대에 그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이 책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사계절.2008년)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있는 별자리를 보고, 이를 해석하여 그 고구려인의 세계관과 사상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무덤 속에 별자리를 그린다는 생각은 진시황 때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진시황의 무덤 천장에 천문을 그렸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그 실제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벽화의 별자리 그림은 오히려 고구려에 와서 꽃을 피웠다. 진파리 4호분(590년) 벽화는 고구려 별자리 그림에서도 백미에 속한다고 한다. “다른 벽화무덤이 벽면을 따라 방위별 천문도를 그린 것인데 비해 이 무덤은 전천천문도(全天天文圖)라 하여 전체 하늘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도록 별자리를 한 장의 천정 판석에 그렸다.”(35쪽)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특히 천문도 중앙에는 북극성좌와 북두칠성을 그렸으며. 둘레에는 동양의 별자리를 상징하는 28수를 둥근 모양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중국의 경우보다 훨씬 빠른 것이다. 그렇기에 한반도의 천문기술이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하지만, 이런 증거는 중국에서 들어왔지만 이를 우리가 더욱 발전시켰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고구려의 천문기술이 중국보다 빨랐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고구려 전체의 고분 중 벽화가 그려진 것은 총 107개이다. 이중에서 별자리가 그려져 있는 고분은 총 25기에 달한다. 이는 고구려가 존재하던 시기의 중국의 경우는 16기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니 고구려의 천문학이 오히려 중국보다 우월했을 수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고구려의 별자리 그림에서 특이한 점은 “별자리와 함께 신화적인 도상이 발달했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덕흥리 고분 벽화에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와 직녀상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또 천왕지신총의 서수(瑞獸, 상서로운 짐승)그림은 도교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집안지역의 오회분 4호묘에서는 사신도에 더하여 중앙 천장부에 황룡도까지 그려 넣었다. 그래서 오신도 벽화가 되었는데, 중앙에 황룡을 그렸다는 것은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오신도는 중국의 벽화묘에는 없는 양식이다. 이는 고구려적 고유성이 반영된 문화양식으로 판단하고 있다. 고구려의 천문 연구 전통은 고려로 이어진다. 고려의 벽화무덤은 총 22기이고, 그중 17기에 천문도가 그려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조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조선에서는 천상열차분야지도만이 고구려의 별자리에 대한 기억으로 남겨졌을 뿐이다. 고구려의 천문도는 일본으로도 전해졌다. 1998년 발견된 기토라 고분의 천장에는 금박 전천천문도가 그려져 있었다. 일본 전역이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8세기 전후에 전천천문도를 그렸다는 것은 그 나라의 과학기술과 문명의 수준이 그만큼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분에 그려진 별자리를 분석한 결과, 별을 관측한 지역이 평양이었다는 것이 밝혀지자 시끄럽게 호들갑을 떨던 일본 언론이 조용해졌다고 한다. 저자 김일권은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우리 역사에 있어서 천문연구 분야의 개척자라고 한다. “이제 겨우 고구려의 전통 별자리를 찾아내어 복원하는 중에 있다. 우리 역사 속에 등장하였던 더 많은 하늘의 역사를 되살려 내는 작업이 앞으로 주어져 있다.”라고 말하며 이 책을 끝맺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