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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일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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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명절을 쇠고 마음이 스산하여 집어든 것이 바로 이 책, 윤구병님의 새내기 농촌 체험기라 할 수 있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였다.어제는 점심을 먹고 햇살 좋은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소슬한 막새바람이 부는 한적한 공간에도 아이들 웃음 소리가 싱그럽다.공원 한켠에는 키 작은 다복솔과 이름 모를 수입 활엽수들이 어색한듯 ’더불어 숲’을 이루고 있다.작은 땅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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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명절을 쇠고 마음이 스산하여 집어든 것이 바로 이 책, 윤구병님의 새내기 농촌 체험기라 할 수 있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였다.
어제는 점심을 먹고 햇살 좋은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소슬한 막새바람이 부는 한적한 공간에도 아이들 웃음 소리가 싱그럽다.
공원 한켠에는 키 작은 다복솔과 이름 모를 수입 활엽수들이 어색한듯 ’더불어 숲’을 이루고 있다.
작은 땅뙈기에서도 생명은 저리도 넉넉한데 나 같은 도시내기들은 한겨울처럼 외롭다.
삶이 시리도록 춥고, 작가의 글은 머리가 아리도록 아프다. 

 볕이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과 부드러운 바람.
이런 날은 항상 슬그머니 과거로 뒷달음질을 치려는 생각과 한바탕 드잡이질을 해야 한다. 
단풍이 들기 전까지는 생각도 현재에  발을 꽁꽁 묶어 놓아야 하는 도시의 시계는 잠시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다.
생각도 이럴진대 일탈을 꿈꾸는 몸뚱아리야 더 일러 무엇하리요.

불현듯 저자가 부러워진다.
대학 교수로 15년을 살았던 생짜배기 ’도시 촌놈’이 어찌 농촌에 가서 살 생각을 했을까?
바람처럼 흩어지는 도시의 시간대(時間帶)에서 어느날 문득 유성처럼 내팽겨쳐졌던 것인가, 아니면 이 앙다물고 제 발로 도시 시간대의 인력장에서 벗어난 것인지... 
시간은 절대적 개념이 아니다.
오늘처럼 가을이 깊어가는 볕 좋은 날엔 부는 바람마저 도시의 그늘에서 속력을 더한다. 
덩달아 도시인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급기야 째깍이는 초침마저 바빠진다.
철모르던 사람이 철따라 흐르는 시골의 시간대에서 일머리가 트이고 일손이 익어가는 과정은 도시의 시간처럼 늘리거나 줄어들 수 없는 자연의 엄정한 시간에 따른다는 것을 작가는 세월에 묻혀 배우고 있었다.

 "생명의 시간 가운데 텅 빈 시간이란 없다.  사람이 마음대로 분으로, 초로 쪼개서 그 안에 특정한 인간 집단의 삶의 방식, 가치관, 관습과 도덕을 아로새길 등질적이고 획일적인 시간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도시인들은 문명을 통해서 그런 시간을 창조해냈다.  그 도시가 바빌론이건, 아테네건, 로마건, 뤄양이건, 도쿄건, 서울이건, 워싱턴이건 상관없이, 모든 도시는 도시인들이 추상해낸 등질적인 공간 표상에 따라 인간만을 위한 삶터로 바뀌고, 그 안에서 도시인들은 미개한 야만인들의 나라 아프리카를 두부모처럼 잘라내어 식민지를 만들거나 하룻밤 사이에 직선으로 삼팔선을 그어 야만스러운 미개인 ’조센진’들이 아들의 가슴에, 아비의 등에, 형제의 옆구리에 총칼을 들이대게 만든다."(P.296) 

더디게 흐르는 듯 보여도 생명의 에너지를 허투루 소비하지 않는 자연의 시간에 적응하는 것은 ’도시 촌놈’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탐욕만 키우는 도시의 시간대에서 물질과 향락의 노예가 된 도시인들이 세월따라 사랑과 정을 키우는 자연의 시간대에 적응한다는 것이 어줍잖은 말로 사랑을 고백하는 풋내기 첫사랑의 낭만처럼 쉬운 일일까마는 작가는 잘도 적응하나보다.
철학을 전공한 작가가 산 설고 물 설은 곳에서 잊혀져가는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공동체를 이루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야기들이 내게 푸근함으로 전해지기 보다는 날선 비수로 꽂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습니다.  사랑은 늘 현재입니다.  ’사랑했노라’는 말도 빈말이고, ’사랑하겠노라’는 말도 헛된 약속입니다.  사랑에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늘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는 저세상이거나 관념의 공간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는 오늘 이 순간이고 지금 이곳입니다.  우리가 뿌리내리고 사는 구체적인 현실이고 더 어렵게 말하면 ’현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P.256)

언젠가 내가 아는 스님 한 분이 다 먹은 수박의 껍질을 다람쥐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라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생명을 키우는 넉넉함이 한없이 그리운 날이다.
메말라 가는 사랑이 이 가을에 여무는 씨앗처럼 단단해지기를...

s*****l 2010.10.01. 신고 공감 9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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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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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무릎을 치는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횡재한거다. 그 구절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다. 윤구병 선생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이렇듯 탁탁 막히는 부분이 많은 책이다. 여기 저기 되돌이표 그려놓고 읽기를 반복하다보니 꽤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 더불어 함께 사는 농촌공동체를 그리며 시작한 시골 생활이기에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나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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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무릎을 치는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횡재한거다. 그 구절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다. 윤구병 선생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이렇듯 탁탁 막히는 부분이 많은 책이다. 여기 저기 되돌이표 그려놓고 읽기를 반복하다보니 꽤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 더불어 함께 사는 농촌공동체를 그리며 시작한 시골 생활이기에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나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항상 뜻을 앞세워 왔다. 사회운동 주류의 한복판에서 지쳐갈 때 쯤, 인생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고 새로운 가치를 찾아 짐을 쌌다. '새로운 가치를 찾는다'는 것은 일종의 명분이었다. 나는 패배적으로 후퇴한 것이 아닌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선택을 했다는 명분 말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그 명분에 집착하기도 했다. 나 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은 모두가 같은 뜻, 같은 명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 명분은 생활의 무게 앞에 '내 안에서' 참 쉽게 무너지기도 했다. '안에서는' 무너져 내리지만 '밖에서는' 견고한 것처럼 보이게 포장하는 일도 생긴다. 그럴수록 더욱 뜻에 집착했다. 어쨌든 한번 세운 뜻에 맞춰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런데 다음의 대목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충고가 됐다. '개인의 꿈이 중생의 땀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그 뜻이 걸림돌이 되어 상처입고 상처주면서 결국은 떠나게 된다'는 말씀. 좀 길지만 옮겨본다.

 
아무리 큰 뜻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 뜻이 걸림돌이 되어 마음에 불행감이 누적되다 보면 조만간 뜻이 꺾이게 마련이다. 몇 해 버티기 힘들다. 나날이, 다달이, 해마다 행복감이 불행감보다는 손톱만큼이라도 더 커야 오래 견딜 수 있다.(중략)
중생이 사는 길을 함께 걸으면서 '더불어 숲'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예수, 부처, 공자가 한 마을에 모여 살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생각해보라. 그 마을에 훌륭한 분들이 많이 산다는 소문을 듣고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 체게바라도 이사왔다고 해보라. 그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개인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더불어 사는 데서도 모범을 보일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어떤 공동체가 정말 살기 좋은 마을이어서 그 안에 있을 것이 다 있고 없을 건 하나도 없다고 치자. 그러면 그 공동체는 바꿔야 할 것이 없다. 바꾸면 나빠지니까. 그런 마을에서는 하나님도 혁명가도 할 일이 없게 된다.(중략)
내가 묻지 않았는가? 과거와 현재의 성인군자들이 모두 한 마을에 모여 살 때 그 마을 모습이 어떻겠냐고. 대답은 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분들의 지혜와 직관력과 열정과 사랑이 한데 무르녹아 '살기 좋은 마을'을 이룬다면, 그분들은 그냥 평범한 시골 할아버지로 머물 것이다. 만일에 그분들이 서로 자기 말이, 자기 길이 옳다고 우겨서 그 마을에 불화와 반목이 계속된다면, 그분들은 죄다 쫓겨나거나 마을이 쑥대밭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성인, 혁명가, 철학자, 운동가, 이상주의자 들이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꾸며 온다. 와서 땀 흘리며 일하는 동안 꿈의 날개를 접는다. 개인의 꿈이 중생이 땀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 분들은 떠난다. 불화와 반목을 일삼다가 스스로도 상처를 입고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면서 버티다 결국 짐 보따리를 싼다.
좀 더 힘겹게, 좀 더 불편하게, 좀 더 가난하게 살면서 너나 없이 마음 놓을 수 있는 잊힌 마을 이것이 내가 꿈꾸는 공동체다. (p130~131)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사랑한 것은 공동체 삶 자체인가, 아니면 공동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인가. 이제 이 둘을 구분할 때가 왔다. 내 안 깊숙한 곳을 들여다 봐야 할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행복은 단순한 마음 상태가 아니다. '더운 날 나무 그늘에도 깃들어 있고 밤 하늘의 별빛으로도 반짝이고 해질녘 저녁 노을로도 타오르는' 매우 구체적인 것이다. 삶의 희노애락에 행복이 깃든다.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야 어찌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우리 마을 반장님 댁 아짐이 깻잎을 한 아름 따가지고 오셨다. "시골에서는 마을 사람들하고만 잘 지내도 반찬 걱정 안할 수 있어"라고 생활의 노하우를 일러주시며 마치 어머니처럼 어깨를 다독여주신다. 아, 행복하다.

 
윤구병 선생은 '공동체야 말로 우리 삶을 온전히 지키는 울타리'라고 강조한다. 윤 선생의 변산공동체는 20여가구 50여명이 느슨한 공동체 틀을 이루며 땅을 일구고 있고, 이 가운데 매 끼니 같이 밥 먹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식구'는 20여명 남짓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곳이 있을까. 변산공동체도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모든 문제는 사람에게서 비롯되고, 이를 해결하는 모든 길은 사람으로 통한다. 공동체 삶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고 '만남이자 곧 상처'이지만 아프더라도 한데 어울려서 살아야 한다는 대목은 윤 선생이 변산공동체를 이끌면서 얻는 생생한 교훈이다.

 
책을 통해 변산공동체의 치열한 일상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여러가지 내용이 참고가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삶의 지혜를 하나 더 얻은 것 같아 기분 좋은 독서였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x******0 2012.07.13. 신고 공감 5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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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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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맨얼굴   지난 5월 28일 오후 5시 57분 지하철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업체 비정규직 직원인 김 모 씨가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가 충격적인 이유, 그래서 모두가 분노한 이유는 이것이 열아홉 살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과중한 업무와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다, 지켜지지 않는 매뉴얼로 인해 죽음을 당한 안전사고이자 인재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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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맨얼굴

 

지난 528일 오후 5 57분 지하철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업체 비정규직 직원인 김 모 씨가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가 충격적인 이유, 그래서 모두가 분노한 이유는 이것이 열아홉 살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과중한 업무와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다, 지켜지지 않는 매뉴얼로 인해 죽음을 당한 안전사고이자 인재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여실히 들어난 비정규직 하청업체 직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사실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위험의 외주화가 갖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탐욕적인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민낯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라는 말이 있다. 탐욕과 소유욕에 기반해 폭주하는 자본주의를 막지 못한다면, 사망한 열아홉 살 노동자가 곧 우리의 미래다.

 

탐욕에 기반한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통해 작동한다.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상태에서 모든 사람의 욕망을 고르게 충족시키는 것이라면 그것은 탐욕이 아니다. 문제는 자기 몫을 키우려고 남의 몫을 가로채거나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데서 생기는 그릇된 욕망이다. 우리는 이것을 탐욕이라고 부른다. 이런 점에서 탐욕은 생리적인 결핍을 충족시키려는 욕망을 넘어선다. 탐욕은 인간 사회에서 노동의 성과를 가로채려는 힘센 자들의 왜곡된 욕망이다.

탐욕에 이끌린 자들은 인간을 노예화하려고 하며, 바로 이 때문에 탐욕이 지배하는 사회는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노예가 이전의 계급 지배 사회와 다른 점은 그들이 채찍에 맞거나 땅에 붙들려 비자발적으로 노예가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조건 탓에 명목상 자발적인 노예가 되었다는 점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노동뿐 아니라 우리 자신까지 노예로 만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개 개인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던져진 개인이 무엇을 위해 누구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가능성 없어 보이는 싸움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인간의 시간, 자연의 시간, 생명의 시간

 

이러한 간절하고 진지한 물음에 대답으로 윤구병이 제시한 것은 특이하게도 자발적 가난이다. 강요된 가난은 지긋지긋하고 원수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스스로 선택한 가난한 삶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가난은 나눔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는 게 잘 사는 길이고, 서로 나누며 더불어 사는 길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는 걸 알려주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지적했듯, 자본주의는 소유욕을 부추겨 성공적으로 탐욕으로 바꾸어냄으로써 유지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더 많은 소유가 미덕이자 목표가 되며, 더 저렴하고 더 많은 생산을 위해 양질의 노동력 재생산과 노동자의 안전은 담보로 저당잡힌다. 노동자는 더 빨리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해야 하고 더 빨리 더 많은 과업을 마쳐야 하며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  안에 머물러 있는 한 누군가의 제아무리 큰 희생도 다른 누군가의 탐욕을 채워주지 못한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모든 것들이 도구가 되어 버리며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과 존엄이 무시되는 체제는 완전히 왜곡되고 비정상정인 것이다. 탐욕의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생활양식까지 바꾸어 버린다. 생존하는 데 굳이 필요가 없는 욕심을 채우기 위해 생존에 꼭 필요한 것들이 희생된다. 이 전복된 생활양식을 바로잡는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타파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다.

 

그 구체적 행동은 물질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눈길을 돌림으로써 시작된다. ‘더불어 삶’, ‘다 함께 사는 것을 지탱해주는 것들은 대개 개별 생명체나 무리를 이루고 사는 생명체보다 더 큰 것들인데, 이것들은 모두 거저 주어진다. 시원한 바람, 맑은 물, 굽이치는 산하, 투명한 햇살…… 이런 것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지켜주며, 이것은 인간들 간의 삶뿐 아니라 사람과 다른 생명체들이 공존하는 길까지 열어준다.

 

사실 생각해보면 좀더 가난하게 사는 것, 좀더 힘들게 사는 것, 좀더 불편하게 사는 것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공생의 길이다. 내가 가난하게 살면 그만큼 이웃이 가난을 던다. 내가 힘들게 일하면 그만큼 이웃이 고생을 던다. 내가 불편하게 사는만큼 이웃이 편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자발적 가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제되었던 노예노동, 임금노동에서 벗어나는 노예해방이자, 생명해방으로 이어진다.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는 스콧 니어링의 주장이 힘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듭은 풀어야제, 끊어내는 것이 아니여

 

그러나 사실 이것이 단번에 되는 것은 아니다. ‘자발적 가난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귀농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공동체적 삶을 선택한다고 해서 단번에 모든 것들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가치 없는 일은 아니다.

이 지점에서 내가 꼭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 윤구병이 옛날 이야기처럼 꺼냈던 왕할머니 이야기다. 

 

나는 어렸을 때 우리 동네 왕할머니인 이 할머니가 엉킨 실타래를 풀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어머님, 너무 얽혀서 이젠 더 못 풀겠구만이라우. 그만 끊읍시다.”하고 며느리가 하소연해도 소용없었다. 그때마다 왕할머니는 이렇게 대꾸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듭은 풀어야제, 끊어내는 것이 아니여. 끊었다 다시 이은 실로는 바느질을 할 수 없는 법인께.”

얽힌 매듭을 단칼에 끊어낸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용단을 기릴 때마다 나는 하루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얽힌 매듭 풀기에 아낌없이 시간을 쏟던 왕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에게는 왕할머니가 알렉산드로스 대왕보다 더 커보인다. 그렇다. 끊어진 실을 이어서는 옷을 지을 수도 이불 홑청을 꿰맬 수도 없다. 우리 공동체에도 이런 왕할머니 한 분 보시기가 내 가장 큰 소망이다. (p.46)

 

대도시에서 물질 에너지에 기대 살고, 하루를 24시간으로 균등하게 쪼개놓은 텅 빈 인공의 시간에 통제되어, 그 시간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삶을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뭐든 빠른 성과, 가시적인 성과를 보고자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제도와 시스템을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그 모순과 문제점을 빠르게 단칼에 해결하는 데 급급하다. 하지만 그 자체가 자본주의의 논리에 갇힌 것이다. “매듭은 푸는 것이지 끊어내는 것이 아니다.”라는 시골 노인의 지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그것이 자본주의에 어떻게 서서히 균열을 낼 수 있을지 보여준다. 오랜 시간 인내하여 매듭을 푼 실이어야지 옷도 짓고 이불 홑청도 꿰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것이야 말로 사람과 생명체를 살리는 인간의 시간이자 자연의 시간이자 생명의 시간이다.

 

 

c*****g 2016.06.12.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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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연과 함께라면 행복할 것 같은데...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서평] 자연과 함께라면 행복할 것 같은데...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내용보기
여러가지 책을 읽다보니 출신과 학력에 상관 없이, 아니 보통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그것들을 가차없이 버리고 농촌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무엇이 그 분들을 자연으로, 농촌으로 향하게 했을까? 가난과 행복에 대해 교과서와 언론이 말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법정스님이 소개해주신 사람들만 해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피에르 라비 [
"[서평] 자연과 함께라면 행복할 것 같은데...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내용보기
여러가지 책을 읽다보니 출신과 학력에 상관 없이, 아니 보통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그것들을 가차없이 버리고 농촌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무엇이 그 분들을 자연으로, 농촌으로 향하게 했을까?
가난과 행복에 대해 교과서와 언론이 말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법정스님이 소개해주신 사람들만 해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피에르 라비 [농부 철학자],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피터 캐디 [핀드혼 농장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가끔 생각한다. 가난하기 보다 여유롭게, 불행하기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나 역시 '가난하고 싶지 않지만, 행복하고 싶은' 많은 보통 사람들 중의 하나다. 이런 마음은 거의 99.9%의 보통 사람들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2011년 12월... 대한민국은 춥고 외롭고 답답하다. 먹고 살기 바빠 서로를 다독거리기는 커녕, 제 갈길 가기도 바쁜 형편이다. 대를 이어 평생 '희망'이란 두 글자에 기대감을 높이던 99%의 사람들에게 21세기 한국사회에는  ‘한숨’만이 있을 뿐이다. ‘돈’과 '자존심'만을 바라보았던 사람들이 삶의 허망함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냥 이대로 현실에 적응하며 지쳐가야 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삶의 전환점을 찾아야 한다. 늘 언젠가 언젠가는 하면서 지나온 세월이 한두 해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이 나는 지금이 그 때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방향 중의 하나가 다른 이들의 삶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이다.
슬플 때 생각을 다잡고, 기쁠 때 마음을 가다듬고, 승승장구할 때 성찰케 하고, 어려울 때 용기를 북돋는 시대의 어른들이 쓴 산문. 동시대 사람들과 몸과 마음으로 호흡하면서, 그 생각과 글이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지면서 매번 펼칠 때마다 그 깊이가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 절실하다. 우리의 내면에 ‘등불’처럼 가슴 속에 오롯하게 넣어둘 생각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은 누가 어떻게 담고 있을까?

저자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예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은 생각과 마음으로 자신을 가꾸고 실천하는 체험, 경험,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책이다. 그는 1995년에 정년이 보장되는 대학 교수직에서 물러났고 2008년에는 모든 공직(사단법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사단법인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사단법인 공동육아연구회, 법인인 될 민족의학연구소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의 명의로 된 모든 재산을 공공의 목적에 쓰이도록 사회에 환원했고, 함께 생활하던 변산공동체에 초가삼간을 지어 지내며 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40여 년 간 이어온 삶을 뒤로한 채, 여기저기 떠도는 방랑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은 자신이 설립했던 보리출판사가 경영난이 심하여 잠시 경영을 맡고 있다.
“죄다 놓아 버리자, 손에 쥔 것도 머릿속에 든 것도 다 놓아버리고 바람처럼 떠돌거나, 돈 없는 세상에 ‘짱박혀’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핫바지 방귀 새듯이 그렇게 가자.”

이 책은 저자의 삶, 특히 그의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변산공동체와 그 이후의 10여 년에 대한 생생한 삶의 기록이다. 그의 삶, 말, 행동은 그 자체가 철학이고 교훈이다. 삶에서 철학하는 사람이다. 즉 그에게 철학은 실천이다. 이것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그는 자연과 인간, 생명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한결 같은 실천적 삶으로 일깨워 왔다. 경제적으로 잘 살기에 몰입한 이후, 그 폐해가 드러난 이 시대에 결국은 우리 모두의 생존의 문제가 된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여러 생명체가 더불어, 함께 살아야 나도 우리도 사는 것이다.”
그가 10여 년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 마치 예언처럼 들어맞는다. 그는 본질을, 삶의 본질을, 생명의 본질을, 생명의 원리를 궁구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로서 그리스 철학을 공부했고, 가르쳤으며, 또한 스스로의 삶에 적용했으며, 사람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한 중에도 자신의 주장(사상)을 가리고 아꼈고 키웠고 나눴다. 그의 철학은 실천이었고, 세상을 껴안았고, 그것을 세상과 나누고 베푸는 철학이었다. 
그의 공동체 생활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오히려 핍진했다. 그러나 그는 행복했다. 마음이 지시한 방향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1980년대 이후, 1996년 변산의 농촌에 내려가 공동체를 꾸린 뒤 오늘까지, 그의 생각에는 일관된 것이 있었다. 바로 공존이요, 상생이며, 유기적 생명관이다. 그것은 거창하게 말하면 자유시장경제로 세계화를 통한 부의 축적을 향해 치달리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현대 도시의 삶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모멘텀에 관한 것이다. 굳이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보통사람들의 삶과 생활을, 그들의 불행을 뒤집을 수 있는 '혁명'이 될 수 있다.
물질 중심의 가치관, 경쟁 중심의 시스템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개인과 국가간 빈부 격차의 확대, 갈등은 심화되고 우리의 삶의 질은 점차 피폐되었다. 도시 사회는 소유욕과 탐욕, 병적인 욕망으로 인간을 내몰았다. 그리스 철학을 공부했던 그는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의 삶에 적용했으며, 사람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한 중에도 자신의 주장(사상)을 가리고 아끼고 키우고 나눴다. 그의 철학은 세상의 본질을 읽는 철학이다. 생명을 껴안는 철학이다. 나누고 베푸는 철학이다. 
그는 그것을 고단한 삶 가운데서, ‘좀 더 가난하게, 좀 더 힘들게, 좀 더 불편하게’ 살면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원형적 삶, 나눔의 삶이다. 세상의 여러 성인들, 부처와 유마힐, 성 프란체스코가 그랬던 것처럼,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고단한 삶으로 나아가 ‘인류의 생명창고’인 농촌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생명의 시간 속에서 자연과 사람과 더불어 땀 흘리며 공존과 상생의 기본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되살려내야 합니다. 땅을 되살려내야 합니다. 땅을 되살려내야 하고, 우리의 인간성을 되살려내야 하고, 그러면서 공동체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공동의 울타리가 되어 먹을 때 같이 먹고 굶을 때 같이 굶자는 원리로 소유욕과 탐욕을 근절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내가 저자처럼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여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또 다른 생각...
'가난'과 '행복'... 어떤 삶이 '가난한' 삶이고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
 
국어사전에서 '가난'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고 쪼들림. 또는 그런 상태"로 정의한다. '빈곤'도 비슷한 개념.. 개인이나 가정의 살림을 차려서 사는 일이 넉넉하지 못하다라는 의미인데, 결국 사전적인 개념은 '의,식,주'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얼마나 옷이 넉넉해야, 얼마나 풍족하게 먹어야, 얼마나 좋은 집에 살아야 가난하지 않을 것일까?
 
현대사회에 들어서면 '살림'이라는 개념 속에 의,식,주 이외에도 문화생활과 사회적 교류(미디어,통신), 교육 등 여러가지 추가적인 요소가 들어갈 것이다. 그래도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는데, 어느 정도의 문화생활, 미디어, 통신, 교육이 이루어져야 '가난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물질적으로 부족하면, 즉 가난하면 반드시 '불행'할까? 그리고 과연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만 있을까? 정신적인, 또는 심리적인 '가난'은 없을까? 우리가 '가난'하다고 느끼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 과연 물질적인 이유 때문인가? 아니 물질적으로 풍족하다고 반드시 행복할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언제일까 생각해본다.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바다. 지금의 40대가 10대이던 시절, 즉 1970년대에 한국의 물질적인 수준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하지만 그 시절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반드시 '불행'했었나? 그것은 아니다.
행복이 삶의 과정이고 목적이라면, 나는 가난이 행복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대신 나의 살림살이와 타인의 살림살이,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나의 '행복감'이 영향을 받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언젠가는 혼자서 무인도에서 사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P.S) 올해 4월 모 언론사에서 저자를 인터뷰한 기사를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이 책을 출판한 것이 3년 전... 올해 저자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옮겨보았다.
 
---------------  <인터뷰> '농부 철학자' 윤구병 보리출판 대표  ----------------- 2011년 4월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나무 한 그루 베어낼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자',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자'는 게 출판사를 시작할 때부터 직원들과 약속했던 것입니다. 수익성이 없어 다른 출판사가 내기 힘든 책들이 있는데, 그 빈 고리를 메우자고, 우리 책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하자고 했죠."
그림책과 아동책을 중심으로 상당한 고정 독자층을 확보한 ㈜도서출판 보리의 윤구병(68) 대표는 최근 서교동 '기분좋은가게'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20년간 그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며 "핵심은 언제나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철학으로 만든 보리의 책들은 아동출판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으며 출판사를 지탱하고 여러 공익사업을 벌이는 데 힘이 돼 주고 있다.

"7년 반에 걸쳐 개발한 '보리 국어사전'은 초등 국어사전 중 판매 1위를 달리며 출판계에서 주는 큰 상을 네 개나 싹쓸이했지요.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입말로 담은 유일한 국어사전입니다. '올챙이 그림책' 시리즈는 1천만 명의 어린이가 읽고 자란 것으로 집계되지요."
특히 윤구병 대표가 80년대 말에 직접 기획하고 쓴 '올챙이 그림책'은 20여년간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최근 60권 전집 개정판으로 도서출판 휴머니스트에서 출간됐다.
 
1994년 윤 대표가 기획해 출간한 '달팽이 과학동화' 시리즈 역시 10만 명의 어린이에게 읽혔으며 지난해 '달팽이 과학동화 플러스'로 개정, 출간됐다.

이에 더해 윤 대표는 최근 이 책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일에도 착수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컴퓨터나 여러 시각 매체를 접하는데, 어떻게든 건강한 문화를 접할 길을 열어주지 않고 구박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기획하게 됐습니다. 취학 전 아이부터 어른까지 광범위하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에요. 돈이 굉장히 많이 드는 작업이지만 잘 보급하면 장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런 생각으로 윤 대표는 '달팽이 과학동화' 중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하면서도 과학적인 인식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내용을 골라 3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불과 지구의 역사를 보여주는 '잠꾸러기 불도깨비', 공동체적인 삶의 필요성을 강조한 '울타리를 없애야 해', 환경의 소중함을 전하는 '이런 공장은 싫어'가 10~15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다. 특히 '잠꾸러기 불도깨비'는 3D로 제작됐다.

출판사는 이 애니메이션들을 극장에서 일반 상영하기 위해 '영화제작사 및 배급사'로 공식 등록까지 했다. 파주에 있는 '씨너스 이채'에서 시험 상영을 한 뒤 학교나 공공도서관에서도 상영할 수 있도록 보급할 계획이다.

또 '올챙이 그림책' 전집에서도 6개를 골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오는 8월께 출시를 목표로 준비 중이다.

윤 대표는 1988년 출판사의 모태인 '부리기획실'을 꾸리고 1991년 출판사로 등록해 20년간 출판사 일에 관여하지만, 사실 직접 대표를 맡은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출판환경이 바뀌면서 대형서점 중심, 온라인 중심이 되다 보니 보리 책이 점점 안 팔리더군요. 할인율이 낮다 보니 서점에 가도 눈에 안 띄고….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직접 대표직을 맡게 됐고 현재 중장기적으로 잘 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출판사 대표직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제 공식적인 직책에서 은퇴할 나이가 됐다는 것이다. 단, 그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내년 3월이면 출판사 대표를 그만두고 변산에서 지내면서 농사짓고 '살림대학'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려고 합니다. 그전에 할 일이 '동네 책방'을 살리는 일이에요. 지금 질 좋은 책을 구할 수 있는 동네서점이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대형서점은 서민들이 접근하기 어렵고 온라인 서점은 신간 중심이지요. 어린이문화운동단체들과 함께 동네 책방을 살리는 방안을 연구 중입니다. 연구 성과가 나타나면 건강한 어린이 문화와 결합한 조그만 책방을 열 생각이에요. 물론 어린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양질의 책을 볼 수 있도록 꾸밀 거예요. 시범적으로 한두 개를 먼저 내고 선의의 체인점으로 늘려갈 겁니다."
출판사 일 외에도 윤 대표가 손을 댄 일은 한둘이 아니다. 사실 그의 이름은 출판사 대표보다는 '농부 철학자' '교수 출신 농사꾼' 등으로 더 잘 알려졌다. 그는 1994년까지 충북대 철학과 정교수로 지내다 정년이 보장된 교수직을 버리고 농사를 짓고자 전북 부안으로 내려가 생태주의 공동체 '변산공동체'를 꾸렸다.

"15년을 교수직을 했고 국립대 정교수로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됐죠. 철밥통 중의 철밥통이었는데 이상하게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학생들의 삶에 절실한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활력을 느끼는데, 학생들은 졸업장 따는 데만 매몰돼 있고 질문을 하지 않더군요. 질문 없는 대답을 혼자 떠드는 게 계속되니까 불행해지더라고요. 그때 나이가 50이 넘었지만, 나 나름으로 행복하게 살 길을 찾자고 해서 95년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선택을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날마다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는 현재 일주일의 절반은 서울에서 출판사 일을 돌보고 나머지는 변산공동체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다.

변산공동체는 윤 대표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현재 70여명으로 이뤄져 있다. 공동 명의의 땅에 농사를 지어 그 생산물로 자급자족하고 농산물 판매로 인한 수익금은 필요한 만큼 나눠쓰는 생활을 한다. 농사는 철저히 유기농 방식으로만 짓는다. 대안학교로 소규모의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운영하며 현재 산살림ㆍ들살림ㆍ바다살림을 연구할 수 있는 2년제 '살림대학' 설립도 준비 중이다.

윤 대표는 또 보리출판사와 연계해 '재단법인 민족의학연구원'을 설립했다.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우리 땅의 전통의학을 집대성하는 기관이다. 1천여 종이 넘는 토종 약초의 성분을 분석하고 효능까지 집대성하는 사업으로, 모든 약초에 세밀화를 곁들여 한 권당 800~900쪽으로 발간하는 장기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사장은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가 맡았다.

이밖에 보리출판사의 수익금 일부로 재활용 가게인 '기분좋은가게'와 유기농 식당 '문턱 없는 밥집' 등 공익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보리출판사가 서교동에 공익사업을 위해 마련한 건물 '태복빌딩' 1층에 있는 '문턱 없는 밥집'은 점심 시간에는 도시 빈민들을 위해 1천 원 이상 있는 만큼만 돈을 내도록 한다.

"누군가 저에게 손대는 일마다 다 성공했다고 신기해하더군요. 저는 그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믿을 뿐입니다."
mina@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4/24 09:03 송고 
 
 
[ 2011월 12월 13일 ]
c****n 2011.12.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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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기 쉽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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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기 쉽지 않을것 같다....   가난한것 좋다....행복한것 좋다....   그런데 땅이 있어야지.....   꼭 땅을 사야 맛은 아니라고 했지만   공동체 생활도 쉽지 않을것 같다.....인간관계라는것이 참 어렵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원래 땅을 사고 내려오는 사람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본문에서의 말처럼   도시사람이 저렇게 일구고 가꿔서 살아가기란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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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기 쉽지 않을것 같다....

 

가난한것 좋다....행복한것 좋다....

 

그런데 땅이 있어야지.....

 

꼭 땅을 사야 맛은 아니라고 했지만

 

공동체 생활도 쉽지 않을것 같다.....인간관계라는것이 참 어렵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원래 땅을 사고 내려오는 사람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본문에서의 말처럼

 

도시사람이 저렇게 일구고 가꿔서 살아가기란 환상처럼 보인다....

 

그래서 도중에 포기하나 보다....

 

저렇게 끝까지 할 용기가 없어서 시작하고 싶지 않다.....

 

다 옳은 말이지만 난 못할것 같다....

 

그러니까 그런 책을 낼수 있는것이다.....

 

나같으면 후회할지도 모른다.....해보고 싶은것이지 도시와 양다리걸치고 싶다...

 

따뜻한 곳이 그립다....그냥 생각만 하고 싶다.....

 

실행하기는 두렵다....

s******3 2009.12.13. 신고 공감 1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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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생산양식-자연에서 찾아라
"행복의 생산양식-자연에서 찾아라" 내용보기
1. 현대인의 일상에서 탈출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시계를 보는 것이다. 다행이다, 오늘은 6시에 일어나서 여유가 있는 편이다. 욕실에 가서 비누와 샴푸로 몸을 씻고, 거울을 보며 기초 화장품을 바른다. 전기 밥솥에서 밥을 퍼서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놓고 먹는다. 설거지 감은 싱크대에 넣어둔다. 재빨리 치약으로 이를 닦고, 화장을 하고 왁스를 바르며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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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인의 일상에서 탈출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시계를 보는 것이다. 다행이다, 오늘은 6시에 일어나서 여유가 있는 편이다. 욕실에 가서 비누와 샴푸로 몸을 씻고, 거울을 보며 기초 화장품을 바른다. 전기 밥솥에서 밥을 퍼서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놓고 먹는다. 설거지 감은 싱크대에 넣어둔다. 재빨리 치약으로 이를 닦고, 화장을 하고 왁스를 바르며 머리를 손질한다. 그리고 나와서 자동차의 시동을 켠다. 직장에 도착했다. 빽빽이 자리가 들어선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키고, 커피를 끓여 먹고, 부장님께 업무 처리로 상담을 한다. 여직원들끼리는 오늘 입은 옷이 어떻고, 머리 스타일이 어떻고, 가방과 신발이 어떻다 라고 서로 이야기한다. 점심은 사내식당이나 근처 식당에서 사먹고, 오후 일정도 비슷하게 돌아가며 퇴근을 한다. 일을 다 마치지 못하면 야근이다.

현대인들의 일상적인 생활이다. 가족이 있거나 없거나 저런 일상은 되풀이된다. 학교에서도 예체능 교육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학교 뿐 아니라 학원에서도 계속 근무를 해야 한다. 우리는 행복한가? 우리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아름다움과 젊음, 부와 명예를 지닌 사람들도 그렇게 행복해보이지는 않는다. 1억을 모으면, 10억을 모으고 싶고, 더 욕심이 난다. 돈과 물질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다들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하기 바쁜 와중에서 어떻게 해야 내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윤구병 씨는 바로 현대인에게서 자연이 멀어졌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답을 내준다. 그의 옷은 누더기다. 경력을 보지 않았다면 거지가 책을 내고 웃고 있다고 생각하며 읽지 않았을 정도이다. 그의 소박한 웃음 뒤에는 끈기와 지혜가 숨어 있다. 그는 그 어렵다던 서울대에 삶에 대해 고민하는 철학과를 나오고 대학교수로도 일했다. 하지만 그는 한창 일할 나이인 50대에 대학교수 직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온다. 교수와 거지의 공통점은 말로 벌어먹는 다는 것, 평생 깡통을 찬다는 것인데,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저자가 선택한 길이 옳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 타샤 튜터도 18세기로 되돌아가 살았다. 저자는 그녀처럼 가정만 탈출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

 

2.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

솔잎, 민들레, 냉이, 소리쟁이, 조뱅이, 방가지똥, 진달래꽃, 동백꽃, 산국, 칡꽃, 살구, 은행, 꾸지뽕, 마가목 열매. 식목도감에나 나올 법한 이름들이 책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자연은 사시사철 우리에게 먹고 입고 잘 곳을 준다. 코카콜라가 없어도 식물을 발효시켜 음료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웰빙 식품을 찾지 않아도 산기슭에 가면 계절에 따라 다양한 나물이 쑥쑥 자라나고 있다. 놀라운 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반찬으로 사계절 내내 먹는 배추김치는 겨울에 김장하여 먹었을 뿐이지, 다른 계절에는 열무나 푸성귀, 나물로 밥상을 내도 충분했다는 것이다. 기계로 농사를 지으면 오리나 지렁이가 돌아다니기가 힘들다. 힘들어도 손으로 직접 짓는 게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이다. 식물에서 채취하여 직접 염색을 하고, 건물은 폐자제를 이용한다. 근처 식당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얻어와 거름으로 묵혀둔다.

도시에서 사는 이들은 철부지이다. 24절기를 모르기 때문에 철이 없다는 작가의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이다. 그렇다. 글자로 꾹꾹 눌러 담지 않기 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24절기를 느끼지 못한다. 가끔 일기예보에서 말해주면 사람들과 대화 소재로 스치듯이 이야기 하고 말 뿐이다. 자연 속에서 살면 밭과 논을 돌보느라, 음식을 해먹느라, 땔나무를 해오느라 4계절 내내 밤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바쁘다. 자연은 우리에게 해, 바람, 비로 받는 것 없이 베풀어준다. 볍씨 한 알에 300개의 벼가 영근다. 어느 누가 우리가 일한 것의 300배로 쳐주는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앎과 힘의 원천인 문화 유산은 자연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체의 모습으로 전승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200년 동안 자본이 숨은 주체가 되어 빚어낸 ‘만드는 문화’의 물결에 수천 년 동안 자연이 키워온 ‘기르는 문화’가 함부로 버려지고 있다. 우리가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는 이유이다. 만드는 문화를 따라가기 위해 기르는 문화를 스스로 버리고 있는 것이다. 몸은 힘들지 몰라도 기르는 문화로 되돌아가면 후손들의 자연을 빼앗는다는 죄책감에서 벗어 날 수 있고, 우리 자신도 자연 속에서 행복한 마음을 가꿀 수 있다. 저자는 5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자연 속에서 홀로서기를 이뤄냈다. 힘들었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시골에 내려가서 밭 작물을 가꾸어왔다. 씨앗을 뿌리고 흙을 꾹꾹 밟아주고, 메뚜기와 까치랑 싸우고, 지독한 거름 냄새를 참고,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날라 줘야 한다. 손가는 일이 많지만, 실컷 땡볕 아래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바람이 불어 올 때, 점심으로 갓 따온 채소로 꾸며진 밥상을 받을 때 매우 뿌듯하다. 가을에 형형색색의 열매를 달고 있는 밭을 보면 자식 농사라는 말이 왜 있는 지 알 수 있다. 주말 마다 잠깐의 행복이 이 정도인데, 저자가 우리에게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말해주는 것이 이해가 된다.

 

3. 자연 속에서 배우기

저자는 자신의 가족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었다. 폐교가 된 학교를 주민들과 함께 새로운 문화 보금자리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지방 자치 단체와 법으로 여러 실랑이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해결되었다. 이 학교에 다른 외부에서도 아이들을 맡기는 경우가 있다. 학교의 교육과정은 정부에서 규정한 과정과는 다르다. 밭매기, 굴따기, 모심기처럼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에서 꼭 필요한 방법들을 배우도록 짜여 져 있다.

예컨대 국어시간에도 글자를 익히는 데에 치중하지 않는다. 글은 몰라도 사는 데 불편함이 없지만, 말을 할 줄 모르면 살기 힘들다. 말을 험하게 하면 험상궂은 사람이 되고, 말을 잘 못하면 다른 이들에게 홀대당하며, 말을 할 줄 모르는 이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을 수도 없다. 역사시간에는 움집, 귀틀집, 초가삼간에서 대궐에 이르기까지의 집의 역사, 보리, 밀, 벼, 콩, 옥수수와 같은 먹이의 역사로 짜여 져 있다. 그야말로 의식주 생활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지금 향유하고 있는 문화의 역사 전반을 배울 수 있다.

자연과 함께 하면 꽃이 자라고 있는 것도, 나비가 뛰노는 것도, 가을과 감을 노래할 때도 훨씬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다. 활자나 그림으로만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오감을 사용해서 삶 속에서 느끼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더욱 어린이다워지고, 사람은 더욱 사람다워진다. 나도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농촌이다. 물도 수도를 틀면 바로 먹을 수 있고 맛도 아주 달다. 쌀과 김치는 사다 먹지만, 가을까지는 근처 밭에서 깻잎을 따고 고구마를 캐기도 하고, 오디를 따오기도 했다. 새가 우짖고, 껑충 뛰어다니는 고라니, 얌체처럼 잣을 까고 있는 청설모를 쉽게 볼 수 있다. 부모님의 주말 농장에서 여러 기술을 익혀놓았다가 나중에 자연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튜터 여사 처럼 20세기 이전의 삶을 구현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a******9 2009.12.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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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저자 윤구병/출판 휴머니스트/발매 2008.12.15.       P126 자연이 얼마나 엄격한 스승인지는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지요? 씨 뿌리는 시기를 놓치는 게으르고 철없는 농사꾼에게는 아무것도 베풀지 않습니다. 김맬 때 빈둥거리는 농사꾼에게도 베푸는 게 없습니다. 추상같습니다. 서슬 퍼런 가을 서리가 하룻밤 사이에 모든 풀을 시들게 합니다. 봄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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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저자 윤구병/출판 휴머니스트/발매 2008.12.15.

 

 

 

P126

자연이 얼마나 엄격한 스승인지는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지요? 씨 뿌리는 시기를 놓치는 게으르고 철없는 농사꾼에게는 아무것도 베풀지 않습니다. 김맬 때 빈둥거리는 농사꾼에게도 베푸는 게 없습니다. 추상같습니다. 서슬 퍼런 가을 서리가 하룻밤 사이에 모든 풀을 시들게 합니다. 봄여름에 땀 흘렸다고 게으름 부리다가는 일껏 잘 지어놓은 고구마 농사 하룻밤 사이에 결딴을 내는 게 하늘의 일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겹더라도 서리 내리기 전에 고구마를 캐서 구들방 윗방에 모셔놓아야 합니다.

 

 

P155

우리 집 뜰에는 감나무가 큰 것 작은 것 합해서 일곱 그루, 살구나무, 앵두나무, 석류나무, 보리수나무가 한 그루씩 있다. 또 화단에는 모란, 작약, 국화, 붓꽃들이 심겨 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과일나무들은 한 그루뿐인데 왜 감나무만 유난히 많을까. 두 해가 지나고 나서야 그 까닭이 조그마한 일깨움으로 가슴을 쳤다. 직접 먹어보면서 느낀 바이지만 다른 과일들은 모두 한철 음식이다. 그리고 많이 먹어 보았자 배를 불려주지 못한다. 그러나 감은 곶감으로 깎아 오래 간직해두고 먹을 수 있을뿐더러 공복에 훌륭한 요깃거리가 된다. 꽃만 해도 그렇다. 모란이나 작약, 창포, 국화 같은 거소 꽃이 보기 좋은 눈요깃거리만은 아니다. 모란과 작약의 뿌리는 좋은 한약재이고, 창포물로는 머리를 감고 국화꽃은 다시 향기로운 술을 빚을 수 있다. , 그렇구나. 생산문화와 소비문화의 차이가 뜰을 꾸미는 데서까지 이렇듯 두드러지는구나.

 

 

공동체에서 생활을 한다. 경제적 이익을 스스로 취하지 않고 공동으로 그 생활을 함께 한다. 인간의 욕망을 내려놓는다. 그 깊고 심오한 작업이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소유에 대한 욕구를 대신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의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삶이 소비가 아닌 생산적인 활동이라는 철학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유기농 또한 삶의 철학적 방향을 나타내는 수단이 된다. 동물과 식물의 생명에 의식을 맞추어 함께 살아가려는 더불어의 삶이 녹아있는 것이 유기농이다. 잡초를 제거하려고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다. 해충을 죽이려고 살충제를 뿌리지 않는다. 이 또한 삶의 지향하는 바와 관련되어 있다. 단순하게 방법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생활 철학적인 논조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삶에 대한 선택으로 빛나는 생활 철학이 바로 유기농이다.

 

 

P168

우리보다 먼저 교환가치가 중심인 상품 경제 사회에서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 사랑과 우애, 협동 같은 공동체적 가치를 나 몰라라 하고 살아온 자본주의 나라와, 그 체제와 겨루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강박관념에서 덩달아 경쟁을 부추기던 옛 사회주의 나라에서 다 같이 이혼율이 절반이 넘어서고 있는 걸 보면, 마음에 상처받지 않고 사는 길이 '사랑 키우기 운동'이나 '마음 공부'만으로 열릴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아프더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서로 껴안아야 합니다. 상처를 입으면서도 함께 땀 흘려 '정든 땅' '정든 산천'을 일구어야 합니다. 해님과 달님과 별님들, 바람님과 물님과 그 밖의 온갖 임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공생의 세상, 그곳에서 태어나고 그곳에 뼈를 묻어 여한이 없는 행복한 마을 공동체, 기초 생산 공동체를 되살려내야 합니다. 이 길만이 제가 살고, 당신이 살고, 온 세상이 되살아 마침내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당신의 마음에 돋아난 가시는 '뼈아픈 각성의 바늘'이기도 합니다.

 

 

P215

제가 농촌이라는 인류의 생명창고 가까이 살고, 지렁이도 두더지도 우렁이도 민물새우도 미꾸라지도 함께 사는 논과 밭을 가꾸기에 애쓰고, 제가 사는 마을에 흐르는 냇물에 버들치나 피라미나 메기가 함께 살기를 바라는 까닭은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끼리만 모여서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우쳤기 때문입니다. 공생의 길, 상생의 길이 인류와 모든 생명체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윤구병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y****a 2021.09.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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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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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하게》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사람 손길이 미치는 농토 가운데 제초제와 농약에서 벗어난 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못 쓰게 괸 묵정밭은 타관에서 흘러들어온 우리 같은 사람 몫입니다. 헐값으로 사거나 그냥 부쳐 먹을 수 있으니까요. 억새에, 칡넝쿨에 가시나무까지 뿌리를 단단히 내린 땅을 괭이로 파서 다시 일구노라면 옛 어른들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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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하게에서 발췌하여 필사한 내용입니다.

 

 

 

사람 손길이 미치는 농토 가운데 제초제와 농약에서 벗어난 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못 쓰게 괸 묵정밭은 타관에서 흘러들어온 우리 같은 사람 몫입니다. 헐값으로 사거나 그냥 부쳐 먹을 수 있으니까요. 억새에, 칡넝쿨에 가시나무까지 뿌리를 단단히 내린 땅을 괭이로 파서 다시 일구노라면 옛 어른들의 한숨이 내 입에 걸리고, 그분들의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름을 느낍니다.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던가요? 밭을 갈지 않고 한 해 묵히면 망초와 쑥 세상이 되고, 두 해 묵히면 곁다리로 칡넝쿨이 끼어들고, 세 해 묵히면 억새가, 네 해 묵히면 가시덤불이 이사를 온다는 이야기요.

 

 

그 동안 얼치기 농사꾼으로 다섯 해쯤 살다 보니 살림, 그 가운에도 기초 살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딴에는 기초 살림을 튼튼히 꾸려 우리 공동체 사람 살림뿐만 아니라 땅도 살리고 물도 살리고 바람도 살리는, 그래서 모든 생명체가 오순도순 더불어 살아가는 큰살림을 꾸려보자고 별렀더랬습니다. 농약, 제초제 쓰지 말자. 화학비료, 축산 사료를 먹여서 나온 똥으로 만든 거름 쓰지 말자, 비닐 농사짓지 말자, 돈 되는 작물 말고 쌀, 보리, , , 감자, 고구마, 기장 같은 돈은 안 되지만 꼭 필요한 주곡 중심으로 농사짓자.

 

 

도시에서 살던 분 들 가운데 가끔 귀농을 하면 그해부터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유기농법을 택하든, 관행농법으로 하든, 환금작물 중심의 투기 영농을 하든, 농사 경험이 없이 시골에 터를 잡고 살려는 분들은 적어도 서너 해, 너덧 해는 농사로 제 앞가림하기 힘들다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우리도 5년이 되는 올해를 자급의 원년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어찌할까? 콩농사 지어 간장 만들고 된장 담그고, 마늘종 뽑아 장아찌 만들고, 감 따서 식초 빚고, 고추 끝물을 거두어 염장해서 내다 팔고…… 백방으로 애써 보아야 자급의 길은 요원한데. 우리 뜻을 굽히지 않고 살길이 어디 있을까? 이리저리 궁리하던 끝에 그래, 청정한 땅에서 자라는 약초들을 거두어 효소를 빚어 내다 팔아 구멍 난 살림을 메우자. 제초제, 농약으르 쓰지 않고 가꾼 밭에서 나는 풀들은 거개가 약초임이 밝혀졌다.

 

 

"귀농의 뜻을 세우는 분들은 어차피 좀 더 가난하게, 좀 더 힘들게, 좀 더 불편하게 살 마음의 준비도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 농사 경험이 저처럼 거의 없는 사람이 처음 농사를 시작하면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하든,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를 쓰는 관행농법을 따르든, 서너 해는 입에 풀칠하기 어려워요. 십중팔구 손해 보기 십상이지요. 그 손해는 수업료로 여기세요. 도시의 생활양식과 수준을 시골에서도 유지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면 투기 영농에 손대기 쉬운데 농사는 투기가 아닙니다. 텔레비전에서 아무리 그럴듯한 성공 사례를 듣더라도 거기에 현혹되지 마세요. 농사를 투기로 생각하고 귀농하는 분 가운데 100명에 99명은 손 털고 다시 도시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귀농하려는 분들 가운데 먼저 땅부터 사려는 분들이 꽤 많은데 그런 생각 접으세요. 농사를 모르는 분이 어떻게 땅인들 제대로 볼 수 있겠어요. 먼저 빈집을 거저 빌리거나 헐값으로 구해서 몸만 오시는 게 좋습니다. 머슴살이하는 셈치고 이 집 저 집에서 가서 공일을 하다 보면 일머리도 트이고 땅을 보는 눈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좀 더 가난하게 사느 길, 좀 더 힘들게 사는 길, 좀 더 불편하게 사는 길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공생의 길입니다.

 

다 좋다 쳐도 가난은 지긋지긋하다고요? 강요된 가난은 그렇겠지요. 당장 끼니가 걱정되는 가난은 원수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하는 가난한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은 나눔을 가르쳐줍니다. 잘 사는 길은 더불어 사는 길이고, 서로 나누며 더불어 사는 길만이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지난 5년 동안이 제 삶에서 가장 행복한 때라고요.

 

 

몬산토 콩이야기 입니다. 그 회사에서 제초제와 농약을 뿌리면 다른 생명체는 다 죽지만 인공으로 합성한 특수한 유전자를 지닌 콩만은 살아남게 유전공학을 이용해 만든 콩이 '몬산토 콩'이랍니다. 이 몬산토 콩이 어찌나 농가의 일손을 크게 덜어주는지 미국의 콩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 식용으로, 사료용으로 팔리고 있는 중이라더군요. 지금은 미국에서 전 세계 수요량의 50퍼센트가 넘는 콩을 생산하고 있다지요.

 

y****a 2020.09.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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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길은 더불어 사는 길이고, 서로 나누며 함께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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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우면서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세상에서 부러 가난하길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문명의 혜택이 풍족해졌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삶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면 사람들의 행복지수 또한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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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우면서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세상에서 부러 가난하길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문명의 혜택이 풍족해졌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삶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면 사람들의 행복지수 또한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 부의 증가가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면 부가 반드시 행복을 담보한다고 볼 수 없다.

 

윤구병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휴머니스트, 2008년)를 통해 ‘행복이란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해 본다. 여전히 공동체의 삶을 실험중인 그들이 마냥 행복하리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한 번쯤 공동체에 몸을 담았다가 빠져나왔을 이들의 모습도 떠올려 본다. 그곳에서도 역시 행복을 향한 투쟁은 지속된다. 다만 일반적인 삶의 양식과 다를 뿐이다. 대게의 사람들이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면 그들은 삶의 주체로서 당당히 행복을 개척해간다. 물질의 있고 없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에게 느껴지는 불편이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 공동체의 중심에 윤구병이란 사람이 있다.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학자였으나 스스로 삶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변산으로 내려가 마을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그가 지향하는 삶은 공생의 삶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고,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다. 물질적인 부는 부족하지만, 정신적인 부는 충만한 삶이다. 소외된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이며, 좀 더 불편하게 함께 살기를 원한다.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기르는 교육을 실시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는 일은 죽는 일 만큼이나 힘들다. 욕망의 끈을 놓으면 이 세상에서 도태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 되고 온갖 불편을 껴 안고 살아야 한다. 법정 스님이 오랫동안 무소유의 사상을 설파했지만, 그렇게 살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러나 무소유의 삶은 아니더라도 좀 더 가난하게 살며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네 같은 사람들이 시작할 수 있는 실천의 지점은 바로 여기부터라 생각한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끝도 없는 욕망을 위해 달릴 것이 아니라 욕망을 차츰 줄여 행복지수를 높여야 한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은 그럴 때 가능하다.

 

아이를 키워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교육에 관한 부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보편적인 교육이 특수한 교육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부분은 보편적인 교육을 되살리는 것이다. 보편적인 교육이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요즘의 교육은 보편적인 교육을 점점 줄여간다. 심지어 체육, 미술, 음악 등은 아예 수업조차 하지 않을 모양이다. 저자는 ‘기르는 교육’을 실천한다. 무엇을 할 줄 아는 아이로 교육하길 원한다. 획일화된 수업으로 창의성이 없는 아이를 양산하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은 미래가 없다. 쓸모 있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배우고자 할 때, 아이들은 삶의 방식을 배우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런 자세에서 창의성도 무한히 발휘되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라는 문구는 삶의 모토가 되어야 한다. 서로를 짓밟는 경쟁 속에서 욕망을 무한히 확장해나가는 삶을 지향하기보다는 조금 덜 갖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by 꽃다지, 2010.10.31

l*******g 2010.10.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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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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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 어린이 출판사에서 수 많은 어린이 그림책을 접하면서 윤구병님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실길래 궁금했었는데...(글을 쓰시는 건 기본이겠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서점에 들러 기웃거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바로 자연과 공동체 삶을 실천한 윤구병의 소박하지만 빛나는 지혜가 듬뿍.   요즘 티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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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벗 어린이 출판사에서 수 많은 어린이 그림책을 접하면서 윤구병님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실길래 궁금했었는데...(글을 쓰시는 건 기본이겠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서점에 들러 기웃거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바로 자연과 공동체 삶을 실천한 윤구병의 소박하지만 빛나는 지혜가 듬뿍.

 

요즘 티비에서 푸드 마트면 공동체 교육이 바탕이 되어 유기농 음식과 직접 캐보는 일들이 방영한 적이 있었다. 가격이 비싸지만 아이들과 내 가족들을 위해서 좋은 음식을 찾아 거리가 멀다하고 찾아 다니는 주부들이 늘고 있다. 도시에서만 살다보니 매일 입에서 빨리빨리 달고 산다. 마음이 조급해 아이들을 재촉하게 되고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다고 입에 달고 살았던 나에게 이 책은 시원하게 목구녕으로 물로 촉촉히 적셔주었다.

느긋하게 걸을 때 마음 편한 경우가 더 훨씬 많은데...우리는 이 좋은 걸 잊고 산다. 마음이 편해야 살맛이 나듯이 몸만 편하고 마음이 불편하면 무슨 살맛이 날까? 어짜피 삶은 똑 같이 돌고돌는 세상이 아니든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 이 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딜있으려만...요즘 아이들은 뛰어놀 공간도 없고, 친구도 학원에 가야 놀 수 있다니...그래서, 늘 아이들이 심심하다는 소리을 자주 듣게 된다. 스스로 일거리나 놀거리을 찾아하는 우리와 달리 내 아이들은 그렇지가 못 된다.

 

이렇게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야하는 미래의 꿈나무들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코로 냄새조차 맡을 환경이 없다는 것이 안스럽기까지 느껴진다.

 

혀로 맛보고 살갗으로 느끼면서 자라야 하는 도시풍경과 사뭇 다르다. 이렇게 메마르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한다면 이 아이들이 창의력이니 상상력이니

표현할 수 있을지...물론, 간접적으로 책과 접하면 될 수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배우는 힘은 누가 빼앗아 가지 못한다.

 

이 책을 보고 있노라니 꼭 원시시대인 과거로 온 기분이 들었다.

 

 

s*********6 2009.09.0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