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75%
  • 리뷰 총점8 25%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평화에 대해서 알기
"평화에 대해서 알기" 내용보기
과제를 위해 읽은 책이다. 그러나 동기는 수동적이 었지만 책을 읽고 얻은것이 많았다. 나 혹은 가족의 일이 아니고서는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쟁에 대해 돌아보게한다. 이라크 전쟁이 있기는 했지만 종교전쟁의 극치를 알수 있다. 그로 인한 무고한 죽음... 왜그리 미련하게 종교와 인종, 역사에 매달리냐고 말하고 싶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아니기에 '왜'라는 말을
"평화에 대해서 알기" 내용보기
과제를 위해 읽은 책이다. 그러나 동기는 수동적이 었지만 책을 읽고 얻은것이 많았다. 나 혹은 가족의 일이 아니고서는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쟁에 대해 돌아보게한다. 이라크 전쟁이 있기는 했지만 종교전쟁의 극치를 알수 있다. 그로 인한 무고한 죽음... 왜그리 미련하게 종교와 인종, 역사에 매달리냐고 말하고 싶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아니기에 '왜'라는 말을 선듯할 수 없게 한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와 정치적인 인물과 사건들을 기자들의 눈으로 쓴 책이다. 전체적으로 전문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재미있게 읽어 볼만한 책이다.
j****2 2003.10.2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보라, 증오의 땅을...
"보라, 증오의 땅을..." 내용보기
꽤나 어린 아이들도 자살폭탄 테러에 가담한다. 그들의 마음 속엔 우리로선 이해하기 힘든 자부심이 그득하다. 팔레스타인에선 연일 죽음의 기운이 감돈다. 누구의 잘못일까? 그 곳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깃든 폭력성의 원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불과 반 세기 전에 전쟁을 경험한 우리지만, 마치 그들과는 전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양 우리는 행동한다. ‘이슬람은 폭력적이다’라는 막연
"보라, 증오의 땅을..." 내용보기

꽤나 어린 아이들도 자살폭탄 테러에 가담한다. 그들의 마음 속엔 우리로선 이해하기 힘든 자부심이 그득하다. 팔레스타인에선 연일 죽음의 기운이 감돈다. 누구의 잘못일까? 그 곳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깃든 폭력성의 원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불과 반 세기 전에 전쟁을 경험한 우리지만, 마치 그들과는 전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양 우리는 행동한다. ‘이슬람은 폭력적이다’라는 막연한 우리의 생각이 누군가를 아프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예루살렘은 독특한 도시이다. 하나의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종교, 다른 민족이 기도를 한다. 어느 쪽의 신앙이 더 깊은지 내기를 한다면 아마 우열을 가리기 힘들 그들의 신앙은 알고 보면 참으로 유사한 구석이 많다. 아브라함의 둘째 아들 이삭을 정통으로 여기는 유대인들과 첫째 아들 이스마엘 계열이 옳다 말하는 무슬림들. 이 작은(?) 차이가 처음부터 비극을 빚어냈던 것은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양측 사람들은 비교적 평화를 유지하며 살았다고 했다. 심지어 십자군 침입자들에 대항할 때는 한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단다.

그랬던 그들이 무장을 하고 서로를 해하기 시작했다. 영미 제국주의의 힘을 등에 엎고 수세기 혹은 그 이상 그 땅에 살아온 이들을 배척하기 시작한 강성 시오니스트들이 있었다. 지난 세기의 끔찍한 역사라 할 수 있는 홀로코스트는 그들의 무장을 정당화하는 도구마냥 활용되기도 하였다. 여기에 맞서 순수한 이슬람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대두되었다. 언제나 극과 극의 충돌은 위험한 법이다. 두 세력의 오랜 대치만큼이나 이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전쟁의 순간에는 진실을 담고자 하는 용기 있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한 사람의 시선에는 어느 정도의 주관성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우리가 서구적 시선에 익숙한 나머지 이슬람 세력을 과격 폭도 마냥 해석할 때가 많은 것도 객관성이 부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이 없다면 어느 곳에서 어떠한 일이 행해지고 있는지조차도 알기 힘들 것이다. 로이터 통신에 몸담고 있는 사진작가와 기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무장한 군인들을 향해 돌맹이를 던지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죽은 형을 보내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소년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마음껏 뛰어 노는 모습이련만, 팔레스타인에는 아이를 아이답게 만드는 공간이 존재치 않는다. 장난감 공을 가슴에 품은 아이를 바라보는 이스라엘 군인의 시선은 따스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분명 총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 한 두 명 정도 죽이는 것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피 묻은 계단에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은 채 앉아 있는 아이는 과연 이 땅의 폭력을 이해할 수 있을까, 눈 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죽어나가는 것을 본 이스라엘 아이의 마음 속 증오는 과연 누가 보듬어줄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이 흐를 때마다 지도자는 바뀐다. 과거 살짝 화해 무드 형성에 기여했던 이츠하크 라빈과 야세르 아라파트는 고인이 된지 오래다. 팔레스타인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 역시 죽고 새로이 태어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변화함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을 가르는 증오심만은 그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양 민족이 품은 유구한 역사와 높은 수준의 문화 등도 한낱 폭력 앞에서는 쉬이 흩어지는 휴지조각과도 같단 생각을 하니 서글플 따름이다.

q*****2 2008.09.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평화를 향한 발걸음
"평화를 향한 발걸음" 내용보기
로이터 통신 기자들의 팔레스타인리포트. 풍부한 보도자신과 간결한 기사로 매력적인 책을 만들어낸 것 같다. 유대인이 이스라엘 건국하는 시점부터 사진과 기사는 시작하지만 이내 2002년도까지 단숨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의 역사를 훑어낸다. 정말 할말 많고, 설명해야 할 사항이 많은 내용이지만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을 잘 설명한 것은 기자들의 능력일까. 보
"평화를 향한 발걸음" 내용보기
로이터 통신 기자들의 팔레스타인리포트. 풍부한 보도자신과 간결한 기사로 매력적인 책을 만들어낸 것 같다. 유대인이 이스라엘 건국하는 시점부터 사진과 기사는 시작하지만 이내 2002년도까지 단숨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의 역사를 훑어낸다. 정말 할말 많고, 설명해야 할 사항이 많은 내용이지만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을 잘 설명한 것은 기자들의 능력일까. 보도 사진이 주였기 때문에 사진감상을 주목적으로 삼아도 될 책이지만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가, 팔레스타인의지도자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현재 갈등구조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노력했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 목표지점이 어딘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알고 있지만 그곳까지 가기 위한 첫 걸음을 아직도 못 나가고 있는 현 상황이 무척이나 아쉽다. 첫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를.
n****y 2003.06.0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내용보기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 너희가 바라는 건 뭔데? “그럼 얘들이 바라는 건 뭔데?” 라고 내가 읽고 있던 이 책을 본 한 지인이 물었다. 책을 3분의 2가량 읽었을 때여서 였을까, 난 그에게 그들이 바라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라고 말해 주었다.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을지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고. 그리고 내 답변에 이은, 반어법이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내용보기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 너희가 바라는 건 뭔데?

“그럼 얘들이 바라는 건 뭔데?”

라고 내가 읽고 있던 이 책을 본 한 지인이 물었다. 책을 3분의 2가량 읽었을 때여서 였을까, 난 그에게 그들이 바라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라고 말해 주었다. 보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을지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고. 그리고 내 답변에 이은, 반어법이니 역설법이니 하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 이 책을 주제로 한 마지막 언급이 되었다. 하지만 그 후, 계속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가 느낀 것은, 앞서 내가 말한 절반, 혹은 4분의 1의 진실과 함께, 그 배면에(혹은 전면에) 아주 무서운 다른 진실이 이 책의 제목처럼 굳세게 버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건 평화가 아니라, 상대방의 영원한 소멸이야. 그러면 평화는 덤으로 얻을 수 있지.”라고 말하는 듯 했다.

 실제로, 공존하는 평화를 추구했던 양 진영의 대표들(정확히는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그들의 바람과 매우 다르게 평화롭지 않게 암살당해야만 했다. 또한 매번 이-팔 양자간의 평화회담 한 발짝 앞에서 기다리는 듯 했던 평화는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져 버렸다. 이 책이 그리고 있는 2002년까지, 평화는 요원하다. 그리고 지금? 여전한 가운데,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보니 9월 16일자로 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 상당히 진전”이란 기사가 있긴 하다. 그런데 또 다시 검색해 보니, “올메르트 바통 받은 리브니 ‘이-팔 평화협정’ 험로 예고”란 제목으로 된 9월 23일자 기사도 있다. 평화는, 여전히 먼 나라의 일이다.

 

그런데 내가 바라는 건 뭘까?

 결국 이런 착잡한 현실을 접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은 내가/우리가 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가를 검토해 보는 것 정도다. 그리고 반성하는 것, 그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나는 이미 선을 그어두고 있다. (일단 이것부터 먼저 반성할 것.) 어쨌거나, ‘이-팔’을 생각할 때, 나는 공정한 시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추상적이고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이 공정한 시각을 손에 닿는 개념으로 설명하려면, 역시나 예화가 최고겠다.

첫 번째 예화, 6일 전쟁. 국민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은 이스라엘과 아랍진영간의 싸움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하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 양자간의 전력 차이는 압도적이었고, 누구도 이스라엘이 이기리라 생각지 못했지만, 그들이 이겼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아랍인들은 전쟁이 난다니까 도망가기 급급했는데, 이스라엘의 청년들은 오히려 전쟁의 그 장소로 목숨 걸고 모여들었지. 그래서 이겼고, 이스라엘은 그들의 나라를 쟁취해 냈단다. 애국심이 바로 그 열쇠였던 거지. … 이 예화는 국가에 대한 충성으로 나를 동원했고, 약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머리에 남아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그 6일 전쟁의 실체와 그 후폭풍들을. 그 역사적 맥락과 아랍 진영의 설욕을.

선생님의 예화는 학생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그와 동시에 학생들이 이스라엘인들을 똘똘이 애국자들로, 아랍인들을 찌질이 소인배들로 인식하게 했고, 내게 그 인상은 꽤나 오래 박혀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나는 기독교인. 어쩌면 많은 기독교인들은 심정적으로는 이스라엘인일지도 모른다. 성경속의 이스라엘과 지금의 국가 이스라엘을 동일시 하고. 몇몇 생각 없는 목사님들의 이스라엘 영토회복 정당화에 무의식적으로 감화되고. 뒤에도 언급할 미국의 친이스라엘 반아랍권 정책에 나도 모르게 동의하며. 결정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가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 비스무리한, 이 학습된 뿌리 깊은 편견. 이걸 버리지 않으면, 공정한 시각은 아주 멀리 있다.

 

두 번째 예화,

“1960년 구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시초프가 구두를 벗어 연단을 두드림으로써 회의 진행을 방해한 현장 역시 유엔총회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는 허리에 권총을 찬 채 연단에 올라 이스라엘의 종식을 요구한 곳도 총회 회의장이었다. 부하들이 대량학살을 일삼았던 우간다의 이디 아민 같은 독재자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식민주의의 병폐에 관해 강연하도록 환영한 곳도 총회장이다.”

 

워싱턴 타임즈의 올리버 노스라는 분께서 쓴 칼럼을 세계일보에서 번역해 실은 것의 한 부분이다. 방해자 흐루시초프, 권총을 찬 아라파트, 독재자 이디 아민.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한쪽이 완전히 삭제되어 있지 않은가? 아라파트만 해도 권총만을 차고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는 다른 한 손에 분명 올리브 잎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권총과 올리브 잎을 함께 두고 연설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그의 권총은 그의 올리브 잎(평화를 상징하는)과 함께 있을 때에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팔레스타인의 독립운동마저도 테러라는 기표 아래로 사라지게 만든다. 아랍은 그 놈이 다 그 놈인 양 취급되고 만다. 한국과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상당수가 미국편이거나ㅡ 전쟁은 반대하더라도 그보다 더한 혐오로 테러를 반대한다. 그렇게 팔레스타인의 매우 정당한(그 방법까지 모두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투쟁은 무시 당한다.

게다가 누가 지배하고, 누가 지배 당하는가?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인가? 누가 압제하고, 누가 테러하는가? 이제 이런 이분법을 좀 들이대 보니, 팔레스타인에게 심정적으로 동의되기 시작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일본제국주의 식민시대의 조선인들 같다. 이스라엘이 일본만큼 악한가 하는 것은 여기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제국주의와 이 영토분쟁이 그 본질은 분명 다를지라도, 책 속에서도 묘사되듯이, 분명 힘의 균형은 기울어 있다. 그것만으로 이제껏 이스라엘 쪽으로 기울어 있던 무게 중심을 팔레스타인 쪽으로 조금 더 기울여 평형을 맞출 수 있게 될 것 같다.

나는 그들의 테러를 긍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테러는 분명 이스라엘과 주고 받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테러를 한다면 이스라엘은 학살을 자행한다. 난민들을 레바논으로 추방한다. 이 테러는 다른 말로 하면 독립투쟁이다. 일제시대의 신채호가 벌였던, 폭탄을 써가며 일제에 반대한 폭력투쟁에도 충분히 테러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지 않은가?

그래, 이제는 테러라는 이름 속에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독립운동과, 그 외 미국의 적들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것. 내가/우리가 믿어오던 착한 편과 나쁜 편의 구분을 철회할 것. 거기서부터 들음이 시작되고 공정한 시각의 첫 단추가 꿰어진다. 여전히 평화는 요원하지만.

t*************n 2008.09.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