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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기독교인이라 이 책이 처음 이슈가 되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나는 별로 읽고싶지 않았다. 실은 읽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하지 않았던가..?! 이래서 2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생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프랑스나 런던은 한번도 간 적이 없지만 눈 앞에 루브르 박물관과 많은 교회들. 그리고 소피와 랭던이 지나간 모든 길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교회가 그렇게 반대하고 큰 이슈가 된 것인지 궁금했다. 어떤 내용이 교회와 기독교인. 성직자들을 화나게 했을까? 사건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시작되었다. 박물관 주변과 내부의 상세한 묘사에 혀를 내두르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랭던의 기호학 지식. 티빙의 성배에 대한 지식. 파슈 국장의 수사기법. 소피의 암호 해독 능력. 이 모든것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한 것이 있었다. 나 뿐 아니라 책 속의 인물들. 책 밖의 독자들도 모두 궁금해 하는 것. '소니에르가 말하려고 했던 소피 가족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스승이라는 사람. 그는 누구인가?' '성배...궁극적으로 찾으려고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 ...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소피의 가족이 살아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소피의 가족이 책에서 말하는 예수의 직계 후손이고 사고를 가장하여 숨어 지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브쥐 파슈 국장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방송매체, 인터폴(?) 등을 이용하여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다가 갑자기일을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했다. 아링가로사 주교와도 통화를 했다. 그래서 난 국장이 스승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스승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순간 난 '이런 걸 뒤통수 맞은 기분이라 하는구나'했다. 책 속에 성배에 대한 얘기가 계속해서 나오지만 결국 난 답을 찾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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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는 책 보다 영화로 먼저 접했던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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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The Da Vinci Code 댄 브라운 지음 문학수첩
다빈치 코드는 시온수도회와 오프스 데이(에스파냐인 신부 에스크리바가 1928년 창설한 가톨릭 종교단체)가 '성배'를 둘러싸오 벌어지는 싸움이라고나 할까? 여기 펼쳐지는 논쟁에 대해서는 그저 소설이라고 치부하고 싶다... 사실 예수가 결혼을 했던, 자녀가 있던, 나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세례까지 받은 교인일지라도^^ 다만, 책을 다 덮은 후에도 나는 결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고민 중이다... 도대체 뭐가 성배라는 건지? 랭던이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저, 다빈치 코드를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접근해 보자~ 2006년 론 하워드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를 참고로... 아직 보지는 못했으나, 등장인물을 살펴보면서, 그저 영상을 떠올려 볼까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댄 브라운(저자)을 떠올렸는데, 사진에서의 톰 행크스는 이마가 너무 넓다.... 샤프해 보이지도 않고... 연기력을 본다면, 잘 해냈겠지만...
자크 소니에르 역에는 장 피에르 마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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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라운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빈치 코드』제1권. 전 세계 5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소설은 64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145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번 한국어판은 기존의 번역 오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작의 참맛을 살린 새로운 번역으로 선보이는 완역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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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기독교인이라 이 책이 처음 이슈가 되고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나는 별로 읽고싶지 않았다. 실은 읽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하지 않았던가..?! 이래서 2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생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프랑스나 런던은 한번도 간 적이 없지만 눈 앞에 루브르 박물관과 많은 교회들. 그리고 소피와 랭던이 지나간 모든 길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교회가 그렇게 반대하고 큰 이슈가 된 것인지 궁금했다. 어떤 내용이 교회와 기독교인. 성직자들을 화나게 했을까? 사건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시작되었다. 박물관 주변과 내부의 상세한 묘사에 혀를 내두르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랭던의 기호학 지식. 티빙의 성배에 대한 지식. 파슈 국장의 수사기법. 소피의 암호 해독 능력. 이 모든것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한 것이 있었다. 나 뿐 아니라 책 속의 인물들. 책 밖의 독자들도 모두 궁금해 하는 것. '소니에르가 말하려고 했던 소피 가족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스승이라는 사람. 그는 누구인가?' '성배...궁극적으로 찾으려고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 ...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소피의 가족이 살아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소피의 가족이 책에서 말하는 예수의 직계 후손이고 사고를 가장하여 숨어 지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브쥐 파슈 국장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방송매체, 인터폴(?) 등을 이용하여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다가 갑자기일을 조용히 처리하고 싶어했다. 아링가로사 주교와도 통화를 했다. 그래서 난 국장이 스승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스승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순간 난 '이런 걸 뒤통수 맞은 기분이라 하는구나'했다. 책 속에 성배에 대한 얘기가 계속해서 나오지만 결국 난 답을 찾지 못했다. 결말에 속시원하게 밝혀질 것을 기대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책 후반부로 갈수록 교회에 대해. 교회에서 말하는 이야기에 대해 반기를 드는 이야기들이 속속 나오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허구이다. 이런 소설에까지 교회가 일일이 맞대응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비기독교인. 혹은 기독교인이라도 이 내용을 진짜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 성향에 따른 것이고 믿음이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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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하나에 국가 전체가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댄 브라운을 스타 작가 반열에 올린 『다빈치 코드』가 그 범인이다. 책이 출간된(그리고 구입한) 당시에는 책보다는 컴퓨터 게임에만 관심 있던 중학생이었던지라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바티칸 시국에서 크게 반발한걸로 보아 반종교적인 내용이라는건 확신할 수 있었다. 약 7년이 지난 지금, 책장 한구석에 박혀 있던 『다빈치 코드』를 드디어 집어들 마음이 생겼다.
처음 읽은 댄 브라운 소설은 『천사와 악마』였는데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이었지만 초·중반 전개가 지루해 전형적인 할리후드 스토리의 소설인데도 읽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전 세계가 댄 브라운을 주목하게 만든 소설답게 『다빈치 코드』는 『천사와 악마』와 차원이 달랐다. 한 장이 끝날 때마다 '이젠 그만 읽고 공부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도저히 읽는걸 그만둘 수 없었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단서가 끊임없이 나오면서 다음 장을 읽지 않고는 못 버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루브르 박물관 큐레이터인 자크 소니에르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죽기 전 소니에르가 남긴 'P.S.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라는 단서에 따라 로버트 랭던이 살인 용의자로 몰리게 되고 랭던이 무죄란걸 확신하는 소니에르의 손녀 소피는 랭던을 탈출시켜 함께 소니에르가 남긴 암호를 풀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랭던과 소피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다. 소니에르가 '시온 수도회'의 일원이며 그가 남긴 암호는 전설로만 알려진 '성배'의 숨겨진 장소로 안내하는 지도라는 것을.
△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전편과 마찬가지로 『다빈치 코드』 역시 시온 수도회라는 비밀 단체가 등장한다. 이들이 지키는 건 성배인데 여기에는 기독교의 근본을 통째로 뒤집을 정도의 강력한 비밀이 들어 있다. 이러한 비밀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들이다.
△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다빈치 코드』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시온 수도회의 그랜드 마스터(수장)이며 그의 그림들에는 성배를 나타내는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와 그 제자들의 마지막 식사를 그리고 있는데 예수 바로 왼쪽에 앉은 제자가 사실은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이름의 귀족 여자이며 예수의 아내라는 것이다. 마리아의 왼쪽에는 제 1대 교황인 베드로가 그녀가 마땅치 않은듯 위협적인 손짓을 하고 있다.
△ (좌) 암굴의 마돈나 / (우) 암굴의 성모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왼쪽부터 아기 예수, 마리아, 요한, 대천사 우리엘. 『암굴의 마돈나』에서는 신(神)인 예수가 인간인 요한한테 세례를 받고 있다. 다 빈치에게 그림을 의뢰한 성 프란체스코 교회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신성 모독이었고 결국 『암굴의 성모』와 같이 예수와 요한의 위치를 바꿔서야 교회는 그림을 받아들였다.
△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다 빈치가 자신의 가장 뛰어난 업적이라고 평한 『모나리자』. 여성의 아름다움을 가장 기품있게 표현한 그녀와 떨어져 있기 싫어 그는 가는 곳마다 모나리자 그림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Mona Lisa'라는 이름에서부터 그림 배경까지 이교도에 대한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 자화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가 다 빈치가 여장한 모습의 그림이라는 설도 있는데 다 빈치가 자신을 그린 『자화상』의 얼굴 비율이 『모나리자』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단서를 따라 느긋하게 보물만 찾아나서는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흥미로운 소재라도 진행이 느슨해져 생기는 지루함을 막지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빈치 코드』는 프랑스 수사 당국이 살인 용의자인 랭던을 끊임없이 쫓는 상황을 만듬으로써(프랑스에서 영국까지 따라올 정도로 끈질기다. 아니, 직업정신이 투철하다고 해야하나...) 한치의 느슨함도 없이 소설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거기다가 읽을수록 쏟아져 나오는 놀라운 비밀들에 어떻게 손에서 책을 놓겠는가.
소설을 다 읽고나니 교회가 열 받을만도 하다. 자신들의 신이 부정당했는데 열 안 받을 종교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도 『다빈치 코드』는 거북한 반종교적 소설보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내세운 전형적인 할리우드형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이거 참, 책장에 함께 꽂혀 있던 댄 브라운의 『로스트 심벌』도 읽고 싶어 지는데. 먼저 읽어야 할 책들이 책장 한 구석에 가득 쌓여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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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브라운의 소설을 좋아하기에 다빈치 코드는 처음 읽는 소설은 아니다. 그동안 두 번을 읽어봤고 이번이 세 번째이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작품이므로 줄거리를 간략하게 쓰자면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이 루브르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 자크 소니에르가 남긴 다잉 메시지를 자크의 손녀이자 기호학자인 소피 느뷔와 함께 해석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을 몇 차례 읽었던 이유는 소설이 이목을 끌만큼 재미있게 쓰여진 이유도 있었지만 성배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관점을 파괴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성배라 하면 우리는 으레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잔’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다빈치 코드에서는 기호학적으로 여성을 표현한 Y라는 기호에 주목한다. 즉, 성배는 잔이 아니라 성스러운 것을 담는 그릇. 예수의 아내와 그 후손을 뜻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기존에 사회가 가지고 있던 관점을 파괴한다는 측면에서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물론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예수의 인성론적 관점을 부각시킨다는 것은 신성 모독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가 이단에 처해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가지고 신성모독을 운운하는 것은 기독교의 관점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몫이고, 내게는 기존의 생각을 타파하는 것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경이로운 것인지 깨닫게 해준 소설이다. 다빈치 코드는 언제나 기존의 사물에 대해 당연시하며 받아들였던 생각들을 재고해 볼 수 있게 해주었으며,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담론이라는 것이 얼마나 크고 단단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라나면서 그 사회가 형성한 담론들을 자연스레,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가령 우리가 동성애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을 보자.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관점이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그래도 동성애자는 비정상적이고 혐오스러움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담론이다.(동성애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단지 “대다수의 사람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비정상일까?” 라는 생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동성애는 과거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도 플라톤과 동성애적 관계였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 사회에서 형성된 담론은 동성애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즉,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기존의 생각을 타파하는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내 자신이 경직된 사고가 아닌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것이고 다빈치 코드는 이러한 생각을 갖게 해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내게 이런 느낌을 준 또 다른 작품이 하나 있는데 그 작품이 바로 마르셀 뒤샹의 'R.mutt'이다. ‘샘’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작품인데 보이는 것은 그냥 변기다. 이 남성용 소변기를 뒤샹은 작품으로 제출했고 미술계에 큰 파란을 몰고 오는데 이 작품 또한 기존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내 생각에는 뒤샹의 작품은 다만 생김새가 변기와 같을 뿐 그것은 샘이다! 겉모습이 같다고 모든 것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그 용도가 다르고 생성의 목적이 다르다면 두 사물은 동질의 것이 아니라 서로 이질적인 것이다. 하나의 사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 때문에 뒤샹의 작품은 다만 하나의 변기로 평가절하 당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금 언급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기존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도 R.mutt도 내게 이러한 생각을 준 작품들이다. 글이란 것은 쓰는 필자도 중요하지만 그 글을 읽고 받아들이는 독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느낀 것을 내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옳다 그르다는 것을 판단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 생각을 표현한 것이고 내 생각에 공감해서 다빈치 코드를 읽고 내가 가진 생각에 대해서 한 번만 더 생각해 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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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나 카톨릭에 대해 접하기 이전에 무당이 굿 한 판 벌리고 "넋드린다"고 해서 감기 걸렸을 때 웅얼웅얼 주문 읊어주는 무당 앞에 있었던 나로서는, 어렸을 때는 크리스트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란 단군, 박혁거세, 부처, 인도의 여러 신 등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신들 중의 '하나'인줄 알았었다. 06.0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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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의 경우엔 워낙에 사회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품이 세상에 소개된지 몇 년이나 지난 이후에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조금 뻘쭘한 감도 없지 않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책을 읽는 사람치고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넘기는 것은 왠지 예의가 아니지 싶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는 바이다. 사실상 다빈치 코드야 워낙에 해설집 또한 많이 나와있을 정도로 복잡한 작품이고, 그것이 픽션에 기반한다는 것은 거의 스릴러틱한 느낌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의 진실성이나 현실성을 따지는 것이나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사실상 늦은 감이 없진 않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빈치 코드가 만들어낸 '흥행을 위한 흥행'과 '종교 논란'에 대한 것이다. 다빈치 코드가 만들어낸 것은 어떤 신드롬과 같을 정도이다. 사실상 다빈치 코드가 소개되었을 당시에는 그다지 큰 파장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빈치 코드를 읽은 이들에 의한 확산은 그야말로 '다빈치 코드 붐'이랄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했고, 그에 덩달아 언론 또한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 직후 다빈치 코드 마케팅은 그야말로 압도적일 정도의 분량으로 지면과 인터넷을 압도했고, 전혀 관심이 없던 이들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작품의 이미지를 확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는 사실상 '남들이 다 읽으니 나도 읽어야겠다'라는 대중성에 호소하는 것으로서, 정작 작품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작품성을 능가하는 마케팅의 대중성인데, 최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에 쏟아진 노통관련 책이라던가, 법정 스님 타계 이후 압도적인 판매량을 기록한 법정 스님의 작품들이 이를 보여주는데, 묻혀져 있던 작품의 진실성이 재발견된다는 것은 참 매력적이고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그것이 작품의 작품성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마케팅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것은 사회적 파장을 가져오는 것들(특히 자살을 포함한 죽음의 경우에 압도적인 파괴력을 가지고 일어나는 것이다)의 위에 마케팅이 이루어질 때 파괴력이 가장 강하다. '다빈치 코드'는 이런 마케팅의 힘과, 압도적인 상징(그것도 대놓고 보여주는)을 이용한 독자들의 '있어보이고자 하는 욕구'를 두 가지 모두 성공적으로 충족시킴으로서 흥행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런 다빈치 코드의 성공은 자연스럽게 종교적인 갈등을 만들어냈다. 실제로 카톨릭 측에서는 '다빈치 코드'를 읽지 말라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고(이것이 사실인지 루머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 위에서 종교적인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물론 이런 종교논란은 사실상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시적일 수 밖에 없고, 실제로 논란의 여지가 된 것 또한 순식간에 사그러들었다는 한계를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하나 만으로도 종교적인 논란(한국에서 종교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고,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논의가 단순히 네티즌이라는 휘발성 위에 쌓여진 것이 아니라 꽤나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 왔다는 점은 더더욱. 이렇게 작품 하나가 가질 수 있는 사회적 파급력은 적지 않다. 물론 이런 사회적 파급력을 가지기 위해선 그 만큼의 대중성과 마케팅의 존재가 합쳐져야 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이 '다빈치 코드'의 경우에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규모로 터졌다는 것이 특별한 것이랄까. 물론 해외에서도 다빈치 코드는 꽤나 영향력 있게 작용했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는 것은, 작품이 꽤나 매력적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다빈치 코드 붐'이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마케팅-대중성의 탈을 쓰고 작품성이 포장되는 현실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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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랭던이 나오는 시리즈 중 가장 많은 판매를 했다고 전해지는 '다빈치 코드', 그러나 '천사와 악마'부터 현재 '로스트 심벌'을 읽고 있는 내가 이 세 책들을 비교해 보자면 '다빈치 코드'가 가장 긴장감이 떨어지고 지루하다고 말하고 싶다. '성배를 찾아 떠나는 길'이라고 볼 수 있는 '다빈치 코드'는 '천사와 악마'처럼 반물질이 터져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지도 모르는 긴장감을 선사하지 않으며 바티칸을 구한 랭던이 영웅으로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천사와 악마'는 마지막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들에게 최고의 스릴과 재미를 안겨주는 반면 '다빈치 코드'는 '천사와 악마'처럼 한 명의 여자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은 같으나 옛 자료를 바탕으로 성배를 찾아 떠나는 길은 여기에 관한 지식이 없는 독자들로서는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아 책장을 넘기는 일이 심히 곤혹스럽다.
'천사와 악마'의 사건 1년 후를 다루고 있는 '다빈치 코드'는 소피의 할아버지 소니에르의 죽음으로 시작되는데, 시온 수도회가 지키는 머릿돌을 둘러싸고 사건이 벌어진다. 소니에르가 남겨놓은 글을 해독하며 결국 머릿돌이 들어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크립텍스를 찾게 되는 소피와 랭던은 성배에 관한 지식이 깊은 티빙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는 랭던이 없으면 사건 해결이 힘들어지므로 '다빈치 코드' 또한 랭던의 활약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티빙은, 독자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할 수 있는데 작가로서는 이를 반전의 한 부분으로 보았을 것이나 안타깝게도 그리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소피의 할아버지의 죽음, 티빙의 존재, 랭던의 활약까지 '다빈치 코드'는 독자들이 좋아할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으나 '천사와 악마'와 '로스트 심벌'처럼 그리 큰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책 속에 등장하는 베르네가 소니에르와 가까운 사이라고 하는데 크립텍스를 다시 가져오기 위해 취하는 그의 행동이 이해가지 않았다. 크립텍스에 대한 개인적인 욕심으로 보인다. 물론 크립텍스가 무엇인지 모르니 딱히 욕심때문이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어쨌든 이 머릿돌을 둘러싸고 여기에 깊이 개입하게 되는 아링가로사 또한 베르네처럼 이해가지 않는 인물 중 하나로 보이니 랭던과 소피, 티빙 외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머릿돌을 향한 목적의 동기가 부족해 보인다.
'성배'가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들은 이 사건의 결말이 무척 궁금할 것이다. 과연 나의 눈 앞에 이 성배의 진실이 드러날 것인지. 랭던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긴 하겠지만 그 또한 이 여정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성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까? 결말이 궁금하다면 끝까지 책장을 넘겨라. 그러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