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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맛이 뛰어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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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별점을 낮게 준 어떤 리뷰를 보고서였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낯선 우리말들이 잔뜩 나와 있어서 불편했다는, 그런 리뷰였는데, 거기에 예로 들어준 문장을 보며 나는 "오호~! 횡재라!!"를 외쳤다. 이 책, 꼭 만나봐야지! 하면서.   나는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헐겁게 매달린 눈밭의 엷은 막을 조심스레 헤쳤다. 그와 동시에 나의 시야는 믿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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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별점을 낮게 준 어떤 리뷰를 보고서였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낯선 우리말들이 잔뜩 나와 있어서 불편했다는, 그런 리뷰였는데, 거기에 예로 들어준 문장을 보며 나는 "오호~! 횡재라!!"를 외쳤다. 이 책, 꼭 만나봐야지! 하면서.

 

나는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헐겁게 매달린 눈밭의 엷은 막을 조심스레 헤쳤다. 그와 동시에 나의 시야는 믿을 수 없는 광경으로 뒤섞이고 얼크러졌다. 검실검실한 광경에 입이 딱 벌어졌다. 작은, 그러나 무수한 공룡들이 옹긋옹긋 모여앉아 눈을 뭉쳐 허겁지겁 입속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나는 얼먹은 표정으로 옴짝달싹 못한 채 하염없이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102~103쪽)

 

이 책에는 이런 문장들이 가득하다. 요즘 매일같이 사전을 들여다보며 예쁘고 독특한 부사어들에 관심이 많이 갔는데, 이 책에는 그런 부사어가 특히나 많이 쓰이고 있다. '검실검실(사람이나 물건, 빛 따위가 먼 곳에서 어렴풋이 자꾸 움직이는 모양)', '옹긋옹긋(키가 비슷한 사람이나 크기가 비슷한 사물들이 모여 솟아 있거나 볼가져 있는 모양)', '어빡자빡(여럿이 서로 고르지 아니하게 포개져 있거나 자빠져 있는 모양)', '생게망게(하는 행동이나 말이 갑작스럽고 터무니없는 모양)' 등과 같이 말이다. 사전을 통해서만 본 낱말들을 이 책에서 발견하거나, 낯설지만 재미있는 낱말들을 만났을 때의 행복감이 참 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옆에 준비해 둔 접착용 메모지에 부지런히 예쁜 우리말들을 옮겨 적느라 드바빴다. 그렇게 따로 적어 놓은 단어가 꽤 되어 신난다.

 

통통 튀어 다니는 것 같은 문장에 빠져서 아름다운 낱말들을 건져올리느라 이야기 자체에는 집중을 하지 못한 면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독특하고 흥미로워서 낱말 풍선에 매달려 날아가는 내 마음을 거머당겨주었다. 온 몸에 숫자를 가지고 태어난 '수의 세계'나, 갑자기 지도에서,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1-173번지 이야기 '지도에 없는'이나, '여봇씨요'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채플린으로 변하고마는 '채플린, 채플린', 우산을 들고 하늘로 날아가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피에로 행진곡' 등 젊은 감성이 돋보이는 이야기들이 달근달근하다.

 

이제 사전을 뒤적여 이 책 속에서 건져올린 단어들의 뜻을 찾아 본 뒤, 이 책을 되읽어 봐야겠다. 글맛이 두 배가 되지 않을까? 언젠가 모 작가가 '소설 읽으며 사전 뒤져야 하느냐!'는 항의를 많이 받아서 이제는 글 쓸 때, 우리말 사용을 자제하려 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염승숙 작가의 글에서는 앞으로도 예쁜 우리말 행진이 이엄이엄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만나게 될 그녀의 글들이 기대된다.

j******o 2009.04.1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당신의 이야기 세계로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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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구둣발에 채면 무엇이라도 답삭 집어던질 만큼 기분이 한껏 가라앉아 있던 중 흙탕물에 찌들어 뒹굴던 덩치 큰 인형이 마침 분풀이 대상으로 걸려들었던 것이고, 세상에 태어난 지 달포가 되어갈 무렵 온 몸에 오돌토돌하게 숫자가 튀어나온 아이가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쉰이라는 나이에 겸연쩍게도 사랑니가 돋아 치과에 갔더니 의사는 잇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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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구둣발에 채면 무엇이라도 답삭 집어던질 만큼 기분이 한껏 가라앉아 있던 중 흙탕물에 찌들어 뒹굴던 덩치 큰 인형이 마침 분풀이 대상으로 걸려들었던 것이고, 세상에 태어난 지 달포가 되어갈 무렵 온 몸에 오돌토돌하게 숫자가 튀어나온 아이가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쉰이라는 나이에 겸연쩍게도 사랑니가 돋아 치과에 갔더니 의사는 잇몸에 솟은 것은 사랑니가 아니라 1822년에 발견된 ‘이구아노돈의 이빨’과 동일하며 그것은 인류의 진화라는 웃지도 못할 말을 주워 삼키더니, 엄마는 허구한 날 달력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전국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여봇씨요 경계령이 모철수씨의 희생을 마지막으로 해제되기가 무섭게 29년 경력의 중개업자는 그 누구의 머릿속에도 없는 불광동 1-173번지의 기억을 찾아 헤매고, 사람들은 매일 매일 우산을 손에 들고 하늘로 올라간다. 

 그렇다. 이것은 환상이다. 분풀이 대상이었던 흙탕물에 찌든 인형이 뱀꼬리왕쥐의 세계로 나를 안내하는 것도, 세상에 태어나 0으로 존재했다던 사내도, 내 몸의 반쪽이 각각 다른 시계로 흘러가는 것도, 여봇씨요 하는 두드림에 고개를 돌리면 그대로 채플린이 되어 뻣뻣하게 굳은 채 죽고 마는 세상이 현실일 리가 없지 않은가. 나 밖에 모르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주소가 있을 리 없고, 우산을 쓰고 날아가던 사람이 스스로 몸에서 플래시를 터트린 것처럼 번쩍, 하고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는 것이 어찌 현실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제 갓 작가의 세계에 입문한 20대 중반의 재기발랄한 소설가는 과연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엇이며 그 의미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나 현실이 차라리 환상이기를 바란 적이 있다. 눈을 뜨면 내 주변을 둘러 싼 모든 것이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모두 사라져 버리기를. 환상이기를.    

 「나도, 고양이도, 우리의 일상도, 우리의 세계도, 모두 환상이 아닐까... …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오선지처럼 깨끗했던 나의 하루, 나의 일상은 점점 화려한 선율에 휩싸여 생생한 노랫말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늘 그것을 해석하지 못해 몸이 달았다. 일상은 고달팠고, 차츰 그런 나 자신에게 적응해나가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일은 더욱 고독했고,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납작 엎드린 채로 시곗바늘을 움직여왔다. …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내가 머무른다.」   p. 12-13 

 온통 환상의 세계를 부유하는 이야기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글몽글한 환상의 사이사이에 문득 피식하는 쓴 웃음을 내비치며 나 자신과 현실을 반추하게 되는 건 결국 환상이란 현실의 이면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리라, 그리하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애써 외면했을 뿐 결국 팍팍한 현실 한가운데 우리는 놓여있고, 한 덩이, 두 덩이의 짐이 내 어깨를 짓누른다. 때로 그 짐은 너무도 버거워서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감싸고 탄성을 내지르듯 읊조리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이 모든 게 환상이기를. 

 그래서 여봇씨요 바이러스의 마지막 희생자는 김○○, 이△△ 번듯한 이름이 아닌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한 애매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모철수씨였고, 사고로 죽은 누나 부부가 남긴 빚으로 인해 주민등록증을 말소하기에 이른 피에로에게 조사맨은 우산을 건네받을 것을 넌지시 제의한다. 쉰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솟아오른 사랑니를 빼려다 원치 않게 이구아노돈의 이빨이라는 진단을 받은 공무원은 욱신거리는 잇몸의 통증을 부여잡고 눈발이 휘몰아치되 적설량은 제로인 거리를 헤맨다. 마치 오발탄의 주인공처럼.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실상 주인공이 아니며, 인생의 변두리를 헤매는 그렇고 그런 변변찮은 인간군상일 뿐이다. 어딘가로 들어가고, 사라지고, 자식은커녕 자신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부모와 기댈 곳 없이 홀로 세상 이곳저곳을 떠도는 힘없는 이 시대의 마이너리티. 있어도 존재하지 않고, 어느 날 사라져도 누구 하나 슬퍼할 이 없는 사람들은 어느 날 삶의 무게를 홀연히 내던지고 정말로 우산을 손에 든 채 펑 하며 한줄기 빛처럼 사라질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모든 환상은 절망의 끝에서만 만들어지는 걸까? 의미 없는 일상 속에서 아무런 희망이 없는 순간에 다다라서야 마지막 보루처럼 환상에 빠져드는 것이냐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은 새파랗게 젊은 염세주의자의 그저 그런 서술형 인생사 푸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작가의 언어적 유희를 따져보지 않더라도, 글 전체에 흐르는 유쾌함과 맛깔스러움, 상식을 약간 비튼 상상력 사이사이를 파고들다 발견하게 되는 반짝하는 재치는 책을 다 읽고 나면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눈물을 눈 밑에 매단 피에로처럼 입가에는 미소를 눈가에는 눈물을 매달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환상이 아니라 하나의 농담이었을지도. 참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그런 농담. 

 「좋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되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니까요. 어떻습니까. 모철수씨의 말처럼 잊거나 잃어버린 세상 모든 것들은 달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여러분도, 이야기를 시작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p. 214

 그러니까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결국 이 모든 건 환상도, 농담도 아닌 여러분의 이야기이며 너의 이야기이니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인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 역시 존재하되 존재하는 않는 자이다. 허수이며, 여봇씨요 하는 두드림과 동시에 언젠가는 달에 갈 사람이다. 그러니 누구 손 들고 나올 사람 없어요? 아무도 없나요? 

 애니바리 엘스?

w******7 2009.09.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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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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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상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에 대해 현실의 도피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실의 고통이 극에 다랐을 때,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마술이나, 판타지에 환호한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옷장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리듯 염승숙는 꼬리뼈를 통해, 숫자를 통해, 달력을 통해서 환상으로 이끈다. 그 환상은 환영이 아니라, 그리움이고 추억이었다. 황정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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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상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에 대해 현실의 도피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실의 고통이 극에 다랐을 때,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마술이나, 판타지에 환호한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옷장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리듯 염승숙는 꼬리뼈를 통해, 숫자를 통해, 달력을 통해서 환상으로 이끈다. 그 환상은 환영이 아니라, 그리움이고 추억이었다. 황정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을 읽은 이라면 분명, 두 소설이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닮은 듯 달랐다.  황정은은 깊고 무거웠으며, 염승숙은 엉뚱하면서도 따뜻했다. 

 염승숙은 환상의 도착점을 달로 연결시켰다. 달은 죽음이기도 했고, 희망이기도 했다. 꼬리뼈 전문 물리치료사가 주인공인 <뱀꼬리왕쥐>에서 아버지는 사라졌고, <춤추는 핀업걸>에서는 자유 자재로 달력속을 드나드는 엄마가 있다.  표제작인 <채플린, 채플린>이나 , <채플린, 채플린 2>에서도 마찬가지로 채플린의 모습처럼 사람들이 멈춰버린다. 세상사가 지겹고 돈벌이가 힘들어서 그들은 사라진 걸까. 아니다, 이미 사라진 사실일진대, 잠시 숨어버렸다고 남아있는 자들은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상상이라는 허구의 공간에서 그들을 추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퇴화해버렸지만, 우리 몸의 일부였던 꼬리뼈를 기억하는 <뱀꼬리 왕쥐>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각자 하나씩 자신만의 달을 가지고 태어나. 그게 바로 꼬리뼈야. 천골에 이어지는, 여러 개의 미추가 결합된 뼈. 태생기에는 누구나 아홉 개의 미추로 이루어진 꼬리뼈를 가지고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성장하면서 소실되어버리지만 흔적기관으로 남아 있지. 난 그게 우리의 마음에 떠오르는 달이라고 생각해. 안타깝게도 우린 늘, 삶이 너무 고되고 팍팍하게 느껴질 때만 고개를 들어 하늘에 매달린 달을 바라보지.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자신만의 달이 떠오르고 있어. 우리는 스스로 그걸 깨달아야 해.”p 28

 정말 우리의 마음에 떠오른 달이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에 지쳐, 눈물이 날때, 달을 올려다보면 그곳에 돌아가신 엄마가 웃고 있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염승숙은 그런 확신을 주고 싶었나 보다. 사라졌다 다시 차오르는 달이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그것은 주민증록 말소를 해도 엄연하게 삶은 존재한다고 말하는 <피에로 행진곡>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소설도 있다. 태어날 때 온몸 구석구석 숫자를 가지고 태어나, 공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아이의 이야기인 <수의 세계>. 공영에게 세상은 수로 통하는 것, 신비하고 놀라운 수의 세계를 만나게 되는 기발한 소설. 

 <다만 내가 지금 이 순간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동안에 그 누구도 아프거나 괴롭거나 슬프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 당신에게 건네는 나의 조금만 농담이, 작게나마 따뜻한 위로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이 다정하게 들린다. 독자가 기꺼이 염승숙과 함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즐겁게 넘나드는 것은 앞으로 다양한 현실과 부딪쳐 많은 것을 겪게 되면서 선보일 소설에 대한 앞선 기대를 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r*********s 2009.07.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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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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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소설이다. 여덟 편의 단편들이 낯설다. 기존 작가들이 보여준 환상이 이 소설에선 다른 모습을 띈다. 소설 속에 벌어지는 사건과 환상들에 대한 설명도 없고, 끝도 없다. 처음 그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그 환상의 세계는 모호해졌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환상들이 이 소설 속에선 힘을 잃는다. 물론 가끔은 옛 소설의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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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소설이다. 여덟 편의 단편들이 낯설다. 기존 작가들이 보여준 환상이 이 소설에선 다른 모습을 띈다. 소설 속에 벌어지는 사건과 환상들에 대한 설명도 없고, 끝도 없다. 처음 그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그 환상의 세계는 모호해졌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환상들이 이 소설 속에선 힘을 잃는다. 물론 가끔은 옛 소설의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느낌도 읽는 순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읽고 난 후 한참 후에 깨닫게 된다.


그녀의 처녀작이자 첫 작품인 <뱀꼬리왕쥐>부터 난해하다. 꼬리뼈를 둘러싼 대화와 현실과 환상의 교차는 모호함을 더 강하게 만든다.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상의 변화는 현실의 경계를 너무 쉽게 무너트린다. 그 변화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처럼 다가온다. 꼬리뼈를 내어준 사람들의 부재가 그를 공포에 물들게 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도전인지도 모르겠다.


<수의 세계>는 숫자를 몸에 지닌 한 사람의 일대기다. 이름은 공영, 몸의 각 부위에 1부터 9까지 숫자가 새겨져있다. 아버지는 수학교사다. 영(零)이란 이름을 지은 것은 그 숫자가 몸에 없기 때문이다. 이 아이의 성장기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작가는 이 아이의 성장기와 모험기를 녹여내면서 환상의 세계를 수의 세계로 변환시킨다. 앞의 소설 때문인지 조금 더 쉽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의 모험은 재미있다.


<거인이 온다>도 비현실적인 설정이다. 사랑니가 아파 치과에 갔는데 괴상한 공룡의 이빨이라면서 학계에 보고 할 생각만 한다. 공무원인 주인공은 민원 때문에 고생이 많다. 그런 중에 그의 아내는 거인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 눈이 오지만 눈은 쌓이지는 않는 이변이 발생한다. 이런 일련의 괴변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비일상적인 환상이 현실에 자리잡아간다.


<춤추는 핀업걸>은 읽을 당시는 떠올리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외수의 소설이나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가끔 본 설정이다. 물론 그들의 작품에선 한 번 들어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이 소설에서 들락거린다. 그리고 주인공의 몸 상태도 이상하다. 반쪽은 조로증으로 30년이나 먼저 늙고 있다. 이런 비대칭은 포스트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한 몸에 구현한 것이다.


<채플린, 채플린> 연작 두 편은 여봇씨요 사나이를 둘러싼 해프닝과 사건을 다룬다. 첫 편이 모철수란 하객 아르바이트를 통해 현실에서 발생한 채플린 증후군을 설명한다. 여봇씨요 사나이의 이 말에 반응하여 돌아보면 채플린 같은 자세를 하고 동작이 멈춘다. 이 증후군을 나열하면서 작가는 유머스러운 문장과 진행으로 재미를 만들어낸다. 두 번째 이야기에선 전편에서 모철수 사건 이후 사라진 채플린 증후군을 다룬다. 왜? 라는 의문과 그는 누군가? 하는 의문이 대두되고, 그의 정체를 밝힌다. 하지만 그것을 믿고 안 믿고는 개인의 문제다. 이번 소설에선 언어유희가 극에 달하고, 재미난 상황을 연출하면서 농담을 멋지게 만들어낸다.


<지도에 없는>은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지번인 1-173번지에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이야기다. 중개경력 29년의 베테랑인 자신이 기억하고, 기록한 지번이지만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실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여행은 오디세이의 방랑과도 같다. 결국 집으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다. 오년 동안 살았던 다섯 남자의 일상은 현대인의 삶을 희극적으로 풀어내었고, 웃음을 자아낸다.


<피에로 행진곡>에서 비일상적인 사건은 우산을 들고 하늘로 사라진 사람들이다. 이 괴상한 사건이 공포를 자아내기보다 사람들은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채플린, 채플린>에서 채플린 증후군을 두려워하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특이한 반응이다. 공무원 조사맨은 주민등록말소 신청자를 조사한다. 하늘로 우산을 들고 사라진 사람들과 주민등록말소를 신청한 화자에 조사맨의 조화는 그 설정 자체가 현실의 경계를 넘었다. 조사맨이 반복해서 말하는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는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기 위한 바람과 읽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말인지도 모르겠다.

f***2 2009.05.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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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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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 채플린.표지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풍선을 한 손으로 붙잡고 날아가는 채플린의 뒷모습. 채플린. 나는 사실 채플린을 잘 모른다. 채플린은 채플린일 뿐이다. 명사. 단어. 그 이상은 아니었다. 박제된 이미지가 박혀있는 명사. 그게 전부였다. 내게는 몇 천년 전의 공룡과도 같은 존재감-와우, 이런 게 진짜 지구상에 살았단 말이야?-일 뿐인 이 단어를 생기발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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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 채플린.

표지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풍선을 한 손으로 붙잡고 날아가는 채플린의 뒷모습.

 채플린. 나는 사실 채플린을 잘 모른다. 채플린은 채플린일 뿐이다. 명사. 단어. 그 이상은 아니었다. 박제된 이미지가 박혀있는 명사. 그게 전부였다. 내게는 몇 천년 전의 공룡과도 같은 존재감-와우, 이런 게 진짜 지구상에 살았단 말이야?-일 뿐인 이 단어를 생기발랄한 20대의 이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할 지 궁금했다.

 채플린에서 <영화배우 채플린>을 연상했다면. 아, 당신은 이미 그 순간부터 이 작가의 손에 이끌려 <이상한 나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전혀 다른 채플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니까. 염승숙. 그녀가 창조한 이 세계에 존재하는 채플린은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는 인물이거나, 배가 불룩한, 검은 양복과 중절모 그리고 수염을 단 채로 남녀노소 상관없이 우수수 쓰러져 죽는, 정체불명의 병이기도 했다. <채플린>이라는 이 아성, 이 단어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를 이처럼 완벽하게, 멋지게 배신하다니! 정말 멋진 작가다.

 포스터에 들어가는 엄마. 아빠가 회식을 할 때 포스터에서 우리 엄마가 얇은 슬립같은 옷을 입고 앉아서 추파를 던진다면?
 아빠를 삼켜버린 뱀꼬리왕쥐와 함께 사는 아이
 온몸에 수가 있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이름은 공영인 인물
 자신이 만든 지도에는 분명히 있는 불광동의 한 번지를 애타게 찾지만, 그 번지에 살았던 이들은 전혀 기억 못하는 공간을 되찾으러 애쓰는 공인중개사.
 그리고 조사맨.

 염승숙이 만들어 내는 환상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해리포터처럼 갑자기 다른 곳으로 텔레포트해버리는 환상이 아니다. 문을 열면 괴물이 나온다거나 하는 환상이 아니다. 내가 있는 공간에서 이제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을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그런 환상이다. 그래서 더 환상적인 환상소설인 것이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환상 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다. 그게 환상이 아니고, 현실이라 굳게 믿으면서. 나도 또한 환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 간의 마찰이 생기는 이유가 내 안의 <이미지>와 불일치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예를 들어, 모범생 이미지인 비가 (나도 비의 팬이다. 이 사람이 예시로 적당할 거 같아서...확 깨거덩) 실은 완전 사기를 쳤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그 동안의 <모범생 이미지> 인 비를 보면서, 에이 설마. 라고 말할 것이다. (나부터도...아마 목에 핏대를 세우고 허위사실 유포한 범인 잡아야 한다고 하겠지) 헌데, 그게 진짜였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때부터 비한테 온갖 말들이 쏟아질 거다. 왜? <이미지>에 안 맞으니까...이건 그냥 내 생각이다.ㅎ

 소설집 마지막 장을 덮으면, 잘 만든. 한 편의 환상영화를 본 느낌이 들 것이다.^^ 염승숙. 그녀가 발권한(?) 환상세계로의 초대장. 채플린이 건네주는 그 표, 받고 싶지 않은가?
YES마니아 : 로얄 y*******a 2009.03.04.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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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 그리고 심오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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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인작가들의 단편집을 보면 꼭 읽어보고싶어진다. 기성작가들과는 다른 그 무언가를 기대해서 이겠지? 염승숙, 사실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채플린 채플린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말이 더 맞겠지? 찰리채플린, 산업화 속에서 쳇바퀴처럼 굴러가던 인간의 삶을 묘사했던 영화배우이자 코미디언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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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인작가들의 단편집을 보면 꼭 읽어보고싶어진다. 기성작가들과는 다른 그 무언가를 기대해서 이겠지? 염승숙, 사실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채플린 채플린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말이 더 맞겠지? 찰리채플린, 산업화 속에서 쳇바퀴처럼 굴러가던 인간의 삶을 묘사했던 영화배우이자 코미디언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커다란 톱니바뀌가 돌아가고 콧수염에 엉뚱하기 까지 했던 채플린의 영화가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책에 등장하는 채플린 역시, 찰리 채플린과 그닥 다를게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전혀 다른가? 이 둘의 차이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염승숙의 소설은 사실은 내게는 조금은 어려운책이었다. 뭐랄까 염승숙만의 책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나의 관심을 끌면서도, 그녀의 소설이 완전히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그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가장먼저 이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 속에 떠오른게 있다면, 황정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였다. 이 두 소설은 다르면서도 뭔가 비슷한 느낌이랄까?

 

요즘 이런 난해한 소설을 쓰는 것이 유행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고, 환상의 세계라는 것 자체가 내가 생각하는 환상의 세계와 작가가 나타내고자하는 그 환상의 세계의 괴리는 이루 말할수 없었다. 총 8편의 단편 소설중 염승숙 그녀가 이 글들을 쏟아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조사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라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텍스트를 읽고 그녀의 소설 자체를 평가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 뱀꼬리 왕쥐>에서 처음 주인공이 물리치료사인것을 파악하는 것도 어려웠고, 과연 뱀꼬리 왕쥐에게 꼬리뼈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이해하는것도 너무 어려웠다. <수의 세계>에 등장하는 0과 1의 이야기 역시, 수학에서 수업이 만나게되는 평범한 수가 하나의 의미를 갖추어 간다는 것 역시 새롭기는 했지만 뭐랄까 너무 딴나라 세상 이야기 같은 느낌?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저자의 생각이나, 0과 1에 여태까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평범한 의미가 아니라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는 알겠지만, 뭔가 아쉬움이 살짝 남는 소설이였다. 그뿐만아니라 <춤추는 핀업걸>의 경우도 그림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그림 속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의미는 뭘랄까 상당히 직설적이고 현실적인것같으면서도 현실 도피를 하는 듯한 느낌? 이 글을 적으면서도 내용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드는 글이다.

 

표제작 채플린, 채플린은 1,2 로 두편의 소설이 등장하는데; "여봇씨요"라는 그녀만의 독특한 방언이 눈에 띄는 글이었다. 어깨를 살짝 건들이고 "여봇씨요" 이 말을 듣게 되면 쓰러져 죽는 이상한 병이라는 설정자체가 낯설기도 했지만, 현대인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둘 병에 찌들어가고 있는 현 세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처음만난 염승숙, 그녀의 소설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참으로 독특한 소설이었고, 뒷부분 평론가의 해설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녀의 소설을 이해할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언제 진지하게 다시한번 읽어봐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어렵고, 상당히 독특한 글. 앞으로 염승숙의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d*****1 2009.04.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