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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별점을 낮게 준 어떤 리뷰를 보고서였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낯선 우리말들이 잔뜩 나와 있어서 불편했다는, 그런 리뷰였는데, 거기에 예로 들어준 문장을 보며 나는 "오호~! 횡재라!!"를 외쳤다. 이 책, 꼭 만나봐야지! 하면서.
나는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헐겁게 매달린 눈밭의 엷은 막을 조심스레 헤쳤다. 그와 동시에 나의 시야는 믿을 수 없는 광경으로 뒤섞이고 얼크러졌다. 검실검실한 광경에 입이 딱 벌어졌다. 작은, 그러나 무수한 공룡들이 옹긋옹긋 모여앉아 눈을 뭉쳐 허겁지겁 입속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나는 얼먹은 표정으로 옴짝달싹 못한 채 하염없이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102~103쪽)
이 책에는 이런 문장들이 가득하다. 요즘 매일같이 사전을 들여다보며 예쁘고 독특한 부사어들에 관심이 많이 갔는데, 이 책에는 그런 부사어가 특히나 많이 쓰이고 있다. '검실검실(사람이나 물건, 빛 따위가 먼 곳에서 어렴풋이 자꾸 움직이는 모양)', '옹긋옹긋(키가 비슷한 사람이나 크기가 비슷한 사물들이 모여 솟아 있거나 볼가져 있는 모양)', '어빡자빡(여럿이 서로 고르지 아니하게 포개져 있거나 자빠져 있는 모양)', '생게망게(하는 행동이나 말이 갑작스럽고 터무니없는 모양)' 등과 같이 말이다. 사전을 통해서만 본 낱말들을 이 책에서 발견하거나, 낯설지만 재미있는 낱말들을 만났을 때의 행복감이 참 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옆에 준비해 둔 접착용 메모지에 부지런히 예쁜 우리말들을 옮겨 적느라 드바빴다. 그렇게 따로 적어 놓은 단어가 꽤 되어 신난다.
통통 튀어 다니는 것 같은 문장에 빠져서 아름다운 낱말들을 건져올리느라 이야기 자체에는 집중을 하지 못한 면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독특하고 흥미로워서 낱말 풍선에 매달려 날아가는 내 마음을 거머당겨주었다. 온 몸에 숫자를 가지고 태어난 '수의 세계'나, 갑자기 지도에서,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1-173번지 이야기 '지도에 없는'이나, '여봇씨요'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채플린으로 변하고마는 '채플린, 채플린', 우산을 들고 하늘로 날아가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피에로 행진곡' 등 젊은 감성이 돋보이는 이야기들이 달근달근하다.
이제 사전을 뒤적여 이 책 속에서 건져올린 단어들의 뜻을 찾아 본 뒤, 이 책을 되읽어 봐야겠다. 글맛이 두 배가 되지 않을까? 언젠가 모 작가가 '소설 읽으며 사전 뒤져야 하느냐!'는 항의를 많이 받아서 이제는 글 쓸 때, 우리말 사용을 자제하려 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염승숙 작가의 글에서는 앞으로도 예쁜 우리말 행진이 이엄이엄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만나게 될 그녀의 글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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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구둣발에 채면 무엇이라도 답삭 집어던질 만큼 기분이 한껏 가라앉아 있던 중 흙탕물에 찌들어 뒹굴던 덩치 큰 인형이 마침 분풀이 대상으로 걸려들었던 것이고, 세상에 태어난 지 달포가 되어갈 무렵 온 몸에 오돌토돌하게 숫자가 튀어나온 아이가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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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상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에 대해 현실의 도피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실의 고통이 극에 다랐을 때,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마술이나, 판타지에 환호한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옷장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리듯 염승숙는 꼬리뼈를 통해, 숫자를 통해, 달력을 통해서 환상으로 이끈다. 그 환상은 환영이 아니라, 그리움이고 추억이었다. 황정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을 읽은 이라면 분명, 두 소설이 비슷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닮은 듯 달랐다. 황정은은 깊고 무거웠으며, 염승숙은 엉뚱하면서도 따뜻했다. 염승숙은 환상의 도착점을 달로 연결시켰다. 달은 죽음이기도 했고, 희망이기도 했다. 꼬리뼈 전문 물리치료사가 주인공인 <뱀꼬리왕쥐>에서 아버지는 사라졌고, <춤추는 핀업걸>에서는 자유 자재로 달력속을 드나드는 엄마가 있다. 표제작인 <채플린, 채플린>이나 , <채플린, 채플린 2>에서도 마찬가지로 채플린의 모습처럼 사람들이 멈춰버린다. 세상사가 지겹고 돈벌이가 힘들어서 그들은 사라진 걸까. 아니다, 이미 사라진 사실일진대, 잠시 숨어버렸다고 남아있는 자들은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상상이라는 허구의 공간에서 그들을 추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퇴화해버렸지만, 우리 몸의 일부였던 꼬리뼈를 기억하는 <뱀꼬리 왕쥐>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각자 하나씩 자신만의 달을 가지고 태어나. 그게 바로 꼬리뼈야. 천골에 이어지는, 여러 개의 미추가 결합된 뼈. 태생기에는 누구나 아홉 개의 미추로 이루어진 꼬리뼈를 가지고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성장하면서 소실되어버리지만 흔적기관으로 남아 있지. 난 그게 우리의 마음에 떠오르는 달이라고 생각해. 안타깝게도 우린 늘, 삶이 너무 고되고 팍팍하게 느껴질 때만 고개를 들어 하늘에 매달린 달을 바라보지.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자신만의 달이 떠오르고 있어. 우리는 스스로 그걸 깨달아야 해.”p 28 정말 우리의 마음에 떠오른 달이 있는지도 모른다. 일상에 지쳐, 눈물이 날때, 달을 올려다보면 그곳에 돌아가신 엄마가 웃고 있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염승숙은 그런 확신을 주고 싶었나 보다. 사라졌다 다시 차오르는 달이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있으니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그것은 주민증록 말소를 해도 엄연하게 삶은 존재한다고 말하는 <피에로 행진곡>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소설도 있다. 태어날 때 온몸 구석구석 숫자를 가지고 태어나, 공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아이의 이야기인 <수의 세계>. 공영에게 세상은 수로 통하는 것, 신비하고 놀라운 수의 세계를 만나게 되는 기발한 소설. <다만 내가 지금 이 순간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동안에 그 누구도 아프거나 괴롭거나 슬프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 당신에게 건네는 나의 조금만 농담이, 작게나마 따뜻한 위로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이 다정하게 들린다. 독자가 기꺼이 염승숙과 함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즐겁게 넘나드는 것은 앞으로 다양한 현실과 부딪쳐 많은 것을 겪게 되면서 선보일 소설에 대한 앞선 기대를 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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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 채플린. 표지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풍선을 한 손으로 붙잡고 날아가는 채플린의 뒷모습. 채플린. 나는 사실 채플린을 잘 모른다. 채플린은 채플린일 뿐이다. 명사. 단어. 그 이상은 아니었다. 박제된 이미지가 박혀있는 명사. 그게 전부였다. 내게는 몇 천년 전의 공룡과도 같은 존재감-와우, 이런 게 진짜 지구상에 살았단 말이야?-일 뿐인 이 단어를 생기발랄한 20대의 이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할 지 궁금했다. 채플린에서 <영화배우 채플린>을 연상했다면. 아, 당신은 이미 그 순간부터 이 작가의 손에 이끌려 <이상한 나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전혀 다른 채플린들을 만나게 될 것이니까. 염승숙. 그녀가 창조한 이 세계에 존재하는 채플린은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는 인물이거나, 배가 불룩한, 검은 양복과 중절모 그리고 수염을 단 채로 남녀노소 상관없이 우수수 쓰러져 죽는, 정체불명의 병이기도 했다. <채플린>이라는 이 아성, 이 단어가 주는 강렬한 이미지를 이처럼 완벽하게, 멋지게 배신하다니! 정말 멋진 작가다. 포스터에 들어가는 엄마. 아빠가 회식을 할 때 포스터에서 우리 엄마가 얇은 슬립같은 옷을 입고 앉아서 추파를 던진다면? 아빠를 삼켜버린 뱀꼬리왕쥐와 함께 사는 아이 온몸에 수가 있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이름은 공영인 인물 자신이 만든 지도에는 분명히 있는 불광동의 한 번지를 애타게 찾지만, 그 번지에 살았던 이들은 전혀 기억 못하는 공간을 되찾으러 애쓰는 공인중개사. 그리고 조사맨. 염승숙이 만들어 내는 환상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해리포터처럼 갑자기 다른 곳으로 텔레포트해버리는 환상이 아니다. 문을 열면 괴물이 나온다거나 하는 환상이 아니다. 내가 있는 공간에서 이제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을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그런 환상이다. 그래서 더 환상적인 환상소설인 것이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환상 세계를 펼쳐보이고 있다. 그게 환상이 아니고, 현실이라 굳게 믿으면서. 나도 또한 환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 간의 마찰이 생기는 이유가 내 안의 <이미지>와 불일치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예를 들어, 모범생 이미지인 비가 (나도 비의 팬이다. 이 사람이 예시로 적당할 거 같아서...확 깨거덩) 실은 완전 사기를 쳤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그 동안의 <모범생 이미지> 인 비를 보면서, 에이 설마. 라고 말할 것이다. (나부터도...아마 목에 핏대를 세우고 허위사실 유포한 범인 잡아야 한다고 하겠지) 헌데, 그게 진짜였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 때부터 비한테 온갖 말들이 쏟아질 거다. 왜? <이미지>에 안 맞으니까...이건 그냥 내 생각이다.ㅎ 소설집 마지막 장을 덮으면, 잘 만든. 한 편의 환상영화를 본 느낌이 들 것이다.^^ 염승숙. 그녀가 발권한(?) 환상세계로의 초대장. 채플린이 건네주는 그 표, 받고 싶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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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인작가들의 단편집을 보면 꼭 읽어보고싶어진다. 기성작가들과는 다른 그 무언가를 기대해서 이겠지? 염승숙, 사실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채플린 채플린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말이 더 맞겠지? 찰리채플린, 산업화 속에서 쳇바퀴처럼 굴러가던 인간의 삶을 묘사했던 영화배우이자 코미디언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커다란 톱니바뀌가 돌아가고 콧수염에 엉뚱하기 까지 했던 채플린의 영화가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책에 등장하는 채플린 역시, 찰리 채플린과 그닥 다를게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전혀 다른가? 이 둘의 차이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염승숙의 소설은 사실은 내게는 조금은 어려운책이었다. 뭐랄까 염승숙만의 책에 등장하는 단어들이 나의 관심을 끌면서도, 그녀의 소설이 완전히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그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가장먼저 이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 속에 떠오른게 있다면, 황정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였다. 이 두 소설은 다르면서도 뭔가 비슷한 느낌이랄까?
요즘 이런 난해한 소설을 쓰는 것이 유행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고, 환상의 세계라는 것 자체가 내가 생각하는 환상의 세계와 작가가 나타내고자하는 그 환상의 세계의 괴리는 이루 말할수 없었다. 총 8편의 단편 소설중 염승숙 그녀가 이 글들을 쏟아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조사를 하고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라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텍스트를 읽고 그녀의 소설 자체를 평가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 뱀꼬리 왕쥐>에서 처음 주인공이 물리치료사인것을 파악하는 것도 어려웠고, 과연 뱀꼬리 왕쥐에게 꼬리뼈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이해하는것도 너무 어려웠다. <수의 세계>에 등장하는 0과 1의 이야기 역시, 수학에서 수업이 만나게되는 평범한 수가 하나의 의미를 갖추어 간다는 것 역시 새롭기는 했지만 뭐랄까 너무 딴나라 세상 이야기 같은 느낌?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저자의 생각이나, 0과 1에 여태까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평범한 의미가 아니라 색다른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는 알겠지만, 뭔가 아쉬움이 살짝 남는 소설이였다. 그뿐만아니라 <춤추는 핀업걸>의 경우도 그림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그림 속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의미는 뭘랄까 상당히 직설적이고 현실적인것같으면서도 현실 도피를 하는 듯한 느낌? 이 글을 적으면서도 내용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드는 글이다.
표제작 채플린, 채플린은 1,2 로 두편의 소설이 등장하는데; "여봇씨요"라는 그녀만의 독특한 방언이 눈에 띄는 글이었다. 어깨를 살짝 건들이고 "여봇씨요" 이 말을 듣게 되면 쓰러져 죽는 이상한 병이라는 설정자체가 낯설기도 했지만, 현대인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둘 병에 찌들어가고 있는 현 세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처음만난 염승숙, 그녀의 소설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참으로 독특한 소설이었고, 뒷부분 평론가의 해설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녀의 소설을 이해할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언제 진지하게 다시한번 읽어봐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다. 어렵고, 상당히 독특한 글. 앞으로 염승숙의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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