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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밤에 가장 잘 보이는 색이 보라색이라던가. 보랏빛 향기는 안나지만 보라색 표지 안의 사진 역시 시선을 끈다. 널부러진 마네킹이 색색의 옷을 입었다. 형상화된 모습에서 얼굴은 없다. 얼굴이려니 싶을뿐. 가식과 위선으로 둘러싸인 것들은 화려하다는 의미 같고, 내면이 저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워야한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
<이책은> 이메일로 신청한 서평단 당첨 도서.
<저자는>
<책읽은 소감> 윤기호 명상 에세이 단상, 혹은 연상 낯선 기억의 재구성을 만났다. 문사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40여 년간 현장에 있었던 그가 몇 년 간 길 위에서 메모한 것들이라고 한다. 총 195편이 들어있는데 짧은 단상은 단 한 줄에서 혹은 연상은 10여 페이지에 이른다. 번뜩이는 재치가 보일 때는 정철 저자인가 싶고, 때론 아재 개그네 싶기도 하다. 간결한 몇 줄 속에서도 삶의 여백이 보이고 단순한 이야기 나열 같은데도 뼈가 있다. 콕 짚어내는 그 뼈가 속시원하다.
아버님 은행 창구 여직원이 처음에는 '아버님'이라고 부르더니 아직도 일을 하는 사람임을 확인하는 순간, 슬그머니 '사장님'으로 호칭을 바꾼다. 그래서 이 땅의 아버지들이 별로 하는 일이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손님 응대시에 아버님, 어머님 이라는 호칭과 사장님, 사모님, 공공기관에서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어진다. 모두가 그렇다보니 그런가보네 라고 통과했는데 새삼 생각을 하게 된다.
배려 에스키모의 개들은 영하 50도의 혹한 속에서도 종일 지치지 않고 썰매를 끈다. 혹사 뒤의 보상은 약간의 고깃덩이와 교미뿐... . 생체가 극히 피로했을 때 섹스의 충동을 느끼는 것은 생명 보존을 위한 조물주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가정엔 6남매,7남매, 8남매가 흔했다.
그렇다고 한다. 극한 상황에서 남녀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섹스를 한후 죽음을 맞이한다고. 그건 종족을 번식 시키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인지도 모른다는 걸 여기서 또 깨닫는다. 1960년의 끝에 내가 태어났고 5남매의 맏이다. 먹고 사는게 가장 큰 문제였지만 질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던 때라 많이도 낳았다지 않나.
참외 냉장고 속에 참외가 다섯 개 들어 있다. 매일 한 개씩 먹다 보니 나흘 후에 한 개가 남았다. 그래서 다시 네 개의 싱싱한 참외를 사서 넣는다. 이때 오래된 참외는 조금 상태가 안 좋다. 다섯 개의 참외를 앞에 놓고, 어떤 것을 먹는 것이 좋을까 고민한다. 제1안: 더 늦기 전에 상하기 직전의 참외를 얼른 먹어치우고 다음날부터 새 참외를 먹는다. 제2안: 어차피 상하기 직전의 참외를 먹어 새 참외를 나중에 또 상하게 하느니, 새 참외부터 먹는다. 판단하기 힘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회복지 정책을 다루는 당국자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선택 앞에서 우리는 망설이기도 한다. 어떤 길을 선택해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후회는 있다. 하물며 맛난 참외를 먹는 일에서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한 가정을 이끌어감에도 난관에 봉착하는데 한 나라를 이끈다는 공직자들, 국회의원은 시름이 깊으려나.
여성차별 남녀평등을 실천하는 운동가들 중에는 가끔 부모의 성을 모두 따다가 자신의 성을 두 글자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 쪽이 섭섭지 않게 배려하는 것이다. 홍길동은 홍박길동이 되고, 임꺽정은 임서꺽정이 된다. 문제는 이들이 서로 결혼하는 경우인데, 홍박임서개똥이란 아이가 태어난다. 손자 대에 가서는 성만8개, 또 그 아랫대에서는 16개. 이래서는 견딜 수가 없다. 어머니 쪽이 다시 양보해 홍씨와 임씨로 복귀한다. 구조적이며 조직적인 여성차별이다.
아닌게 아니라 두글자 성을 딴 사람들을 보았다. 취지는 알겠으나 크게 공감되지는 않았다. 이런 혼란(?)까지는 생각못했다. 남이 생각해낸 것을 보며 맞어 하는 경우다. 공감하지 않을 이도 있겠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를 구성하고 나라 안에서 산다. 부모성을 똑같지 따라야하는게 평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렇게 해야지 싶다. 문제는 성만 같이 쓰고 부부가 여성차별을 한다면 성을 같이 쓴다는게 무슨 의미랴.
소변 화장실 다녀올 때마다 손 씻는 일은 필수다. 그러나 남자는 갈등이 심하다. 소변을 보기 전에 씻는 것이 옳은지, 소변을 보고 난 뒤에 씻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기 힘들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존경과 비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결론을 내 주겠노라. 실행은 각자 몫이다. 들은 얘기였는지, 읽은 기사였는지도 가물가물하다만, 소변 보기 전에 씻어야한다. 평생을 독신-가령 스님, 신부님-으로 살 요량이 아니라면 반드시 손을 먼저 씻어야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득시글대는 손으로 만지면서 볼 일을 본다면 그 세균이 거기에 다 묻는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그 세균을 다 전파시키지 않으려면 손을 샅샅이 잘 씻은후 용변을 봐야한다. 그래야 청결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그 습관이 내것화되어야한다. 그게 여자를 사랑하는 큰 배려다. 그게 싫으면 볼 일을 볼 때 절대 거시기를 만지지 말아야한다.
문화 프로레슬링이 스포츠인가 쇼인가 논쟁을 벌이는 것은 부질없다. 프로레슬링은 스포츠도 아니고 쇼도 아니다. 그런 형태로 자리 잡은 또 하나의 문화일 뿐이다. 촛불시위가 문화제인가 시위인가 논쟁을 벌이는 것도 부질없다. 그런 형태로 자리 잡은 또 하나의 굿판일 뿐이다. 의회제도가 민주주의인가 아닌가 논쟁을 벌이는 것은 더 부질없다. 그런 형태로 자리 잡은 또 하나의 스포츠일 뿐이다.
프로레슬링하면 김일, 역도산 선수가 떠오른다. 흑백 텔레비전 시절에 박치기 왕으로 온 국민의 화합을 시킨 선수. 일본과 대결만 하면 모두 광적인 애국자가 되던 시절. 스포츠는 국력인 시대가 되어가건만 문화로 치부하니 또 그런가보다 싶은 맘이다.
태권도 영국 의회에서 여당과 야당이 마주보고 앉는 거리는 대개 칼을 뻗어 닿지 않는 거리로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특하면 칼부림이 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사당에는 이런 비무장 안전지대가 설정되어 있지 않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대개 책상 위로 몸을 날려 '두발 장수 이단옆차기'가 들어가는 격투기격인 풍토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태권도가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토론은 말로 하는 것이다. 표현 능력이 적은 사람이 주먹이 먼저 나간다고 본다. 폭력으로 제압하려는 행동일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데 그만큼 지적 능력 혹은 말하는 기술이 적다는 반증이다. 좀더 비약하면 그 집안에서 부모가 그렇게 행동했을 수도 있다. 부모욕 먹이는 행동이다.
외근 전화할 때마다 '외근 중'인 친구가 있다. 그가 그 시간에 골프 연습장이나 사우나에 가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런 맥락이라면 퇴근은 재택근무, 술 먹는 것은 야간근무, 실직은 장기휴가가 된다. 긍정의 힘은 위대하다.
긍정의 힘이란 단어만 같지 속뜻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정작 그 단어가 가진 그 뜻에만 충실하기도 어려워진 세상이다.
좌우 갈등 왼손잡이 친구가 있다. 식당에서 그의 왼쪽에 앉으면 서로 괴롭다. 좌파와 우파의 충돌처럼 숟가락 든 손이 서로 부딪쳐 밥을 먹기 힘들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서로 자리를 바꿔 앉으면 된다.
자리를 바꿔 주면 여당과 야당 정국은 안정될까요. 김빠진 웃음이라도 미소지을 수 있음이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단상이 있어서에요.
뼈 선거에 패배할 때마다, 고위공직자 비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수뇌부는 '뼈를 깎는' 반성을 한다. 국민이 뼈를 깎아 달라고 한 적도 없고, 반성해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이들은 끝없이 뼈를 깎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잘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면 매우 강인한 신체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저 실소만 나옵니다 ㅋㅋ
선택 결혼식이 장례식과 다른 점은, 청첩장을 꼭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은 선택할 수 있지만 장례는 선택할 수 없다. 조상도 선택할 수 없다. 조국도 선택할 수 없다.
경사는 몰라도 애사는 가능한 참석하자 주의랍니다. 허나, 이름만 아는 친분도 거의없는 사람의 애사일 경우는 망설여집니다. 괴롭게 합니다. 알릴 때도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인인 언니가 남편 부고시에도 연락을 하지 않아 맘 상했는데, 달리 생각해보면 또 이해가 되기도 하더라는. 또 다른 지인도 얼마전 시모상을 치룬후 알게 되었는데 막상 닥치니 연락을 못하겠더라고...선택의 기로에 서면 괴롭지만 선택을 해얄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음을요.
간결명쾌한 단상들이자 내 맘에 들었던 것만 소개를 해봤다. 어찌보면 다분히 말장난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저런 경지는 하루이틀에 나올 수 없다. 핵심은 전달하되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는 한도내에서 펀치를 날리는 것. 그게 바로 고급 유머이자 재치라 본다. 개그맨치고 머리 나쁜 사람이 없다는 말. 순발력이나 임기응변이 좋은 쪽에서 빛을 발하는 사람. 대본을 보고서라면 대본 작가가 첫째는 빛날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의 분위기 메이커라는 사람들도 대단한 사람들인건 상황파악능력이 있다는 말이니 대단함이다. 사랑, 혹은 정치 등 한 분야에만 치중한 단상, 혹은 연상이 아닌 낯선 기억의 재구성이자 명상 에세이를 만난 시간은 의미가 깊었다.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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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혹은 연상 | 윤기호 | 나남 | 20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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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비가 찔끔 내리다 그친 늦은 오후, 내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마치 거리의 풍경을 제다 쓸어 담을 듯 걷고 또 걸었다. 복잡한 생각은 네모 반듯반듯하게 접어서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딱 오늘 하루만 그렇게 하기로 내 자신과 약속했다. 온전히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나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역 근처 4차선 도로를 붉게 물들인 자동차의 헤드라인 불빛에서,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버스 승강장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표정에서, 시장 입구 포장마차 안에 빽빽하게 둘러앉은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가을이 익고 있었다. 타인의 모습에서 낯선 그리움을 발견했을 때의 경이로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구월의 끝자락에서 <<단상, 혹은 연상>>(나남, 2016)이라는 명상에세이를 만난 건 행운이다. 이 책의 저자 윤기호, “그는 공보처의 KBS가 공사로 출범하던 1973년 공사 1기로 방송인의 길을 걷는다. 이미 대학생 때 <조선일보> 신춘문예의 등용문을 오른 문사(文士)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다. 그리고 그는 40여 년간 줄곧 다큐멘터리의 세계에 있었고, 특히 근래 16년은 항상 현장에서 용돈 수준의 제작비에도 굴하지 않고 독보적인 휴먼 다큐멘터리의 금자탑인 <인간극장>을 설계 · 디자인하고 연출 · 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다.”(5쪽)
책 속에 수록된 작품들은 글쓴이가 “4, 5년 동안 길 위에서 메모했던 명상”(6쪽)들을 정리해서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한 것이다.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어지간한 소설책보다 더 묵직하다. 무려 200편이 넘는 이야기가 실렸다. 한 편 한 편 감상하다보면 글쓴이가 걸어온 길이 눈앞에 펼쳐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도 그럴 것이 잘 다듬어진 문장은 해 뜰 무렵 호수 위로 쏟아진 햇살을 닮았고,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이야기는 오랜 세월 숙성 시킨 포도주같다. 맛은 깊고, 향은 짙으며, 색은 맑고 투명한 백포도주 말이다. 농익은 글쓴이의 작품들을 유영하듯 따라다니다가 문득 언어의 연금술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우리말과 글을 자유자재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떤 글을 만나도 탄탄하고 아름답다. 어떤 글을 읽어도 고개 끄덕끄덕하게 만든다. 밀물처럼 밀려든 독자들로부터 오래오래 사랑받기를 바라며 책장을 덮는다. 다음 작품을 감상해 보시라.
★ 고속도로는 주행선과 추월선으로 나뉘어 있다. 모두가 추월선으로 달리기 때문에, 이들을 추월하기 위해 얼른 주행선으로 들어선다. 가깝지만 상습 정체되는 출근길을 마다하고 멀지만 쌩쌩 달리는 우회도를 선호하는 이유는, 반대편 차선에 한없이 꼬리를 물고 있는 정체 차량을 보는 쾌감 때문이다. 차선을 바꾸려고 깜박이를 켜면, 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오던 뒤차가 전속력으로 질주해 온다. 끼어들기를 막으려는 것…. 지식의 유무, 재산의 다과, 평소 얌전하건 심술궂건 상관없이 거의 모든 운전자에게 공통된다. 어떻게 아느냐고? 본인도 그렇기 때문이다. ―「추월」 전문
★ 청문회에 나온 장관 후보자와 짜장면의 공통점은, 조리 과정에 대해 굳이 알려고 하지 말고 그저 눈 딱 감고 먹어야 한다는 것.
―「청문회」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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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혹은 연상" 인간극장이라고 하면 대부분에 성인들은 알것이다. 드라마보다는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일반 이웃들에 이야기가 가득한 그 프로그램이 그렇게 재미있을수가 없었다. 아침마다 그 시간이면 때로는 웃기도하고 때로는 울기도 하면서 즐겨보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이책에 저자는 40여년간 휴먼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을 총괄감독인 윤기호씨에 명상에세이집이다. 그가 하루하루의 일상에서 일상를 메모한 진짜..그리고 가짜에 대한 이야기.. 수많은 시간동안 그는 길위에서 메모하던 습관으로 보이는대로 때로는 느끼는대로 써내려갔다고 한다.
40여년간의 인간극장을 찍으면서 사람들의 리얼하고 순간의 감동을 놓치지 않기위해 지내온 시간들을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려간 그...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에게 그가 전하고 싶은 할아버지로서에 현대에 시간속에서 일어나는 세상이야기를 이 책속에 써내려갔다.
책속에는 저자에 글들만으로 구성되어져 있는것이 아니라 박서보 화가와 다른 화가들에 그림으로도 같이 어우러져 자칫 글만으로 지루할수 있는 부분들도 다른시각으로 글과 함께 어울러져 읽을수 있는 책이다.
책속에는 때로는 시가 되고 떄로는 짧은 글이 되어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흔하게 볼수도 아니면 작가에 시선으로 볼수있는 다양한 풍경들이 진짜인듯 가짜인듯 써내려갔다고 한다.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가득 담겨져 있는 책속에는 정말 다양한 소재로 꾸며져 있다. 로비 정의 돼지 실수 유서 착각 어감 가족 가짜.....등등 이모든글들은 작가가 직접 써내려간 글들에 다양한 주제들이다.
책속을 살짝 들여다보면 햇빛이란 제목에 글이다.
햇볕에 냄새는 황홀하다. 세탁기와 탈취제가 발명되기 훨씬 전,할머니와 엄마는 냇가에서 빨래한 이불과 옷가지를 햇볕에 널어 말리느라 온종일 분주했다... . . . . 분명이것은 단순한 소재에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애잔한 느낌을 주며 글을 이어나간다. 보통사람들의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인간극장을 만들며 그들에 삶을 들여다보고 한편에 드라마를 만들었듯이 그는 자신에 이야기를 느낀글들을 낯선 기억의 재구성이란 주제하에 참 많은것을 느끼게 해주는 글들과 애잔함.. 일상 생활이 주는 고마움을 글에 단순한듯 단순하지 않은 글로써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어느순간 익숙한 것들 속에서 문제없이 살던 어느날 모든것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익숙하게 살아온 시간들이 한순간 낯설게 느껴지고 도로도 낯설고 사람도 낯설고 tv속의 너스레들도 낯설게 느껴진순간.... 일상 생활속에서 자신이 늘 하던 모든것들이 낯설어진다... 낯선 느낌을 그는 이 책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리고 자신에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때론 재치있는 글로 때론 마음깊은곳 어딘가에 묻어두었던 이야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써 내려갔다고 한다.
책을 처음 봤을떄 저자가 하고자하는 모든것들이 책속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어 읽으면서도 때로는 애잔함이 때로는 웃긴 마음이 떄로는 세상사는 이야기들이 나를 웃겼다,울렸다,가우뚱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마음들이 가득찬 "단상,혹은 연상"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수많은 시간이 어우러져 소중한 추억을 우리에게 선물해 줄것이다. 그속으로 들어가 많은것을 얻어보자. 그것은 선물과 같은 마법과도 같은 판도라의 상자가 되어줄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