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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지지 않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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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지지 않는 나무 | 김만옥 | 나남 | 2016-09         빗소리 듣는다. 후둑, 후둑, 후두둑. 새벽 모퉁이가 흥건하게 젖는다. 짧고 날렵한 사색을 접고 부스스 일어나 주방으로 향한다. 전기포트에서 따끈하게 우려낸 생강차를 머그잔(盞) 가득 채운다. 향기가 진동한다. 밀폐된 마음의 창이 열린다. 스륵. 약간은 따분하고 건조한 입술을 달싹여 생강차 한 모금 길게 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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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지지 않는 나무 | 김만옥 | 나남 | 2016-09

 

 

 

 

빗소리 듣는다. 후둑, 후둑, 후두둑. 새벽 모퉁이가 흥건하게 젖는다. 짧고 날렵한 사색을 접고 부스스 일어나 주방으로 향한다. 전기포트에서 따끈하게 우려낸 생강차를 머그잔(盞) 가득 채운다. 향기가 진동한다. 밀폐된 마음의 창이 열린다. 스륵. 약간은 따분하고 건조한 입술을 달싹여 생강차 한 모금 길게 빨아들인다. 따습다. 톡 쏘는 듯 은밀한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이따금 유리창을 세차게 때리고 지나간 비바람처럼 촘촘하고 가지런한 치아 사이로 그 향이 유쾌하게 들어찬다.

 

김만옥 소설집 <<베어지지 않는 나무>>(나남, 2016)가 들려주는 깊은 울림이 여운으로 남는 순간이었다. “인간은 결국 나무와 다르다. 피가 돌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인식’을 한다. 이 인식이란 무엇인가. 작가 김만옥에게 이 인식은 다른 그 무엇보다 개인과 역사에 대한 인식이다. ‘개인 속의 역사’에 대한 인식 그리고 ‘역사 속의 개인’에 대한 인식. 그것은 도망치려야 도망칠 수 없는 없애려야 없앨 수도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결코 ‘베어지지 않는 나무’처럼.” (책 뒤표지 글 중에서) 이 책에는 글쓴이의 소신(所信)을 대변해 줄 작품 여덟 편이 수록되었다.

 

우리들이 흔히 접하는 문학작품은 글쓴이가 처한 환경이나 사회현상과 함께 시대상황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회칼>과 <한 그루 나무>(원제: 그 모퉁이의 한 그루 나무)는 1995년부터 10년 가까이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자격으로 조정신청서(이혼 소장)을 읽고 조정신청자들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소재를 얻은 작품들이다.”(7쪽) 주지하다시피 이 소설집에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일어난 에피소드, 누구라도 그 사건의 중심에 설 수 있을 법한, 조금은 생경하면서도 결코 낯설지 않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돌멩이 두 개>는 일제 때 남양군도로 징용 갔다가 유골 대신 돌멩이 두 개로 돌아온 막내숙부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었다고 글쓴이는 고백한다. 이는 자연히 그 가족들이 6·25전쟁을 겪어낸 이야기로 연결된다. 그것은 다시 <따뜻한 포옹>을 통해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가 처했던 한 시대의 아픔과 간과할 수 없는 슬픈 역사의 단면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집은 글쓴이가 살아온 긴 세월만큼이나 웅숭깊다. 여기에 함정이 숨어 있다. 즉 한 번 펼친 책장은 함부로 덮을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술술 읽힌다. 가독성이 참 좋다.

 

m****0 2016.10.03. 신고 공감 1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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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쓰는 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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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은 누군가에게 단단히 발목을 잡힌 게로구나, 생각할 때가 왕왕 있다. 말하자면 무척이나 심심한 조물주가 나도 까맣게 모르던 어떤 미래를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툭 하고 내던져 놓고는 깔깔거리며 좋아라 하는 듯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질 때면 나는 그만 망연한 생각에 넋을 놓게 된다. 그럴라치면 일의 앞뒤를 따져 볼 요량은커녕 자포자기의 심정이 먼저 들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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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은 누군가에게 단단히 발목을 잡힌 게로구나, 생각할 때가 왕왕 있다. 말하자면 무척이나 심심한 조물주가 나도 까맣게 모르던 어떤 미래를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툭 하고 내던져 놓고는 깔깔거리며 좋아라 하는 듯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질 때면 나는 그만 망연한 생각에 넋을 놓게 된다. 그럴라치면 일의 앞뒤를 따져 볼 요량은커녕 자포자기의 심정이 먼저 들고 마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나는 이른 나이에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친구의 소식을 전화로 전해듣고는 어찌나 정신이 없고 황망하던지 '어째서?' 하는 물음보다는 '그렇구나!'하면서 주저앉아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은 더욱 빈번하게 벌어지고 그때마다 내 운명이 누군가에게 단단히 발목 잡혔다는 생각은 더욱 굳어져만 간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 단편소설이 좋아졌다. 장편소설과 달리 단편소설의 짧은 이야기들 중에는 평범하지 않은, 발목이 잡힌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사건들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한때 재미있는 소설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들고 있고 싶어서 대하소설만 읽었던 적이 있었다. 장편소설이라고는 해도 단행본은 역시 막 재미있어지려는 찰나에 서둘러 끝이 나는 감이 없지 않아서 책을 덮고 나면 어찌나 아쉬움이 크던지 나는 처음부터 낱권이 아닌 여러 권으로 구성된 장편소설이나 대하소설만 골라 읽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무렵의 나에게 단편소설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서는 장편소설이 오히려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서 여러 권의 장편소설이나 대하소설에는 숫제 손이 가지 않는 것이다.

 

엊그제 읽었던 김만옥의 소설집 <베어지지 않는 나무> 역시 단편소설집이다. 김만옥이라는 작가를 진작 알고 읽어 왔더라면 지금쯤 조금 더 진중하고 알찬 리뷰를 쓸 수 있었겠지만 나는 사실 이 책을 통하여 김만옥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1977년 마흔의 나이에 늦깎이 등단을 한 것이나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것이나 한국전쟁과 4·19혁명을 원체험으로 간직하며 작품활동을 한 것 역시 고 박완서 작가와 겹치지만 그녀의 글은 자신의 체험에서 비롯된 날 선 문체로 인해 독자의 마음을 깊게 도려내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부모와 같이 살 때는 부모와의 충돌로 어느 정도 완화된 후에 내게 가해지던 폭력이 전혀 마모되지 않은 채 생으로 행사되었기 때문에 훨씬 그 강도가 높아졌고 빈도 또한 잦아졌다.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지옥 같은 공포로의 진입이 된 내막은 그랬다."    (p.25 '회칼' 중에서)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발표된 작품들을 모아 엮은 이 책에는 '회칼'을 비롯하여 '거적때기', '한 그루 나무', 이상한 작별과 해후', 따뜻한 포옹, '저 희미한 석양빛', '아버지의 작고 검은 손금고', '돌멩이 두 개' 등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그녀의 글에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묵인 속에서 일상인 양 빈번하던 가정 폭력의 실상이 낱낱이 그려지고 있다. 여자라는 이유로, 아내라는 이유로, 또는 딸이라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던 폭력의 그늘. 대학 1학년 때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해 여자의 몸으로 팬티 한 장만 입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야만 했던 아픈 기억과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그 기억을 먼 이국땅에서 우연히 떠올리게 된다는 줄거리의 '나무 한 그루'는 가부장적 권위를 등에 업고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던 가정 폭력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때 왜 끝까지 거절하지 않고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드렸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어요. 죽기 살기로 대항하면 어머니를 빼낼 수 없었겠어요? 발가벗는 것보다는 그쪽이 더 쉬웠을 텐데 말이에요."    (p.87 '한 그루 나무' 중에서)

 

작가의 기억은 때로 6.25 전쟁과 4·19 혁명에서 머물다가 일제시대의 아득한 기억 속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았을 그녀의 경험들이 시간의 체에 걸러지고 마침내 남았던 커다란 기억의 알갱이들이 이 책에 씌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머릿속에 남는 아픈 기억이 있게 마련이고 가슴으로만 썼던 혈서 한 장을 어느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일 때가 있을 테니까. 가슴에 품었던 그 혈서가 이 책을 읽는 누군가의 눈물 한 방울에 섞여 붉은 생명력으로 되살아나기를 작가는 간절한 마음으로 바랐을지도 모른다. 

s*****l 2016.10.04. 신고 공감 11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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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지지 않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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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물 위에 둥둥 떠서 살아가는 부초가 아닌,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나무들처럼 나도 그런 삶을 꿈꾸고 있다. 산에 오르다보면 수령을 알 수 없는 나무둥치 밑으로 굵게 뻗어내린 단단한 나무뿌리를 자주 만나게 된다. 뿌리가 굵어진 나무는 그 뿌리조차도 흙 밝으로 나와 있다. 반은 땅속에 파묻히고 반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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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 책이다. 물 위에 둥둥 떠서 살아가는 부초가 아닌,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나무들처럼 나도 그런 삶을 꿈꾸고 있다. 산에 오르다보면 수령을 알 수 없는 나무둥치 밑으로 굵게 뻗어내린 단단한 나무뿌리를 자주 만나게 된다. 뿌리가 굵어진 나무는 그 뿌리조차도 흙 밝으로 나와 있다. 반은 땅속에 파묻히고 반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나무 뿌리를 볼 때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 길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부리에 밟히고 차였을 텐데, 의연하기 그지없다. 그런 나무들이 뿜어올리는 깊은 생각처럼 마음의 양식이 되어준 "베어지지 않는 나무"라는 책을 읽었다. 김만옥 작가의 신간 소설이다.

 

처음 만난 작가이기에 책 날개에 소개된 작가의 이력을 옮겨본다. "김만옥: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마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순례기>가  당선되어(1977)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4.19혁명의 원체험을 안고 개인 속에 각인된 역사의 모순과 고통의 근원을 탐구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소설집 <<내 사촌 별정 우체국>>(1987), 장편소설<<계단과 날개>>(1988), <<결혼 실험실>>(1996), 에세이집<<내 생애 최고의 날들>>(2012)"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라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신춘문예에 당선이 된 이력까지 겸비한 작기이니까, 이 책의 재미를 짐작해볼 수 있다.

 

처음에는 장편소설집인 줄 알았다. 허나, 그건 아니다. 단편소설집이다. 1997년 <한국문학>에 발표해서 1997년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에 뽑힌 <회칼>이라는 작품을 비롯해서 <거적때기>, <한 그루 나무>, <이상한 작별과 해후>, <따듯한 포옹>, <저 희미한 석양빛>, <아버지의 작고 검은 손금고>, <돌멩이 두 개>등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진 소설집이다. 여기에 "자 아들이 본 소설가 어머니"는 발문과 "김만옥 작품 연보"까지 담아냈다. 우선 부수적인 것들을 읽어보고 나서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는다면 이해가 훨씬 빠르다.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아주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독서를 하게 될 것이다. 나처럼! 어가는 가을과 잘 어울리는 소설집이라 생각한다. 소설책 좋아하는 독자에서 소개하고 싶다.

g****0 2016.10.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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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의식 - 도피, 항변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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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골랐을까? 그의 대표작을 모은 것은 분명한데 그게 다는 아닌 듯하다. [내 사촌 별정 우체국장]이 보이지 않아서 일까? 뭔가 다른 선이 있지 싶었다. 몇 편을 읽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소수자로서의 여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는 것이 또렷이 읽혔다. 여덟 편의 짧은 얘기는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달리며 결코 궤도를 이탈하지 않았다. 살풋 걱정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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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골랐을까? 그의 대표작을 모은 것은 분명한데 그게 다는 아닌 듯하다. [내 사촌 별정 우체국장]이 보이지 않아서 일까? 뭔가 다른 선이 있지 싶었다. 몇 편을 읽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소수자로서의 여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는 것이 또렷이 읽혔다. 여덟 편의 짧은 얘기는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달리며 결코 궤도를 이탈하지 않았다. 살풋 걱정이 되기는 여성의 소수자 의식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부분적이고 혹 상궤에서 일탈한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소수자 의식에 대해 짧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선 작가의 글에는 오늘 여기, 아니 조금 더 이전 시대를 여성으로, 며느리로 살아온 자 특유의 현실 도피 욕구가 배어 있다. 그에게 문학은, 아니 구체적인 하나 하나의 작품은 질곡 같은 현실에서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는 자의 손에 간신히 잡힌 지푸라기 같다. 시어머니에게서, 고달픈 관계 속에서 초탈하여 자아를 오롯이 되찾는 방편으로 글을 쓴 것 같다는 혐의가 짙다. 100세를 넘겨 타개한 시어머니의 며느리로만 살아온 지옥 같은 날들을 깨알 같이 담아낸 자전적 작품 [저 희미한 석양빛]에는 헌신과 희생으로 점철된 생에 대한 회한이 걸러지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해자들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안락한 공간으로 순간이동하고픈 피해자 정서가 작품에 투영돼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시대에 대한 항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소수자의 울먹임을 토로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소수자의 목소리엔 한이 서려 있고 울음이 묻어 있게 마련이다. [한 그루 나무]의 말미에 나오는 여자의 하소연이다.

 

"수치심으로 인한 상처보다 해명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고통이 더 컸는지 몰라요. 그 욕구를 채우고 싶어서 어제부터 댁이 내게 물어 주기를 기다렸나 봐요. 그러고 보니 15년 만에 그 욕구를 채울 수 있게 된 셈인가요?"

"그랬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하지만 진실을 밝히고 싶은 욕구가 수치심보다 더 컸다고 말로는 그러지만 아마 그때 당장은 그렇지 않았을걸요." (88쪽)

 

세 가닥 인연의 겹이 중첩되며 옭죄는 쓰달픈 기억에 관한 [한 그루 나무]엔 늘 희생당하고 좌절하며 기다리기만 하는 여성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인연의 연쇄는 꼬일 대로 꼬이고 아픈 기억만 불러일으키는 요소이다. 카니발, 희생 제의의 제단에 올려진 제물이거나 비련의 주변인물로 소환된 이는 거의 여성이다. 그들의 울분을 작가는 라이브로 중계하고 있다.

 

소수자 의식의 한 특징으로 미묘하고 촘촘한 심리의 결을 들 수 있다. 발산적이고 누리는 삶이라면 성글게 대충 묘사해도 될텐데 소수자들에겐 맺히고 쌓인 게 많으니 그 더께를 하나씩 들어내다보면 자연스레다양한 갈레로 장황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층으로 꼬여 있어 섬세하게 나누면 여러 갈레의 결이 다르게 잡히게 마련이니. 김만옥의 작품엔 유독 여성, 소수자 특유의 예민한 심리를 그린 대목이 많다.

 

그녀가 말하는 내 히트라는 건 기실 노출증을 말하는 것이었다. 속으로는, 세 끼 밥은 밥대로 벌면서 곁들여 장학금을 딸 수 있는 성적에 연연하는 모범생이면서 말로만 데카당인 양하고, 말할 수 없이 보수적이면서 말로만 진보적인 양하고, 실지로는 순종적이고 양보적이면서 말로만 신랄하게 비판하고 위악적으로 나 자신의 속을 까뒤집어 보여 특출한 인물인 양 과장하는 걸 두고 한 말이었다. (100~101쪽)

 

양가적 심리를 하나 하나 눈으로 보는 듯 짚어내고 있다. 그 외에도 소외받고 학대당하는 여성들의 내밀한 의식을 꼼꼼하게 잡아낸 부분이 여럿 있다. 소수자의 내면에 이글거리는 정념을 포착해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회칼]과 [한 그루 나무]엔 이런 심리 묘사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김만옥 작가의 작품을 도피와 항변의 심리를 지닌 소수자 의식의 측면에서 읽어봤다. 다른 차원의 심장한 의미도 물론 깃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드러지게 손짓하는 이를 향해 다가갔더니 결국 아픈 여성, 소수자로서의 며느리와 약자로서의 여성의 얼굴이었다.

a*****7 2016.10.06.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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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도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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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쫓고 쫓김으 시작이 어땠는지 알 수 없었듯이 슬그머니 낫을 놓아 버리는 끝맺음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낫의 추격으로부터 놓여난 아들이극심한 공포 후에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고 부엌문 옆에 붙어 서있는 내게 와서, 이 병신하며 세차게 따귀를 때리는 이유는 이해할것 같았다.   상처 받은 자존심과 무너진 위신으로 인한 분노 같은 것이리라고.  "형들과 누나들은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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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쫓고 쫓김으 시작이 어땠는지 알 수 없었듯이 슬그머니 낫을 놓아 버

리는 끝맺음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낫의 추격으로부터 놓여난 아들이

극심한 공포 후에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고 부엌문 옆에 붙어 서

있는 내게 와서, 이 병신하며 세차게 따귀를 때리는 이유는 이해할

것 같았다.

 

  상처 받은 자존심과 무너진 위신으로 인한 분노 같은 것이리라고.

  "형들과 누나들은 결국 대학까지 졸업했는데, 나는 가업을 이을 자식

으로 지목해 놓고 시골 종합고등학교만 졸업시킨 거야. 나도 형들이나

누나들과 같은 길을 밟았으면 너 같은 바보와 결혼은 안 했겠지만."

 

  그의 어감에는 나와의 결혼을 후회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

려 나를 지칭한 바보란 단어에는 결속감과 내 순정성을 존중해 주는 동

지애도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과묵한 편인 그가 마음속 깊이 품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그 정도로라도 내게 털어놓은 것도 낮에 또 다른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던 날 밤이었다. -중략-

 

  우리의 결혼은 나의 환상과 그의 냉소주의의 눈먼 결합이었을까.

그의 형들과 누나들이 남겨 둔 헛간 옆방의 책 더미 속에서 한쪽은 환

상을 키우며, 또 다른 한쪽은 냉소의 구덩이를 파며 보낸 사춘기의 결

말이었다.

 

  그날 그 심한 구타에도 뱃속의 아기는 무사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아

기가 이 세상에 나와 말을 하고 생각한다는 표시가 보일 때까지 단 하루

도 불안에 떨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 핏덩어리으 어는 작은 부위라도 손상된 건 아닐까, 그런 충격 후

에도 모든 세포는 제자리로 돌아갔을까. 과연 자연의 이치는 그런 충격

을 이겨 내는 것일까 하고.

 

  그날 공포에 질려 울지도 않고 선 채 다리 사이로 오줌을 줄줄 흘리던

딸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회칼에 그어진 내 얼굴에서 흐르던 피, 우

연히 들렀다가 그 장면을 목격한 동생의 비명, 그녀의 신고를 받고 달

려온 경찰, 연행되어 가던 그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만 해도 시집식구들은 그런 자

식은 혼 좀 나봐야 한다면서 나를 동정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혼을 요구하고 위자료와 아이의 양육비와 재산 분할을 요구하자, 재

빨리 그의 명의로 된 땅을 친척에게 명의 이전해버리고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집을 내 집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분노는 힘의 원천이야. 네 소설 속에는 분누가 빠져 있었어. 발표될

때마다 거의 다 구해 읽엇는데. 네 소설 속에는 슬픔과 아름다움과 착

함과 부드러움만 있어. 그런 것들로 안개를 피워 독자를 마비시키는 거

야. 슬픈 사람, 아름답고 선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유령처럼 흐느적거

려. 그다지 슬퍼할 이유도 없는데 슬프다고 우기고, 아름다운 것 같지

않은데, 아름답다고 우기면 종내는 승복당하고 말게 되더군.

 

  이제 나 갈게. 저 칼들은 내게 주는 선물이야. 저 칼들을 보면서 분노

를 키우라고.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촉발될지 누가 알아. 칼날의 양면

성이란 게 있잖아. 스는 데 따라 흉기도 되고 이기도 될 수 있다는. 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흉기 개념을 빨리 지웠으면 좋겠어. 그럼 잘 있어.

단비는 이모 집에 갔겠지. 다비 만나러 또 올게.

 

  그가 나간 문을 보며 이제 이혼이 어려워지는 쪽은 그가 아니라 내쪽

이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한국문학> 1997년

  1997년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회칼-

 

<회칼>을 읽었습니다.

이외수 작가의 꿈꾸는 식물 만큼은 아니었어도 역시 충격이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필사한 부분 밖에는 아내를 숲에서 때리고 아들을 때려잡겠다고 낫을 들고 쫓아

다닌 아버지가 있고 숟가락에 찍혀 피가 나는 아들을 잘 맞았다고 하는 어머니가 있고

무식한 동생을 무시하는 형과 누나가 있었습니다. 아마 평범한 일가족 이야기일 수도 있

고 그런 일은 말고 다른 일이 있는 가족이 있을 거여서 ...... 일단 별로 마음에 드는 일화

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술술 읽을 수 있고 내용 전개에 막힘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읽으면서 읽어

가는데 거부감이 없었다는 것은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잘 쓴 글이라는 것이겠지요.

 

 

 

이 리뷰는 운좋게 서평단에 선정되어

증정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j 2016.10.01.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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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이야기가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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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모집에 응모하면서 처음으로 알게된 작가이다. 좀 부끄럽지만 소설을 읽으며 느낀낀 점은 ' 진작 이분의 소설을 읽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였다.처음에는 전집으로 알고 신청했으나 책을 자세히 8개의 단편이 모여 있는 모음집이었다. 회칼, 거적때기, 한 그루 나무, 이상한 작별과 해후, 따뜻한 포옹, 저 희미한 석양 빛, 아버지의 작고 검은 손금고, 돌멩이 두개로 이루어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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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모집에 응모하면서 처음으로 알게된 작가이다. 좀 부끄럽지만 소설을 읽으며 느낀낀 점은 ' 진작 이분의 소설을 읽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였다.

처음에는 전집으로 알고 신청했으나 책을 자세히 8개의 단편이 모여 있는 모음집이었다. 회칼, 거적때기, 한 그루 나무, 이상한 작별과 해후, 따뜻한 포옹, 저 희미한 석양 빛, 아버지의 작고 검은 손금고, 돌멩이 두개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서로 별개의 이야기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대변인이 되는 것처럼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어머니의 이야기까지..

 

특히, 이상한 작별과 해후에서는 미국으로 임니을 간 할머니(여자)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문희라는 친구의 꿈을꾸게 되고 문희와 함께 보내온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이야기, 저 희미한 석양 빛에서 다루는 며느리(여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모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다.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많고 많은 소설중에 여성을 주제로 하는 단편들만 엮어서 출판한 것은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

 여성으로서 겪는 인생살이에 대한 한풀이일까??.. 나의 생각으로는 그런 것 같다. 힘들게 살아온 날들과 여성으로 느끼는 인생사의 소소한 에피소드 등..

 

여성 작가로 박경리, 박완서, 공지영등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분들의 작품세계와 김만옥 작가의 차이점은 냉철하고 날카롭고 차가운 글 속에 담겨 있는 따뜻한 인간미가 아닐까 한다. 아버지의 작고 검은 손금고에서 다루는 가정폭력의 차가움과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 등..차가움 속에서 다루는 따뜻함..그것이 김만옥 작가가 갖는 특징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여성을 주요 소재로 다루며 여성이 느끼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재미 있는 소설이라 한 번 더 ㅇ릭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s******a 2016.10.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베어지지 않는 나무, 김만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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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9책을 펴들기 전에는 몰랐는데, 단편집이었다. 작가님의 90년대초~00년대초에 만들어진 단편들을 엮어서 하나의 책으로 낸 것이다.대략 10개 정도되는 단편 중에서 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상한 작별과 해후'.미국 뉴저지로 이민을 간 아마 한 할머니가 어느 날 암으로 죽은 친구 문희가 나오는 꿈을 꾸게 된다.그러면서 대학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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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9


책을 펴들기 전에는 몰랐는데, 단편집이었다. 작가님의 90년대초~00년대초에 만들어진 단편들을 엮어서 하나의 책으로 낸 것이다.

대략 10개 정도되는 단편 중에서 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상한 작별과 해후'.

미국 뉴저지로 이민을 간 아마 한 할머니가 어느 날 암으로 죽은 친구 문희가 나오는 꿈을 꾸게 된다.

그러면서 대학시절부터 이어온 문희와의 기억들을 회고하는데 20페이지도 안되는 엄청 짧은 단편인데 깊은 감성이 담겨 있고 많은 생각을 갖게 해준다.

반대되는 성격으로 서로 죽일 만큼 미워하며 투닥거린 적도 있지만 결국엔 서로 손주들이 생길때까지 연을 이어가고 그리워하게 되는 것들이 뭔가 찡한 기분이 든다.

사실 대학에 들어오고나서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나인데 나도 이렇게 어떤 친구와 오래가고 그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는 날이 오련지,

친구의 결혼식도 아직 상상도 안가는데 장례식에서 어떤 기분을 느낄지는 정말 가늠도 안가는데 이 단편을 읽으면서 간접경험해본 것 같다.

요즘 한국 소설들의 트렌드는 추상적이고 복잡하고 한 두 번 읽어서는 이해도 안갈정도로 난해한 그런 내용과 문체들이 유행하는 것 같다.

그런 류의 소설들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가끔은 직설적이고 너무 짜지도 밍밍하지도 않은 담백함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이 김만옥 작가님의 문체나 글 스타일이 그런 딱 좋은 담백함이었다. 처음봐도 금방 가까워지는 듯한 친근한 느낌.

처음에 표지 그림 작게만 보고 뭔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나무그림이더라, 강렬한 에너지가 가득 느껴지면서 정말 아무리 도끼로 찍어도 베이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이 책의 수록된 단편 중 하나인 ' 한 그루의 나무 '를 읽고 표지 다시 보니까 더 좋았다.

언젠가부터 고전명작들을 섭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잘 읽히지도 않는 고전들 억지로 손에 잡다가 책에 흥미를 점점 잃어버리고 있었다.

서투르고 복문이 가득한 번역투 읽다가 순수하게 한국어로 쓰인 글 읽으니 뭔가 피로함으로 뿌얘진 눈이 개안되는 기분...

김만옥 작가님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데 다른 책들 몇 권 더 찾아읽어보고 싶어졌다.

중간고사 끝나면... 찾아봐야겠다. 이제는 강박관념 없이 즐거운 독서생활을 영위하는 책들로 읽어야겠다.

 

d****o 2016.10.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