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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 특유한 감정을 만나는 때가 있다. 사쿠라기 시노의 『유리 갈대』에서 느낀 감정은 허무함이었다. 희망없이 살고 있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은 그런 주인공의 삶에서 나는 허무함을 보았다. 내일이 없는데 희망을 갖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미래를 꿈꾸지 않을 것이므로. 전작인 『호텔 로열』에서처럼 많은 사람들의 성을 위해 존재하는 곳. 호텔 로열을 경영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아내로 살아가는 한 젊은 여자의 허무함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엄마의 애인과 결혼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또한 결혼하기 전 다녔던 직장 상사와도 잠을 자는 사이다. 그 여자의 이름은 세쓰코. 그녀 엄마의 애인이며 세쓰코의 남편의 이름은 기이치로. 일본의 명절인 오봉에 한 여자가 분신 자살을 했다. 이야기는 과거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수많은 남자들이 드나들었던 집에서의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녀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당했을 때도 지켜보았던 엄마, 또는 돈을 세었던 엄마의 모습이 진짜였을까. 세쓰코가 엄마의 애인이었던 남자와 결혼한다고 했을때 흔쾌히 허락하는 장면에서는 진짜 엄마가 맞나 싶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녀 만의 삶을 살라는 남편의 청혼이 그녀에게는 새로운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단가 모임을 다녔다. 그녀 이름으로 된 단가집을 내는게 꿈이었다. 그녀가 쓴 단가집의 제목은 '유리 갈대'였다. '축축한 땅 위 도도하게 선 저 유리 갈대. 대롱 속에 바슬바슬 모래가 흘러가네'라는 한 수가 그것이었다. 이 글은 세쓰코 자신의 삶을 나타냈다. 바슬바슬 모래가 되어 유리 갈대속에 흐르는 모래알 같은 자신의 삶을. 단가 모임에서는 성애를 주제로 했다고 평했다. 단가 모임에서 만난 사노 미치코와 미치코의 딸 마유미가 소설에서 세쓰코에게 큰 역할을 하게 한다.
어느 누구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세쓰코는 우연히 자신에게 말을 거는 미치코와 그녀의 딸 마유미와 이야길 나누게 된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마유미의 손목에서 멍을 발견했다. 자신의 엄마처럼 미치코도 마유미에게 학대를 가하는가. 그렇지만 그건 마유미의 삶일 뿐. 그녀가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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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기이치로가 사고로 죽을 위기에 처해 병원 집중치료실에 입원해 있었다. 그 와중에 마유미가 온 몸에 멍 투성이로 세쓰코에게로 왔다. 남편 딸의 집에 마유미를 맡기고 보살피게 했다. 마유미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이해했던 세쓰코였기에 미치코는 마유미를 그녀에게 맡겼으리라. 그냥 그렇게 흘러갈 것 같은 소설은 마유미가 집으로 돌아간 후 미치코의 남편이 유괴 사건으로 신고하면서 전혀 새로운 양상을 띄게 된다. 허무함 가득한 다소 밋밋해보이는 소설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남편이 죽을 경우 그녀가 호텔을 계속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호텔 일을 도와주던 도시코가 맡아 하길 바랐다. 이때 도시코가 세쓰코에게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아직 젊고,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알아요. 그렇지만요, 홀가분해지는 건 무서운 거예요. 속박이 없는 생활의 무서움, 아세요? 의지할 데도 없고 구속하는 곳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내일이 필요 없어져요. (221페이지)
홀가분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어느 정도 구속은 활력소가 되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아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오늘이 힘들어도 우리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새로운 내일을 계획 했을까? 그녀가 버리고자 하는 것, 그래서 얻고자 하는 것. 진정한 홀가분함을 느꼈을 그녀의 표정이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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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이 있다. 한 번 읽게 되면 굉장히 재밌는 것은 아닌데 어쩐지 중도에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책이. 사쿠라기 시노의 '유리 갈대'가 그랬다. 왜일까? 끝까지 읽으면서도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뭔가 독특한 분위기 탓일까? 어쨌든 이 소설 상당히 음습하다. 세인의 상식 같은 것은 가볍게 뛰어 넘는다. 이제 갓 서른이 된 여성 세쓰코는 고다 기이치로라는 육십대 노인의 아내다. 머릿속으로 남편과 아내의 나이차를 계산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비교도 안될 만큼 더 놀라운 사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고다 기이치로는 원래 세쓰코 엄마의 애인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엄마의 정부로 있었던 남자의 아내가 된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그와 관계를 가졌다. 그렇다고 세쓰코가 남편에게만 충실한 여자도 아니다. 다른 남자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첫 직장이었던 회계 사무실의 운영자 사와키. 그녀는 자주 사와키에게 안긴다. 하지만 남편에게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문득 유하 감독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떠오른다. 세쓰코는 그 영화에서 엄정화가 분했던 캐릭터와 비슷하다. 그녀는 불륜의 상대인 감우성이 분한 남자가 이렇게 두 집 살림 하는 거 괜찮은 거야? 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아. 그냥 조금 더 바쁘게 산다는 느낌 뿐이야." 세쓰코도 마찬가지다. ![]() 어차피 남편과의 관계도 사랑이 아니라 돈을 매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남편 기이치로가 뭔저 권했다. 스물 셋의 세쓰코에게 평생 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살도록 해 줄테니 자신과 결혼하자고 했던 것이다. 그는 객실이 열 두 개인 모텔 '호텔 로열'의 사장이었다. 세쓰코는 결국 노인의 아내가 되었고 그 대가로 여유와 안정을 얻었다. 세쓰코에겐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가 있다. 바로 단가다. 그녀는 마을의 단가 짓는 모임에 다니고 있다. 남편의 종용에 자신이 지은 단가를 모은 책도 하나 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유리 갈대'다.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유리 갈대'란 제목을 가진 단가는 이러하다. 축축한 땅 위 도도하게 선 저 유리 갈대. 대롱 속에는 바슬바슬 모래가 흘러가네. (p. 44) 단가의 앞 부분은 그대로 소설의 비유 같다. 세쓰코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이야기의 세계란 정말로 축축한 땅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음습하게 축축하다. 일단 남편이 세쓰코가 사와키에게 안긴 날, 교통 사고를 당해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다. 내리막길 커브를 직진으로 달렸다고 한다. 세쓰코는 남편을 병문안 온 엄마를, 엄마가 운영하는 가게까지 데려다 주었다가 거기서 실은 남편이 여기서 엄마를 만나고 돌아가다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사실을 추궁하자, 엄마 리쓰코는 세쓰코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와 결혼한 뒤에도 우리 사이는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었어!' 그건 그렇고, 세쓰코는 남편이 사경을 헤매게 되자 남편이 죽기 전에 집을 나가버린 전처의 딸 고즈에와 만나게 해주려 한다. 사와키를 시켜 고즈에를 찾고 보니 고즈에는 생계가 궁지에 몰려 대마를 키우고 파는 일을 거들고 있다. 세쓰코는 고즈에에게 당장 그것을 그만두라고 하며 앞으로 생활비 일체는 자신이 담당하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아직 축축한 게 끝난 것은 아니다. 세쓰코의 단가 모임 중에 미츠코라는 여인이 있다. 그녀에겐 남편과 마유미라는 일곱 살의 딸이 있는데, 하루는 미츠코가 세쓰코에게 딸을 맡기고 사라져 버린다. 알고 보니 딸 마유미는 아빠 그러니까 미츠코의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미츠코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믿을 수 있는 세쓰코에게 맡긴 것이었다. 세쓰코는 마유미를 고즈에에게 돌보게 한다. 이런 상황이니 어찌 축축한 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세쓰코는 꿋꿋하게 버텨내려 한다. 해야 할 일은 하고 맡아야 할 책임은 도맡으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세계가 붕괴되지 않고 굴러가도록 만든다. 쓰러지지 않는 도도한 갈대처럼. 그래서 유리 갈대는 세쓰코 자신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녀를 흔들어대는 바람을 쉬이 그칠 줄 모른다. 더 기막힌 사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실은 남편이 6개월도 채 살지 못하는 시한부 생명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내리막길의 커브를 직진한 것도 자살하려 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드러난다. 붕괴는 이미 막을 수 없다. 마유미의 가족이 그랬듯, 벌써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버린 것이다. 이 소설이 세쓰코가 불에 타 죽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녀에게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그녀가 축축한 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인 것처럼. 애초부터 그녀의 삶은 그녀가 쓴 단가처럼 끝없는 유리관을 흐르는 모래 소리처럼 말라 비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이 그렇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그녀의 엄마 리쓰코에게 있었다. 엄마 리쓰코는 세쓰코에게 이런 삶을 내내 선사했던 것이다. "난 네 엄마가 될 수 없다고 처음부터 포기했어. 열다섯 살 나이에 엄마를 떠났기도 하고. 우리 엄마도 멀쩡한 엄마가 아니었거든. 시도 때도 없이 남자 출입이 끊이지 않았어. 동시에 양다리, 세다리 걸치고. 어쩌면 더 있었을지도 몰라. 술집을 하는 건지 매춘을 하는 건지. 내가 집에 들락거리는 남자들에게 당하는 걸 보고 못 본 척하는 것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돈까지 가로챘던 여자야. 딸을 쓰러뜨리는 남자 뒤에서 끝날 때까지 보고 있었어. 그래서 열다섯 살에 바로 집을 나와버렸어. 이런 내가 엄마인 척하면 너도 싫었을 거야."(p. 142 ~ 143) 이토록 커다란 과거의 상처를 지닌 자가 어떻게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그렇게 될 수 있으려면 딱 하나, 과거와의 진정한 결별 뿐이다. 정녕 과거를 딛고 전혀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소설의 처음이 그녀의 죽음인지도 모른다. 불새처럼 죽음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부활하는. 소설은 그런 순간을 준비한다. 이 소설엔 이상한 연대가 있다. 부모 세대로부터 갖은 상처를 받은 자들이 그 상처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연대가. 자신의 상처를 꾸미지 않고 진솔하게 드러내어 같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진정한 소통으로 만들어지는 연대가. 그것이 마유미를 떠 안은 고즈에의 집에서, 그리고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힐 수 없는 반전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유리 갈대'는 파격의 소설이다. 이런 내용의 소설에 흔히 나오는 용서라든가 화해 같은 건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대신 '유리 갈대'는 '썩은 것은 붕괴되어야 한다'고, '완전히 절멸시킨 뒤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소설엔 당신을 섬뜩하게 만드는 순간이 두 번 존재한다. 바로 그 순간에 소설은 진심을 내비친다. '당신도 이런 삶을 살고 있어? 그러면 끝내! 그 용기를 내가 빌려주겠어.'라고. 이것은 남성과 여성 관계에도 통용된다. 왜냐하면 소설에 남성과 여성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설 세계에서 남성은 지배자로 군림한다. 여성은 그들의 세계에 종속되어 신체와 영혼에 지속적으로 새겨지는 아픔을 감내한다. 소설 속 남성들은 때로는 자비 없는 폭력을 또 때로는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지만 주체인 여성들을 여전히 종속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은 똑같다. 여성들은 늘 식민지로 존재한다. 소설은 그들의 독립은 그들 스스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결국 그녀들은 남성들의 식민지를 탈주하여 진정한 주체가 되어 강고한 연대로 독립과 자유의 영토를 만들고 꾸려 나간다. 아마도 내가 끝까지 소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이 정도로 단호하고 굳건한 의지를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유리 갈대'는 아마도 우리나라에 네 번째로 소개되는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이다. 난 이것 말고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만 읽었는데 그 단편집을 읽었을 때도 이 작가 뭔가 심상치 않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유리 갈대'를 읽은 지금은 이 작가가 거의 기리노 나쓰오 급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사쿠라기 시노나 기리노 나쓰오 모두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에 평범한 주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설이 가진 파격이나 전복성을 생각하면 그저 평범한 일상을 영유하던 주부가 이력의 전부라는 게 얼른 믿겨지지 않는다. 공포 만화가로 유명한 이토 준지는 언젠가 자신을 가장 무섭게 만드는 것은 일본 여성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기리노 나쓰오에 이어 사쿠라기 시노까지 만나고 보니, 왠지 그럴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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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자신의 몸을 기댈 수 있는 버팀목과 같은 존재이다. 길에서 넘어졌을 때나, 친구에게 놀림을 당했을 때, 몸이 아프거나 배가 고플 때, 아이는 부모에게 찾아가고 부모에게 기댄다. 그렇게 아이는 사람을 신뢰하며, 서로에게 기대며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만약 그런 기댈 수 있는 부모나 그 누구도 없이 자란 아이가 있다면 어떨까? 황량한 벌판과 같은 삶을 살아가면서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다면... 누구에게 기대 본 경험도 없고, 기댈 사람도 없다면 그 사람을 얼마나 외롭고 삭막할까? 사쿠라기 시노의 [유리 갈대]라는 소설의 여주인공 '기노 쎄스코'라는 여인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쎄스코는 이제는 한때의 흥청거림만을 기억하는 낡은 항구도시의 유각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술을 팔고 몸을 파는 여성이었다. 쎄스코는 어린 나이부터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학대를 당하고 자랐다. 심지어는 그녀가 어머니 가게에 드나드는 남자에게 강간을 당할 때도, 어머니는 그 일이 끝날 때까지 모르는채 했다. 그리고 일이 끝난 후 남자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일을 했다. 소설의 쎄스코가 어머니의 유각에서 화재로 자살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의 애인과 결혼했고, 어느 정도 부유한 삶을 사는 그녀가 왜 어머니의 술집에서 자살을 했을까? 소설은 다시 이주 전으로 돌아가 그녀의 일상을 비춘다. 그 날 쎄스코의 남편 기이치로는 아침부터 드라이브를 간다고 집을 나선다. 한때 어머니의 애인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남편인 기이치로는 변두리 호텔의 사장이다. 그는 쎄스코에게 부족함 없는 결혼생활을 약속하고 결혼했으며, 실제로 그녀가 가집까지 낼 수 있도록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일본 '가집'이 무엇인지는 접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아마 한국의 시조 정도 비슷한 운율을 가진 시집이나 수필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그 날 오후 기이치로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기이치로는 그 사고로 혼수상태가 되고, 기이치로가 사고난 길은 어머니의 유각과 연결된 도로였다. 결국 기이치로는 그 날 어머니를 만나러 갔던 것일까? 이야기는 기이치로가 혼수상태가 된 이후의 사건들을 통해 쎄스코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녀의 가집 제목인 '유리갈대'처럼 그녀는 아무에게도 기대할 수 없고,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소설 곳곳에는 그런 그녀의 상황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쎄스코는 숨을 토했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거르실리는 말을 해도 엄마는 이제 자신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생각나는 말을 전부 퍼부으며 욕해도 상처 따위나지 않는다. 자신이 엄마를 원하지 않는다. 태아난 뒤로 단 한 번도 원한 적이 없다." (p73-4) "사모님이 홀가분해지는 건 상관없어요. 아직 젊고,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알아요. 그렇지만요, 홀가분해지는 건 무서운 거예요. 속박이 없는 생활의 무서움, 아세요? 의지할 데도 없고 구속하는 곳도 없는 사람에게는 내일이 필요 없어져요." (p221) 소설은 추리소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끝에서는 예상치 못한 반전까지 등장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일본 소설이 그렇듯, 추리소설의 형식에 주인공 쎄스코의 공허한 내면을 잘 끄집어 내고 있다. 특히 쎄스코가 쓴 가집 제목인 '유리갈대'와 함께 소설 중간중간에 갈대의 이미지가 쎄스코의 이미지와 겹치며, 그녀의 공허한 삶의 모습을 표현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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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의 애인과 결혼했다"...라니. 응? 이거 그냥 말하면 '엄마의 애인'이지만 결혼제도에 얽매여있는 나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해보자면 새아버지와 결혼했다는 그런 이야기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책을 읽기 전부터 내게는 '관능과 서스펜스'라는 글이 다가왔고 '문학적 절창'이라는 광고문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약간은 두려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었다. - 그래, 사실 책을 읽은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오래 전에 다 읽고, 이미 읽은 책을 쌓아둔 책탑 구석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내가 어떤 감상이었는지 생각해보려고 하니 도무지 그 독특했던 감흥이 떠오르지를 않는다. 하아, 이렇게 또 책을 다시 펼쳐 읽어야하나?... 생각하니 괜히 바쁜 연말에 쓸쓸해져버린다. 아니, 그래. 어쩌면 유리 갈대를 읽은 내 마음이 바로 그런 것 아니었을까?
유리 갈대는 러브호텔 사장의 부인인 삼십세 고다 세스코의 사체 발견으로 이야기의 서장을 열고 있다. 사체의 발견 상태로는 휘발유를 뒤집어쓰고 불을 붙인 것 같다,는 소견이며 고다 세스코는 알만한 사람들에게 엄마의 애인을 꿰차고 호텔 사장 안주인 노릇을 하며 젊은 남자를 애인으로 두고 있다고 알려져있다.
그리고 시점은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고다 세스코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러브호텔 사장의 부인이며, 거의 아버지뻘인 남자 그것도 엄마의 애인이라 알려진 남자의 세번째 부인이기에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만 그녀는 개의치않는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단가를 지으며 돈많은 한량 부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흔히 격조있고 품위있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알려져있는 단가모임에서 그녀는 어쩌면 이질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 모임에는 세스코와 대척점을 이루듯 단란한 가정의 현모양처 스타일인 미치코가 있다. 항상 얌전한 딸 마유미를 데리고 모임에 참가하는 미치코의 단가는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의 단가를 짓는 에프엠 같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대조되는 겉모습과 실제 가정 생활의 모습에 대한 대비, 세스코가 현상 유지를 하는 사랑과 가정, 그녀의 환경... 이 모든 것들이 관계속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이야기를 읽다보면 왠지 세상의 사랑이 모두 외롭고 쓸쓸하고 어둡기까지 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데 결코 그 모습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려하지 않는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에 허를 찌르는 결론은 - 물론 그조차 어떤 판단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모습을 그려낸 것 뿐이지만, 책을 덮을즈음에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고보니 그저 씁쓸한 현실 세계의 모습을 그려낸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던 유리갈대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남아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내어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른 시간과 경험이 쌓인 후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궁금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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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은 생각이다. 내가 하고싶은 것만 하고 하고싶은 것만 읽는 것만큼, 아니 어쩜 가끔은 그 이상으로,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들은, 내가 하고싶어하지 않았고 내가 읽고싶지않았던 것들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 점점 더 자기만의 틀이 강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럴때마다 책 속에서 만나는 인간들은 내 생각이나 바람,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가끔은 그것을 전복시키는듯한 가치관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고, 내 세계가 매우 협소함을 느끼게 된다.
... 문학 작품을 읽으면 사고의 측면에서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열립니다. 인간이 삶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문학 작품을 읽기 전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에 대해 이제 상상력의 반경이 보다 넓어진 것입니다. 이제 더 다양한 삶의 흐름을 상상해볼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직업과 사회적 정체성, 인간과계의 다양한 종류를 알게됩니다. 뿐만 아니라 한 삶의 내적 관점에 대해서도 우리의 공감능력이 성장합니다...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p. 28
고다 기이치로의 말,
...살았는지 죽없는지 모르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보다 한번 무덤에 묻는 편이 서로를 위한 거야...p.37
이 매우 인상적으로 남았는데, 이말은 결국 엔딩에서의 반전을 이끌어내 것이기도 하고, 또 나에게도 하나의 영감을 주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미련이나 복잡한 생각을 갖기보다는 아예 한방향으로 마침표를 찍고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는 것을.
바닷가의 허름한 마을 앗케시. 뜨내기 선원을 만나 딸아이 세쓰코를 가진 리쓰코는 그 아이를 소중히하지도 무관심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괴롭힘에 동참했다. 떄리고 꼬집고, 자신과 관계한 남자가 아이를 건드려도 그 뒤에서 보고있다가 돈을 가로채기까지.
주된 화자인, 세쓰코의 내연남이자 세무사인 사와기 마사히로의 관점으로 다소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의 눈에 비친 포커페이스인 세쓰코는 객관적인 사실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좋은 성적으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주먹밥과 단무지만인 도시락으로 세무사사무실에서 일하던 그녀는, 5년만에 엄마의 애인인 러브모텔사장 고다 기이치로와 결혼을 한다. 50대인 그는, 세번째 결혼이지만 여자에게만은 너그러운, 특이한 남자. 결혼후에도 사와가 마사히로와 관계를 맺는 세쓰코에겐, 남자와 결혼은 큰 구속력도 소속감도 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고다의 사고와 식물인간 상태, 모텔의 상황, 단가모임에서 만난 사노 미치코와 학대받는 딸 마유미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자신이 개입하고 싶지않은 사황으로 빠져든다. 유괴, 자살사건, 실종, 그리고 방화자살.
이야기는 매우 흔할 수 있지만, 작가는 색다르게 보여준다. 화자나 여주가 보여주는 거리감으로 인해, 참견장이인 나는 감정적 공감을 하면서도 판단을 유보할 수 밖에 없었다.
... 세쓰코는 소모되지않는 사람이니까... ....속내를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등등, 내가 타인을 보고 느끼는 언어와는 다른 언어들에 꽤 뻔한 치정극에도 묘한 신선감을 느꼈다.
관능서스펜스라고 하지만, 수많은 베드신들은 한 장면을 뺴곤 거의 비포와 애프터와 상태만의 묘사일뿐, 적극적인 관계의 요구는 애정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비언어적인 대화와 같았다. 욕구와 친밀감을 나누는 그런 대화가 아닌, 마른 모래가 흘러내려서 사라지듯 허무한 그런 대화. 그렇다고 말초적 자극을 위해 낭비되는 것이 아닌, 몸의 대화와 허무감의 분위기.
세쓰코는 내가 좋아할 타입이 절대 아님에도, 난 이 사람과 이 사람의 과거,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 파악하지 못함에도,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는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을, 내 세상에서 판단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꺠달아서 그랬는지 강렬하게 응원하기 시작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나오미와 가나코 (ナオミとカナコ) 심장이 쫄깃 쫄깃]의 마지막에서 대신 느낀 좌절과 안타까움이 이 작품에서 해소가 되었다.
여하간, 내 타이밍이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나에게 꽤나 강한 인상과 영감을 주었다. 나와는 다른 세상 (ㅎㅎ, 에어슈터가 뭔지 몰라서 찾아보다가 러브모텔을 찾아다니는 일본 오타큐의 유튜브 동셩상도 보았어...참, 별별 사람들이 많다)이 있었는데, 난 틀에 박혀 살고있다는 것을. 매번 판단하지 말자며 (unless you want to be judged, don't judge the others라고 하면서도) 판단해버리는 것을. 허구와 진실을 다룬 단가에서 강박증을 버릴 것을..등등.
p.s: 머리를 하면서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 소름이 끼쳤다. 머리를 해주던 헤어디자이너에게 줄거리를 설명해주었는데, 이분....트릭을 맞췄다. 아놔, 코난은 내가 더 많이 보는데, 이분은 실제 코난이었네..ㅎㅎ 매번 트릭과 진실을 찾으려고 자세히 읽었지만 이 책은 그것보다 다른데 더 많이 정신이 팔려있었나보다...라고 변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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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함의 바닥을 걷다 [유리 갈대]
[유리 갈대]는 세 번째로 만나는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이다. [순수의 영역] 이라는 장편 하나와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 이라는 단편집 하나를 읽었을 뿐이지만 작가가 표현하는 분위기는 밝은 편이라기 보다는 어두운 편에 속한다. 작가가 홋카이도 구시로에서 태어나 계속 그 곳에 살았기에 작품 속 배경은 거의 홋카이도다. 거센 바닷바람에 맞서는 대가 센 여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고, 음지 특유에 사는 사람들의 스산하면서도 음습한 기운이 문장 사이사이에 베어들어 있다.
<순수의 영역> 나의 리뷰 중. 질투의 감정을 다룬 소설이라면 좀 더 빠르고 적대적이고 불꽃튀는 드라마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없이 처연하고 스산하고 차갑다. 그래서 더욱 위험한 질투라는 감정의 성질이 잘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 나의 리뷰 중. 여자라서 여자의 이야기를 더 잘 쓸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또한 여자라서 관능적이고 섹시한 묘사, 올바른 몸가짐을 가진 진짜 무희의 삶을 진지하게 적어내려간 작가의 이야기에서 더 깊은 떨림을 맛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기 위해 두 권의 리뷰를 찾아 읽어보았다. 그래. 이런 분위기를 간직한 작가였어.
이번 [유리 갈대]는 작가가 창조한 기존 캐릭터와 견주어 인생 역정이 기구하기로는 비교할 데 없는, 세쓰코라는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축축한 땅 위 도도하게 선 저 유리 갈대. 대롱 속에는 바슬바슬 모래가 흘러가네.
세쓰코가 단가 모임에 나가 쓴 글 중의 하나다. <유리 갈대> 라는 제목의. 아마도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텅 빈 허무함, 가슬가슬해서 부드러움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메마른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구절이 아닌가 한다. 읽는 내내 <유리 갈대> 구절이 되뇌어지니 말이다.
고작 서른 살인 세쓰코는 오랜 세월 어머니의 애인이었던 남자를 가로채서 러브호텔 안주인의 자리를 꿰찼다. 이쯤 되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세쓰코의 인생을 더듬어 보면 어머니에게 얻어맞지 않으려고 감정을 죽이며 살아왔던 것이 이런 일에까지 이르게 한 것일 수도 있다. 스즈란긴자 골목에서 잔술집을 하던 세쓰코의 어머니는 어린 딸을 이용해 돈을 벌었고 급기야 자신의 남자에게 딸을 주기까지 한다. 세쓰코가 남편을 "아빠" 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사정을 알면 이해가 된다.
멀쩡하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실려오자 세쓰코는 남편의 행적을 추적한다. 남편이 사실은 '직장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전 애인이었던 세쓰코의 어머니와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자살'격인 교통사고를 낸 것도 알게 된다.
"아빠, 어제 여기 왔었지?" -72
돈으로 유혹받아 돈으로 맺어졌다고 믿었던 남편과의 사이에 "어머니"가 끼어들자 세쓰코는 마음이 아파온다. 애써 죽이고 덮어두었던 감정이 어딘가에서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세쓰코가 결혼 후에도 러브호텔의 재정을 맡아 주고 있는 젊은 세무사 사와키와 관계를 갖는 것을 들춰낸다.
사와키와 세쓰코 관계와 기이치로가 리쓰코와 끊어진 적 없었다는 사실이 과연 상쇄할 수 있는 일일까. 사람의 마음을 상쇄할 수 있기는 할까.-73
화가 난 세쓰코는 어머니를 밀쳤고, 어머니는 쓰러졌다.
한편 단가 모임에서 만난 우아한 부인 사노 미치코와 그녀의 딸 마유미는 겉으로는 '인형의 집'에 살고 있는 행복한 가족 같아 보이지만 안으로는 곪을 데로 곪아 "인간다움"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세쓰코는 남편이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은 다른 데 신경을 안 쓰려 하지만 꼬마 마유미의 유난히 맑은 눈동자가 괜시리 신경 쓰인다. 마유미의 걷어진 소매 속에 얼핏 보이던 얼룩덜룩한 멍자국! 아이는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삼키고 화도 못 내며 울음 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 받은 영혼을 그 투명한 눈동자 속에 투영시키고 있었다. 처음에는 겉과 속이 다른 어머니 미치코에게 맞은 건가, 했지만 곧 의붓 아버지의 짓임을 알게 된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계획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마유미를 이틀간 보호하게 되고 마유미의 아버지는 그 이틀간 마유미가 유괴되었다 주장하고 세쓰코는 도마뱀같은 마유미의 아버지에게 돈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어떡하나...아이와 아이의 어머니는 "인형의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쩌다 '유괴된 아이의 아버지는 자살' 하게 되는가. 짤막한 한 편의 미스터리 드라마가 솜씨 좋게 들어앉아 있다.
세쓰코는 혼자 러브호텔을 경영할 수 없다며 직원에게 호텔을 양도하고 마지막으로 사와키와 함께 어머니의 집을 찾는다. 잠시 후 세쓰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잔술집 '바비아나'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까맣게 탄 주검만이 사와키를 기다린다. 이른바 분신자살이라고 하는 건가. 이십대의 세쓰코와 관계를 맺는 도중 세쓰코가 러브호텔 사장과 결혼하게 되었다고 밝혔을 때 사와키는 그녀를 잡지 않았다. 결혼이란 속박에 매이지 않기 위해서였기도 했고, 세쓰코의 몸에 흐르는 처연함 때문이기도 했다. 세쓰코의 죽음에 망연자실해 있던 사와키는 유리 갈대같던 세쓰코를 자꾸만 곱씹는다. 그런다고 살아돌아오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안고 그녀의 흔적을 좇는 사와키만은 실낱 같은 빛을 보았으면 좋겠다.
속이 텅 빈 갈대 속에 모래가 흐른다고 했던가. 인생이 날개 달고 한 번 위로 솟구쳐 본 기억을 선사해주지 않아서, 이들은 자꾸만 공허함의 바닥을 걷는가. 그들이 끌고 가는 회색의 그림자가 오그라든다.
속이 비어 여린 것 같으면서도 한 번에 꺾어지 않는 갈대는 스산함 속에 강인함을 숨기고 있지만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면 또 한 번의 일격에 쨍 하고 깨져버릴지 모른다. 내면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인생의 반려를 제대로 만났더라면 깨지지 않고 손상되는 일 없이 살 수 있었을 텐데.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스스로 노래할 수 있었을 텐데. 웃고, 울고 , 화내는 어린 아이로 살았더라면 아름다운 여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거센 풍랑에도 굴하지 않는 홋카이도 여자의 안간힘을 본다.
충격적인 막장 드라마로도, 관능적인 성애 소설로도, 으스스한 미스터리로도 손색 없는 [유리 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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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렇게 담담하게 흘러갈 수 있을까? 사람이 죽었고, 어떤 사람을 죽였고, 또 다른 사람을 죽이는데 동조를 했고...이것은 분명 담담하게 흘러갈 수 있을만한 소재의 이야기가 아니지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무서우리만큼 담백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는 진행이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는 이것도 꽤나 좋았습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이야기의 전개에도, 독자들의 마음에도 긴장감이 한껏 흐르고 그러다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나고...흔히 보아오던 살인사건을 다룬 책이나 영화의 흐름입니다. 즉, 이 이야기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살인도 등장하고 폭력도 등장하고 불륜도 등장하지만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긴장감이 흐르는 것은 그것 나름대로 심장쫄깃한 느낌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지만, 사건의 심각성에 비해 의외로 잔잔한 진행과 주인공의 담담함은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도 해 주었습니다. 세쓰코는 아버지뻘 되는 남자의 세번째 부인입니다. 그를 아빠라 부르는 그녀. 그녀의 남편은 한때, 그녀 엄마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엄마의 애인과 결혼한 여자. 그리고 자기가 일을 하던 직장의 상사와 몸을 섞으며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여자. 참으로 복잡미묘한 여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호텔로열 이라는 모텔의 안주인으로, 취미생활을 하며 여유롭게 살아가던 그녀에게 어느날 남편의 교통사고 소식이 날아듭니다. 남편이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병원에서 그녀를 찾아온 마유미라는 한 소녀. 마유미는 세스코가 취미생활로 다니던 단가모임에서 만난 미치코의 딸로, 미치코의 남편은 마유미의 친아버지가 아닙니다. 마유미와 미치코를 수시로 폭행하는 그 남자를 피해 무작정 마유미를 세쓰코에게 맡긴 마유미의 엄마.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 그 순간부터, 그리고 마유미가 그녀에게 온 그 순간부터 세쓰코의 삶은 뒤죽박죽 뒤엉키키 시작합니다. 어린시절부터 집으로 찾아온 남자들에게 엄마가 지켜보는 앞에서 능욕을 당하고 엄마는 돈을 챙기고, 그녀를 때리고...그리고 엄마의 애인이었던 남자와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한 후에도 엄마를 찾아갔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 듣고...어쩌면 세쓰코의 삶은 그녀가 엄마의 딸로 태어난 그때부터 그렇게 될거라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모든 비극은 엄마로 부터 시작되었고 엄마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일에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것 역시 엄마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세쓰코라는 인물은 살인도 저질렀고, 불륜도 저지르고 있지만 그런 자신에 대해 한없이 관대합니다. 어쩌면 그녀가 그렇게 사는것은 과거의 모질고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 엄마의 애인이라는 사람과의 결혼은 엄마에 대한 보복이었을까요. 그리고 남편 몰래 정을 나누고 있는 그 사람에게서는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있는 걸까요.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이 있기는 한걸까요. 이 소설은 일본 티비에서 드라마로도 방영이 되었다고 하는데 드라마는 어떤 느낌일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하는데 좀 어두운 느낌이 들면서도 그리 무겁지는 않은,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찾아보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호텔로열]은 이 작가의 다른 책 제목으로도 쓰였네요. 그리고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을 검색하다보니 놀랍게도 우리집 책장에도 이 작가의 책이 한 권 꽂혀 있는것 같습니다. [순수의 영역]이라고...우선 이 책부터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만 왠지 그녀들이 불쌍해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녀들의 삶이나 지금 나의 삶이나 표면적으로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한꺼풀만 벗기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소설속의 이야기를 우리 삶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요즘이야 말로 정말 소설같다 싶은 삶들도 꽤나 많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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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남편이 교통 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 간다. 내리막길 커브가 연속으로 있는 도로를 상당한 속도로 들이박은 것 같다는 사고 경위를 전해 듣는 여자는 남편이 대체 어디서 돌아오는 길이었을지 의아하다. 머리를 다쳐서 의식을 되찾을 가능성은 낮다고 하니, 아마도 남편의 입으로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하나 의심이 되는 것은 그 방향이었다면 남편의 옛날 애인이 사는 곳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옛날 애인은 바로 여자의 엄마였다.
"가집을 내라고 한 것도 그 사람이에요. 한번 제대로 자기가 쓴 글과 동반자살을 해보라며." "동반자살이라니, 그것도 넘치게 문학적이네." ...........세쓰코는 남편이 사용한 동반자살이라는 말의 의미를 바로 이해했다. 이대로 계속 같은 노선으로 단가를 쓰면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세쓰코 자신이 아프리만치 잘 알고 있었다. 어느새 돌아보니 세쓰코보다 기이치로 쪽이 더 열심히 단가를 선별하고 있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보다 한번 무덤에 묻는 편이 서로를 위한 거야. 당신은 앞으로도 살아갈 테고."
엄마의 애인과 결혼한 여자, 게다가 그녀는 남편이 의식 불명으로 병원에 실려 있는 동안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다. 라고 하면 무슨 막장 드라마냐 하겠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품을 읽는 동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천천히, 느리게 흘러가는 이야기 탓도 있겠지만, 생각을 알 수 없는 여자의 담담한 일상과 그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사연들이 전혀 선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플롯만 보면 막장이지만, 이야기는 매우 신중하고, 진지하기 그지 없으니 말이다. 러브 호텔을 배경으로 젊은 나이에 연배가 있는 남자의 세 번째 아내가 되면서도 결코 그를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단언하는 여주인공이라니 정말 이상하기 그지 없다. 돈과 여유를 줄 테니 마음대로 살아보라는 청혼을 받아 들었을 때, 극중 세쓰코 처럼 반응할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될까. 게다가 그 남자는 오랜 세월 엄마의 애인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사랑이니 뭐니 운운하지 않는 만큼 담담한 결혼 생활이 평범하게 이어지다, 어느 날 이유를 알 수 없는 남편의 교통 사고 이후 그녀의 삶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애초에 돈으로 유혹 받아 돈으로 맺어진 부부의 관계, 게다가 그녀는 그를 '아빠'라고 부른다. 그런 남편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그녀는 마음이 아프다는 감정 조차 누릴 수가 없다. 마음이 아프다는 건 대체 어떤 것일까. 살면서 좀처럼 '감정'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여자. 세쓰코는 단가를 쓰면서 자신의 내면을 글로만 투영해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성애와 허무를 기둥으로 하는 그녀의 작품이 매우 도발적이고 적나라한데 비해, 그녀의 평소 말투와 행동은 정반대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소리 높여 말하는 것이, 가정 폭력에 시달려온 어린 소녀라는 사실은 의미 심장하다. 그녀 역시 어린 시절 엄마에게 학대를 받았던 과거가 있었으니 말이다.
미치코는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품위 있게 웃었다. 마유미도 역시 엄마를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세쓰코는 미치코의 천진난만함보다 한마디도 하지 않는 소녀가 보이는 엄마와 똑같은 미소에 무서움을 느꼈다. 세쓰코는 자신도 어린 시절 리쓰코와 꼭 닮았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딸은 엄마를 닮으며 자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같은 생물을 낳은 여자가 얼마쯤은 후회하게 하기 위해.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은 <굽이치는 달>과 <호텔 로열>에 이어서 세 번째로 만난다. 어린 시절 실제로 러브호텔을 하던 부모의 딸이었던 사쿠라기 시노는 열다섯 소녀였던 시절부터 학교에서 돌아와 호텔에서 청소를 했었다. 더러운 시트를 갈고, 욕실 청소를 하고, 손님들이 사용한 콘돔을 버리고 새것을 구비해놓는 등 부모의 일을 도우며 그녀는 러브호텔을 드나드는 다양한 인간을 마주해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절실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우울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극단적으로 불행한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이어지지만, 이상하게도 마냥 어둡지만은 안다는 것 또한 그녀의 작품 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부정적인 것 같으면서도 삶에서 결코 부정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포착해내는 것 같다고 할까. 사쿠라기 시노를 '신 관능파 성애문학의 대표 작가’라고 하는데, 확실히 이 작품은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처럼 읽힌다. 치정이 얽혀있고, 막장스럽고, 러브 호텔이 배경이라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치열한 애증과 욕망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주 밑바닥까지 내려간 원초적인 욕망을 마주하고 나면 오히려 그것이 순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가식과 허례허식에 둘러 쌓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제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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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스무 살에 술집 손님이던 거친 뱃사람과의 하룻밤 정사로 나를 가졌어. 난 엄마에게 매를 맞으며 자랐고, 엄마의 강요로 술집 손님들을 상대로 매춘에 내몰렸지. 사랑 따위, 마음 따위, 웃음이나 눈물 따위는 애초부터 내 인생에 없었던 것 같아. 러브호텔 ‘호텔 로열’의 사장이자 엄마의 애인이던 30년 연상의 남자와 결혼한 것 역시 단지 그가 “돈과 여유를 줄 테니 마음대로 살아보라.”고 프로포즈 했기 때문이야. 그는 좋아하니 어쩌니 하는 말도, 마음을 시험하지도,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았어. 무색무취한 날들이지만, 딱히 싫지도, 심심하지도 않았어. 그런 날들에서 도망치거나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고... 그냥 이렇게, 중력이든 인력이든 나를 끌어당기는 쪽으로 흘러가면 된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일까 내가 쓴 ‘유리 갈대’라는 단가(短歌) – “축축한 땅 위, 도도하게 선 저 유리 갈대. 대롱 속에는 바슬바슬 모래가 흘러가네.” - 처럼, 어쩌면 내 몸에 흐르는 것은 빨간 피가 아니라 마른 모래가 아닐까 생각해본 적도 있어. 누군가 내 마음을 흔드는 것도 싫고, 누군가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더 싫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도, 속박당하는 것도 싫은 나... 그래도 내 어느 한구석엔가 마음의 조각이란 게 남아있기 때문이었을까 러브호텔의 세무를 맡은 사와키와 간간이 몸을 섞으며 절정과 위안을 얻기도 하고,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매 맞는 소녀를 만난 뒤론 냉정한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어. 엄마가 여전히 내 남편과 몸을 섞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나답지 않게 폭발하기도 했고, 전적으로 내 의지에 의해 몇 번이고 손에 피를 묻히기도 했지... 하지만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역시 나는 유리 갈대이거나, 그 안을 흘러가는 가슬가슬한 모래야. 깨지기 쉬운 유리이거나, 절대 꺾이지 않고 출렁대기만 할 뿐인 갈대거나, 또는 모든 것을 타인의 의지나 무정한 세상에 내맡긴 채 이리저리 떠다니는 모래... 이런 삶은 무슨 색일까? 의미란 게 있을까? 더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여름조차 서늘한 훗카이도 동부의 대기와 ‘호텔 로열’ 앞에 펼쳐진 광대한 습원의 습기, 그리고 바다에서 무시로 몰려오는 축축한 안개 속에서 유리 갈대이자 그 대롱 속을 흐르는 모래인 나는 그럭저럭 오늘을 살아가고 있어... ● ● ● 어떻게 서평을 시작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느닷없이 주인공 세쓰코의 독백 같은 것을 쓰고 말았습니다. 사실 ‘유리 갈대’에는 여러 가지 파격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들이 많이 묘사되지만, 결국 이야기의 중심은 세쓰코라는 한 여자의 유리 같거나, 갈대 같거나 모래 같은 삶입니다. 그래서 상투적인 줄거리 정리보다는 ‘멋대로 세쓰코가 되어 멋대로 독백해보기’로 서평의 오프닝을 삼고 말았습니다. 작품 내내 세쓰코를 지켜보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타고난 허무주의자 같기도 하고, 학습된 냉소주의자 같기도 한 세쓰코의 캐릭터도 그렇고, 엄마의 애인과 결혼한 일이나 그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불륜을 저지르는 일도 그렇고, 끝내 몇 번씩 손에 피를 묻히게 되는 기구한 운명도 모두 안쓰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세쓰코의 유리 갈대 또는 모래 같은 삶은 도대체 어디에서 종장을 맞이할지, 또 그 종장은 얼마나 비극적이거나 허망할지를 떠올려보는 일도 마음 편한 일이 아닙니다. 세쓰코의 ‘많은 것’을 알면서도 그녀와 간간이 몸을 섞는 중년남자 사와키는 독자들의 이런 편치 않은 감정들을 대신 발산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미 10년 전부터 세쓰코와 인연을 맺어온 사와키는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으면서도 결국 자신은 그녀에게 ‘버스정류장이나 주유소’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없음을 잘 압니다. 그래서 언제나 위성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녀를 지켜볼 뿐입니다. 살은 섞지만, 마음은 절대 섞지 않는 두 사람의 평행선 같은 관계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 때까지 독자의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만듭니다. 이야기의 소재나 캐릭터, 사건만 놓고 보면 막장 드라마의 완결판처럼 느껴지지만, 사쿠라기 시노는 섬뜩할 정도의 담담한 문장들로 이 난감한 막장의 요소들을 요리합니다. 무엇보다 간결한 표현으로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고 적확하게 묘사한 대목들은 막장마저 공감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연작단편집 ‘호텔 로열’ (149회 나오키상 수상작)에서도 비슷한 대목들을 여러 번 목격했는데, 이런 묘사의 힘이야말로 사쿠라기 시노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스산하게만 느껴지던 구시로 습원의 이미지와 ‘호텔 로열’의 풍경은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여운처럼 계속 머릿속에 남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의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돼있는 광대한 습원이었습니다만, 잠깐이라면 모를까, 낮밤으로 그 풍경을 보고 있자면, (더구나 바다에서 몰려온 안개까지 곁든 풍경이라면) 누구나 세쓰코처럼 자신을 유리 갈대나 모래처럼 여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집 ‘호텔 로열’과의 접점을 찾아보려 했는데, 같은 무대이되 전혀 다른 히스토리를 지닌 것으로 설정되어 무척 아쉬웠습니다. 다만 기시감 같은 묘한 공통점이 일부 있는데, 호텔 로열을 세운 남자가 모두 간판과 관련 있는 일을 했다든가, 본처와 이혼한 뒤 자신의 절반밖에 안 되는 나이의 젊은 여자와 재혼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유리 갈대’를 인상 깊게 읽은 독자라면 ‘호텔 로열’을 통해 사쿠라기 시노의 단편의 매력을 꼭 만나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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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기 시노. 일본에서 신 관능파라 불리우는 그녀의 소설들은
그명성처럼 한결같이 몽환적이고 관능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번엔 그러한 느낌에 파격적인 소재까지 더한 신간 <유리 갈대>를 읽었다.
'나는 엄마의 애인과 결혼했다. 그리고....'
띠지의 책 소개문구부터 범상치 않게 느껴지는 소설. 엄마의 애인과 결혼했다는게 과연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이 책속 주인공 세쓰코는 실제로 그리하였다.
러브호텔을 운영하는 엄마의 애인과 사랑에 빠진것은 아니지만...서로 필요에 의해 결혼을 했다.
조그마한 마을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는 엄마와 단 둘이 살았던 세쓰코는 소녀가 되기전에 이미 여자가 되어있었다.
남자가 끊이지 않는 엄마와 그녀의 아름다운 딸,,,세쓰코에게 무슨일이 일어났을지는 뻔하지 않은가??
어쨋든 세쓰코는 엄마의 애인과의 결혼을 통해 자유와 경제적 여유를 얻었다. 그리고 ..애인도 있다.
어느 날 남편이 교통사고가 나서 혼수상태가 되었다.
사고가 의심스러운 세쓰코는 남편의 행적을 더듬어 보다가 엄마가 아직 남편과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여전히 엄마와 한 남자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세쓰코에게 큰 상처로 다가왔다.
하나남은 영혼의 조각마저 깨져버린 느낌이다. 그녀는 분노했다. 그리고 엄마가 실종되었다.
세쓰코가 다니는 단가모임에 눈길을 끄는 한 모녀가 있다.
미치코와 그녀의 딸 마유미. 겉으로는 한없이 행복해보이지만 왠지 속은 텅비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녀들의 일상 깊숙한 곳까지 엮여버렸다.
그리고 그녀들은 큰 사건을 공모하게 된다.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이야기는 잔잔하게 진행되지만 그속에는 잔혹함이 가득 담겨있다.
상처입고 부서지기 직전까지 내몰린 여자들이 그래도 살아가기위해 선택하고 결정해야만 했던 순간들.
그녀들을 어떻게 탓할수가 있을까??
누군가는 그녀들이 지은 죄의 댓가를 반드시 치뤄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살아온 삶의 모든 순간들이 속죄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조차 메말라 투명하다 못해 사라질꺼 같은 순간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을 보고 안도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꽃길만 걷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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