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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씨의 책은 처음이었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때 그 '까칠함'에 약간 당황스러웠으나, 중반부를 넘기면서 이내 익숙해져서인지 그냥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세간에 한 '담력(談力)'하는 양반이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어렸을때부터의 편식 습관이 나의 독서취향에도 전이되었던 것일까.. 소위 '유행서'라던지 '맛'있거나 '멋'있는 글을 쓴다는 '유행인'이 쓴 책은 왠지 손이 가지 않았었다. 그건 나의 '에센트릭(eccentric)한' 성격 탓일까? 아님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쉽게 휘몰리는 나의 주관없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본능적 '방어기재' ?
이 책은 그동안 영화전문주간지 '씨네21'에 기고했던 총 33편의 영화에 대한 평론을 나름대로의 주제에 맞게 분류해서 정리한 책이다. 읽다 보니 아직 못 보았거나, 보았어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지 기억이 가물한 영화가 많아 '공감'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영화를 꽤 보았다고 자부했는데, 어찌 그리 '핀트(punt)'가 안 맞든지.. 어쩌면 그래서 저자의 그 까칠한 입담에 그리도 무던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의 영화에 대한 평론은 매우 건조하다. 감성이나 느낌에 호소하기 보다는 학술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약간은 도식적이고 가끔은 '이쯤되면 오바 아냐?'라는 생각도 든다. 커피로 친다면 '캬라멜 마끼아또'나 '카푸치노' 보다는 '에스프레소'나 '롱블랙'에 가깝다. 억지로 공감을 구하기 위해 구태여 커피의 본 맛을 달콤함이나 부드러움으로 포장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툭툭 내던지는 듯한 그의 자극적 단어들이 그다지 밉지 않다. 아니 어쩜 매력있기까지 하다.
다소 아쉬운점이 있었다면, 왠지 어렵고 중의적인 느낌의 단어들을 많이 사용했다는 점. 평론을 읽으며 섬세한 디테일로 인한 독자의 상상력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한 세심한 배려라면 나름 납득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기본적 '글쓰기 태도'에서 짐작해보면 그리 세심한 배려를 기대하기 힘든 성격(사실은 그게 매력?)으로 추정되는 바, 약간의 저자의 역량을 넘어서는 듯한 현학적 냄새를 지울 수 없었다.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을 떠올리면서, 아직은 덜 익은 느낌이 든건 나만의 착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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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영화를 감상하는 이유는 아마 해당 영화의 스토리에서의 재미, 화려한 배우의 모습, 그리고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의 아름다움이 대개일 것이다. 물론 영화의 주제의식과 감독의 제작의도, 전개기법 등에까지 관심이 이르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기술적 위상, 철학적 인식론, 현상학적 분석을 들이대는 이들은 거의 존재치 않는다 하여도 지나친 견해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진중권이 소개하는 이 영화담론은 “문화적 코드를 많이 이해할수록 영화의 조크를 더 많이 해독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문학이던 영화이던 아니면 그 밖의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시선이던 바라보는 이의 한정된 지식수준을 새로운 경지로 견인하여 영화 감상의 폭을 확장시켜준다. 고해상과 저해상의 화면, 흑백과 컬러화면의 대조와 같이 무심코 바라보았던 영상이 관람자에게 시사하려는 저마다의 의미가 있음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소개되고 있는 일부 영화의 담론에 등장하는 미학, 영상기술, 미디어 문화와 관련한 용어들의 생경함은 그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을 그리 녹록치 않게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야를 제공하여 밋밋하게 별다른 영감 없이 지나쳤던 영화들에서 전혀 새로운 흥미요소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준다. 영화 <300>의 당혹스러웠던 이미지가 “시각적 과잉(visual excess)을 통해 너무나 단순해서 무식하기까지 한 플롯의 빈곤함을 잊게”하려 하였던 것이라는 설명은 그저 도취되었던 당시의 기억을 이해케 된다. “환상이 고해상의 실재가 되어 나타나는 것. 이것이 오늘날 대중이 겪는 새로운 이미지 체험이다.”라는 ‘생성 이미지’의 시각적 이미지와 새로운 체험의 본질을 읽게 되기도 한다. 또한 <슈렉>에서 ‘포스트 모던’과 ‘패스티시 전략’을 이야기 할 때 공감의 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설명과 유독 어둡고 섬뜩하게 보였던 <폴라 익스프레스>의 인물들에서 느꼈던 감정이 왜 그러해야 했는지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라는 개념을 통해 그 낯섦에 대한 본능적 거부의 이유를 알게된다. 이처럼 ’재현의 인식론‘에서 ’생성의 존재론‘에 이르는 시각적 이미지의 해석에 대한 다채로운 지식을 제공하는가 하면, 기술의 혁명, 미래기술과 연계하여 인간의 정신과 신체의 확장이 의미하는 대중의 욕망을 보여주기도 하고, 지각의 현상학적 분석을 통한 자극의 이전과 의미, 나아가 도덕론, 미학적 상상력으로서의 과학적 이성을 이야기하는 데까지 도달한다. <나비효과>에서 단순히 단기기억상실증 주인공의 긴박한 스토리에 집착했던 표피적 감상에서 “다수의 플롯을 공간적으로 병행시키는 방법으로 짜인”구성에서 ‘하이퍼 링크(hyper-link)의 형식화’와 오늘날의 복잡한 “시공간으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과잉 자극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취약한 인간의 정신인 전형적인‘피크노렙시(pyknolepsie)’를 이해하는 감상영역의 확장으로 안내된다. 한편, ‘인간의 골동성’, ‘인간의 확장’이라는 미디어의 ‘의족명제(prothesenthese)’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미래파’들의 전쟁의 예술성 찬양이나 피카소의 큐비즘을 통해 ‘신체의 금속화’, 양자수준의 조작가능 컴퓨터, DNA결합 디지로그 컴퓨터 탄생 등 미래를‘이식혁명의 시대’로 전망하는 담론을 즐기기도 한다. 특히, 동요하는 카메라, 외부 관찰자가 아니라 스크린 속 주인공과 똑 같이“상황의 내부에 처한 자로 찍었기에” 오마하 해변 전투의 전장이 객석으로까지 연장된 느낌을 주었다는 설명은 영상이란 시각이 관객의 촉각으로 이전되는 ‘신체의 현상학’, ‘지각의 현상학’에 대한 이해로 감상의 격을 높여준다. 이로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대비를 통해 “전략 없이 실천된 현상학의 무의미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우리 영화의 한계를 넌지시 지적하기도 한다. <클로버 필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해상도가 지각에 미치는 영향력과 상상력, <뷰티풀 마인드>의 “정신이 위대해지려면 아름다워야 한다.”까지 영상에 대한 전혀 새롭고 신선한 관점을 지니게 한다. 아마도 폭넓은 독자를 지니고 있는 저자의 이 영상미학 담론은 대중들의 영화감상에 안목, 지적수준을 얼마간 격상시켜주는 역할을 할 것 같다. 갈수록 높아지는 국내 영화 관객의 시선을 국내 영화가 얼마나 맞추어 낼지가 우리영화의 미래를 결정하는 하나의 좌표가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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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단순한 재미때문이지, 어느 감독 누구의 비평을 찾아보는 그런 수준은 아니다.
돈이 생겨서 구입하려고 했었던 진중권교수님의 책들을 찾아보다가 신간이 나왔다는 걸 알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고민도 됐다.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우선 내가 본 작품들보다는 보지못한 작품들의 수가 훨씬 많았고 그래서 책을 위해 영화를 챙겨봐야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되었다. 비평을 읽는 것은 작품를 이해하고 나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그런 차원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인문학적 상상'이라는 말만 믿고 책을 구입했다.
교수님께서 영화를 간단하게 설명하셨고 또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서 고민했던 것과는 다르게, 잘 읽어나갈 수 있었다.
진중권교수님의 영화비평, 을 원했던 사람들은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 서문을 미리 읽어보고 사면 그래도 실망이 덜 할 것 같다.
인문학적 상상, 믿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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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적 관점으로 영화를 어떻게 얘기할까 하는 궁금증으로 책을 사서 보고 약간의 실망스러움~~
미학적 관점 보단 많은 대가들의 이름과 설명 없는 개념들의 나열이 주로 있고 영화에 대한 느낌이나 사회적 관점도 애매한 독특한 맛이 나지 않는 걍 잡지 같은 느낌 --
영화에 미학적 관점을 넣기보단 영화잡지에 영화평을 약간 고급스럽게 썼다고 보면 맞을거 같다..첨 부터 그런 관심으로 보면 딱 맞는 책
편집에서도 너무 오타가 많이 눈에 띄는게 성의가 없다는 생각이 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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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잡지에 1년여 동안 기고된 글을 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읽는 동안 무척이나 힘들었던 것이 글의 연계성이 희박하고 영화 선택의 동기가 이 책을 선택할 독자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 챕터를 나눈 이유도 이미 기고된 칼럼비슷한 것을 한 권의 책으로 구성하려다 보니 피할 수 없는 미궁책이었을 것이라는 나만의 추측이다. 진중권이라는 이 시대의 입담가로서의 명성만으로도 한 권의 책은 뚝딱 만들어진다. 영화잡지속에서 그의 글을 먼저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독자로 예상하고 만들어 낸 책이라면 좀 더 친절한 주석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는 만드는 자들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책 팔아먹기에 급급한 짜집기식 구성은 정말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난해한 이름들, 첨단 테크놀로지에 대한 몰이해, 기억하기 힘든 개념들, 인문학, 철학은 대충 가겠는데 기타 전문 분야, 이를테면 영상미학속에 등장하는 용어랄지, 고등수학 풀이는 정말 미치겠더라. 영화를 구성하는 외부적 요인에 대한 제대로 된 근거 및 자료를 제시하는 내용이면서 책 표지상단에는.....인문학적 상상이라 밝힌다. 순수한 저자의 의도가 돋보이는 분야는 아마 미학과 겸비된 철학쪽인 듯 싶다. 그 속으로 들어갈 때는 뭔가 진지함과 속도감이 느껴지는데 그 외 무수한 자료의 남용은 책읽는 재미를 빼앗아간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만 내 지식의 미미함을 탓하면서 읽기도 했다. 일반 독자가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소재를 두고 너무 무리한 예제를 던진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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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영화보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는 작품을 보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닌지라, 주로 지나간 영화들을 DVD로 찾아서 보거나,아니면 영화관련 서적들을 뒤적이는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 책도 처음엔 '진중권'이라는 왠지 익숙한(;) 저자의 이름과, 영화관련 서적이란 타이틀-사실, 처음엔 타이틀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으니;;-에 의해 읽게 된 것.
하지만 이 책은 목차만 읽고 나서도 그런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충분하다. 쉽게 읽고 지나갈 영화잡지 속 평론이 아니라, 미학자 진중권의 시각에서 바라본 '담론의 놀이'라는 것을, 저자 또한 미리 명시하고 있다는 것도 그제서야 눈치채게 된다.
책에서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은 디지털 기술에 관한 내용. 실제로 현대의 영화들은 이 디지털 기술에 의존하여 작품을 전개해나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영화는 시대가 진보하고 이러한 기술이 발전하면서 영화 자체의 기술적 형식 뿐만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얼마전에도 어느 영화촬영 장면을 보여주는 TV속 비하인드 컷에서 대사를 받는 상대방 대신 특수 카메라를 바라보며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렇게 개별적으로 촬영한 것을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덧입혀가며 한컷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너와 나의 상황과 그 속의 대화'를 스크린으로 옮겨가 대신 이야기 하는 것에서 벗어나,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던 또다른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배우는 배우와 이야기 하지 않고, 카메라와 이야기 하지도 않으며, 화려한 기술을 담고 있는 컴퓨터에게 이야기하고 연기한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부분이다. 기술의 발전은 기뻐해야할 일이지만, 정말 이젠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져버린 스크린 속 세상과의 갭이 커지는 건 씁쓸하기도 하니까.
저자는 이러한 디지털 기술 외에도, 감독과 작가만의 영역인 줄 알았던 스토리와 그 결말에 있어서도 점점 관객과 상호교환이 가능한 영화들이 나온다는 점을 알린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한 드라마도 시나리오를 대폭 수정하여 시청자의 의견에 따라 죽기로 한(;)주인공을 살려내기도 하더라. 영화 역시 점점 보는 이와의 소통을 넓혀가며 일방적으로 전해지던 것을 상호적으로 소통 가능하도록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이 '이매진'은 미학자인 저자의 전공과목(;)에 따른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부분에 많은 할애를 한 책이라 사실 몇몇 흥미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조금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진중권이라는 지식인의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본 대중적 영화는 그만큼 또 다른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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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영화를 두고도 저마다 다양한 생각들과 느낌이 넘쳐난다. 어떤 이는 내가 보지 못한 색다른 시선과 관점으로 영화를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너무 표피적인 면만을 가지고 영화를 이야기 한다. 영화라는 것이 시각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영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영상으로 보여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서부터 영화의 영상에 포함된 은유까지 해석하는 사람까지 그 폭이 넓음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은유라는 것이 감독이 의도했던 은유도 있겠지만,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은유적 해석장치는 저마다 다르기에 해석의 폭은 상상이상으로 넓어진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하나의 영화를 두고도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나의 영화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름에 대해서 논의하고 이야기하면서, 그 차이를 이해하기도 하고, 때론 해석을 폭을 새롭게 넓히게 된다. 자신의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믿음은 이런 과정을 방해함은 물론이고 영화라는 매체가 부여하는 넓은 상상력과 생각의 깊이를 전혀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된다. 누군가의 새로운 해석 또는 새로 제기한 담론을 보는 것은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이해하고 자신이 가진 사고력의 한계를 넓히는 기회이자 경험의 장이 된다.
이 책은 다른 영화 관련 서적들과 다르게 상당히 독특하다. 저자의 서문에서 자신의 책은 "영화의 비평이 아니다! 새로운 담론의 놀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제껏 보아왔던 다른 글이나 책들에 비해서 상당히 독특하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보통 영화의 해석은 영화 속의 은유와 해석하는 사람의 은유적 장치가 공명을 이루어서 만들어낸다. 그래서 해석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은유적 장치가 얼마나 풍부한 경험과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지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저자 진중권의 생각은 폭은 상당히 넓다. 영화를 두고 이런 담론도 가능하구나 하는 놀라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담론이라는 것이 너무 추상적이다라는 느낌이 크다. 그래서 내가 직접 봤던 영화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담론을 어렵지만, 조금씩 따라가면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폭이 커진다. 하지만, 직접보지 못한 영화에 대해서 늘어놓는 담론에서는 저자의 놀이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쉬운 우리말로 쓸 수 있는 것들도 그냥 외래어를 남용한다. 마치 저자 자신이 지적 유희를 혼자 즐기기에 급급한 것 같다. 책을 읽는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듯하다. 모든 사람들이 저자의 지적 능력 만큼 높은 것은 아니니까, 조금은 독자에게 친절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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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 - 깊이 없는 혼탁한 샘의 함정
2. 자신을 속이다 (1) 자신도 모르는 개념의 남용 (2) 분량에 치여 축을 잃다 (3) 완결성이 없는 유아식 구성 (4) 소결 - 과욕이 물을 흐리다
3. 독자를 속이다 (1) 무지를 감추는 누더기식 서술 (2) 누더기식 서술을 감추는 간교 (3) 아는척과 사기꾼의 경계에서 (4) 소결 - 혼탁함이 깊이를 감추다
4. 결 - 진흙탕으로 목을 축일 수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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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 진중권의 놀이터에 들어 온 영화
진부한 얘기지만 영화는 종합 예술이다. 어쩌면 예술 이상인지도 모른다. 영화에는 한 시대의 철학, 사상, 문화 등 거의 모든 시대상이 담겨져 있다. 물론 그 시대상은 감독의 눈에 비춰진 것이기는 하지만, 영화는 대중성을 지향하기에 (물론 독립영화가 있기는 하지만), 비록 일부라 할지라도 당시의 대중들의 공감대와 시대흐름이 담겨져 있다. 영화 분석은 영화에 담겨져 있는 이러한 시각들을 뽑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을 얼마나 예술적으로 혹은 교묘하게 그려내고 있는가를 평가하고 있다. 영화분석은 영화 속에 숨겨진 코드들(감독이 의도했을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았을수도 있다)을 알아맞히는 게임이라고 할까? 그래서 보는 사람에 따라 분석은 제각각이다. 감독의 의도와 분석가의 의도가 맞물리고 어우러지고 때로 비틀어져 때때로 영화분석은 영화를 넘어가기도 한다.
모든 것은 해석의 문제다.
저자는 스스로 이 책이 영화분석이 아니라 담론의 놀이터라고 못박고 있다. 담론의 놀이터라는 말이 재미있다. 좀 시니컬하게 보자면 ‘담론의 놀이터’라는 말은 ‘말장난’이라고 할 수 있다. 근데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장난"이다. 영화에 투영된 수만가지의 문화 현상들 속에서 하나의 시각을 끄집어내어 논리적으로 전개시키는 저자의 능력은 탁월하다.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기본이고 철학과 과학과 전문기술영역에 대한 지식까지 화려하게 넘나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과학적 엄밀성을 전제하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것은 소위 ‘지식인’의 맹점이다. 진중권의 분석이 그럴 듯 해 보이는 언설에 불과한지 아니면 담론적 가치가 있는지는 독자의 몫인데, 안타갑게도 진중권이 쏟아내는 수 많은 철학, 과학의 전문 용어들을 모두 다 이해하는 독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진중권의 놀이터라는 말이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 책에서 진중권의 멋들어진 영화분석을 만나게 된다. 영화자체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영화를 보는 진중권의 시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한 사물을 바라볼 때, 그것에 연관된 다양한 끈을 볼 수 있고, 그 끈을 통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진중권은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수적이다.
문화와 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이 책을 꽤나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이 책은 알 수 없는 암호덩어리로 다가올 수도 있다.
적어도 진중권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실망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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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상상력이 들어설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텔레비전을 일컬어 ‘바보 상자’라고 했겠는가. 하지만 오늘날 많은 이들은 활자보다 영상에 익숙하다. 그리고 영상에 익숙한 대중들의 다양한 취향에 부합하는 영화들이 매해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온다. 난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화의 내용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전혀 없다. 그렇지만 운이 좋게 최근에 나온 영화를 볼 때면 ‘짧은 시간 동안 참으로 많이 발전했구나’ 라고 나는 생각한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꿈꿀 수 없었던 화려한 그래픽이 현실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이라 일컬을 만한 것이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이를 만났다. 물론 그가 품은 생각의 깊이는 나의 어설픔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저자 진중권은 ‘디지털 기술이 시네마의 내용과 형식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살펴보고 싶었단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그 자체에 주목할 때 그는 영화를 하나의 도구로 활용해 사회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면서 나는 영화에 대한 무지가 자랑거리만은 아님을 느꼈다. 단순한 오락거리를 뛰어넘어, 영화에는 이미 모든 것 혹은 그 이상이 담겨 있었다. 개인을 속박하는 권력의 속성이, 물질에 지배당한 인간의 서글픔이 그리고 상처받기 쉬운 개개인의 내면이… 심지어 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신화마저도 기술에 의해 재탄생, 훌륭한 기제로서 영화에 활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론 이를 얼마나 심도 있게 그려냈느냐는 또 다른 문제였지만 말이다. 과거였더라면 이 모든 게 인간의 머리 속에서만 허락되었을 것이다. 허나 발달된 기술로 인해 이제 인간은 제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공유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영상도 존재한다. 그래봤자 우리 자신이 만든 영상이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놀라움은 감탄을 뛰어넘어 혐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이 만든 돈에 인간이 속박되는 놀라운 역사를 이미 걸어보았기 때문일까? 머지 않아, 아니 어쩌면 이미 영화가 품은 지나친 사실감에 속박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이보그나 터미네이터 등은 그 때부터 대형 스크린을 뛰어넘어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많은 감독들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대다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 놓인 수많은 점 중에서 적절점을 찾아내어 타협을 본다. 흥행에 성공한 <슈렉>이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당나귀 동키의 캐릭터를 생각해보라. 그렇지만 두 이질적인 요소 사이의 균형에 실패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폴라 익스프레스>란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섬뜩하기까지 하단다. 그렇다 보니 외려 이를 역이용해 고전적 형태의 영상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영화들도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적 성공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떠한 기술을 활용하느냐가 영화의 내용마저도 결정지을 수 있으니 이후 흥행작을 예측하려면 기술의 변화형태를 주시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방법일 듯하다. 어떠한 것이건 원전을 읽는 게 정석이라곤 하지만, 충분한 내공이 쌓이지 않은 이들에겐 누군가에 의해 정제된 책을 읽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다만 그런 책을 읽음으로써 원전을 100%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은 교만에 가까움을 기억해야 된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영화와 만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만난 영화들은 저자에 의해 각색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은 저자가 영화와 테크놀로지를 ‘인문학’이라는 거대한 용광로에 넣고 버무린 결과물이다. 우리 역시 자신만의 독창적인 색채를 입힘으로써 영화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어야 할 것이다. 문화는 그렇게 깊어지는 게 아닐까 한다. 다수에 의해 끊임없이 회자되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그렇게 생성된 다양성에 의해 우리 사회는 비로소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