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철학자시리즈91]김정희가 들려주는 실사구시 이야기
"[철학자시리즈91]김정희가 들려주는 실사구시 이야기" 내용보기
지난 5월에 초등 4학년 딸래미와 함께 제주도 역사 탐방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우연찮게도 김정희가 유배되었던 제주도~ 대정에 위치한 추사 추모관과 추사 유배지를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추모관에서는 김정희가 유배 가 있는 동안 완성한 그림, 황량한 들판에 소나무들과 집 한 채가 그려진 <세한도>를 볼 수 있었다. <세한도>는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어 있을
"[철학자시리즈91]김정희가 들려주는 실사구시 이야기" 내용보기

지난 5월에 초등 4학년 딸래미와 함께 제주도 역사 탐방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우연찮게도 김정희가 유배되었던 제주도~

대정에 위치한 추사 추모관과 추사 유배지를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추모관에서는 김정희가 유배 가 있는 동안 완성한 그림,

황량한 들판에 소나무들과 집 한 채가 그려진 <세한도>를 볼 수 있었다.

<세한도>는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중요한 그림으로

원본은 따로 소장하고 있고 여기서 본 그림은 복사본이라고 한다.

 

 

 

 

 

 

추사는 유배의 형벌 중에 가장 엄한 형벌로 위리안치 되었는데

우리는 추사 유배지에서 위리안치 되었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위리안치는 집 주위에 가시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형벌이다.

김정희의 귀양살이가 얼마나 힘들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추사 김정희라고 하면 제주도 유배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그의 고향은 충남 예산군이었다. 이곳에 가면 추사고택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 시대의 실학은 넓은 의미로 '인간이 실제로 생활하는 일에서 옳음을 구한다

즉, 실사구시(實事求是)' 라는 뜻이다.

우리는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 91번 째 이야기에서

김정희의 실사구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승곤이네는 몇 년 째 공인회계사 공부를

준비하고 있는 아빠때문에 엄마가 회사를 다니며 겨우겨우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업친데 겹친격으로 엄마까지 회사 구조 조정 대상자가 되어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시골에 계신 외할아버지의 제안으로 승곤이네는 고민 끝에 귀농을 결심하는데

시골 생활이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승곤이 아빠의 태도때문에 외할아버지는

승곤이와 승곤이 아빠를 데리고 서예가이자 실학자인 김정희의 추사고택을

둘러보며 그의 실사구시 정신을 되새겨보게 한다.

 

 

 

 

 

 

추사고택은 조선시대 영조 임금이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인 김한신에게 준 집이라고 한다.

집 안을 둘러보면 안채와 사랑채 문기둥마다 글씨가 쓰인 게 있는데

이것을 '주련'이라고 한다.

주련 중에서 승곤이의 눈에 띈 글귀가 바로 이것이다.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최고의 요리는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

최고의 모임음 부부, 자녀, 손자, 손녀로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쓴 글씨라고 한다.

결국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평범하고 소박한 것에 숨어 있다는 뜻이다.

 

 

 

 

김정희는 실사구시의 정신이 드러난 금석학 연구를 했는데

금석학은 쉽게 말해서 비석에 새겨진 문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람들이 북한산에 있는 비석이 도선의 비석이나 무학대사의 비석이라 생각했던 것을

김정희가 비석의 글씨를 해석하게 되면서 진흥왕순수비라는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여기서 처음 알게 되었다.

실학과 김정희의 실사구시 정신, 금석학, 김정희의 생애에 대한 것을

'철학 돋보기'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

 

 

 

 

 

 

 

승곤이 외할아버지의 실학 교육 덕분에 승곤이 아빠는 좀 더 현실적인 사람으로 변했고,

외할아버지 또한 컴퓨터와 휴대전화 사용법을 배우시면서 실사구시 정신을 몸소 체험하셨다.

실학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고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현대 문명에 맞추어 배워야 할 것은 배우며 살아가는 게

바로 실학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 현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살아가는 방법은

우리 조상들의 정신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리뷰 총점 종이책
실사구시 이야기
"실사구시 이야기" 내용보기
세한도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실사구시에 대한 이야기를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에서 다뤘다는 것을 알고 흥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실사구시의 실학에서 어떤 철학이 나올지 궁금했다. 표지에도 옛날 선비의   대조되는  말과 행동으로 그의 실제적인 일에서 진리를 구한다는 실사구시의 사상을 짐작할 수 있다. 책속 철학 동화는 승곤이 가족의
"실사구시 이야기" 내용보기

 

세한도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실사구시에 대한 이야기를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에서 다뤘다는 것을 알고 흥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실사구시의 실학에서 어떤 철학이 나올지 궁금했다.

표지에도 옛날 선비의   대조되는  말과 행동으로 그의 실제적인 일에서 진리를 구한다는 실사구시의 사상을 짐작할 수 있다.

책속 철학 동화는 승곤이 가족의 귀농으로 시작된다. 실직한 아빠와 일하던 엄마마저 일자리를 잃게 되자 승곤이네 가족은

외할아버지의 제안으로 외가집으로 귀농을 한다.엄마는 살던 곳이라 그런지 빠르게 적응을 하지만 아빠와 승곤이는 잘 적응을 못하고 있어 외가 식구들의  염려를 받는다. 그러던 어느날  아빠와 외할아버지와 함께 승곤이는 예산에 있는 추사고택으로 답사여행을 간다.

거기서 추사 김정희의 실학사상과 김정희의 학문에 대한 것들을 많이 알게된다.  승곤이는 그곳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추사 김정희의 학문과 그림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진흥왕 순수비의 고증과 황초령비 고증등의 진실과 금석학등에 대해 어떻게 김정희와 만나게 되었고 알게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험한  귀양살이 하는 중에도 학문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지낸 김정희에 대해 감탄하며 그 사상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돌아와서도 생활속에서 실천할려고 한다. 실속 없는 명분은 삶에 별 보냄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밝은 미래는 과거와 현재에 충실해야만 오는 것이기 때문에 무작정 환상과 꿈만 가지고 현재를 소홀히 하면 안되고 언제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그리고 아버지도 변하여 기존의 모습이 아닌 정말 인생을 열심히 살려고 하는 자세를 가지고 일상에 임한다.

몇년후 다시 아빠의 취업으로 서울로 돌아가게 된 승곤이네 가족. 엄마는  꽃집을 열고 승곤이도 예전처럼 억지로 다니는  학원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여 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공부도 실질적으로 자기 주도를 하며 학습에 임한다.외가댁에서의 생활을 통해 자연을 느끼고 배우는 삶, 땀 ,배움,노동의 가치등에 대해서 더 생각하고 실천하게 되었고,일방적으로  할아버지께 도움만 받은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할아버지께도 현대 사회에 필요한 컴퓨터,이메일등에 대해서도 알려드린다. 할아버지는 불치하문(손 아랫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다는 뜻)이란 옛말을 인용하며 승곤에게  고마워한다.

 

 

동화 중간 중간 철학 돋보기를 통하여 실학자였던 김정희의 사상과 실학에  대해 좀 더 심화하여 알수 있다.

실학의 발생 배경과  종류와 발전 단계와 영향에 대해 알수 있고  김정희의 사상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생애에 대해서도 알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정희의 글과 그림에는 많은 노력이 숨어있다. 스물네살 과거에 합격한 해 아버지가 청나라로 파견될 때 따라가 옹방강,완원등을 만나 금석학,고증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완원은 추사에게 완당이란 호를 주기도 하였고 주학년은 추사의그림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그러나 당쟁에 휘말려 몇차례의 귀양을 가기도 하였는 데 제주도에서는 위리안치라고 유배의 형벌중 심한 형벌을 받기도 하였다.그런 환경속에서도 학문에 힘썼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 할수 있다. 그는 스스로 "나는 칠십 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바닥까지 뚫어지도록 했고,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것은 그의 노력이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추사 김정희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있다.  다행히도 오늘날도 김정희의 작품들을 볼 수있다. 서울의 봉은사에  가도 볼 수있고, 요즘은 간송미술관에서 추사 김정희의  서예작품을 비롯한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추사김정희의 작품세계는 나이가 들수록 더 완숙해져감을 알수 있다.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나라의 문화와 접목하여 새로운 추사만의 문화를 만들어낸  법고창신의 정신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수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바로 실학정신을 갖는 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현대 문명에 맞추어 배워야 할것은 배우며 살아가는 게  실학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쓴 글로 이만한다.  최고의 요리는 두부,오이,생강 나물이요. 최고의 모임은 부부,자녀,손자,손녀로다.

 

-추사 김정희-

f******n 2014.10.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