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 시민생활 단체에 가입한 아내가 읽던 도서를 책장에서 발견하고 읽어보게 된 책이다. 아내의 후문에 의하면 그 단체의 지역 소그룹에서 권장하는 도서로 아내가 속한 모듬에서는 거의 모든 회원이 이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하였단다. '어떤 이슈를 다루었길래 단체에서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이 책을 읽게 하였을까?' 탄탄한 문장력은 아니지만, 자칫 어려워지기 쉬운 내용을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풀어서 서술함으로써 주부나 어린 학생들에게도 그 뜻이 편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전개하면서도 미국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탄생하고, 진행되어 온 <20세 지배 논리(이데올로기)>의 부당함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강하게 피력된 책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심오한 깊이를 더했거나, 어떤 사회과학 이론을 전개한 책은 아니다. 물론 전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새로운 정보가 없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이 아닌가?'라고. 그렇다. 뭔가 새로운 정보를 얻기를 희망한다면 이 책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새로운 정보를 얻는데 필요치 않다고 본다면 정말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에 대처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준비해야 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임있는 자세이고, 그런 자세가 후손을 위한 당위라고 생각한다면 한 번 쯤 읽어야 할 내용들로 짜여져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 책의 정체는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생활 계몽>도서인 것이다. 책은 "우리는 지금 타이타닉의 현실주의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타이타닉 현실주의란,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않된다고 믿고 있으며, 또 그렇게 행동해야만 그 속에서 비로소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우리의 습관화되고 고정된 사고방식이다. 결국은 빙산과 부딫히면 배가 침몰한다는 것도, 그리고 이대로 나가면 분명히 빙산과 부딫힐 수 밖에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세계의 자연과 문화가 파괴되어 마침내는 살아남을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어가도록 흘러가는 상태에 놓여 있다. 그 배후에는 20세기를 온통 발전의 수렁 속으로 던져 넣은 것은 물론이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타이타닉 현실주의적 <발전 이데올로기>를 성공적으로 주입시킨 집단이 존재한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치밀한 시나리오에 의해 그렇게 이끌어 온 배후조종집단이... 그들은 언제부터, 왜 그런 각본을 쓰고 <발전의 시대>라는 연극의 막을 올렸는가? 질문에 대한 답들은 책에 있다. 아니, 그것은 우리들의 머릿 속에 이미 들어 있다. 다만, 우리가 하루하루 간과하는 가운데 살아갈 뿐이지...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행해지는 무의식적인 우리의 행동들 마저도 미리 예견된 그들의 시나리오였다는 것이니, 과연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생활을 <행복>이라 부를 수 있는가? 아니라고 한다면 진정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요원한 과제일 것일까? 새로운 정보를 주지는 않지만, 우리의 현실과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알게 된 현실과 맞서 싸우는 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결코 과장되지 않은 어조로. 일부 잘못된 견해나 예시를 발견할 수 있음에도 이책을 평가하고 싶은 이유는 그동안 알면서도 행하지 못했던 그 무엇을 돌아보게 만들어 준데 대한 감사의 마음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알고있는 민주주의가 참된 것일까? 발전의 논리는 우리를 언제까지나 풍요롭게 해 줄 것인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인가? 이런 류의 의문을 던지고, 또 깊이 생각해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 요즘 들어 나는 이 책을 다시 한번 읽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때는 흔한 문명비판서적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이 책을 대한 지금은 깊은 울림을 느끼고 있다. 책 처음에 예로 들고 있는 타이타닉호의 이야기도 더욱 실감있게 다가온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질주하고 있는가? 모든 것이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러나 문제는 이제 너무 잘먹고 잘살게 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에 비해 덜쓰고, 보다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주장이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할 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러한 반론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급격하게 모든 것을 바꾸지 말고 가능한 것부터 하나하나 바꾸어가자는것이다. 오늘의 자그마한 실천이 내일은 커다란 발걸음이 될 것을 기대한다. |
| 이 책을 가만 들여다 보고있으면 짙은 초록빛깔에 제목도 범상치않고 다부진 체구지만 왠지 눈빛이 살아움직이는 그런 사람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녹평의 책들은 대체적으로 아무리 덩치가 커도 책 무게는 가벼운데 나는 이런 책들이 좋다. 좋은 종이를 사용해서 만든 책이라도 너무 무거우면 일단 마음에 부담이 된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것인가]라는 책은 우선 제목부터 나에게 낯설었다. 주부지만 가계부 제대로 한번 안써본 날라리에 티비뉴스에서 경제가 어쩌구 하면 바로 오락프로로 채널이 넘어가는 집에 사는 아줌마다 보니 이런 류의 제목은 두려움의 대상이된다. 그런데 말이다. 이 제목.....정말 나도 궁금해졌다. 늘 경제성장을 부르짖는 우리 나라이기에 더더욱 이런 물음이 반가웠다. 정말 경제성장만이 살길인가 말이다.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는 머릿말에서 이런사람은 나의 책을 읽어줄 독자라고 써놓았다. 1.과로에 지쳐있는, 혹은 노동현장의 부자유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샐러리맨이나 사무직 여성을 포함하여) 노동자 2.자신의 밭이 공장화가 되는 것에 혐오감을 갖고있는 농민 3.'경제'(구체적으로 앞으로의 취직)라는 요소가 자신의 교육적 자유에 장애물이 되었다고 느끼고 있는 학생 4.광고산업이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느끼고 있는 소비자(특히 주부) 5.전쟁체험을 기억하고 지금의 일본 정부가 재군비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데 대해 충격을 받고 있는 노인 6.남북문제는 '남'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느쪽인가 하면, '북'의 문제라고 느끼고 있는 사람 7.세계의 자연계가 사멸을 계속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에 염려하고 슬퍼하는 사람 8.왠지 모르게 위기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막연하고, 분명히는 이해하지 못하고있는 사람 위에 열거한 사람중에 나는 몇번에 포함될까...... 하여튼 내가 여태 받아온 교육과 살아온 얄팍한 상식으로 그럴것이다, 그게 맞을거다....생각하며 살았던 모든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 책이다. 이한권의 작고 가벼운 책이 어느날 아무생각없던 한 아줌마의 세상 보기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면 놀라실까? 더글러스 러미스의 직접 구술을 녹취하여 다시정리한 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상식을 강요하기 보다는 새로운 생각거리를 독자 스스로에게 던져주는 책이다. |
| 저자인 더글러스 러미스가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상식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가'입니다. 현실주의는 이상적이고 허황된 생각이 아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입각하여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장보다는 분배를', '전쟁보다는 평화를'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보면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는 거지요. 하지만 러미스는 이런 '현실'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고 어느 특정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축되어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책을 보면서 이전에 미처 생각도 못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슬럼은 근대 건축이다'라고 러미스는 말합니다. 여기서 '슬럼'은 남(南)의 나라들, 남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아시아들의 슬럼을 말합니다. 이런 슬럼들을 보면 건축 재료들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첨단의 재료들입니다. 그리고 슬럼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결국 경제 속에 포함되어 있는 거지요. 그들이 특별히 발전되지 않은게 아니라, 그들도 발전은 했지만 '빈곤의 재생산'으로 인해 결국 변한게 없다는 겁니다. 사실 저도 '어쨌든 발전하는 것은 좋은게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니 정말 당연하게도 그거 말도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파이를 크게 하면 그 조각도 커진다'라는 이론은 결국 파이의 재료가 누구의 것을 착취해서 파이가 만들어지는 가를 생각해보면 간단한 것이었는데, 이런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 러미스가 제시하는 것은 '대항발전'입니다. 이것은 끝도없는 경제성장이 아닌, 경제 이외의 것, 삶의 질을 향상 시켜 보자는 겁니다. 이 부분에서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잘먹고 살산다'의 해피엔딩을 생각했던 저로서는, 좀 이상한 마무리였거든요. 그러고보면 저도 이런 경제구조에 물들어 있나 봅니다. 하긴, 누군 아니겠습니까. 이게 다 '상식'으로 통하고 있는데. 이 책은 미국인이 쓰고 일본에서 출판되었습니다. 그리고 읽은 저는 한국인이구요. 하지만 그렇다해서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렵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읽기 쉬운 문체라서 쉽게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00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뒤떨어지는 책은 아닙니다(이점은 좀 아쉽긴 합니다만). 심지어 마지막 글인 '영어회화의 이데올로기'는 대체 지금의 한국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책은 재생지라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도 쉽고, 읽기도 쉽고, 가격도 쌉니다. 게다가 책을 참 깔끔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이 좀 이상하다 생각했던 분들은 한번쯤 읽어봤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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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이 책 제목을 두고 경제는 발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고방식이 경제학의 객관적 결론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결론으로, 가난, 부유함은 정치적인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있다는 경제발전론의 발상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현실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장본이기에 머릿속을 비우고 냉정하게 생각해보자고 이 제목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가지며 이책을 보게 되면 경제가 나아지고 그러면 나도 좀더 여유롭고 부유한 생활을 하게될 것이라 꿈꾸는 이들의 오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인의 시각으로 본 일본 사회를 보며 쓴 글이지만 한국의 모습을 함께 투영해 볼 수 있는 알찬 책이다. 함께 읽고 싶은 책
<미국의 민주주의 1,2> A. 토크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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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번역서를 추천할만 한가? 개인적으로 무척 짜증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책의 내용이 빈약해서인가? 아니다. 책의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내용으로 보면 현대의 지성인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번역서의 번역에 있다. 채을 조금 읽어가다 보면 우리는 쓰지 않는 일본식 표현들이 사정없이 사용되고 있다. "비상히 폭력적인" "비상히 현실주의적인" 등등 '비상히'란 우리말에도 없는 일본어와, 한국인을 '조선인'이라고 표현하는 등 번역자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번역이 무수하다. 일본어로 된 책을 쉽게쉽게 번역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녹색평론에서는 이번 기회에 역자를 바꾸어 다시 우리말 답게 새 번역을 내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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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던 날들이 계속됐다. 필요없는 외출은 자제하고, 휴일에도 집에만 갖혀 있었다. 꼭 나갈 일이 있으면 미세먼지를 상당부분 걸러낸다는 식약청 인증 마크가 찍힌 마스크를 착용했다. 하지만, 결국 외출을 피할 순 없었다. 출, 퇴근길엔 담배 연기에 준한다는 그 미세먼지를 잔뜩 흡입한 날도 있었다. 그 뿌연 안개를 보며 이것이 과연 꿈이 아닌지 헷갈렸다. 불과 2~30년 전, 내 어린 시절의 세상을 생각해 봤다. 맑고 한없이 투명했던 푸른하늘과 풍경들이 말이다. 과거 맑은 공기와 풍경은 상식이었다. 물을 사먹는다는 경제 관념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해서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 이야기가 동화책에 나오기도 했다. 2011년 태평양을 마주보고 서 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기 전까지 생선을 먹는 일에는 아무 거리낌도 없었다.
생각해 보라. 공기,물,음식 ...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존재하는데 필수적인 요건들이다. 사람들이 막대한 노동과 시간을 투자해, 갖기 소망하는 고급 아파트, 비싼 자동차들과는 차원이 다른 물질이다. 사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천원이면 살 수 있는 생수 한 통이다. 그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 출신의 정치,경제학자이자 1980년 이래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운동가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는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 펴냄, 2002년)에서 현대 자본주의와 경제발전, 그리고 민주주의와 빈부 격차, 일과 소비 중독, 세계화 등에 관한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마구 뒤엎고 있다.
문제는 아무도 그 상식을 의심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상식 자체가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단단히 주입돼 있다. 경제란 발전하는 것이 선이고 마이너스 성장의 길로 들어서면 악이다. 세계의 모든 정부와 정치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역사관이나 종교, 민족성, 언어 등은 다르지만, 이 생각만큼은 세계평화를 이루고도 남을 정도의 공감과 일치를 이룬다. 하여, 경제발전은 신념이자 상식이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적인 기후변화나 중국발 미세먼지나, 식수의 오염이나, 방사능 공포 등이 이 상식에서 기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경제성장이란 상식은 수정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 경제제도, 즉 생산수단, 생산의 제관계는 절대적, 근원적으로 환경에 종속돼 있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경제제도의 하부구조는 틀림없이 바뀝니다. 환경이 파괴되면 경제제도도 파괴됩니다. 아무리 자연환경을 무시하고자 해도 인간이 생물인 이상 그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극단적인 무관심 혹은 현실도피형의 인간이라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변화는 곧 반드시 일어납니다." 167쪽,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러미스
오늘날 많은 나라의 정부들은 경제성장이 되면 빈부격차가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러미스 교수는 빈부의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은 경제발전이 아닌 `정치의 문제'라 단언했다. 오늘날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양극화다. 경제가 발전했지만 왜 빈부차이는 해소되지 않는가? 모두가 부유한 사회란 실현 불가능하다. 사회적 자본이란 한정 돼 있고 자유시장경제에서 능력에 따라 부의 편중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하여, 빈부격차를 `정의'의 문제로 되돌릴 때 이 문제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진행될 수 있다. 결국 모두가 부유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호언은 경제발전이 아닌 `정의로운 분배'를 가능케 하는 `올바른 정치'를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이 책의 논의는 실로 다방면에 이른다. 우리 세계와 사회, 정치와 경제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으로 관찰하고 분석하는 러미스의 통찰력은 `상식의 파괴'에 가 닿는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적인 러미스의 사상은 과연 세계 경제와 환경이 지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경제발전을 선으로 포장하고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꿈꾼게 지난 20세기의 역사였다.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로 전환한지 불과 100년만에 지구는 빙산에 침몰당한 타이타닉호의 운명을 닮아가고 있다고, 러미스는 평가한다. 사람들은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공장과 일터에서 보내고 있다. 국가는 경제발전이란 신화를 교육으로 주입하며 무차별적인 개발을 지속해 왔다.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일상의 환경 문제가 이와 연관돼 있다.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근접하기 바로 전까지 그 안의 구성원들은 저마다 자신이 맡은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 일해 왔다. 얼마 후 차가운 바닷물에 빠져 최후를 맞는 탑승객들의 운명은 하나뿐인 지구위에서 경제발전을 상식으로 알고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깨끗한 공기, 맑은 물, 적당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는 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발전은 환경을 파괴하고 이룩해야할 절대 목표가 아니다. 하여, 저자는 `대항발전'과 `제로성장'이라는 대안을 내 놓는다. 그것은 돈은 적게 벌고 소비는 줄이며, 일은 덜 해서 다른 의미에 닿는 행복과 삶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 대항발전은 경제는 성장하지 않아도 좋다, 그 대신 의미없는 일 혹은 세계를 망치는 일, 돈밖에는 아무런 가치도 나오지 않는 그런 일을 조금씩 줄여가자는 것입니다. 싫은 일을 줄이고 의미 있는 일만을 추구하는 것은 금욕주의도 뭐도 아니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바라지 않는 일로 잔업까지 하면서 과로사 직전인데도 끊임없이 일을 하는 삶이야말로 금욕주의라 해야 하지 않을까요." 111쪽
벤자민 프랭클린은 "시간은 금이다"고 했다. 미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초석을 다진 그가 이 말을 내뱉을 때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이 금언속에 `발전'의 개념이 내포해 있다고 진단한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돈 벌 기회를 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쓴 말이다. 하여, 이제 이 말을 "금은 시간이다"란 말로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이 시간이란 의미다. 경제 발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때, 그간 수단은 항상 긍정돼 왔다. 그 결과가 환경파괴 였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 저하였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나서 다양한 토목사업을 진행해야 했지만, 그곳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돈으로 살 수 없었다. 원주민들이 돈의 개념을 몰랐고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침략자들은 총칼을 앞세운 강제동원을 통해 그들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소중했던 것은 유럽인들이 가져온 희귀한 물건을 사는데 필요한 돈이 아니라, 지금까지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시간'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자발적인 노예로 살아가고 있단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했던 대의제, 이것은 본래의 민주주의가 아닌 귀족제의 변형이란 사실을 아는가? 20세기 최대의 살인자는 국가였고, 그 대상은 바로 자국민이었다. 원자력은 체르노빌 사고 이전까지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최첨단 발전 방식이었다. 당신의 상식을 의심하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