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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록을 읽다보면 누구든 수필에도 격이 있다 느낄 것이다. 그의 글의 생명은 역시 문장의 표현력에 있다. 한자어가 많지만 고어투의 고루함이 있는 것도 아니요, 우리말을 구사할 때도 저잣거리의 시쳇말 같은 속됨이 담긴 것도 아니다. 대개 수필가의 글쓰는 자세가 그렇겠지만 허투른 구석이 없이 꼼꼼한 심려가 느껴진다. 그의 글을 읽는 나는 그만큼 '반드러워져야' 한다고나 할까, 서투른 독서는 오히려 결례가 될까 삼가게 된다.
이태준의 자취를 느끼고 싶어 일전에는 성북동의 '수연산방'을 찾았다. 무서록에는 성북동 시절의 이야기가 간간이 담겨 있다. '목수들'에서는 집을 짓는 일화가, '파초'에선 성북동에서 제일이라던 파초 자랑이, 그리고 '성'에선 매일 아침 올려다보던 성벽에 대한 감상이 더불어 그의 사람됨을 전하고 있다. 나 역시 무서록을 들고 마당에 서 같은 성벽을 찾아보았다. 지금은 산 능선의 경치마저 변해버려 감흥이 달라졌지만 그의 심사를 아주 잃어버린 느낌은 아니었다. 조선 집이 좋아 지었다는 수연산방은 이제는 전통찻집이 되었지만 이를 통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늘어나니 오히려 반길 일일 것이다.
수필은 개인적인 문학이라곤 하지만, 그의 글에는 점잖은 세태 비판 이상의 저항적인 면모가 거의 없다. 나는 이것이 그의 약점처럼 느껴졌다. 수필은 '자기의 심적 나체'라고 정의한 그인 만큼, 참여적 경향이 너무 옅은 것도 스스로의 심적 나체를 더욱 벌거벗기우진 않았을까? 그리하여 끝내 43년 절필을 선언하게 되고 돌아온 45년에는 좌익으로 경도되어 순수문학적인 견지를 잃어버린 그의 이력에 이러한 약점이 작용한 건 아닌가 하는 추측마저 든다.
그러나 그의 수필은 역시 조선의 수필이다. 고완품의 정수에서 조선의 멋스러움을 발견하듯 그의 수필은 우리 언어와 우리 정서의 살아있는 숨결 노릇을 하고 있다. 아마 당대의 독자들은 그의 수필을 읽으며 호흡다운 호흡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의 문학적인 성취는 정신적인 성취에 다름 아니라고 여긴다. 이런 연유로 나에겐 더더욱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인상깊은구절] 어느 때나 웃자리가 어울리는 법은 아니다. 더러는 넌지시 말석에 물러섬도 겸양 이상 자기 화장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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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에는 작가가 살았던 '수연산방'이란 곳이 있다.이제는 찻집으로 역활이 바뀌긴 했지만 기분은 늘 묘하다.게다가 작가의 명성에는 아직도 한참 미치지 못할 정도 밖에 알지 못하면서도 이상하게 자꾸 찾게 된다.그리고 <문장강화>는 여전히 완독을 하지 못한 미완의 독서로 남아 있는 상태.그 상황에서 수필집을 만났다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몇 해 전의 경험을 인용해 표현하자면 <책은 도끼다>덕분에 고전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 것처럼 <무서록>이 <문장강화>를 읽게 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무서록> '두서 없이 기록한 글'이란 뜻이 되겠다.서문은 따로 없다. 이태준선생에 대한 작가론에 대한 간결한 글이 서문을 대신한다. 서점에 서서 '벽'에 관한 글을 살펴보다 바로 구입했다.사물에 대한 선생의 표현력이 감탄을 자아냈기 때문이다.수필을 읽으면서 이렇게 밑줄을 많이 그어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사물에 대한 통찰력은 그 나름의 매력으로.예술에 대한 사상은 또 그 나름으로 본받고 배우고 싶어지는 열망이 읽는 내내 꿈틀거려 행복한 비명을 질러 가며 읽었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이들이 어째서 선생의 <문장강화>를 필독서로 꼽았는지 이해가 팍팍 되는 느낌을 받는다.
"기질에 맞는 것을 쓴 작가에게는 상식 혹은 개념이상의 창조가 있다.그러나 기질에 맞지 않는 것을 쓴 작가에게는 기껏해야 상식이요.개념 정도다.종교는 윤리학이기보다는 차라리 미신이기를 주장한다.문학은 사상이기보다는 차라리 감정이기를 주장해야 할 것이 철학이 아니라 예술인 소이(所以)다.감정이란 사상 이전의 사상이다.이미 상식화된 학문화된 사상은 철학의 것이요,문학의 것은 아니다."/53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내용에 실린 글로 작가로서 가져야 할 고뇌였겠지만,읽는 동안 책을 읽는 이가 품어야 할 자세로도 중요한 무엇을 깨닫게 된 느낌이 들어 읽고 또 반복해서 읽었던 부분이다. 두서 없이 쓴 글이라지만 너무도 알찬 내용들로 꽉 찬 수필집이었다.수필이라고 하면 적어도 이정도는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 만큼.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작은 문고판으로 기획된 책이여서 책 속에 언급된 한자들에 대한 주석이 없었다는 점.일일이 다 찾아 가며 읽기에는 모르는 한자 자체가 너무 많았다.외우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고사성어들이 꽤 많았지만 다 찾아 내질 못했다.그러니까 이 수필 역시 내게는 미완의 독서가 되어 버린 셈인데,틈날때마다 한자들을 찾아 가며 찬찬히 읽어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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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서평 [무서록] 이태준, 범우사, 2009 · 책 제목 무서록(無書錄)은 ‘두서없이 쓴 글’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말하는 수필에 해당하는 글이다. 이 책의 저자 상허 이태준은 해방 이후 월북해서 초기 북한 문학 형성에 이바지했다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현대수필의 기점을 1947년 김진섭의 [인생예찬]과 이양하의 [이양하 수필집]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무서록은 1941년 초판이 출판되었다. 이념을 넘어서 문학적 가치로만 평가한다면, 수필이라는 이름 대신 무서록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 상허 이태준은 1930년대 ‘시는 정지용, 소설은 이태준’이라고 불린 만큼 당대의 문장가였다. 이러한 이유로 상허를 소설가로서만 알고 있지만, [무서록]에서 보이는 간결하면서 아름다운 문체와 [문장강화]에서 보여주는 탁월한 문학적 식견은 우리문학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였다는 것에 동의해야 할 것이다. · 개인적으로 상허를 생각하면 백석이 떠오른다. 백석 또한 월북 작가로 분류되어서 현대 문학사에서 소외되었던 인물이다. 어느 젊은 시인은, 백석의 시(詩)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시인(詩人)들이 가장 좋아하는 10인의 시인에 뽑힐 만큼 그의 작품도 탁월하다. · 상허는 이념에 따라 북으로 갔지만, 백석은 단순히 고향으로 갔다. 아이러니하게 상허는 1950년대 숙청당했고, 백석은 북한에서 꾸준히 창작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명한 것은 두 사람 모두 북한 체재를 찬양하는 글을 썼고, 그 글들이 한국인에게 거부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든 그들의 작품을 숨겨둘 필요는 없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활발한 재평가를 통해서 우리문학의 우수성을 다시 확인했으면 좋겠다. ----------------------- 물
나는 물을 보고 있다. 물은 아름답게 흘러간다. 흙 속에서 스며나와 흙 위에 흐르는 물, 그러나 흙물이 아니요 정한 유리그릇에 담긴 듯 진공 같은 물. 그런 물이 풀잎을 스치며 조각돌에 잔물결을 일으키며 푸른 하늘 아래 즐겁게 노래하며 흘러가고 있다. 물은 아름답다. 흐르는 모양, 흐르는 소리도 아름답거니와 생각하면 이의 맑은 덕, 남의 더러움을 씻어는 줄지언정. 남을 더럽힐 줄 모르는 어진 덕이 이에게 있는 것이다. 이를 대할 때 얼마나 마음을 맑힐 수 있고 이를 사괴일 때 얼마나 깨끗이 할 수 있는 것인가! 물은 보면 즐겁기도 하다. 이에겐 언제든지 커다란 즐거움이 있다. 여울을 만나 노래할 수 있는 것만 이의 즐거움이 아니다. 산과 산으로 가로막되 덤비는 일없이 고요한 그대로 고이고 고이어 나중날 넘쳐 흘러가는 그 유유무언(悠悠無言)의 낙관(樂觀),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독에 퍼 넣으면 독 속에서, 땅 속 좁은 철관에 몰아놓으면 몰아넣는 그대로 능인자안(能忍自安)한다. 물은 성(聖)스럽다. 무심히 흐르되 어별(魚鼈)이 이의 품에 살고 논, 밭, 과수원이 이 무심한 이로 인해 윤택하다. 물의 덕을 힘입지 않는 생물이 무엇인가? 아름다운 물, 기쁜 물, 고마운 물, 지자(智者) 노자(老子)는 일즉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였다. (본문 17쪽에서 18쪽) * 옛 문장 그대로 옮겼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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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몽테뉴가 '수상록(隨想錄, Essais)'이라는 말을 자기 책의 이름으로 쓴 이래, 이 말은 수필집을 일컫는 대명사처럼 되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수필이라는 장르 명칭이 사용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중국에서도 명나라의 홍자성이 글을 지어 책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을 '채근담(菜根譚)'이라 하였습니다. 송나라 학자 왕신미의 글 "사람이 언제나 나물 뿌리를씹을 수 있다면 모든 일을 이루게 될 것이다"라는 글에서 '나물뿌리'라는 뜻의 채근을 따온 듯 합니다. 그 이름에서부터 청빈한 삶이 짐작됩니다. 두 책 모두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까지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상허(尙虛) 이태준의 《무서록(無書錄)》도 수필집입니다. 뜻을 풀어 쓰자면 '두서 없이 쓴 글' 정도 되는데,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붓가는 대로 쓴 글이 수필이니 그 뜻이 잘 통한다 하겠습니다. 이태준은 《무서록》보다 1년 전에 출간된 그의 명저 《문장강화》에서 수필이란 장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누구에게 있어서나 수필은 자기의 심적 나체다. 그러니까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세사(世事) 만반에 통효(通曉)해서 어떤 사물에 부딪치든 정당한 견해에 빨라야 할 것이요 정당한 견해에서 한 걸음 나아가 관찰에서나 표현에서나 독특한 자기 스타일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말 대로라면 수필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글입니다. 그저 붓가는 대로 두서 없이 쓴다 해도 거기에는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자기의 미'를 담은 정신을 발가벗긴 채 드러내야 하니, 풍만한 이와 빈약한 이가 금방 드러날 것입니다. 시체 수필을 40대 이후의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준이 30대에 쓴 《무서록》에서 발견되는 사물과 인생에 대한 깨달음의 경지는 자못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일찍이 '산문은 상허(이태준의 호), 운문은 지용'이라 하는 말도 있고, 당대에 문학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 우리 글의 문장을 익히는 사사의 본으로 삼았던 《문장강화》를 지었으니, 그 문장의 유려함이야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장도 문장이거니와 고작 30대에 세상을 관조하는 심오한 깊이가 느껴지니, 저 역시 30대임에도 차마 이러한 경지는 꿈도 못꾸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무서록》은 상허의 나이 37세인 1941년에 출간되었습니다.)
하늘 높은 가을에는 수필 읽기가 제격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저와 같이 가을을 심하게 타는 이들에게는, 쉽게 읽히면서도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급(級) 높은 수필이야 말로 심란한 마음을 다잡아주는 가을날의 상비약과도 같습니다.
수필은 직접 읽어봐야 맛입니다. 제가 아무리 평한들 무슨 느낌이 있겠습니까. 〈돌〉이라는 제목의 글을 그대로 옮겨 싣겠습니다. [인상깊은구절] 지난밤에 찬비를 맞으며 돌아온 우산이다. 아침에 나와 보니 거죽에 조그만 나뭇잎 두엇이 아직 젖은 채 붙어 있다. 아마 문간에 선 대추나무 가지를 스치고 들어온 때문이리라. 그러나 스친다고 나뭇잎이 왜 떨어지랴 하고 보니 벌써 누릇누릇 익은 낙엽이 아닌가! 가을! 젖은 우산이 자리에서 나온 손엔 얼음처럼 찬 아침이다. 뜰에 내려 화단 앞에 서니 화단에도 구석구석에 낙엽이 보인다. 어쩐지 앵두나무가 꺼칠해졌고 살구나무도 끝가장귀들만 푸른 빛이 흔들릴 뿐, 굵은 가지들은 엉성하게 줄거리만 드러났다. 낙엽이 놓여 그런지, 눈에 선뜻 화단도 파리해졌다. 틈틈이 올려 솟는 잡초를 거의 날마다 한 웅큼씩 뽑아 주었는데 그것을 잊은 지 며칠 동안 화단은 상큼하니 야웨졌구나! 우썩우썩 자라던 힘이 한밤에 정지한 듯, 빛낡은 꽃송이들은 씨를 물고 수그렸고 살내린 가지 및에는 벌레 소리만 어지럽다. 과꽃과 코스모스가 아직 앞날을 보이나, 그들의 꽃은 워낙 가을 손님, 추풍(秋風)과 함께 설렁설렁 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잠깐이려니 생각하면 가을꽃의 신세는 피기도 전에 서글프다. 오래 볼 것이 무엇인가? 화단을 아무리 둘러보아야 눈에 머무름이 없다. 어느새 웅긋줄긋 올려솟는 것은 단을 모은 돌멩이밖에. 돌! 나는 다시 마루로 올라와 아침 찬비에 젖는 잡석(雜石)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좀더 돌에 애착하지 못했던 것이 적이 부끄러워도 진다. 동양화에 석수도(石壽圖)가 생각난다. 또 동양의 선비들이 돌석(石)자를 사랑하여 호(號)에까지 흔히 석자를 가진 것도 생각난다. 그것은 돌의 그 묵직하고 편안하고 항구한 성품을 동경한 때문이리라. 생각하면 돌은 동양인의 놀라운 발견이다. 돌을 그리고 돌을 바라 보고 이름까지 즐겨 돌로 부른 동양 예술가들의 심경은, 찰나적인 육체에 붙들린 서양인의 그것에 비겨 얼마나 차이 있는 존경할 것이리오! 돌! 가을 아침 우연히 비맞는 잡석을 보며 돌을 사랑한 우리 선인들의 청담고박(淸談枯朴)한 심경을 사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