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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에서 얀은 언제나 철저한 에고이스트로서, 자신이 지향하는 단 하나에 뜻을 두고 살아간다. 그것은 무엇일까?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철학이며 사상·이데올로기·종교 따위에 구애되지 않고, 여기에 사는 것과 저기에 사는 것, 살아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과의 관계를,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가능한 가장 아름다운 형상으로 보려는 것인가'고 짐작해 볼 뿐이다."(179쪽) 내가 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얀이 에고이스트거나 개인주의자라서가 아니다. 고양이 얀의 모습에서 인간미를 갖춘 아나키스트의 면모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치다 준이 얀을 에고이스트로 간주한다면 에고이스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좀 독특한 것이다. 내가 맨 처음 얀 이야기를 접했을 땐 진정한 에고이스트는 카와카마스라고 섣부르게 생각했지만 이런 짧은 생각도 책을 읽어가며 이내 사그러져 버리고 말았다. 카와카마스는 그저 연예인 끼가 다분한, 달리 말하면 전형적인 예술가 기질을 보이는 등장 동물로 여겨진다. 이 책에서 카와카마스는 바이올린이란 악기와 음률에 매혹되어버린 천재 음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말그대로 타고난 만능엔터테이너가 카와카마스가 아닐까. 그의 음악적 동지이자 비올라 연주자인 카와멘타이도 귀여운 케릭터다. 여러분도 보로딘 4중주단의 안단테 칸타빌레(차이코프스키)와 녹턴(보로딘)을 들으며 얀의 두번째 이야기를 읽어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