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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남성. 이 둘의 성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연일 미디어가 떠들어 대고 있다. 사실 여성과 남성의 갈등이 없었던 때가 이상한 시대였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억누르지 않고서야 어떻게 갈등이 없을수가 있나.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싸우고 치고 박고 하면서 어디서 뭐가 어떻게 곪고 있었는지 들여다 보는 시기가 되었다. 다행한 일이다. 이것이 밖으로 터지지 않았다면 한국사회가 어떻게 될 지 모를 일이다. 이 만화에서 린의 엄마는 빌런처럼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만화는 린이 완전한 외톨이로, 부모 모두에게 버림받은 캐릭터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이키치가 끼어들면서 둘 만의 세계에서 행복한 이야기. 이게 바로 독자들이 바라는 방향이다. 그런데 린의 엄마인 마사코는 의외로 처음부터 등장한다. 다이키치의 전화도 받고, 할아버지 집에서 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첫인상은 린의 10년 후. 아직 아이같아 보이는 마사코는 만화를 그리는데 온 정신을 바친다. 아이를 임신한 사실도 몰랐다가 없애려는 그를 할아버지가 낳으라고 설득을 했다. 린을 임신해있으면서도 일기도 쓰고 아기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기계적으로 모두 했다. 하지만 낳은 아기를 보는 것도, 자라는 아이를 보는 것도 행복하지가 않다. 잘 팔리지 않지만 만화그리고 편집자와 일하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 그런 생각이 들면 당연히 아이가 싫어지게 된다. 태아가 자라면서 몸안의 공간을 차지하게 되면 장기들은 조금씩 자리를 비켜난다. 척추로 곱고, 방광과 대장 사이에 위치해 장기를 압박한다. 방광에 오줌이 한 방울만 들어와도 당장 쌀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화장실을 5분에 한번씩 왔다갔다해야 한다. 태아 포함 수십킬로그램의 무언가가 몸안에서 커지는데 걸어다니는데 편할리가 있다. 어깨는 앞으로 쏠리고 가슴은 아프고 하체는 끊어질듯하다. 그게 10개월. 엎드려 자고 싶어서 통곡을 하고, 회사에 두고온 내가 다 만든 프로젝트는 다른 사람이 팀장을 맡았다. 아기가 나올 공간을 위해 가위로 생살을 자르고 그래도 아기가 나오지 않아 간호사는 배위를 올라타서 온 몸을 누른다. 아기를 몸에서 제거하고도 몸에서는 피와 이물질들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나와서 기저귀를 차야 한다. 미운 사람이 있으면 외치고 싶다. 임신해라!!! 이런 과정을 거쳤는데도 마사코는 린을 보기에, 아, 잘 자라고 있구나. 나는 이렇게 린을 잘 키우지 못해.라고 말한다. 너무 담백해서 설득력이 있다. 사회적으로 아기를 키우는 행위와 노력을 엄마에게 책임을 강요한다. 재정적으로 가장 싸기 때문이다. 모성애가 없는 엄마를 악마로 규정시켜 놓으면 악마가 되지 않기 위해 엄마들은 죽을 노력을 한다. 보다시피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엄마를 비난하는 대부분은 엄마들이다. 나도 해내는데 왜 너만 빠져나가!라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미디어에서 대단한 엄마들에 대해 찬양을 하면 언짢다. 엄마들은 원래 모성애를 타고 나서 당연히 하는게 아니다. 참고, 참고, 참고, 또 참는거다. 그걸 역시 엄마들은 대단해!라고 한마디로 퉁 치는 행위는 저열하다. 신이 바빠서 엄마를 보내줬다.라는 말은 대체 누가 왜 한건지. 왜 엄마에게 신이 해야 할 일을 강요하는건가. 엄마는 사람이다. 사람이지만 최선을 다해 자식을 낳고 기르는 건데, 자꾸 원래 엄마는 신을 대신해서 보내온 것 처럼 몰아가니까 당췌 숨을 쉴 수가 있냔 말이다. 얼마전 골든 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산드라 오는 지금은 종영한 그레이즈 아나토미에서 크리스티나 양이라는 의사로 나왔다. 그는 주인공 매러디스 그레이와는 달리 모성애가 없다. 따라서 결혼을 했고 어쩌다 아기가 생겼지만, 이 아기를 키울 생각이 없다. 아기를 키우게 되면 본인이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모든 동기들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녔는데, 임신과 출산으로 그 자리에 다시 올라갈 수 없다. 왜? 나는 최선이 아닌 최고를 원하니까. 그래서 크리스티나는 남편의 반대에도 낙태를 한다. 낙태를 해야한다, 하면 안된다를 말하고 싶은게 아니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크리스티나처럼 아예 최고가 되기 위해 주변에 신경 써야 할 모든 것을 제거하기 위해 아기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을수 있다. 그게 꼭 나쁜 건가? 그게 아기이기 때문에 무조건인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마사코는 린을 낳고 자신만의 삶을 찾아 떠났다. 할아버지가 린을 맡아줬으니까. 이 만화 초기에 마사코가 등장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마사코가 죽을 죄를 지었나? 그게 아니지 않나?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내가 이해할 필요는 없다. 마사코가 내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 다이키치가 마사코를 만난 후에 오히려 안심하는 장면이 있다. 그제야 나는 왜 마사코가 한 사람으로 보였다. 내내 린의 무책임한 엄마였다가, 어린 나이에 임신한 출산을 하고 잘 팔리지도 그리 잘 그리지도 못하지만 하고 싶은 만화를 그리고 있는 어떤 사람. 밥 하기 귀찮아서 하루 종일 푸딩만 먹는 빼빼 마른 20대 초반의 여자. 이 만화는 계속해서 마사코를 등장 시키면서 린의 엄마라는 그림자에서 조금씩 빼내고 있는 느낌이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버리고도 마사코는 성공한 만화가가 아니다. 그게 마사코의 선택에 고개 끄덕이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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