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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화랑 바도루 이야기를 읽고 난 후부터 강숙인의 책에 빠지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 왕자와 초원의 별을 읽으며 작가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 소설에 매력을 느껴 자꾸 읽게 된다. <<지귀, 선덕여왕을 꿈꾸다>>를 보는 순간 반가움과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역시 이 책도 나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고 치밀한 이야기 구성과 탄탄한 전개로 읽는 이로 하여금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지귀 설화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이 흥미진지하게 전개된다. 여왕도 한사람의 인간이었으니, 왜 번민과 고뇌가 없었겠는가? 더구나 너무 늦게 찾아온 가진에 대한 사랑은 어떠했겠는가? 일개 평민인 지귀를 만나준다거나, 가진과 그 일가족들이 처형당할 때 그의 아내 설화와 어머니를 피신하게 해 주는 장면에서는 여왕의 따뜻한 인간적인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준다. 젊었을 때는 남다른 지혜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여왕이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백제의 끊임없는 침공으로 위태로운 상황에서 얼마나 많이 잠 못 이루며 번민을 했을까? 김춘추는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위기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고, 비담과 염종은 자주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란다. 결국 반란 속에 여왕이 홀로 사모하던 가진을 보낸다. 얼마나 애닮고 슬픈 이야기인가.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접목으로 새로운 역사가 탄생되는 순간, 독자들은 그 허구마저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지귀, 선덕 여왕을 꿈꾸다>>를 읽으며 1500여년 전의 선조들을 생각해 본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못 다한 사랑과 못 이룬 꿈을 간직하고 죽어간 선덕여왕, 가진, 지귀를 그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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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인 작가의 소설을 연달아 두 권 읽었다. 먼저 읽은 심청이 이야기가 무겁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에 비해 이 책은 '진짜 역사물'(?)이라서 조금더 부담을 안고 시작했다. 그런데 솔직히 읽고 난 소감은, 청이 이야기보다 이 책이 훨씬 더 재미있고 감동도 더하고 여운도 길었다.
작가의 말에서, 강숙인 작가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비담과 염종이 여왕이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여 반역을 꾀하고 군사를 일으켰다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짧은 기록을 보고 이 책을 구상하였다고 했다.
두 줄의 기록을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편 작가는 비담과 염종, 그들의 아들인 화랑 가진과 그의 낭도인 지귀를 통해 여왕의 가진에 대한 사랑, 그래서 '반역'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행동도 마음속으로는 모두 이해할 수 있었던, 오히려 반역이 실패한 후의 그들의 인생과 가족을 염려한 모습을 그려 보였다. 비담과 염종이 실제 인물이라 하니 그의 아들이 가진이나 또다른 화랑이 법민 정도는 실제 인물일 수 있겠으나 지귀까지도 실제 인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뜻하지 않게 휘말려 끝내는 타오르는 탑과 함께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지귀의 모습에서 가슴 찡함과 동시에 흐르는 역사 속에서 작고 미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한 존재감이 무겁게 울려온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평소 역사물에 알러지가 있어서 ^^; 괜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젯밤 모든 가족이 잠든 조용한 시간에 혼자 부엌 식탁에 앉아 이 책을 읽으며 역사물의 매력을 처음으로 깊이 느꼈다. 강숙인 작가의 다른 책들도 모두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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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바라보는 지귀설화]
강숙인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는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역사의 한자락이 정말 그것이었을까? 하면서 다시금 뒤돌아 보게 만든다. 역사소설을 주로 쓰고 있는 강숙인 작가는 우리 역사의 한부분을 기준으로 그 주변 상황을 연관되어질만한 다양한 상상력으로 엮어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마의 태자의 이야기를 그린 [마지막 왕자]를 읽을 때도 그랬고 선덕여왕과 지귀에 대한 이야기가 바탕이 된 [지귀, 선덕 여왕을 꿈꾸다]역시 그러하다.
이 작품을 읽다가 말고 지귀설화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가물가물해서 다시금 설화 내용을 살펴보았다. 어려풋한 기억속에서 다시금 생각나던 자귀 설화의 맥은 사랑이었다. 선덕여왕을 너무도 사랑해서 화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지귀. 그러나 작가는 이런 일반적인 지귀설화의 이야기를 새로운 방향에서 풀어나간다. 선덕여왕 말기에 반란을 일으켰던 비단과 염종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찾아 지귀와 비담과 염종, 김춘추와 김유신, 화랑 등을 이야기 속에 등장시킨다.
사실 이 작품을 읽어보면 선덕여왕에 대한 지귀의 사랑은 느껴지지 않는다. 선덕여왕을 사랑한 것은 광덕이고 여왕이 사랑한 것은 가진이라는 화랑이었다. 지귀는 김유신의 신세를 지고 반대파인 가진의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지귀는 가진의 참모습을 보고 그 모습에 애틋함을 느끼지만 결국 그의 거사를 따를 수는 없는 입장에 처한다.
이 작품 속에서 지귀가 선덕여왕을 만나고자 한 것은 자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함이 아니라 가진을 둘러싼 상황을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때문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지귀설화와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이 그려지고 있다. 사랑의 전설이라기 보다는 그 속에 더 많은 아픔과 역사 ,그리고 더 깊고 아픈 사랑이 담겨있는 설화로 달라지는 느낌이 든다.
책장을 덮으면서 누가 누구를 사랑했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속에 그려진 인물들의 인연도 색다르지만 솔직히 이러한 역사의 한 상황을 그려낼 수 있는 작가의 상상력에 더욱 감탄하게 된다. 역사을 암기하고 파악하는데서 그치기 쉬운 우리들에게 더 깊이 숨어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핟록 하는 진지함이 강숙인 작가의 작품 속에는 숨어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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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과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냥 선덕 여왕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만 알고 있는데 마침 얼마전에 그에 대한 책을 읽었고, 또 신라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역사에 대해 조금은 윤곽이 드러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기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지식이 조금씩 연결되는 것을 느끼자 마치 당시 역사를 꽤나 알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역시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동시에 조금 아는 걸 가지고 꽤나 아는 척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많이 아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을 의심하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 더 알아보려 노력할 텐데. 역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선덕 여왕에 대해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가 있다. 지귀에 대한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단순히 한 인물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서 인물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왜 지귀가 선덕을 만나고 싶어했는지를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이 이야기겠지. 단순히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뒤에 더 큰 이야기가 있을 것이고 대의명분에 따라 움직이는, 신라를 이야기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인 화랑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생각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정치가 있는 곳이면 서로 견제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고 때로는 한쪽이 큰 화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틀에 지귀라는 인물을 올려놓고 그의 번민과 인간적 고뇌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시대적 상황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이런 일이 있을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은 역사동화를 읽으면서 무수히 갖는 생각이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를 마주했을 때 나는 절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마도 이것은 작가만의 능력인가 보다.
주로 무거운 배경을 동화로 엮어내는 작가라서 처음엔 다소 분위기가 무겁고 비장하며 가라앉았다는 생각에 경쾌한 어떤 것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왕과 그 주변 신하들이니 분위기가 무거운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뒤로 갈수록 점점 인물에 빠져들어서 차분하게 읽게 된다. 작가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지배층 이야기던데 피지배층을 등장인물로 다룬 역사동화를 만나고 싶어진다. 과연 어떻게,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궁금하다. 절대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여전히 담담하면서도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들려주지 않을까. 이 책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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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는 선덕여왕은 젊고 아름다우며 하늘거리는 금관 아래 영롱한 귀걸이를 한 모습이다. 그분의 예순 넘은 나이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아버지 진평왕의 재위가 53년 동안 이어졌고, 선덕여왕의 재위는 16년. 그녀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이미 나이가 많았다. 그랬겠구나. 그동안 선덕여왕 아닌 덕만 공주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것이 참 희한하게 느껴졌다. 오랜 세월 나이 든 공주였던 그녀. 더 희한한 것은 불과 며칠 전 지귀설화를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던 우연의 일치다. 이 책을 만나려고 그랬던가 싶은. 나는 순수한 지귀의 사랑이 화마(火魔)로 화할 수 밖에 없었던 비극적 결말이 늘 마음 아팠다. 과유불급이라는 걸까? 사랑도? 다정도 지나치면 병이라 하니, 시쳇말로 스토커 정도로밖에 취급되지 않은 걸까? 지귀의 사랑은? 그러나 생각컨대 상대를 괴롭혀 내 만족을 추구하지 않는 사랑은 아무리 깊어도 사랑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그런 사랑 말이다. 여왕, 지귀, 광덕..그들 각자의 사랑.
평생을 홀로 산 선덕여왕에게는 정말 사랑이 없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개연성 있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만약 지귀 이야기가 사실과 연관되어 있다면 영묘사 화재 사건과는 어떤 고리를 지니고 있을까? 이 책은 그런 상상에서도 출발한다. 그리고 상상이 한 자리에 모인다. 예순이 넘은 여왕은 어린 화랑 가진을 사랑했고 그건 그녀 인생의 유일하고 때늦은 사랑이었다. 비밀스럽고 비밀스러워 결국 홀로 간직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랑. 열일곱의 평민인 지귀는 선덕여왕을 사랑한다. 때이르고, 가여운 사랑. 여왕의 사랑은 눈부시고 아름다운 젊음에 대한 동경과 섞였고, 지귀의 사랑은 충성과 섞였다. 그래서 사랑이 덜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고 더 진한 핏빛을 띠었다.그들의 사랑 역시 다른 사랑과 똑같이 아름다웠다. 슬픈 아름다움.
사랑 이야기와 더불어 책의 많은 부분은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삼국통일을 이루어내게 된 배경에 할애되어 있다. 그런 악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김춘추 측의 고민과 이를 저지하려는 반대쪽(비담, 염종)의 울분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생생히 표현되어 있다. 작가는 그런 역사의 회오리가 사랑을 뒤흔들게, 그렇게 안배해 놓았다. 참 얄궂기도 한 작가의 상상력이다. 선덕여왕이 사랑한 가진은 가공의 인물이지만 이 책에서는 결국 반란을 일의는 염종의 아들이다. 역모의 끝은 비극이다. 지귀는 가진의 인품에 반하여 그의 낭도가 되고 싶어 했지만 은혜를 베푼 김유신의 사주를 물리치지 못하고 염탐을 한다. 그의 흠모의 대상은 역적이 되고 만 가진이며, 그의 사랑은 조국 또는 선덕여왕이다. 어떻게 보면 삶에는, 사랑에는 늘 저런 이율배반적인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모든 사랑은 아름답되, 슬픈 것이다.
종횡무진으로 달리는 상상력과 애잔한 사랑에 쉬지 못한 채 단숨에 책을 다 읽고 생각해보니 나는 <마지막 왕자> 이래 강숙인 작가의 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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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얼마 되지 않는 오랜 역사의 흔적 한 자락으로 그 시대를 짐작코자 하는 또는 그러한 노력이 담긴 책들을 읽으면 새삼스런 기쁨을 맛보고는 한다. 동시에 그런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작가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감사와 박수를 또한 보낸다.
이 이야기 역시 <삼국유사>에 담긴 두 줄의 짧은 역사적 기록과 더불어 '지귀 설화'라는 역사의 흔적으로 탄생된 이야기였다. '지귀 설화'는 이 이야기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된 설화이다.^^;;
이야기 자체에 대한 재미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자못 궁금해 하던 역사의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하여 책장이 휘리릭~ 잘도 넘어간다. 그것은 다름아닌 신라는 왜 당나라의 힘을 빌어 삼국을 통일해야만 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것이었다.
차라리,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지 않았더라면......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더라면....하는 아쉬움과 함께 왜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였을까? 하는 오랜 역사에 대한 의문과 반감이 문득문득 밀려오고는 하였었다.
철없이 국사를 배울 때만해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부분으로만 알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신라의 삼국통일로 인해 득보다는 실이 많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움에 괜한 원망이 치밀어 오르고는 하였다. 왜 삼국의 통일을 기상도 드높았던 고구려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도 아니었다면, 차라리 발해라도 대신했더라면.....하는 안타까움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화랑 가진과 선덕여왕 그리고 활리역 역졸 지귀, 세 인물이 엮어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틋함보다도 당시 신라의 위기와 선덕여왕의 나름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전개가 나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신라의 존재를 위태롭게 하는 고구려와 백제를 스스로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인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당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던 당시 신라의 편치 않았을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평생을 여왕으로 고구려와 백제에 대치하여 신라를 통치하였던 선덕. 그녀 앞에 나타난 어린 가진으로 인해 처음으로 느끼는 가슴속의 통증이 참 가슴 아프게 전해왔다. 실제 선덕여왕은 과연 어떠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개인적으로, <지귀, 선덕여왕을 꿈꾸다>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지귀가 선덕여왕을 향한 마음은 그다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진을 꿈꾸는 선덕여왕의 마음이 더 절절하게 다가왔다. 오히려 지귀가 꿈꾼 것은 선덕여왕이 아닌 그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어쩔 수 없이 화랑 가진의 낭도가 되어야 했던, 결국엔 목탑과 함께 불꽃속으로 사라진 지귀가 과연 선덕여왕을 꿈꾸었을까...하는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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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덕여왕과 지귀(志鬼)의 이야기를 담은 ‘지귀설화’를 처음 들었던 것이 언제였나. 꽤 흥미롭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신라시대에 ‘지귀’라는 사람이 선덕여왕을 사모하여 몸이 여윌 정도였다. 여왕이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지귀의 이야기를 듣고 지귀를 불렀는데 여왕이 절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동안 탑 아래에서 지쳐 잠이 들었다. 지귀의 잠자는 모습을 본 여왕이 자신의 금팔찌를 뽑아서 지귀의 가슴에 놓고 갔는데 잠에서 깬 지귀는 여왕의 금팔찌를 보고 더욱 더 사모의 정이 불타올라 화귀로 변하였다고 한다. 지귀가 화귀가 되어 돌아다니자 사람들이 두려워하였는데 선덕여왕이 ‘지귀가 마음에 불이 나 몸을 태워 화귀가 되었네. 마땅히 창해 밖에 내쫓아 다시는 돌보지 않겠노라.’는 주문을 지어주고 대문에 붙이게 하니, 그 뒤로는 화재를 당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지귀설화’이다. 설화들은 그 이야기 구조나 내용이 듣는 이 혹은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다. 다양한 이야기로 변모 가능한 것이 설화의 매력이 아닐까? 2. 작가가 다시 살려낸 설화 속 인물 ‘지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덕여왕은 어떻게 그려질 지에 대해서도 궁금하였다.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 중에는 분명 뛰어난 여성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여성인물들은 그 자체로서보다 그 여인의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시되는 면이 없잖아 존재한다. 이 책은 그러한 점을 탈피하고 있을까? 어쩌면, 이 책 역시 선덕여왕보다는 지귀와 그를 둘러싼 주변 남자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펼쳤다. 3. 지귀는 어떤 인물일까? 설화 속에서는 선덕여왕을 사모하다 화귀가 되고,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다가 사라지는 인물이다. 작가가 그려낸 지귀는 화랑인 ‘가진’과 ‘법민’ 사이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존재이다. 사실, 이 책 속 지귀는 선덕여왕을 꿈꾸었다기보다 화랑의 낭도로서 ‘가진’에 대한 사모가 더 크게 느껴졌다. 자신을 천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대해 준 ‘가진’에 대한 마음과 자신을 추천하고 쓸모 있는 존재로 만들어 준 김유신장군, 그리고 신라와 왕에 대한 충성심 사이에서 갈등과 방황을 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지귀와 선덕여왕 사이의 어떤 사건은 그저 지나가는 일화에 불과하다. 선덕여왕의 당찬 행보와 정치적 역량과 더불어 한 인간(혹은 여성)으로서의 개인적인 감정 또한 이 책의 큰 줄거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이 ‘지귀’와의 관계라기보다 ‘가진’과의 관계에 더욱 무게가 쏠리므로 ‘지귀’는 그저 주변인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결국은 내게 있어서 이 책은 ‘지귀’와 ‘선덕여왕’이 아니라 ‘지귀와 가진’, 혹은 ‘선덕여왕과 가진’의 이야기로 읽혀진 셈이다. 4. 우리의 역사를 배우면서 왜 신라에만 여왕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엄격한 신분제도인 골품제도는 역량과 능력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회를 박탈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에 여성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선덕여왕이 제도의 덕을 보았기는 하나 그녀 자신이 왕의 자질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역사 속에서 잊혀진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