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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부터 사랑영화가 좋아졌다. 첫 번째 대학원을 다니던 시기까지만해도, 다수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을 눈물짓게하고, 꿈꾸게 만든『러브 어페어』(Love Affair)같은 영화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정진해야 하는 목표의 무게 아래 감정 자체를 사치로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가벼운 세상풍조를 나름의 철학적 사고로 바라보며 감정의 방종을 무시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정말로 어느날부터인가, 유보되고 숨겨졌던 역사의 진실에 정직하고 치열하게 접근한 영화에 지적 전율과 흥분을 느끼듯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리움과 사랑과 애절함을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를 보며 때론 눈물과 함께 감정의 격동을 경험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봄날의 순간성(『봄날은 간다』), 시간의 유한함(『Somewhere in Time』), 또 육신의 나약함(『Walk to Remember』) 같은 것들이 비록 흥행을 위한 영화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언정... 좀 더 사람다워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였는지, 역시 사랑의 격정을 독특하게 다룬 영화 『중독』도 꽤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
『중독』의 특이한 점은 "빙의(憑依)" 현상을 영화를 풀어나가는 장치(MacGuffin)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빙의"는 영혼이 다른 사람의 육체에 들어가는 현상을 일컫는 정신병리용어이지만, possession(사로잡힘)이라는 영어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귀신들림'을 표현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때로는 "해리성 정서장애"라 불리는 "다중인격" 현상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중독』이 무슨 심령과학 영화나 공포영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이 기이한 소재를 '사랑'이라는 절대 가치와 연결시키고, 그 때문에 영화 속에서 이 현상의 기능은 공포와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관객에게 동정과 애절함을 호소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빙의' 현상을 소재로 영화를 꾸민 것이 물론 『중독』이 처음은 아니다. 이 영화가 나오기 얼마전 역시 '빙의'를 소재로 한 일본 영화 『비밀』이 개봉되면서 관객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심지어는 표절시비가 일기도 했다. 그러나 두 영화를 모두 본 관객이라면, 두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과 분위기가 현격하게 다름을 포착할 수 있었고, 때문에 표절 의혹은 더 이상 논의거리가 되지 못했다. 또 이전에도 '빙의'의 다양한 양상을 소재로 한 영화나 공포 소설등은 여럿 있었다.
실제로 작년 중반 출판되어 출판가와 평단의 깊은 주목을 받았던 19세기 미국 작가 에드가 앨런 포우의 단편 전집 『우울과 몽상』에서 나는 이 '빙의' 현상을 다룬 3편의 단편을 읽고 섬뜩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현대 추리 공포소설의 시조로서, 『검은 고양이』, 『모르그 가의 살인사건』등으로 유명한 포우는 이미 19세기 중반에 현대의 추리, 환상 소설이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썼다. 특히 그는 『리지아』, 『베레니스』, 『모렐라』라는, 모두 여인의 이름으로 붙여진 그의 단편 소설들에서 지독스레 처절하고 강렬해서 죽음과 환생과 영혼의 교환을 통해서라도 이어가고 싶었던 사랑의 중독성을 그려냈다. 물론 이런 소재의 탄생은 포우 자신의 사랑에 대한 강렬한 희구, 열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영화 『중독』은 이전에 다뤄진 소재를 그대로 얽어내는 단순함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빙의'는 반전을 위한 장치일 뿐, 영화의 전반을 지배하는 중심은 아니다. 영화 속에서 실제 '빙의'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단지 중독된 사랑을 성취하기 위한 주인공 이병헌의 연기였을 뿐이다.
영화는 주인공의 연기에 도덕적 평가를 내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여주인공인 형수 이미연이 이병헌이 마치 형의 영혼이 자신에게 들어온 것처럼 '빙의'를 연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사랑 때문에," 자기 자신(자신의 영혼)을 버리기까지 한 이병헌의 선택에 손을 들어준다. 결국 사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자신의 소중한 영혼마저 버렸다는 것, 그토록 처절하게 '중독'되었다는 그 사실만이 주인공의 유일한 허물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영화의 질과 가치, 도덕성을 평가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영화의 다른 평가를 떠나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고 이전의 주인공의 형 이걸이 그의 아내 이미연에게 보여준 순수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모습이었다. 마치 "진짜 사랑은 이런 거야" 하는 전형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사랑을 꿈꾸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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