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란한 문화와 역사의 중심인 이스탄불에서 벌어지는 비밀스러운 사건 속에 환관 탐정 야심이 있었다. 고대의 유물과 비밀결사 그리고 알 수 없는 사건들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 속 이야기와 유물들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 전에는 이해하기 힘들꺼라 생각했지만 막상 읽다보면 흥미롭고 점점 빠져들게 되며, 그 역사속의 분위기와 향기를 한껏 느끼게 된다.
이런 역사와 고고학 만남의 소설은 왠지 딱딱하면서도 느리게 읽혀질꺼라 생각하지만 한 번 빠져들게 되면 계속해서 다음 장을 향해 가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읽다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역사적 배경지식 더해진다면 더욱 생생한 소설의 맛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모습과 사람들의 특징적인 묘사 그리고 환관 탐정 야심의 개성과 사건을 풀어나가는 모습은 그 시대와 어울리게 녹아 있다. 특히 야심이 만드는 다양한 요리와 오스만 시대의 음식은 책 속에서 향기가 나듯 감각적이다. 역사 속 사건들은 모두 스릴러적인 요소와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행해지고, 감추어지듯 사건 하나하나가 흥미롭다.
처음 빠르게 읽어봤다면 이제는 천천히 머리 속으로 이미지를 떠올리듯 읽어보며 이스탄불 역사의 재미에 푹 빠져보고 싶은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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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중심도시 이스탄불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 종교적으로 보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수차례 부딛혔던 곳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은 또한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다. 기원전에는 그리스의 도시로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서기 330년에 제정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이곳을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하면서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바꾸었다.
그로부터 약 200여년 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이 도시에 있던 거대한 건축물을 재건한다. 성소피아 대성당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부터 1453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도시를 점령할때까지, 이 도시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이자 비잔틴 문화의 중심도시 역할을 해왔다. 오스만 군대에 의해서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자 도시의 운명도 바뀌었다. 도시의 이름은 이스탄불로 변했고 성소피아 대성당은 이슬람교의 아야소피아 사원이 된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에는 또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와 연관된 이야기다. 열광적인 성유물 수집가였던 헬레나는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유물처럼 생각되는 것들을 가져다가 콘스탄티노플로 모아들였다.
그 유물들은 순식간에 유럽의 성당과 수도원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워낙 수량이 많았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에 남겨진 것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런 유물들은 아마도 이후에 지어진 성소피아 대성당 어디엔가 보관되지 않았을까. 구약과 신약을 통털어서 그리스도교의 유물들을 지키기에 그만큼 좋은 장소도 없었을 테니까.
이스탄불에는 어떤 보물이 남겨졌을까
물론 그것도 1453년까지 해당하는 얘기다. 그 해에 오스만 군대가 도시와 성당을 점령하면서 그 유물들의 운명도 바뀌었을 것이다. 어쩌면 몰락을 예감한 성당의 사제들은 밀려오는 군사들을 보면서 자신의 안위보다는 성유물의 보전에 더 많은 신경을 썼을지도 모른다. 성당기사단의 숨겨진 보물이나, 몰살당한 카타르파의 사라진 보물처럼 성소피아 대성당의 성유물도 팩션(Fact+Fiction)의 대상이 되기에 아주 좋은 소재다.
제이슨 굿윈도 그 사실을 알기에 <스네이크 스톤>을 구상했을 것이다. '스네이크 스톤'이란 콘스탄티누스가 델포이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뱀 기둥'을 가리킨다. 세 마리의 뱀이 하나의 기둥을 차지한채 서로 휘감고 있는 것처럼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이라는 세 개의 이름이 하나의 도시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스네이크 스톤>의 배경은 19세기 중반의 이스탄불이다. 술탄 마흐무트 2세는 간경변으로 죽어가고 있다. 술탄이 신민들에게 서양식 의복을 권장한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통일되지 않고, 불량주화에 대한 의심 때문에 사람들은 동전을 받으면 깨물어 보고서야 안심을 한다.
그런 거리 풍경과는 관계없이 이스탄불에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모여든다. 그리스인, 알바니아인, 프랑스인, 유태인 등. 한 외국인은 이스탄불을 가리켜서 '세계의 수도가 될 운명의 도시'라고 표현할 정도다.
동서양을 연결하는 것과 동시에,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항구도시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이스탄불은 '세계 무역의 거대한 집산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술탄의 목숨이 오늘내일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는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이런 도시에서 주인공 야심은 하숙을 하며 살아간다. 환관인 그는 원래 궁에서 술탄에게 봉사했지만 궁에 머물기에는 그의 재능이 너무 뛰어났다. 야심의 공을 인정한 술탄은 그에게 자유를 허락했고, 자유는 이제 야심이 열심히 일해서 채워야 할 책임이 됐다.
소설로 다가오는 이스탄불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는 야심의 친구인 한 그리스인 상인이 해질 무렵 칼로 피습당하면서 시작된다. 그 상인은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중태에 빠진다. 그리고 의식이 돌아와서도 자신을 공격한 사람이 누구인지, 왜 자신을 습격했는지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주변의 다른 상인이 야심에게 그리스인 비밀결사인 '헤티라'를 속삭일 뿐이다.
이 단어만으로는 아무것도 추측하거나 추적할 수가 없다. 야심은 뭔가 실마리를 찾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던중에 야심과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외국인이 피살당하고, 그 혐의는 야심에게 돌아온다. 이제 야심은 그리스인 친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발벗고 나서야할 처지다.
작가 제이슨 굿윈은 사건을 전개해 가면서 150여년 전 이스탄불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에 건설된 겹겹의 역사를 가진 도시, 지배자가 바뀌면서 정체성이 재구성된 도시, 콘스탄티노플이자 이스탄불인 도시.
야심은 그 도시를 보면서 생각한다. 이름이 바뀌면 도시도 바뀔까. 도시는 이름이 아니다. 한데 뒤엉킨 삶과 몸짓과 기억의 연속이다. 프랑스인에게 이스탄불은 동양이다. 중국인에게는 서양이다.
야심에게 도시는 거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사원과 시장을 에워싼 중얼거림, 더러운 벽에 등을 기댄 지친 소년, 어둠 속에서 박쥐를 향해 뛰어오르는 고양이, 지친 뱃사공의 굽은 등이다. 도시는 낡은 것에 새로운 것을 보태면서 버티고 성장한다. 야심처럼.
<스네이크 스톤>은 환관 탐정 야심이 등장하는 시리즈의 한 편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비잔틴의 역사를 공부했던 작가는 이 시리즈를 통해서 이스탄불과 오스만 제국의 문화, 역사를 소설로 풀어내고 있다. 지나간 시간과 공간을 흥미롭게 재구성하는데 팩션만큼 좋은 것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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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굿윈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찾은 보스포루스 해협의 스케치)
제이슨 굿윈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터키 궁정의 환관(eunuch) 출신인 야심(Yashim)이다. 야심은 오스만 제국의 30번째 술탄인 마흐무트 2세(재위기간 1808-1839)의 봉신으로, 비록 신분은 환관이지만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지닌 터키 지식인의 전형이다. 개혁군주 마흐무트 2세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터번을 두르고 다니지만 그에게서 일체의 무슬림이 가진 종교색은 보이진 않는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작가의 중립적인 태도라고 할까. 이야기는 이스탄불의 모처에서 일어나는 린치와 살인사건으로 시작된다. 역시 팩션 소설들의 장기인 살인과 미스터리가 빠질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엉뚱하게도 오늘날로 치면 흥신소업을 하며 조용하게 살려고 하는 야심의 목을 죄어온다. 야채장수 조지가 린치를 당하고, 책방주인과 자신에게 도움을 청해왔던 프랑스인으로 자칭 고고학자라는 르페브르가 살해당하면서 야심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뿐이다. 미스터리의 중심에는 1453년을 끝으로 역사상에서 사라져 버린 천년제국 비잔티움의 전설이 서려 있다. 터키군이 콘스탄티노플로 막 난입을 하기 전, 아야 소피아 성당에서 마지막 미사 집전을 했던 총대주교가 의전 때 사용한 성찬 도구들의 향방이 관건이다. 혹자는 성배라고도 하고, 의견이 분분하다. 작년에 읽었던 존 J.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 삼부작이 이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도. 굿윈은 미스터리에 으레 등장하는 숨 막히는 추격전이나 냉철한 추리를 해내는 멋진 캐릭터 대신에, 그랜드 바자르로 대표되는 미로와 같은 이스탄불의 거리들을 삽입하고 온전하지 못한 존재인 환관 야심을 기용한다. 오스만 제국의 환관 출신인 야심은 그리스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로 된 소설을 자유롭게 즐긴다. 게다가 또 한 요리하면서, 미각적인 즐거움까지 선사해주고 있다. 터키 음식이라고는 고작해야 케밥 정도 밖에 모르는 나에게, 아주 다양한 터키 음식의 소개는 색다른 체험이었다.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에서 언뜻 본 음식들이 떠올랐다. 작가는 현재의 이스탄불을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이스탄불의 세 가지 정체성을 각각 고대, 중세 그리고 근대의 개념으로 치환시키면서 천수백년을 이어온 오늘날의 이스탄불을 너무나 매력적으로 묘사해주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서는 ‘물의 도시’(어쩌면 이 표현이 이 소설의 키워드인지도 모르겠다)와 유스티아누스 대제가 건립한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아야 소피아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제이슨 굿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중적인 신화적 요소들을 <스네이크 스톤>에서 많이 채용하고 있다. 클라이맥스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보물을 찾아 지하 수도를 헤매는 아멜리에와 야심의 모습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세우스와 아드리아네의 근대 버전이었다. 미궁을 벗어나기 위해, 실타래를 푸는 아멜리에의 모습에서 예의 장면이 바로 연상이 되어졌다. 그리고 아마 작가의 프랑스 문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평생 동안 프랑스 파리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야심이 당시 프랑스의 유명작가들인 발자크와 스탕달을 읽는 장면으로 치환되고 있었다. 아주 구체적인 작품의 이름까지 등장을 하는데 <고리오 영감>과 <적과 흑>이 그것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 중의 하나는 도대체 이 팩션의 시대적 배경이 언제였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 나의 궁금증은 책을 읽으면서 찾아낸 하나의 단서로 바로 풀렸다. 154쪽에서 키오스 섬의 학살 사건(1822)을 언급하면서,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의 일이었다는 기술이 나오는데 그것으로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 1838년이라는 점을 알 수가 있었다.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아주 쉽게 풀렸다. 자신의 성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야심의 캐릭터는 아주 매혹적이다. 이스탄불의 터줏대감, 미로 같은 도시의 곳곳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술탄의 모후라는 든든한 빽도 가지고 있다. 프랑크 여인 아멜리에 르페브르와의 스쳐가는 로맨스 처리도 일품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랄라(실권을 지닌 부유한 가문에 봉사하는 신뢰할 만한 환관:45쪽) 야심의 다음 모험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야심의 세 번째 이야기인 <벨리니 카드(Bellini Card)>가 미국에서는 이번 달에 출간이 됐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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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은 맞닥뜨리는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도전하지 않았다. 온화한 표정, 잿빛 눈동자, 사십 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 거의 손대지 않은 짙은 곱슬머리. 그는 듣는 사람, 조용히 묻는 사람,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야심은 환관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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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부제는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보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미끼입니다. 배경은 이스탄불입니다. 한 때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렸던 곳이죠. 주인공은 특이하게도 내시(환관)입니다. 술탄은 죽어가고 있고 주요 배경으로 황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환관이 제격일 것입니다. 술탄의 은총을 받아 궁외에 홀로 거주하면서 자주 입궁하는 '야심'이 주인공입니다. 프랑스인(프랑스계 스위스인이라고도 합니다) '막시밀리앙 르페브르'가 핵심을 쥐고 있는 인물이고, 그의 아내라는 '아멜리아 르페브르'도 중요인물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술탄의 모후인 '발리데'나 폴란드 대사 '스타니슬라브 팔레브스키'와 술탄의 의사 '밀링언' 등이 역시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초기에는 지나치게 많이 벌여놓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근 이백 페이지를 나갈 동안 감이 안 잡힙니다. 사백여 페이지인데 삼백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뭘 추구하는지 불확실 할 정도입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끝입니다. 기승전결을 나눠보자면 기가 좀 길고 승도 아주 깁니다. 전이 보통인데 결은 지나치게 짧습니다. 091227/09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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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하는 거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는 세상은 변하지 않고 다만 사람이 변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변하고 변하지 않던 인간에게 좋은 것은 변하고 나쁜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19세기 터키의 이스탄불은 그런 의미에서 변하고 있는 곳이다. 역사의 흥망성쇄의 단계 중 쇄락의 단계에 접어들어 부귀와 영화는 점점 희미해지고 그리스마저 잃었다. 술탄은 병으로 임종이 임박해져 있고 왕궁은 이미 프랑크식을 받아들여 술탄은 침대에 누워 있고 여자들은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그리고 그리스인이든, 유대인이든, 아르마니아인이든, 터키인이든 모든 복식을 통일하고자 한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심은 여전히 터번을 하고 망토를 두르고 다닌다. 그의 지구상의 지도에서 사라진 폴란드 대사 친구는 폴란드가 있던 시절의 복장을 고집하고 있다. 늙은 그리스인은 그리스인 복장을, 유대인은 유대인 상징을, 모든 민족이 모여 살지만 각기 구역을 정해 서로 침범하지 않으려는 도시가 변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이스탄불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참, 바이런 경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동생이 터키와 그리스를 여행하고 와서 사진을 보여줬었는데 유적지가 비슷해서 놀랐었다. 세계사를 까먹은지 오래되서 그리스와 터키의 관계를 잘 몰랐기도 했지만 작품 속 작가의 생각이 사실이라면 서양인의 그리스인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환상은 무서운 것이다. 자기만의 신화를 간직하는 것도 때론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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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굿윈의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은 제목만 들었지 읽어본 적은 없다. '환관'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어쩐지 가벼운 이미지와 표지에 그려져 있는 야심의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책을 읽는 데 표지가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책의 표지는 나에게만큼은 큰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라도 표지가 이상하면 속이 상하고, 재미없는 책이었더라도 표지가 멋지다면 어떻게든 움켜쥐고 있고 싶기 때문이다. '책은 사람에게 읽혀져야 진정한 제 기능을 하는거야'라고 말하는, 정말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말을 들으면 기가 차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 흠흠.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표지에서 느껴지는 야심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무척이나 잘난 척을 할 것 같은 사람이다. 왕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소리없이, 때로는 촐싹거리면서 사건 속을 종횡무진 헤집고 다니는 야심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데 [스네이크 스톤] 에 나타난 그는 예상 외로 진중하다. 마치 물같은 느낌이랄까. 흐르는대로 언제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 정적인 느낌. 그에 대한 내 편견이 순식간에 깨지면서 이슬람의 신비로운 문화가 나를 책 속으로 이끈다.
배경은 술탄 마흐무트 2세가 죽음을 앞둔 19세기 중반의 이스탄불. 야심의 친구 조지가 습격을 당해 큰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잇달아 벌어지는 살인사건들. 책방을 운영하는 상인이 살해되고 야심의 친구 팔레브스키와 함께 그를 방문한 프랑스인 르페브르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한다. 르페브르가 야심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그 때 르페브르는 야심의 방에 한 권의 책을 숨겨놓고, 훗날 그 책을 발견한 야심은 '헤티라'라는 단어를 단서로 범인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술탄에게만 전해내려오는 전설과 책이 간직한 비밀,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19세기 이스탄불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예전에는 미스터리 팩션을 참 좋아했지만 요즘은 어쩐지 잘 읽지 않게 된다. 별다를 것 없는 소재와 그리 크게 차이나지 않는 이야기들은 나를 질리게 했고 점차 팩션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만약 이 책이 또 성서 다시 구성하기 등의 이야기였다면 나는 절대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끌어당긴 이 책의 매력은 19세기 이스탄불의 서민적인 모습이었다. 굉장히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을텐데도 야심이 등장하면 금새 조용해지는 듯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새롭게 알게 된 이스탄불의 역사와 문화, 그리스 비밀결사대 등의 이야기도 처음 접해보기 때문인지 흥미로웠다.
하지만 추리소설이 흔히 갖추고 있기 마련인 숨가쁜 추격전이나 스릴은 조금 부족하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고 약간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인공 야심을 이해한다면 그런 분위기도 곧 적응이 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환관이지만 내가 가진 환관 이미지와는 영 다른 남자. 오히려 정적이고 차분한 그의 모습은 추리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그것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면 이상하게 들릴까.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에서의 야심도 한결같은 모습일지 궁금하다.
2007년 세계 최고의 추리문학상을 수상했다는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 그리고 이 책 [스네이크 스톤]. 이스탄불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야심의 사건 수사 모습이 궁금하다면 읽어보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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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굿윈의 [환관탐정 야심- 예나체리부대의 음모]는 굳이 다른 책을 찾아보지 않아도 뒤편의 해설을 통해 생소한 시대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가능했다. 게다가 작품 또한 역사적인 사건 위에 살인사건을 얹어놓은 형태라 이야기의 큰 줄기와 작은 줄기가 구분가능했다. 그런데, 두번째 시리즈인 이번 작품의 본줄거리와 이를 뒷받침하는 이야기들(후반부 야심이 파악한 이후부터 엔딩까지 가야 그게 서로가 연관됨을 알게된다. 시종일관 왜 이리 자잘한 사건들이 많은가 했다)의 연관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책뒷면이 아닌 바로 인터넷서점의 책소개를 알아야 한다.
또 오스만제국의 다양한 민족들과 종교관계에 대해 해설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그게 바로 이 소설의 핵심이다) 아니면 괴첵댄스라든가, 아야소피아 사진이라든가 사진같은 거라도 있음 더 좋을텐데..[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나 [다빈치코드]를 읽을떄에도, 나오는 것들이 사진으로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라고 생각했는데, 전자는 편집자가 그림들을 삽입해서 정말 좋았고, 후자는 결국 나중에 인터넷자료를 보강해서 비싼 버전으로 다시 나왔다.
..불가리아인은 양을 알고 세르비아인은 언제라도 싸울수 있죠. 그리스인은 말하는 법을 알고 터키인은 침묵하는 법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 알바니아인은...우리는 물을 읽을 수 있습니다...p.343
지난편에서 목요일마다 식사를 같이 하는 (비록 야심이 요리를 하고 그는 먹어줄 뿐이지만) 폴란드대사 팔레브스키가 로마-그리스를 잇는 기독교국가인 비잔틴제국 (결국 오스만제국에 의해 멸망되었다)의 유물인 뱀기둥에서 뱀머리들을 술김에 잘라내 숨겨온 것을 고백한 적이 있다만, 그게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아니다. 여하간, 프랑스인 골동품상으로 보이는 르페브르 (프랑스어를 말하는 나라는 얼마나 많은지...)을 찾아오지만, 그들의 관계는 야심의 요리를 두고 어긋난다. 한편, 대강 관심있는 이들은 다 아는 사실인거 같은데, 팔레브스키는 자신이 숨기는 뱀머리들로 당황스럽다.
...플라타이아이에서 페르시아를 누른 그리스의 기적적인 승리를 기념하고자 이천년전 제작된 이 놀라운 예술품은 세마리의 무시무시한 뱀이 거대한 청동 가마솥을 떠받치는 형상으로 수백년동안 델포이 신전에 서 있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새도시를 꾸밀 목적으로 이리로 옮겨졌다. 이후 수세기 동안 이 건축물은 수난을 겪었다....p.95
그리스에서 온 상인집안의 마브로고르다토 부인은 야심을 불러 르페브르가 남편을 찾아와 무슨 물건을 팔겠다고 협상했다며 이에 대해 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공교롭게, 르페브르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복부가 갈라지고 길거리의 개들이 얼굴과 온몸을 다 훼손한 상태로...마치 바이킹의 심판마냥 (그런데 바이킹하고 러시아하고 연관이되며, 또한 러시아정교회랑도 연관이 되어있으며..이런 것들이 의외로 중요하단 말이지)
...바이킹... 사나운 투사들말일세 터키 총포부대처럼 전쟁에만 나가면 돌아버리는 족속이지...여름내내 피와 우레소리...그것을 긴 시로 지어 겨울내내 행복하게 읊었다네 ([베오울프]에 나오는 애들, 괴물이 시끄럽다 하면 좀 조용히 지낼것이지). ..전쟁과부 외에 그들이 남긴 가장 주목할 만한 산물은 러시아야..러시아 정교회의 기원이지..비잔티움 사람들은 그들을 제국의 수호자로 황용했어...날개를 편 독수리는 비잔티움 황제들의 상징이었어...p.169~170
야심은 자신과 접촉한 일로 찝찝해하는 와중에, 그 프랑스인이 자신의 집에 와서 무언가를 숨기고 갔음을 발견한다.
폴란드 대사에게 의탁한 자니는 배수공길드 (이들은 거의 알바니아 인이며, 알바니아인들의 종교는...)에 들어가기 위해 사채를 빌렸고, 유대인 상인 또한 살해당한다. 과연, 이 모든 것들이 연관된 것은 무엇일까.
..그리스인은 어린애야. 날마다 잊으니까. 유대인은 어른이야. 날마다 기억하는 어른... p.196
근대화에 힘쓰던 마흐무트2세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술병으로 건강이 악화되고 그를 진찰하는 영국인의사 (그 잘생기고 뛰어난 낭만주의 시인인 바이런이 그리스 독립운동에 참여하러 갔다가 죽었단 말이지)는, 동전수집을 하고 있으며, 술탄의 모후인 발리데와의 대화 등등...이렇게 사소한 점들마저 다 뭐가 큰 줄거리인지 모르게 정신없이 흘러가다가 엔딩이 가까워져 가면서 갑자기 야심의 꺠달음과 함께 확 큰 형태로 시각화된다.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는 순간, 아야소피아에서는 무슨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지난번에 이어 야심은 아름다운 르페브레부인과 열정을 불태우지만...(아무리봐도, 여복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어, 미모빼곤)
여전히, 오스만문화에 대한 통찰과 이해는 놀랍고, 재치만점의 대화 또한 즐겁다 (단, 남자는 하고싶은 것을 하고 여자는 해야만 하는 것을 하지..라는 발리데 말은 좀..)
...프랑크인에게는 식사를 하는 식당이 있고..그들의 삶 자체가 일련의 물러남인데도 남들 앞에서 물러나 쉬기위한 휴기셀이 있었다. 그들은 어떤방 어떤 일에서 다음방 다음일로 종종걸음을 치면서 바꾸고 갈아입어가며 끝없이 현실에 대한 관여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반면 오스만 가정에서는 이곳 하렘에서조차 누구나 각자가 꾸려가는 삶의 흐름에 따라 부유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기분이 우울하면 여지없이 사람들이 들러 기운을 북돋아줬고, 아프면 누군가가 여지없이 알아차렸고, 피곤하면 꾸벅꾸벅 졸아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p.147
p.s: 1) 아야소피아 (Ayasofya) :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호칭되고 있을 때에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어졌고, 터키 지배 때에는 이슬람의 모스크가 되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쓰인다.... 대소의 주두(柱頭) 조각으로 대표되는 비잔틴의 세련된 장식 조각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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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탄의 서재
![]() 아야소피아 내의 기독교 벽화
2) 매력적인 인물은, 의외로 야심보단 프린.
...야심은 프린의 조직력에 내심 놀랐다. 손님에게 팁을 받아 생활하고 사라져가는 미모를 초조해하고 자고 춤추고 터키식 목욕탕에서 온종일 빈둥거리던 무용수는 없어졌다. 극장이라는 개념을 깨치자마자 그녀는 열정적으로 사업에 달려들었다. 페라에서 적당한 부지를 물색하소, 건축업자를 수소문하고..므린은 강철같은 의지의 소유자였다. 말이 안되는 것은 용남하지 않고 모순도 허용하지 않았아. 하지만 칭찬해야할 때는 확실하게 칭찬했다...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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